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7화 장애물 달리기 3

그래도 뛴다

by 신소운

7.3.1 추모 공원



네모 반듯한 회색 돌 앞에 앉았다.

"오빠가 인제... 서른 다섯 되나..여섯?? 결혼도 했겠지? 나는 평생가도 조카가 없겠다. 아, 어차피 없구나, 형제가 없으니까.. 웃기지? 오빠는 진짜 친오빠 같았는데.. 맨날 없었는데도 이런 날은 더 생각나. 다들 그렇대. 생일, 명절, 크리스마스.. 살아있었으면 오늘은 엄마아빠랑 밥도 먹고 그랬을건데.. 난 생일을 안해봐서 잘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 둘 다 경찰일거야, 그치? 아빠가 좋아했겠다.."


주머니에서 석호가 사준 비타민C를 꺼낸다. 뚜껑을 열고 안에 붙은 종이를 뜯고 솜뭉치를 꺼낸다. 돌 위에 올린다.

"이거, 우리 팀장이 사줬어. 먹고 아프지 말라고.. 피부에 좋은거야. 새 살도 잘 나오고.. 그러겠지. 아무튼 그렇다니까 엄마랑 오빠 먹어. 나는 많아. 쓸데없이 한봉다리 가득 사왔어. 다 먹으면 배 터져. 내가 아까 성질을 좀 부렸는데, 진짜로 잘못 한 건가? 말로는 사과했어, 누가 시켜서.. 진심은 아니었고."


새벽같이 영양제를 한가득 내밀던 모습을 떠올린다. 부하한테 맞고도 편들어주던 멍청이..

"여기 사람들은 다 오빠가 되고 싶은가봐. 착한건지 띨한건지.. 일이라도 똑바로 하고 오빠인 척 하던가. 차형사님처럼.. 있잖아, 차은석이라고, 아빠 젊었을때랑 똑같은 사람이 하나있다? 크크.. 아빠만큼 덩치 진짜 크고, 목소리 딱 깔고... 사과해요... 싸움도 잘 한대. 아빠도 옛날에 그랬잖아, 그치? 힘 진짜 쎄고.. 다 이겼는데, 지금은.."


비타민 한 알을 꺼내 삼킨다. 물도 없이 그냥 목구멍으로 꿀꺽 삼킨다. 아무 맛 없다.

".. 그 선배한테 혼났어, 뭐 잘 안 혼내는데.. 삼촌한테 개기다가.. 삼촌이 자꾸 팀장 편만 들고, 나한테만 뭐라 그러길래 짜증나서 한마디 했는데... 아, 아니다. 아냐, 엄마. 삼촌이 나 이뻐해. 근데 옛날보다 못해. 애정이 식었어. 맨날 업어주더니, 인제 나이 들어서 힘이 없나봐.. ㅎㅎ.. 내가 너무 컸나? .. 가야겠다. 일 해야지. 오빠 생일 축하해? 엄마랑 잘 놀아.."


주차장으로 걸어나오는 지율을 멀리에서 지켜보는 석호. 차가 지나갈동안 몸을 숨긴다. 한손에 꽃다발을 들고 지율이 왔다간 그 자리에 선다. 꽃을 내려놓고 절을 한다. 뚜껑 열린 비타민 통을 본다. 꼭 닫아 비가 들지않을 좋은 자리에 내려놓는다. 아무 말 없이 한동안, 조용히 비석만 응시한다. 할 말이 없다.. 괜히 먼지를 닦는 척, 손으로 쓰다듬어본다.


".. 간다. 니 동생 사고 안치게, 가서 지키고 있어야돼. 성질머리는 어렸을때랑 똑같애. 쪼꼬만게 다 이겨먹을려고... 야, 이거 보여? 걔한테 맞았어."

부어오른 입가를 만지작 거린다. 입안으로, 위아래 입술이 다 터졌다. 혼자 웃는다.

"걱정마. 유리 다 컸어. 주먹질 진짜 잘해, 너도 봤지? 이제는 네가 가르쳐줄게 없겠더라 그래도, 옆에 붙어 있을께. 니 부탁.. 엄청 오랜만에 들어주겠다. 다행이야..."


핸드폰이 울린다. 송창률...

"지난번에 맡겼던 미제 사건들 중에, 1992년, 이태원 주공 아파트 건설 부지에서 나온 유골이 있었어. 자상이 여러군데 있었고, 어제 유전자 대조를 해봤는데, 87년에 실종된 남미 선원하고 같은 인물이야."

