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10화 얼음 땡 4

정지... 모든게 멈춘다

by 신소운

10.4.1 진우네 집




여전히 텅 비어있는 거실. 한강을 내려다보며 쭈그리고 앉은 시환이 눈도 안 마주친다. 진우가 맥주를 내밀지만 반응이 없다. 결국 또르르 눈물이 흐르고 만다. 크리넥스를 가져온다. 눈물을 닦으며 억지로 웃는다.

"아이씨, 이거 아까 되게 많이 던지던데.. 종태 삼촌이 나한테 던지고, 선배는 우리 아버지한테 던지고.. 난 던질데도 없네. 이래서 죄짓고 살면 안돼. 이까짓 휴지 하나 집어던지고 화풀이 할데가 없어."

"왜 없어? 여기 텅텅 비었는데, 다 던져! 밟아서 뽀개버려. 하고 싶은 대로 해."

"어떻게 그래? 큰소리 칠 게 하나도 없는데.."


"네 잘못 아니잖아. 다 밝혀질거야, 며칠만 기다려."

"아니야, 어른들 말이 맞아. 그거 밝혀져도, 어린애랑 자고 댕긴 거는 안 없어져. 평생 남을거야.. 미쳤지, 왜 그걸 몰랐을까."

"경찰은 뭐, 증부터 까고 만나냐? 그쪽에서 속이면 할 수 없지."

"형이 아까 조팀장님 못 봐서 그래. 내가 한강에서 변사체로 떠오르면, 조팀장님이 범인이야."

아차.. 진우의 표정을 살핀다. 금기어가 나오고 말았다. 한강 변사체.. 진우 아버지...


"... 형... 미안해, 내가..."

"아냐, 괜찮아. 변사체가 하나 둘이냐? 너 떠오르면 나도 용의자야. 너 진짜 마음에 안들어."

"하지마, 형까지 왜 그래? 나 노리는 사람들 엄청 많아졌어."

"그러니까 왜 이렇게 바보같이 굴어? 야, 경찰도 사기 당하는 거야! 작정하고 속이는데 그걸 어떻게 피해? 거기다가, 너 잖아, 너! 순딩이 너! 세상 똑바로 못 보는 너! 맨날 사건사고 보면서도 홀랑 속아 넘어가는 너!"

"남 얘기인 줄 알았어. 좋은 애인줄 알았고, 나 좋아해주니까 좋았고.. 아, 몰라.. 다 그만두고 산에 들어갈거야."


"사표내! 갈 데 많잖아, 아는 데도 많고.. 가평 가!"

"진짜 무서워. 딴데 갈거야."

"지율이 두고?"

"못가."

"크흐흐... 금방 간다며? 지율이 이름 나오니까 바로 못가냐?"

"하아.. 내가 고백도 했는데.."


"뭔 고백을 또 해? 하루 열번으로 모자라?"

"이번에는 진짜루 했단 말야, 병원에서.. 아픈거 다 나으면 나랑 사귀자고.."

"안 사귀고 뭐했냐, 지금까지? 그렇게 좋아해, 좋아해, 입에 달고 살면서 아직도 아무 사이가 아니야? 야, 그 정성으로 진짜 나무를 찍었어봐, 통나무로 59층 아파트도 지었다."

"선배가 계속 아팠잖아. 잠 못자고, 토하고.. 같이 있으면, 머리만 대면 자고, 요새는 하혈까지 하니까.. 그러는 형도 뭐 몇번 같이 자면서, 잠만 잤지 한거 뭐 있냐? 똑같지."


"야, 너 그게 지금 지율이한테 할 소리야? 너는 걔를 좋아하는 거고, 나는 걔..? ... 보호자..?"

"내가 보호자거든?"

"너나 잘하셔. 누가 누굴 보호해..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며칠 게임이나 하고 놀아. 은석이 형이 반박 자료 수집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말고."

".. 쪽팔려. 아까 나오는데도,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거 같고.. 쌤통이다 뭐 그런 얼굴 있잖아..."

"너한테 누가 그래, 걱정되서 쳐다 본 거 겠지."


"나 전근 신청 할까?"

"시끄러. 가평이나 가."

"에이씨... 무섭다니까.."

띵똥... 벨이 울린다. 모니터를 본다.

"어? 지율이 왔네? 야, 우리 오늘 파티하자."


잠시 후 올라온 지율. 진우가 문을 연다.

"저녁 못 먹었지? 뭐 시킬까?"

"시환씨는 좀 어때?

"반성 중이야. 김밥 먹을래? 사이다랑?"

"콜."


아예 몸을 돌려 멀찌기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시환에게 걸어간다.

"시환씨, 나 알아요?"

"...?"

시환이 돌아본다. 진우가 분식집으로 전화를 건다.

"예전에 아빠가 보내준 영상 속에 꼬마애가 하나 있었어요, 하니라고.. 그게 시환씨에요?? 환이..?"

"무슨..? 환이는 맞는데.. 무슨 영상이요?"


