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여
"일찍 왔네? 이 시간부터 애를 맡길 데가 있어?"
"아직 시간 있는데, 아침 먹으러 갈래?"
잠깜 망설이는 정아. 각오한 듯, 또박또박 답한다.
"차 형사님, 전에 말씀 드렸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안 하고 싶다고요."
"아침 먹자는 게 개인적인 이야기야? 같은 팀이니까, 하루 종일 같이 일 할 거니까, 아침 먹을까 물어도 못보냐?"
"아침 잘 안 먹는거 아시지 않습니까? 드시고 오십시오. 전 괜찮습니다."
"나도 잘 안 먹는거 알잖아.. 난 먹었어, 두유랑, 아몬드."
정아가 아몬드 봉지를 서랍에 던지듯이 집어 넣고, 화일을 펼쳐든다. 기분이 언짢아진 은석.
"너 정말 이럴거야? 잠깐이라도 여기로 출근할건데, 모르는 사람처럼 선 딱 긋고 어떻게 지낼려고?"
"파견 직원으로만 대하십시오. 불편한 오해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누구든 새로 와도, 서로 인사하고, 통성명하고 지내. 집이 어딥니까, 아이는 몇 살입니까.. 밥 먹고 합시다, 다 한다고."
"차 형사님하고는 안 합니다. 다 아시지않습니까?"
"말투 봐라, 네가 언제부터 나한테 차형사님, 차형사님 했다고.."
두유를 비워내고 정아가 쳐다본다. 할말이 있는 것 같지만 참는 것 같다.
"왜? 할말 해. 나도 많아, 그러니까 얘기 좀 하자고."
"없습니다. 불편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불편해? 네가 불편해? 나는 편해서 이러고 있겠지? 네 안부 똑바로 못 묻고, 빙빙 돌려서 밥 먹었냐, 애 잘 있냐 묻는 나는, 이 상황이 엄청 좋아서 이러고 있는거지?"
"그러니가 신경 끄시라구요. 선배 애도 아닌데 뭐가 궁금해요?"
"궁금해. 옆집에서 애를 낳아도 궁금해. 엄마 닮았나, 순한가, 우유 잘 먹나... 다 궁금해.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오랜만에 만나서 궁금한거 물어도 못보냐?"
"그때나 좀 잘 물어보지? 맨날 얼굴 볼때는 모르는척 하더니 이제와서 뭐가 궁금해? 아는체 하지마, 니 새끼 아니잖아. 괜히 애써서 친한 척, 괜찮은 척, 그러지 말라고."
"척 아니야. 진짜로 반가워서 그랬어, 아주 잠깐, 잠깐이라도, 잘 살고 있어서 반갑고, 다행이고, 진심이야."
"난 하나도 안 반가워. 지금도 큰 맘 먹고 억지로 출근한거야. 돈 벌어야되니까... 그러니까, 다른 거 신경 안 쓰고, 일만 하다 가게 해 줘. 부탁이야."
은석이 입을 다문다. 일하는 척, 컴퓨터를 켜는 정아를 쳐다보지만, 참는다. 어색하도록 조용한 사무실.. 키보드 소리만 달그락거린다. 문이 열리고 종태가 들어온다. 눈으로 한바퀴 둘러보다가 소파에 눈이 멈춘다. 쿠션 사이로 삐쭉 나와있는 하얀 손... 정아가 목례만 하고 서둘러 나간다. 종태가 조용히 자리로 들어와 앉는다. 소근소근 은석에게 묻는다.
"쟤는 왜 여기서 자? 벌써 온거야?"
"좀 전에 들어왔어요. 출근하는 줄 알았는데, 피곤한가봐요, 오자마자 저러고 잠들었어요."
"그러게 쉬랄때 쉬지, 뭐할라고 나와? 오지랖은..."
은석이 소파를 쳐다본다. 여전히 뒤로 툭 삐져나와 있는 가느다란 손가락..
"아... 저 손이요..? 강 형사 아니에요."
"아니야? 그럼 누구야?"
"류 형사요."
"류시환이? 아니, 쟤들은... 쌍둥이야? 왜 자는 것도 똑같애? 저런거까지 닮냐?"
"그러게요, 다시보니 좀 이상하긴 한데.. 뭐, 편한가보죠."