1987년 부산항으로 들어온 파나마 국적 원양어선의 부선장... 15일간의 휴가 중 잠적했다. 그리고 5년 후 이태원에서 발견된 신원 미상의 유골이 그 사람이다.. 누가 죽였을까.


"항해 중 감정이 안좋았던 선원들이거나, 유흥가에서 시비 붙은 흔한 칼부림이겠네요. 그래도 신원 확인했으니, 종결로 넘겨야겠습니다. 너무 오래된 사건이라서요.. 감사합니다."

"그래, 남은 가족들이라도 위안은 되겠지. 수고해. 다른 사건 또 뭐 나오면 연락할께."

"예, 형님. 고생하셨습니다..."

전화를 끊는다. 묘비를 내려다본다. 마음 속으로... 한마디 더 묻는다.


'그런데 형님... 상도동 경찰 가족 살인 사건은.. 범인이 누구일까요? 우리한테 가장 큰 미제사건은 이거잖아요. 하나 남은 가족도 돌아왔고, 이제 위안이 될만한 걸 밝혀야 하지 않을까요...'





7.3.2 병실




"내일은 출근 해야죠... 일찍 가겠습니다, 아니에요, 걱정마세요. 애들이 알아서 잘 하잖아요... 예, 들어가십시오."

서장과 통화를 마치고 나서야 겨우 잠을 청하는 조 팀장. 많이 피곤하지만 아픈 갈비뼈 때문에 똑바로 눕지 못한다. 또 갑자기 병실 문이 확 열리며 진우가 뛰어들어온다. 조 팀장이 억지로 눈을 뜬다.

"오지말라니까 뭐하러 왔어, 일 하지? 나 괜찮다니까..."

"영장 주세요."


"뭐?"

"영장 주세요. 냄새가 나요."

"너는 내 꼴, 이거 .. 이거, 다친거 안보이냐?"

"보여요. 좋아 보이세요. 영장 주세요."

"아까 전화로 다 얘기했잖아, 안된다고! 신고도 안들어오고, 신고자도, 실종자도, 시신도 없는데 뭘로 영장이 나와?"


"사람 피요. 사람 피가 나왔잖아요."

"그러니까, 동네 싸돌아다니는 강아지 발바닥에 피 몇방울 묻었다고 어딜 수색하냐고? 주소지 있어? 용의자 있어? 범죄 혐의 있어? 피해자도 없잖아!"

"그러니까 인제 찾아야죠. 어제 저녁에 뚱이 데려다 주면서 그 가족을 만났는데, 제가 경찰이라니까 얼굴이 굳으면서, 별로 안 좋아해요."

"경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있냐?"


"왜요..? 저는 다들 좋아하세요. 어제 그 여자분이 처음이에요, 저 안좋아하는 거.."

"시끄럽고, 뭐 다른 걸 더 들고와, 더 수상한거. 진짜 이상한거!"

"새벽부터 거기 있다 왔어요, 뚱이 이동 경로 파악하고.."

"하다하다 개새끼 이동경로를..."

"아, 좀, 들어보세요. 뚱이가 항상 다니는 길이 있어요. 그래서 따라 갔는데.."

"시끄러! 야! 너 시간 많어? 가서 일 해! 사람 일! 개 고만 따라다니고.. 신고도 안들어 온 걸 왜.."


"들어왔어요! 뚱이가 신고하러 왔잖아요! 네발에 증거 착 붙이고! 특히 앞에 두 발, 그리고 입.. 어딘가 열심히 땅을 파다가 그걸 찾은거에요. 피 묻힌 고대로 경찰서에 왔으면 그게 신고지, 뭐 더 필요해요?"

"가! 너 가! 가서 개를 잡던지 사람을 잡던지, 가서 하나 잡아! 백번을 해봐라, 그런걸로 영장이 나오나."

"그러니까 팀장님이 전화 좀 해 줘요!"

"진우야, 조사 상대가 없잖아? 개 주인? 왜? 아무 이유가 없어. 잘못하면 인권 침해야."

"무슨 인권이요? 전인권? 그게 왜 인권침해에요? 피해자를 찾겠다는데, 그정도도 못해주나?"


