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9화 마당놀이 3

놀아보자 놀아난다 놀고 있구나

by 신소운

9.3.1 다시 가평 / 사룡리




"선배, 여기에요!"

화장실에서 나오는 지율을 부른다. 마루 끝에 걸터 앉아있다. 주변을 둘러보며 다가간다. 시환이 손가락으로 툭툭 .. 옆자리를 가르킨다.

"제가 마실것 달라 그랬어요. 따뜻한 차 같은 거.. 선배 배 아플까봐.."

"뭘 믿고요?"


낮은 목소리로 되묻는다. 아 그런가... 하는 얼굴의 시환, 멋적게 웃는다. 다시한번 툭툭... 테이저 건을 넣은 허리춤을 친다.

"이거 믿고.."

"먹지 마요, 아무것도.."


들릴듯 말듯한 소리로 속삭이며 주위를 둘러보는 지율, 집이 엉망이다. 여기저기 보수를 많이 한 것 같지만, 오랜 시간 간신히 버텨온 흔적이 가득하다. 깨진 유리에 붙은 테이프, 떨어져나온 시멘트에 덧칠한 황토, 시환 혼자만으로도 삐그덕 거리는 마루와 이가 맞지않는 댓돌.. 달랑 두개뿐인 작은 장독에 뭐가 들었을까 궁금하다. 할머니가 나온다. 밥그릇에 따뜻한 물이 담겨있다.


"감사합니다."

시환이 정말 마시려는 척, 입에 대고 호 분다. 뒤돌아서려는 할머니에게 말을 건다.

"할머니 여기 오래 사셨어요? 저희는 저 위에 신당 있다 그래서, 놀러왔어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표정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여전히 입을 꼭 다문채, 눈을 마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가지 말라는 뜻일까.. 한심하다는 뜻...? 서울것들은 이상하다..뭐 그런 뜻??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무우를 씻는다. 흙이 씻겨나간다. 직접 재배했나보다.

"물 차가워요, 제가 할까요?"

지율에게 집안을 둘러보라는 눈짓을 보내고, 시환이 마당으로 내려선다. 옆에 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건네지만 할머니는 반응도, 대답도 없다.


지율이 슬쩍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척, 열린 방문 안을 들여다 본다. 아무것도 없이 네모난 방바닥 뿐이다. 운동하는 척 한두걸음 옮겨 창문 앞으로 걸어간다. 허리를 스트레칭하며 슬그머니 들여다본다. 반쯤 녹아 접시에 내려앉은 하얀 초, 접어놓은 이불, 할머니가 입고 있는 것과 비슷해보이는 무채색 스님 바지..


족자다.. 가족 사진도, 꽃 그림도 아닌, 족자가 하나 걸려있다. 무당집에서 손님 맞이하는 곳이라 말하던 낭선군 이우의 방에 있던 족자와 똑같다. 할머니를 한번 돌아보고, 창문에 바짝 붙어 족자를 자세히 살핀다. 대군이라 그런지 궁에서나 입을 관복에 관모를 썼다. 아랫쪽에 빨간색 한자가 몇개 찍힌 낙관이 보인다. 한문을 모르는 지율로서는 뭐라고 썼는지 알 수가 없다. 대신 옆에 그려진 나비를 본다... 나비.


"아, 손시려~~ 그래도 저 진짜 잘하죠?"

시환이 목소리를 높여 신호를 준다. 지율이 아무일도 없는 양, 마당으로 걸어와 옆에 쪼그리고 앉는다.

"이걸로 뭐하시게요? 김치요?"

"손님이 오셨네요."

오 경사다. 시환과 지율이 일어서 경계한다. 그가 먼저 인사하지만 받지 않는다. 무기를 들었는지 위아래를 훑는다. 빈 손이다.


"밖에 차를 세워 놓으셔서요, 여기는 관광지가 아니라서, 외지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머니 찾아오신 손님이시다. 내가 물 한잔 드렸다."

