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1 노래방
손님들하고 이야기 하고 있는 존 바울, 단골들인지 친해 보인다. 진우가 손가락 두개를 펴 보인다.
"콜라 주세요, 콜라.."
지갑을 꺼내려 하자 존이 마다한다.
"에이, 그러지 마요, 서비스, 서비스... 알바가 주는 서비스."
"안돼요, 돈 내야되요."
"형아가 동생 사주는 거에요. 봐요, 장부에 다 적는다니까? 일당에서 까면 돼요. 들어가서 놀아요. 가! 가!"
큰 덩치로 진우를 밀어낸다. 인사하고 돌아서는 진우. 웅웅웅 소리가 섞인 복도를 지나 방으로 들어온다. 노래를 고르고 있는 시환... 그리고 의자에 일자로 누워 자고 있는 지율. 콜라를 건넨다.
"쟤는 안 일어나? 술도 안먹었는데 왜 이렇게 자?"
"시끄러워야 잠이 잘 온대."
"혼자서는 무서워서 못 잔다면서, 수면제는 팔요 없겠다. 경찰만 옆에 있으면 되는 거 잖아."
시환이 번호를 누른다.
20066 본 투 비 마이 베이비/ 본조비 (Born To Be My Baby / Bon Jovi)
"오오? 미소! 너 이 노래 좋아해? 와, 오랜만이네.."
"선배가 좋아해. 맨날 이거만 듣길래, 내가 요새 연습 중이야."
"지율이가 이 노래를...? 희안하네, 이거 석호 형 노랜데...?"
"진짜? 팀장님이 노래도 해?"
"절대 안하지. 형은 수도승이잖아. 먹고, 공부하고, 먹고, 공부하고.. 근데, 어쩌다 술 한번 이빠이 취하면, 딱 하나 노래 부르는 게 저거야."
노래를 시작한다...
Rainy night and we worked all day
We both got jobs 'cause there's bills to pay
We got something they can't take away
Our love, our lives
(오늘 밤은 비가 와요, 하루 종일 일했습니다
둘 다 일을 하죠, 돈이 필요하거든요
그래도 절대 버릴 수 없는게 있어요
우리 사랑, 우리 삶이죠)
"에이 씨, 난 왜 허스키한게 안돼.."
몇 소절 안하고 꺼버린다.
"목소리가 가늘어서 그렇지, 하이톤이잖아. 너도 영창이구나? 맑은 소리? 고운 소리? 영창 피아노, 영창..."
"아, 진짜.. 형이 좀 해봐. 가르쳐줘."
"나도 뭇해. 저렇게 가슴을 박박 긁어내는 소리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야. 석호형한테 가르쳐달라 그래. 형이 윤도현 키즈 잖냐. 자주는 못 듣는데, 한번 들으면 뻑간다. 목소리도 딱이지."
진우가 핸드폰을 꺼낸다. 진동이 울리고 있다.
"어? 팀장님이다... 잠깐 나갔다 올께."
쿵... 문이 닫히면서 동시에 뭔가 둔한 소리가 난 것 같다. 귀를 기울인다. 이어지는 조금 먼 곳의 웃음 소리, 이것 저것 섞여 알수 없는 노래 소리, 희미하게 들리는 다른 방의 빵빠레 소리... 잘못 들었나... 다시 누른다... 20066 본조비... 쿵... 같은 소리다. 자고 있는 지율을 본다. 깨면 안되는데... 노래를 틀어놓고, 조용히 일어선다. 전주가 울린다...
옆방을 들여다 본다. 별 이상 없다. 반대편 방을 들여다 본다. 신나게 놀고 있다. 지나가려는데 한 아이가 밖으로 나와 화장실을 간다. 살짝 열렸던 문이 닫히는 순간, 무언가를 본 것 같다... 걸음을 멈추고 다시 유리창으로 들여다 보지만, 어두워서 안에 보이지 않는다. 손잡이를 돌려 반쯤, 문을 연다...
음악 소리가 시끄러운 방 안에 중고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놀고 있다. 노래하는 아이, 먹는 아이, 웃는 아이, 핸드폰으로 촬영하는 아이... 그리고 한쪽 모퉁이에 물구나무를 선 채로 음료수를 뒤집어 쓴 아이... 시환이 방으로 들어서자 아이들이 멈춘다. 누군가 노래를 끈다.
