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1 서장실
서장실에 마주앉은 서장과 류형호 총경, 그리고 커피를 들고 들어오는 종태.
"그래서, 형님들은, 나만 쏙 빼고.. 시환이가 형님 아들인거 비밀 할라 그랬어요?"
"비밀이 아니라, 아버지 덕 보지말고 혼자 인정 받으라 그거였지."
"섭섭하네.. 그 뺀질이 자식은 나 알았을텐데?"
"알지, 너랑 자꾸 티격태격한다 그러길래 물어봤었어. 너 종태 삼촌한테 다 말 할래, 그랬더니 싫다 그러더라고. 그냥 지가 못해서 혼나는 거라고, 괜찮다고.."
"걔는 뭐가 그렇게 맨날 못해? 맨날 혼나고? 경찰대까지 나온 놈이, 왜 그렇게 모자라? 우리때 경찰대가 어디 있었냐? 다들 바닥부터 기어서 올라갔지. 나중에 경대 나왔다고 팍팍 치고 올라오는 꼴 같잖은 걸 평생 참았는데, 류시환이는 경대 나온 놈이 왜 그모양이야? "
종태가 실실 웃는다.
"남의 아들 말하듯이 해요? 나는 그 째끄맣던게 저렇게 큰 것도 신기하네?"
"커야지, 그럼, 평생 코딱지만할 줄 알았냐?"
"아이구, 쟤 맨날 아프고, 먹는 거 좍좍 다 설사하고.. 어디가도 제일 작았잖아요, 비리비리 해가지고.. 지금은 용 됐네, 뭘. 기특하구만."
"니가 그럴까봐 미리 얘기 안한거야. 가뜩이나 나약한 놈, 애 취급할까봐."
"애 취급은 무슨, 다 커서 사고도 치는데.."
"야.."
서장이 눈치준다. 굽히지 않는 종태.
"형이 애한테 너무 땍땍거리니까 자꾸 밖으로 돌지. 여자애들하고 붙어다니는 것도, 다 형 때문이에요. 집에 가봤자 아버지가 때리지, 엄마는 아버지 편만 들지... 나도 나가고 싶겠다, 안그래? 지 좋다는 여자 애들 널렸는데, 거기서 사랑받고 싶지, 형 같으면 형 같은 아버지랑 같이 있고 싶어요?"
"형은 좀 그렇다쳐도 형수까지 그렇지는 않지.."
"걱정마세요, 시환이 아니에요. 여자애가 나이 속이고 잠깐 만나다가 틀어졌대요. 지랑 헤어진 보복이에요. 반박 증거 모으고 있으니까, 금방 해결해요."
"확실해? 야, 나 내년에 정년이야. 정년 앞두고 자식 새끼가 미성년자 성폭행.. 그거 절대 안돼."
"안돼지, 평생 낙인인데.. 우리만 믿어요. 아니, 그리고, 시환이 몰라요? 그 자식이 누굴 성폭행을 해요? 지가 당하면 당했지.."
"야, 문종태, 너 꼭 말을 해도.."
"맞는 말이지, 뭘? 시환이야, 시환이. 저 녀석은 증거 아니면 벌레도 못 만져요. 잠깐 훼까닥해서 놀다가, 여자애 하나 잘못 꼬인거에요."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되는 놈들이 있어. 류시환이처럼 먹어봐도 모르는 놈도 있고."
"그래도, 걔가 일은 잘 해요. 덕분에 우리가 많이 빠르고, 편해졌어요."
"경찰이 범인을 잡아야지, 그까짓 감식만 할거야?"
"감식도 잡는 거지. 시환이가 몰고, 지율이가 잡고.. 둘이 딱이에요."
"그래, 걔... 그 강지율이는 뭐하는 놈이야? 날 어떻게 안다는 거야?"
"그러게. 형님은 기억 안나요? 걔는 아주 바로 삼촌이라고 부르네? 도데체 누구야?"
