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5화. 갑돌이 갑순이 2

남과 여

by 신소운

5.2.1 시환의 집


쪼그리고 앉아 밥을 먹고 있는 고양이, 그보다 더 쪼그라들어 우울하게 바라보는 시환.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 본 장면이 지워지지 않는다.. 하필 왜 진우와...??

"송이야, 아빠 슬프다... 역시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질 않아."

베란다 문 밖으로 보이는 경찰서 건물. 꼴보기 싫다.

"그러니까 아까 보고서를 늦게 내고, 병원으로 갔어야됬어. 아니면, 팀장님이 아니라 내가 선배를 업고 뛰었던가. 아, 다 귀찮아... 출근하기도 싫고, 오늘은 그냥 너랑 이러고 퍼 잘까??"


송이 옆에 벌러덩 누워 꼬리를 쓰담쓰담 한다. 싫지 않은 송이는 먹는 거에만 집중한다. 띵... 문종태의 문자다.

/빨리 들어와 아이스크림 사오라니까.. 난 메로나/

핸드폰을 바닥에 던져버린다.

"아우, 아저씨가 무슨 메로나야? 비비빅 먹어! .. 가지가지 해, 하여간에.."

송이가 다가와 아는 체를 한다. 배에 올리고 꼭 안아준다..

"그치? 메로나는 누나가 좋아하는 건데.. 삼촌 주기 싫다, 다 팔렸다 그럴까? 비비빅만 이만큼 사다 주는 거야.."


누나... 송이를 내려놓고 서랍을 연다. 오래된 사진첩을 열어 어린 시절을 본다. 개구장이 시환과 딱 한뼘 만큼 더 큰 여자 아이. 태권도장 버스 앞에 사이좋게 서있다.

"몇년도야, 이게.. 이젠 기억도 잘 안나.. 아직도 이렇게 생겼을까? 난 이때랑 똑같은거 같은데.. 에이그, 뭐가 그렇게 좋아서... 입 뒤집어지겠다, 류시환. 사내 자식이 이렇게 웃음이 헤퍼요, 그때나 지금이나..."

수없이 들어온 말을 그가 중얼 거린다. 눈동자도 보이지 않는 꼭 감긴 반달 눈.. 그 옆에 제법 의젓하게 서있는 눈이 동그란 여자아이..


시환이 거울을 본다. 조금 커지긴 했지만, 그래도 어릴때와 똑같은 쌍커풀 없는 눈, 잘생긴 이마, 역주행하는지 엄청 하얘진 피부.. 그리고... 웃을때마다 티나게 어색한 왼쪽 뺨과 입술, 인공으로 이어 붙인 왼쪽 귀, 수술 자국 때문에 머리카락이 나지않는 귀 뒷쪽 부터 아래까지 ... 단추를 풀어 셔츠 자락을 연다. 귀부터 목, 어깨와 가슴까지 내려가는 여러 갈래의 흉터... 손가락으로 만져본다. 여러차례 수술을 했지만, 그의 눈에는 여전히 그날 일이 떠오를 만큼 끔찍하다. 거울 속 시환의 눈썹이 가늘게 떨린다. 두 손에 힘을 주고 주먹을 꽉 쥐고 온 몸의 근육에 힘을 실어본다. 심호흡을 해보지만, 떨칠 수 없는 공포.. 입술이 마른다..


지잉... 징...

핸드폰이 울린다. 셔츠를 올린다. 차은석이다.

"수면제 먹인 웨이터 찾았어요. 질의 들어갈건데, 좀 쉬었으면 와볼래요?"

"10분 후에 도착합니다."

셔츠 단추를 잠그며 뛰어나간다. 쿵 닫히는 문을 쳐다보는 송이. 창문으로 훌쩍 뛰어가 앉는다. 시환이 나가는 걸 아는지, 큰 길을 내려다 본다.




