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1 환전소
오가는 사람들이 기웃거린다. 경찰 둘이 지키고 선 건물 앞. 증을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간다. 축축하고 어두운 콘크리트 복도를 지난다. 206호.. 폴리스 라인을 들추고 들어가는 지율, 진우와 민규가 둘러보고 있다. 핸드폰을 보여준다. 사진 몇장과 보고서다.
"작년에 있었던 다른 환전소 사건이야. 명동이고, 현장 사진인데, 시신 빼고는 깨끗해. 두명 죽었는데 미제로 남었어."
"용의자도 없어?"
"없던지, 엄청 많던지... 연휴끼고 휴가철이어서, 발생 후 한참 지나고 나서 발견했어. 부패도 상당히 진행되었었고, 공간 전체를 락스로 청소했어. 남은 증거가 거의 없었대."
"거래 내역 장부나, 카메라는?"
"둘 다 불법으로 하는 곳이야. 현찰 거래만 하고, 그런거 안 남겨."
"사장은? 명동이랑 여기랑 같은 사람이야?"
"그건 아닌데, 복잡해. 명동에서 발견된 시신 두 구 중 하나가 겉으로는 사장이었는데, 같이 발견된 다른 시신이 실제 소유주였어. 둘이 친인척."
"여기는, 한명은 여기 이 캐비넷에서 나오고,두명은 비품 넣어놓는 창고에서 발견되었는데, 사장은 어디갔는지 없고.. 근데 좀 이상한게, 명함들이 놓여있어. 아주 예쁘게.. 여기."
책상 위를 본다. 어수선한 현장과는 달리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대부업체 명함과 전단지..
"환전하고 사채를 같이 하나?"
"외노자들 상대로 이거저거 돈 되는 거 다 했겠지. 환전도 수수료 엄청 받았을거고, 환율도 엉망으로.. 다들 그렇게 해. 알면서도 은행 못 가는 사람들은 여기 와야지."
"누구? 신분증 없는 사람들?"
"응, 그리고, 차명써서 고국으로 송금도 해주니까... 여기 이 사람들 여권으로.."
박스를 연다. 한가득 들은 주인 없는 여권들...
"노숙자 꺼?"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1인당 송금 액수만 넘지 않으면 직원이나 가족 명의로 송금을 하는데, 봐봐, 여기 뒷면에.."
환전, 혹은 송금 확인 도장을 가르킨다. 몇몇 은행 직인의 비율이 아주 약간씩 다르다..
"말로만 했다고 하고, 가짜 도장을 찍었을거야. 보통 귀국이 임박했거나, 다른 나라로 도망가는 사람들 상대로 돈만 챙긴거지. 간 다음에는 따지러 못 오니까."
"사무실도 자주 옮겼겠네."
"이 사람들 사무실이 아니야. 다른 사업장에, 일정 시간만 따로 빌려 쓰는거야. 주로 퇴근하고 난 후에 밤 시간이라던가, 주말.. 그럴때만, 아는 사람만 소개로 와서 돈을 바꾸는 거지. 몇건하고 튀고, 몇건하고 튀고.. "
"현찰 거래하면서 일련번호를 일일히 적어놓지도 않았을거고, 신고해도 추적하기 힘들겠는데?"
진우가 이매일을 보낸다.
"영상 몇개 보낼께, 잘 봐봐. 건물 바깥쪽에 있는 CCTV 야. 외진 곳이라 몇개 있지도 않고, 밤 시간이라 어둡기는 한데, 몇명 있어. 두명은 방금 신원 확인 되었다 그러고, 며칠 전에 왔다간 몇사람까지 합하면, 대충 분위기 정도는 들을 수 있을거야. 지금 이 부근에 있는 외노자들 상대로 찾고 있어."
진우가 화면 하나를 확대한다.