"이름이 전혀... 강씨가 하나둘이 아닌데다가, 애들 이름까지 다 기억하기에는... 근데 내가 지 엄마 장례식까지 갔다잖아. 그럼 가까운 사이였을텐데?"
"걔가.. 경찰 가족이고, 엄마랑 오빠랑 같은 날 죽었어요. 얘 혼자 살아남은 목격자."
"좀 더 알아봐, 20년 전을 어떻게 기억하냐? 야, 모르면 그냥 걔한테 대놓고 물어봐, 너 아버지 이름 뭐냐...? 그 자식, 머리에서 길게 생각 안하고, 그냥 입으로 막 탁탁 뱉던데, 일부러 숨기는 거 아니면, 쉽게 얘기할거야. 그리고, 문종태, 너 애들 좀 교육 시켜. 아까는 내가 좀 흥분했다 치고, 아무리 그래도 새파란 놈이 어디서.."
"너무 미워하지마요. 걔가, 예전에 걔에요, 시환이 살려준 애."
"누구?"
"옛날에, 사고 났을때... 시환이 들쳐업고 병원 뛰어간 그 미국 경찰, 걔가 강지율이라고."
"그게 얘 라고? 왜 여기있어? 미국 안 갔어?"
"아, 나 그 얘기 좀 해봐요. 걔네 둘이 무슨 사이야? 시환이가 완전히 몸종이야."
"에이, 지가 좋아서 그러는 거지 무슨 몸종까지.."
서장이 총경의 눈치를 보며 말을 꺼낸다.
"전에, 시환이 졸업하자마자 첫 발령지에 갔을때, 완전 초짜 순경애랑 초짜 경위랑, 둘이 2인1조로 순찰을 나갔어. 메뉴얼대로 했지. 무전기도 있고, 삼단봉도 있고, 테이저건도 있고.. 근데 편의점에서 누가 술먹고 꼬장부린다고 신고가 들어온거야. 시환이네가 바로 옆에 지나가고 있었다고. 이 자식들이 겁없이 쫄래쫄래 갔네? 근데 그냥 술만 취한 게 아니고, 감방갔다 나온지 며칠 안된데다가, 옷 안에 칼을 가지고 있었던거야. 같이 간 순경애가 먼저 나가 떨어지고, 시환이는 지원 요청하다가 그 놈이 냅다 덥쳐가지고.."
"그러니까, 왜 지원도 없이 지들끼리 먼저 뛰어들고, 왜 삼단봉도 안들고 얼굴을 들이미냐고, 세살이야? 경찰 학교에서는 뭘 가르친거야?"
류 총경이 아직도 분노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 놈이 깨진 술병이랑, 돌, 칼.. 막 이런걸로 애를 패가지고, 얼굴이랑 머리통이랑 반은 깨졌어. 목이랑 상체까지 다 찢어지고.."
"그 흉터가 그거에요? 귀 뒤로 아직 머리카락도 안 나던데?"
"그래, 귀도 여러번 찔리가지고 절반은 떨어져 나가고.. 그거, 만들어 붙인거잖아요, 귀, 그죠? 고막도 수술 한거고? 근데도 잘 안 들려, 그래서 그거 끼잖아."
"그래, 그거! 난 아까 지율이 말하는 거 듣고 깜짝 놀랐네. 여지껏 나는 걔, 요새 애들 음악 듣는거 있잖아요, 쪼꼬만거.. 귓구멍에 끼는 거.. 그건 줄 알았어. 안그래도 얼마나 거슬렸는데, 경찰이 그딴거 끼고 다니고.."
"아니야, 보청기야. 몇번을 재수술을 해도 안들려. 얼굴도 한쪽이 완전히 주저앉아가지고.."
류 총경이 덧붙인다.
"왼쪽 뺨이랑 광대뼈랑 다 패드 넣고 복구한거야. 딱딱한 것도 잘 못 먹어. 얼굴부터 가슴팍까지 수백 바늘을 꼬매서, 흉터 투성이야."
