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1 현장
물어볼 겨를도 없이 승합차에 올라탄다. 철야를 마치고 귀가 준비를 하던 조팀장이 운전석에 앉는다. 문이 닫히자마자 급하게 출동하는 차량.
"신창동 다세대 주택이야. 피해자는 스물두살, 러시아에서 온 유학생. 한 두시간 전에 신고 받고 출동했었던 사건인데, 문 따고 들어가니까 이미 죽어 있었고, 범인도 다 사라졌어. 감식반 올때까지 지키라고 애들 둘 남겨놓고, 우리는 이쪽 이태원로에 강도 사건이 있어서 나갔는데,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남자가 지금 현장 부근을 돌아다닌대. 이웃 주민이 신고 했어."
"용의자 인상착의는요?"
석호가 묻는다.
"베이지색 잠바에 검정색 추리닝 바지. 운동화를 신은 거 같다는데 확실치는 않고, 키는 165-70사이, 통통한 편이고 38살, 일정 직업 없음. 어머니하고 둘이 피해자 바로 아래층에 살아. 평소에 그 아가씨를 스토킹 했대. 전화하고, 미행하고, 지나가는 거 몰래 사진 찍고.. 지난 봄에는 열쇠 업자 불러서 문 열고 들어가서 카메라 설치했다가 벌금형 받은적 있어. 어머니하고 같이 가서 사과하고, 표면상으로는 화해했다고 봐야겠지."
"신변보호나 접근금지 신청한 적 있습니까?"
"거기 사는 사람이잖아. 자기 집인데 접근을 안 할수가 없지. 3층에 못 가게 하는 정도였겠지, 어쩌겠어."
"이사를 안가고 계속 한 건물에 거주를 했네요?"
"아마 보증금 문제가 있어서 못나갔겠지. 기한 안 채우고 나가네 어쩌네 집주인이 싫어했을거 아냐. 나이가 어리고 외국 학생이니까, 못 따지고 그냥 참지 않았을까?"
"...."
신창동으로 향한다. 먼저 와있던 경찰차가 막 움직이려 한다.
"범인은?"
"아직 입니다. 근처에 순찰 한바퀴 돌면서 잘 살피겠습니다."
"오케이, 감식반은?"
"그것도 아직.. 지금 다른 사건들이 많아서 조금 더 기다리랍니다."
"이시간이 제일 바쁠때야.. 알았어, 수고!"
조 팀장이 석호에게 묻는다.
"이 팀장, 류시환이 키트 가지고 다닌다며? 지금 불러볼까? 약식으로라도 중요한 거 놓치면 안되니까.."
"아까 차 안에서 연락했습니다. 오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 잘했어. 감식반을 무슨 예약제도 아니고.. 새벽 시간에는 정말 너무들해. 그러면, 강 형사는 나랑 안으로 들어가서 한번 둘러 보자고. 이 팀장! 길 양쪽으로 잘 주시해, 혹시 돌아올 수도 있어."
"걱정마십시오. 그런데, 강 형사, 괜찮겠어? 살인사건인데.. 내가 들어갈까?"
"아닙니다, 제가 가야죠...?"
"그렇지, 지율이가 가야지. 앞으로 우리 팀으로 올지도 모르는데, 슬슬 적응도 하고..."
조 팀장이 앞장 선다. 불안해 보이는 석호를 모른 척 하며 따라 올라간다. 계단 위까지 올려다 보는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이다.
"비위도 약한 애를 굳이.."
따라 올라갈까 말까를 망설이다 애써 마음을 다잡는다. 우편물 수거함을 뒤적거린다.
"이반나 (Иванна)... 벨로프면 아직 미혼이고.."
별 특이한 게 없다. 뚜껑을 닫고, 잠시 갸우뚱한다.
"이것도 증거물인데... 누구 담당이지? 내가 담아가야 되나?... 시환이가 다같이 하면 되겠지.. 다 와 가나?"
밖으로 나와 다세대 빌라 주변을 돌아본다. 3-40년을 족히 되었을 듯한 오랜 건물이라 노후가 심하다. 밖에서 보이는 걸로는 많아야 방 두개 간신히 들어갈 것 같다. 안전상의 이유인지 베란다도 없고, 창문과 방범창만 어설프게 설치되어있다. 그래도 반지하와 1층 창문에는 쇠창살을 설치했다. 많이 놀란 주민들이 잠을 못 이루는지 몇 집은 아직도 불이 켜져있다.
