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9화 마당놀이 5

놀아보자 놀아난다 놀고 있구나

by 신소운

9.5.1 사무실




숙직실에서 씻고 들어오는 리화, 일찌감치 나와 일하고 있는 은석이 반긴다.

"벌써 왔어요? 술 잘 마시나 봐요? 힘들텐데.."

"아침에 누굴 만나기로 했습니다. 저쪽에서 가져 온 사건이 있어서요."
"아직 파트너도 없는데.. 혼자 간다고 보고 했어요?"

"아, 오늘은 위험한 거 아니구요, 약간의 정보를 준다는 애들이 있어서요. 괜찮습니다, 원래 아는 애들입니다."


높낮이가 들어간 억양.. 교포임이 느껴진다. 은석이 두유를 꺼내준다.

"마시고 가요, 아침?"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목 말랐습니다."

성큼성큼 걸어와 받는다. 키도 체격도, 역시 선수 출신이다. 욕심난다. 후배로 잘 키워보고 싶다.

"무슨 사건인지 물어봐도 되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노린 범죄입니다. 장학금을 미끼로, 수기 공모를 해서 먼저 가정 형편을 파악하고, 아이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합니다. 주로 유흥업소나 일일 애인, 노출 사진 같은 일이고. 돈은 화장품이나 의상 구입 등의 명목으로 거의 다 가로챘습니다. 아이들은 식비 정도만 지급받으면서도, 빚이 계속 늘어서, 일을 그만 둘 수 없었구요."


"오늘 만나는 아이들은.."

"도주 중인 일당 중 한명이, 아이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일거리가 있다고, 주말 중에 만나자고 했다는데, 자세한 걸 알아보려고 합니다."

"지원 필요하면 연락해요. 팀장님 나오시는대로 말씀 전할께요. 몇시에 복귀합니까?"

"1-2시간이면 끝날겁니다. 점심 전에 들어오겠습니다."


"미안해요. 어제 처음 왔는데, 혼자 가게해서.. 다음에는 시간 잘 맞춰서 누구든 같이 갈께요. 보통 이시간이면 다들 오는데, 오늘은 늦네요."

"괜찮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수고해요!"


리화가 나가고 혼자 남은 은석이 핸드폰을 본다. 통화 내역... 정아, 정아, 정아, 정아... 어제 밤 술김에 계속 전화를 했나보다. 19통...! 한숨이 절로 난다. 전화기를 옆으로 치우고 다시 일에 집중한다. 진동이 울린다. 재빨리 핸드폰을 보지만, 아래층이다.

"차 형사님, 염상원씨라는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어머니 연락받고 오셨답니다."

"내려가겠습니다. 3층 조사실로 안내 해 주세요. 지금 빈 거 하나 쓸 수 있죠?"


종태와 팀장에게 문자를 보낸다.

/염상원 출두. 조사실 갑니다/



9.5.2 숙직실




복도까지 술냄새를 풍기는 숙직실. 하나 둘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부스스하게 눈만 간신히 뜨고 전화를 받는 진우. 손목 시계를 본다. 조금 난감한 듯, 이마를 짚는다.

"예, 접니다.. 아뇨, 일어났습니다. 잠깐 아래층에 내려왔습니다... 아직 시작 못했습니다. 어제 바로 통역을 신청했는데, 연락 온게 없습니다... 예, 오늘 중에 연결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전화를 끊고도 그대로 누웠다. 과음 때문에 힘들다...


"무슨 전화야, 아침부터? 되게 부지런하네."

정환이다. 옆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있다.

"어제, 이태원 사설 환전소에 강도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난 봄에 명동에서 있었던 거랑 수법이 비슷해서, 동일범으로 보고 있는데, 피해자들이 대부분 외국 사람들이라서 말이 안 통해요. 통역 지원 요청 했는데, 워낙 일이 밀려서 당장은 안된다고.."


"특별팀에 누구 없나? 걔들 다 모으면 몇개국어 된다며?"

"큰 나라 것만 되지, 이쪽은 잘 없어요. 캄보디아, 미안마, 티벳, 네팔... 아휴, 이걸 어디서 구하라고.."

"내 말이. 개인적으로 아는 애들은 못 믿는다고 안된다 그러고, 검증 된 애들은 스케줄 꽉 차고.. 야, 근데 환전소가 요새, 조직 애들이 많이 끼어서 분위기 안좋다던데.. 거기도 뭐 세력 다툼이야?"