"누구세요? 나가요, 우리 방이에요."
물구나무 섰던 아이가 옆으로 쓰러지듯 드러 눕는다. 벽에 부딪친다... 쿵... 옆에서 잡고 있던 아이들이 뭐라고 하려다 시환의 눈치를 본다. 두 남자 아이가 탄산 음료를 들고 있다. 이미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빈 캔 여러개...
아이에게 다가간다. 웃통을 다 벗었다. 젖은 머리와 얼굴에서 뒤섞인 음료수가 흘러내린다.
"괜찮아? 이름이 뭐야?"
"아저씨 뭐야? 나가!"
아이들이 거칠게 항의한다. 핸드폰을 든 여자애가 바짝 다가와 시환을 찍는다. 하나하나 찬찬히 둘러보며 경찰 배지를 꺼낸다. 여자 아이의 핸드폰 앞에 똑바로 대고 보여준다. 용산 경찰서 경위 류시환... 아이가 핸드폰을 내린다. 잠깐 움찔하는 아이들.
시환이 남방을 벗어 아이를 닦아준다. 바닥까지 흥건하게 젖은 탓에 교복 바지에도 번진다. 아이를 일으켜세우고 몸을 살핀다. 손으로 때렸는지 상체에 여기저기 벌겋게 자국이 났다.
"손자국 누구꺼니?"
"..."
답이 없다. 시환이 여자아이의 핸드폰을 뺏는다.
"수고했어, 증거로 쓸께. 다들 자리에 앉어. 핸드폰 꺼내서 테이블 위에 놓고."
"왜요? 우리끼리 그냥 노는 거에요, 영상 올릴려고... 쟤 그런걸로 유명해요."
"뭘로 유명한데?"
"엽기적인거 하는 걸로.. 더러운거, 미친 거.."
"오늘은?"
"거꾸로 서서 콜라 마시고 트름하고, 코로 뿜고.. 인제 토하는 거만 더 찍으면 되요."
"쟤가 좋아서 하는 거에요, 우리가 도와주는 거고.. 야, 그렇지? 말해봐!"
"...."
"네가 할래? 내가 찍어 줄께. 어디다 올릴까? 인스타? 틱톡? 학교 애들 단톡방?"
"ㅆㅂ 뭔 상관이야.. 경찰이면 다야?"
"경찰서 가서 그렇게 얘기해. 부모님 다 오시고 나면. 그때까지는 조용히 있는게 좋을거야."
"재수없어, 꼴에 뭐라고.."
"더 재수 없는 거 보여줄께. 기다려."
여전히 상냥한 목소리로 핸드폰을 꺼낸다.
"특별팀 류시환 입니다. 원효로 89길 22번지, 지하층 달밤지기 노래방, 십대 청소년 8명, 학폭, 현장 잡았습니다. 차량 지원 바랍니다."
"지원 왔습니다. 어떤 새끼부터 개작살을 낼까요?"
지율이 들어와 문을 쾅..! 닫는다. 아까 화장실 갔던 아이를 함께 데리고 들어와 밀어넣는다.
"어떤 ㅅㅂㄴ의 새끼가 감히 어른한테 욕지거리를 해? 나와! 그 턱주가리부터 뽑아버린다. 나와! 어떤 새끼야?"
"..."
시환과는 전혀 다른 사나운 호통에 아이들이 시선을 피한다.
"없어? 그럼 게임하자, 고자질 게임. 셋에 다같이 눈동자로 일러바친다. 아무도 고자질을 안 하면, 다같이 끌고 가서, 제대로 말할때까지 나랑 1대 1로 붙는다. 각오해. 준비됐지? 첫째, 아까 어른께 욕한 새끼, 누구야? 하나, 둘, 셋!"
두어명이 한 남자애를 바라본다.
"너였어? 좋아, 다음 문제.. 어떤 자식이 이 친구 몸에 손찌검을 했을까? 하나, 둘, 셋!"
아까보다 조금 더 많은 눈동자가 두 아이에게 분산된다.