골목의 가로등을 따라 CCTV를 확인한다. 부유한 곳은 아니다보니 아무래도 다른 동네에 비해 훨씬 적다. 빼곡히 서있는 자동차를 일일히 들여다보며 블랙박스를 찾는다. 하나하나 번호판을 메모하며 협조 요청을 준비한다... 반대편에서 누군가 골목길로 들어선다. 베이지색 잠바에 검은 추리닝... 놈이다. 볼록한 비닐 봉지를 들고 있는 걸로 보아 근처 어디에서 술이라도 사오는 모양이다. 섣불리 쫒다가는 다시 큰길로 달아날거다. 신중해야한다, 이석호..
연락처를 찾는 척하며, 앞 유리 쪽으로 바짝 붙는다. 놈이 빌라 쪽으로 걸어온다...
"차를 이렇게 바짝 세워놨어, 아이씨... 새벽에 전화한다고 난리 칠거면서.."
차주에 연락하는 척, 팀에게 문자를 보낸다.
/용의자 발견 지원 바람 빌라 우측 12 미터/
그가 한걸음한걸음 다가오고, 석호가 슬쩍 위를 올려다 본다. 어느새 불이 꺼지고 스윽.. 조심스럽게 3층 창문이 열린다. 밖을 내다보고 있는 것 같다.
갑자기,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3층을 본다. 함께 굳는 석호.. 잠깐 주저하던 남자가 방향을 바꿔 뛰기 시작한다. 석호가 따라 뛴다. 빌라 입구를 지나는데 옆에 주차된 차 위로 무언가 쿵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석호 발 앞으로 굴러떨어지는 지율...?
"강 형사! 지율아!"
"뛰어! 잡아!"
"떨어진거야? 다친데 없어??"
놀란 석호는 오히려 지율을 붙잡아 앉히고 여기저기 살핀다.
"다쳤냐고? 괜찮아?"
"이거 놔! 미쳤어?! 쫒아가야지! 놓치잖아!"
"너 안 다쳤냐고? 저기서 왜 떨어져? 뭘하다가?"
"누가 떨어져? 왜 이래, 팀장님? 내가 뛰어내린거야, 저 자식 도망가길래 잡을라고!!"
성질내며 뿌리치는 지율, 그제서야 멍한 얼굴로 손을 놓는 석호..
"아... 그래? 떨어진줄 알았어.. 다친 줄 알고.."
시맨트 바닥에 주저앉은 두 사람 뒤로 조 팀장이 전력 질주한다.
"지원 불러...!"
소리가 멀어진다..
"에이 씨..."
지율이 석호를 밀쳐내고 뛴다. 여전히 멍한 얼굴의 석호, 놀란 가슴을 간신히 추스리고, 핸드폰을 꺼낸다.
"신창 빌라 3층 살인사건 용의자 도주합니다. 원효로 35길, 19길,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지원 바랍니다. 베이지색 점퍼, 검정 운동 바지, 복장 변화 없습니다.."
전화를 끊고서야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차린 석호.. 범인을 눈앞에서 놓쳤다.. 자책하며 일단 같은 방향으로 뛰어간다..
7.2.2 원효로
필사적으로 뛰는 용의자와 악착같이 쫒는 조 팀장, 그리고 그 뒤에 바짝 붙은 지율, 세 사람의 레이스다. 들고 있던 검정 봉다리도 집어던지고 구불구불 골목길을 빠져나간다. 잡아야한다.. 큰 길로 나가면 어디로 꺼져버릴지 모른다... 원효로가 저기다. 놈도 알고 있는 거다. 이른 아침, 이미 큰 길에 차들이 오간다... 망했다.. 끼이익 ....!
굉음을 내며 타이어가 바닥에 끌린다. 아슬아슬하게 놈을 비켜갔다. 그리고... 쿵, 콰과광, 쿵... 미처 피하지 못하고 자동차에 부딪힌 조 팀장의 몸이 앞바퀴와 본넨트를 넘어 허공으로 뜬다. 코 앞에서 간신히 차를 발견한 지율도 멈춰보지만, 역시 본넨트 위로 엎어졌다 앞으로 튕겨 나간다. 뒤도 안돌아보고 원효로로 사라지는 용의자... 뒤에서 쫒아오다 망연자실하는 석호.. 자동차 운전자가 내린다. 사색이 된 류시환...