5.2.2 병실


한숨 잘 잔 강진우. 여전히 나른하지만 조금씩 손발을 꼼지락 거리며 잠을 깬다. 살짝 실눈을 뜨고, 아직 자고 있는 지율을 본다. 대낮일텐데 아직도 쿨쿨 자고 있다. 이불을 당겨 올리고, 얼굴을 덮은 머리카락도 정리한다. 덜 지워진 화장때문에 얼굴이 엉망이지만, 귀엽다... 그때 지율 뒤로 보이는 사람 그림자... 눈이 번쩍 뜨인다... 회진 들어온 의사들이다.. 지율이 팔을 베고 있어 벌떡 일어나기가 힘들다. 다른 손으로 머리를 받치며 조심조심 팔을 잡아 뺀다. 어색한 미소를 지어본다.


"환자 침대에서 주무시면 어떡해요? 수액도 맞고 있는데, 줄이라도 건드리면 어쩌실려구요?"

3박 4일 쯤을 혼자 일한 것 처럼, 까칠하다. 주섬주섬 침대에서 내려온다.

"죄송합니다, 얘가 악몽을 꾸길래.."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은 의사가 손짓한다.

"잠깐 밖으로 나오세요, 환자분 더 주무시게."


죄진 사람처럼 불려 나가며 슬쩍 화장실 거울에 비춰본다. 그 난리를 치고와서 씻지도 않고 잠들었다. 꼴이 말이 아니다...

"남자친구 분이 입원 동의 하셨죠? 마른 여자 좋아해요?"

"예..? 아뇨, 제가.. 아마 뭐 잘못.."

예상밖의 질문에 당황한다. 의사는 흥분한 목소리로 진우를 야단친다.


"다이어트를 정도껏 해야죠! 이분, 숨만 쉬지, 완전 시체에요. 혈압도 불안정하고, 심박수는 엉망에.. 헤모글로빈 수치가 3이면, 임산부보다도 못해요. 철분 당연히 부족하고, 이대로 두면 저산소증에 조기 폐경 위험도 있어요. 다른 병원에서 처방약 먹는 거 있어요?"

"그건...,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스테로이드나, 우울증약, 혈압약 같은거, 먹는 거 못 봤어요?"

"불면증은 좀 있는데.."


"피임은 누가해요?"

"예...?..그게.."

"남자친구분이 하세요. 여자 몸이 저지경인데 피임약까지 먹이면 지옥가요, 알아들어요? 스트레스나 불안증으로 잠을 못자면, 다독거려서 잘 재워야지, 딱봐도 엄청 저체중이구만, 약 자꾸 먹으면 큰일나요. 깨어나면 정밀 검진 받게해요. 간 수치, 골밀도 다 엉망이야. 척추나 허리 아프다는 얘기 하죠?"

"아직... 못 들었습니다.."

의사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진우를 본다.


"둘이 대화는 해요? 세상에, 나이 서른에, 지금 이 분이요, 수치상으로는 70살 할머니에요. 찢기고 뜯기고, 그거야 직업이 그러니까 그렇다치고... 저 몸으로 경찰은 어떻게 한대..? 아무튼 몸 전체가 다 고장이에요. 그나마 운동을 많이해서 근육으로 버티는 거 같은데, 골다공증으로 척추 압박이나 골절 시작했을수 있구요, 혹시 바람 불어서 사람 부러지는 거 봤어요?"

"아니요, 아직 못 봤습니다."

"곧 볼거에요. 저분이 그래요. 걸어가다 바람 훅 불면 뚝 부러져요. 신경 좀 써요."


인턴들을 한무더기 몰고 돌아선다. 진우가 어정쩡하게 인사한다. 복도 저편으로 멀어지는 목소리...

"도데체 요즘 애들은.. 왜 저렇게들 바짝 말려, 사람을? 학대야? 죄다 변태들이야..."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야말로 자다깨서 봉변이다... 복도에 있는 사람들이 수근수근... 다 쳐다보는 것 같다. 진우는 혼이 쏙 나간 얼굴을 두드려 깨우며 병실로 들어갔다. 침대 옆, 보호자 벤치에 앉는다. 세상 모르고 자는 지율의 손을 만져본다. 주사기 꽂은 손등이 바짝 말라 혈관만 도드라졌다.


"그래.. 그걸 생각 못하고 있었네... 너도 정상은 아닐텐데.."

지율의 손을 꼭 잡고 뺨에 대어본다. 이런 손 이었다... 마르고, 상처나고, 차갑고, 힘 없는 손... 투병 사실을 숨기고 혼자 앓던 아버지... 자꾸 살이 빠지는게 수상해 몰래 따라갔던 병원 진료실.