할머니가 입을 연다. 벙어리는 아니셨구나.. 지율이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할머니 말 하네요? 왜 아까는 한마디도 안하셨어요? 말하면 안되는 거 있어요?"

"강 형사님, 나가서 말씀하시죠. 저희 어머니께서 좀 불편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 무당에게도 어머니라고 했었다...

"이 분도 어머니세요? 지난 번 그 분도 어머니고?"

오 경사가 잠시 생각하다 어색하게 미소 짓는다.

"자녀를 출산하셨을 연배의 여성을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저도, 이곳 분들을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오 경사님 친 어머니는 어느 분이세요? 인적 사항에 가족이 없다고 써있던데요? 주소지도 가짜고."

"제가 그렇게 썼나요? 예전 일이라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아우디 Q7, 누구한테서 받아오셨어요? 현장에서 본인이 가지고 들어와서 보관중이었죠? 머리카락도 일부러 꽂아놨고, 산속에 버려서 발견되게 하고.. 본인이 꾸민거죠? 왜요?"

"질문이 많으시네요. 가시면서 말씀 하십시오, 여기는 아무나 들어오는 곳이 아닙니다."


아무나 들어오는 곳이 아닙니다... 차를 보러 갔을때도 그렇게 말했었다. 안전한 곳에 놔두었습니다, 아무나 오는 곳이 아니라서요... 그럼 여기 사는 이 사람들은 뭐란 말일까... 오 경사가 앞장서서 걸어간다. 바지가 눈에 띈다. 할머니가 입고 있는 것 처럼 헐렁한 회색 일바지다. 아래를 끈으로 묶은게 개량 한복 같기도 하다. 저 앞에서 한 여자가 걸어온다. 지난 번에 만난 그 무당이다.


"아이고, 어머니께서 어쩐 일로..."

연배가 훨씬 높은 할머니가 여자를 향해 꾸벅 허리를 굽힌다. 여전한 빨간 저고리, 화려한 나비 장식... 나비, 나비, 나비...

"이 사람들이 어머니 귀찮게 하나해서 와봤어. 별일 없지?"

"예, 물 한 모금 나눴습니다."

할머니의 저자세에 머리가 복잡해지는 시환과 지율.


"너는? 밥 때도 아닌데 왜 자꾸 와?"

지율에게 묻는다.

"당신이 시켰어요? 사람 죽는거 지켜보면서, 그 남자한테 다 뒤집어 씌우라고?"

"강 형사님!"

오 경사가 막는다.


흐흐흐흐... 무당이 웃는다. 입가에 깊어지는 주름, 진한 눈화장을 했어도 조금씩 내려앉은 눈꺼풀... 5-60 막 넘어가는 나이일 것 같다. 이제보니 오경사의 어머니로도 조금 젊다..?

"형사면 가서 범인이나 잡아. 우리 아들이 다 해결한거, 그 공이나 챙기고. 내가 할 일은 다 했으니 더이상 오지마."

"여기는, 전부 당신 땅이란 말인가요? 외부인은 그냥 지나가는 것도 안된다?"

"그냥 지나간다는 건 없어. 목적이 있어서 발을 딛는거야. 마음이 있어서 몸이 오겠지만, 신성한 곳이야. 넌 안돼."


"오 경사는요? 저사람도 경찰인데요?"

"경찰이라서 안된다는 게 아니야. 넌 낭선군의 자손이 아니라서 안되는 거야. 그만 가."

여자가 돌아선다. 할머니와 오 경사가 허리를 깊히 숙인다. 무당이 사라지고, 시환이 오경사에게 던진다.

"설명하세요."

오 경사가 바깥쪽을 가르킨다. 마지못해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따라 나선다. 할머니는 눈도 안마주치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오 경사의 뒤를 따르며 몰래 또한번, 허리춤의 테이저건을 확인한다..


차 앞에 모여선 세 사람. 시환이 묻는다.

"이게 다 뭡니까?"