"당신이 키우는 강아지 발에 누구 피인지도 모르는 피가 묻었다, 그러니까 주인님들 유전자 검사한다.. 너 같으면 하겠냐?"

"찔리는 거 없으면 당연히 해야죠. 예전에 사고 치고 도망중이거나, 지금 사고를 치고 있다거나, 그런거 아니면."

"그래, 그러니까! 그런거 아니면! 그런거 아닐때!! 그런거 아니어도 해줄까 말까 하다고."

"그러니까 영장 주시고, 강제 집행 하자고요.."

"나가! 나 잘거야.. 니가 알아서 해. 자식이 하다하다 바빠죽겠는데 개 발바닥까지.. 그리고 너, 임마! 누가 함부로 검사 키트를 그딴거에 쓰래? 어? 너 장부에 기록은 했어?"


진우가 입을 꼭 다물고 뒷걸음질친다.

"어디가?"

"가라면서요... 갈거에요. 가서 개 발바닥 탐문 수사하고.."

"저 자식이!"

뛰어나가는 진우. 갈비뼈가 아픈 조 팀장.. 뒤로 기댄다.

"아우, 저거 진짜.. 드럽게 말 안들어.."



7.3.3 효창동 주택가




"진짜로.. 이래가지고는 영장 못 받는데.. 일단 가족을 해보고, 아니면 동네 사람 해 보고.. 그러면 되는 거 잖아. 뭐가 그렇게 쉬쉬 할 일이야? 유전자 좀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되는 걸?"

혼자 궁시렁 거리며 골목길을 돈다. 작은 강아지가 쉽게 파낼수 있는 곳... 흙, 높지 않고, 멀지 않고... 자주 가 본 곳, 아는 곳일 가능성...

"아이... 뚱이한테 위치 추적기를 달까? 어? 옆집 분인가.."


뚱이네 옆집 아주머니가 골목길을 쓸고 있다.

"안녕하세요?"

씩씩하게, 활짝 웃으며 접근한다. 아주머니도 웃는다.

"안녕하세요? 누구신가? 새로 이사 오셨어요? 못 보던 분 같은데?"

"요 밑에 용산 경찰서에 있어요. 동네 순찰 나왔어요. 별일 없죠?"


"아이구, 젊은 분이 아침부터 고생이에요. 혼자 다녀요?"

"예, 오늘만 저 혼자 왔어요. 파트너 쉬는 날이라서.. 혹시 이 집이요, 강아지 키우시는 분, 잘 아세요?"

"그럼요, 몇십년을 한동네 살았는데, 다 알지. 할아버지는 저 밑에 건물 경비 나가고, 꼬마는 유치원 다녀요. 엄마가 외국 사람이야, 카자흐스탄. 하루 종일 집에서 부업해요."

"아, 어쩐지.. 어제 잠깐 봤는데, 대답도 없이 쓰윽 들어가시더라구요. 한국말을 잘 못하시나요?"


"아니, 잘해요. 근데 그 할아버지가 좀 무서워. 동네 사람들하고 얘기도 못하게 해. 아들이 얼마전에 죽었어요. 오래 앓다 죽었는데, 그전에도 그렇게 며느리가 누구랑 바람 날까봐 아주, 맨날 집에 가둬놓다시피 했거든."

"할아버지랑, 며느님이랑 손주... 그렇게만 살아요? 강아지하고?"

"애 하나가 뱃속에 더 있었는데, 남편 죽으면서 쇼크를 받았는지 얼마전에 유산 됬다 그러더라구. 에유.. 하긴 아빠 없이 낳으면 또 어쩌겠어, 지금 있는 애나 잘 키우면 되지.. 거기, 궁금하면 문 두드려봐요, 할아버지 출근했으니까 며느리 혼자 있을거에요."


쓰레기를 정리하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아주머니.. 아이는 유치원, 할아버지는 출근.. 벨을 누르려는데, 여자가 문을 연다. 밖에서 하는 얘기를 듣고 있었을까..

"안녕하세요? 어제 잠깐 뵈었죠? 용산 경찰서 강진우 입니다.."

조용히 문 옆으로 비켜서서 들어오라는 듯, 안쪽으로 눈짓한다... 진우가 들어오고 서둘러 문을 닫는다.. 콘크리트 마당에 한쪽에 강아지 집이 있다. 오래된 수도는 사용을 안 하는 듯, 많이 녹슬었다. 빨래를 널고 있었는지,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젖은 옷이 수북하다. 핏자국이 있을까 스캔한다.. 말을 꺼낸다.


