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7화 장애물 달리기 4

그래도 뛴다

by 신소운

7.4.1 사무실




"이 팀장이 갑자기 조사실 들어가서, 나도 가봐야돼, 회의 얼른 끝내고 일들 하자."

진우가 묻는다.

"그 사람은 혐의를 완전히 벗은 겁니까? 그런거 치고는 너무 열심히 뛰던데?"

"오늘은 참고인으로 출석한건데, 너무 믿지는 말아야지. 진술서 나오는 거 보고, 지금 은석이가 주변 영상보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 몇명정도는 더 대조 해봐야 될거야. 감식반에서도 몇명 추려서 오늘 중에 올라올거고."


"근데, 강진우, 너는 왜 우리한테 와서 비비적거려? 조 팀장이 고만 하라는데 뭐하러 자꾸 후벼 파?"

"아까 다시 하기로 했습니다. 최소한, 학대 및 폭행까지는 확실합니다. 유전자 대조는, 급행으로 원주에 보냈으니까 곧 결과 나올거구요."

"국과수가 노는 데야? 그거 나올려면 며칠을 기다려야되는데.."

"채취 다 한거, 샘플만 보낸거라서 돌려보기만 하면 되구요, 바로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급해서, 아는 사람 빽 좀 썼거든요."


"설마 이석호 빽..? 우리 팀장은 누구 부탁같은거 잘 안 들어주는데?"

"아까 저랑 점심 먹으면서 기분좋게 ! 해주시기로 했습니다..."

진우가 씨익 웃는다...




회상

*****



"송창률 박사 소개시켜줘."

"... 왜?"

"궁금해졌어. 형하고 친하잖아. 지율이 아버지의 첫번째 양아들... 송유리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큰 오빠.."

"범인 아니야."

"오, 바로 아네.. 맞다, 형도 경찰이지. 어쨌든, 그냥... 그 사람한테 부탁 할 것도 있고, 소개나 시켜줘. 원주 가자. 단합대회 한번 해야지? 찔리는 거 없으면, 그 집 가서 1박 2일 하고, 형이 뭐, 정 불편하면 호텔 잡고.."


"너 우리 팀 아니잖아."

"왜 이래, 공조하잖아. 한 팀인거야. 이란성 쌍둥이 같은.. 아참 형, 있잖아, 내가 시간이 없어서.. 아까 점심 나오기전에, 송창률 박사 앞으로 DNA 샘플을 몇 개 보냈어. 급한거라고, 받으면 바로 해달라고.. 형 이름 팔았어. 소개 받고 염치없이 부탁드립니다, 오늘 중에 결과 받은 수 있을까요... 정중하게 메모 써서 딱 붙여놨어. 그러니까 전화 한통만 해 줘. 좀 있으면 도착할거야."


"강진우, 그게 지금 부탁이냐? 일에는 순서라는 게 있지 않나?"

"아우, 세상 순서를 어떻게 다 기다려? 형이 하는 일은 쉽잖아. 전화 한통이면 돼. 나머지는 내가 다 할께. 잘 부탁해? 그리고, 언제 쉬는 날, 내가 직접 찾아 뵙고 인사드리겠다고... 꼭 전해줘."



*****



속사정 모르는 종태가 궁시렁거린다.

"치, 그렇게 영장 좀 받아달라 그럴때도 생까더니, 지 후배 부탁은 잘 들어주나보네. 경대 아닌 사람은 서러워 일하겠나.."

"앞으로 이 석호 팀장님께 부탁하실게 있으면 저를 부르십시오. 제 선에서 다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약점이라도 잡았어? 약점 같은 게 있을 인간도 아닌데.. 아무튼 그래서, 효창동 개발바닥은 어쩐다고? 서장님도 너는 빠지라던데? 아직 강력 사건이라는 증거도 없다고..."


"내일 아침에만 잠깐, 지율이하고 다시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여자 경찰하고 이야기했으면 하는 눈치입니다."

"지율이 가평 갔어. 늦게라도 오겠지만, 거기도 종교 단체가 끼어있어서 오래 걸릴지도 몰라. 일단 개발바닥은 가정폭력이니까, 여청이 가자. 이정아랑 가. 시간 잡았어?"

