매거진 12월29일

3화. 곰 세마리

아빠 곰, 엄마 곰, 애기 곰.... 다들 행복했을까?

by 신소운

3.1. 사무실 / 꿈


/ 본 투비 마이 베이비 노래가 조그맣게 흘러 나오고 아침을 준비하는 엄마. 샤워하고 나온 아빠가 춤을 추면서 엄마에게 다가가 뒤에서 안고 같이 움직인다. 엄마 손을 잡고 우스운 춤을 추려는 아빠, 조용히 하라면서도 호응해주는 엄마, 막 잠에서 깨 밖으로 나온 남자 아이가 활짝 웃으며 엄마아빠에게 가서 합체한다. 뒤늦게 와당탕 뛰어나오는 막내딸, 아빠한테 뛰어 안기며 같이 춤을 춘다. 온가족이 행복한 그때, 지하실 문을 열고 성큼성큼 올라오는 큰 아이, 책가방을 메고 인사도 없이 지나친다.


무서워서 숨는 둘째와 세째.. 막내를 바짝 안으며 긴장하는 아빠, 밥먹고 가라 불러세우는 엄마... 아빠를 꼭 안고 천천히 큰오빠를 돌아보는 막내의 표정이 점점 싸늘해진다. 따라오는 엄마를 뿌리치며 신발을 신는 큰 아이. 아이답지않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아무도 밖에 나오지 마. 다 죽어.”

아빠 뒤에 숨어 형을 말리고 싶은 슬픈 눈의 둘째와 그렇지 못한 눈빛의 막내. 혼자 나서는 큰아이의 뒤통수를 째려본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여러개의 잠금장치를 풀고 현관문을 연다. 번쩍 … 잠깐 밝은 빛이 들어오고, 다시 문이 닫힌다… 쿵…/


쿵…

지율이 눈을 뜬다. 누군가 불을 켰다. 사무실 소파다.

“어, 미안해요.. 또 여기서 잤어요?”


은석이다. 문앞에 멈춰선채 다시 불을 꺼야하나 고민한다. 지율이 몸을 비틀며 일어난다. 종아리가 땡긴다. 시계를 본다. 곧 7시가 될거다.

“더 자요, 아직 많이 일러요.”

“아니요, 일어나야죠. 일찍 오시네요.”


일어나 소파 옆으로 바짝 붙였던 테이블을 재빨리 제자리로 밀고놓고, 덮고 잔 잠바는 책상위로 던진다. 반쯤 돌아간 티셔츠를 바로하고 여기저기 먼지를 털어낸다. 밤새 켜 놓았던 작은 등을 끄고, 소파 위에 돌돌 말아놓은 수건을 들고 나간다. 방금 사온 요기거리 몇가지를 꺼내 놓으며 가만히 지켜보는 차은석.



3.1.2. 화장실


대충 올려묶은 머리를 귀 뒤로 정리한다. 이를 닦는다. 감정없는 눈으로 거울을 본다. 메아리처럼, 생생히 들리는 목소리..

“아무도 밖에 나오지마, 다 죽어!”

거품을 뱉고 물을 튼다. 떨치려고 해도 계속 들려오는 소리...

"죽어! 죽어! 다 죽여버릴거야!"


<회상>


“절대로 밖에 나오지 말랬지? 왜 말을 안들어? 죽을래? 셋 셀 동안 다 들어가! 하나! 둘! 셋!...”

둘째에게 이끌려 집안으로 뛰어들어오는 아이. 뒤에서 문을 막아버리는 큰 아이가 악을 쓴다.

“다 잠궈! 아무도 나오지 마!”


둘째가 서둘러 문을 잠그고 막내와 숨는다. 작은 방 안 다락방까지 뛰어 올라가는 아이들. 역시 여러개의 걸쇠를 모두 걸어 꼭꼭 잠근다.

“큰 오빠 싫어. 맨날 우리만 여기다 가둬놓고... 나도 나가서 놀고 싶어.”

“나중에, 형 없을때 멀리 가서 놀자. 형이 못 보는데 가면 되잖아. 오늘은 안되고... 그거 쏟아지니까 이리 줘.”

막내가 꼭 쥐고 있는 비누방울 놀이를 받아 뚜껑을 꼭 닫고 한쪽 옆에 세워둔다.


“인제 뭐 하고 놀까?”

“창문 내다봐도 돼?”

“안돼, 형이 보고 있을거야, 우리가 내다보나 안보나.. 다른거 하자.”

“암호 놀이? 경찰 암호?”

“너 너무 잘하잖아, 또 할래? 좋아, 네가 맞춰봐. 두 문장씩 한다.”