"팀장님! 선배님..! 괜찮아요?"
지율이 일어나 앉으며 조팀장에게 가보라 손짓한다. 바닥에 누운 조 팀장에게 뛰어가는 시환.
"으아아... 야, 너라도 쫒아가.."
조팀장이 원효로 방향을 가르킨다. 시환이 머리의 상처를 살핀다. 주루룩 흘러내리는 피..
"늦었어요, 못 잡아요.. 부러졌어요? 어디요?"
"손 하고 갈비.. 아마 골반뼈 정도...? 지율이는?"
지율이 걸어온다. 바지에 서서히 피가 번진다..
"골절 없습니다. 찰과상 정도입니다."
"그래도 찍어봐야 알지.. 야, 지원 불렀냐?"
"예, 오고 있습니다.."
어느새 다가온 석호가 답한다. 외면하는 지율, 화를 꾹꾹 참아본다.
"조 팀장님 그대로 누워계시고, 강 형사는 진짜 괜찮아?"
답이 없다. 길게 내뱉는 한숨.. 미안한 마음에 석호가 다시 묻는다.
"강형사, 이쪽 잠깐 봐봐, 바지에 피가 많이.."
지율이 그대로 주먹을 날린다. 비틀거리며 간신히 버티고 선 석호의 입에서 피가 흐른다.
"너 때문이야!"
놀라 말도 못 잇는 일행을 두고, 그대로 뒤돌아 사건 현장으로 돌아간다. 조 팀장이 시환에게 따라가라 손짓한다. 서둘러 차 트렁크에서 감식반 키트를 꺼내들고 뛰어가는 시환... 싸이렌 소리가 가까와지고 경찰차가 들어온다. 석호가 시환의 차를 빼고, 한쪽으로 주차한다. 입안의 피를 뱉으며 빌라 쪽을 바라본다. 나즈막히, 혼자 중얼거린다..
".. 그래, 나 때문이야... 그때부터 지금까지 전부 다... 나 때문이었어..."
7.2.4 병실
등받이를 세우고 45도로 누운 조팀장. 환자복까지 입었다.
"이야, 얼마만의 호사야. 별 사치를 다 누려보네."
"좋기도 하겠다. 수사는 개판치고, 용의자 놓치고, 갈비 나가고... 너 그 손으로 어떻게 일할래?두달은 걸린다잖아."
출근길에 달려온 종태가 한심하게 바라본다. 은석이 이마 위의 드레싱을 들여다 본다.
"머리 상처도 심한데요. 두피가 완전히 밀려서.."
"그만해. 안그래도 대머리 될까봐 걱정인데.. 지율이는? 병원 안가도 돼? 걔도 한바퀴 날았는데?"
"도데체, 뭘 어떻게 했길래...? 너네끼리 치고받고 했냐? 한놈은 자동차로 밀고? 뭐하는거야, 같은 편끼리?"
"형님, 오합지졸이라고 들어봤어? 와, 진짜 손발 안맞는다... 역시 팀워크라는거 무시 못해."
"잘 알면서 왜 남의 집 애들을 데려다가 생난리를 쳐?"
"그러면 어떡해요? 우리 애들 반은 철야하고 들어갔지, 몇놈은 강도 사건 갔지.. 두놈 지방 갔지.. 오늘 새벽에 우리끼리 출동을 몇번 했는지 알어? 급하니까 지율이 좀 데려갈라고 들렀는데, 이석호가 일찍 왔더라고.. 없는거 보다야 낫겠지해서 데려갔는데.."
조 팀장이 목소리를 낮춘다.
"근데, 형님.. 솔직히 그... 석호가 잘못한것도 있긴한데, 그렇다고 지율이가 지 팀장한테 주먹은 좀 아니지요.."
"강지율이 주먹질을 해? 이 팀장한테?"
"그 자식이 또.. 3층에서 뛰어내렸어요, 창문으로.."
"3층? 수퍼맨이야? 안 다쳤어?"
