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10화 얼음 땡 1

정지... 모든게 멈춘다

by 신소운

10.1.2 사무실




소파에 기대어 앉은 서장. 머리를 뒤로 젖힌채 한숨만 쉰다. 조 팀장과 문종태가 고소장을 살피고 있다. 머리를 움켜쥐고 아무 말 없는 시환.. 대책이 없다. 은석도 일하는 척 컴퓨터 앞에 앉아는 있지만, 손놓은지 오래다. 책상에 기대고 선 석호... 조 팀장이 고소장을 툭툭치며 짜증을 낸다.

"여기 다 써있네, 네가 수능 기출 문제집까지 사주면서 응원했다고.. 이래도 고등학생인걸 몰랐다고?"

"4년제 편입하던지, 다시 수능보던지 한다고.. 그래서 공부하라고 사줬어요. 전문대 나왔는데, 취업이 안되서 알바 중이고, 부모님도 자꾸 4년제 가라 그런다고.. 공부하기 싫은데 하는 척 해야된다 그래서 이왕 하는거 열심히 하라고.."

변명하는 시환을 노려보는 석호. 역시 저 놈은 뭘 해도 모자란다..


"야, 생일이 2003년 4월이야. 작년이면 만나이로 열여섯, 열일곱.. 고2 때 만나서 1년을 자고 댕겨? 너 제정신이냐? 장님이야? 딱 보면 어린애인거 몰라? 말투, 옷 입는거, 화장하는 거... 적어도 스무살로는 안보였을거 아냐?"

"클럽에서 만났어요, 당연히 성인인 줄 알지 누가 고딩인 줄 알아요?"

"걔냐? 12만원?"

종태가 시환을 노려본다. 조 팀장이 놀란다.


"뭐야? 성매매야? 원조교제?"

"아, 진짜.. 그런거 아니구요.. 점점 더 이상한 놈 만들어.."

"이상하지, 그럼, 네가 정상이야?? 이걸 그냥!"

종태가 크리넥스 통을 집어 던진다. 피하는 시환. 언성 높이는 종태.

"똑바로 하고 다녔어야지! 부킹해서 만났으면 그자리에서 잘 놀고 원나잇이나 하고 말지, 왜 질질 끌어서 이 사단이야? 부킹하는 것들중에 멀쩡한 놈 하나라도 있어? 다 너같은 놈들이지!"


"걔가 따라 다녔어요. 집에 찾아오고..."

"시끄러! 너 어쩔거야, 이제? 경찰이 강간? 그것도 미성년자??"

조 팀장의 추궁에 종태가 감싼다.

"뭘 어째, 밝혀야지. 여자애가 먼저 나이 속였잖아. 클럽이랑 싹 뒤져서 원래 그런 애인거 증인 세워. 걔 알바하는데랑 학교랑 다 뒤져서 나이 속인 적 있는지, 다른 남자들 있는지.. 집구석에 붙어있는 애는 아닐거 아냐? 어디서 누구랑 자고 댕기는지, 다 파."


서장이 끼어든다.

"다 파면? 성폭행은 무혐의 받는다고 쳐. 그래도, 미성년자 끼고 자빠져 자는 새끼를, 너 인제 얼굴 어떻게 들고 다닐래? 아래층에 벌써 난리 났어. 고소장 접수 할 때 부터 이미 뒤집어졌다고.. 이거 기자들 붙으면, 우리 문 닫아야돼. 내가 먼저 옷 벗어야 된다고, 알아?"

"여기, 이거, 마지막 날.. 술에 취해 항거불능 상태인 피해자를 집으로 데려가 강간했다... 이건 뭐야? 이거 지난주야. 며칠 되지도 않았어."


