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1 할머니 집
꼬불꼬불 먼지나는 산길로 올라가는 차. 아직도 남아있는 부서진 나무 간판 <강원 생버섯>
"이렇게 외진 데 사셨어? 눈 오면 끝장이겠다."
"길 넓힌게 이렇다던데? 옛날에는, 놀러와서 겨울잠 잤대."
"어르신 두 분이 사시기에는 힘드셨겠는데? 옆집도 엄청 멀고..."
다왔다. 예전에 살던 집도, 버섯을 재배하던 비닐하우스도 다 없어지고, 새로 지은 목조 주택과 넓은 땅만 남았다. 마당 관리하기 힘들다며 한쪽을 평평히 다지고 콘크리트를 갖다 부었다.
이 깊은 산 속에 혼자 앉은 서구식 남향집에, 테니스장 세개쯤 되는 넓은 콘크리트가 툭 튀어나온다. 공사비가 만만치 않았을텐데 참 어지러운 조합이다.
"이야, 여기다가 집 더 지어도 되겠다. 팬션 하실려 그러나? 캠핑장?"
지율이 피식 웃는다. 팬션이라니.. 산 사람 싫다고 죽은 사람 일 하는 인간이 무슨 팬션.. 그러고 보니 못보던 온실도 지었다. 사방이 유리로 만들어진, 고급 비닐하우스처럼 생겼다. 안으로 들어간다. 바베큐 그릴, 플라스틱 테이블, 안쓰고 차곡차곡 쌓아놓은 간이 의자와, 전기를 연결했는지 냉장고와 티비도 있다. 어디서 줏어온 다 주저앉아가는 오랜 소파와 흔들의자, 옛날 이불이 분위기를 낸다. 아버지가 앉아있었을까..
"강지율, 나 너네 오빠 너무 좋아. 내 스타일이야.. 우리 여기 MT 오자. 밤에 별 보면서 자면 진짜 좋겠다... 어? 저거는, 전등이네? 희안한 모양인데?"
진우가 가르키는 곳을 올려다 본다. 역시 처음 보는 장식등이다. 소파 위 천장 한쪽에 손톱만한 전구들이 줄로 연결되어있다.
"별자리처럼 생겼는데 뭔지 모르겠다. 넌 알겠어?"
"아니, 별자리 잘 몰라.. 불을 켜 볼까?"
스위치를 찾았지만, 아직 밖이 밝아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진우가 핸드폰을 꺼낸다.
"내가 이거 검색하고 있을께, 마실거 있으면 하나만 줄래? 물이나 뭐, 아무거나."
"그래, 잠깐 기다려."
지율이 집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진우가 전화를 건다. 석호다.
"형, 어디에요? 오늘 나 쉬는데, 밥 먹을까?"
"어, 진우야. 나 지금 외근 나와 있어. 서울가면 늦을것 같은데, 내일은 어때?"
"혼자 지방에 갔어? 왜? 무슨일 있어?"
"아니야, 그냥 원주. 국과수에 미팅이 있어서 잠깐 왔어. 별거 아니야."
"에이, 놀랐네. 어디 어르신들 장례식이라도 갔나해서.. 아, 맞다, 형 부모님들은 이제 다 서울에 계시지?"
"그렇지, 다들 건강하셔. 십년은 끄덕없으실걸."
그래...? 그렇다면 요양병원에 병문안 간 사람은 누구일까? 일 때문에 만나야하는, 국과수 미팅과 관련된 사람일까, 아니면...? 여전히 밝은 목소리로 시치미 떼고 석호를 떠본다.
"지율이도 같이 쉬는데, 내일 우리끼리 회식할까? 젊은 피 끼리??"
석호가 웃는다.
"난 이젠 별로 안 젊지만, 그래.. 그러던가... 내일 상황봐서 얼굴 보자. 시간은 비워둘께. 시환이도 불러야지."
목소리, 말투, 웃음소리... 별 이상한 점이 없다. 잘못 짚었나..
"알았어, 걔는 내가 연락할께. 형님들 다 빼고, 이거 비밀이다? 끊어. 가야돼..."
지율이 물 병 두개를 들고 나온다. 전화를 끊는다.
"별자리 맞어?"
물을 건넨다.
"어, 처녀자리 같애."
"그렇대? 난 잘 몰라서.. 이쁜 여자인가? 여신?"