"그 밑에 주차된 차 지붕으로 뛰어서 땅으로 내렸어요. 계산 다 하고 뛰었겠지만, 보는 사람은 얼마나 놀라? 나랑 지율이랑 위에서 지켜보다가, 그 놈이 도망가길래... 나는 계단으로 가라고, 뛰어!.. 그랬는데, 강지율 이놈이 창문으로 뛴거야.."
가만히 듣고 있는 종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강지율답다..
"하여간에.. 미친거야, 걔는 좀.. 근데 이석호는, 밑에 있다가 지율이가 뚝 떨어지니까 놀래가지고.. 다친 줄 알고 애를 막았나봐, 추적 못하게.. 내가 아래층 갔는데 지율이가 지랄을 하고 있더라고.. 그때는 그냥, 그 놈 쫒아가야되니까 일단 갔지, 그러다가.. 큰 길 다 가서 류시환이가 급하게 꺾어 들어오는 거 못 보고 그 차에다 갖다 박았어. 지율이도 바로 뒤에 쫒아 오다가 붕..."
종태의 눈치를 보며 조팀장이 말을 잇는다.
"근데 이 자식이요, 이석호가 와서 괜찮냐고 묻는데, 주먹을 확..완전 풀스윙으로 이렇게.. 석호가 작은 체구는 아니잖아, 그것도 젊은 놈이 엄청 휘청거릴 정도로 세게 치더라니까? 아니, 일하다보면 놓칠수도 있고, 실수 할 수도 있지 그걸.. 뭐, 지만 형사야? 걔는 위아래가 너무 없어."
마침 요기거리를 사들고 들어오는 석호. 입 주변이 부어 오르고 멍이 들었다. 아무말 없이 바라만 보는 종태.
"오셨습니까? 아침 같이 하세요."
이것저것 꺼내놓는다. 석호가 음료수를 들어 손에 기브스를 한 조 팀장에세 따주고, 종태가 다른 캔을 집어 석호에게 내민다.
"괜찮습니다, 문형사님 드세요."
"얼굴에 대고 계십시오. 멍은 어쩔수 없어도, 부은건 좀 가라앉을 겁니다... 서장님 보시면 난리나요."
사양하려다 건네 받는다. 문형사가 중얼거린다.
"강지율이 이 자식을..."
"제 잘못입니다. 제가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해서, 조 팀장님까지 다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종태가 단호하게 말한다.
"무슨 판단을 잘못해요? 사람이 3층에서 후두둑 떨어져내리는데, 당연히 다친다고 생각하지.. 지가 무슨 날다람쥐야? 살살하래도 왜 그렇게 극성스러워?"
"본인이 잘 알아서 판단했을 겁니다. 제가 그걸 못 따라가서.."
"호흡이 잘 안맞았다고 치고, 그렇다고 지 성질난다고 상관한테 주먹질을 해요? 가만 두실겁니까?"
"오늘 일은... 새벽부터 너무 엉망입니다. 그냥 못들으신 걸로 해주..."
시환과 지율이 들어온다. 지율의 옷에 묻은 거대한 핏자국을 스캔하는 종태. 걸어들어오는 걸 보니 죽을만큼 다치지는 않았구나..
"네가 피해자냐? 혈흔 채취하라고 그러고 나타나?"
종태와 은석에게 꾸뻑 인사하고 조팀장한테 다가가는 지율.
"괜찮으십니까? 감식반 도착하는 거 보고 철수 했습니다."
"강지율이! 우리 팀장님은 안보여? 인사 안할거면, 눈이라도 마주치고, 아픈사람 내비두고 니 상관한테 보고를 해야지!"
지율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아예 다른 곳을 본다. 종태가 화를 낸다.
"네가 그따위니까 팀워크가 안맞는 거야. 팀장님은 너 다쳤을까봐 잠깐 걱정해준 걸, 그걸 범인 놓쳤다고 분풀이야?"
"분풀이가 아니라, 잡을 수 있었는데 눈앞에서 놓쳤잖아요!"
"괜찮다 그랬지? 다음에 잡으면 된다고! 너 아니면 다른 사람이 잡을 거라고!! 범인 놓치는 거만 생각해? 앞으로 계속 같이 일해야되는데, 누구 실수할때마다 그따위로 굴거야? 너보다 순한 사람은 다 만만해? 현장 경력 없어도, 너보다 계급이 위고, 직급도 위야! 어디서 주먹질이야? 사과해!"