"6시 입니다. 할아버지가 새벽 5시 반쯤 출근했다가, 이른 점심 겸 오전 11시 이전에 집에 잠깐 들어옵니다. 식사 후에 다시 일을 가는데, 그때는 아이가 집에 오구요."


"그래, 외출도 안 된다니까, 아무도 없을때 얼른 가서 증거 잘 찍어와. 애 엄마랑 할아버지 유전자는 필요가 없나? 왜 아이 물건을 줬을까?"

"강아지 발바닥에 묻은 피가 누구건지 알고 있다는 얘기겠지요? 아이가 다쳤다고 한 건 거짓말이다, 그러나 아이와 관련이 있다.. 뭐 그런 암시 아닐까요?"


"남편은 세달 전에 죽었는데, 최근까지 폭행을 당하고 있다, 외출도 안되고 동네 사람 왕래도 없다면, 용의자는 집안에 같이 사는 남은 한명 ... 빤한 사건인데, 그놈의 개 발바닥에 뭐가 더 있을수도 있다 이거지. 만약에 그게 자기 피였으면, 자기 DNA를 검사하게 했을건데 말이야?"

정아를 돌아본다.


"이정아, 내일 가서 애기 엄마 DNA도 동의 받고, 다 채취해와. 싫다 그러면 잘 설득해, 빈 손으로 오지말고."

"저기, 문 형사님.. 근데.. 제가..."

이정아가 망설인다.

".. 그 시간에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요. 6시 전에 출근하려면, 누가 5시에는 와줘야 하는데.."

"데리고 와. 내가 일찍 나올께. 5시 반?"

"예?"


종태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괜찮아. 경찰 집 애들, 다 경찰서에서 컸어. 우리 때는, 아버지 철야가고 애들은 여기 누워 자고 그랬는데 뭘... 안그러냐, 진우야?"

"그럼요, 저도 아버지 책상에서 시험 공부하고, 기다린다고 밤새다 학교 가고 그랬어요."

"경찰서 같은 데에 놀이방이 있어야지, 24시간으로.. 그치? 그래야 부모들이 마음 놓고 일을 하지, 맨날 야근하면서 애들은 어쩌라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경찰은 결혼률보다 이혼율이 높다는.."

진우가 아는 체 한다.

"시끄럽고, 장가나 가고 얘기해. 가서 일해. 너! 이번 거에서 뭐 좀 나와야 된다? 애들 사서 고생 시키고 아무것도 없으면 알아서 해!"

"본전은 했잖아요, 상습 폭행."


"에휴, 야 그게 솔직히,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안되겠지만.. 요즘 그정도는 범죄 축에도 못 들어. 잡아도 집유야. 수업 몇시간 듣고 어디 봉사나 나가겠지. 애 할아버지면 나이도 있을거고, 그 집에서 유일하게 돈 버는사람이잖아. 애 엄마도 막상 진행하면 뭐, 처벌을 원하지 않네 어쩌네, 탄원서 내고 흐지부지 될 수도 있어. 남의 나라에서 남편 죽고, 애는 키워야 되잖아.. 쯧.. 세상이 어찌 될라고."




7.4.2 조사실




조사실 밖에서 화면을 보고 있는 조 팀장. 좀 작아졌어도, 정수리에 붙은 하얀 반창고가 여전하다. 한손에 기브스를 하고, 나머지 한 손으로 물을 마신다. 민규가 쿠션을 가져다 등에 대준다.

"가택 수사는? 카메라랑 다 분석 했어?"

"진행 중 입니다. 어머니가 협조를 잘 해주셔서 별 문제 없습니다."

"사건 당일 저 사람 행적이... 수상한거 진짜 없어?"

"수산물 시장에서 야간에 생선 손질을 하는데, 출근 카드 확인했습니다. 저녁 7시에 출근해서 밤새 거기 있었습니다. 새벽에 용문 시장으로 배달까지 마치고 귀가 했답니다."


"그게 몇시야?"

"카드에 찍힌 퇴근 시간이 오전 4시 08분 이구요, 가게 4군데에 배달 갔다가 집으로 오는 시간이 대략 한시간에서 1시간 10분 정도 됩니다."