**


/진우 회상/


대학병원 진료실. 어린 진우와 아버지가 앉아있다.


"강준길 환자분, 그동안 아드님한테 아무 말 안하셨어요? 간 이식 하셔야 된다구요. 정말 길어야 6개월이에요. 아드님이죠? 아버지 좀 설득하세요. 아니, 지금 아들이, 당장이라도 기증하겠다는데, 왜 거부를 하세요?"

"난 우리 아들 간 안 뗍니다. 얘는 경찰대 가야되요. 절대 몸에 손 안댑니다."

"그냥 놔두면 반년도 못사세요. 아들 성장하는 거 옆에서 더 보셔야죠?"

"걱정 마십시오. 나는, 이 녀석을 아주 잘 키웠어요. 나 없어도 잘 살겁니다."

"아버지!"


"글쎄, 하늘이 주는대로 사는거야. 사람 목숨은 네 마음대로 늘렸다 줄였다 하는게 아니라고. 나는 이제 다 살았다 하시니까, 욕심부리지 말고 시험 준비나 잘 해. 또 아냐? 너 경찰대 가는 거 보면, 기적처럼 다 좋아질지? 선생님, 우리 애 말고, 다른 기증자 나올 때 까지 천천히 기다리겠습니다."

"대기자가 많아서 언제 될지 몰라요. 간 이식은 그렇게 복잡한게 아니니까 먼저 하시고..."

"아, 글쎄.. 경찰대 시험이 코앞이에요. 지금 수술 안해요. 체력장도 뛰어야하는데 간 이식을 시켜요? 내 간은 내가 알아서 해요. 너도 일어나! 왜 몰래 따라와서 이런 얘기를 들어? 가자! 가서 공부해!"


억지로 끌려 일어나는 진우. 아버지를 만류해보지만 뿌리치고 나가버린다. 오히려 아들을 위로한다.

"저 의사 돌팔이야. 딱 보면 모르겠냐? 작년에 왔을때도 6개월이라 그랬어. 그때부터 내가 술도 끊고, 사표내고.. 운동하고 쉬니까 많이 나았잖아. 봐봐, 아버지 건강해졌어. 야, 임마, 난 쉽게 안 죽어. 안그래도 너 시험 끝나고 수술 할거야. 삼촌들이 서로 간 떼어준다고 난리들이야. 걱정하지마. 남은 기간 공부나 열심히 하고, 아버지는 따로 다 계획이 있어. 너랑 나는, 목표가 있잖아. 목표가 있는 사람들은 쉽게 안 죽어..."

**


지이잉... 진동이 온다. 조 팀장이다. 어느새 흘러내린 눈물을 닦는다.

/좀 잤냐? 너랑 지율이, 내일까지 휴가다. 둘 다 나오지마/

전화를 건다. 한번에 받는다.

"뭡니까? 지금 저 짜르시는 겁니까?"

"그래, 철야 한번 했다고 비실거리는 놈을 뭐에 써? 그냥 가! 오지마."

"지율이는 왜요?"

"걔는 갈데가 없잖아. 사무실에서 먹고 자는 애를 어디서 쉬라고? 며칠 네가 데리고 있어. 휴가 더 필요하면 올해 꺼 팍 다 몰아서 써버리던가... 끊어. 여기 신경 쓰지마."


통화를 마친다. 핸드폰 화면에 뜨는 시간, 날씨, 날짜.... 한동안 멍한 얼굴로 화면만 본다. 시간이 바뀐다. 핸드폰을 침대 위에 엎어 놓는다. 지율이 움직인다...




5.1.3. 회의실



웨이터와 마주 앉아 질문하는 은석. 마지막에 지율의 테이블을 치우던 그 어린 웨이터다. 언짢은 얼굴로 노려보며 서있는 시환.

"그래서 그냥, 재미로 수면제를 먹였다? 그게 다에요?"

"가끔 어떤 손님들은, 그렇게 해서 데려가면 팁을 많이 줘요."

"왜 많이 주는데요? 사진 찍고, 비디오 찍고, 당사자 모르게 히히덕거리고 놀려고?"

