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9화 마당놀이 1

놀아보자 놀아난다 놀고있구나

by 신소운

9.1.1 수산물 가공 업체



흰 비닐 옷을 입은 사람들이 줄줄이 앉아 생선을 손질한다. 쉬지않고 기계가 돌아가는 덕분에 잠시도 쉴틈 없이 손을 놀린다. 커다란 흰 모자에 플라스틱 안경, 마스크, 장갑... 손가락만 가딱거리는 일이라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기가 힘들다. 화면에서 눈을 떼고 민규가 묻는다.


"그날 출퇴근 기록하고 영상 복사해 주시구요, 지금 저쪽 세번째에 앉아 계신 분이 어머니라는 거죠? 오늘은 어머니만 오셨다?"

"예. 대부분은 아들이 오는데, 어쩌다 한번씩 어머니가 와요, 그래도 뭐라 안하고 그냥 일하시게 합니다. 둘 중 아무나 나와도 돈 나가는 건 똑같고, 사실 어머니가 손은 더 빠르시거든요."

"아들이 일하던 날 찍힌 것도 주세요. 누가누군지 알려면 필요할것 같아요."


"다 드려야죠. 근데 저 옷을 입으면, 얼굴도 안보이고.. 체격이랑 다 비슷해 보여서 구분하기 힘들어요. 저희도 3교대 다 합하면 삼사십명 넘으니까, 어떤때는 목소리 들어야 겨우 알지, 많이 헷갈려요."

"새벽에 일 끝나고, 여기서 바로 배달을 가던데, 그 트럭은 회사 겁니까?"

"저희 거는 냉동, 냉장 되는 큰 트럭이구요, 그거는 그분이 따로 하시는걸 거에요. 투잡이죠. 그런 사람들 꽤 되요. 여기서 손질하고 공장가로 싸게구매해서, 자기가 관리하는 고객한테 가져다 주는거요. 매일은 아니고, 대충 2-3일에 한번씩, 이렇게 정해놓고 몇 군데 가는데, 어디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차량 추적하면 금방 알아내는데요, 혹시 모자지간에 돈 문제나 여자 문제로, 불화 같은게 있었다거나, 그런거 들으신게 있습니까?"

"저는 잘.. 저 아래가, 직접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기계 소리가요, 서로 말도 잘 못해요. 하루종일 윙윙.. 시끄러워서, 한두시간 있기도 짜증나거든요. 아마 다른 분들도 얘기 들은거 별로 없을거에요."


남자가 USB 하나를 내민다. 요구한 영상이다. 바로 받아서 잘 집어넣는다.

"감사합니다. 이제, 저기가서 어머니를 좀 모시고 가겠습니다."

"예, 그러세요. 작업장 가시는 길 안내해 드릴께요. 이쪽으로 오세요."

사무실을 나와 복도를 지난다. 전화가 온다 석호다.


"예, 이 팀장님."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어디로 가야되죠?"

"작업장 입구로 오세요. 1층이요. 지금 막 영상 다 받고, 모시러 가는 길입니다."

"염상원은 어제, 오늘, 아무 연락이 없는거죠?"

"그런것 같습니다. 전화기도 꺼져있습니다."

"그래요, 문앞에 있습니다. 같이 들어가요..."


작업장 앞에서 만난 세 사람, 직원이 문을 열어주고 평상복 차림의 두 형사가 들어선다. 그의 말대로 위이잉 하는 둔한 기계음에 말소리가 잘 안 들린다.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는 컨베이어 앞에 앉아 작업하던 여자가 쳐다본다. 일하던 손을 멈춘다. 한 손에 작업용 칼을 들었다. 민규가 경찰 배지를 보여준다. 석호가 한손을 자켓 안주머니에 넣고 경계한다.

"내려놓으세요, 경찰입니다."


여자가 민규를 쳐다본다. 잘 안들리는 모양이다. 민규가 한번 더 크게, 손짓과 함께 말한다.

"그 칼, 내려 놓으세요!"

옆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하고, 염상원의 어머니가 체념한 듯 칼을 내려놓는다. 순순히 걸어나온다. 양쪽에서 두 팔을 잡고 밖으로 이동하는 두 사람. 뒷자리에 태우고 나서야 안경과 모자를 벗긴다.

"염상원씨 어머니 맞으시지요? 용산 경찰서 이석호 경감입니다. 저희랑 가시는 이유는 잘 알고 계시구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다. 인정의 뜻이다.. 둘 중 하나다. 아들이거나, 어머니거나...