둘째가 공책에 써서 보여준다.

/ㅁㅈㄱ, ㅅㄱㅎ/

잠깜 들여다 보던 막내가 웃는다.

“문잠궈, 신고해?”


“맞아, 그럼 이거는?”

/ㅈㅇㅎㅎ, ㅇㄷㄹ/

“… 조용히해, 엎드려…??”

"거봐, 왜이렇게 잘해?"

"나 경찰 할꺼야! 경찰되서 큰 오빠 잡아갈거야!"


두 아이가 웃는다.

“쉿, 조용히 웃어. 형이 들으면 또 혼나..”

“웃긴데 어떻게 조용히 웃어?.. 크히히히…“

침낭 속에 얼굴을 묻는다. 푸하하... 으히히히... 안으로 쏙 들어가 마음껏 웃는다...




3.1.3. 사무실


사무실로 돌아온 지율, 책상 위에 놓인 아몬드를 본다. 크리넥스 위에 다섯개씩, 다섯 줄로 나란히 줄 맞춰놨다. 투명한 유리컵과 따지 않은 두유 하나, 바나나 한개. 역시 한줄로 길게 늘어섰다.

“아침이에요. 그정도 넓게 펴 놓으면 되요..? 안해봐서..”

건너편 차은석이다.


“두유는 일부러 안 따랐어요, 혹시 잘못 할까봐요.”

“감사합니다. 잘 먹을께요.”

“아몬드는, 하루에 25개 이상은 먹지말래요. 아까워서 안 준게 아니고, 그게 좋다 그래서 갯수 맞춘거에요.”

“예…”


지율이 웃었다. 수건을 걸어놓고 앉았다. 줄 세워 놓은 아몬드를 톡톡 건들다 입에 넣는다. 두유를 집어 빨대를 꽂았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빨아본다. 먹을만하다... 그제서야 은석도 마음 편히 아침 식사를 한다.


“차 형사님, 어제 밤에, 형제 고시원 사장님 딸이라면서, 전화가 왔었어요. 아침에 여기로 직접 오겠다는데, 만나보실래요?”

“그래요? 직접 온다구요? 음… 그 사건은… 강형사가 쭉 맡아도 될것 같은데요? 팀장님께 말씀 드리고, 직접 만나요. 아직 참고인 진술 안받아봤죠? 피해자쪽 사람이니까 어려울거 없어요. 이야기 들어주고, 특별한 거 있으면 잘 메모하고요. 기본 포멧 그대로 질문 하시면 되요. 몇시에요?”

“10시요.”


“어차피 강형사님, 오늘까지는 내근하는 게 좋을것 같으니까, 안 바쁘면, 류형사랑 같이 만나요. 시환이가 착하게 생겨서, 안물어봐도 술술~ 얘기 잘 할거에요. 경찰은 둘 중에 하나에요, 무섭거나, 천사표거나.. 그래야 사람들이 잘 털어놔요.”

상상외로 친절한 은석이 낯설다.

“… 오늘… 좋은 일이 있으신가봐요. 원래… 말씀 잘 안하시는 편이죠?”


차은석이 아몬드 봉지를 흔들어 몇 알 더 꺼낸다.

“아, 그거요… 맞아요, 말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특히 일할때는, 옆에 붙어 있는 사람이 하도 말이 많아서.. 그 사람 없을때만 말해요. 한번 받아주면 끝이 없거든요. 온종일 궁시렁궁시렁..”

지율이 웃는다. 누군지 알것같다. 은석이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한다.

“비밀… 본인만 몰라요.”


두우우웅----

진동이 울린다.

/닥터 송/

지율이 핸드폰을 들고 나간다.




3.1.3. 복도


“나야. 잘 지내지?”

“어. 아버지는?”

“나아지셨어. 눈은 잘 뜨시고, 이야기도 알아들으시는 것 같아. 며칠 더 지켜보겠지만, 퇴원 하셔도 이제는 요양병원으로 모셔야 할거야. 전에 얘기했던 거기로 옮길까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떤가 해서.”

“그렇게 해. 의사가 추천하는 건데, 그래야지.”


“걱정되면 한번 가서 둘러볼래?”

“아니, 괜찮아. 친구가 원장이라며? 잘 해 주겠지. 언제 옮겨?”

“글쎄, 아직 한 1-2주는 더 지켜보고.. 호흡 좀 안정되면 바로 가려고.”

“알았어. 옮길때 연락줘. 주소랑 방 번호랑..”


“쉬는 날 없어? 아버지가 기다리시는 것 같은데.”

“말도 못하는 사람이, 기다리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눈 보면 알지.. 여기서도 하루종일 문만 쳐다보신대.”