"여신이긴한데, 좀 억울한 자리..? 알잖아, 스타벅스 그림... 강간으로 태어나서 여기저기에서 구애를 받지만, 행복하지 않은 여자.. 아니면, 납치를 당해 낯선 곳에서 반 감금 상태로 사는 여자, 그리고 제일 많이 전해지는 건, 마을 사람들에게 술을 대접했다가 독으로 오해받아서 처형당한 여자.."
"그게 처녀자리 전설들이야? 좋은 건 하나도 없네."
"뭐, 예전에는 더 힘들었겠지, 여자로 사는 거.. 아닌가?"
"하여간 특이해. 이상한 걸 걸어놨어."
지율이 밖으로 걸어나간다. 진우가 따라 나가며 중얼거린다.
"...집안 내력 같은데.."
퍽... 바로 들어오는 로우킥. 종아리를 한대 맞아주고 지율의 목에 팔을 건다. 조르는 척, 장난친다.
"너 회도 못먹지?"
"안먹어봤어. 별로 안좋아하게 생겨서..."
"그렇겠다. 그럼 밥은 가다가 대충 사먹고, 우리 바다 들렀다 가자. 아직 시간 많잖아."
"안 멀어?"
"한시간 반? 저기, 저 산만 넘어가면 바로야. 바다 본지가 언제인지.."
"강에 사는 사람이 바다까지 봐야돼?"
"커텐 안 열잖아. 어차피 밤에 다녀서 하나도 안보이고.. 가보자, 이쁜가.. 오징어 찾으면 먹고."
산을 내려간다. 빼곡히 자라나는 나무들 사이로 나뭇잎만 수북히 날린다.
"해 떨어지면 무섭겠다. 가로등도 없고.. 완전히 고립인데?"
"버섯 키우던데라 더 그렇겠지? 빛 보면 안되고, 온도, 수분 다 맞추고.. 몰려다니면서 시끄러울 일은 아니잖아."
"그렇지. 자연산 송이도 하셨으면, 아마 이런 나무 사이에서 그냥 채취하셨을테니까, 외부인은 더 못 들어왔을거야. 형님 참 특이하시네. 의사하던 사람이 이런 산속에 살면서 사체 부검이라.. 가택 수사 한번 해야 되는 거 아냐? 지하실 가면 막 시체들 매달려 있고.."
"진짜로 다음에 한번 하자. 나도 아직 제대로 뒤져본적 없어."
백밀러에서 시선을 떼지않는 지율에 당황하는 진우.
"야, 뭘 정색을 하고 그래? 농담인데."
"제일 중요한 용의자였어. 알리바이가 있어서 풀려났는데, 난, 직접 죽이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사주를 했을거라고 생각했었어."
"큰 형을 의심하는거야? 아직도?"
"글쎄... 어쨌든 나는 너무 어렸고, 작은 오빠는 현장에서 죽었고... 나이 차이가 있어서 큰 오빠는 그때 대학생이었거든. 고등학교때부터 기숙사에 나가 살아서 별로 친한적도 없고, 원래 성질머리도 그래서, 작은 오빠랑 나랑 맨날 숨어 다녔어. 내 기억에 엄청난 폭군.. 같은 거?"
"의심이 아니라 그냥 싫은 사람인것 같은데?"
"한국 돌아와서 제일 먼저, 사건 파일부터 찾아봤어. 어려서, 한국에 없어서... 그때 몰랐던 걸 좀 알게 되니까 이젠 더 못 믿겠어."
"의심의 근거는?"
"사건이 나기 반년쯤 전에, 큰 오빠가 사채를 썼어. 대학생들 상대로 해준다는, 은행보다는 비싸고 사채업자들보다는 좀 싼, 학자금을 핑계로 돈을 빌렸는데, 오빠는 정확한 답을 안하고, 아빠가 대신 대답했대. 우리 애가 잠깐 도박을 하느라 돈을 좀 썼다.. 실제로 강원도 카지노에 몇번 왔다갔다 한 정황이 있었다고 넘어갔는데, 그 인간이 그럴 사람이 아니야. 어디엔가 큰 돈을 쓴거지."
차는 산길을 내려와 도로로 접어든다. 속도를 올려 바다로 향한다.
"그럼, 그때 돈 하고, 또 다른 근거는?"
"날 죽인다고 협박했어. 여러번.."
"뭐어?"