"아이구, 큰 사고였네.. 언젠가 사무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앞뒤로 흉터가 장난 아니더라구요. 지나가는 말로 몇번 지율이한테 은혜 갚는다 어쩐다 하길래, 관련이 있나 했지."
"옆에 대학병원이 있어. 지율이가 거기서 나오다가, 현장을 봤대. 가서 일단 때려잡고, 시환이 수갑으로 우체통 다리에다가 용의자 채워놓고, 애를 들쳐 업고 응급실로 뛴거지. 그날 걔 아니었으면, 아이구..."
"그럼 형님은, 그때 지율이를 못봤어요? 병원에 갔을거 아냐?"
"우리가 갔을때는, 명함만 놔두고 없더라고. 미국에 필라델피아 경찰이라고.. 피터슨인가 페터슨인가.. 휴가로 한국에 왔었는데, 경찰에서 진술 하자고 전화를 했더니, 미국 간다고, 이매일로 하라 그러고 휙 가버렸대. 그때부터 싸가지가 없었네, 그 놈은.. 그래도 애 살았다니까 놀라더란다, 못 살릴 줄 알았다고.."
"그때, 시환이가 진짜 큰 일 한거에요. 거기 초등학교가 바로 옆이야. 그 놈이 거기서 일하는 아줌마를 기다리는 중이었어. 지 신고해서 감방 보냈다고.. 그때 까딱했으면 학교 안에서 칼부림 나는 거였어. 시환이가 막은거지."
"걔가 막긴 뭘 막아? 강지율인가 그놈이 막은거지.. 시환이는 괜히 나서가지고 일년 넘게 병원에서 허송세월하고, 아직도 술 취한 사람만 보면 벌벌 떨고.. 그 자식이 태권도 선수 출신이야. 검도, 합기도 다 해. 경찰 시킨다고 지 엄마 도장에서 운동을 얼마나 시켰어? 근데 하는 꼴을 좀 봐, 지금! 한심한 놈."
"욕심도.. 잘 하고 있구만 월 그래요? 어린 애가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겠어? 아픈건 또 어땠을거야..."
류 총경이 씁쓸한 얼굴로 한숨을 쉰다.
"물론 그런것도 있었겠지, 애 니까.. 언젠가, 그때도 많이 회복하고 나서, 사건 나고 일년도 더 지났을때... 얼굴 한 네번인가, 마지막 수술했을때, 지 엄마가 잠깐 졸다 깨니까, 애가 창가에 서 있더래. 일부러 병실에 거울을 다 없에버렸었거든. 지 모습 보고 충격받을까봐. 근데, 밤이 되면, 유리창에 지 얼굴이 대충 비치잖아. 그걸 볼라고, 그 앞에 붙어서서 붕대를 풀고 있더래. 그날 낮에 수술 한 애가, 엄마 자는 동안 몰래 그걸 풀고 있는거야. 애 엄마가 전화해서 펑펑 울고, 애도 옆에서 울고.."
"그러니까 좀... 애한테 잘 해요.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못하나? 남의 아들들한테는 그렇게 잘하면서 왜 자기 아들한테는 그래? 그 자식, 아버지가 엄하네 어쩌네, 궁시렁 거리더니.. 그게 형이었네."
"형님. 시환이 정도면 잘 컸어요. 형님 기대에만 못 미치는 거지, 두고 봐요, 잘할거에요."
똑똑... 노크 소리가 난다. 진우다.
"어, 강진우! 들어와, 어쩐일이야?"
"다녀왔습니다. 안녕하셨습니까? 올라오다가 아버님 오셨다길래 인사 드리려고 들렀습니다."
"그래, 바쁘지? 잘 지내고?"
"뭐야? 강진우, 너도 알고 있었어? 시환이가 아들인거?"
종태가 따진다.
"진우는 다 알지, 얘들 학교 다닐부터 집에 놀러오고 그랬었는데.. 내가 진우 아버지도 알고.."
"야아, 다 짜고 나만 몰랐네. 이러기야, 진짜?"
"갑자기 달라지고 그러지 마. 그 녀석은 더 배워야 돼. 세게 좀 가르쳐."