"뚱이가 저희 경찰서에 자주 오는데, 어제 보니까 발에 피가 묻어있어서요.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 분이 있으신가 해서 왔습니다."

여자가 말이 없다. 잠깐 뭔가 생각하더니 마루로 안내한다.

"앉으세요."

유리문을 열고 들어간다. 진우는 길고 좁은 마루 끝에 엉덩이만 걸쳤다. 이런 집, 오랜만이다... 열린 문 사이로 안쪽을 들여다 본다. 결혼 할때 찍은 듯한 옛날 가족 사진.. 할머니도 보이고... 새색시 한복을 입은 여자가 많이 어리다.


물 한컵을 들고 오는 그녀를 살핀다. 많아봐야 20대 초중반..?

"아이가, 넘어졌어요. 피가 나서, 강아지가 밟았어요."

어제 뚱이를 데리고 올때, 집앞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만났었다. 눈에 보이는 상처는 없었다...

"아, 그래요..? 저는 다른 일이 있나해서 왔는데, 어디에서요? 마당에서요? 깨끗이 치우셨네요? 유전자라도 대조 해봐야하나 했는데, 아무것도 없네요... 아, 농담입니다. 저희는 피에 좀 예민해요. 흔한 일은 아니라서요. 뭐, 불편하신 일은 없으신거죠? 남편분은 언제 돌아가셨어요?"

"세달.. 됬어요. 암..으로.."


"고생 많으시네요. 멀리까지 오셔서.. 고향에 가족들은 자주 연락 하세요?"

"..."

코끝이 빨개지며, 눈물이 고인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유심히 본다. 무슨 뜻일까.. 남편이 죽어서? 가족이 보고 싶어서? 여자가 옷 소매를 끌어당겨 눈물을 닦는 동안, 진우는 다시 한번 집안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어 조용하다.. 어둠, 황량, 삭막, 썰렁.. 본능적으로 일어선다.

"안에 좀 볼께요?"

"안돼요!"


여자가 단숨에 거절한다. 일어서려다 말고 정지한다. 천천히.. 제자리에 앉는다. 느낌이 온다..

"... 죄송합니다. 제가 영장도 없이.."

여자를 살피지만, 좀처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혹시, 제가 불편하시면, 여자 경찰이랑 같이 올께요. 그 분하고 이야기 하시겠어요?"

답이 없다.. 그렇다고,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알겠습니다. 이 시간이 편하시죠, 혼자 계실때?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겠습니다."


일어선다. 여자는 꼼짝않고 앉아 땅바닥을 보고 있다. 바짝 잡아당겨 쥐고있는 옷소매 끝이 방울방울 젖어있다. 뭔가 있다 확신하며 대문을 나선다. 습관처럼 주위를 둘러본다. 휑한 골목길에는 아무도 없다. 집에서 조금 떨어져 서서 핸드폰을 꺼낸다.

"어, 지율아.. 바뻐? 내일 아침에 시간 좀 되냐..? 나랑 어디 좀 가자.. 응, 아니 가까워, 바로 경찰서 뒷동네야..."

간단히 통화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여자가 나온다. 손에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들고 있다.


핸드폰을 넣으며 자세히 본다. 음식물이 아니고, 다른게 들어있다.. 여자의 눈빛이 아까와 다르다. 진우를 향해 걸어온다.

"이거... 재활용이에요. 가시는 길에 버려주세요. 저희 애가... 칫솔을 바꿀때가 되서요..."

묶지도 않은 봉투를 내민다. 진우가 봉투 안을 내려다 본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 안에, 아동용 칫솔과 조그만 자동차, 장난감 호루라기가 들어있다. 여자가 봉투를 들고 있는 팔의 옷소매를 올린다.

"..."


시커먼 멍이 들었다. 크기나 색깔로 봐서는 구둣발로 여러차례 밞았다. 아직도 붓기가 가시지않은 피부에 잔핏줄이 튀어올랐다. 2-3일 이내의 폭행이다. 오래되어 누렇게 뜬 다른 자국들도 보인다. 여자를 본다. 여자는 목덜미를 긁는 척하며, 꽁꽁 싸고 있던 가디건을 어깨까지 벌린다. 쇄골부터 어깨 쪽으로 바짝 말라가는 피딱지가 앉았다. 진우를 본다. 눈물을 본다.