"살인사건 이후에 병원에 누워있을때, 엄마랑 오빠 장례식장에 갔을때, 치료인 척 조사를 받을때마다, 큰 오빠가 아무것도 말하지 말하고 했어. 죽여버린다고.. 아빠랑 나랑 미국으로 나갈때도, 공항에 와서 배웅하는 척, 아빠 모르게 나한테 속닥거렸어. 절대 돌아오지 말라고, 오면 죽는다고.. 다 잊어버리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마라.."
지율의 귀에, 창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다 죽여버릴거야... 한마디도 하지마, 바로 끝이야... 넌 아무것도 못 본거야.. 네가 입을 여는 순간, 너도 아버지도 죽어.. 그러니까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마... "
단 한번도, 어린 동생을 위로를 하거나 걱정을 한 적이 없었다. 장례식에서도, 입관할때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고 주변을 살피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1순위 용의자가 된 이유였다. 그리고 마음 속의 두번째 용의자는... 아버지.
"그래서 지금 국과수에 있다고? 법의관 한 30명밖에 안되는데? 이름이 뭐야?"
"송창률."
"어? 나 아는 분인데? 만난적은 없는데, 서류로는 몇번 왔다갔다.... 송 박사님이 너네 오빠야? 근데 왜 송 씨야?"
"내가 바꾼거야. 재작년에 한국 국적 신청할때, 엄마 성으로 했어. 너무 오래되니까 엄마 꺼가 하나도 없더라고.. 성이라도 갖고 싶어서.. 엄마가 강씨야."
5.5.2 병원
고주파 치료실. 허리 치료를 받고 있는 은석. 역시나 여기저기 흉터진 살갗에 긴장하는 간호사. 옆에서 지켜보던 고참 간호사가 웃는다.
"괜찮아, 이 분 경찰이야. 깡패인줄 알았어?"
엎드려 누운 은석이 웃는다.
"죄송합니다. 제가 비주얼이 좀 험악해요."
"아니에요, 정말 죄송해요. 제가 신입이라서요, 이렇게 상처가 많으신 분을 본적이 없어요."
"원래 이쪽 사람들이 구분이 잘 안가요. 저희끼리도 신분증 열어봐야 알아요."
미안함에 얼른 기계를 정리하는 신입 간호사. 넓은 등허리에 찜질 팩을 올리고 시트를 덮어준다. 고참 간호사가 차트를 넣는다.
"근데, 차형사님, 허리 좀 쉬어야지 이렇게 계속 망가뜨리시면 정말 큰일나요. 지난번에도 선생님께 혼나셨죠?"
"쉴 수 있나요? 하는 일이 예약제가 아닌데."
뜨끈한 찜질에 저절로 눈을 감는다.
"말씀은 잘하셔... 그래도 몸 안쓰고 좀 살살 하는 일 없어요? 가만 놔둬도 4, 50 되면 아프다고 오시는데, 벌써 이러면 고생 많이 하실거에요. 진통제 새로 처방 받으셔야죠?"
"예, 그리고 수면제도 따로 좀 추가 해주세요. 많이 안 먹는데 별로 안 남았어요."
"베게는 어때요? 따뜻하니까 효과있을건데요."
"예, 전에 쓰던 거 보다 좋아요. 안그래도, 그거 하나 더 사려구요. 저보다 작은 분이 쓰실건데, 혹시 사이즈가 있나요?"
"그 제품은 그거 하나구요, 의료 기기라서 본인한테 맞아야 하는데, 선물하시는거면, 제일 낮은걸로 하세요. 지나면서 조금씩 올리시는게 좋아요. 잘못하면 더 어긋나니까.. 통증이 어떠시대요?"
"자는데 허리 아래에 수건을 말아놓고 자더라구요. 높이는 한 5센티 정도? 평소에는 움직이는건 별 지장없어 보이고, 그냥 저 초기 때 있던 압박 정도 인거 같아요."
"동료시구나, 같은 일 하시니까 잘 아시네.. 그러면 저희 경증 환자 분들께 권해드리는 거 있어요, 그거 먼저 써 보세요. 제일 첫단계거든요. 지금 말씀 하신 것 처럼 일시적인 통증이나, 잘때 풀어주는 목적으로 써요. 대신 찜질 효과는 없고, 그냥 척추 모양대로 잘 휘어지게 마디마디를 펴주는 거에요. 보통 요추가 문제인데, 혹시 출산하신 분이면, 꼬리뼈까지 제자리 넣어주는 제품을 쓰셔야 되구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럼 제일 기본단계로 꺼내 놓을께요. 상태 많이 안좋으면 한번 모시고 오세요. 그때는 진료 제대로 보시고, 더 잘 맞는게 있으면 해드리게요."