"아니요, 꼭 그런 건 아니고... 사실, 뭐하는지는 잘 모르는데.."


"뭘 몰라? 모르는데 약을 먹여? 네가 무슨 짓을 해왔는지 알아?"

듣고 있던 시환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밖에서 지켜보는 종태가 미소 짓는다. 석호가 거든다.

"류 형사도, 화를 내네요."

"저러니까 제법, 경찰 같죠? 소꼽놀이만 하더니.."

"근데, 저기.. 빨리 끝내고 회의실 비워달라던데, 시간 괜찮겠죠?"

"강력만 일합니까? 조사실 다 내어주고 여기로 쫒겨난것도 서러운데.. 우리도 형사입니다..."


웨이터가 조금씩 주눅이 드는지, 순순히 털어놓는다.

"그때 실장님이 여자 들여보내라던 그 방이, 아이돌 그룹이었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여자 불렀다고 소문 날까봐 되게 조심해요. 거기다가 약까지 먹였다 그러면 정말 큰일나니까.. 여자가 올라가서 잠이 들면, 혹시 저희한테 돈 더 주고 치워달라고 할까봐.."

"치워? 사람을 치운다고? 이 쌩 양아치 새끼? 야! 그래서 아무 약이나 막 섞어다가 들이부었어? 얼마나 넣었어? 남은 거 내놔!"


"진짜 조금이에요, 졸피템은 처방전이 있어야되니까 진짜 요만큼만 넣고, 나머지는 그냥 약국에서 파는 수면제 빻아서 하는데, 왜 아직 안 일어나는지.."

"으응, 한번에 다 쓰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여기저기 써야되서, 적당히 양을 나눠쓴다 이 말이네. 누구랑 같이 했어? 불어. 너 신입이라며? 그럼 가르쳐 준 사람이 있을거 아냐?"

"그런 건... 이런 일 하면 다 알아요, 각자 그때그때.."

"고영진씨, 남은 약은 어디 있습니까? 어제 만들어 놓은 거, 남아있나요?"

은석이 물었다. 자백을 했으니 증거가 필요하다..


웨이터가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잠깐 머리 굴리는 듯한 모습에 은석이 펜을 놓고 손가락을 푼다. 두두둑.. 뼈마디가 시원하다..

"어제 한건만 한거 아니죠? 남았다고 할까, 다 썼다고 할까... 딱 보니까 지금 고민 중이네."

"아뇨, 아닙니다. 정말 그거 딱 한번이었는데, 경찰이 너무 빨리 와서 놀래가지고.. 남은 약은.. 화장실 변기에다가 버렸습니다."

"평소에 얼마나 만들어요? 몇회분? 미리 해놔야 필요할때 그때그때 쓰잖아요?"

"졸피템은 보통 하나를 세네번으로 나누구요, 혹시 너무 많이 썼다가 문제 생길까봐.."


"웃기지 마, 아까워서 그렇겠지.."

시환이 테클건다. 바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못하는 웨이터. 은석이 슬쩍 회의실 창문을 본다. 종태가 손목 시계를 툭툭 친다. 노트를 덮는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일단은 유치장에서 지낼건데, 아까 말한거, 다른 마약류 사건이나 관련 인물들, 우리한테 정보 줄 거 있나 잘 생각해봐요. 재판에 도움 될 거에요."

"재판 가요?"

놀란 웨이터가 묻는다.


그를 일으키며 시환이 답한다.

"가야지. 나같으면 재판 안하고 바로 보내버리겠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러면 안된대잖아. 고소고발, 절차대로 할거야."

"합의 볼께요. 나쁜 약 아니고 그냥 수면제에요. 여자분하고 합의보게 해주세요."

"너...!"

화를 꾹꾹 참으며 시환이 대답한다.

"너, 잘들어. 첫째, 범죄야. 둘째, 피해자가 못 깨어나고 있어. 세째, 너네 실장이랑 VIP 방 손님들이 너 가만 안 둔대. 됐어? 피해자 말고도 너 고소 할 사람 많아."


대기중이던 순경에게 웨이터를 넘기고, 시환이 중얼거린다.

"저것들은.. 지들이 사고 쳐 놓고, 개나 소나 다 합의한대. 그것도 지금, 경찰하고 합의를 하겠다는.. 야!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살아."