"좋아, 다음.. 너희들 중에 비교적 잘못한 게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 괴롭힌 적 없고, 오늘 우연히, 구경을 하게됬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내 뒤로 와서 바닥에 앉는다. 하나, 둘, 셋."
한 아이가 벌떡 일어나 앞으로 걸어온다. 그 뒤를 따르는 여자아이 하나.. 지율의 뒤에 앉는다.
"마지막 문제다. 여지껏 함께 다니면서 부추기기는 했지만, 한번도 신체적 접촉을 하거나 촬영을 한 적은 없다... 나와서 내 앞으로 앉는다."
또 두명이 일어서 나온다. 다른 애들 눈치를 보던 아이 하나가 나오려하자 다른 아이들이 이른다.
"너 아니잖아. 지난번에 너 쟤 뺨 때렸잖아."
"그게 뭐 때린거야? 장난한 거지?"
"웃기지마, 너 거기 가만히 있어!"
"앉아라, 어차피 너네 영상 찍은거 보면 다 나와. 니들이 증거 모아놓고, 억지로 나쁜 머리 굴릴 필요 없어. 앉어!"
진우가 들어온다. 한바퀴 둘러보고 피해 아이에게 손짓한다.
"먼저 가 있을께. 다 왔대... 승합차 두대.. 조폭 잡을때 쓰는 건데, 얼라들이 타겠네. 그래도 조용히 간다고 약속하면, 수갑은 안채우고."
일부러 들으라고 큰소리로 말한다. 아이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말이 없다. 한 아이가 묻는다.
"엄마한테 전화해도 되요?"
"당연히 되지. 원래 유치장 들어가기 전에, 한통씩 하는 거야. 기다려. 경찰서 가서 하게 해줄께."
진우의 말에 반응이 각각이다. 울먹이는 아이, 여전히 삐딱한 아이... 삐딱한 아이들을 유심히 본다.. 어리다.
6.1.2 경찰서
초저녁 술에 얼큰히 오른 할아버지 두분이 싸운다. 조사 받으며 발뼘하는 아줌마, 아저씨.. 무슨 일인지 펑펑 울고 있는 여자... 그 옆으로 줄지어 끌려들어오는 아이들. 관련 정도에 따라 따로 앉혀놓고, 집으로 전화를 건다. 시끄러워진다.
"... 이형진 학생 어머니시죠? 여기 용산 경찰선데요.."
".. 예, 그러니까 오셔서 말씀 하세요. 아니요, 준원이가 다친게 아니라, 얘가 다른 애를 괴롭혔다구요.."
"안녕하십니까, 여기 용산 경찰서입니다.."
진우와 시환이 진술서 파일을 들고 책상으로 간다. 눈동자 고자질을 제일 많이 받은, '삐딱한' 애들이 기다리고 있다. 옆에서 막아서는 권 경사.
"어디 가십니까?"
"쟤네들이요.. 조서 쓰려구요."
"총각들은 빠지십시오. 쟤들 눈 봐요. 이런건 아버지들이 해야되요."
둘이 쭈삣쭈삣 물러난다. 권 경사와 함께 온 다른 경찰이 볼록하게 삐져나온 옆구리를 가르킨다.
"이정도는 나와야지... 이런 건 복근이 아니라, 쿠션으로 받아쳐야 되거든요."
홀쭉한 두 사람의 배를 본다. 시환과 진우도 자신들을 내려다 본다. 시환이 슬쩍, 팔로 가린다..
"그런 허리 가지고는... 자기 성질도 못 이겨요. 봐요, 쟤들 뿐 아니라, 앞으로 몇시간동안.. 쟤들 부모들이 어떻게 나올지 아무도 몰라요. 뱃살은 인격이다... 아시죠? 저희한테 맡기고 들어가 쉬십시오. 고생하셨습니다."
여분의 조서를 내려놓고 돌아서는데, 경찰서로 뛰어들어오는 24시 사장님이 아들을 찾는다.
"우리 애 어디있어요? 맞았어요? 다쳤냐구요?"
보건의가 아이를 살피는 걸 지켜보는 지율. 꼼꼼히 메모하며 사진을 몇장 찍는다. 다행히 큰 폭행은 없는 것 같다. 풀이 죽은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여전히 침묵이다. 진우가 24시 사장님을 데리고 들어온다.