".... 송유리..는요? 알아요?"

"....?"

".. 아, 여보세요? 아뇨, 죄송합니다, 잘못 걸었습니다..."

진우가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이만큼 떨어져서, 두 사람을 바라본다.



10.4.2 탐문




주말 아침에도 동분서주하는 시화와 찬호. 동네 CCTV 는 물론, 클럽과 술집, 노래방 등을 전전하며 탐문한다. 하나같이 모른다 발뼘하는 사람들.

"몰라요, 다 비슷하게 생겨서.. 우르르 들어오면 더 몰라."

"미성년자 출입 시켰다고 정지 때릴려고요? 아유, 미성년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쉽지 않다. 편의점에 들러 따뜻한 캔커피를 마시는 두 사람. 찬호가 머뭇거리다가 영상을 하나 보여준다.


"리화씨... 사실, 얼마전에 이런게 돌았는데, 이거라도 제출할까요?"

"...누가 보낸거에요?"

"내부 사람이겠죠. 자기들끼리 돌려본 것 같아요. 근데 혹시, 찍은 사람이나 최초 유포자 찾으면 불이익 당할까요? 사실 그래서 아직 말씀을 못 드렸는데.."

"차 형사님께 물어봐야죠. 들어가요, 오셨을거에요."

사무실로 향한다.




10.4.3 서장실




한편, 정정 기사를 요청한 종태. 서장과 면담 중이다.

"시환이 아직 만 29살이에요. 정확하게 써야지. 30대 경찰인거하고 20대 경찰인거하고 다르잖아."

"느낌이 다르긴 하지, 그런다고 크게 달라질까 싶다마는.."

"엄청 다르죠. 10대 후반 여학생이, 20대 남자 경찰과 사귀다 헤어졌다.. 그런데 처음부터 나이를 속이고 접근했고, 헤어지고 나서 다른 여자와 있는 걸 보고 앙심을 품었다, 알고보니 그 여자는 애인이 아니라, 같은 팀의 30대 여자 형사다.."


"그건 아직 모르잖아."

"알잖아요, 내가 알고, 서장님이 알고, 우리 애들이 다 아는데?"

"아효, 그래서? 나보고 기자들 만나라고?"

"제가 가요? 다 엎어버리게?"

"알았어.. 이게 뭐냐, 바로 얼마전에 개발바닥 잘했다고 뉴스에 나왔는데, 이걸로 한번에 다 깎아먹네.. 그래서 대질 심문이 언제라고?"


"월요일 입니다. 그거까지는 기자들한테 알려줄수 없고, 일정이 다음주에 잡혀있다, 이렇게만 해요. 보호자 동반해서 진행한다고. 그리고 심각한 사안이라, 우리 측에서도 법률 자문 모시고 함께 한다고."

"요청했어?"

"아니요."

"근데 왜? 겁줄라고?"

"뭐 그런것도 있고, 우리가 진지하게, 아주 심각하게 이 사건을 보고있다, 이렇게 보여지는 것도 있구요."


"겁주는 거네."

"아이, 뭐.. 뭐가 되었든, 벌써 경찰 고위 간부 아들이라고 소문 돈대요. 그거 질문 할거야.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만 해요. 본인 인적사항에는 그런 말 없다고.. 진짜 없잖아요? 시환이가 지 아버지 공무원이라고 썼지, 경찰이라고 안 썼잖아?"

"알려지면, 끝이야. 형님, 거기 그, 국회 경비대장, 완전 꽃보직인데 내려놔야돼. 불명예 퇴직이 될 수도 있어."

"안되지, 막아야지. 일단 이정도에서 기사 던져주고, 월요일날 대질 심문으로 끝냅시다."


"자신 있어? 월요일은 너무 촉박하지 않아?"

"길게 끌면 언론이 식어요. 팍 끓어올랐을때 얼음 물 한바가지 확! 끼얹져야죠. 다 지난 다음에, 그때 그거 무고에요, 무죄에요 해봤자 아무도 안 들어. 사람들은 앞에 것만 기억해."

"종태야... 몇명 되지도 않는 애들가지고 참, 여기서 펑, 저기서 펑... 너네 그냥 없에버리자. 내가 잘못 생각 한거 같애. 강력으로 통합하자."


"아, 싫어요, 그 칙칙한 애들하고 일 안해. 우리 애들은 사고쳐도 귀엽기나 하지.. 시간 됬어요, 내려가요."

거울 앞에 선 서장이 마지막 점검을 한다. 길게 심호흡을 한다. 오랜만의 방송이 이런 게 될 줄은 몰랐지만, 월요일이면 다 해결된다는 종태의 말을 믿는다. 당당하게, 자신있게 내려간다.

진동이 울린다.


"받지마요, 꼭 이럴때 오는 거는, 초 치는 거야. 인터뷰 하고 나서 메세지 확인해요."

서장이 고민한다. 계속 울리는 진동... 종태와 마주보던 서장이 굳은 얼굴로 전화를 받는다. 낙담하는 종태.