"일단 이송해. 가서 보자."

민규를 먼저 보내고 종태에게 문자하는 석호.

/염상원 모친 이송 20분내 도착/

전화가 온다. 문종태다.

"염상원이가 없습니다. 집앞에 애들 둘 대기시키고 일단 철수하겠습니다."

"어디 갈만한데가 없습니까? 이틀째, 여기 출근도 안했다는데요."


"근처에 있는 피시방, 술집, 당구장, 편의점... 시장통 한바퀴 돌았는데 안보입니다. 서로 들어가서 어머니랑 이야기 해보고, 아들한테 직접 메세지라도 남기게 해보죠."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근데, 팀장님도 지금 들어가시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왜... 물으십니까?"


"오늘, 그 개발바닥 할애비, 송치하기로 했잖아요. 안가셨습니까?"

"강진우가 갑자기 다른 사건이 생겨서요, 제가 대신 여기로 왔습니다. 검찰 송치는 저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 알아서 잘 했을 겁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종태의 숨소리...

"... 음, 글쎄요..? 서장님이 서운하셨겠네. 기껏 방송 타게 해놨더니 막판에 쏙 빠지고 얼굴 안비춰서.."


"... 들어가서 뵙겠습니다."

"너무 빼지마요. 게시판에 경감님 멋있다고 댓글 엄청 달렸잖아요. 용산서 간판됬는데, 서장님 그렇게 배신하면 안되..."

전화를 끊는다. 문종태는, 상대하기가 어려운 종족이다... 운전석에 막 앉았는데 다시 진동이 온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전화를 받으려는데, 류시환이다.


"팀장님, 뉴스 보셨습니까? 가평 미키씨 사건, 뭔가 이상합니다."

"왜요? 무슨 일 입니까?"

"지금 지율 선배가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가평 경찰서 후배 분이랑 통화 중인데, 오늘 들어오십니까?"

"한 20분이면 도착해요. 사무실로 갈게요."

서둘러 차를 출발한다.




9.1.2 사무실



시환, 지율과 회의 테이블에 마주 앉은 석호. 조금전 뉴스를 돌려본다.


/... 이곳이 바로 유승욱 기자의 차량이 발견된 장소입니다. 사건 발생 무려 5일만에,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이런 숲속에 버려져 있던 용의 차량은, 때마침 작업 중이던 한 아마추어 사진 작가의 신고로, 발견 되었습니다.

인터뷰 1/음성변조/모자이크 : 이상하잖아요, 비싼 차가 혀연 가루 다 뒤집어쓰고.. 여기는 사람도 안 살거든, 그냥 산 속이지... 여기다 버려놓으면, 누가 찾어? 자기네 땅이니까 알고 들어왔겠지, 동네 사람들도 몰라요, 등산로도 아니고, 이렇게 깊이까지는..


기자: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숲길. 이곳은, 사방이 산으로 막혀있는데다가, 작년부터 주민들과 심한 분쟁을 겪고 있는 지역이라, 아예 입구에서부터 이렇게, 통행금지 안내문이 붙어있는 '사유지'입니다.


인터뷰 2/음성변조/모자이크 : 여기요, 그 기자네 집 땅이에요. 그 사람 아버지가 여기다가 리조트 짓는다고, 이 주변을 다 사들였어. 근데 여기 산속에 사는 사람들이 엄청 반대를 한거야. 집도 안 팔고, 맨날 데모하고, 깡패들도 오고 그랬는데? 근데 그 기자가, 지 아버지라고 아주.. 그런건 하나도 취재 안하고, 맨날 뭐 외부 자본이 들어오고, 가평이 발전하고, 그딴거만 계속 하더라고...


기자: 가평군 사룡리 주변은, 암과 같은 난치병을 치료하는, 신비한 마을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많은 환자들이 이곳에서 자연주의 생활을 하며, 그 성공 사례를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곳은, 대대로 무속인들을 배출해온, 영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조선시대부터 여러 왕들이 직접 행차를 나와 재를 올리고, 사후에는 왕릉을 짓기도 했는데요,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이제 한국에 몇 남지 않은, 명당 중의 명당입니다.