"그날, 걔가 경찰서 앞에 찾아왔어요, 많이 취해서. 집을 모르니까 데려다 줄수가 없었고, 모텔에 혼자 재우자니 그것도 걱정되고.. 그래서 저희 집이 가까우니까 업고 갔어요. 선배한테 물어보세요, 같이 있었어요. 선배랑 진우형이랑 셋이 한잔 한다고 나가다가, 걔가 꼬장부려서 저는 애 업고 먼저 집에 가고, 둘이 딴데 갔어요."

"걔들도 네가 업어가는 거만 봤지, 집안에서 뭘 했는지는 본 게 없네."

조 팀장이 부정한다.


"진짜 아무것도 안했어요. 걔는 술 취해서 아래층 소파에서 자구요, 저는.. 저희집이 복층인데, 난간이 없어요. 혹시 밤에 돌아다니다가 떨어질까봐, 제가 계단 맨 아래칸에, 앉아서 잤어요. 깊히 잠들까봐 눕지도 않고 벽에 기대서.. 그러다가 새벽에 팀장님 연락와서 러시아 유학생 살인사건, 거기 출동했구요."

"그딴짓 하느라 잠 못자고 급하게 오다가 나랑 지율이랑 차로 박아버렸구나."

조 팀이 빈정거린다. 한마디 하려던 시환. 아직도 조팀장 손에 감겨있는 붕대를 본다.

"죄송합니다..."


"죄송할게 넘쳤어, 그딴거 안 죄송해도 돼. 이거나 좀 생각해봐."

종태가 궁시렁 거리며 고소장을 던진다. 다 구겨진 걸 주워다 무릎에 올리고 손으로 펴는 시환. 한심한 얼굴의 종태..

"뭐 이쁘다고 그걸 펴고 앉았어, 밸도 없냐.. 아후, 욕도 아까워, 이새끼는 ... 인제 쪼끔 경찰 짓 한다했더니.."

"새끼 새끼 하지마요, 삼촌 새끼 아니에요."

"너나 삼촌삼촌 하지마, 쪽팔려."


"시끄러, 족보는 나중에 따져. 그래서, 이거 누가, 뭘, 어떻게 할거야? 너는 진짜 몰랐던 거지? 그렇게 믿고 진행한다? 나중에 딴 소리 나오면 넌 죽어."

서장의 말에 시환이 끄덕거린다.

"우리 다 달려들어서 너 몰랐다, 속았다 했는데 나중에 다른 증거 나오면 그땐 다같이 끝장이야. 다른 여자애들 얽힌거 있어?"


"없어요, 얘도 헤어진지 한참 됬어요. 지가 딴 남자 생겼다고 그만 만나자 그랬다가, 요새 갑자기 알짱거린거에요. 선배하고 같이 다니는 거 몇번 봤다고, 그거 시비걸고.."

"지율이랑? 그럼 경찰서 근처에 돌아다녔다는 얘기네, 들어왔다 나갔다.. 은석아, 근처에 CCTV 뒤지라 그래. 여자애가 숨어있거나 따라 다니는 거 찾아보고, 애들 몇명 풀어서, 시환이 다니던 클럽 어디야? 거기랑 그 일대 싹 털어."

"다니던 클럽이 아니라 그때 딱 한번.."

"시끄러! 너, 걔랑 가던 클럽, 술집, 노래방.. 걔 단골 가게들 다 말해. 친구들, 알바하는 데, 모텔, 학원.. 야, 미장원, 옷가게.. 또 뭐있어.. 화장품 가게.. 성인이라고 뻥쳤을거 같은데 다 뒤져. 인스타, 페북, 통화기록 요청하고, 핸드폰 포렌직 넘겨서 문자, 사진.. 전송한거 다 챙겨."

"예..."

풀죽은 시환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하고 일어선다.

"뭘 예 야.. 넌 빠져. 네 사건 네가 조사할래? 짐 싸. 결론 날때까지 출근하지 마."

"예? 조 팀장님! 결론도 안 났는데 제가 왜 쉬어요?"