"조폭까지는 아직 모르겠고, 보이스 피싱 애들하고 짜고 일을 벌이다가 이견이 난 것 같아요. 전에 명동에서 두명, 어제 이태원에서 세명 죽었어요. 지난 달에, 강변에서 변사체 나온거요, 파키스탄 남자... 그것도 이번 일하고 관련 있어 보입니다. 그 사람 이름이 적힌 메모가 나왔어요."

"에이, 보이스 피싱 요새 잠깐 조용하다 했다. 외노자들 상대로 한참 난리더니, 수법 싹 바꿔서 다시 나오나보네. 그럼 백퍼 명동하고 같은 놈들이지. 해본 놈이 하는 거야, 맛 본 놈이 먹는거고."


정환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선다. 빨래거리를 둘둘 말아 종이 봉투에 담는다.

"먼저 간다. 얼른 나와. 술 깼지?"

"예, 있다 뵙겠습니다."

"근데 왜 이렇게 축 쳐졌어? 힘내야지. 야, 원래 이맘때쯤 장기 사건도 펑펑 터지고 그러는거야."

"푸우우... 저도 나이 드나봐요. 지쳐요.."


"지친게 아니라 술에 치인거겠지. 너 어제 은석이 괴롭히느라고 힘 다 써서 그래. 생각 안나냐? 매달리고 업히고, 아이구, 둘이 사귀는 줄 알았다."

"제가요? 아, 생각 안나는데... 형이 싫어했어요?"

"아니야, 은석이가 누구 싫어하는 애냐, 다 받아주지. 강진우, 너.. 은석이한테 잘 해라. 진짜 귀여워하는 거 알지? 걔는 사실, 우리같이 선배들한테도 좀 불편한데, 너는 어제 계속 앵겨붙어서 엄청 귀찮게 굴고.. 그걸 다 괜찮다고 업어주고, 무릎에 눕히고.. 아이구야, 어제 민규랑 은석이랑, 너 다칠까봐 화장실까지 다 따라다녔어."


"죄송합니다, 좀 취해가지고.."

"나는 괜찮아, 어쩌다 한번 그러고 노는 건데.. 은석이한테는 음료수라도 하나 뽑아가. 걔 어제 너 챙기느라 쉬지도 못했을거야. 빨리와, 간다!"

기억이 전혀 없다. 무거운 몸보다도 더 무거운 마음으로 일어선다. 생각난 김에 민규에게 전화한다.

"어, 잘 들어갔냐? ... 어디 왔어? .. 아냐, 나 인제 씻을라고.. 미안해, 금방 올라갈께."



9.5.3 병원





시환이 침대에 누운 지율에게 따뜻한 물주머니를 올려준다.

"출근 안 해요? 가요, 혼자 있어도 되요."

"보고서 다 보냈어요. 늦게 출근한다고 말씀 드렸구요. 있다가 치료 들어가면, 그때 잠깐 다녀올께요."

"일이 꼬이죠? 바쁜데.."

"별거 없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 신경 쓰지 마세요."


옆에 걸터앉아 손을 잡는다.

"그래도 바로 스케줄 잡아서 다행이죠? 뭘 그렇게 키워놨어요? 진짜 몰랐어요?"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시환씨 말 듣고나서 하혈인거 알구요. 둔하죠?"

"그러게요, 겉으로는 되게 예민해 보이는데 아니네요. 뭐가 이뻐서 3키로짜리를 끼고 있어요.."

"합해서 3키로.. 제일 큰거 하나가 2키로.."


"어쨌든, 누구네 신생아 수준이잖아요. 만삭인데?"

"만삭... 그럼 오늘 출산이네요. 여기 계신분이 보호자?"

"맞아요, 오늘은 제가 보호자. 맨날 선배한테 보호받다가 오늘은, 제가 보호자.."

"내가 보호한게 뭐 있어요, 맨날 도움만 받지."


"예전에 진우형이 강력팀 처음 들어갔을때, 차형사님 파트너였거든요. 그때 그런 얘기 했었어요. 차 형사님이 옆에 있는 것 만으로도, 스왓 (SWAT 경찰 특공대) 팀 하나가 쫙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기분이라고.. 제가 그래요. 선배가 옆에 있으면, 일단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요. 마치 투명 방탄조끼처럼..?"