"문제는, 여기.. 건물 뒤쪽인데, 카메라가 엉망이야. 지 맘대로 들어왔다 나갔다해.. 언뜻 뭘 밀고 들어오는것 같은데, 새벽 3시에... 영상이 자꾸 꺼져. 녹화가 되다 안되다 한것 같아. 처음에는 같은 영상이 반복되는 줄 알았어. 근데 아니야, 이 사람이 세번을 왔다갔다해. 주차장에서 문 앞까지.."
"사체를 들고 들어왔다, 이거야?"
"현장이 너무 깨끗하잖아. 지저분한거 말고는, 혈흔이 없어."
"살인을 했으면 숨겨야 하는게 맞지, 겨우 몇시간 후에 남들 출근하는 곳으로 일부러 가지고 들어온다..? 누구한테, 뭘 보여주려고?"
"다른 사람이 한 범행을 알리려는 것일 수도 있고.. 공범이 마음을 바꿔먹었다던가..?"
"그래도 그놈이 잡히면 자기도 위험할텐데? 원래 사무실 쓰는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이야? 건물도 이상해."
"보이스 피싱."
멈춘다. 한방에 머리가 멈춘다. 보이스 피싱은 절벽이다... 커다란 북한산 암벽이 두 조각이 난 것처럼, 커다랗고 커다란, 정말 커다란 절벽에 부딪힌다.
"입주 사업장이 거의 다 다단계나, 일본 영상, 도서같은 거 수입 업체.. 불법 영업장들만 모여있어. 이번 사건 아니어도 싹 다 집어 넣어도 돼. 봐, 다 도망가고 아무도 없잖아. 여기도 아침에 시신있다고 신고 전화만 하고 싹 사라졌어. 목격자, 증인, 피해자나 시신과 관련된 어떤 사람도.. 아무 실마리가 없어."
"뭐가 이따위야.. 명동 건하고 비슷하다며?"
"비슷해, 증거가 하나도 없는거.. 너무 완벽하잖아. 미치는 거지.."
"지능팀 연락해봤어? 이쪽에 보이스 피싱 조직 쫒는 거 혹시 있었는지?"
"여기서 쓰던 전화번호를 역추적했는데, 인터넷 폰이고 발신지가 태국입니다."
진우가 거든다.
"열에 아홉은, 유령의 짓이다... 그렇게 봐야지."
뻔하다... 절벽에 유령.. 도저히 인간이 막을 수 없는 저세상 범죄. 지이잉... 진동이다. 셋이 동시에 핸드폰을 본다... 진우가 낮게 내뱉는다.
"에이씨, 기사떴다.."
/서울 용산 경찰서 30대 현직 경찰관, 미성년자 성폭행으로 내사 중../
"아직은 인터넷인데, 저녁때는 메인 방송 가겠지. 기자들 왔을거고.. 아, 작살이다.."
지율이 핸드폰을 집어 넣는다. 조심스레 살피는 민규.
"류 형사님은 좀 어때요? 만나보셨어요?"
"똑같아요.. 별로 뭐.. 하긴, 뒤통수만 봐서 별 일이 없어보였을 수도...?"
"야, 그걸 말이라고.. 얘기 좀 해 보지. 넌 알잖아, 시환이 그런 애 아닌거."
"알지. 아니까 뒤통수만 보고 그냥 왔지. 나까지 뭐라 그러면, 위로든 뭐든 불편할거 아냐. 다들 확인 전화하고, 걱정하고 난리일텐데.."
"넌 걱정 안돼?"
"걱정은 무슨... 시간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 딱 이틀만 주면 해결하겠는데.."
"취하 시키게? 자신 있어?"
"네가 죽을래, 내가 죽을래... 거기서 내가 죽을 수는 없잖아? 널 죽여야지."
"좀.. 그렇게 무서운거 말고, 일만 딱 해결 하는 거 어때?"
"어렵다.. 누구 안 죽이고 해결 해 본적이 별로 없어서.."