"알겠습니다. 제가 가져 갈께요. 내일 아침에 오겠습니다."

조용히 고개 숙여 인사하고, 여자가 집으로 들어간다. 진우가 다시 한번 집주변을 살핀다. 아무도 없다. 다행이다... 개 발바닥 덕분에 개보다 못한 놈을 찾았다..


7.3.4 사무실




지율이 크리넥스 위에 감자 튀김을 펼쳐놓고 집어 먹는다.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콜라를 나눠주는 시환.

"지 배고플까봐 사왔더니, 햄버거를 못먹어?"

종태가 툴툴거린다.

"근데 이게 점점 이상해져. 하도 안먹으니까 감자라도 먹어주는게 고마운거 같애. 애 엄마들이 이런 기분인가?"

"승진하셨습니다. 삼촌에서 엄마로.."

시환이 자리에 앉아 햄버거를 크게 한입 베어 문다.

"내가 진짜 엄마면, 저렇게 깨작거리는 자식은 굶길거야. 우리때는 안먹는게 어딨어? 밥 투정도 호강이야."

서장이 한마디 한다.

"작전은 개판치고, 햄버거까지 사다 먹이고... 아주 똥개판이네. 이제 어쩔거야? 그 놈이라도 수배 하던지?"

"어머니께 전달했습니다. 일단은 직접적인 혐의는 없어보이니까, 참고인 조사를 하는 거고, 오늘까지 연락 안되고 계속 숨으면, 저희도 용의자로 전환해서 수배령 내릴 수 밖에 없다고요. 설득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시환이 대답한다.


"전에 몰카 사건때문에 지레 겁 먹었구만.. 그 인간이 괜히 뛰어가지고 조팀장만 저 꼬라지고.."

"서장님, 우리 인원 언제 줘요? 무슨 팀이 5명이야? 짝도 안맞고 기본도 안돼. 애들이 없으니 뭐가 제대로 안 돌잖아."

종태가 햄버거 하나를 순식간에 끝낸다.

"야, 내가 어디서 데려와? 한강에서 건져오냐, 남산에서 따오냐? 요즘 젊은애들, 아무리 꼬셔도 안와. 너네는 그나마 시환이 지율이 와준게 감사한 줄 알어. 강력은 아예 없어."


"류시환이는 요새 좀 감사한데, 저 자식은 내가.."

종태가 감자를 입에 물고 지율을 째려본다. 지율이 마주보며 삐쭉거린다. 서장이 편을 든다.

"왜? 앞집에서 자꾸 달라잖아. 강 형사 오고나서 우리 공격력이 두배로 올랐어."

"공격력 두배는 좋은데, 파괴력이 열배야. 위험해... 쟤는 팔다리 하나씩 묶어놓고 다녀야지, 저러다 정말 누구 하나 골로 가. 조 팀장도.."

시환이 조용히 버거를 내려놓는다.. 종태가 시환을 본다.


"류시환이 더 먹어, 괜찮아.. 니가 차로 갖다박은 조 팀장, 내일부터 출근하겠대."

"벌써요? 괜찮으시대요?"

"아니, 안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은데, 일 해야지. 범죄자는 휴가가 없거든. 경찰 다쳤다고, 쉬었다 다시 오는 거 봤어?"

"당분간 외근은 못하고... 그래도 팀장이 나와 있는거랑 병원에 누운거랑 다르잖아. 문 형사랑 은석이가 잘 왔다갔다 해줘. 너네는 어쩔수 없이 그냥, 각방쓴다 생각해. 강력 애들이랑 한팀인거야."

"얼마나 따까리를 시킬려고..."


"서장님, 왜 문 형사님 승진 안 시켜줘요?"

뜬금없이 지율이 묻는다.

"나이도 제일 많고, 경력도 제일 많고, 일도 제일 많이 하는데, 왜 문형사님은 계급이 저랑 같아요? 우리 팀장님보다 높아야 되는 거 아닌가?"

서장이 웃는다. 종태가 어이없는 얼굴로 따라 웃는다.

"이야, 강지율이.. 내가 아까 한마디 했다고 그렇게 돌려까냐? 너 지금 나 승진 못했다고 약올리는 거지?"