"그럼 5시 반이라고 치고.. 첫번째 사건 접수가 새벽 3시 50분, 출동이 4시 12분... 집에 들어오다가 편의점에 들러서 라면이랑 소주를 구입한게 5시 35분에서 45분, 우리하고 집 앞에서 마주친게 6시 10분... 에이 씨이.. 아, 그러면 왜 뛰었어, 사람 헷갈리게?"


종태가 들어온다.

"어디까지 했어?"

"하긴 뭘 해.. 시간이 하나도 안 맞아. 아우, 완전 헛짓했나봐."

"들어가 쉬어. 내가 있을께."

"싫어. 들어가면 다른 일 해야돼. 형님이 들어가."

피식 웃으며 옆에 앉는 종태. 사탕 하나를 툭.. 던진다. 말없이 입에 집어넣는 조 팀장. 일이 안 풀리면, 더 피곤하다..


조사실 안에 마주앉은 석호와 아래층 남자. 증거물로 들고 온 카메라와 사진들이 놓여있다.

"걔가 그렇게 형사님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어리고, 순진하고, 뭐 그런 애가 아니에요."

"그러면 염상원씨, 여기있는 이 사진들은 몰카가 아니라 전부 돈을 주고 정당히 구매를 한거다, 이거죠?"

"정당한 구매 정도가 아니구요, 걔가 찍어달라고 했다니까요. 걔가 저한테 먼저 찾아왔어요, 자기가 모델 해줄테니까 구경 실컷하고, 대신 돈으로 달라고.. 금액만 맞으면 원하는 포즈 다 해준다고.."

"본인 이야기 잖아요. 증거 있습니까?"


염상원이 책상 위의 사진들을 뒤진다.

"여기 이 사진들이요. 보세요, 이게, 이게.. 몰카 아니죠? 이거 걔 방이에요, 지 침대 위에.. 지가 이렇게 다 해주고 돈 받는다니까요. 이렇게 속옷만 입은 거는 5만원, 다 벗은거는 10만원부터 막 부르는 게 값이에요. 앞면 뒷면 다르고, 자세에 따라서 다르고.. 월급 들어오는 날은 다른 것도 하고.."

"다른거요?"

"뭐, 살짝 안고 좀 여기저기.. 그러는 거 정도는 10분당 몇 만원 해요. 지 손님들한테는 더 부르는데 저는 가난하니까 싸게 해준다고.. 더 할려면 많이 비싸고.."


석호가 이반나의 사진을 본다. 아직 많이 어린 얼굴, 절대 그런 일을 하게 생기지 않았다.

"못 믿죠? 사람 겉으로 봐선 몰라요. 얘가요, 예명이 섹시룰루라고 모델을 하는데, 그런 모델이 아니라, 누가 부르면 나가서 빨가벗고 춤추고, 그러는 거에요. 저도 같이 간 적 있어요. 평택에 룸싸롱 하나 오픈하는데 전단지 찍는다고, 저보고 와서 사진 찍으래요, 일당 준다 그래서... 여기 있네, 이게 그때 찍은거에요. 이런거만 한 세 시간을 찍고, 일당 20만원 받아서 .. 이거 한 장에 10만원이구요, 다른거 이거저거... 저희 어머니한테 물어보세요. 그날 제가 얘 사진 사느라고 한 40만원인가 썼다가..."


"사진을 사십만원 어치를 사요?"

"어머니가 저더러 중독이라고 미쳤다는데... 애가 워낙 예쁘잖아요. 특히 엉덩이가.. 보세요, 진짜 사람이 저렇게 예쁠수도 있구나.. 그렇다니까요."

석호 앞으로 사진을 들이민다. 옆으로 치우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그래서, 20만원 벌어서 40만원 쓰고, 계속 번 돈을 다 갖다 쓴거네요, 이 여자한테?"


"괜찮아요, 그럴려고 일하는 건데요.. 원래 별로 일도 안하다가, 얘 사진 사려고 취직도 하고... 그래도 제가 버는 돈으로 사니까 엄마도 많이 뭐라고는 못 하잖아요."

"그럼 염상원씨가 안 사는 사진들은 다 본인이 가져가나요?"

"처음에는 안 사면 폐기처분한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다 다른 사람한테 팔더라구요, 인터넷으로... 저한테보다 더 비싸게 받는데, 잘 팔려요. 어떤거는 SNS에도 올리고.. 손님 오라고."