"명재야!"
엄마를 본 아이의 눈에서 비로소 눈물이 터진다. 진우에게 메모한 걸 넘기고 자리를 뜬다. 조용히 문을 닫아준다...
한창 조사중인 경찰서에 줄지어 부모들이 불려들어온다. 찰싹찰싹 팔뚝을 맞는 아이, 이미 엉엉 우는 엄마, 펄펄 뛰며 싸우려는 아버지 ..
"금방 다 풀려 날거면서, 왜 저렇게 난리들이야.."
시환이 커피를 내민다.
"그렇죠? 그냥 거기서 우리가 손 볼 걸 그랬어요."
"지하라 불만 끄면 딱 이던데.. 에이.. 문 형사님이 자꾸, 싸우고 댕기지 말라 그래서.."
"ㅎㅎ.. 집에 가서 맥주 한잔 할래요? 진우형도 금방 끝날건데.."
"좋아요. 안그래도 회식 한 거 같지가 않아요. 그냥 또 야근인 것 같아요."
"가요. 형한테 문자 보내놓고, 우리집 아니까 따라 올거에요."
문자를 보내며 주차장으로 나서는 시환... 경찰서 계단 끝에 채은이 앉아있다. 멀리서부터 술 냄새가 난다...!
"인제 끝났어?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집에 가자! 같이 갈라고 기다렸어."
"취했어? 집에 가."
"그러니까, 간다고, 집에.. 오빠 집에.."
"네가 우리집을 왜 가? 너네 집 가서 자. 가깝잖아."
"와, 경찰이 술 취한 여자 막 그냥 쫒냐? 무슨 일이 생길 줄 어떻게 알고? 나 신고한다? 오빠가 나 길거리에 버리고 갔다고?"
"가서 자라. 나 선배들하고 약속 있어."
"선배는 무슨 선배... 너 바람났지? 이 여자하고 맨날 붙어다니는 거 봤어. 아주 입이 귀까지 쫙 째졌더라?"
"말 조심해.. 가, 데려다 줄께... 선배, 먼저 집에 가 계세요."
"야! 너 오빠 집에 들락거려? 벌써 잤네, 잤어! 어쩐지 수상했다니까?"
"이채은! 너 정말!"
"류시환! 너 그러는 거 아니야! 네가 뭔데 나를 까?"
"네가 찼잖아. 다른 사람 생겼다며?"
"헤어졌어. 그러니가 우리 다시 만나."
지율이 시환을 부른다.
"저는, 잠깐 일 할게 남아서, 사무실로 들어갈께요. 여친 잘 데려다줘요."
"아닌 거 아시잖아요! 잠깐만 기다려요, 선배, 제가... 야, 이채은, 잠들지 마! 일어나! 집에 가!"
채은이 바닥에 점점 드러누워 소리친다.
"오늘 너네 집 간다니까? 너 나랑 자는 거 좋아하잖아..."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보지만, 숨을 곳이 없다.
"기다려! 내가 경찰 시험 봐서 여기 들어올거야. 너랑 산다고!"
"4년제 편입한다며? 대학 간다는 애가 맨날 술이야? 업혀!"
"편입은 개뿔... 카페 알바가 무슨 대학을 가? 나 그냥 너 꼬셔서 결혼 할거야. 우리 오늘 임신하자.."
채은을 들쳐 업는다.
"미안해요, 선배.. 있다가 전화 할께요."
얼른 가라고 손짓한다. 멀어지는 목소리..
"류시환 사랑해.. 바람 피지 마.."
한숨을 쉬면서 돌아서는 지율... 계단 위에서 진우가 보고 있다. 슬금슬금 눈치보며 빙 돌아가는 직원들.. 내일이면 소문이 쫙 날거다. 대책이 없다. 진우가 일단 자기 차로 지율을 데려간다. 둘 다 멍하니 앉아 할 말을 찾는다. 잠깐의 침묵 끝에 진우가 입을 연다.