인터뷰 3/ 안겸오 풍수지리 전문가 : 아직도 산에 가면, 그런 흔적들이 굉장히 많아요. 나무마다, 바위마다, 뭐 줄줄이 묶어놓고, 달아놓고.. 종교인이나, 아예 모르는 사람들한테야 그저 미신이겠지만, 풍수적으로 그런 '기'가 존재하는 땅이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거죠. 그런 신성한 산을, 다 깎아서 골프장을 만들고, 리조트를 차린다, 그러면 반대할 사람 많죠...


기자: 늦은 밤 음주운전으로 행인을 치어 사망하게 하고, 아버지를 통해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현직 방송 기자 유승욱씨는, 현재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이미 사망한 시신을 발견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던 유 씨는, 경찰에서 찾아낸 본인의 차량과, 출처를 밝히지 않은 짧은 동영상 앞에서, 모든 걸 털어놓았습니다. 3분도 채 되지않는 이 짧은 영상에서, 술에 취한 유 씨는, 쓰러져있는 피해자에게 다가가 생사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전 군의원 줄신의 아버지 유 모씨에게 전화를 결어, 은폐를 부탁합니다.


영상/ 아둠속에 왔다갔다하는 핸드폰 불빛/ 만취한 목소리 - 유승욱 : 아, 아냐, 안죽었어.. 살았어, 살았어... 근데, 신고 할까?.. 술 마셨지, 좀 마셨는데.. 아버지? 아버지한테 전화하라고? 경찰에 아는 사람.. 많지, 경찰 다 알지../


석호가 노트북을 덮는다. 난감한 표정의 시환...

"무슨 얘기입니까, 이게...? 보고하신 거랑, 많이 다른데요? 가평 경찰서에서 발표한게, 이겁니까?"

"자체 수사 결과가 그렇다는데, 사실, 결과는 별 차이 없구요, 그 사람은 맞는데.. 저희가 갔을때 하고 말이 많이 다릅니다."

"뭐가? 알아듣게 얘기해봐."

종태가 다가와 앉는다.


"일단, 저 동영상은 그때는 있지도 않았고, 저걸 누가 찍은건지, 누가 보냈는지도 전혀 언급이 없구요.. 차량도, 저희가 먼저 찾아서 경찰에 넘겼어요. 용의자측에서 산속에 숨겨놓은 걸 경찰이 발견했다, 그런거 아니구요.. 그리고 저희는, 저 차량이 발견된 땅에 대한 얘기는, 아예 몰랐습니다.. 차가 왜 저기 가있는지, 그게 수상합니다."


"너네가 본건 어디였는데?"

"그게... 사고 후에, 카센터나 폐차장으로 넘겼을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설악 파출소 계신 분한테 찾아달라고 해서, 그 분이 가져 왔어요. 제가 좀 들여다보고, 증거 될만한거 몇개 수집하고 나서, 아침에, 그분한테 다시 부탁했거든요, 가평 경찰서에 연락해서 차량 넘기라고.."

종태가 발끈한다.


"처음부터 넘기지, 왜 니들이 증거를 함부로 일루 가져갔다가 절루 가져갔다.. 왜 그러고 돌려줘?"

지율이 답한다.

"그건..제가, 그쪽 경찰을 못 믿어서... 혹시 다 짜고 할까봐요. 몇개 확보하고 넘긴 다음에 그 사람들이 어떻게 나오나 보려고.."

"야, 니들이 그걸 끌고 댕기면, 잘못하면 너네가 사건 조작했다 소리 듣는거야. 미쳤어?"


"죄송합니다. 알고는 있는데, 일단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놓아야 할 것 같아서.."

"담당 형사도 알어? 니들이 차량 빼돌린거?"

"뉴스로 봐서는 전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그 설악 파출소 경사님한테, 전화해서 차량 넘기라고 했는데..."

"누군가가, 차를 저기에 숨겨놓고, 죄를 더 뒤집어 씌우고 있는 겁니까?"

석호가 묻는다.

"모르겠습니다. 확실한건, 저쪽 용의자 가족 외에도, 이 사건을 조작하려는 다른 세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환의 말에 더 답답해진 종태가 책상을 두드린다.

"아, 전화를 해 봐, 차 맡긴 사람한테? 뭐라 그랬어, 설악 파출소? 거기 있다며?"