"집으로 오는 손님들은 다 성매매인거죠?"

"그거 말고 뭐겠어요? 걔 비싸요, 한시간에 30, 두시간에 50."

"왜 이렇게 잘 알아요?"

"제가 사실, 거의 매니저 같은.. 그런 거 였거든요. 때리는 놈도 있고, 몰카하는 놈도 있고 그러니까, 들어갈때 카메라 뺏고, 인상 좀 안 좋은 사람들 오면 거실에서 지키고 있으라고 할 때도 있었고, 아닐때는 저희 집에서 골목에 오가는 사람들 다 찍어놓고.."


종태와 조 팀장이 동시에 몸을 바짝 당겨 앉는다. 석호가 묻는다.

"거기에 왔다갔다 하던 사람들, 사진이 있다구요?"

"많아요. 제가 사진을 워낙 좋아해서.. 필요하세요?"


문자가 온다. 종태다.

/끊고 휴식/

석호가 일어선다.

"잠깐 쉬었다 하죠. 물 좀 드릴까요?"

"예, 감사합니다. 저희 어머니는...?"

"어머니도 아직 참고인 조사 중이세요. 끝나면 만나게 해 드릴께요."




7.4.3 가평군 설악 파출소




"주로 이 동네에서 목격이 되었네요. 교회 주변을 제외하면 주로 버스 정류장하고 마트.. 그나마 최근 것은 없구요.. 아까 영상에서 재래시장에서 같이 걸어다니던 남자는 신원 나왔습니까?"

시환이 묻는다. 경력 많아보인는 중년의 경사가 답한다.

"안 그래도 오전에 왔다 갔습니다. 차량 추적하니 금방 나와서, 잠깐 보자고 좀 했어요."

"녹화 하셨구요?"


"영상은 아니고, 간단히 이야기 나눈 거, 보고서 지금 작성하고 있습니다. 별거 없어요. 잠깐 1-2주 같이 지냈는데, 방값 문제로 싸우다가 여자가 집을 나갔대요. 교회로 들어갔을거라 그러던데.. 어, 다 됐어? 이리 가져와봐.."

보고서를 내민다. 눈으로 훑는다. 남자의 주소지가 가평군 설악면 신천 중앙로 12 번지 부흥 연립... 여기에 살다가 지금은 또 연락 두절... 방값 문제로 싸웠다... 민박처럼 숙박만 제공했을까?


"원래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고 하네요? 교회 행사에서 만나서 바로 집으로 데리고 갔나.... 남자도 같은 종교인거죠?"

"그게, 가입은 오래전에 했는데 별로 참여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 동네 사람들이 많이들 그래요. 이 사람도 생수 업체에서 일하는데, 거기가 교회가 크잖아요. 사장이 통일교면 직원도 그쪽이고, 신천지면 같이 신천지고... 작은거 하나하나까지 서로들 자기 신도만 쓰려고 하니까, 돈 일이백 내고 신도 등록을 해요. 그래야 납품도 하고, 취직도 하고... 이름만 걸어두는 거에요."


"싸우고 집을 나갔는데, 가출 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는요?"

"외국인이고, 한국말을 잘 못해서 금방 들어 올 줄 알았대요. 길도 잘 모르니까.. 소지품이랑 돈이랑 다 놓고 나갔답니다."

"가택 방문 조사는 해 보셨어요?"
"별로 혐의점이 없어서 아직 안했습니다. 지금 가보시겠습니까?"

시간을 본다.


"저희가 교회 측하고 만날 수 있도록 약속을 부탁드렸었는데, 그게 몇 시죠?"

"최대한 빨리 한다고 했는데, 아직 한시간 반 쯤 남았습니다. 그나마 한 20분밖에 시간 못 낸대요. 정말 힘들게 잡았어요."

"그러면, 저희가 이 남자 사는 집이랑 동네를 먼저 둘러보구요.. 혹시 그 종교 때문에 한국으로 이주한 일본 여성들이 모여사는 곳이 어디인지 아세요? 애들 문제로 정기적으로 모인다거나, 한국말을 배운다거나.."

"그 연립에 많이 살아요. 전부 4동인데, 열다섯 집 이상이 일본 여자에요. 아마, 그 사람들 전부 다 같은 종교라고 보시면 되요."


