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9화 마당놀이 4

놀아보자 놀아난다 놀고 있구나

by 신소운

9.4.1 식당 - 이태원 24시




늦은 시간, 하나둘씩 일을 끝내고 모인다. 각자의 하루 이야기로 시끌시끌하다. 조금 놀란 얼굴로 들어서는 시환과 지율. 이렇게 많이 모인줄 몰랐다. 사람들이 반긴다. 이미 혀가 꼬여가는 진우가 소리친다.

"어이, 막내들 왔냐? 고생했다!"

"서른 넘은 것들이 무슨 막내야... 그리고 이제는 진짜 아니지, 저 팀은 리화씨 왔잖아."

정환이 진우 잔을 또 채운다. 빈자리에 착석하는 두 사람, 낮에 본 홍리화와 눈인사한다. 서빙하시는 아주머니가 두 사람에게 다가와 사이다를 놓고 간다.


"아니, 서장님은, 왜 우리는 안주고 자꾸 얘네만 줘? 우리 진짜 일할 사람 없어가지고, 응? 하루에도 한 사람이 몇 탕을 뛰는지 알어? 뭔 사건이 니꺼 내꺼가 없어, 그냥 다 같이 뛰어다녀. 야, 시환아, 내가 오늘 파주까지 찍었다."

정환이 시환과 지율에게 술을 따라준다.

"저희도 지금 가평에서 오는 길인데요."

"가평? 크, 좋은데 갔다왔네... 연애했냐? 나는 공동묘지 팠는데?"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몸이 힘들었는지 다들 취기가 올랐다. 진우가 옆에 와 털석.. 쓰러지듯 앉는다. 눈이 빨갛게 충혈된게 많이 마셨다.

"야, 너네 새 맴버 왔다. 좋겠다, 선출이래, 권투. 그것도 중국에서 청소년 챔피언 했대. 팔 힘 장난아냐. 아까 팔씨름해서 내가 졌어."

리화를 가르킨다. 선배들과 건배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 우리 팀이었어요? 아까 나가다가 잠깐 봤는데.. 멋있네."


저쪽 끝에 앉은 종태가 소리친다.

"류시환이! 너는 임마, 인제 무서워서 어떻게 사냐? 지율이 하나도 힘든데, 리화도 만만찮겠다. 완전 지율 주니어야!"

"아니야, 지율 주니어가 아니라, 지율이가 주니어 하겠는데?"

"내 말이.. 형님, 지율이랑 리화랑 파트너 시키지 마요, 일 내겠어."

"지율이는 시환이 있잖아. 리화는 팀장하고 파트너 해야지."

"이석호 좋은 시절 다 갔네, 혼자 맨날 사라져서 땡땡이 치더니.. 오늘도 봐, 어디간거야?"


사장이 나온다. 새 접시에, 도시락처럼 각종 반찬을 담아 지율 앞에 내려놓는다. 맑은 콩나물 국도 있다.

"고기를 못 먹으니까, 다 야채로만 했어요. 국은 아직 더 생각을 해봐야지, 고기 안넣고, 안에 보여야하고, 빨간 양념 안되고.. 국물 하나 하는게 이렇게 어려웠네."

"아니에요, 저 신경쓰지 마세요. 먹을 수 있는 거 많아요."

"괜찮아요, 난 까맣게 몰랐지, 그냥 입이 좀 짧다고만 생각했지... 어려서 그런 일 겪은줄 상상이나 했어? 평생 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가 식혜도 조금 해놨어요, 디저트로 마시게. 있다가 줄께요. 많이 먹어?"


어깨를 토닥이고 돌아서는 사장님. 지율이 시환을 본다. 시환도 모르는 일이라는 얼굴이다. 정환이 투정부린다.

"아니, 사장님, 우리는 콩나물 국 안 줘요? 왜 지율이한테만 주는데?"

"고기에 부대찌개에, 이렇게 잔뜩 시켜놓고 콩나물국이 드시고 싶어?"

"다 줘요. 내일 거 미리 해장할거야."

"그러셔요, 기다려봐요. 가져 올께. 아이구 참, 덩치도 큰 양반이 애 야..."


사장이 주방으로 들어가고 지율이 조용히 묻는다.

"시환씨가 얘기했어요? 나 사고..?"

"아니요, 저 아닌데요? 형이 했어?"

진우를 본다.