"소파에 저렇게 손 끼우고 자는 거, 다른데서 본 적이 없어. 딱 저 두 놈이 그러네... 우연치고는... 전생에 아들이었나?"
은석이 웃는다.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고개를 끄덕거린다.
"에이구, 어제 오늘 지율이 없다고, 아주 풀이 팍 죽었구만.. 야! 류시환! 일어나! 몇 시까지 잘거야? 일 해!"
시환이 강시처럼 벌떡 일어나 앉는다. 한쪽으로 눌린 머리가 볼만하다.
"세수 좀 하고, 일해야지. 오늘 바쁘다, 팀장도 없고."
"... 원주 간대요."
"그래, 그렇대. 국과수에 누구 만나러 간다잖아."
"팀장 말고.. 선배랑 진우 형... 요양원에 지율 선배 친아버지 병문안 간대요."
"잘 했네. 쉬는 날 가봐야지... 근데 그게 뭐? ... 그게 싫어?"
한숨을 길게 뿜으며 우울해 하는 시환을 본다. 종태가 비웃는다.
"어이구, 인간아... 병문안 가는 것도 샘나냐? 그러다 진우 미워하겠다."
"서장님이 제일 싫어. 나만 휴가 안 주고.."
내키지 않는 얼굴이지만, 툴툴거리며 일어나 자리를 치운다. 책상에 앉아 스케줄을 본다.
"세수 안해?"
"집에서 했어요."
"다시 잤잖아. 머리도 까치집이야."
"안 보여요."
"나한테 보이잖아."
"상관없어요."
"그러고 있다가 지율이 갑자기 들어오면?"
"놀러 갔다니까요. 건들지 마요. 오늘 세수 안 할거에요."
한마디 더 하려는종태를 은석이 툭 친다. 말을 돌린다.
"근데, 시환씨. 왜 소파에 손을 걸고 자요? 보통은, 반대로 누워서 등을 기대고 자지않나?"
"아, 그거요.. 어렸을때, 소파에서 자다가 많이 떨어졌대요. 아는 누나가 가르쳐 줬어요. 등받이를 안고 누워서, 그 사이에다가 손을 집어넣고 꼭 끼워놓으면 안 떨어진다고.. 버릇이 되서 아직도 그러고 자요. 자취 나올때도, 소파를 누워보고 샀어요. 손이 잘 걸리나 볼라고."
"아우, 나는 인제 허리 아파서 소파에서 못 자. 침대는 좋은 거 써야지..."
종태가 허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나선다.
"자, 보자.. 오늘 뭐해야 되나.. 이정아는 아침에 잠깐 다른 팀 미팅있다 그랬고, 시환이 좀 있다 실크 로드 탐문 가야지? 이정아 기다렸다 같이 가. 거기, 전에 도난 신고도 몇번 있었어. 주인이 바뀌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들어서 알거야. 그리고, 참고인들이 진술한 실종 날짜가 다 달라. 그거 먼저 확인해."
"알겠습니다."
"머리는 좀 빗고 가냐?"
종태를 살짝 째려보며 손바닥으로 머리를 눌러본다. 곧바로 다시 곤두선다. 종태와 은석이 간단히 책상을 정리하고 일어선다. 먹던 생수병을 기울여 손바닥으로 물을 바르는 시환. 서류를 펼친다. 쳐다도 안 보고 건성건성 인사한다.
"다녀오십시오..."
미장원에서 많이 보는 일본식 머리 스타일... 미키 후지와라, 27살 여자, 관광비자로 4개월전에 입국 후 지난 달 부터 연락 두절... 마지막 숙소는 삼각지 역 부근의 게스트 하우스 <실크 로드>.
5.4.2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창률과 미팅 중인 석호. 전화가 울린다.
"예, 다 끝났어요. 금방 내려 갈께요."
눈치가 보이는 석호, 자료를 추스리며 바로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자꾸 길어져서.."
"아냐, 급한 거 아니라 괜찮아. 그럼 여기 있는 것 들은 내가 가져가고... 뭐 더 찾을 수 있나 검토해볼께. 아무것도 없을지도 몰라, 너무 많이 기대하지 마."