"미성년자 성폭행!!! 그것도 1년동안 지속됬어. 너 이거 강력범죄야. 경찰이 성범죄자인데, 너 같으면 일 시킬수 있어?"

"그래, 시환이 들어가고... 기자들 조심해. 이제쯤 얘기 다 샜을거야. 조 팀장도 애들 입단속 시켜."

서장이 단호하게 자른다.


"삼초.. 아니, 서장니임!!"

"그리고 이 팀장!"
"예."

"너네 파트너 다시 짜. 리화도 왔으니까, 일 잘 배울 수 있게 알아서들 잘 붙여주고.. 류시환이는, 언제 결론날지도 모르니까, 일단 사건에서 다 빼."

"서장님!"


"뭘? 당연하지. 강간범한테 여자 파트너를 주냐?"

조 팀장의 말에 종태가 발끈한다.

"야, 조상현! 말씀이 심해! 누가 강간범이야?"

"형님은 왜 이랬다 저랬다 해? 저 자식이 사고 치고 다니잖아!"

"여자애가 먼저 나이를 속였잖아! 요즘 애들이 고딩인지 대딩인지 구분이 가냐?"

"가지! 경찰 새끼가 그걸 몰라? 열여섯살이면 애야, 애! 내 딸이 이제 고2 올라간다. 그런 어린 애들을 끼고.."


딸 얘기에 더 할 말 없는 시환을 보며 종태에게 한마디 한다.

"형님 딸도 중3이잖아. 아우, 그렇게 생각하니까 열이 확 나네.. 이딴 새끼들이 꼭 몰랐다, 속았다, 한두번이야?"

"야! 시환이는 아니라고! 누구랑 비교질이야?"

"얘는 뭐, 날개라도 달렸나? 사내 새끼들 다 똑같애. 맨날 지율이 따라다니면서 꼬실때도 마음에 안들었어. 선배든, 파트너든, 일하는 사이지 무슨 지 기생 끼고 다니듯이 그냥.. 류시환이 너, 너 내가 언젠가 크게 사고 칠 줄 알았어."

"시끄러, 나가! 너네 집 가, 우리 팀도 아닌게 왜 여태 여기서 뭉개? 꺼져!"


조 팀장을 내쫒으려는 종태. 안 밀리는 조 팀장.

"어, 어? 손 대지? 아주 건들기만 해 봐, 형님이라고 안 봐줘."

"시끄러, 왜 또 니들끼리 싸움질이야, 정신없게??"

서장이 소리친다.

"저 자식이 우리 애 한테 지랄이잖아요!"

"그러니까 애들 관리 잘 하라고! 빨리 지율이 넘기든가!"

"그게 이 일이랑 무슨 상관이야? 지율이를 너한테 왜 넘겨?"


"시끄럽다고!!!"

서장이 소리친다.

"니들은 아직도 맨날 싸움질이야!! 아우,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더니, 둘 다 꼴보기 싫어! 상현이 나가! 그리고 너! 문종태! 상현이가 너보다 후배래도 이젠 상관이야! 똑바로 해!"

멈추는 두 사람. 계급 얘기만 나오면 어색하다. 종태가 비아냥거린다.

"죄송합니다, 조상현 경감님. 나가십시오. 여긴 제 구역입니다."


한마디 하려다 참는 조 팀장이 소지품을 챙겨 궁시렁 거린다.

"성질머리.. 꼭 한소리 들어야 정신 차리지."
"좋게 말하는데 뭘 또 궁시렁거리십니까?"

"좋게 말하기는..? 형님이 나한테 좋게 말한적이 있냐? 오늘 나한테 말 걸지마. 접근 금지야."

"너나 우리 애들한테 지랄하지마, 확.."

"야!"


서장의 고함에 조 팀장이 먼저 나가고, 종태도 털썩.. 자리에 앉는다. 시환이 가까이 옮겨 앉으려 다가온다.

"서장님, 제가요.."