"아니, 근데 뭐 비밀이었어? 경찰서 사람들 다 알잖아.. 아, 취한다.. 한잔 줘봐."

"취한다면서 뭘 또 마셔? 그만해. 내놔."

시환이 잔을 뺏으려한다.


"싫어, 취할때 마셔야지. 나 있다가 그냥 숙직실에 던져줘. 오늘 완전 많이 마시고 푹 자야겠다."

"그게 푹 자는거냐? 아침에 더 힘들지."

"오늘 땡겨, 술이... 그치, 지율아~, 너도 마셔. 여기있는 거 다 마시고 자자."

"무슨 날이야? 왜들 이래?"

"어, 서장님이 카드 줬어. 내 덕이야, 내 덕. 나 그 개발바닥 잘 했다고.."


"서장님은 어디가고?"

"석호 형이랑 나가던데? 나한테는 카드만 주고.. 그러니까, 다 시켜! 내가 쏜다! 형님들~~ 술 더 시킬까요? 한도액 무제한! 서장님 카드가 나한테 있다!!"

진우가 카드를 들고 뛰어간다.

"와~~ 다 시켜, 다 시켜!! 사장님!! 소주 더 주세요!"

"여기 목살 5인분 더! 아니, 10인분!!"


"아우, 시끄러.. 다른데 갈걸 그랬죠? 어쩐지 갑자기 문자 쏟아지면서 여기로 오라길래 이상했어."

시환이 걱정한다. 종일 일하느라 다리 뻗고 쉬지 못했다. 조용히 묻는다.

"하혈은, 멈췄어요?"

지율이 대충 고개만 끄덕거린다. 아닌 걸 안다. 슬쩍 째려본다.

"나한테는 거짓말 하지 마요. 얼굴보니까 아직도네."


웃는다. 밥을 덜어 시환에게 준다.

"나를 너무 잘 알아요... 엄마 같애."

시환도 웃는다.

"아무리 그래도 엄마는 좀 이상하지 않아요? 다른 거 해줘요, 멋있는거.. 남자친구?"

"주치의...?"

"아이, 재미없게.. 너무 사무적이잖아. 가디언? 보호자? 아! 수호천사!!"


옆자리 정환에게 들렸는지 한마디 한다.

"뭔 천사? 야, 너네끼리 속닥거리지 말고, 분위기 좀 맞춰봐! 얘들은 종일 붙어다니고도 또 이래. 질리지도 않냐?"

"형님은 박 형사님 질려요? 파트너는 마누랍니다. 평!생! 가는 겁니다. 사랑해, 민규야!"

진우가 자리에 앉은 민규를 끌어안고 뺨을 비빈다. 민규가 질색한다. 아랑곳않고 뺨에 뽀뽀를 퍼붓는다.

"아, 왜 이래.. 징그러.. 야아 ..!!"


"진우 또 시작이다, 오랜만에 보네, 비비적거리는거. 역시 쟤도 한번씩 술을 먹여야돼."

"한동안 안 하길래 철이 든 줄 알았지. 민규랑 어색했구나? 동갑이지?"

"그래, 그게 희안하게, 파트너 동갑인게 참 불편해? 나도 형이나 동생이 좋지, 동갑은 좀..."

"동갑 더 없잖아, 진우랑 민규 빼고.."

"이석호랑 차은석이가 동갑이지. 파트너 아니어도 봐, 안 친하잖아."


시선이 은석에게 쏠린다. 뭐라도 한마디 기다리는 눈치지만 씨익 웃고 만다. 종태가 화제를 돌린다.

"야, 고기 나온 거 얼른 먹고, 우리 2차 가자. 옆에 노래방 자리 빌 시간이다."

"유부들 집에 안 가? 뭘 노래방 자리 비는 시간까지 챙겨?"

정환의 말에 종태가 답한다.

"너네 핑계 대고 이러는 건데, 하루만 놀아줘라, 좀... 쫒겨난 주제에 싱글인 척.."

"쫒겨나다니요? 애가 어려서 친정 갔다니까.. 힘들잖아요, 둘째까지 가지고."


"너 그거 길어지면 큰일나. 얼른 데려와. 차라리 장모랑 합쳐."

박 형사가 조언한다.

"그게 뭐야, 나는 뭐 안 힘들어?"

"어차피 너는 집에 자주 안 가잖아. 가도 잠만 자고 올걸... 장모님 젊었을때 키워달라 그래야지, 그것도 좀 지나면 못 해."