"알겠습니다. 물어볼께요."
"시간 괜찮으시면 잠깐 쉬세요. 팩 새 거 해드리고, 적외선 램프 켜놓을께요."
"감사합니다."
"끝나고 도수치료 오더 해 놓을께, 잠깐 들러서 어깨라도 받고 가세요."
"예..."
간호사들이 나가고 잠시 눈을 감아보는 은석. 갑자기 팔을 뻗어 핸드폰을 확인한다. 종태다.
/언제 들어오냐?/
/40분?/
/부페냐 뭘 그리 오래 먹어/
/보고싶죠/
/부페 먹고 싶다/
/같이 가요/
/가자고 한 사람이 돈 내는 거다/
/형수님이랑 다 같이 가요/
/나쁜 놈.. 마음 약해지게/
/형이 사요/
/알았어 빨리 와 별일 없지/
/예, 그냥 밥 먹고 있어요/
핸드폰을 내려놓고 그제야 한숨 돌린다. 남은 시간 20여분.. 한 시간만 이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딱 한시간만, 병원 침대에서, 찜질팩 얹고 열 램프 켜고... 이대로 자고 싶다. 소원이다.
5.5.3 바다
/언제 와? 저녁 같이 먹을 수 있어?/
/아니, 바다보고 갈거야. 지금 도착/
/바다를 왜 가? 데이트냐?/
/잠깐만 있다 올라갈거야. 톡 하지마 답 안 할거야/
/그럼 전화를 받던가/
/싫어, 쉴거야. 너 없는 바다에서/
/형.. 나도 갈까? 어디야?/
"미친놈.. 어느 바다인지 어떻게 알고..."
커피 두잔을 받아든다. 따뜻한 것 하나, 아이스 하나... 먼 곳을 보고 있는 지율. 아무 생각이 없다. 다 먹은 김밥집 비닐 봉지와 나무 젓가락이 가지런히 묶여있다. 앉으며 커피를 내민다.
"동해바다까지 와서 김밥 먹기는 처음이다... 멍 때리냐? 그거 좋은거래, 머리도 좀 쉬어야 한다고.."
"머리가 정말 쉬어질까? 쉬게 하고 싶어."
"나도.. 맨날 뭐가 자꾸 생각이 나."
급하게 입을 다문다. 석호, 창률... 머리속에 저절로 떠오르는 일거리들... 말을 꺼내지 말자, 쉬러 왔다..
"바다 좋아해?"
"보는 것만. 안에는 안들어가. 뭐가 있는지 몰라서.."
"너는 그럼, 취미가 뭐냐? 수배자, 수용자 검색하는 거 말고, 취미가 있어?"
"없어... 형은?"
빨대를 쪼로록 빨아 커피를 마신다. 진우도 호호 불어 한모금 넘긴다.
"나야 많지.. 찜질방도 가고, 요리도 하고, 술도 먹고.. 노래방도 가."
"혼자?"
"어, 여럿이 가면 그것도 일이야. 피곤해."
"취미를 한번 만들어봐, 운동이나.. 누구 패는 그런 운동 말고, 볼링, 테니스, 수영.. 정신 건강에 좋은거. 그것도 싱글때나 하지, 결혼하면 짬이 없대."
"내일 출근 하는 거지? 다들 힘들텐데."
"취미가 출근이냐, 특기는 철야..?"
"사건 들어온거 있대."
"말을 뭘로 듣는 건지.. 듣고는 있는건지.. 일 얘기 고만하고 머리 좀 비우자니까.."
갑자기 커피를 내려놓고 전속력으로 뛰는 지율, 바다 속으로 뛰어든다.
"왜 저래..? 물에 안들어간다며.. 엄청 차가울텐데..?"
한손에 커피를 들고 호 불며 천천히 뒤를 따라 간다. 모래사장으로 내려가, 지율이 수영해가는 대로 눈으로 따라간다. 시즌이 지나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하다. 물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몇명 되지도 않는다. 유독 빠르게, 상어한테서 도망이라도 가는 듯, 온 힘을 다한다. 헤엄쳐가는 전방으로, 혼자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 작은 물체가 보인다. 잠깐 집중해 보다가 핸드폰을 꺼낸다.