"스톱! ... 가까이 오지마! 나 아직 화 안 풀렸어. 손 안 닿을 거리에 앉어있어."

한 자리 멀리 앉는 시환.

"그러니까 서장님, 제가, 채은이 만나서 잘 얘기 해 볼께요, 제가 사과하고, 고소 취하하고.."


"걔가 문제가 아니야, 지금. 미성년자라서 걔네 부모가 소장 냈어. 너 그거까지 감당할 수 있어?"

"해야죠, 할께요. 제가 싹싹 빌어서라도, 아니면 합의를 해서라도 해결할께요. 시간을 좀 주세요."

"아냐, 그러지 말고, 너 시간 많이 줄께. 쉬어. 아주 푸욱 쉬고, 이거 누가 맡을래? 너희가 할거야? 여청이야? 조상현이는 열받아서 안돼. 빼버려.. 저 새끼 저러다가 없는 것도 뒤집어 씌우겠어."

"저희가 해야죠. 강 형사는 빼고, 저희끼리 수사하겠습니다."

"그래, 지율이는 다른 거 주고, 리화랑 은석이랑 나서서 해결해."


"아, 선배.."

시환이 시계를 본다. 조용히 한숨을 쉬는 석호.. 한심할 뿐이다.

"왜? 지율이 뭐?"

"다 끝났을거에요, 데리러 가야되는데.."

"야, 이 새끼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니가 지금 걔 신경 쓸 때야?"

종태가 폭발한다.

"그게 아니고, 의사가 하루이틀 잘 쉬게 하라고.."


"시끄러! 너 걔한테서 떨어져! 너 어제도 회식하다 말고, 지율이 너네 집으로 끌고 갔지?"

"끌고 간게 아니라.. 아니, 선배가 무슨.. 제가 끌고 간다고 끌려가요? 어제 종일 외근하면서 하혈하고, 허리 아프고.. 그래서 편하게 자라고 데려간거에요."

"편하게 자? 네가 옆에 딱풀처럼 딱 붙어있는데 뭘 편하게 자?"

"아픈데 사무실에서 자게 할 수 없잫아요? 그리고 자꾸 병원 안가고 버티니까, 아침에 데려갈라고.."


"난 너, 처음부터 마음에 안들었어. 지율이 약 발라준다고 여자애를, 여기저기 손 푹푹 집어넣고 쪼물락거리고... 말로는 선배, 선배, 하면서 아주 지 여자 취급하고.. 손가락 다 붙어있는 애를 사이다는 왜 따줘? 너 어제 봤지? 강진우는 꼭지 돌때까지 술 먹어도 여자애들한테는 절대 안그래. 너는 맨정신이어도 꼭 여자애들한테 비비적거려."

"무슨 여자애 '들'... 제가 언제.."

"시환이 너, 여기 발령 받았을때, 내가 분명히 여자 문제로 사고치지 말라 그랬지?"

서장이 끼어든다.

"다른 건 잘 하면서, 여자만 벌써 몇번째야? 너, 니 아버지랑 나랑 아주.. 그것 때문에 미치겠어."

"서장님, 그거 아니에요, 아버지가 오해하는 거에요."

"내가 너 처음에, 은석이랑 파트너 하면서 일 배우라 그랬어. 네 입으로 뭐라그랬냐? 강지율이가 건강상의 문제가 좀 있다고, 옆에서 챙겨줄 사람이 필요하다면서, 니가 '도와줘야' 한다며? 그때도 솔직히 내키지 않았지만, 원하는대로 해줬어. 어릴때 여자 쫒아다녔던 거는, 이제 좀 컸으니까 괜찮겠지.. 이 팀장 기억나지? 내가 저자식 평 안좋다 그랬잖아?"

"예, 알고 있습니다."

"삼촌은.. 서장님은 그런 얘기를 왜 팀장님한테 해요?"