"알겠습니다. 한바퀴 둘러보고, 교회로 가겠습니다. 이쪽 지나는 외곽 도로, 버스 터미널, 병원, 약국, 보건소.. 전부 공문 보내신거죠?"

".. 병원, 보건소, 약국은 아직.."

"지금 바로 보내세요. 가벼운 외상부터, 교통사고 환자, 신원 미상의 시신까지 전부요."

"주변에 무료 급식소 있어요?"

지율이 묻는다.


"비슷한게 있긴 한데, 운영하는 종교가 다릅니다. 천주교 꺼에요, 성당 주차장에서.. 노숙자들 주는게 아니라, 지역 어르신들께 무료로 제공하는 점심이에요."

"종교 달라도 연락하세요. 마을 회관들도요.. 돈이 하나도 없는 채로 나가서 닷새가 지났으면, 아직 살아있다면,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든 나타나야 해요. 길에서 구걸을 한다거나, 식당에 무전취식 신고 들어온거 없었는지, 빈집이나 가게에 식료품 도난 사고가 있었는지, 누가 자고 나간 흔적이 있는지도 알아봐주세요."

"알겠습니다."


차에 올라 네비를 찍는다. 설악면 신천 중앙로... 파출소에서 멀지않은, 차로 겨우 7분 거리다.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면 걸어서든 뛰어서든, 직접 와서 신고할 수 있었을거다... 그렇다면 이 동네에는 이미 없다..??

"많이 추워졌는데, 잠은 어디서 잤을까요? 뭘 입고 나갔는지도 기억 못한다는데.."

정류장에 서 있는 아이와 엄마를 본다. 한눈에 봐도 아이 엄마가 일본 사람같다. 시환이 차를 멈춘다.

"스이마생, 니혼 히또 데스까? (실례합니다. 일본 사람이세요?)"

"..."


답이 없다.

"오타즈네시테모 이이데스카?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조금 경계하는 듯, 아이를 당겨 안으며 쳐다본다.

"선배, 잠깐만요."

직접 내려서 경찰 배지를 보여준다. 그제서야 웃으며 인사하는 여자, 시환과 대화를 이어간다. 미키의 사진을 꺼내 보여준다. 여자가 고개를 끄덕끄덕하지만 이내 가로 젓는다. 인사를 하고 다시 차에 오른다.


"뭐래요?"

"교회에서 한번 봤대요. 시내에서도 한두번 본적은 있는것 같기도 한데 확실치 않고, 여기 사는 사람은 아닐거라구요. 요즘 교회에 관광 오는 신도들이 많아서, 그 중 하나 일거라고 생각한답니다. 대화를 해 본적은 없구요."

한 5분 갔을까. 네비가 알려주는 대로 우회전을 하니, 아스팔트도 아닌, 시맨트 길이 나온다. 나즈막한 주택가 가운데에 우뚝 선 낡은 건물들.

/부흥 빌라/

"우와, 엄청 오래된거네.. 위험하겠다."

이미 외벽도 갈라지고, 여러번 페인트만 덧칠했는지, 군데군데 색이 벗겨졌다. 주차장 선도 다 지워졌고, 여기저기 움푹 움푹 파였다.

"저기 보세요. 창문, 베란다 문.. 틈새가 다 벌어졌어요. 겨울에 외풍 장난 아니겠는데요... 선배, 여기는 아마, 팔고 사는 주거용이 아니라, 누가 교회에 기부를 해서, 자기네 신도들끼리만 살게 하는... 그런 거 일수도 있어요. 사람들한테 질문할때, 말을 좀 조심해야 할지도 몰라요."


빌라 입구에서 바로 두명의 일본 여자를 만난다. 시환이 다가가 경찰 배지와 사진을 보여준다.

"안녕하세요, 경찰입니다. 혹시 이 사람, 알아요? 미키씨? 여기 살았었죠?"

"아, 알아요, 미키... 신고 했어요? 다행이에요."

"신고요??"

"그 남자, 가짜요. 우리 교회 아니고, 거짓말해서 일본 여자 돈 훔쳐요."

"우리가 다 얘기했어요, 조심하라고.."


"그 남자가 일본 여자들 많이 데려와요?"