"아니요. 이상하잖아요. 다 경위야, 스물 몇살부터.. 근데 문형사님은 낼모레 오십이라며 왜 똑같냐구요. 서장님, 문형사님 싫어요?"

모두가 웃는다. 종태가 한마디 한다.

"아.. 내가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네.. 맞어, 서장님이 싫어해서야... 난 여지껏 내가 시험 떨어져서 그런 줄 알았잖아.. 야, 근데 어쩌냐, 나는 다음에도 승진 못하고, 아마 차형사가 나보다 먼저 올라갈것 같은데.."


서장이 냅킨에 손을 닦는다. 기름에 소금까지.. 너무 많다..

"임마, 내가 진짜 그런 인사권이 있었으면, 류시환, 강지율, 너네들은 벌써 다 짤렸어. 차은석이 같은 놈들만 한 열명 데리고 일하면 얼마나 좋아?"

"왜요? 역모라도 하시게요? 구테타로 경찰청장 한번 해?"

종태가 웃는다.

"강지율, 나처럼 순경에서 시작하면, 이만큼 온것도 잘 한거야. 더 올라가면 뭐하냐, 머리 아프지? 남 챙겨야지, 욕 먹어야지... 너, 그러니까 팀장님한테 잘 해, 까불지 말고."


지율이 조용히 마지막 감자를 입에 넣는다.

"그래, 강 형사야, 너, 한국에서는 그런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것도 경찰에서. 두번은 없어. 알겠나?"

"죄송합니다."

지율이 사과한다. 종태가 석호가 사 온 약 가방을 가르킨다.

"저거 봐요, 저거.. 지율이 먹으라고 영양제를 한 가방 사들고 왔대. 그런 팀장이 어디있냐? 너같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 챙긴다고.."


"이석호가 사왔다고? 이노무 자슥이, 나한테는 맨날 빈손으로 오면서! 내놔봐, 뭐야?"

"왜 애 껄 뺏어먹어요? 돈 주고 사먹어요."

"아이구, 서로 잡아먹을듯이 아주 바락바락 할때는 언제고.. 아까도 내가 저 지율이 놈 불러다 야단친다니까 그냥 눈에 불을 켜고 덤비더라?"

"이 팀장이요?"

은석이 묻는다. 담배를 챙겨 들고 슬그머니 일어나는 종태. 조용히 밖으로 나간다. 뒤통수에 대고 소리친다.

"아니, 문종태가!"


문이 닫힌다. 서장이 웃는다.

"저거, 저거.. 아까 강지율이 잡아 오라니까 지가 뛰어올라와가지고, 석호랑 지율이랑 각자 자기 일 했다고? 석호는 팀원을 보호할 책임이 있고, 지율이는 범인을 잡아야 하고.. 각자 자기일 잘 한건데, 왜 누굴 징계 하냐고 따지더라니까? 지가 알아서 애들 타이른다고, 놔두래... 그래놓고 이게, 지금 이렇게 햄버거나 사다 먹이는 게 타이르는 거야?"


시환이 남은 햄버거를 쳐다본다. 은석이 시환 쪽으로 밀어준다. 실실 웃으며 받아먹는 시환.

"근데, 이석호는 어디갔어?"

"아까 진우형이랑 나갔습니다. 근처에서 점심 간단히 하고 들어 온다고요.."

입에 크게 한입 넣은 시환이 답한다.

"경대 선후배라고, 둘이 친한가? 그렇게 같이 다녀?"

"진우 형이야 아무하고나 다 친하죠. 우리 팀장님이 좀.."


콜라를 집으려다 말을 멈추는 시환.. 슬쩍 눈치를 본다. 서장이 한심한 얼굴로 한소리 한다.

"야 이자식아. 너 강지율한테 하는 거 반만 니 팀장한테 해. 석호도 나쁜 애 아니야. 별로 사교적이지 않은거지. 은석이는? 둘이 동갑이지? 석호랑 잘 지내나?"

"불편한 거 없습니다."

"석호는, 와서 니 칭찬 많이해. 일 잘한다고.. 사내 놈들끼리 알콩달콩하지는 않아도, 지낼만하면 됐지, 뭐.. 안그러냐?"

"예."


"승진 준비 잘 하고... 네 차례잖아. 그리고, 저거.. 류시환이 저거 좀... 잘 데리고 다니면서 좀 뭐라도 가르쳐봐, 내가 쟤만 보면 아주.."