"네 직속 상관인데 당연히 알고 있어야지. 내가 특별히 아끼는 놈이니까, 단점까지 잘 보안해 주라고 미리 알려줬다. 왜? 그런게 챙피하면 고쳤어야지. 하다하다 이제는 미성년자냐?"

"아이 씨.. 몰랐다니까요.."

"해결해! 다 해결하고, 이제부터 적당히 좀 해. 여자애들, 특히 강 형사! 옆에서 달라 붙어서 자꾸 꼬시지마."

"뭘 꼬셔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선배는 눈 하나 깜짝 안하는데..."

"착한 척, 좋아하는 척, 들이대지 말라고. 너 이번 일 지율이가 알면 기분이 뭐가 되겠냐? 양다리도 아니고, 챙피하게 이게 뭐하는 짓이야?"


"선배도 걔 알아요, 전에 얘기 했어요.. 그리고 요 앞에서 만난 적도 있고.."

긴 한숨을 쉬며 의자 속으로 파묻히는 시환. 최악이다..

"좋은 놈인줄 알고 있다가 뒤통수 맞은거야. 꼭 너 같은 놈들이 뒤에서 딴짓이지."

"저 인제 어떡해요? 선배가 실망하겠죠?"

"지금 그게 중요하냐? 네 인생은? 경찰 일은? 부모님은? 그 여자애 부모는?"

"....."


"야, 홍리화는 어디갔어? 왜 안들어와?"

갑자기 생각난 듯, 종태가 묻는다.

"제가 병원 보냈습니다. 강 형사 시술 끝나고, 저희 집으로 데려다 놓으라고 했습니다."

"팀장님네요? 왜요?"

시환이 고개를 번쩍 든다.

"우리 집 바로 저긴데?"


"잘했어, 며칠 시끄러울거야. 신세 좀 지자."

서장이 일어선다.

"잠깐만요, 서장님? 팀장님! 저희 집 요 앞이라구요."

"그러니까 안된다고! 폭탄 터질거야. 기자들 몰려 올거니까, 너도 차라리 짐 싸서 본가로 들어가."

"싫어요. 안가요. 잘못한것도 없는.."


말을 멈추고 슬쩍 눈치를 본다. 누구의 시선도 곱지 않다.

"... 잘못이 없지는 않은데, 일부러 그런거는 아니니까.."

고개를 저으며 나가려는 서장과 그를 따라 일어서는 종태, 손바닥으로 시환의 머리를 한대 퍽... 갈긴다.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도 안하고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이는 시환.. 철커덕.. 문이 열린다. 지율이다. 눈치를 보며 따라 들어오는 리화.


"다녀왔습니다. 여기 계셨네요, 말씀 드릴게 있습니다. 진우 선배가 맡은 환전소 살인 사건이요.."

멍한 얼굴로 리화를 보는 사람들.. 리화가 변명한다.

"사건 있으시다고요, 집으로 안 들어가신다고 하셔서.."

"진우 선배 전화 받았습니다. 통역 문제로 수사가 진행이 안된다고요, 괜찮으시면, 제가 조인 하겠습니다. 본청 인터폴에 문의했는데, 파견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화상으로는 도와줄 수 있다고 합니다. 저희한테도 그게, 한번에 녹화까지 뜨고 편할 것 같아서, 진행했으면 합니다."


침묵... 서로 눈만 껌뻑이며 분위기만 본다. 지율은 서장을 본다.

"서장님...? 통역하시는 분들이요, 스케줄이 안되서 인터넷으로, 화상으로만 해도 되냐구요. 허락하셔야 진행합니다."

"... 해.... 스케줄 안되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진우랑 아예 조사실 하나 잡아서 빨리 처리해."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태연하게 자리로 들어가 앉는 지율. 진우에게 문자한다..


"강진우가 너한테 전화를 했어? 병원 간거 몰랐나?"