"같은 교회라고, 무조건 결혼 하자고.. 돈 뺏고, 더 가져오라고 일본 보내요. 비자 끝나서 불법일때.. 그러면 다시 못 들어와요."

"많이 싸우고 나서, 미키가 교회에 물어보러 갔어요. 지금은 못 봤어요."

방값 때문에 싸운게 아니었다.. 남자를 만나야겠다.

"저거.. 저 남자에요.."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작은 트럭 하나를 가르키고, 여자들이 안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시환과 지율이 입구를 슬쩍 가려준다. 남자가 차를 세우고 걸어오다가 두 사람을 보고 멈춘다. 일본풍의 헤어 스타일에 약간 거무잡잡한 피부, 큰 키.. 일본 여자들이 좋아하게 생겼다.

"경찰입니다."

"아까 갔었는데요."

"서울에서 왔습니다. 실종 신고가 들어와서요. 미키씨 아시죠?"

"휴우.. 안에 가보셔야 되요? 좀 더러운데.."

"괜찮습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묵묵히 줄지어 계단을 오른다. 4층 꼭대기다. 어딘가 많이 어수선한 내부.. 살림하는 사람이 없다... 현관문 옆에 여행 가방과 잠바가 놓여있다.

"미키씨 짐이에요? 왜 여기다 두셨어요?"

"살기 싫다고 나갔으니까요. 저 없을때 짐 가지러 오면, 안에 들어오지말고 그냥 싹 꺼지라고 미리 싸놨어요. 거기 여권이랑 지갑이랑, 고대로 있어요. 전 진짜 하나도 안 건드렸어요."

"짐만 안 건드렸어요, 사람도 안 건드렸어요?"


지율이 묻는다. 남자가 돌아본다.

"아이구, 참... 제가 그 여자를 어떻게 했으면, 아까도 경찰서에서 오란다고 순순히 가고, 지금도 두분 이렇게 집으로 데리고 오고 그럽니까? 그 여자, 정말 싸우고 지발로 나갔다니까요."

"애당초 왜 데리고 들어오셨어요? 일본 여자들한테 자주 그러신다고요?"

"... 그건.. 그쪽에서 여기로, 결혼이 목적인 여자들이 있어요. 종교도 종교인데, 한국 남자랑.. 같은 종교 남자랑 산다고.. 혹시 그런 여자면 결혼 할라고.."


"본인은 통일교 아니시라던데요?"

"통일교 맞아요. 가입한지 오래 되었어요. 결혼도 시켜 준다더니, 자꾸 뒤로 밀리더라구요. 뭐 액수가 적고, 신앙이 부족하고.. 이제와서는 뭐 교회 활동을 안하고.. 그것도 열심히 하는 척 해야 해주나봐요. 그래서 제가 알아서 할려고.."

"얼마나 벌었어요? 아니, 얼마 뜯었어요? 그 몇년동안, 몇명한테, 다 합해서?"

"..."


"방 좀 둘러보겠습니다. 미키 씨가 있던데가 어디에요?"

작은 방을 가르킨다. 문을 열어보지만 평범하다. 작은 서랍장, 빨래걸이, 접어놓은 이불, 라면 박스 몇개, 바둑판, 군용 담요, 그 위의 고스톱 케이스... 싸운 흔적도, 그렇다고 뭐라도 숨기려고 지나치게 청소를 해 놓은 것도 아니다.

"각방 썼어요? 결혼하자고 데리고 와서?"

지율이 묻자 답하기가 곤란한지 시환 쪽으로 돌아서서 말한다.


"거기, 교리가 혼전 순결이에요. 진짜 신도인척 하느라고 따로 자면서 신뢰도 얻고, 얼마전에 진짜로 결혼하기로 했는데, 이 여자가 돈을 안 주는 거에요. 교에 미쳐가지고, 그 돈을 교회에다 다 갖다 주고, 합동 결혼식 있잖아요, 그걸 하겠대요. 그게 일년에 한번뿐이고, 그리고 이천만원이면 몇달을 쓰는데 왜 그걸 거기다 주냐고요.."

"그래서 싸움이 났고, 신도가 아닌게 탄로났다..?"


"알고 있더라구요, 동네 사람들한테 들었다고.. 그리고, 제가 신도가 아닌 건 아니에요, 믿음이 크지 않은거지."