"지율아, 내가, 너네 가족 사건 찾아봤는데, 어머니 성함으로 하니까 바로 나오더라. 대충 보니까, 네가 의심하는 거, 다 그럴만 하고... 내가 뭐 도울거 있으면 말해. 같이 파 보자. 둘이 하면 좀 낫겠지?"
"고맙긴한데 뭐.. 별로 더 하는 거 없어. 끝났잖아. 그냥 가끔 궁금한거야, 관련된 사람이 더 있는지.."
"야, 차에서 이러지 말고 우리, 우리집 가서 한자 하자. 어우, 국수 한줄 먹고 노래방에서 애들 몰고 와, 시환이 저기서 쌩 난리를 쳐.. 어디 출동 한 너댓개 갔다 온거 같애. 아무도 없는데 가서, 진짜 우리끼리 좀 쉬자."
"콜. 맥주 있나?"
"꽉 채워놨지. 주말에 이불도 빨았다. 너 써."
"주말이면, 또 며칠 쓴거네?"
"그거밖에 없잖아. 우리가 그렇게 까다로울 사이는 아니잖아? 침대 내준다는데 안 고마워?"
"무슨 침대..? 그 집에 침대가 어딨어?"
"잘 찾아봐, 납작한거 하나 있어, 방바닥에 붙은 거.."
진우의 차가 경찰서를 빠져나간다. 길 건너 오피스텔에서 내려다 보는 시환.. 통창에 비치는 낙심한 얼굴... 거실 소파에 널브러져 잠이 든 채은을 본다. 화도 못 내고, 복층 가는 계단에 앉아 얼굴을 감싼다. 한숨만 나온다. 송이가 내려와 위로한다...
강을 끼고 도로를 달리는데, 지율의 핸드폰이 울린다. 국과수다.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전화를 받는다.
"강형사님, 지난번에 부탁하신 거요, DNA 몇개 나와서 돌려봤거든요? 근데 본인 거는 없고, 아버지 되시는 분을 찾았어요. 정말 오래된 미제 사건인데, 4년전에 다시 재수사하면서 유전자 몇개 나온게 있었거든요. 이매일로 보내드릴께요.."
"제가 잠깐 외부에 있어서요, 한 15분 후에 다시 전화드릴께요. 아직 퇴근 안 하시죠?.... 예, 죄송합니다, 금방 할께요... 형, 나 여기서 내려줘. 사무실 가야 돼."
"어, 그래... 그러면, 내가 데려다 줄께. 저 앞에서 돌리자. 오래 걸릴 것 같애?"
"잘 모르겠어, 미안해. 다음에 맥주 살께."
경찰서로 돌아와 지율을 내려준다. 단숨에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뒷모습을 보며 차를 돌린다.
"같이 놀 사람도 없고.. 찜질방이나 가야겠다. 회식은 무슨 회식이야, 내 팔자에.."
6.1.3 사무실
*****
/회상 - 며칠 전/
원주, 창률의 집.
부엌 창문으로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는 진우가 보인다. 냉장고에서 물을 찾으려다가, 분리 수거를 해 놓은 쓰레기통에 눈이 간다. 사용한지 얼마 안된 것 같은 나무 젓가락... 서랍에서 비닐 장갑과 지퍼백을 꺼내 젓가락과 옆에 있던 생수병을 납작하게 찌그러뜨려 집어 넣는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지율. 휴지통에 버려진 크리넥스 몇 장을 넣고, 눈치 못 채도록 칫솔 가운데를 잘 비집고 들어가 칫솔모를 몇가닥 잘라낸다. 면도기는 잘 털어내어 붙어있던 피부 조직을 수집하고, 면봉 몇개를 꺼내 영양제 뚜껑을 문질러 혹시 남아있을 DNA를 찾는다. 수집품을 넣은 비닐백을 옷 속에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물을 들고 나간다...
****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국과수 동료와 통화한다. 그가 보낸 이매일을 연다.
"보내주신 물건 일부에서 DNA 검출했구요, 그 유전자의 주인하고 부자지간인 사람이 있습니다. 4년전에 용의 선상에 올랐었는데, 데이타 베이스에만 있지, 실제 생존자인지, 어디에 있는지.. 신원 미상 입니다."