종태가 묻는다. 여전히 핸드폰을 보며 건성으로 답하는 지율.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시환이 사고 친것도 모르겠네."

슬쩍, 지율의 표정을 살핀다.

"그건 벌써 들어서 알지 않을까요? 단톡방에 난리 났는데?"

지율이 컴퓨터를 켜며 핸드폰을 흔들어 보인다. 씨익 웃는다. 당황하는 사람들.


"웃어? 이게 웃을 일이야?"

서장 말에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사무실을 둘러본다.

"아아, 그것 때문에 여기 계셨어요? 뭘 그딴 걸로.."

"그딴 거...?

"왜, 그런거 있잖아요... 문 형사님, 아드님이 수능보다 컨닝해서 대학 못간대요. 전과자 된다던데요?"

"뭔 소리야? 나 아들 없어. 딸 하나야."


"그러니까요, 그런거에요. 루머, 거짓말, 구설수... 자기 그거 알어? 류시환이가 미성년자 성폭행해서 구속된다며.. 어머, 그렇대? 걔 그럴 줄 알았어, 오호홍.. 아니잖아요. 그럴 줄 몰랐잖아요. 대신 우리는, 시환씨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잖아요. 왜 걱정이 돼요? 아닌데..?"

"야, 그래도 사람들이 이런거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어? 기사 뜨면 시환이 끝이야."

"뭘 끝이에요, 아니라고 다른 기사 내주면 되지. 그러니까 빨리 일해요. 누가 먼저 증거를 잡느냐에요. 서장님 매스컴 타느냐, 마느냐.. 에이, 아직 안 왔네.."

"뭐가 와?"

"오는 길에 누구한테 부탁을 좀 했어요, 이 동네 술집, 클럽.. 여자애 사진 보여주고 단골 가게 찾아보라고.. 아직 건진게 없나봐요."

"너 빠져! 시환이랑 너무 친해."

종태가 잘라 말한다. 지율이 종태를 본다.

"문 형사님은... 차 형사님 문제 생기면 쏙 빠지십니까?"


"강지율 잘 들어. 첫째, 너네는 너무 어려. 일 보다 감정이 먼저야. 이번 일도 이 새끼 잘못은 안보이고 감쌀 것만 궁리하지? 사건부터 봐. 둘째, 이쪽 경험이 없어. 이런 문제는, 잘못 건드리면, 경찰이 지 식구 감싸기 한다고, 대한민국 경찰 전체가 욕 먹어. 초짜들이 나설 일이 아니야. 그리고 세째... 차은석이는, 이런 거지같은 사고 절대 안쳐."

지율이 노트북을 챙기며 천천히 일어선다. 종태와 서장, 은석, 리화 그리고 석호까지, 한바퀴 주욱 둘러본다. 소파에 등지고 앉은 시환에게 시선이 멈춘다.

"문 형사님 잘 들으세요. 저는 첫째, 둘째, 세째, 다 합해서.. 류 형사 잘못 없습니다. 아시잖아요, 피해자에요. 팩트니까, 수사 방향부터 다시, 똑바로 잡으세요."

간단한 짐을 챙겨 나가는 지율. 석호에게 보고한다.

"환전소 사건 현장 갑니다. 강진우, 오민규 거기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사진만 보는 것 보다, 제가 직접 둘러보고, 다녀와서 통역 일정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분간은 환전소하고, 현직 경찰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 - 이채은 류시환 무고죄 소송건만 맡겠습니다. 의사가 푹 쉬라 그랬거든요. 아시죠?"


"그게 쉬는 거냐?"

종태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쳐다본다. 말려도 소용없는걸 안다.

"예. 뭐 일단 몸 쓰는 건 안하니까요. 아, 그것도 확실치 않네.. 혹시 나가다가, 길에서 이채은이 보면 좀 쓰게 될지도.."

"에헤이.. 짜식이..?"

종태가 말을 막는다. 지율이 웃으며 사무실을 나선다.