"싸우는 중에 다치거나, 폭행은요?"

"아니에요, 그런거 없어요, 일본 여자는... 일본이나 미국 같은데는 대사관에서 나온대요, 자기 국민 때렸다고 신고 들어가면.. 그래서.. 그냥 말로만 싸우고, 좀 밀치고 그러긴 했어요, 저기 벽으로.. 그러니까 바로 확 나가버리더라구요. 그게 다에요. 이거 보세요, 여기 가방에, 신분증이랑 수표랑.. 다 그대로 잖아요."

"여행자 수표는 원래 본인 아니면 바꿀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못 건드리고 놔뒀겠죠. 미키씨는, 여기 내려오기 전에 서울에서, 대략 백만원 정도를 환전했어요. 현찰로... 그 돈은 어디 있어요?"

"..."

"지갑이랑 여기 두고 나갔으니까, 혼자 다 쓴거죠? 최근 행적 조사해서 현찰 쓴 거 알아볼까요?"

남자가 지갑을 뒤적거린다.. 구겨진 씨티 은행 편지 봉투를 내민다. 시환이 열어본다.

"17-8만원 되어보입니다."


"그거 원래 백만원도 아니었어요, 교통비 쓰고.. 헌금 내고, 밥 먹고.. 그냥 몇십만원 있었어요."

남자가 궁색한 변명을 한다. 봉투를 돌려준다.

"채워 놓으세요. 미키씨 돌아오면, 없던 일로 할께요."

시환이 지율을 본다. 미키씨 돌아오면... 남자는 이 말의 뜻을 알까..

"죄송합니다..."

남자를 남겨두고 빌라를 나선다.




7.4.4 시환의 차




교회 약속 시간이 다되어간다. 북동쪽으로 20분.. 지도를 켠다.

"시간은 빠듯한데... 조금 가면 고속도로도 있어요."

이미 차는 오래된 외곽 도로로 접어든다.

"아니요, 잘했어요. 뒷길로 가요. 정말로 교회까지 걸어갔다면, 이쪽으로 갔을 거에요."

"경치는 좋은데, 이런데서 실종이라.."


창밖을 살핀다. 나무, 산등성이, 논도 아니고 밭도 아닌... 과수원 정도의 나무 숲... 드문드문 서있는 가로등은 밤운전에는 큰 도움 안될것 같다. 대신 커브가 완만하고, 급히 꺾이는 구간은 없다. 시야가 좋다면, 저멀리 뛰어가는 토끼도 쉽게 보일거다... 벌판에 뜬금없이 건물이 하나 서있다.

/헤븐 모텔/

흔히 말하는 러브 모텔인것 같다. 많이 외진 산등성이에 혼자 버티고 있으니, 장사터가 아니거나, 의외로 불륜 손님이 많은, 요지 일 수도 있겠다...


입을 꼭 다물고 지나가는 두 사람.. 한곳에 시선이 멈춘다. 모텔 지나 얼마지 않아, 나무 몇그루와 잡초가 불에 그을렸다. 도로를 본다. 건너편인데다가 차로 지나는 길이라 바퀴 자국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별 큰 사고는 아니었던 것 같다. 슬쩍, 지율을 본다.

"잠깐 보고 가실래요?"

"아뇨, 괜찮아요. 다 처리 된건데요, 뭐... 약속시간 맞춰야죠."

핸드폰이 울린다. 가평 경찰서다. 스피커 폰으로 받는다.


"저기 경위님, 말씀하신대로 이 일대 병원들에 일괄적으로 공문을 보냈는데요, 미키씨 하고 비슷한 사람이 있답니다. 송산리에 청심 병원이라고.. 지금은 메그놀리아 국제병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요.."

"거기, 통일교에서 하는 병원이요? 저희가 지금 천원궁으로 가는 길인데, 여기 같이 있는거죠?"

"예, 바로 호수 옆에.. 거기 맞습니다, 그 동네가 다... 거기 응급실로 3일전에 들어왔답니다. 저도 지금 막 출동 하려고.."

"어디로 가야 만나죠? 가까우니까 저희가 먼저 가볼께요."


"그게.. 저기... 영안실..입니다..."




<계속>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7화 장애물 달리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