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5화. 갑돌이 갑순이 3

남과 여

by 신소운

5.3.1 진우네 집


함께 마트에 들렀다 들어오는 두 사람. 아일랜드 위에 한가득 짐을 내려놓는다.

"너 사먹는거 잘 못 먹잖아. 금방 해줄께, 기다려. 아, 냉장고 봐봐, 뭐 좋아하는 거 있으면 다 꺼내 먹어."

앞에 섰지만 선뜻 열지 못하고 주저하는 지율. 나지막히 심호흡을 한다. 진우가 돌아본다. 씻으려던 야채를 내려놓고 지율 옆으로 와서 손을 꼭 잡는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에서 몇명쯤은 믿어야지. 나를 믿고, 내가 하는 걸 믿고, 내 냉장고를 믿고... 이 사람이 주는 건 안전하다... 그래야 너도 살지."


꼭 잡은 손으로 함께 냉장고 문을 연다. 물과 술만 가득 들었다. 스스로도 당황해 웃는다.

"뭐가 많이 없네... 알잖아, 내가.. 집에 잘 안들어와서.. 뭐, 마실래? 맥주?"

두병을 꺼내고 시장 봐 온 것들을 넣는다. 병째 내밀었다가 돌아서서 투명한 컵을 찾아준다.

"이거면 되나? 잘 보이겠지? 맥주 안에 뭐 안들었나..."

"지금 바로 따는 거 봤잖아, 괜찮아."

지율이 컵을 사양하고 병째 들고 한모금 마신다. 흐뭇한 얼굴로 식사 준비를 하는 진우.


집을 둘러본다. 아무것도 없다..

"처음 왔는데, 집구경 하라는 말을 못하겠다. 해도 돼, 근데 구경 할게 없어. 정말 집만 있어."

맥주를 내려놓고 거실로 걷는다. 꽉 닫힌 두꺼운 이중 커텐을 열자 한강이 내려다 보인다. 아직은 햇살이 좋다... 슬쩍 한번 쳐다보고 요리를 시작하는 진우. 야채를 가지런히 놓고 썬다.


첫번째 방을 열어본다. 역시 가구는 하나도 없고, 무거워 보이는 박스들만 한쪽 벽에 쌓여있다. 두번째 방도 역시 텅 비었다. 안 쓴지 오래되어 보이는 운동기구가 뽀얗게 먼지를 탔다. 마지막으로 열어본 제일 큰 방에 여행용 옷가방이 몇개 있고, 작은 행거 하나에 세탁소 비닐에 들은 셔츠와 바지들이 가지런히 걸려있다. 시트도 없이,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이불하나 베게 하나... 침대 없이 맨 바닥을 차지한 넓직한 매트리스 하나. 문을 닫고 거실로 돌아온다. 진우가 웃는다.


"마음에 들어? 너 오늘 거기서 잘거야. 이불도 그거 하나라서.. 싫으면 목욕 가운 같은 거 있어, 그거 꺼내 줄께 덮고 자."

"됐어, 잘데 있어."

"안돼. 서장님이 너 오늘 절대 못오게 하랬어. 푹 자고, 내일도, 경찰서 근처에도 오지 말래."

"누구 맘대로.."

맥주를 마신다. 정말 오랜만이다. 아까 사온 과자를 뜯는다.


"술 좀 마셔? 다른 것도 많은데, 칵테일 해줄까? 뭘 좋아하는지를 모르네.."

"... 데킬라."

가볍게 맥주 한병을 비우고 내려놓는다. 진우가 새로 두병을 더 꺼낸다. 아직도 냉장고에 가득하다..

"오호, 잘 통하는데...? 훌리오 좋아해서 항상 채워놓지. 저녁 먹으면서 하자. 지금은 가볍게 맥주..."

병을 받아든다. 띵... 전자렌지가 멈추고 진우가 나초를 꺼낸다. 치즈 냄새가 확 퍼진다. 매콤한 고추 향도 함께 퍼진다.


"찜질방에서 잔다며, 왜 이렇게 큰 집에 살아?"

"유산으로 받았어. 팔기도 이상하고, 남한테 세 주는 것도.. 마지막 선물이잖아. 왠지 그러면 안될것 같아서 그냥 이러고 있어."