"가르치는 거야, 지율이가 꽉 잡고 있죠. 아참, 진우야, 너 혹시 지율이 사건 아는 거 있어?"
"어머니 사건이요? 예, 대충... 사건 파일에 있는 것 정도는 봤습니다."
"파일을 찾았어? 나는 못 찾겠던데? 아버지 이름이 뭐야? 걔 아버지가 경찰인거지?"
"예, 아버지요. 성함이 송.. 뭐였는데.."
"송? 왜 송이야? 강 아니고?"
"강은 어머니 성입니다. 한국으로 귀화할때, 어머니 성으로 바꿨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송.. 죄송합니다, 아버지 이름은 생각이 잘 안나고, 피해자가 강수진, 어머니구요, 죽은 둘째 오빠가 송시율 입니다."
"송시율... 들어본거 같은데?"
종태가 갸우뚱한다. 진우가 답한다.
"원주에 국과수 본원이요, 부검 하시는 송창률 박사가 지율이 큰 오빠입니다."
"창률이?? 야, 잠깐! 송창률이면, 그럼 아버지가 송기환이야?"
종태가 소리친다. 깜짝 놀라는 두 사람.
"뭐? 기환이 형? 송기환?"
"맞는 것 같습니다. 상도동 경찰 가족.."
"아, 상도동... 맞네. 기환이 형이네."
"강지율이가 기환이 형 딸이라고? 그 꼬맹이가 이름이.. 지율이가 아니었는데?"
"송유리요."
"맞아, 맞아... 유리..!! 지율이가 유리야? 이 자식이... 어쩐지 이것들이 삼촌삼촌 하면서 까분다 했더니.. 이노무 새끼들, 어디갔어?"
자리에서 일어나 뛰쳐나가는 종태. 뒤따라 일어서는 진우, 꾸뻑 인사하고 따라 나간다.
어안이 벙벙한 류 총경. 안믿어지는 얼굴이다.
"기환이 형이면... 그럼 맞아. 내가 그 장례식에 갔었어. 그때 그 또랑또랑하던 쪼꼬만 놈..."
10.3.2 사무실
헉헉 거리며 뛰어들어오는 종태와 진우. 눈이 동그래진 은석이 묻는다.
"왜 그러십니까?"
"...강지율이.. 어디갔어? ...이 자식.."
"류시환이랑 같이 나갔습니다. 혹시 기자들 있을까봐, 차로 데려다 준다고.. 무슨 일이에요?"
소파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는 종태. 하나씩, 지난 일이 생각난다.
"그래, 그 자식이... 스물열두살 부터 시작해서, 업어주세요, 애정이 식었어... 자꾸 뭔가 날 아는 것 처럼 이야기를 했어..."
"뭐가요? 누구요?"
진우와 은석이 옆에 앉는다. 종태가 웃는다.
"아하하, 진짜 몰랐다... 애가 어떻게, 어릴때 얼굴이 하나도 없지? 형수님 정말 예뻤는데, 아빠 닮았나?"
"그러니까, 뭐요, 지율이 못생겼다구요?"
"아니야, 못 생긴게 아니라, 지 엄마 안닮았다고.. 강지율이가 송유리라 이거지? 근데 나를 모른척 하고 장난질이다.?"
"형님은 송유리를 어떻게 알아요? 그때, 사건 때 부터 알았어요?"
"알았지, 내가 지율이 업어 키웠는데.. 지율이 아버지가 내 파트너였어, 내 사수."
"얘기해주세요, 그날.. 도대체 누구에요?"
진우가 바짝 붙어 앉는다.
"그날... 그게... 완전히 며칠 안 남은, 연말이었어. 12월 말에, 음주 운전 특별 단속 기간있잖아. 그럴때는 한강 다리 한복판에서 음주 검사를 했거든, 못 도망가게.."
10.3.3 종태
/회상/
"아이씨, 추워... 음주운전 잡다가 내가 얼어죽겠다.."