지율의 손을 당겨 입을 맞춘다. 환자복 속으로 푸릇푸릇하게 변한 팔뚝을 본다. 엄지 손가락으로 문지른다.


"피 그거 좀 뽑았다고 벌써 멍이 들었네. 안 아파요? 배는?"

"괜찮아요. 이제 곧 들어갈거에요, 출근해요."

"가는거 보구요. 같이 들어가고 싶은데, 안된다니까 참을게요. 마음은 가져가요."

지율의 손을 당겨 자신의 심장에 대었다가 이불 안으로 넣어준다. 꼭꼭 잘 덮어주고, 뺨에 뽀뽀를 하는데 간호사가 들어온다.


"강지율 님, 내려가십니다. 보호자 분은 여기서 기다리시면, 끝나고 저희가 다시 모시고 올라올께요."

"잘 하고 와요. 혹시 나 연락 안되면, 문 형사님 형수님 번호 있죠? 그리로 전화 해요. 말씀 드려놨어요."

"가요, 나 대신 일 많겠네요, 미안해요."

돌돌돌 바퀴가 구른다. 따라가고 싶지만 억지로 참는다. 문자를 보낸다.


/출발 합니다/

/수술 들어갔냐/

/지금 막 데려갔습니다/

/얘기해.. 사랑한다고/


방을 나서려다 멈칫한다... 아차.. 안한것 같다..

/네가 안하면 내가 한다.. 니가 많이 사랑한다고../

아유, 삼촌도 참.. 어련히 제가 알아서... 띵.. 문자가 하나 더 온다..

/니가 지율이 짝사랑한다고 용산 경찰서 게시판에다 올려버린다../


"아, 진짜 인간이.. 진지할 때가 없어, 도데체가...?"

서둘러 문자를 넣으며 병실을 나선다.

/하지마요, 지금 들어갑니다 꼼짝도 하지말고 가만히 계세요/

엘리베이터 앞에 아직 지율의 침대가 있다. 문이 열린다. 빠른 걸음으로 쫒는다.


"선배! 잠깐만요.."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다.

"나 할말 있는데, 지금 할래요."

"뭔데요?"

지율이 옆에 선 간호사 눈치를 본다. 시환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 딸 낳고 싶어요."

"지금? ... 이 상황에?"

"예. 딱 선배 닮은 딸... 둘째는, 선배 닮은 아들, 세째는.."

"세째도 있어요?"

"예. 원래 넷 생각했는데 너무 많은 거 같아서, 줄였어요. 세째는, 선배 닮은 아무거나.."

간호사가 푸흐흡 웃는다. 침대에 누운 지율도 웃는다.


"왜 웃어요? 그 얘기 해줄라고 뛰어왔는데.."

"알았어요, 생각해볼께요."

"꼭! 진짜에요? 수술 끝나고, 나랑 진짜로 사귀는 거에요. 사람들한테 다 얘기하고, 공개 연애! 알았죠?"

"다들 벌써 아시는 것 같던데요.."

"어? 그렇대요? 나 티 하나도 안 냈는데..?"


지율이 눈을 꼭 감고 웃음을 참는다. 크게 들숨 날숨 조절한다. 시환이 허리를 숙이고 눈을 맞춘다.

"그래요, 그렇게 잘 참고, 끝나면 좀 쉬고 있어요. 금방 다녀 올께요?"

띵... 앨리베이터가 2층에서 멈춘다. 간호사가 먼저 내려 침대를 끌어 당긴다.

"갔다 올께요.. 사랑해요!"

문이 닫히고, 앨리베이터는 1층을 향한다.



9.5.4 사무실




은석이 러시아 유학생 살인 사건을 정리한다. 제발로 어머니를 찾아 들어온 염상원이 별 망설임없이 자백했다. 보드에 사진 몇개가 붙었다. 아버지 묘까지 파내고 꺼내 온 증거다. 그중 유독 시선이 가는 사진 - 이반나가 한복을 입었다. 속이 다 들여다 보이는 흰색 시스루 저고리만 겨우 입었다. 작아서 닫히지 않을 옷섶을 그대로 두고, 옷고름을 푸는지 메고 있는지 모를 손가락 사이로 훤히 드러난 가슴선에 칼자국이 가득하다.