"... 순포해변 입니다. 30미터 전방에 익사체로 보이는 물체가 떠있습니다. 저희 동료가 가까이 가고 있는데, 이미 움직임이 없어 보입니다. 지원 차량 부탁드립니다... 아니요, 아직은 육안으로 확인이 불가능하구요, 5분에서 10분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지금 출동 하시는 거죠? ... 저는 서울 용산 경찰서 강진우 경위 입니다. 휴가 중입니다.."
전화를 끊고 재빨리 주변 사람들을 살핀다. 가족 단위, 연인, 친구.. 주로 산책이지, 물 속에 있는 사람은 십대 혹은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이들... 지율을 본다. 한 손으로 물체를 끌고 수영해 오고 있다. 조금씩 모양이 보인다. 튜브... 파란색의 조그만 튜브에 아마 누군가가 타고 있을거다. 저 튜브에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의 사람이라면... 어린 아이다.
다시 모래사장으로 눈을 돌려 가족을 찾는다. 어린 아이를 가졌을만한 성인 남자 혹은 여자, 아이가 수영 중이었으니 분명 이 부근에 있다. 아이를 찾고 있는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서 떠밀려 왔을까... 띠엄띠엄 물에서 놀던 사람들 사이로, 튜브를 끌고 나온다. 아무도, 지율과 아이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진우가 물속으로 걸어가 아이를 살핀다. 죽었다... 지율이 한손에 튜브를 잡고 서서, 매서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진우가 가만히 속삭인다.
"오래됬어. 익사가 아닐수도 있어."
"응.. 시반은 최대치인데, 불거나 부패한 흔적이 없어. 어제 밤 쯤에 사망했을거고, 물에 넣은지는 얼마 안지났고..."
"낮에 물놀이 하는 사람들 있을때 집어넣었겠지, 애 데리고 노는 척 하면서.. 경직 상태는?"
"비슷해. 대충 10시간 이상 지나보여. 다리가 구부러진채로 굳어서, 튜브에서 안 빠지고 계속 앉아 있었나봐."
"어떤 새끼야..."
"일단 밖으로 올리자. 신고했어?"
"어, 곧 올거야."
진우가 아이를 튜브째 안아 올려 모래사장으로 옮긴다. 지율이 젖은 셔츠를 힘들게 벗어 아이에게 덮는다. 튜브 때문에 둥그렇게 솟아 반도 안 가려진다. 사람들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다... 진우도 웃도리를 벗어 튜브 아래로 삐져나온 다리를 가린다. 여기저기 긁힌 자국이 있다. 물 속에 떠 있는 것 만으로는, 이런 자국은 생기지않는다.. 타살이다.. 경찰을 기다리는 동안 계속 주변을 살피지만, 용의자로 보일만한 수상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벌써 내뺐을지도 몰라. CCTV 있나? 도로 통제는 안되겠지?"
"이동수단도 확실치 않아. 동네 사람일 수도 있고.. 숙박업소나 식당을 먼저 뒤져보는게 빠를텐데.."
싸이렌이 울린다. 경찰이다. 119 구급차가 함께 도착했다. 사람들이 기웃거리고 그제서야 옷으로 덮어 놓은 사체를 발견하고 웅성거린다. 지율이 증언하는 동안 몇장의 사진을 찍고, 아이의 조그만 몸이 바디백에 담겨진다. 남겨진 웃을 들어 모래를 털어내는 진우. 지율의 젖은 옷이 잘 털리지 않는다. 바다에 다시 들어가 물로 헹구어 나오는데, 멀찌기에 서있는 한 여자가 눈에 띈다. 바짝 공들여 짠 옷을 다시 모래 위에 내려놓고, 다른 쪽으로 가는 척, 빙 돌아 여자에게 접근한다.
망자를 대하는 태도에도 급이 있다. 마냥 무섭고 소름끼치고 징그럽고 놀라운 제 3자... 조금은 무섭지만 슬프기도 하고, 망자보다도 자신의 일이 두려운 관련자... 시끌시끌한 제 3자들을 뒤로하고, '관련자'에게 다가간다. 어떤 관련이 있을까.. 지율이 내려놓은 커피를 집어들고 여자 옆에 섰다. 피곤한 얼굴, 헝클어진 옷차림, 진한 술냄새... 필요 이상으로 떨고 있다. 찾았다...