지율이 의자에서 몸을 돌려 한강을 본다.

"한강 보이면 비싸다잖아. 잘 됐네, 많이 오르면 그때 팔아. 천천히.. 다 정리되면."

"정리? 더 정리 할게 있나? 이렇게 깨끗한 집 못 봤을건데?"


지율이 웃는다. 진우도 같이 웃는다.. 마시던 맥주를 비우고 새 병을 딴다. 따뜻한 나초 한조각을 지율에게 떼어준다.

"이사와서 처음이다, 이집에 누구 온 거... 매트리스 배달 왔을때 빼고... 이 집에서 웃어보는 것도 처음이고."

에어 프라이기에 넣은 야채를 확인한다. 냉동 피자도 하나 꺼내 포장을 뜯어 놓는다.

"그만해, 다 못 먹어."

"너 고기 안 먹어서 다 야채야. 배 금방 꺼져. 햇반해줄까?"

"아니, 술 먹을거야."


"자고 가는 거지? 못 데려다준다. 나 취할거니까, 잘 챙겨."

"술버릇 있어?"

"그냥 솔직하게 다 말해. 취했으면 취했다, 졸리면 졸리다... 슬프다, 기분 좋다.. 전부 다."

진우가 해준 나초를 먹는다. 고추가 맵다. 맥주로 식힌다..

"말이 많아진다는 얘기네.."

"없는거 보다 낫지 않냐? 같이 술먹는데 갑자기 아무 말 안하고 조용해봐, 이상하잖아.. 너는? 술먹으면 어때?"


삐이... 에어 프라이기가 다 되었다는 신호음을 낸다. 진우가 그릇에 쏟아 붓는다.. 야채 튀김이다. 그럴듯 하다.

"먹어. 요리는 안해도 술안주는 가끔 해. 감자 튀김도 해 줄께."

"그만해, 많다니까."

"싫어, 밤새 먹을거야. 의사가 너 살 찌우래, 병 생긴다고.. 토해도 괜찮아. 자꾸 먹어야 낫지. 자, 메인 안주 나왔으니 데킬라를 시작할까요.."

선반에서 홀리오를 꺼낸다. 미리 담아둔 마른 안주를 꺼내고 마트에서 사온 구운 오징어를 찢는다.


"근데, 의외다. 고기, 생선 다 못 먹는다면서 오징어는 먹네?"

"할머니가 강원도 분이야. 어렸을때 많이 보내주셨대."

"강원도 어디?"

"원주. 그 집 아직도 있어."

"가도 돼? 내일 할일도 없는데, 놀러갈까?"

"돌아가셨어. 그 집에는 아빠가 잠깐 살다가, 지금은 요양원 계셔."


"안 좋으시다고 들었던 것 같다. 처음에 발령 받고, 며칠 출근 미뤘다고.."

"맞아. 준비 중이야. 오늘 내일 하셔."

"뭐 그렇게 냉랭해, 아버지 임종 준비한다는 말을.."

"그런가.. 그럼 뭐, 울어? 안 친한데.."

한마디 하려다 삼킨다. 개인사정이다.. 미국으로 입양을 갔었다고 했다... 말 그대로, 사정이 있어, 친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말을 돌린다.


"난 그런 준비도 못했어. 훈련하고 있는데 학교로 전화가 왔대. 와서 확인하라고.. 아버지 시신 찾았다고..."




5.3.2 서장실


시환에게 진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장.


"진우가 세살 아래 여동생이 있었는데, 발달 장애가 있었어. 너무 힘드니까, 초등학생 때였나, 엄마가 나가버린거야. 진우 아버지가 나보다 3년 쯤 위 선배일건데, 아무때고 부르면 출동하는 게 경찰이잖아. 엄마가 없으니까 집 꼬라지가 뭐가 됬겠냐. 처음에야 할머니가 봐주고, 동네 사람들이 도와주고 했는데, 그것도 하루이틀이고.. 들은 바로는, 장애가 아주 많이 심하지는 않았는데, 누가 24시간 붙어있을 수가 없어서, 결국 장애인 시설로 보냈대. 그것도 좀 떨어진데라서, 잘해야 한달에 몇번 들여다 봤겠지."