"이 사진들이 어제, 벽제 부근 용미리 공원 묘지에서 찾아온 증거들입니다. 용의자 염상원은 피해자에게 분노를 느낄때마다 사진에 화풀이를 했는데요, 여기 보시는 것 처럼, 처음에는 손으로 구기거나 찢는게 다였는데, 지금 이 마지막 사진 두 장, 특히 한복을 입고 있는 이 사진을 보시면, 목 부분을 심하게 구기고 거의 찢다가, 칼로 여러번 흉부를 찌릅니다. 현장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마지막 모습과 동일합니다."


"사인이 경부압박이랬나? 최종 결론이?"

조 팀장이 묻는다.

"예,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인데, 이외에도 사망 전에, 목 부위 두군데의 자상 역시 치명상입니다. 그리고 사망 직후에 전면 상체, 흉부에만 14개의 자상을 입었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것과 비슷한 형태입니다."


"동기는 짝사랑? 트리거 (범죄 용어: 결정적인 이유 / 방아쇠)가 뭐야?"

"피해자에게 고객이 아닌, 새 애인이 생기면서 심한 갈등이 시작되었구요, 프로필 사진을 찍어달라고 불러놓고 커플 사진을 찍으라고 했답니다. 자기 앞에서 애정 행각을 벌인다, 그래서 화가 났었는데, 끝나고 점심값 2만원 주면서 혼자 사먹고 들어가라.. 그래서 분노가 커졌다고 진술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관련없고?"

"없습니다. 평소처럼 대신 일을 하러 간 것 뿐이고, 당일 저녁 아들을 다시 만났을때까지, 범행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현행법 상으로는 처벌 할 명분이 없을 것 같습니다. 친족이고, 증거를 인멸하려고 하긴 했지만, 결국 자수 비슷하게 어디에 숨겼는지도 자백했고, 아들이 경찰에 스스로 찾아오도록 협조도 했습니다."


사진을 떼어내며 은석이 덧붙인다.

"한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용의자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걸로 아마 심신 미약을 주장 할 것 같습니다."

종태가 비웃는다.

"원래 개나 소나 심신 미약이야. 걸리고 나면 다 정신병이고.. 그렇게 간댕이가 작은 것들이, 열여섯번은 어떻게 찔러? 또라이들, 웃기고들 있네... 그래서 흉기는? 아직 못 찾았대?"


"그날 배달일을 간 어머니를 마중 나간게, 일을 도우려는 게 아니라, 트럭이 필요했던 겁니다. 돌아다니면서 범행에 사용한 흉기와 옷가지들을 한강 주변에 버렸는데, 아직, 하나도 발견못했습니다. 모아서 한곳에 버린게 아니라, 다리 위에서 하나씩 던진것도 있고, 새벽시간이라, 지나가는 청소차에 직접 버린 것도 있어서, 추적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사진에 찍혀있는 칼 자국과 시신의 늑골에 난 자국이 일치하는지, 국과수에 의뢰해 놓은 상태입니다. 무엇보다도 본인이 다 자백을 해서, 큰 변수는 없어보입니다."


"미친놈 하나 잡았으니 됐고, 잘했어.. 그럼 이제, 가평 일본사람 끝내야지? 지율이 아직 안왔어? 이거 보고서가 왜 이모양이야? 일을 하다 마는 것 같어? 이걸 믿으라고? 장난해? 류시환!"

조 팀장이 시환을 몰아 세운다.


"거기 쓰여진 그대로입니다. 제 생각에는, 오 경사가 열쇠를 쥐고 있는 것 같은데, 가평 경찰서에서는, 오 경사와 황 순경, 두 사람은, 이 일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합니다. 차량의 행적도 문제 제기했는데, 증거가 없어서 그냥 버려진 걸 신고 받고 발견했다, 이걸로 종결하신다고..."

"그럼 뭐야, 너네는 여태 뭘 하고 온거야?"

조 팀장의 말에 종태가 끼어든다.


"그냥, 완전히 놀아난거죠, 뭐.. 얘들이 찾은 증거 몇개 보낸거 있긴한데, 어차피 범인은 그 놈인거고... 영상 찍은 놈 찾아도 사건 목격한 걸로 처벌 할수는 없잖아요. 가운데서 장난질 한 놈들이 쏙 빠져 나간것 같긴 하지만, 몰라, 범인은 잡았으니 된거 같기도 하고... 찝찝해도 여기서 끝내야지."


"그 오 경사라는 사람은, 정말 우연히 사건 현장을 본 겁니까? 그 시간에, 하필 그 사람 사고 현장을... 그냥 지나가다가 봤다...?"