"알고 있습니다. 워낙 오래된 사건들이라, 시료가 훼손되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뭐 하나라도 나오면 좋구요."
"일도 많을텐데, 지난 것 까지 꺼내고 그래? 미제 사건만 하는 팀이 따로 있지 않나?"
"외국인들 관련된거는 아무래도 뒷전으로 많이 밀려요. 어떻게보면 당연하기도 한데, 저는 팀이 이쪽니까 해보려구요."
창률이 일어선다.
"근데, 이렇게 만나니까 기분이 좀 이상하다. 내 동생 같지가 않은데..?"
"별 말씀을요.. 동생도 직업이 있습니다."
"그러게. 눈으로 직접 보니까, 진짜 경찰 같다. 보기 좋아."
"자주 뵐것 같습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너무 무리하지는 마시구요."
"내 할 일 하는 거야.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경찰이 뭘 찾는지 딱딱 꼬집어 낼 수는 없을지도 몰라. 아는 만큼 해 볼께."
"잘 부탁 드립니다.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하구요. 이게, 전화만 가지고는 진행하기가 힘들어요."
"사건이 한두개도 아니고, 이걸 다 전화로 어떻게 하냐? 잘 왔어, 바쁜데... 점심 먹고 가면 좋은데, 내가 스케줄이 바로 있어."
"괜찮습니다. 저도 병원 들렀다가 바로 올라가야합니다."
"그래, 그래야지. 근데, 석호야.. 이젠 정말, 얼마 못 가실 것 같다."
석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버릇처럼 억지 웃음을 지을 뿐, 뭐라 할 말을 찾지는 못한다. 뻔한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창률도 씁쓸한 미소를 남기고 가볍게 어깨를 두드린다.
"인사 드리고 가... 그리고 사건은, 뭐 나오면 이매일로 할께. 먼데 자꾸 올거 없어."
꾸벅 인사를 한다. 창률이 화일 박스를 챙겨 먼저 돌아선다. 회의실 문을 닫으려다 석호를 돌아본다. 잔뜩 쌓인 서류들을 차곡차곡 가방에 정리하는 석호... 잠시 바라보다 문을 닫고 돌아선다.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5.4.3 부검실
"오고 계신대, 준비됐지?"
보조를 맡은 두 직원이 서둘러 가운을 입는다. 가지런히 놓인 도구들을 한번 더 훑어본다.
"예.. 근데 오늘 네건이에요. 점심 드실 시간도 없겠어요."
"그래도 손이 빠르시니까. 원래 응급 외과 하셨어... 성경책?"
"여기요... 기도하시는 걸 보면, 오늘도 피해자인거죠? 스물 두살이래요. 제 동생보다도 어려요."
"안된 얘기지만, 솔직히 어린 애들 들어오면 더 속상해. 살아보지도 못하고.."
"저도요. 예전에 아홉살짜리 한번 들어갔었는데, 아직도 자꾸 생각이 나요.."
"자기, 송 박사님 지난주에, 교도소에서 보낸 시신 부검하신 얘기 들었어?"
"아뇨, 왜요?"
"살인에 뭐에 전과가 엄청 많은 사람인데, 갑자기 쓰러져 죽었대. 가혹 행위인지, 상대파 조폭들 짓인지 알아낸다고 부검을 했는데, 송 박사님이 들어오자마자 그 사람 배에다가 매스를 팍...!"
"헉..? 진짜요? 전혀 그렇게 안 보이시는데..? 되게 조용하고, 얌전하시고.."
"가끔 가해자들이 들어오거든? 그러면 뭐, 한 맺힌 사람처럼, 리섹션 (resection 절제술) 이... 피해자 부검때랑 완전히 달라. 무서워서, 난 끝날때까지 눈도 못 마주쳐."
문이 열리고 창률이 들어온다. 가운을 입고, 장갑을 낀다. 머리맡에 놓인 성경책에 손을 얹는다.
"기도합니다.."
함께 기도하는 두 보조, 한 사람은 눈을 감고 두 손을 올려 모으고, 다른 한 사람은 바른 자세로 서서 두 손을 꼭 잡는다.