"생각하시는 그대로 입니다. 사고가 있었고, 범인을 잡았습니다."

"오 경사님의 관련도는요?"

"없습니다."


"전혀 없는데, 사고 현장을 촬영까지 하셨습니끼?"

"뉴스에 나온 영상 말씀이십니까? 누가 찍었는지는 안나오던데요."

"오 경사님 아니면 황 순경이겠지요. 둘이 제일 큰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까요."

"제일 큰 거짓말은, 사람을 죽여놓고 발뼘하던 그 집 부자죠."


"죽는거 옆에서 가만히 지켜 본 사람은요? 충분히 살릴 수 있었는데, 촬영하면서 구경만 한 사람은요?"

"목격자일 뿐입니다. 그 사람을 찾는다고 해도 처벌 할 수 없습니다."

"응급 상황인거 알면서도 구경만 한건 처벌 대상입니다."

"선한 사마리안 법은 아직 의료인에게만 해당됩니다. 그리고 당시 영상을 찍은 사람이 의료인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찍은 사람 당신이라구요. 그리고, 개정된 사마리안 법은 의료인 뿐 아니라 경찰, 구급대, 공무원 처럼, 당신처럼,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가진 사람들에 해당되요."

"아직 권고 사항일뿐, 법적인 의무는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그 영상을 찍은 사람이, 경찰인지, 구급대인지, 공무원이지도 밝혀진게 없습니다."

"정말 발뼘하시는 겁니까? 모든 정황이 오경사님인데요?"

지율이 발끈한다.


"사건을 추측으로 보시면 안됩니다."

"사건을, 일부러 유발하셔도 안되죠. 왜죠? 사이가 안좋았습니까? 리조트 건설이요? 아니면, 아들이 기자하면서 뭐 불쾌한게 한 거 있었습니까?"

"저라고 단정지으시는군요."


"아니라고 단정 안 하는 것 뿐입니다. 경찰에 넘기라는 차량을 일부러 숨겨놓고 신고당하게 하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고의성의 드러납니다."

"무슨 차량이요? 사유지에서 발견되었다는, 그 차량 말씀이십니까? 그걸 제가 숨겼다는 건가요?"

"뭐라구요?"

"저는 차를 본 적이 없습니다. 아, 뉴스에 나와서 알게되었습니다. 이 근처 산속에 버려져있었다는 걸요. 그렇다고 그걸 제가 가져다 놨다는 말씀이십니까?"


"저 위에 신당 앞에서, 우리 셋이 차량 검식 했잖아요. 다음날 오 경사님이 머리카락 꽂아놓은거 찾아내고.."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두분께, 이곳에서 나가달라는 말씀을 드리러 왔을 뿐입니다. 주민들이 불편해 하십니다."

"그럼 저 사람들한테 물어볼까요? 엊그제 저 위에 서있던 차 본 사람 있나?"


"저 분들은... 외부인과 대화하지 않습니다."

오 경사가 미소짓는다. 시환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지나쳐 간다.

"뭡니까? 당신 경찰 맞아? 이봐요!"

"시환씨.. 저 위에요... 돌아오라고 했나봐요."


오 경사가 걸어가는 쪽을 본다. 신당 앞에 서서 이쪽을 내려다보는 여자... 빨간 저고리.. 그리고 그 옆에 선 남자 하나... 옅은 분홍의 한복을 입었다. 그들 쪽으로 걸어가는 오 경사.. 유난히 펄럭거리는 회색 바지.. 지율이 돌아본다. 주민 두어명이 집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지켜보다가 쏙 들어간다. 회색 바지... 한집에 한 사람... 지율이 갑자기 뛴다.

"선배, 어디가요?"