바들바들 떨며 경광봉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종태. 줄줄이 늘어선 대열을 따라, 하얀 입김이 하늘로 오른다. 종태 앞에 정차하는 승용차. 짙은 선팅을 해 안이 보이지 않는다. 유리창을 두드리자 불을 켠다. 여전히, 안쪽이 잘 보이지 않는다. 옆에 선 다른 경찰이 지시한다.
"야, 얘 마셨나보다, 창문 안 내리네.. 열라 그래."
종태가 소리친다.
"창문 내리세요!"
망설이는 듯, 서서히 창문이 내려간다. 1/3도 안열렸는데 이미 술 냄새가 진동을 한다.
"아후, 내리세요, 인정하시죠?"
고민하던 남자가 문을 연다. 한 발, 두발을 밖으로 딛다가 종태에게 덤벼든다. 손에 날카로운 주머니 칼을 쥐었다. 후훅... 재빨리 뒤로 물러나지만, 한방에 목 아래를 뚫고 들어온다.
"잡아! 도주한다!!"
몇걸음 못 가고 잡힌 용의자를 보며, 종태가 비틀비틀 다가간다. 저 새끼에게 수갑을 채우고 싶다...
"야, 야, 놔두고 너 병원 가. 얼른!"
큰 부상은 아니지만, 아슬아슬하게 방검복과 턱 사이를 지나 일자로 그어졌다. 계속 피가 흐른다. 차에 올라탄다.
"혼자 갈라고? 애 하나 데리고 가."
"아닙니다, 그냥 스쳤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다녀오겠습니다."
손수건을 접어 옷깃으로 꾹 누르고 단추를 다시 잠근다. 가는 동안 흘러지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뭘 다녀와? 그냥 들어가! 여기는 우리가 마무리 한다. 보고해."
빌어먹을 칼잡이 놈이 탄 경찰차를 지난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 다른 전과가 있는 놈이다... 제자리로 돌아가 다시 검문을 시작하는 동료들을 두고 차를 돌린다. 멀찌기에 서서 손을 흔들어주는 선배 - 송기환.
가까운 병원으로 들어선다. 차에 탄채로 응급실을 살핀다. 역시나 사람이 많다. 죄다 술 처먹고 실려왔겠지.. 매년 이맘때다. 누구는 개판치고, 누구는 그 판을 치우느라 피똥을 싼다. 전화가 온다. 후배 경찰이다.
"송 경위님 같이 계십니까? 전화를 안 받으십니다."
"시끄러워서 못듣나? 왜? 내가 좀 있다 다시 갈거에요, 말해요."
"경위님 댁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관할서에서 도착은 했는데, 상황이 좋지 않답니다.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끼이익... 차를 돌린다. 출혈 양을 버티지 못한 손수건에서 피가 흐른다. 처음에는 따뜻하다가, 이내 차가갑게 식는 피.. 계속 흐른다. 전 속력으로 달린다.../
10.3.4 사무실
"... 도착했는데, 이미 경찰차 서 있고, 동네 사람들 나와있고.. 한 겨울에, 한 밤중에 난리가 난거야. 안으로 들어갔는데, 현관에서 거실이 바로야. 거기에서 애가... 지율이지, 그때는 유리가, 그 어린 게 경찰들 왔다갔다 정신없는 그 한복판에 서서, 거실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거야, 움직이지도 않고 똑바로 처가지고... 다들 바빠서 애가 나온 거를 몰랐는지, 지가 거기 서있겠다고 했는지... 아무튼 어린애가 현장을 보고 있더라고. 피는 바닥에 쫙 깔렸지, 벽이랑, 가구랑 다 엉망이지.. 애가 쳐다보는 데를 딱 보는데, 아후, 거기 바디백 세개가.. 이제 막 담아가지고 들고 나갈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그걸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더라고."
"어린 애가 그런 걸 보고 있는데 아무도 안데리고 나갔어요?"