코를 찡긋하며 애교 떠는 시환.

"운전도 잘 하는 놈이 왜 지네 팀을 들이박어? 어이구.. 다들 알지? 류시환이 카 레이싱 하잖아."

"아니에요, 레이싱을 하는게 아니라.."

"저 자식 자격증도 있어. 할 줄 아는게 지문 뜨는 거 하고 운전 밖에 없어."


"그걸 할려고 한게 아니라, 아버지가.."

"그래, 니 아버지 덕이지. 경찰대 가라고 운전을 가르쳤는데 저게 실기에서 떨어진거야. 쟤 아버지가 열이 받아가지고, 카레이싱 선수를 붙여서 운전을 가르쳤어. 면허 따고, 아예 레이싱까지 다 따게 했지."

"저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거기 한 천바퀴 돌고 나니까 좀 알겠더라고요. 근데 우리 아버지가 뭐라는 지 알아요? ... 음, 이제 차가 좀 굴러가는 거 같다. 생명보험 없어도 되겠네..."

"고마운줄 알어, 임마. 바쁜데 그만큼 신경 써주는게 어디야?"

"뭘요? 우리 아버지는, 요즘 말로는 아동 학대에요.."


지율의 전화가 울린다. 가평 경찰서다.

"... 예, 알겠습니다.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는다.

"시환씨가 운전 할래요? 미키 씨 영상 확보했답니다. 가평이요.."




7.3.4 점심




석호와 마주앉은 진우. 간단한 점심이라고 했지만, 특별히 중식당의 룸으로 잡았다. 요리 세개가 들어온다.

"이거야? 점심부터 이게 먹고 싶었어?"

"어, 요새 입맛이 자꾸 바껴. 날이 추워질려 그러는지, 중국 음식이 땡겨서.. 형은? 입 괜찮아?"

"며칠 따끔하겠지. 평생 별로 맞아본 적이 없어서, 솔직히 아프다."

"에유, 강지율이 성질머리 그거.. 야단쳐. 코딱지만한게 어디 선배님 용안을..."

"비웃는 거지?"


"어.. 후배한테 맞고 다니냐. 그것도 한참 어린 애를.. 형이 영양제 사다 줬다고 소문 다 났던데, 왜 그랬어?"

음식을 큰 접시로 덜어주며 가볍게 묻는다. 뻔한 답을 기대한다.. 그냥, 잘 챙겨먹으라고..

"그냥, 잘 챙겨먹으라고. 잘 못 먹잖아. 맨날 어디 다치고.."

"갑자기 왜? 뛰면 깨지고, 엎어지면 터지고... 앉으면 찢어지고, 서면 부러지고... 그게 경찰 아냐? 갑자기 왜 지율이만? 뭐, 강지율이 부적에 귀신이라도 붙어있었나? 생전 안하던 짓을 해? 밑에 애들한테 말도 잘 안 놓으면서, 지율이한테는 인제 막 반말 하던데?"


석호가 수저를 들다말고 진우를 본다.

"부탁이 있다더니, 조서 꾸밀 일이 있나보다?"

진우가 웃는다. 젓가락을 들어 석호 쪽으로 놓는다.

"이거봐, 여기 이석호, 이거는 강지율... 이석호는 본청에서 혼자 룰루랄라 잘 나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원치 않는 현장으로, 그것도 팀장으로 끌려왔어. 가뜩이나 일하기 엄청 싫을건데, 저멀리 어디에선가 굴러 들어온 애가 하나 끼어들면서, 사고 치고, 용의자 치고, 형이 팀장이니까 형 고가 점수도 나빠질거고... 어제는 작전 망치고, 얻어 맞기까지 했어. 그런 애한테 갑자기 영양제? 그것도 금고 털듯이 한 무더기 잔뜩?"


"작전 망치고 얻어 맞기 전에 산거야."

진우쪽은 쳐다보지 않고, 식사를 시작한다.

"부적하고는 별 관련없고? 뭐, 죽은 오빠 귀신이 나타났다거나, 강장동물 귀신이..."

"진우야."

"이상하잖아? 형은 왜, 부적 이후에 갑자기 지율이한테 관심을 보일까? 서장님한테도 지율이 우리 못 준다고 그랬다며? 왜? 옆에 붙어서 지켜볼라고?"

"준다고 한 적 한번도 없었어."