"안들려요, 더 크게 질러야지."

은석이 서류를 챙긴다. 종태가 들어온다.

"류시환, 수고했어. 다음에는 개인 감정 조금만 빼고. 넌 너무 티나."

"파트너가 약먹고 쓰러졌는데 이정도 화도 못 내요? 얼마나 참은건데?"


종태가 웃음을 참는다.

"아이스크림은 왜 안 사왔어? 기다렸는데?"

"밥도 안먹고 무슨 아이스크림이에요? 돈도 안주면서 사오래... 셔틀도 폭력이에요!"

"장하다! 가서 밥먹자! 배달왔다!"

"바빠요. 선배 깨어날때 됬어요. 퇴원도 시켜야하고.."

"진우가 알아서 할거야. 내일까지 휴가래. 둘 다."


"왜요? 같은 팀도 아닌데 왜 진우형이 해요?"

시환이 발끈한다. 잠시 잊었던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정히 꼭 껴안고 자던..

"성질이야..? 진우 어제 고생해서 쉬어야되고, 쉬는 김에 지율이... 후유증이라도 있을까봐 데리고 있으라는데, 뭐? 왜? 뭐가 불만이야? 아까 가보랬더니 안가고 그냥 왔다면서.."

"그냥 온게 아니라.. 아이, 저도 휴가 쓸래요. 내일 쉴거에요."

"시끄러, 이자식아, 일은 누가 해? 내일 지율이도 없고, 팀장도 외부에 회의 있어서 나가는데.. 아, 빨리 올라가 밥 먹어!"




5.1.4. 사무실


시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늦은 점심을 먹는 은석. 종태가 음료수를 챙겨주며 말문을 연다.

"아까 정아랑 무슨 얘기했냐? 내 욕 했냐?"

"..."

은석이 빠르게 식사만 한다.

"다 봤어. 주차장에서 둘이 싸우는 거."

"안 싸웠어요."

"맨날 안 싸웠대지. 그러다 그 꼴 나고..."


말없이 은석을 보다 물만 마시는 종태.

"은석아, 나는.."

"식사하세요."

"그냥 들어! 듣기 싫어도 들어! 안 들어도 듣는 척! 아니면, 안 듣는 척 하면서, 다 새겨 듣던지.."

대꾸없이 물을 마시는 은석. 짧게 한숨을 쉰다.

"너, 정아 오는 거 알고 있었지? 아니, 쟤 왔는데, 너 괜찮아?"


은석이 종태를 보고 피식 웃는다. 다시 밥을 집어든다.

"괜찮아야지, 일하러 오는 애를 뭐, 못오게 막아요?"

"언제 알았어, 파견 오는 거?"

"류 형사가 맡은 사건 얘기하다가, 이름이 나왔어요. 그럼 같은 일 하는데, 어디서든 마주치겠죠. 언제까지 피해다녀요? 지금까지 못 본게 오히려 신기하지."

"기다렸냐?"

종태가 물었다.


"... 몰라요."

"보고싶었냐고?"

"아우, 형..! 언제적 얘기를..? 다 지난 걸 왜 신경써요?"

"그럼 신경 안 써? 이정아 저게 너랑 사귄다고, 결혼한다고... 경찰서 떠들썩하게 사내연애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다른 남자 애 가져서 너 뻥 차고..."

"그런거 아니에요. 오해에요."


"뭐가 오해야? 너네 헤어지고 얼마안되서 임신했다고, 응? 니가 걔 임신시켜놓고 버렸다고 욕이란 욕을 다 먹게 하구서는... 휴직계 내면서 그때서야 다른 남자 애라고? 이런 미친... 너도 미쳤고, 걔도 그따위로 살면 안돼. 깨끗하게 헤어지고 나서 다른 놈을 만나던가? 그래놓고 또, 잘 살면 말을 안해. 애는 낳아놓고 결혼은 왜 안해? 유부남이야?"

"혀엉!"

"왜에에에???"

종태가 언성을 더 높힌다.