"그러니까.. 연말이라 다 바쁠 때 잖아. 꼴랑 경찰 서너명 와가지고, 우와좌왕 정신 없었던거야. 애가 지 발로 나와서 서있었는지 어쨌는지, 내가 심장이 철렁해가지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봤는지 모르겠지만, 난 현장에서 그런 애는 처음 봤다. 어른들도 기겁을 하는데, 애가 무슨 간땡이가.. 내가 그때 좀 긴 옷을 입고 있었어, 엉덩이 좀 내려가는 거, 현장 못 보게 할라고, 유리야, 그러면서 그 옷 자락으로 애 얼굴을 이렇게 가려주는데, 애가 나를 쓰윽 올려다보는거 같더니 그냥 쓰러지더라고."
숨소리만 남은 사무실. 종태가 계속한다.
"근데 있잖아, 그 집이 난 아직도 이상한게.. 형님이 처음 사신 집이었는데, 그게 완전히 요새거든. 창문에 다 쇠창살 새로 박고, 문마다 최소 네다섯개씩 잠금 장치를 달고 이사 들어가셨어. 근데 이게, 강제 침입의 흔적이 전혀 없었어. 이상하지? 형수님이 그렇게 쉽게 문 열어주는 사람이 아닌데.. 그래서 그때, 큰 애 있잖아, 창률이가 제일 의심을 많이 받았고, 그 다음으로 나랑, 이 사람 저 사람, 경찰들 엄청 불려갔었어. 아는 사람이 라서 문을 열어준거다 추정한거지."
"그러다가 현장에서 발견 된 공범 시신 지문이 나오고, 그것도 지율이가 찾은거야, 반찬통에서.. 그러고보니 그 얘기도 했었네, 지 입으로.. 내가 왜 그걸 눈치 못했을까, 너무 오래되긴 했나보다. 꼬맹이가 혼자 밥먹다가, 조개젓인가 빨간 양념 안에 숨겨놓은 지문 조각들을 발견한거야. 그걸로 조회해보니까 그냥 길에서 오래 지낸 노숙자라네?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그게 희망이었는데... 그러고 나서는 주범에 대해서는 아무 흔적도 못찾았어. 결국 미제로 남았고."
"그 이후에는요? 서로 연락을 안 하신거에요?"
"형님이 미국 가셨지. 범인도 못 잡고, 그런거 있잖아, 의사가 가족 죽는거.. 경찰이 자기 가족 죽인 범인 못 잡는게 그런 기분일거야. 힘든데다가, 유리가 아팠어. 갑자기 말을 안하는거야. 장례식까지도 멀쩡하고 똘똘했는데, 뒤늦게 충격이 컸는지, 입을 닫아버렸어. 걔 때문에 난리였지.. 그러다가, 죽은 둘째 아들 친구 중에, 좀 사는 집 애가 있었어. 교회를 꽤 크게 하던 집이었는데, 그 목사님 부부가 미국에 가보라고 제안을 했어."
"애 치료하러요?"
"응. 거기 있어봤자, 엄마 생각 날거고, 좋지는 않을 거잖아. 그 목사님 아들이 검사인가 변호사인가 그랬을거야, 미국에 아는 사람 소개시켜주고... 이민으로 가면 오래 걸리잖아. 그러니까 그냥 유학생으로 얼른 가고, 애부터 치료 시작했지. 돈 엄청 들었을건데, 그 사람들이 도와줬어. 기도했더니 하느님이 그러라 그랬대. 교회를 팔아서, 그 돈으로 형님이랑 유리 미국 보내고, 큰 애 있잖아, 창률이.. 걔 의대 졸업할때까지 도와줬어."
"왜요? 좀 이상한데? 생판 남한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몰라, 돈이 많았나봐.. 그리고 걔가 그 집에 매일 와서 살다시피 했거든. 엄마아빠가 바쁘니까.. 나도 자세한 거 모르다가, 형님을 마지막으로 본게, 창률이 대학 병원 취직했다고.. 밥 한번 산다고 불렀어. 그때 딱 한번 같이 밥먹는데, 애한테 그러더라고, 그 집에 잘 하라고.. 다 그 분들 덕분이라고... 몰라, 나중에 돈 다 갚았는지 어쩐지.. 그래도 그때 그 사람들 없었으면 폐인 됬을거야."