“…”

“바쁘면 말고, 괜찮아. 일 해.”

“내일 잠깐 들릴께. 시간은 장담 못해. 기다리지 마.”


전화를 끊는다. 이 사람… 그와의 대화는 늘… 하기 전에, 하는 중에, 다 하고 난 후에도 아주 오랫동안.. 뭔가가 남는다. 깊은 여운…? 엄청난 전율과 큰 충격…?? 상상을 초월하는 스트레스와 공포… 집안을 뒤흔들던 폭군.. 늘 그의 비위를 맞춰주려던 어머니, 어쩐일인지 그에게만 단호하지 못했던 아버지… 그 든든한 지원군을 믿고 갈수록 포악해지던 말종… 덕분에 늘 숨어지내던 둘째와 막내 – 지율.


가슴 속 돌덩어리가 점점 비대해지고 무게를 더한다. 가족… 모든 가족이 항상, 매일, 다 같이 행복한건 아니다. 가족이라고, 평생 가족인것도 아니다… 애당초 가족이 아니었던 사람도 있으니까… 가족이 아니었으면 좋았을, 아니었어야했을, 그런 사람도 있다. 이제 아버지만 아니면, 아버지만 떠나면 다시는 이사람과 말 섞는 일 따위는 없을거다 ...

지율은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두 다리를 쭉 폈다. 찔렸던 곳에 통증이 남았다. 주변 근육을 살살 마사지 하면서, 전에 이야기 들은 그 병원을 검색한다. 화면을 내리며 대충 읽어 본다. 뉴스창에 병원 이름, 원장 이름 등을 넣고 검색해본다. 개원, 확장공사, 직원모집… 특별한 것이 뜨지 않는다. 통과다. 비로소 전화를 건다.


“수고하십니다. 환자가 한분 계신데요, 혹시 입원 전에, 가족들이 먼저 방문해서 한번 둘러볼 수 있을까요?... 70대 남자구요, 거기 원장님 친구분 소개로, 아마 1-2주 안에 들어가시기로 한 것 같아요. 저는 딸이요... 제가 내일 쉬는데, 잠깐 들러도 괜찮겠죠?”




3.1.4. 청파 초등학교


형제 고시원 입간판을 지나는 큰 길, 청파 초등학교 앞. 아이들 등교길이다. 큰 길을 꽉 막고 선 자동차들. 친구를 부르며 뛰는 아이, 손 흔들며 인사하는 아이,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아이들… 초록불로 바뀌고 우르르 건너오는 아이들 중, 유독 힘이 없어 보이는 한 남자 아이. 뛰어가던 다른 아이가 옆을 툭 치고 가도 반응이 없다. 멍한 눈으로 발끝만 보고 걷는다.


불이 바뀔무렵에야 간신히 인도에 올라섰다. 주변에 아무 관심이 없다. 앞으로만 터덜터덜 걷는다. 누군가가 막아선다. 멈춰선 아이가 올려다보고, 꾸뻑 인사를 한다. 밝은 와인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젊은 여자가 아이를 이리저리 살핀다. 큰 눈에 거무잡잡한 피부, 혼혈 아이다. 꼬질꼬질한 팔뚝과 목덜미까지 들여다 본다. 많이 자라 얼굴을 반쯤 가린, 헝클어진 곱슬 머리를 정리해준다.


“하운아, 아침 먹었어?”

아이는 대답대신 고개를 가로 젓는다. 짧게 한숨 쉬는 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 교문으로 들어선다. 조금씩 뒤로 처지며 따라들어가는 아이. 갑작스레 쌀쌀해진 초가을 날씨에 어울리지않는, 더러워진 면티 한장과 잠옷 바지, 대충 끌고 나온 신발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은 지퍼 다 열린 빈 책가방..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있던 또다른 여자가 다가온다. 아이를 세워두고 소근소근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한 사람이 아이를 데려가고, 나머지 한사람은 인적 없는 곳을 찾아 걸으며 전화를 건다. 입을 가리고 조심조심 시작하는 대화..


"교감 선생님, 2학년 김하운이요, 지금 학교 왔는데, 와보셔야 될 것 같아요... 이번에는 더 심해요. 어제도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는데, 상관하지 말라고 화만 내시고, 오늘도 똑같아요. 벌써 며칠째 저 옷만 입고 있는지... 아니요, 겉으로 보기에는 상처는 없는데, 전혀 안 씻기는 것 같아요.... 예... 예.... 지난번에 오셨던 그 경찰분께 연락을 해야 될 것 같아요 ... 알겠습니다.... 일단 양호실로 데려갈께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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