"쟤 복직하는거 때문에 윤리 위원회 열리고, 이혼도 아니고, 미혼모 경찰이 말이 되냐, 품위 손상이다, 아니다, 얼마나 시끄러웠어? 여경 애들끼리도 반으로 쪼개져서, 이쪽은 반대 서명하고, 저쪽은 여성의 기본권이 어쩌고, 기본권이 어쩌고.. 너 입 딱 닫고 부처님 반토막처럼 그러고 있어도, 나는, 니 대가리안에 돌 굴러가는 소리도 다 들려. 아까도, 걔 불편할까봐 괜찮은 척, 아무 사이 아닌 척, 짐 옮겨준다고 따라 나가고.. 그러고서는 주차장 가서 그 기집애한테 욕 먹고.. 그게 할 짓이야? 니가 왜 걔한테 빌빌거리려? 정신차려, 이 새끼야! 똑바로 살어!"


은석이 그릇을 포개어 놓고 일어선다.

"어디가? 밥 처먹어!"

"다 먹었잖아요.."

자기 자리로 가 껌 두알을 입에 넣고 컴퓨터를 켠다. 은석의 밥그릇을 보며 중얼거리는 종태.

"하여간 드럽게 빨리 처먹어... 나쁜 새끼.."

그제서야 숟가락을 드는 종태. 한입 씹으며 짜증을 낸다.

"아, 류시환이는 또 어디가서 안 들어와?"

5.1.5 서장실


관심없는 얼굴로 서류만 들여다보는 서장. 잔뜩 흥분해 앙탈을 부리는 시환.

"그러니까 왜요? 왜 그 집으로 가냐고요? 우리 집도 바로 여기, 경찰서 바로 앞이고, 나도 혼자 사는데?"

"너 혼자 사니까 안돼지. 바로 앞이니까 더 안돼고. 지율이 걔는 링겔 꼽고도 날라올거야. 하루 푹 쉬게 좀 놔두자고."

"하필 왜 강진우인데요? 그 형, 완전 양아치에, 바람둥이에요. 착한 척 하니까 남들이 몰라서 그렇지, 여자 엄청 많아요."

"미소 너보다 많것냐.."

"아아, 삼촌~~!!"


"시끄러워, 임마! 진우가 쉬어야되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 지율이 챙기라 그랬는데, 사실은 반대야. 진우 사고 칠까봐 지율이 붙여 놓는거야."

"사고는 무슨.. 진우 형이 뭘로 사고를 쳐요? 그딴 범생이가?"

"양아치에 바람둥이라며?"

"아이 씨... 몰라, 나 빨리 휴가 줘요.. 내가 따라가서 감시할께요.."

"걱정돼? 둘이 연애할까봐?"

서장을 한번 흘겨보고는 오징어처럼 의자에 축 늘어지는 시환. 선뜻 답을 못한다.


"걱정마. 진우는 아니야.. 아니다, 그건 모르지.. 남여 사이니까,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확실히 아니야. 걔 지금 그럴 정신 없어."

"어떻게 알아요?"

"... 너는, 친하다는 애가, 강진우 요즘 지가 지 목 조르고 있는 거 몰라?"

"그렇대요..? 맨날 실실 웃고 있어서.."

서장이 결제서류를 밀어 놓고 긴 한숨을 쉰다.

"그 예쁜 웃음 뒤에, 속이 그냥 폭탄이 꽉꽉 채워졌다. 언제 터질지 몰라서 내가 아주 조마조마해."


소파로 와서 앉는다. 시환도 조금 차분하게, 똑바로 고쳐 앉는다.

"같이 일할거니까 너도 미리 알아둬. 진우는 이맘때 제일 힘들어. 가족이라는 게, 있어도 속 시끄럽고, 없어도 무너지고.. 너랑 니 아버지 싸우는 거는 장난이야. 귀여워."

시환이 입을 삐죽거리다 뭔가 생각난 듯 말한다.

"어..? 근데, 진우 형, 부모님 돌아가셨잖아요. 두분 다 안 계시는데?"
"그러니까.. 부모, 여동생.. 다 죽었지. 그게 오늘이야. 오늘 둘, 내일 하나 더."

"기일이래요..? 근데 왜 다 모여있어? 같이 가셨나?뭔데요? 교통사고? "


"교통사고가 낫지... 그 자식, 제사도 안 지내. 아직 용서가 안된거지. 그런 거 해주지 못 할 만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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