석호와 지율, 둘 다 당황한다.
"문 형사님, 이번 일은 제가 잘못한..."
종태가 손으로 제지한다.
"팀장님이 그렇게 자꾸 우쭈쭈하면, 강지율이는 절대로 다른 사람하고 일 못합니다. 지만 잘나서 혼자 날라댕기는데, 누구랑 어떻게 일을해요? 강지율! 팀장님께 사과해!"
"안해요! 내가 왜 해요? 누가 다 망쳤는데?"
"이 자식이? 야! 지금 일을 망치고 안망치고가 아니잖아! 엊그제 경위 특채 달고 들어온 놈이, 경감을 쳐? 미국 것들은 다 그 모양이냐? 위아래 없고, 지만 잘나고? 팀은 안 중요해?"
화가 머리끝까지 난 종태. 그러나 지지않고 대드는 지율. 핏대를 세우며 석호대신 종태에게 소리친다.
"그러니까 왜 오지랖이냐고? 잘하고 있는데, 그냥 가만히나 있으면 되지, 방해는 안해야 될 거 아냐??"
"강 형사!"
은석이 소리친다. 멈칫하는 지율.
"사과해요."
당황스런 얼굴로 은석을 바라보는 지율. 그런 지율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지시한다.
"일의 결과 말고, 다른 건.. 강 형사 잘못 맞아요. 팀장님께 사과해요."
크게 숨을 한번 들이쉬고 조용히, 억지로 한마디 한다.
".... 죄송합니다..."
좌불안석인 석호가 한마디 하려는데, 은석이 말을 잇는다.
"문 형사님께도 사과해요. 계급이 같아도 큰 형님이세요. 함부로 안합니다."
"저 자식이 그런게 어딨어? 버르장머리 없는 놈."
땍땍거리지만, 어느새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다. 지율이 바라본다. 잠깐 고민한다.. 이제 다 이야기 해버릴까..
"저거봐, 저거.. 사과 안하고 머리 굴리는 거. 됐다, 이놈아. 나도 너한테 사과 안받어."
침대 위에서 빵 봉지를 집어 잡아 뜯는다. 지율이 종태를 보며 입을 벌린다. 손가락으로 입을 가르킨다.
"아!"
"뭐?"
"아아! 배고파요! 빨리! 아!"
어이없는 조팀장이 피식 웃는다. 더 황당해하는 종태가 빵을 조 팀장에게 던져준다.
"저리가! 너 안줘! 웃기구 있어, 아주.. 나가서 사먹어!"
"다리 다쳐서 못걸어요. 피난 거 안보여요? ... 업어줘요."
"미쳤냐? 내가 왜 널 업어? 사지멀쩡한 놈을? 날아서 가! 너 혼자 잘 날라 다닌다며?"
"못해요. 여긴 4층이에요."
"시환이한테 업으라 그래. 난 오늘 너랑 말 섞기 싫어."
"애정이 식었어."
"애당초 없었어."
"조카 안 예뻐하는 삼촌이 어딨어요?"
"너같이 지랄맞은 조카 이뻐할 삼촌이 있겠냐?"
"후회할껄? 사건 다 풀었는데?"
"뭐? 잠깐... 지금 이거?"
조팀장이 눈을 반짝.. 한다. 시환이 나선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구요, 둘러보니까, 대충 많지않게.. 몇명으로 추려질 것 같습니다."
"감식반 대신 증거 수집 좀 하라니까, 그거 다 해보고 하는 소리야?"
"할것도 별로 없어서 사진만 좀 찍었는데, 피해자 신원도 확실하고, 괜히 시신만 오염될까봐 지문도 안 떴구요. 나중에 부검 필요하면, 그때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사망 원인은 뭐야?"