"아유, 몰라.. 일단은 잔소리 안하니까 서로 편해. 싸울일 없고."


"그러다가 아예 할 말이 없어지는 거야. 순식간에 홱!"

종태가 끼어든다. 진우가 어느새 은석의 팔을 만지작거리며 기대어 앉았다. 실실 웃는다.

"형수님은 안 그러잖아요. 난 종태형 형수님 너무 좋아... 내 이상향이야.."

"쟤는 지 잘생겼다 그러면 다 이상향이래. 너 그래가지고 언제 클래. 아, 은석이 좀 놔둬, 밥 먹는데 왜 또 여기와서 조물딱거려?"

"놔두세요, 다 먹었어요. 진우 오늘, 기분 좋은가봐요."

은석이 진우 편을 들어준다. 눈도 안 뜨고 웃는다.


"헤헤, 나는 역시! 은석이 형이 제일 좋더라.. 종태 형님 왕 꼰대... 이석호 그 다음 꼰대.."

"야, 강진우 취하니까 막 지 직속 선배를 욕 하네? 너 이 팀장한테 이른다?"

"다 일러! 이석호 재수없어. 뭔데 누굴 사귀라 마라.. 지까짓게..."

"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이석호 재수없지. 다 싫어, 그치?"

종태가 응수한다. 진우가 웃는다.

"맞아, 맞아... 형님 최고! 노래방 가자! 종태 형님 노래 한다!"




9.4.2 길거리




은석에게 거의 매달리다시피 팔짱을 낀 진우가 맨앞에서 휘청거리며, 노래방으로 향한다. 다들 취한 동료들을 하나씩 붙들고 걷는다. 시환이 뒤에서 지율을 잡는다. 소근거린다.

"우리는 그냥 가요. 선배 쉬어야죠."

"말 안하고 가도 되요?"

"아무도 신경 안 쓸걸요. 가요, 우리집 가서 자요."


지율이 잠시 주저한다.

"왜요? 사무실에서 그만 자기로 했잖아요."

"아, 그게 아니고.. 옷이랑.. 뭐 갈아입을게 하나도 없어서.."

"갑자기 왜요? 언제는 있었나, 맨날 내꺼 입었지.. 얼른 와요, 들키기전에."

저만치 멀어진 일행을 본다. 뒷모습이... 영락없는, 그냥 평범한 술 취한 동네 아저씨들이다.


"아, 이제 좀 조용하네.. 저런 모습 처음 보죠? 형님들도 술 먹으면 다 똑같아요."

나란히 걷는다. 밤도 늦고 추워졌지만, 가까우니 걸을만하다.

"보기 좋아요, 술 먹으면 친해지나봐요."

"선배 취한 건 아직 한번도 못 봤어요. 취하면 어때요?"

"몰라요, 그냥 잘 것 같은데.."


"우리 엄마가 그랬었어요. 자기는 그냥 잔다고.. 근데 아버지가 그러는데, 절대 아니래요. 어머니가 체대 나오셨거든요, 태권도 선수였는데, 술 취하면 아무도 못 말렸대요. 별명이 문어.. 팔다리가 긴데다가, 막 힘쓰다가 갑자기 바닥에 철퍼덕 붙으면, 아무도 못 떼었대요. 아버지가 그거 떼어주다가 친해졌다고.."

"학생때 만나셨나봐요?"

"아니에요, 나이 차이가 좀 있으세요. 엄마는 학생이었고, 아버지는.... 직장인이요.. 공무..원...?"


지율을 살피며 조심스레 이야기한다.

"사실, 아버지랑 별로 좋은 기억 없어요. 사이 안좋아요, 지금도. 무슨 날에만 볼까말까 하고... 서로 말도 안해요. 엄마는, 아버지 없을때만, 살짝 따로 만나고 그래요. 못됐죠? 보고 싶어도 못보는 사람도 있는데."

지율이 미소 짓는다. 춥다. 몸을 웅크린다. 시환이 어깨를 안을까 망설이다 손만 내민다. 지율이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낸다. 시환이 깍지를 꼭 끼어 자기 주머니로 넣는다. 따뜻해진다.. 조용히 걷는다.


원룸에 도착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지율이 묻는다.

"진짜로, 내가 왜 좋아요? 아니, 정말 좋아요?"

시환이 웃는다.

"또 궁금해요? 답이 맨날 같은데..? 다 알면서.."