"장난하지 말고... 나 필요해? 같이 알아볼까?"
"됐어, 차 형사님이랑 리화씨가 맡았어. 선배는 시환씨나 챙겨줘. 먼저 들어갈께."
"그래, 살살 댕겨. 미안하다, 야.. 아픈거 몰랐다. 좀 전에 종태 형님한테 엄청 욕먹었어. 전화 할려면 석호 형한테 직접 하라고.."
"아냐, 괜찮아. 팀장님 제 정신 아닐껄?"
"하긴, 그렇지.. 들어가, 있다보자."
10.2.2 사무실
종일 영상을 보며 채은을 찾아내고 있는 시환. 눈이 피곤하다. 은석이 묻는다.
"뭐 좀 더 나올 거 같아요?"
"이게 거의 다 된것 같습니다. 최근 한달 정도인데, 그 이전에는 뜸했거든요. 새 남자친구랑 깨졌다 그랬으니까, 아마 그 이후에 다시 저한테 온 거 같아요."
"한달동안 경찰서 부근에서 머뭇거리는 게 20여 차례가 넘는다? 엄청 많은데요?"
"알바를 이 근처로 옮겼더라구요. 그냥 지나가는 것도 몇개 있어서, 정말로 누구를 기다리고 있거나, 숨어서 보고 있는거는 한 열 서너개 됩니다."
"혹시, 그 마지막 날 술 취해서 찾아왔을때, 그 영상은 어때요? 아까 비틀거리고 지나가는 게 다에요?"
"경찰서 내부 카메라에 머리 꼭대기만 보여요. 계단 아래, 화단 쪽에 있어서.. 주차장에서도 사각지대구요. 그래도 선배랑 그쪽 보면서 서있는 거는 있는데, 이게 증거가 될까요?"
"이채은씨 모습이 있어야 하겠죠, 얼마나 취했는지, 정말 항거불능인지.."
"오피스텔 CCTV 에는 업혀 가는 것만 있어서 저한테 더 불리할거에요."
은석이 잠시 목 운동을 한다. 시환이 재빨리 일어난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제가 탈게요, 저도 목 말라서.."
은석의 컵에 믹스 커피 두 봉지를 넣고 정수기 뜨거운 물을 붓는다. 잘 저어 먼저 가져다 준다.
"고마워요. 두개씩 먹는 거 언제 봤어요? 비밀인데?"
"ㅎ... 저기.. 차 형사님, 죄송합니다. 바쁘신데 이런 일까지 하게 해드려서.."
"난 하는 거 없어요. 밖에서 뛰는 사람도 있는데요.. 잘 해결 될거에요. 걱정 말아요. 그리고 혹시라도, 문형사님이나 서장님한테 섭섭해하지 말고요. 아끼셔서 그래요, 더 화나서.."
"... 알고 있습니다.."
"특히 종태 형님, 툭툭 손으로 치는 거, 진짜 때리는 거 아니고.."
"괜찮습니다, 그건.. 제가 맞을 짓 했습니다. 문제 삼지 않습니다."
"그래요, 그럼 다행이고.. 나는, 별로 나서는 편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 둘만 있으니까 부탁 할께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끼리는, 팀원들끼리는 싸우지 않았으면 해요. 이번 일도, 지금 막 터져서 잠깐 아주 많이, 예민하신 거니까, 이해해요."
시환이 뭐라 대답 하려는 찰라, 사무실 문이 부서져라 열린다. 짙은 남색 제복을 입은 남자가 뛰어들어와 날아 오르듯이 시환에게 주먹을 날린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나동그라지는 시환. 일어설 틈도 없이 구둣발로 사정없이 밟는다. 놀란 은석이 뛰어가 남자를 말려본다. 은석을 밀어내는 남자. 어깨에 붙은 경찰 계급장을 본다 - 무궁화 4개... 총경..?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물러나는 은석.