"그래? 다 된것 처럼 말씀하셨다던데.. 근데 있잖아, 형이 지율이한테 요새 관심이 많은 건 인정하지? 왜 그래? 전에 원주에서도, 지율이 아버지 계신 병원에 들락거린다며.. 왜지?"


"..."

말없이 음식물을 씹어 삼킨다. 눈을 떼지않는 진우... 역시 지율이 아버지한테 갔었던거다..!

"머리 굴리지 마. 솔직하게 말해. 지율이하고 뭐 있지?"

"...몰랐어."

"뭘?"

"강형사하고 뭐가 있는 거.. 몰랐다고. 전혀 다른 두 사람이었는데, 동일 인물이었어. 그게 다야."

진우를 본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병문안 다니던 그 분이, 지율이 아버지인 것도 몰랐어. 오래전부터 알던 분이라서 갔던거야."

진우가 고기 한점을 집어 입에 넣는다.

"형은 죄짓고는 못 살겠다. 왜 이렇게 쉬워? ... 지율이 아버지 계신 병원에 들락거린다고 했지, 지율이 아버지한테 갔냐고는 얘기 안했잖아. 아니라고 우기지 그랬어. 믿을 수도 있었는데... 그 분은 어떻게 알아? 일 때문은 아니지?"

"..."


답이 없다. 설명하기에는, 너무 길다... 밥을 먹는다. 아직도 김이 오르는 국물을 뜬다.

"... 송유리 때문인가?"

한마디 던져놓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먹기 시작한다. 잠시 멈칫했던 석호도 식사를 계속한다.

"불편하지? 에이, 형하고 밥 한번 먹는게 참 그러네... 우리, 그냥 다 털자. 그럼 좀 편하지 않을까?"

"할 말이 뭐야?"

"없어. 난 듣고 싶은 말만 있어. 그러니까 해... 다."


석호가 웃는다. 냅킨으로 입가를 닦는다. 진우를 본다.

"야아, 직업이라는게 참, 무섭다... 강진우, 강력팀 몇년하더니, 선배도 잡아먹겠다."

"배고프면 먹어야지, 선배라고 봐주나? 벼슬도, 면죄부도 아닌데..."

"그래, 어차피 다 알게 될거야. 근데, 지율이하고의 일이야. 너보다 지율이가 알아야지."

"언제 말할건데? 걔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던데?"


"바보라서 그래. 강장동물이잖아.."

소고기 요리를 더 덜어 자기 접시로 답는다. 진우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본다. 석호도 본다.

"풀어. 적군 아니야. 뭐, 지율이한테는 그럴수도 있겠지만... 너한테는 확실히, 같은 편이야."

"난 숨기는 놈하고는 같은 편 안해."

"지율이 어때? 마음에 들어?"

"??"


"이쁘잖아, 똑똑하고, 일 잘하고.. 여자애한테 멋있다고 생각해본거 처음인데, 너 안그래?"

"뭐라는 거야?"

"지율이랑 너랑 보기 좋아서. 사귀어보라고."

"정신 나갔구나."

"시환이는 너무 약해. 착하기만하고, 사내 자식이 믿음직스러운 데가 없어. 너 정도는 되어야지."

"형이..? 형이 뭔데 지율이랑 사귀라 마라.. 시환이가 지율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면서 그래?"


"지율이는 아니잖아. 네가 잘만하면 지율이 금방 넘어 오겠던데?"

"싸움 붙이냐? 우리 분열시키고 형 혼자 로스쿨로 토낄려고?"

"로스쿨 간대? 왜들 그래?"

"가던지 말던지.. 시환이 건들지 마."

"부탁할게 뭐야? 기다리잖아. 얼만큼 더 먹어야 부탁이라는 걸 할건데?"


진우가 째려본다. 뭐지, 이 당당함은... 좋다, 접고 간다.

"송창률 박사 소개시켜줘."

"... 왜?"

"궁금해졌어. 형하고 친하잖아. 지율이 아버지의 첫번째 양아들... 송유리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큰 오빠.."

"범인 아니야."

"오, 바로 아네.. 맞다, 형도 경찰이지. 어쨌든, 그냥... 그 사람한테 부탁 할 것도 있고, 소개나 시켜줘. 원주 가자. 단합대회 한번 해야지? 찔리는 거 없으면, 그 집 가서 1박 2일 하고, 형이 뭐, 정 불편하면 호텔 잡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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