"안 합니다, 걱정마십시오. 다녀오겠습니다."


"시화 데리고 가. 혼자 다니지 말고."

"시화씨는 제가 부탁한 일이 있습니다. 이채은씨 친구들 수소문해서 증언 수집하고, 그동안 주고받은 사진, 문자, 성폭행 언급이나, 시환씨에 대해 이야기 한게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시화가 안하면 네가 뛰어다닐거지?"

"그래야겠죠..? 날도 추운데, 혼자, 파트너도 없이.. 아침에 병원도 갔다왔는데, 저 혼자 다 해야죠.."


종태가 이미 다 포기한 목소리로 묻는다.

"몸은? 진짜 이대로, 환전소 바로 조인할거야? 안해도 돼, 다른 애들 많아."

"괜찮습니다. 가뿐합니다."

"날라댕기겠지. 생살을 3키로나 떼어내고 왔으니 얼마나 가볍겠냐."

"문형사님도 초음파 한번 해보십시오. 옆구리에 자꾸 삐져 나오는 거 그거 제 거랑 많이 닮았습니다..."

"이 자식이..!"

리화와 지율이 나가고 문이 닫힌다. 말없이 서있는 사람들... 종태가 조용히 앉아있는 시환을 바라본다. 지율과 눈도 못 마주치고, 인사 한마디 못 했다... 자기가 때려 헝클어진 시환의 머리를 툭툭 치듯이 쓰다듬는다.

"왜 그딴 짓을 해서 나한테 맞고 다니냐? 쫄따구도 들어왔는데 챙피하게.."

"... 안했다니까요."

"그러니까, 하지도 않은 짓 때문에 고소 당하는 거, 그짓을 왜 하냐고? 경찰 시끼가.."

"또 시끼, 시끼.. 아빠야, 뭐야..."


시환이 종태 손을 밀어내고 궁시렁궁시렁.. 자리로 간다.

"니 오피스 아빠다! 됐냐? 다 큰 자식이 누굴 닮아 여자 보는 눈이 그렇게 없어? 그딴 애를 1년이나 만났어?"

삐쭉거리며 책상 위의 핸드폰을 집어드는 시환, 소리치는 종태.

"하지마! 전화기 내려! 오늘부터 전화, 문자, 인터넷, 톡.. 다 금지야. 하지마!"

"상관마요. 난 욕 먹어도 싸요..."

서장이 석호에게 눈짓한다. 시환에게 다가가 손을 내민다. 잠깐 망설이다 핸드폰을 내어준다.

"내가 잠깐 미팅이 있어서 나갔다 와야되니까. 류시환이 너 오늘, 사무실 밖으로 나가지 마. 로비도 안돼고, 직원 휴게실도 안돼. 아무도 만나지도 마. 알았어? 올때까지 대기해. 갔다와서 대책을 좀 세워보자. 그때까지 최대한 뭐라도 좀 찾아봐... 그리고... 이 팀장, 너 따라와!"

서장을 따라 나서는 석호의 표정이 영 좋지않다. 잔뜩 미안해진 시환.. 째려보던 종태도 자리로 돌아간다. 은석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난다.


"경찰서 소속 CCTV 먼저 확보 했습니다. 가까운 주변 골목길까지는 나오니까, 어딘가에 여자분이 찍혀있을지도 몰라요. 내가 내려가서 받아올께, 시환씨는 오늘 그거 다 돌려보고, 필요한 거 있으면 추려내요. 어디서, 얼마나 이 주변을 왔다갔다 했는지, 혹시 스토킹인지, 아니면, 정말로 강 형사한테 질투해서, 거짓으로 신고를 한 걸 수도 있으니까 가려내야죠."

"보복이지, 뭘... 쟤네들 다닐 때 봐봐, 누가봐도 애인 사이지, 그게 파트너냐? 류시환이 완전 엿먹은거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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