"정말 모르겠어요, 잘 해주는 것도 없고, 이쁜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띵... 앨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버튼을 누르고 문이 닫힌다. 위이잉... 올라간다. 여전히 한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로, 마주선다. 고개를 숙여 입술에 쪽쪽쪽.. 뽀뽀를 한다.

"이쁜짓은 내가 하면 되잖아요. 이렇게?"

깊은 숨을 들이쉬며 몸을 기댄다. 시환이 그런 지율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꼭 당겨 안는다. 가만히 기대고있다.

"이거는, 피곤해서 자는 거 같은데?"

크크큭...고개만 끄덕거린다. 쉬게 놔둔다.


"알았어요, 내가 왜 선배 좋아하는지. 이렇게 같이 있으면 진짜 쉬는 거 같아요. 막 너무 힘들다가, 선배만 딱 안으면 다 사라져요. 심장도 다시 뛰고, 기분이 좋아져요. 행복... 있잖아요, 그게 이런 건 거 같아요."

띵... 앨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깍지 낀 손을 당겨 복도를 지난다. 걸음이 점점 빨라지는 걸 느끼지만, 늦추기 싫다. 서둘러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간다. 철컹.. 문을 닫는다. 신발도, 자켓도 벗지 않고 현관에 선채로 한참을, 키스부터 한다. 벽에 기대고 서서 다 받아주는 지율.

"선배, 나는 .. 진짜 미치겠는데.. 나 조금만 더 좋아해주면 안돼요?"

가방을 내려놓고 시환의 목에 팔을 두른다. 아까보다 휠씬 더 꽉.. 힘주어 안는다.





9.4.3 아침




아직도 이불을 감고 밍기적거리는 지율. 샤워하고 나온 시환이 옆에 다시 눕는다. 토닥토닥 뺨을 만진다.

"일어나야죠? 출근 시간~~."

번데기처럼 쪼그리고, 시환에게 파고든다.

"그죠? 나도 일하기 싫은데, 그래도 가야지 또 하루 붙어있잖아요. 진짜 좋다, 낮에는 같이 일하고, 밤에는 꼭 안고 자고.. 우리, 주말에는 선배 짐 좀 가져올까요?"


그제서야 눈을 뜨는 지율.

"안 불편해요, 나랑 계속 붙어있는거?"

"아뇨, 전혀.. 선배는요? 설마 벌써 마음 변하기..? 너무 하는데, 겨우 하루 자고..? 혹시 원나잇?"

"글쎄요, 하루씩 여러번 잤는데 그것도 원나잇이라 그러나?"

"아니죠, 우리는 뽀뽀만 하니까, 반 나잇으로 치고.. 다 모으면 뭐 한 쓰리 나잇 반?"


큭큭큭...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며 일어난다. 머리맡에 챙겨놓은 옷가지를 건넨다.

"똑같은 옷 입은거 사람들이 알까요?"

"형들이 그렇게 예민하지 않아요."

"그래도 형사인데? 눈썰미가 좀 있겠죠?"

"어제 술이 눈까지 차올라와서, 아무것도 못봤을거에요. 괜찮아요."


"오케이, 씻으러 갑니다."

"다녀오세요. 저는 아침 준비합니다. 계란 후라이 두개, 토스트? 주스가 없는데 우유 드실래요?"

"커피 콜...?"

"하루 종일 커피 마실거면서.. 안돼요. 뼈에 안좋대요. 오늘은 우유. 커피 우유 사다 놨어요."

"좋아요, 대신 낮에 마시는 건 말리지 않기."

"병원 갔다와서요. 예약 해야죠? 몇시에 갈까요?"


"혼자 갈께요, 바쁜데 뭘 같이 다녀요?"
"맨날 간다그러고 안 가잖아요. 옆에 딱 붙어서 지키고 있을거에요."

"산부인과에서?"

"뭐 어때요.. 이정도면 거의 남자친구인데? ... 좀.. 이상한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씻으러 간다. 잠시 기다렸다가, 슬쩍 이불을 들춰본다. 안심이다. 다행히 하혈은 멈춘 것 같다.


"뭘 알아야 어떻게 해주지.. 엄마한테 물어볼까.."

핸드폰을 꺼낸다.. 다시 넣는다.

"안되지, 그랬다가 또 무슨 소리를 들을려고.. 에효, 모르겠다, 병원이나 가보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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