"그게... 연결이 안됩니다. 파출소에 전화해봐도, 어제부터 병가 중이라고 하고.. 그 사람 뿐 아니라, 원래 처음에 사건 일지를 거짓으로 작성했던 순경이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은 벌써 며칠 전에, 휴직계를 내놓고 사라졌다고 하구요..."
"이건 또 무슨... 그럼 걔네 둘이, 너희 둘 이용해서 가평 경찰서를 오게하고, 지들은 차 숨겨놓고 싹 발을 뺐다? 경찰이? 어디로?"


"어디 있는지.. 한군데 알 것 같은데, 직접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만.. 다녀오겠습니다."

지율이 허락을 구하는 듯한 얼굴로 석호를 본다. 그 역시 뭔가 수상하지만, 동시에 불안하다.

"글쎄.. 이젠 우리 사건도 아니고.. 그쪽에 이런게 이상하다, 전달만 해 주고, 알아서 하게 놔둬야 하지 않을까?"

지율이 잠시 생각하다 말을 잇는다.


"담당 형사 분, 불쾌하지 않게 주의 하겠습니다. 핑계를 대자면 그쪽에 외사과도 없고, 부검 결과도 나올때 되었으니까, 겸사겸사 사건 마무리한다 생각하고.. 일단은 저희끼리 조용히 가서, 다시 한번 둘러봤으면 합니다. 연락 안되는 그 두 사람도 찾아보구요."

시환도 끄덕끄덕 동의하고 나서자, 석호가 어렵사리 허락한다.

"좋아요, 뭐 두 분이 제일 잘 아시니까,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그쪽에서 요청한건 아니지만, 두 분이 뭐라도 더 찾아내면 도움도 될거구요."


"대신!"

종태가 나선다.

"강지율이! 너, 복잡하고, 이상하고, 오래 걸릴 것 같으면, 바로 올라와. 왔다가 다시 가더라도, 일단 너희 둘이 하기에 힘들겠다 싶으면 돌아오는거야.! 나두 알아, 네 말이 맞아. 분명히 뭐가 있어, 그런데... 남의 싸움에 맨몸으로 끼어들지 말고, 딱 우리 일 까지만, 거기 까지만 해. 알았지?"

"알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지율이 일어선다. 따라 나서는 시환.

"류시환이.. 잘 챙기고."

"예."

"아니, 지율이 말고... 너! 류시환이 말이야! 지율이 잘 챙겨! 혼자 두지 말고."

"아, 저요? .. 예,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걱정이 어떻게 안되냐? 막둥이 둘만 보내는데.. 그것도 좀 부족한 놈 하나, 과한 놈 하나.. 부른다고 바로 달려가는 거리도 아니고... 조심해!"



9.1.3 로비




계단을 내려가는 두 사람. 아래층이 시끄럽다.

"내가 몇번을 말해? 여기 이 입구가, 사람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데야. 용산 경찰서의 얼굴! 이런데는 여경 한 두어명 앉혀서 일 보게 하라고 그렇게 민원을 넣어도, 들은 척을 안 해? 시민을 뭘로 보는거야, 도데체? 서장 나오라고 해, 내가 직접 이야기 하게!"


지율이 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시환이 가방을 고쳐 맨다.

"신경쓰지 마세요. 저기 저 할아버지에요, 상습 악성 민원러... 한달에 50건도 넘어요. 수시로 저렇게 찾아 오는데, 업무가 안되요. 툭하면 고소, 고발... 민원 엄청 좋아해요."

70 전후로 보이는 어르신이다. 물이 좀 빠졌는지 노르끼리해진 갈색 머리에 양복을 차려 입었다. 세월이 보이는 서류 가방을 들고, 제법 광을 낸 구두까지 갖추었다.


"없어 보이지는 않는데, 뭐가 불만이래요?"

"너무 있어서 불만이죠, 모든게.. 자기 마음대로 안되니까."

혼자만의 고성이 로비를 가득 채우고,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든다. 진정 시키려는 경찰들 몇이 나서본다.

"손 대지 마! 나는 선량한 시민이야! 내몸에 손 대면 다 고소할거야!"

"선생님, 전에 말씀 드렸잖아요, 자꾸 이러시면 저희도 어쩔수 없이 보호자 부르고, 정식으로 조사실로 모셔야 한다고."


"협박이야? 내 세금으로 월급받는 것들이 감히 어른을 협박해?"

사람들 옆으로 돌아서 나가는 지율, 현관 입구에 도달한다.

"저 괴물 같은 놈 치우라고 몇번을 말해? 저게 경찰이야? 프랑켄슈타인도 저렇게는 안 생겼어! 니들 경찰 놈들 가뜩이나 이미지 안좋은데, 저런 애 내세워서 동정받겠다? 웃기지마!"