제일 가까운 옆집으로 뛰어들어간 지율이 신발도 벗지않고 우당탕 방문을 연다. 깜짝 놀라 구석으로 몸을 숨기는 여자... 빈 방에 똑같은 족자, 똑같은 나비, 똑같은 회색 바지 .. 다음 집으로 뛰어간다. 시환이 말리지만 뿌리친다. 다음집도, 그 다음 집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없는 네모난 방에 걸려있는 족자, 나비, 회색 일바지, 하얀 초... 한 집에 한 사람..


"왜 그래요, 남의 집에서?"

"이거... 여기, 이거요..."

족자를 가르킨다.

"나비 그림이요, 아까 그 무당이라는 여자가 머리에 꽂고 있는... 전에 왔을때 봤는데, 이상하게 너무 그것만 화려해서 검색해 봤거든요. 조선 시대에는 나비가 남자여자, 아니면 부부의 사랑을 뜻한다고.."

"맞아요, 부부금슬, 뭐 이런거에요."


"그러면 과부나 미망인은 나비를 하면 안되는 거잖아요. 그 얘기는, 저 무당은 남편이 있다?"

"있을수도 있죠. 요새는 무속인들도 결혼해요."

"짝이 없는 사람은 흰색, 검은색, 회색만 입었죠?"

"상복의 개념이에요, 그 시절에는 재혼이 안됬으니까.. 아까 그 분들도 회색 옷이던데, 그것 때문에 그러세요?"


"... 저기 있는, 빨간 글씨는요? 뭐라고 써있어요?"

낙관이다. 네모난 빨간 테두리 안에 상형문자처럼 기이한 형태의 한자들이 써있다. 당대 명필이라는 낭선군의 글씨체를 본 딴 것 같다.

"낭선군 이우지석... 낭선군 이우... 그 사람 이름에다가, 종이 지, 풀 석..."

"풀 석.. 이요? 무슨 풀?"


"풀 이름 아니구요, 문제 같은 거 푸는거요. 수수께끼 같은 거 풀었다고 할 때, 아니면 뭘 해석했다, 암호나 선조의 말씀 같은 걸 풀어냈다.. 그런 거요. 그러니까 이거는... 낭선군 이우의 말씀을 풀었다... ?"

"낭선군 이우의 족자, 아니면 글씨, 서책... 을 풀었다, 해석했다... 낭선군의 답을 얻었다... 답을 주셨다..?"

"설마... 돌아왔다...? 환생..같은 거?"

"......"


지율이 파출소에서 프린트 해 온 사진을 꺼낸다. 시환도 핸드폰에 찍어온 얼굴을 확인한다. 족자 속 젊은 남자... 경찰서 벽에 붙어있던 증명 사진... 관모 아래 짙은 눈썹, 크고 둥근 눈, 뚜렷한 이목구비에 커다란 귓볼.. 갓 스물 지난 황지석이다. 그러고보니 처음부터, 족자를 처음 봤던 그 날부터, 대군으로 모시기에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 젊다고 생각했었다. 멍하니 족자를 바라보며 지율이 중얼거린다.


"오 경사가 그랬었죠, 생각나요? ... 여긴 아무나 못 들어와요... 대대로 무속인이 많은 지역입니다.. 신 기가 센 동네... 그리고... 그 무당 여자... 저희 어머니는, 본인이 무속인이라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낭선군 이우와 전생에 무언가 특별했다고 믿으세요..."

"그런 얘기도 했어요? 그럼... 선배, 여기.."

"이상한 동네 맞죠?"

"일단 나가요, 빨리."


아무도 없어 보이는, 조용한 동네를 떠난다. 올라 올 때보다 빠른 속도로 흙길을 지난다. 거울로 뒤를 살피지만, 흙먼지뿐이다. 시환이 끼이익... 차를 멈춘다. 놀란 지율이 앞을 본다. 닫혀있던 철문이 활짝, 열려있다. 재빨리 주변을 둘러본다.

"저쪽이요..."

시환이 가르키는 수풀 속을 본다. 빨간 저고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옆에 선 분홍 한복의 젊은 남자가 잘 가라 손짓한다. 다정히 손을 잡고 사라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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