"누구십니까? 무슨 일이신데..?"
"빠져. 내 일이야."
그제서야 시환이 일어난다. 코피가 흐르지만 닦을 틈도 없이 바로 열중 쉬어 자세로 선다. 남자가 또다시 주먹을 날린다. 주저 앉았다가 다시 일어선다. 이번에는 오른 손으로 뺨을 갈긴다. 철썩, 철썩, 철썩.. 상체가 뒤로 돌아가도록 거센 손바닥에 시환이 휘청거린다. 귀에서 튀어나온 보청기가 책상 아래로 구른다. 뒤이어 우르르 뛰어들어오는 사람들. 서장이 나선다.
"형님, 형님... 이러지 마시고요.."
"놔, 저 자식 오늘이 끝이야. 당장 해임해."
"무고에요, 무고... 누명!"
"누명이면? 경찰 간부가 미성년자랑 뒹구는 게 잘못된거지, 무고냐 아니냐가 중요해?"
"그래도, 다르잖아요. 그리고, 여자애가 나이를 속였어요, 스물 셋이라 그랬대요."
"시끄러, 너는 애들 이따위로 관리해? 그렇게 오냐오냐 하지 말랬지? 류시환 너 이리와, 오늘, 너랑 나랑 다 끝내자."
날라차기로 시환에게 달려드는 남자, 소리지르며 말리려는 사람들 뒤에서 날아든 크리넥스 박스가 정확히 남자의 뒤통수를 친다. 기겁을 하고 돌아보는 사람들, 강지율이다... 바닥에 나뒹구는 크리넥스 통.. 더 당황한 서장.
"야, 강 형사.. 너 지금..?"
"서장님 애들 관리 어떻게 하냐시잖아요. 대답 하세요. 관리 무지 못한다고.. 이렇게 외부인이 맘대로 들어와서 부하직원 폭행하는데도 그냥 냅두고 보고만 있다고.."
기가 막힌 남자가 서장을 바라본다. 손가락으로 지율을 가르킨다.
"... 뭐하는 놈이야?"
절절매는 서장.
"강지율 경위라고, 류시환이 파트너입니다. 근데 애가 미국에서 와서 좀 버르장머리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깊히 숨을 들이켜 본다.
"이제 고작 경위인 놈이, 휴지를 던져? 제복 안보이나?"
"보입니다. 그래서 던졌습니다. 민간인이면 대가리부터 까고 수갑 채웠습니다. 봐드린겁니다."
"하..? 뭐가 어째?"
"야, 지율이 데리고 나가, 얼른.."
"아니, 어딜 나가? 너 남고, 구경 온 놈들 나가. 용산은 일 안하나?"
호통소리에 슬금슬금 문을 닫고 나가는 사람들. 서장과 총경, 은석, 시환, 지율만 남았다.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나가 크리넥스 박스를 주워 시환에게 내민다. 여지껏 열중 쉬어 자세로 서있다가 겨우 한손으로 휴지를 뽑는 시환. 지율과 눈을 마주친다. 입에 고인 피를 뱉어낸다. 코피까지 흘러 엉망이다. 휴지를 몇장 더 꺼내주는 지율,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사람들..
지율이 총경을 향해 돌아선다.
"누구신데 남의 근무지에서 주먹질이십니까?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것 없습니다. 조금 더 조사하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돌아가십시오."
"강 형사야, 이 분은.."
"알아요, 무궁화 4개.. 높은 사람. 서장님하고 계급이 같은데 왜 벌벌 기어요? 선배에요?"
"벌벌 기어.. 이 자식 어른한테 말 버릇이..? 야, 애들 진짜 왜 이모양이야? 용산서 꼬라지가 왜이래?"
총경이 핏대를 세운다. 지율이 눈하나 깜빡 안 한다. 똑바로 응시한다.
"총경님 폭력 경찰이죠? 가정 폭력 경찰..."