서장이 전자 담배를 꺼내 문다. 한숨처럼 길게 쭉 내뱉는다...

"근데 어느 날, 그 시설을 상대로 고소건이 접수됬다는 거야. 거기 선생들이 애들 굶기고, 폭행하고, 성폭행하고.. 아주 난리가 났었어. 이천 지나서 천사 복지원이라고, 형님도 뉴스 보고 나서야 알게된거지. 허겁지겁 딸 아이를 찾으러 갔는데, 아이가 없다는 거야."

"실종이요? 시설에서?"


"그러니까... 에휴.. 문 다 잠겨있고, 길 몰라서 혼자 밖에 나오지도 못하는 애가 없어졌다는게 말이 안되지. 한참을 그 주변을 다 뒤졌다는데.. 그게 지방 소도시에, 3층짜리 폐교를 개조해서 장애인 시설로 쓰는 거라 꽤 컸어. 규모로는 그 지역에서는 제일 컸으니까... 지원도 많이 받고, 표창장도 받고.. 근데 그런거 다 필요없이, 그 건물하고 뒷마당에 창고 사이에, 그 좁은 틈에서 애가 발견됬어. 이렇게 꺼꾸로 처박혀 있었는데, 유서가 있으니 투신이라는 거야."


"발달장애인 아이가 유서를 썼다?"

"미친거지. 그래, 뭐 의사 말대로, 걔가 거기 애들 중에 기중 장애가 심하지 않았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애가 유서에다가 선생님 잘못 없어요, 잡아가지 마세요, 우리 사랑했어요, 그렇게 써놓고 죽냐?"

"그래서요?"

"형님이 경찰이니까 당연히 부검 했지. 근데, 애가 임신이라는 거야."

"......"


"직원 중에 세놈을 잡았는데 뭐, 원생들끼리 문란했고, 관리가 소홀했던 건 인정하고, 죄송하고... 사건 파일보면 별별 소리를 다 해. 거기다가 이 놈들이 아주 말종인게, 딱 13살 넘은 애들만 골라서 성폭행을 하면서, 엄청 잘 해주고, 같이 웃고, 여자애가 매달려서 뺨에 뽀뽀하고, 이런 걸 사진으로 다 찍어놓은거야. 진우 동생한테 한 것 처럼 일기, 편지, 이런 것도 써놓게 하고.. 진짜 사랑하는 사이였다, 뭐 이런 증거인거지."

시환이 머리카락을 움켜쥔다.

"으아아.. 미성년자이지만 13세 이상이니까 자기 결정권이 있고, 상호간의 합의가 있었다... 끽해야 의제강간.. 아니면 성희롱, 성적학대로 끝났겠네요? 미치겠다.. 다 풀려났어요? 뭘로? 집유?"


"어... 한놈은 집유, 두 놈은 좀 더 걸린게 많아서 2-3년 받았어. 진우 동생 죽였다는 결정적인 증거도 없잖아. 목격자도 없고.."

"개새끼들.. 아주 나라가 강간을 장려하는구나. 검사가 누구에요? 그 자식부터 때려 잡아야죠? 피해자가 장애아동인데 무슨 합의?"

"한 십오년도 더 된 사건이야. 그때는 장애인이라고 다르게 봐주고 그런게 없었어. 천사 복지원 사건 이후로 조금씩 바뀐게, 요새 들어서 특례법이니 가중법이니 하는거지, 그때는 아무도 안들어줬다니까..."


시환이 빈 컵에 물을 가득 따른다. 여지껏 진우를.. 많이 몰랐다..

"그래서 진우형이 성폭행 사건에 그렇게 유난했던거네요. 완전히 정신줄 놓잖아요."

"그렇지, 눈 돌아가지. 거기다가, 그 집유 받은 놈은 돈이 많았는지, 유학갔나 이민갔나 그렇고.. 나머지 두 놈은 출소했는데, 그때가 진우 경찰대 막 들어갈 그때야. 형님이 담관염인가 그걸로, 간이 완전히 망가졌었어. 안그렇겠어? 술독에 빠져서 살았을건데... 진우한테는 경찰대 합격하면, 그때 간이식한다고 약속해놓고.."

전자 담배를 끈다. 시환을 바라본다.