진우가 갸우뚱 한다. 뭔가 자연스럽지 않다. 아무리 기도의 답이라고 해도, 아무리 죽은 아이의 친구라고 해도... 동네 목사가 전재산인 교회를 팔아 유리네 가족을 위해 썼다... 교회, 법조인... 진우가 바빠진다. 죽은 오빠가 지율이보다 네살 위라고 했었다. 그리고 이석호가.. 역시 네살... 할아버지와 계속 서울에서 살다가 갑자기 고등학교때 부산으로 갔다.. 그리고 석호와 창률은 형제같은 사이.. 전에 둘이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석호와 마주앉았던 점심 시간...
"왜, 부적 이후에 갑자기 지율이한테 관심을 보일까? 서장님한테도 지율이 우리 못 준다고 그랬다며? 왜? 옆에 붙어서 지켜볼라고?"
"준다고 한 적 한번도 없었어."
"그래? 다 된것 처럼 말씀하셨다던데.. 근데 있잖아, 형이 지율이한테 요새 관심이 많은 건 인정하지? 왜 그래? 전에 원주에서도, 지율이 아버지 계신 병원에 들락거린다며. 머리 굴리지 마. 솔직하게 말해. 지율이하고 뭐 있지?"
"...몰랐어."
"뭘?"
"강형사하고 뭐가 있는 거.. 몰랐다고. 전혀 다른 두 사람이었는데, 동일 인물이었어. 그게 다야... 내가 병문안 다니던 그 분이, 지율이 아버지인 것도 몰랐어. 오래전부터 알던 분이라서 갔던거야... 적군 아니야. 뭐, 지율이한테는 그럴수도 있겠지만... 너한테는 확실히, 같은 편이야."
자기 입으로 말했었다. 지율이한테는 적군일 수도 있다...?? 뭘까.. 무슨 뜻일까... 진우가 꾸뻑 인사하고 나간다.
전화벨이 울린다. 은석이 받는다. 예, 예, 예... 짧은 통화. 종태가 묻는다.
"무슨 전화야?"
"지난번에 강 형사 폭행하신 할아버지요, 합의건 어떻게 되냐고 문의하신다는데요?"
"지율이 고소 안한대. 이제 민원 그만하시고, 확실하게 아셨으면 됬다고."
"합의를 너무 하시고 싶어 하십니다. 전화가 여러 차례 왔었습니다. 강 형사 바꾸라고.."
"그 할아버지는, 이제 종목 바꿨어? 바쁜 애를 왜 자꾸 찾아?"
"사과하시고, 식사 한번 하자고.."
"사람이 그립구만, 노인네.. 잘못봤다 그래. 강지율이가 그렇게 사근사근하게 밥 먹어 줄, 그런 착한 인종이 아니라고.."
"강 형사한테 말이라도 전할까요? 혹시 모르니까.."
"걔가 같이 먹겠냐? 먹다 토한다... 알려는 줘, 전화 자꾸 온다고. 그래도 어르신이니까, 답례 전화 한통화해서 말 한마디 이쁘게 해 드리던지.. 그런것도 못하는 놈이잖아."
"알겠습니다.."
마침 지율이 들어온다. 종태의 눈이 반짝거린다. 송유리.. 네가 유리였단 말이지..
"다녀왔습니다."
"민원 할아버지가 자꾸 전화 하신단다. 같이 식사 한번 하자고.. 합의하재."
한톤 낮아진 종태의 목소리.. 언제 말을 꺼낼까 계산 중이다.
"고소도 안했는데 무슨 합의요? 그리고 그런거 뇌물 아닌가요? 나 짜를려고 머리 쓰시나?"