"뭐?"
"밖에 나와서는 좋은 사람인척, 시민을 지키는 척 하면서 집에 가서는 아들래미 폭행하는, 그런 경찰."
시환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류시환이 서 있는 거 보여요? 상관이 때린다고.. 저런 자세로 가만히 서서, 맞기를 기다리고 있는 경찰 봤어요? 집에서 저렇게 세워놓고 때렸죠? 몇 살 부터?"
뒤늦게 소식 듣고 뛰어 올라온 종태와 석호가 사무실로 들어선다. 지율이 계속한다.
"아동 학대네. 아동이 아니라 다 커도 학대네, 안그래요? 류 경위가 착하니까 신고 안했지, 나같으면 직장까지 쫒아와서 행패 부리는 아버지 필요없어."
눈을 내리까는 시환, 놀란 종태가 총경과 시환을 번갈아 바라본다. 지율이 손가락으로 명찰을 가르킨다.
"봐봐, 이름표부터 '류' 형호... 얼굴도 완전 똑같이 생겼잖아. 팔다리 길죽한게 체형도 비슷하고.. 시환씨가 아버지 닮았구나, 젊어서 인물 좋으셨겠네..."
가운데에 서서 양팔을 벌리고 손바닥을 올린다. 양쪽에 선 두 사람의 얼굴을 가리고 위에서 부터 내려온다. 이목구비를 비교한다. 이쪽저쪽 돌아보며 중얼거린다. 긴장하는 사람들..
"이마는 완전 똑같고, 눈썹도 많이 비슷해. 총경님은 무쌍, 류경위는 속쌍꺼풀.. 콧등이 약간 굽었고, 그건 아버지 안 닮았네.. 얼굴 골격이..."
광대뼈를 지나다가 멈추는 지율. 총경에게 바짝, 한발자국 다가선다. 뒤로 흠짓 물러나는 류 총경... 옷 자락을 잡아당겨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왼쪽 광대뼈에 흉터가 있다. 오래된 기역자.. 지율이 남자를 본다. 그런 지율을 내려다보는 무표정한 눈... 천천히 옷을 놓고 몇걸음 뒤로 물러나는 지율의 눈에 책상 아래에 떨어진 보청기가 보인다. 몸을 숙여 집어든다. 후후 불어 시환에게 내민다. 받아서 귀에 끼우는 시환.
"이거 없으면 안들리는 거 알면서 애를 그렇게 때려요? 그것도 수술한 쪽을? 진짜 못됐다.."
눈이 동그래진 종태가 몰랐다는 듯 서장을 바라본다. 미안한 얼굴로 달래는 서장.. 침목을 깨고, 한번 꾹 참은 총경이 간신히 입을 뗀다.
"네가 뭐하는 놈인지 정말 모르겠지만, 오늘은 봐준다. 인제 빠져. 저 녀석하고 둘이 할 얘기가 있으니까."
"하지마요. 할 얘기 없어요. 아버지 닮아서 흐리멍텅 한걸 왜 화를 내요?"
잠시 마음 놓았다 다시 기겁하는 사람들. 다시 인상이 구겨지는 류 총경.
"뭐가 어째?"
"아버지 닮아서 잘 울고, 잘 웃고, 여자 줄줄 따라다니고.. 그걸 어쩌라구요? 순 뻥쟁이..."
"....?"
"우리 엄마 죽인 놈 잡아준다고 큰소리 뻥뻥 쳐놓고, 다 잊어버렸죠?"
"뭐...?"
"20년 전에, 우리 엄마 장례식에서요.. 삼촌이 막 울면서 나한테 약속잖아요, 범인 잡아준다고.. 기대도 안했지만... 그때 내가 한 말 생각 안나요? 제가 그랬잖아요, 아니에요, 삼촌은 못잡아요..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미친 개는 미친놈이 잡는대요.."