"다른 범죄는 없다는 뜻인가요, 잡힌 적 없다는?"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만, 유전자 기술이 도입되기 이전에 범죄를 저질렀을수도 있죠. 어쨌든, 현재 수감되어있거나, 요즘 데이타 베이스에 기록된 사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사람 DNA 는 어디서 나왔어요?"
"4년 전에 미제사건 전담팀에서 찾았습니다. 1982년에 있었던 구미공단 여종업원 살인사건을 재조사 하면서 6명의 DNA를 새로 검출했는데, 그 중 하나입니다. 82년 당시에는 혈액을 찾아도 혈액형만 알 수 있었거든요. 다른 건 말할 것도 없구요.. 4년 전에, 같은 시료들로 재검사하면서 이 사람 것도 나온건데, 그래봐야 여섯 명 중 하나일 뿐이지, 진범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주인 없는 유전자로만 등록된 상태죠."
"다른 특이 사항은 없습니까? 건강 상태라든가.."
"보통 혈압이나 유전병, 아니면 암 정도는 쉽게 판가름 하는데, 이건 시료도 너무 오래 된데다가 채취한 양도 적고.. 혈액도 아니라서 자세한 건 알기 힘들 것 같습니다. 재조사를 요구하실 수는 있는데, 정당한 사유가 있으시면, 정식으로 요청 해 볼까요? 다른 사건과 관련이 있는 거에요?"
"아니에요, 그냥 우연히 채집하게 되었는데, 뭐라도 나오나 해 본거에요. 아직은 사유가 될만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예.. 그런데 아들이 있었네요. 신기하죠?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유령같은 DNA 가, 아들이 있다.. 아들 주변을 뒤져보면 이 사람도 찾을 수 있을까요? 아니다, 본인은 자식이 있는 걸 모를 수도 있겠네요."
"그럴수도요.. 그런데 저는, 그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아는지, 그게 더 궁금하네요."
"그런가요?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아버지가 살인 사건 용의자 중 한명이라는 건, 평범한 일은 아니니까요.... 강 형사님, 제가 뭐 더 도와드릴 게 있습니까?"
"아니오,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정식으로 조사하게 되면 경과 알려드릴께요. 이번 일은 비밀입니다."
"그래야죠, 저도 짤리면 안되니까요. 그럼 수고하세요."
"수고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송창률... 누구냐, 너는... 네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있나? 아니, 그보다도 내 아버지는, 네가 어떤 놈의 아들인지 알고 입양했나... 범죄자의 아들인 네가, 경찰인 내 아버지와 왜 함께 살아왔는지.. 아무도, 아무것도 모르고 맺어진 법적인 부자지간이었는지, 아니면 다 알고 시작한, 모르는 척 묵인한 계약 관계였는지... 엄마는? 어디까지 알고, 어디서부터 몰랐는지... 아니면 엄마도 모르는 척, 연기하며 지내온건지...
6.1.4 찜질방
지율이 혼자 사무실에서 고민 중인 시간, 진우는 모처럼 찜질방에서 쉬고 있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누워 팩을 한다.
"근데 형사는, 주말에도 일하나?"
"돌아가면서 해요. 근데 일 하나 생기면 다같이 나가는 게 안전하니까, 아무때고 부르면 가야죠."
"그래서 며칠씩 여기 못오고 그러는구나, 바빠서? 쉴때는 자야되고.."
"그런것도 있죠. 어떤때는, 자는 줄도 몰랐는데 갑자기 누가 깨워요. 분명히 소파에 앉아있었는데, 눈 떠보면 큰 대자로 누워서 자고 있어."
아줌마들이 소녀처럼 까르르 웃는다.
"야근 수당도 받어?"
"아이구, 경찰이 무슨 야근 수당이야? 맨날 하는게 야근인데 다 어떻게 올리겠어?"
"나 아는 사람도 아들이 경찰인데, 자꾸 살이 빠진다고 걱정해, 삼교대에 피곤해서.."
"살은 빠지고, 배만 나와요, 올챙이처럼.."
"무슨, 형사님이 배가 어딨어? 아저씨들이나 그렇지."
"형사님 올해 몇이야? 서른 넘었지?"
"서른 넷이요. 장가 가야겠죠?"