"알아서 잘 얘기해. 여기 아래층 카페로 모시던지. 나는 솔직히... 너는 니가 일부러 맞은거니까 그렇다 쳐도, 찬호한테는 사과를 하셔야한다고 생각해. 심하잖아, 일하다 다친 애 한테."
은석이 끄덕거린다. 메모지를 내민다.
"여기, 할아버지 연락처에요. 벌써 몇번을 하셨대요. 외출도 안하고 연락 기다리신다고.."
"노인네, 인제는 별 이상한 방법으로 업무를 방해하네.."
ㅋㅋ 지율이 번호를 받아든다. 책상 한쪽에 잘 붙여놓는다. 종태가 물끄러미 지율을 본다.
"시환이는? 잘 데려다 줬어?"
"예, 들어가는 거 보고 왔습니다. 아직 집까지는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며칠 못 가. 숙소 알아봐야 될거야. 요새는 순식간에 털려."
"안그래도, 진우 선배 집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래, 편들어주는 놈이 있으면 좋지.. 너는? 시환이 믿냐?"
"믿고 안믿고 할 일인가요? 말도 안되는 걸."
"너 시환이 왜 모른 척 해?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거야?"
"예?"
"야, 내가 잠깐 생각을 해 봤어, 네가 어릴 적 기억이 좀 망가져서, 뭘 잘 기억을 못 한다며.. 그래도 그렇지, 시환이는 너랑 거의 가족이었잖아. 아까 시환이 아버지는 기억을 하면서, 시환이는 기억이 안 나?"
"...?"
석호가 들어온다. 종태가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말을 잇는다.
"너 송유리이던 시절에, 시환이가 너네 집에서 맨날 먹고 자고 했다고, 진짜 남매처럼.."
송유리... 깜작 놀라는 지율, 멈칫하는 석호.. 티나지 않게 조용히 자리로 가서 앉는다. 안 듣는 척, 서류를 펼친다.
"얘 진짜 모르네? 야, 시환이는 너보다 더 어렸으니까 잊어버렸다 치고, 너는, 왜 기억 안 나? 시환이 어머니가 태권도 사범이였어. 니가 맨날 걔 손 붙잡고 운동 다니고.. 일 늦게 끝나시니까 너네 집 가서 놀고 그랬잖아. 집도 되게 가까이에 살았는데? 아, 그러고 보니까, 너네.. 그래서 소파에 손 끼고 자고, 군것질 좋아하고... 그런게 다 똑닮은거네?"
문종태가 송유리와 류시환을 안다...? 석호가 생각에 잠긴다. 은석이 묻는다.
"지율씨 원래 이름이 송유리였어요? 이쁜데 왜 바꿨어요?"
"원래 이름이 지율이에요.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점을 봤는데, 손자가 셋이 생긴다 그랬대요. 그래서 창률, 시율, 지율로 이름을 지어 놓고 가셨는데, 마지막에 제가 나온거에요. 남자 이름 같다고, 엄마가 끝자만 따서 율이, 유리라고 하자 그랬대요. 한국 돌아올때, 엄마 성 따서 강 씨로 바꾸고, 원래 이름대로, 지율이라고 했어요."
"야아, 신분 세탁 잘했네.. 송유리에서 강지율?"
"그렇지, 저 놈이 뭔짓을 했어도 우린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까지도 나한테 싹 모른 척 하고.."
종태가 째려본다. 지율이 웃는다.
"저 첫날 왔을때 생각 안나요? 내가 인사 할라 그랬는데, 삼촌이 막 야단쳤잖아요, 빠져가지고 늦게 왔다, 특채는 그런거 안 배우냐.."
"그래, 그랬지.. 우리 엄청 기다리게 하고, 너 첫 출근인데 거지 꼴로 나타나가지고.."
"분위기 무지 안좋은데 거기서 갑자기.. 삼촌, 저 왔어요.. 그렇게 못 했죠."
"그러네.. 내가, 너를 못 알아봤네, 너는.."
종태가 한박자 쉰다... 코끝이 아파온다.
"너는... 나 바로 알아봤냐..? 내가 너, 맨날 업어줬는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