"딱 오늘 내일이야. 동생 죽은 날, 그 놈한테 복수한 날, 그러고 자살하신 날."

"예?"

"투신했다고 연락이 왔대. 딸이랑 사귀었다고 주장하던 그 놈.. 그 놈 출소 기다렸다가 잡아가서 실컷 두드려 패고... 한쪽씩 수갑을 같이 차고 한강으로 뛰었어. 자기가 직접 지옥으로 데려간다고 유서 써서, 지퍼백에 물 안들어가게 꼭꼭 넣어놓고 지갑 속에... 딸 기일날."




5.3.3. 진우네 집



"저기야. 저 앞에 마포 대교... 아버지가 그 새끼랑 뛰어내린 다리. 내가 대학교 1학년, 오늘."

진우가 커텐을 활짝 열어 젖힌다. 한잔, 또 한잔... 바닐라 향 진하게 올라오는 데킬라를 계속해서 목구멍으로 넘긴다.

"원래 커텐 안 열어. 보기 싫어서... 그래도 오늘은 한번 봐줘야지. 제삿날이니까.."

함께 밖을 내다보는 지율도 착잡하다. 다시 한번 거실을 둘러본다. 아무것도 없다...


"제사는? 안해?"

"안해... 그 새끼가... 같이 수갑 차고 있잖아. 제사밥 먹으러 따라 올까봐 안해. 동생도 같은 날인데, 그 새끼까지 오면 다 만날거 아냐. 또 죽이지도 못하고, 짜증나."

연거푸 세 잔, 데킬라를 마신다. 말리지 않는다.


"이것도 처음이야, 제삿날 집에 있는 거.. 이 집, 귀신 들렸거든. 처음에 여기 이사 들어왔을 때, 한동안, 나가서 다 죽여버리라는... 이상한 소리가 막 여기저기서 들렸어. 세 놈 중에 아버지가 겨우 한 놈 잡아갔잖아. 나머지 두 놈이 아직 살아있으니까, 그래, 내가 다 찾아내서 죽여버릴까.. 그래서 아버지가 칼을 놔두고 갔나.. 뛰쳐나가서 아무나 패고 싶고, 죽이고 싶고, 죽고 싶고.. 작년이었나? 혼자 조폭들 있는 데에 가서 나 좀 때려 달라고 했어. 차라리 그렇게 맞고 있으면, 내 손에 사람 안 죽고 무사히 잘 지나갈 것 같아서.. 뭐 보여줄까?"


진우가 주방에서 오래 사용한 듯한 주머니 칼을 꺼낸다.

"처음에 장례 치루고 잠깐 집에 들렀는데, 식탁에 이걸 놔두셨더라고... 항상 가지고 다니시던 건데... 나머지를 죽이라는 건지, 같이 죽자는 건지... 죽어서 자기 따라 오라는 건지, 무슨 말 한마디 없이.. 나한테는 유서한장, 전화 메세지 하나 안 남기고 이것만 주고 갔어. 엄마한테는 전화도 했다던데.."

"어머니랑 연락이 됬어?"


"아버지랑 계속 연락 하셨대. 이혼을 안했으니까 그냥 별거라고 봐야겠지만, 아픈 애 두고 나간게 미안해서, 거기다가 그렇게 죽어서 더더욱, 나를 볼 수가 없었대. 말이 안되지? 웃겨, 그런 거짓말.. 어쨌든, 아버지가 그 놈 죽이던 날, 여기, 이 집 창문에서 훤히 보이는 마포대교까지 온 이유가 엄마 때문이었어. 보여줄려고... 드디어 그놈을 죽인다, 여기 봐라.. 그렇게 메세지 남기고 뛰어내리셨어."

"그럼 이 집은 어머니가 사시던 집이야..?"


"응, 그렇게 아버지 죽은 거 확인하고 어머니도 가셨어. 날짜로는 내일. 아버지 시체를 빨리 찾았어. 두명이 같이 있어서 무거웠는지, 많이 흘러가지 못했나봐. 신고 받고 출동하자마자 바로 수색해서, 금방 찾아 올리고, 신분증, 유서 다 확인하고... 어머니는, 바로 다음 날, 내일이지.. 혼자서 교통사고... 거기도 자살일거야. 운전 미숙으로 보기에는 시기가 너무 이상하잖아."