"오늘 여기 계신 이 분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일찍 삶을 끝내셨습니다.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슬픔과 염원으로, 억울함을 풀어드리려 대신 이 자리에 섰습니다. 고인의 소중한 몸을 열어, 미처 다 알리지 못하고 가신 그날의 일들을 바로 잡으려 합니다. 부디 용서하시고,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도록, 제게 힘을 주십시오..."
서류를 확인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의 송창률... 안경을 내려끼고 날짜와 시간을 적는다. 흰 천을 접어 상체를 드러낸다. 조명이 켜지면, 보조 의사가 사진을 찍는다. 찰칵... 찰칵... 철제 트레이가 빛을 반사한다. 매스를 든다...
5.4.4 요양 병원
아버지 침대 옆에 앉은 지율. 옆에 선 진우를 가르킨다.
"아빠가 알까? 이 선배 아버지도 경찰이었대. 강준길.. 이 선배는 강진우.. 혹시 생각 나?"
힘겹게 뜬 눈으로 진우를 본다. 아는지 모르는지, 따뜻한 눈빛으로 지긋이 보기만 한다. 진우가 싱긋, 웃어보인다.
"다 오래되어서... 아빠 누구누구 알어? 종태 삼촌 말고 더 있을건데.."
"종태 형님이 아버님이랑 같이 일했어?"
진우가 놀라 묻는다.
"어. 나 어렸을때 우리 아빠 쫄따구... 근데 아직도 날 몰라봐. 바보인가봐."
"그래서 네가 형님을 안 무서워 하는구나. 따박따박 말대꾸에.."
지율이 아버지 손을 잡는다.
"아냐, 아빠, 장난이야. 너무 오래되서 기억을 못 하길래.. 나는 영상 봐서 다 아는데, 삼촌은 바빴잖아. 잊어버렸겠지."
지율의 아버지가 희미하게 미소를 보이는 것 같다.
"아버지 친구들, 보고싶어? 찾아서 여기 한번 들리라 그럴까?"
호흡기에 김이 서린다.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또 끼었다... 숨이 가빠진다. 반기는 눈빛이 아니다. 싫은가보다..
"왜 싫어? 보고 싶은 사람 없어? 종태 삼촌 안 봐?"
싫다는 눈빛... 그러나 어느새 고인 눈물.
"괜찮아, 보고 싶으면 봐도 돼. 삼촌은 아빠 보고 싶어 할거야.."
힘주어 꼭 내리감는 눈꺼풀 아래로, 눈물이 비집고 나온다. 점점 짧아지는 호흡..
"아냐, 알았어. 말 안 할께. 삼촌보면 안되겠다. 심장에 무리가 가나봐. 울지마, 힘들어서 그래..."
당황한 진우가 간호사를 부르고, 지율이 아버지를 진정 시킨다.
"그래도 이대로 못 보면 많이 슬플거야. 나 나중에 혼날건데? 종태 삼촌만 몰래 불러줄까?"
지율과 맞잡은 손에 아주 조금, 힘이 들어간다. 여전히 눈물을 흐르지만, 어쩐지 괜찮다는, 그러라는 눈빛인것 같다... 호흡이 조금씩 안정되어간다.
"그래, 기다려. 삼촌만 오라고 할께... 다른 사람들은 내가 잘 몰라. 아직 생각나는 사람이 별로 없어."
간호사가 들어온다. 이것저것 기계를 체크하더니 지율을 내보낸다.
"오늘은 그만 쉬셔야 할 것 같아요. 다음에 다시 오세요."
"예, 알겠습니다.. 아직 막 나빠지고 그런거 아니죠? 저러다 갑자기 무슨 일 생기고.. "
"아니에요, 가끔 한번씩 힘이 좀 딸리셔서 그래요. 잠깐 주무시고 나면 또 조금 괜찮아져요."
"아빠, 다음에 올께. 푹 자고 있어."
병원을 나서는 두 사람. 태연한듯 보이는 지율이 더 안스럽다.
"... 슬프냐..? 지금 슬픈거지?"
"몰라... 사실은 있잖아, 내가 좀 고장이래. 의사 말로는 감정 표현이 안된다던데.. 어렸을때 너무 놀라서, 왠만해서는 슬프고, 아프고... 그런걸 별로 못 느낀다 그랬어. 좋은 것도 잘 모르고, 나빠도 뭐 그냥 저냥 지내고.. 그렇대. 쇼크 때문이라는데, 원래 성격인거 같기도 하고.. 난 익숙해."