"커피 드실래요?"
여자가 힐끔 보고 고개를 돌린다.
"냉커피 싫죠? 날이 추운가, 많이 떠시네... 같이 가요, 따뜻한 거 한잔 드릴께요. 공범 어디 있어요? 그 놈이 시켰어요?"
감히 진우 쪽을 쳐다도 못보고, 두 손을 꼭 잡은채 얼굴이 굳는다. 그제서야 눈물이 흐른다. 순순히 수갑을 차는데, 옆에서 다다닥 뛰는 소리... 한 남자가 큰 길로 뛰어간다.
"지율아!"
돌아보는 지율에게 수신호를 한번 주고 재빨리 남자를 쫒는다. 술에 취한 남자에 비해 날아다니듯 가벼운 진우. 반항 한번 못 하고 쉽게 잡힌다. 지역 경찰에게 두 사람을 넘긴다. 명함을 전한다.
"결과 좀 알려주십시오. 궁금하면, 잠을 못자서요..."
"걱정마십시오. 수고하셨습니다."
경례를 하고 돌아서는 뒤로, 경찰차에 탄 남녀를 죽일듯이 노려보고 선 지율.. 흰자위가 벌겋게 충혈됬다. 진우가 사이로 끼어들어 시야를 막는다.
"아냐, 됐어.. 쳐다도 보지마, 눈 나빠져."
분을 삭히지 못해 숨소리도 거칠다. 보라빛이 되어가는 입술에, 온몸은 바들바들 떨린다... 미처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에서 물이 계속 뚝뚝 떨어진다. 진우가 뺨을 감싼다. 바닷물보다 차갑다. 그제서야 지율을 두 팔로 안는다. 역시나 맨 살인 진우의 팔뚝에 한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미안해, 너 춥지? 괜찮어? 어디 빨리 들어가야겠다.."
경찰차가 출발하고 진우도 지율을 데리고 돌아선다.
모래사장에서 놀았는지, 누군가 깔고 앉았던 큰 비치타올을 건네준다. 급한 김에 꾸뻑 인사하고 지율에게 두른다.
"감사합니다, 연락처 주시면 돌려드릴께요. 제가 명함을 드릴까요?"
서둘러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진우가 말한다. 수건으로 지율을 돌돌 말고 있어 지갑을 꺼낼 손이 없다.
"괜찮아요, 그냥 가세요. 추워서 어떻해요. 그래도 큰 일 하셨어요."
"차에 가서 얼른 히터 틀어요. 고생했어요.."
길을 내어주며 두 사람에게 인사한다. 모래에 던져놨던 옷가지도 가져다 준다. 꾸벅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차에 올라, 도망가듯, 아무데로나 길을 따라 밟는다. 히터를 끝까지 올린다. 이 날씨에 동해 바다 입수라니.. 역시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물속에는 뭐가 들었을지 모른다.
"휴가는 무슨... 노는 팔자는 따로 있는거야.."
진우가 중얼거린다. 눈으로 간판을 좆는다... 호텔, 호텔, 호텔... 어디로 가야 있을까..
5.5.4 노래방
"호텔을 갔어? 혀엉!! 오늘 올라 온다며?"
핸드폰 밖으로까지 목소리가 다 들린다.
"일이 있었다니까. 지율이가 쫄딱 젖어서 아무데나 보이는데로 들어왔어. 쉬고 내일 올라갈거야."
"아 뭐야? 그러니까 바다는 왜 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시환. 둘이 호텔을 가서 화가 난건지, 실수로 지율이 젖은게 화가 난건지.. 스스로도 모르겠다.
"어제 퇴원한 사람을 데리고 나갔으면 잘 챙겨야지, 가을 다 가고 겨울인데, 바다에 빠뜨리냐?"
"그렇게 됐어, 가서 얘기할께. 나도 피곤해, 그만 용서해."
"선배는? 전화 못 받어?"
"목욕해. 뜨거운 물에 좀 들어가 있으라 그랬어. 걱정말고, 인제 전화 그만해. 재울거야."
"뭘 재워? 누가 누굴 재워? 하지마! 뚝 떨어져서 자! 지난 번에 병원에서처럼 또 그러고 자면.."