잔을 비운다. 목덜미가 더워지는게, 술 기운이 올라온다..


"다 미쳤지? 두 사람은, 계속 나 모르게 연락하면서, 그 놈 나오기를 기다렸을까? 작전도 짜고, 영화처럼... 납치도 같이 했나...? 하나도 몰라. 그냥 헤어져있던 내내 나 빼고 둘이 연락하고 만나고 했다는 거 밖에.. 엄마 노릇은 하기 싫었으면서, 아버지는 사랑했나봐. 그럴거면 간이나 떼어주지.. 그럼 안 죽어도 됬을건데."

데킬라 병이 금새 비었다. 지율이 선반으로 가 새 술을 하나 가져온다. 뚜껑을 열고, 손으로 병목을 치려하자 진우가 막는다.


"하지마. 나 그거 안 해."

"왜..? 한국 와서 배운건데? 한국 경찰들은 술 먹을때 고시레 한다며? 죽은 사람 준다고.."

"말했잖아. 난 우리 아버지한테 손목 묶여 있는 새끼... 쌀 한 톨, 술 한 방울도 주기 싫어."

"그럼, 아버지도 못 드시겠네. 가족들 다.. "

뭔가 생각난게 있는지, 지율이 술병을 내려놓고 재빨리 가방을 들고 온다. 지갑을 열어 비닐 코팅한 종이 조각을 꺼낸다.


"빌려줄께, 가지고 있어. 부적이야."

하얀 공책 종이에 마구 날려 쓴 글씨...

"이게 무슨 부적이야? 부적 이렇게 안 생겼어."

"우리 오빠가 죽기 전에 나한테 써 준 부적이야. 나 이것 때문에 살았잖아. 그 놈이 코앞에까지 왔어도, 머리카락 하나 못 건들고 쫒겨갔어. 그러니까, 이걸 가지고 있으면, 그 수갑 찬 놈, 형 술 못 받아 먹어. 안심하고, 아버지 한잔 드려."


손에 쥐어준다. 진우가 헛웃음을 짓는다. 코팅까지 해서 들고 다니는 지율의 부적.. 효험이 있을거다.

"네가 이거 믿고 그렇게 겁이 없었구나."

오빠가 죽기전에 써준 부적, 아버지가 죽기전에 놔두고 간 칼... 모르는 사이, 눈가가 붉어진다. 술 기운이다... 지율이 잔을 가득 채운다. 한손에는 부적을, 한손에는 술잔을 들고 베란다 밖을 본다. 마포 대교.. 어머니가 내다 봤을, 아버지가 뛰어내렸을 마포 대교를,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바라본다. 힘들었지만, 잘 살았다. 기특하다. 오빠 노릇을 오래 하지는 못했어도, 이렇게라도 다시 마음껏 그리워 할 수 있다.


가구 하나 없는 텅 빈 거실 바닥에 술잔을 놓는다. 지율의 부적도 잊지않고 잔 옆에 가만히 내려 놓았다. 이중문을 조금 열고, 마포대교를 향해 절을 한다. 처음으로, 장례식장에서도 안하고 끝까지 버틴 큰 절을 이제서야 올린다. 아버지께, 어머니께.. 경찰대 입학식에서 눈이 마주쳤던 여자.. 아버지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빤히 자신만을 바라보며 울던 그 여자가 엄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일부러 아는체 하지 않았다. 그게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잠깐 눈 인사라도 해줄 걸.. 모른척, 다른 곳을 바라봤었다. 그때까지도 아버지의 계획이라는 게, 간 이식 하나 뿐인 줄로만 알았었다...


술잔 앞에 앉았다. 치울 생각없이 마냥 놔두고, 다리 위를 지나는 자동차를 본다. 멍하니, 흐르는 강물만 본다, 흔적없이 지나는 바람을 본다... 지율이 옆에 와서 앉는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편안하다... 진우가 손을 뻗어 부적을 집어든다. 손에 꼭 쥐고 지율의 무릎을 베고 눕는다. 지율이 다리를 뻗어 머리를 받쳐준다. 곧 잠이 들거다.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마셨나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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