"자상이 많아 보이긴 하는데, 실제 원인은 경부 압박으로 보입니다. 처음 한두번 찔러서 쓰러뜨린 후에, 목을 졸랐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후에 더 많은 상처를 입혔구요. 목 부분에 난 손자국에서 DNA를 찾을 수 있느냐에 따라서, 수사 기간을 얼마나 단축할 수 있는지가 결정될 것 같습니다. 경직이 이제 막 시작되었으니, 사망 시각은 말씀하신대로 첫번째 출동 직전으로 보이구요. 방안에 어질러진 정도나 혈흔 형태로 봐서는, 크게 경계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한 것 같습니다. 문이나 창문을 강제로 연 도구흔도 없고, 면식범이거나, 최소한 자진해서 문을 열었을겁니다."
"그럼 아까 그 놈은 진범이 아니야? 스토킹하는 놈한테 자진해서 문을 열지 않았을거 아냐? 뭘 어떻게 풀었다는 거야?"
"...범인이 가르켜줬어요, 누가 진범인지."
7.2.5 조금 전,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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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로 돌아온 지율과 시환, 보초를 서고있는 두 순경에게 인사한다. 장갑과 덧신을 신고 들어간다. 피묻은 발자국 외에는 깨끗한 거실과 부엌, 화장실.. 아무 다툼이 없었다....? 침실로 연결되는 발자국...
"괜찮아요? 힘드시면 저혼자 들어갈께요."
"아뇨, 안힘들어요. 자꾸, 왜들 그래요? 하나도 안 힘든데.."
"선배, 꿈꾸고 토하고 그럴까봐.."
"그건, 밥 먹을 때고.. 이건, 사람 만나는 거잖아요. 반갑지 않아요? 어디 땅속이나 물속이 아니고, 눈앞에 바로 나타나 준거... 고마운 일이죠. 얼마나 다행이에요."
지율이 시신을 확인한다. 참 아름다운 사람이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시환도 서서히 둘러보며 사진을 찍는다. 지율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미안해요. 대신 얘기 다 들어줄께요. 나한테 무슨 일인지, 자세히 보여줘요."
여기저기 셔터를 누르던 시환이 갑자기 생각난 듯 한마디 한다.
"아, 이 사람 러시아랬죠? 팀장님이 러시아어 하는데.."
"하면 뭐해요? 이 사람이 죽어있는데.. 귀신하고나 하라 그래요."
삐딱한 반응... 아까 왜 그랬냐고 물을려다가, 일단은 일에 집중한다.
".. 피가 많이 튀지는 않았어요. 거의 시신하고 그주변에만 있는 걸로 봐서 몸싸움도 별로 없었고, 저쪽편에서 처음 몇번을 찔리고 이쪽으로 쓰러졌을거에요.."
바닥과 벽에 흘러내린 핏방울을 들여다본다.
"이쪽이 첫번째 선상 분출이구요 - 동맥 파열로 튀어오르면서 퍼지는 거요. 그리고 여기는 아주 흔한 낙하 연결이에요, 피해자가 이동하면서 족적과 혈흔을 남기죠. 지금처럼 맨발이었고.. 여기 이거는 범인 발자국인데, 그 사람도 신발을 안 신었어요. 갑자기 쳐들어 온 침입자가 아니라, 안에서 어느정도 같이 시간을 보냈을거에요."
시환이 침대 주변 바닥을 가르킨다.
"이만큼은 다 흉기에서 흐른거에요. 이미 사망한 다음일거고, 누워있을때겠죠. 원한이나 분노로 계속 찔렀지만, 피의 양이 처음 저쪽에서 분출한 것 보다 적어요. 상당량이 침대 아래로 스며들었기도 했을거고, 심장이 멈추고 나면 출혈이 급격히 줄어드니까요..."
대꾸가 없다.. 말을 멈추고 지율을 돌아본다. 이런... 지율의 오빠 이야기와 비슷하게 갔다... 지율은 처음 분출이 있었던 벽면을 보며 미동없이 서있다. 시환이 다가간다.
"선배, 괜찮아요? 그만 할까요?"
"잡았어요, 범인... 둘 중에 하나."
작은 탁자위의 액자를 가르킨다. 핏방울이 선명하게 흘러내린 액자들 사이로 유독 깨끗해 보이는 사진... 시환이 조심스레 집어올려 액자의 아래면을 본다. 피가 묻어있다.
"혈흔이에요. 피가 다 뿌려진 다음에 올려놨네요."
"그러니까 범인은, 사진 속 그 놈... 아니면, 그놈을 아주 싫어하는 어떤 놈."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