시환이 말을 끝는다. 진우도 맥주를 마시던 손을 잠시 멈춘다...
"... 왔었어? 야, 날 깨우지, 그런거 아니었는데.."
"..."
답이 없다. 오해했나보나.. 미안해진다.
"그래서 화났냐? 내가 지율이랑.."
"하지마! 말도 꺼내지마. 없던 일이야."
"자식아, 이상한거 아니라고, 그날 지율이가..."
"시끄러! 와서 얘기해... 오늘, 선배 춥다고 머리카락만 건드려봐. 형 머리 다 뽑아버릴거야. 절대 안돼."
"알았어, 안해."
"가까이도 가지마. 술 한모금도 먹지 말고."
"카메라 달아놨냐? 맥주 사왔는데.."
"아, 형!!!"
"알았다고! 적당히 해! 쫌팽이 자식이.. 할 일 없으면 자빠져 자! 끊어."
전화를 끊자 더욱 열이 치솟는 시환.
"강진우... 내 이럴 줄 알았다.. 아닌 척, 여자 꼬시기 선수. 이런 날 물에 빠뜨려서 호텔을 데려가? 우와, 어제 약먹고 쓰러진 사람을.. 뭔일 생기면 서장님 잘못이야, 왜 그 인간한테 맡겨..? 가서 따질까.."
전화기와 차 키를 챙긴다.
"지금 빨리 가면, 두세시간안에 도착 할거고, 내일 다같이 지각하는 거야.."
전화를 건다. 지율과 진우, 둘 다 꺼져있다...
"아이 씨, 어느 호텔인지 알아야 가지..!? 아까 물어볼껄... 아 몰라, 집에 갈거야!"
터덜터덜 걸어나오는 시환의 눈에 노래방 간판이 보인다. 항상 지나다니는 길이지만 가 본적은 없었다. 시간을 본다. 피곤하지만, 자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 혼자 문을 열고 들어간다.
"어서오세요? 어? 경찰 아저씨!"
고시원에서 본 적 있는 존 바울이다. 이후에도 몇번 술먹고 경찰서 온 적이 있었다. 알바하나보다.
"퇴근해요? 혼자 노래 할라고?"
"예, 모처럼 일찍 끝났는데, 잠이 안와서요.. 방 있어요?"
"있지, 있지. 이리 와요, 내가 지금 막 치워서 깨끗해요."
아담한 방으로 안내한다. 연인과 둘이 붙어 앉기 딱 좋은 사이즈다...
"술 줄까요?"
"불법인데요?"
"남들 다 해요."
"저는 안 해요."
"콜라 줄까요?"
"예, 그건 하나 주세요."
"두개 해서 나 하나 줘요. 청소해서 힘들어요."
시환이 웃는다. 술 취하지 않은 존의 한국말은 언제 들어도 귀엽다.
"그러세요, 식사는 하셨어요?"
"예, 오늘은 먹었어요. 다음에 사줘요."
그가 나가고 시환이 노래를 고른다.. 요즘 매일 듣는 노래, 혼자 중얼중얼 연습하던 노래다..
20066 본 투 비 마이 베이비/ 본조비 (Born To Be My Baby / Bon Jovi)
노래를 틀고 듣고만 있는다. 화면도, 가사도, 비트도.. 다 좋은데 마음이 편하지 않다. 지율은 뭘 하고 있는지, 잘 자고 있는지, 아픈지.. 핸드폰만 들여다 본다.
"어, 이 노래 좋아해요? 나도 팬인데.."
존이 콜라를 들고 들어온다. 풀 죽은 시환의 눈치를 본다.
"안 불러요? 내가 불러도 되요?"
"그러세요, 저는 급하게 연락이 와서 들어오래요, 다음에 또 올께요."
괜히 전화라도 온 것처럼, 빠르게 걸어 나온다.
맞은 편에서 교복 입은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한쪽으로 비켜준다. 한두명이 꾸벅 인사를 하고 지나 큰 방 문을 연다. 친구들이 먼저 와있었는지 시끄럽다. 문이 닫히고 다시 조용해진다...우웅.. 낮은 노래 소리. 웃는 소리.. 방음이 잘 된나보다.
'저렇게 놀아야지, 혼자 궁상이야.. 좋겠다, 놀 친구도 있고..'
터벅터벅 오피스텔로 올라가다 말고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