"넷이면 딱 좋다. 짝 좀 찾아봐, 일 적당히 하고."
"아가씨는 경찰 말고.. 선생이나, 의사 어때?"
"의사가 미쳤나, 경찰이랑 결혼하게? 그 뒷바라지가 얼마나 힘든건데 그걸 해? 경찰 부인은, 그냥 참하고 착하면 돼. 뭐 바라고, 해달라 그러고.. 요즘 애들은 너무 공주로 커서 못 써."
"내가 딸이 있으면, 우리 형사님 사위 삼는다."
"아, 진짜요? 감사합니다. 벌써 사위 된 거 같애요."
"나야 좋지? 엄마라고 불러! 어디가서 우리 사위가 경찰이다, 자랑하게."
"언니는..? 그거 사칭이야, 사기로 걸려 들어가."
"잡아가라 그래, 우리 사위가 풀어줄건데 뭐 어때? 안그래?"
깔깔거리며 웃는 사이, 팩이 말라간다. 전화가 온다.. 모르는 번호다.
"강진우 경위님, 안녕하십니까? 강릉 경찰서입니다. 지난 번에 순포 바닷가에서 유아 시신 발견 하셨죠?"
진우가 벌떡 일어나 앉는다. 팩을 뗸다.
"예, 어떻게 됬습니까?"
아줌마들에게 눈인사를 하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이동한다.
"... 본인들이 부모라고 인정했구요, 범행도 순순히 자백했습니다. 원래 가정 불화가 잦았고.."
한동안을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다가, 감사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는다. 시간을 한번 체크하고, 지율에게 전화를 한다. 신호음이 여러번 울리고, 끊으려는 마지막 순간에 들리는 목소리.
"어, 형."
"아직 사무실이야? 바뻐?"
"괜찮아, 말해. 왜?"
목소리가 좋지않다. 안좋은 일이 있나보다..
"전에 강릉 갔을때, 네가 바다에서 찾은 애기 있잖아, 두살짜리... 아까 전화 왔었는데, 종결 잘 했다고, 고맙다고..."
"알았어..."
"... 그게 다야? 안 궁금해?"
"뭐가?"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부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재판은 언제일지..?"
"아니."
"..."
당황스럽다. 아무 말 못 한다. 지율도 아무 말이 없다.. 둘이 핸드폰만 들고 있다..
".. 지율아.."
"... 응.."
"무슨 일 있어? 옆에 누구 있니?"
"아니, 그냥.. 잘라고."
"잘 준비 하느라, 그 일이 하나도 안 궁금해? 네가 차가운 바닷물에 들어가서 직접 구했잖아."
"못 구했잖아. 죽은 다음이야.. 관심 없어."
"그래도 네가 건져오고, 범인 잡았는데.. 뭐냐, 너? 두 살짜리가 죽었는데, 관심이 없어?"
"없어... 뻔하잖아. 둘이 지지고 볶고 싸웠을거고, 사네 안사네 하다가 애한테 화풀이 했겠지. 여자가 울고 남자가 도망 간 걸로 봐서, 그놈이 주범이고, 여자가 유기를 도왔고.. 둘이 부부인지, 동거인지, 하룻밤인지, 불륜인지... 내가 뭘 더 알아야 돼? 나 그날 그냥 똥 밟은거야. 바닷가 놀러갔다가 똥 밟았다고... 형은 살면서 그런거 일일히 다 기억하고 사냐? 왜 밟았는지, 어떤 놈이 쌌는지, 왜 거기다 버렸는지, 어떻게 닦았는지... 내가 그걸 왜 알아야 돼?"
"야! 어린 애가 죽었는데, 그걸 꼭 똥이라고 해야돼?"
둘의 언성이 높아지다가 전화가 끊어진다.
"야! 강지율! 하아... 이 자식이..?"
진우가 화를 참는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눈까지 충혈되어서 죽일듯이 노려보던 애가, 똥 밟았다니.. 전화를 다시 해보지만 받지 않는다.
"이런 싸가지..?! 아이 씨, 류시환 이 새끼는 눈깔에 뭐 씌여서.. 콩깍지가 아니라 귀신이 씌인거야, 이딴 애를 뭐가 좋다고..?"