10.2.3 20년전, 장례식장
/회상/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는 젊은 류형호, 환자복을 입은 아이에게 키를 맞추려 무릎을 꿇고 있다.
"삼촌이 그 놈 꼭 잡아줄께. 병실에서 치료 잘 받고, 기다리고 있어. 추우니까 돌아다니지 마."
무표정한 아이가 형호의 눈물을 본다. 가만히 눈을 마주친다.
"아니요. 삼촌은 못 잡아요. 우리 아빠가 그랬는데, 미친 개는 미친 놈이 잡는대요. 괜찮아요, 내가 다 봤으니까. 아빠가 금방 잡을거에요."
아이가 사람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힌다.
"그 사람이요, 여기 형호 삼촌처럼 왼쪽 뺨에 흉터가 있어요. 근데, 이것보다 조금 더 위에, 조금 더 코 쪽으로.. 눈 바로 아래에요. 크기는 비슷해요.. 삼촌들, 뭐해요? 수첩 안꺼내요? 이거 다 적어야 범인 잡지? 내가 목격자잖아요!"
눈물을 훔치는 경찰들, 참던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들.. 가운데 우뚝 서서 유일하게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범인의 인상 착의를 설명하는 아이.. 하나씩 수첩을 꺼내 적는다, 아니 적는 척 한다.. 여기저기에서, 방울방울 눈물이 떨어진다.
"왼쪽 눈 아래 흉터, 기역자로 생겼구요, 앞머리가 길어요. 야구 모자를 쓰고, 그 위에 비닐 모자를 또 써서 얼굴은 자세히 못 봤고... 대신 침대에서 우리 오빠 찌를 때 봤어요, 어두운 녹색 우비 긴 거 입었어요. 그러고 골목에 세워둔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갔구요. 사거리 수퍼 앞에 배달 다니는 그런 짐 싣는오토바이.."
쏟아지는 눈물을 어쩌지 못해 고개를 수그리고 우는 형호. 아이가 안아준다. 가만히 어깨를 두드린다.
"아빠가, 경찰은 우는거 아니랬어요. 눈물 한방울 떨어질때마다 범인이 멀어진대요. 울고 있을 시간에, 나가서 범인을 잡아야 된대요."
술에 취해 몸도 못가누는 종태가 삐딱하게 벽에 기대어 바라본다. 목 아래로 감긴 봉대가 눈물로 젖어든다. 붉게 피가 비친다. 종태 맞은 편에 앉아 조용히 눈물을 닦는 조상현. 빳빳한 제복 차림이다. 종태가 술잔을 집어 던진다.
"야, 조상현! 네가 뭐라고 울어? 엊그제 새로 온 자식이 뭔데 우리 형수님 장례식에서 울어? 울려면 제복 벗고 제대로 울어, 새끼야!"
술을 뒤집어 쓰고도 아무 소리 않고 눈물만 흘리는 상현. 사람들이 말린다.
"야, 문종태, 이 자식 왜 이래?"
"많이 취했다. 데리고 나가! 얼른! 조 경위 괜찮아? 저 자식이 너 오기전에 형님하고 계속 파트너였거든. 많이 속상할거야. 이해해, 오늘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닦는 상현. 끌려나가며 종태가 소리친다.
"야! 조상현! 네가 뭔데 거기서 처 우냐고! 경위면 다냐? 네가 잘 모셨어야지, 이 새끼야!"
소란스러운 소리에 홀을 내다보는 창률. 환자복 차림의 동생을 발견하고 나온다.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손목을 잡고 밖으로 데려간다. 복도 끝으로 가 아무도 없는지 둘러본다. 늘 한결같은, 차가운 얼굴로 조용히 묻는다.
"너 삼촌들한테 무슨 얘기했어?"
"...."
"아무말도 하지마. 넌 정말 못 본거야. 다 잊어. 이제부터 범인 얘기 한마디라도 하면, 너부터 죽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