석호가 묻는다.


"유승욱 기자가, 얼마전부터 누가 자신을 미행한다는 이야기를 했답니다. 리조트 건으로 협박 당하는 건 아닌가 불안해했다고 친구들이 증언했습니다."

시환이 추가 사실을 설명하자 종태가 묻는다.

"그럼 계속 따라 다니다가 하나 잡은 거네, 엄청 큰 걸로.. 혹시 처음에 같이 술 먹은 여자도 일부러 심은 거 아냐? 리조트 꼬투리 잡을라고?"


"여자가 한편인지는 확인 못했지만, 제가 보기에는, 리조트 보다는, 그 공동체 마을 때문인것 같습니다. 바깥 세상에 알려지기 싫어서요. 아니면, 개발이 되면 흩어져야 하니까.."

시환이 조심스레 생각을 밝힌다. 아직도 족자 속 남자의 얼굴이 머리에 박혀있다. 뒷머리가 서늘하다...

"수고했고, 당했든 어쟀든, 범인 잡았으면 됐지.. 근데 지율이는 어디갔어? 아직 병원이야?"

조 팀장이 지율을 찾는다.


"거의 끝나갈겁니다. 개복 수술이 아니라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걔는, 무슨 혹을 몇키로? 3키로? 어이구야, 그걸 모르고 그렇게 뛰어댕겼대?"

"원래 산부인과 질환은 큰 증상이 없다잖아."

종태가 시큰둥하게 답한다.

"왜 없겠어? 여자들이 원래 여기저기 아프니까, 그냥 그런 건 줄 알고 넘어가는 거겠지. 통증 있어도 생리통인가보다, 출혈 있어도 생리인가보다.. 에이구, 똑똑한 줄 알았더니 지 뱃속을 모르고 있었네."


아무 대꾸가 없는 팀원들, 눈도 안마주치고 딴짓이다. 그제서야 눈치 채는 조 팀장.

"왜? 불편하냐? 이거, 이거... 장가 간 놈들이 없으니, 뭔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지? 덩치들만 커다래 가지고... 괜찮아, 걱정 안해도 돼. 심한 병 아니야. 그냥 물혹이니까 오늘 잘 떼어 내고, 바로 움직일 수 있어. 야, 솔직히 너네 강지율이가 성질이 더러워서 그런거야. 미리미리 병원 안가고 꾹 참다가 병을 더 키웠지 뭘... 애를 낳아도 3키로다, 그걸 왜 몰라? 꼭 피 쏟고 아프고 그래야 알어? 바보같은 놈."


회의가 끝난 분위기다. 하나씩 슬그머니 자리로 돌아간다. 종태가 허리를 젖히며 기지개를 켠다.

"아이구, 몇 놈 안되니까, 하나 빠졌는데 왜 이렇게 허전해.."

조 팀장도 자료를 챙겨 일어선다. 석호가 자세를 바로하고 따라 일어선다.

"아냐, 이 팀장, 앉어, 괜찮아.. 형님은.. 빠져도 하필 그 놈이 빠져서 그래요. 제일 시끄러운 놈.. 혼자 일당 백 하잖아. 난 조용하니까 더 좋네. 시환이는, 병원 가봐야지? 지금 가냐?"

"예, 이제 출발하려구요. 오늘은 쉬게 하고 내일 출근.."


쿠당탕... 사무실 문이 부서져라 열리고 서장이 뛰어들어온다. 다들 놀라 벌떡 일어난다. 악을 쓴다..

"류시환!!! 너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목덜미까지 벌개진 서장이 핏대를 세운다. 놀란 시환이 목소리까지 작아진다.

"예? 저요? 제가 무슨..?"

"너 미쳤지? 돌았지, 이 새끼야?? 저 새끼 던져버려. 너, 사표 써! 나가!!"


시환에게 달려드는 서장을 종태가 온몸으로 막는다.

"서장님, 잠깐만요, 왜? 무슨 일입니까? 시환이가 뭘...?"

서장이 부들부들 떨며 손에 쥐고 온 종이를 구겨 바닥에 집어던진다.

"저 새끼, 저거... 미성년자 성폭행으로 고소 당했어. 고 2짜리 꼬셔다가 작년부터 지금까지..? 야 이새끼야, 너 이거 어떡할꺼야!! 기사 뜨는 거 시간 문제야, 이 미친 놈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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