애꿎은 시환을 탓한다. 좀처럼 화가 사그라들지 않는다.
6.1.5 출동
새벽같이 출근 한 석호. 조용히 사무실로 들어가 소파에서 자고 있는 지율을 본다. 머리맡에 켜 놓은 작은 전등 하나, 쿠션 사이에 꼭 끼여있는 손.. 정리 덜 된 책상위에는, 밤새 일을 했는지 파일들이 잔뜩 쌓여있다. 또 수배자 명단을 보고 있었을까.. 전국 교도소에 수감된 50세 이상의 남자 수용자들에 대해서는 이미 달달 외울 정도라고 들었다. 매일 밤 보고 또 보면서, 얼마나 그날의 공포를 되새겼을까..
"맞으면 시간이 빨리가. 정말 미칠만큼 힘들때는, 어디 광화문 사거리라도 가서 나 좀 때려주세요, 하고 싶어. 숨이 안 쉬어지고, 다리가 안 펴지고.. 삼일 내내 뜬 눈으로 헛걸 보고, 듣고... 한강 지날때 마다, 잠수교 옆에서 누가 쑤욱 올라오면서 내 목을 졸라.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두려움은, 두려움의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 그 두려움이야. 세상이 다 적이거든."
일찌감치 경찰을 그만 둔 선배가 그랬다. 숨만 쉬어도 무섭다고.. 중세시대 철갑으로 된 옷을 입혀줘도, 기미 상궁을 두어 안전을 기해도, 열겹 스무겹의 잠금 장치를 해도 피할 수 없는 공포가 있었다고..
"말도 안되는 것 같던 걱정들이 현실로 나타나. 어쩌면 나도, 내가 상상하는 그대로 죽어갈까봐 불안하지. 상상도 마음대로 못해. 생각도 하면 안되고, 꿈도 꾸면 안돼... 내가 하는 생각, 말, 행동들이 전부 나한테 저주로 돌아오거든. 넌 정말 몰라... 공포라는 건, 뇌를 다치든, 치매를 앓든... 어떤때는 뇌 수술을 해서 그 부분만 싹 도려내고 싶은.. 그렇게 해서라도 다 잊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어. 그러다 죽어도, 차라리 다행이다, 행복할거야.."
그런데 강지율은, 송유리는... 일부러 그 날을, 그 놈을 안 잊으려고 안간힘을 써왔다. 다른 기억을 다 포기하고, 가장 힘들고 두려웠을, 그 날 밤만을 남겨두었다.
"오셨어요? 몇시에요?"
지율이 깼다. 석호가 시계를 본다.. 새벽 5시 반..
"미안해요, 더 자요. 어제도 늦게 잤나?"
"어제 아니고 오늘..? 세시 넘어서.."
"자야지. 그렇게 쪽잠자면서 일을 어떻게 해? 밥도 똑바로 안 먹으면서?"
멍하니 소파에 누운채로 석호를 본다. 야단을 치는데 웃고 있는 것 같다..
"왜 웃어, 선배가 혼내는데?"
"흐흐흐.. 누워서 보니까 팀장님 키가 되게 커보여요. 아빠 같애...맨날 나한테 그렇게 잔소리 했는데.."
아버지.. 지율이의 아버지.. 생각만해도 가슴 한쪽을 칼로 꾸욱 쑤시는 것 처럼 아프다..
"쓸데 없는 소리 하지말고, 안 잘거면 일어나. 이거 몇개 샀는데, 잘 읽어보고 다 챙겨 먹어."
무거운 종이 가방 한 가득, 영양제다. 각종 비타민, 글루코사민, 멜라토닌, 오메가 3, 철분, 칼슘...
"약국 털었어요? 이게 다 뭐야?"
"어제... 집에 들어가다가, 문 연 데가 하나 있길래... 밥을 안먹으니까 이거라도 먹어야지. 물 떠 올께 잠깐 기다려.."
석호가 일어나 나가려는데, 조 팀장이 뛰어들어온다.
"어? 잘됐다, 야, 다 나와, 빨리! 출동!"
"예? 이 시간에 어디요?"
"시간없어, 강지율! 빨리!"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