멈추어선 발걸음 그대로, 지율이 돌아선다... 괴물.. 프랑켄슈타인... 빠르고 큰 걸음으로 어느새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든다. 시환이 말려보지만 늦었다.


"누구 말씀하시는 겁니까?"

할아버지가 돌아본다. 지율을 발견하고 위아래 훑어본다.

"넌 뭐야? 경찰이야?"

"누구보고 괴물이라고 하시냐구요? 저희 동료 욕하셨습니까?"

"그래, 저 자식! 내가 저 괴물놈만 보면 밥맛이 떨어져! 골방에 사무직으로 보내라니까!"


그가 가르키는 쪽을 본다. 이찬호 순경이다. 전신 화상을 입고 쉬다가 겨우 복직했다.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에 말 대답도 못하고 가만히 서있기만 한다. 가뜩이나 불긋불긋한 얼굴을 더욱 수그린다. 어떤 기분일까.. 지율이 핸드폰을 꺼내 녹음 버튼을 누른다.

"녹음합니다. 지금부터 하시는 모든 말씀은 법정에서 불리할 수 있습니다. 다시 확인합니다. 지금, 저기 근무 중인 저희 동료 경찰에게 괴물 운운하셨습니까?"

"이거 불법 녹취야. 네가 뭔데 허락도 없이 녹음해? 그거 당장 꺼!"

남자가 달려든다. 재빨리 손을 치우며 계속 녹음을 진행한다.


"통보 드렸고, 증거 확보 중입니다. 재판에 사용합니다. 지금 저희 경찰 동료에게 밥맛 떨어진다, 안보이는 곳으로 자리 옮겨라, 소리치셨습니까?"

"녹음 꺼! 너 이거 인권 침해야!"

"인권은 인간한테 있습니다. 너한테는 없으십니다. 모욕죄, 명예훼손, 공연성 추가한 면전모욕, 제 3자와의 비방, 공무집행방해, 공권력 침해.. 현행범으로 즉결심판 갈까요, 영장 받아서 정식 재판 갈까요? 그동안 민원을 많이 넣으셔서, 신원도 확실하시고, 시간낭비 없이 최대한 빨리 진행 할 수 있습니다."


"이게 어디서 배워먹은?"

남자의 주먹이 얼굴에 날아든다.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맞아준다. 남자를 포함, 둘러싼 사람들이 한순간 당황하는 사이, 재빨리 몸을 돌려 세우고, 수갑을 채운다. 시계를 본다.

"당신을 2021년 11월 1일 14시 25분 부로 경찰 폭행, 공권력 침해, 모욕죄 등의 혐의로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변명의 기회가 있고,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으며, 체포적부심을 법원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 넘기세요. 카메라 찍힌거 다 제출하구요. 저 외근 갑니다. 다녀와서 조사 받겠습니다."


옆에 있던 여자 경찰이 나선다.

"다녀오십시오, 이분은 제가, 일단 생활안전과로 모시겠습니다."

처음보는 얼굴이다. 시환만큼 큰 키에 제복을 입었다. 홍리화... 계급장을 보니 경장이다.

"저 오늘 첫날인데, 어차피 지각입니다. 피의자 넘기고, 천천히 출근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부탁 좀 할께요. 이 순경이 안내 좀 해줘요."

비로소 다가오는 찬호, 지율과 시환에게 인사한다. 리화와 눈인사를 하고 안쪽으로 이동한다.


"선배, 괜찮아요?"

시환이 얼굴을 살핀다. 눈 밑으로 벌겋게 부어오르기 시작한다. 손을 밀어낸다.

"일부러 맞은건데요, 뭐.. 그래야 끝나죠. 늦었죠? 빨리 가요."

종종 걸음으로 주차장에 뛰어가는 지율. 시환이 팀에게 문자를 넣는다.

/1층 로비 강지율 민원인에 폭행 당함, 이찬호 순경한테 맡기고 갑니다 처리 좀.../


한마디 덧붙인다..

/죄송합니다/

바로 벨이 울린다. 문종태다. 차에 오르며 스피커 폰으로 받는다.

"야! 지율이 잘 챙기랬지? 출발하기도 전에 무슨 짓을 하는거야??"

지율이 전화를 끊어버린다.

"출발! 갈길이 멀어서 전화는 사절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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