"편하겠다. 주위 사람이 고생이지. 시환이 같은 애.. 너 많이 좋아하잖아. 아, 그래서 너는 아무 반응 없이 맹 한건가..?"
"맹해? 내가?"
"너 시환이 어때? 좋으면 좋다, 아니면 아니다... 답을 주던가, 아니면 적당한데에서 선을 그어줘야지, 걔는 너한테 인생 걸겠던데?"
"뭐 얼마나 됬다고 인생을 걸어.."
"시환이 다쳤을때부터, 이미 네가 걔 인생이었어. 너 하나 보고 살아난거야. 잘 해줘."
"잘 해주잖아. 맨날 같이 있는데.. 얘기도 많이 하고.."
"너 오늘 시환이한테 몇번 문자했어?"
"뭐하러 해? 일 없는데.."
진우가 핸드폰을 꺼내든다. 끝도없이 쌓여가는 문자..
"어우, 미친 놈.. 미저리야.."
주차장으로 걷는다. 차 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배고프다, 뭐 먹지? 아는데 있어?"
"잘 몰라. 요즘은 여기 와도 병원이나 들리고, 할머니 집에도 딱 한번인가 가봤고.."
"가볼까? 궁금하다. 너 애기 때 사진 이런것도 있나?"
"몇개 보긴 했는데.. 길을 잘 몰라. 여기서 한참 갈것 같애."
"지도 봐봐, 찾을 수 있지? 저장 해놨어?"
"아니, 그때 큰 오빠 차로 가서.. 잠깐만, 거기가 버섯 농장이었거든.. 그걸로 찾으면..."
지율이 지도를 찾는다. 농장 이름이 뭐였더라... 버섯 농장, 버섯 재배, 버섯 직거래, 버섯 비닐하우스.. 아무 말이나 검색해본다. 몇 군데가 뜬다... 이중에 어디더라...
"어? 저 차..."
병원 정문을 통과하는 하얀 SUV... 이석호다. 거리가 있어 운전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별로 흔치 않은, 게다가 이 동네에서는 더더욱 흔치 않은, 고급 차종이다. 주차장 반대편으로 꺾어진다.
'석호 형이 왜 여기에..?'
아직도 지도를 검색하고 있는 지율을 본다.
"찾았다, 여기야. 여기서 북쪽으로 25분. 산길이라서 보는것 보다 조금 더 걸려."
"그래, 가자. 야, 근데, 너 아버지 여기 계신거 누구누구 알어?"
진우가 시동을 걸며 한번 떠본다.
"병원 옮긴지 얼마 안돼. 나랑 큰 오빠... 그리고 오늘부터 강진우."
"여기 오기 전에는?"
"큰 오빠랑 같이 살았었어. 의사야. 많이 아프면서 그 병원으로 왔다갔다 했었지. 왜?"
"그냥, 누구 병문안 오는 사람 있나 해서.. 큰 오빠라는 분은 아는 사람들 많나?"
"아니, 없어. 새 직장으로 옮긴지 얼마 안돼.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좋대. 누구랑 왕래 안해."
"나랑 비슷하네.. 나도 죽은 사람이 편해.. 너 지도 잘 봐, 길 잃어버리지 말고.. 가자."
"잠깐, 네비 넣고 가."
"네가 네비야. 그런 동네는 잘 안 돼서 길 더 잃어버려. 그러니까 지도 잘 보라고. 진짜 간다!"
지율의 시선을 고정시키고 슬그머니 주차장 저편을 살핀다. 석호의 차를 찾는다. 사람은 이미 내리고 없지만, 대신에 반듯하게 서있는 무전 안테나까지 똑같다. 이석호의 차량임을 확신한 진우가 병원 문을 나선다.
"배고파, 빨리 가자. 가다가 맛있는 거 보이면 말해. 먹고 가는 거다."
지율의 관심을 최대한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도, 진우는 머리 속이 복잡하다. 단순히 아는 사람을 병문안 올 수도 있다고 위안하면서도, 신경이 쓰인다. 촉... 강진우의 촉이 자꾸만 이석호에게 향하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