"예, 접니다.. 응? ... 그래...? 그래, 알았어... 에이, 참... 그럼, 가봐야지, 당장.. 인터뷰 끝나는 대로 출발할께... 아냐, 왜 있잖아, 우리 젊은 애 하나 사고친 거.... 어, 괜찮아.. 그래, 고마워..."

전화를 끊는다. 종태가 묻는다.


"뭡니까?"

"기환이 형 있잖아. 그 요양 병원에, 누구 아는 사람 통해서 좀 물어봤더니, 상태가 많이 안좋다 그런다네. 방문 할 거면 빨리 오라 그랬다는데? 야, 오늘 가자, 멀지도 않은데."

"가는 거야 어렵지 않은데, 아이고... 기환이 형님이 벌써 거기 계실 분이 아닌데.."

"이거 얼른 끝내고 나올테니까, 너 운전해. 형호형한테도 전화 한번 해보고, 시간 되나.. 시환이 때문에 정신 없겠지만, 가실 수 있으면 모시고 가자."




10.4.4 상도동




아침 일찍 상도동을 찾은 세 사람. 지율의 옛날 집을 찾아보지만 아파트가 들어서 흔적도 없다.

"이쪽으로 가면 놀이터가 있었어요. 내가 거기서 맨날 선배 기다렸는데, 동네 형들이 괴롭히면 진짜로 번개같이 나타나고..."

"왜 괴롭혀요? 시환씨 착한데?"

"착하니까 괴롭히지, 쪼끄맣지, 힘 없지.. 만만하잖아."

진우가 거든다.


"그리고, 아버지가 경찰이잖아요. 옆에 와서 막 툭툭 치면서, 너희 아빠보고 와서 나 잡아가라 그래, 뭐 그런거.. 되게 많이 당했어요."

"같이 안 싸우고? 운동 많이 했다면서요?"

"절대 누구 때리면 안 된다고, 경찰 못 한다고 가르치셨어요. 주먹은 나쁜 놈 잡을 때만 쓰는거라고... 연습하거나 대회 나갈때 빼고, 실제로는 사람을 때려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니가 바보인거야. 남자 놈이 적당히 사고도 치고, 좀.."


"그러는 형은? 뭐 어디가서 사고 쳐봤어?"

"나는 맞고 다니지는 않았다. 건드는 놈들이 없어서.. 아우, 요새는 어찌나 괴롭히는 것들이 많은지.. 경찰하니까 세상이 달라. 아름답고 착한 세상인 줄 알았었어."

"나도, 나도.. 경찰하면, 그런 포스터 있잖아. 할머니 짐 들어주고, 유치원생들 길 건너주고.. 그런거 하는 줄 알았어."

"야, 나는, 교통 경찰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줄 알았어. 위험하잖아.. 근데 이쪽 해보니까, 어우... 세상에는 눈에 안보이는 일들이 너무 많아."


시환이 건물 하나를 가르킨다. 식당과 미장원을 낀 상가 건물이다.

"원래 저기에 벽돌색 건물이 하나 있었어요. 이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수퍼였거든요. 우리가 막 몰려다니면서 뭐 사먹고 그랬는데.. 저렇게 큰 건물 아니고, 그냥 작은 거.."

지율이 둘러본다. 전혀 모르겠다.

"수퍼 앞에 평상이 하나 있었고, 바로 앞에서 학원 버스들이 서요. 마을 버스, 태권도, 교회, 피아노.."


평상... 생각난다. 여기에 앉아있었다. 종태와 이야기 할때, 마을 버스가 지나갔었다..

/... 나 이상한 거 먹었어. 위세척 해야돼.... 할머니가 준 조개젓.. 이 안에 사람 지문이 있어. 내가 몇개 삼킨 거 같애. 지금 토하면 다시 찾을수 있나? 삼촌들이 그랬잖아. 그놈 지문이 다 짤려나가고 없다고../

유리를 안심시키는 문종태.

/이거보고 놀란거야? 에이, 사람 손끝이 이렇게 안생겼어. 그건 삼촌이 잘 알잖아. 토 안해도 돼.. 왜? 속이 안좋은것 같애? 사이다 하나 사줄까?/

"저쪽으로 가면 교회 하나 있었죠?"

지율이 묻는다.

"맞아요, 우리 가끔 가서 놀고, 간식 먹고.. 그때 시율이 형 친구가 하나 있었어요. 그 형이 여기서 학원 버스나 교회버스 기다렸어요. 우리 뭐 사주면서 같이 앉아서 기다리고..."

이석호 이야기구나... 진우가 교회를 찾는다. 보이지 않는다.

"교회가 여기에서 멀어?"


"아냐, 걸어다닐 정도 거리였는데, 재개발하면서 저쪽으로 옮겼어. 여기 길도 원래 삼거리 였는데, 그것도 다 넓어지고.. 저 4차선 도로도 그때는 없었어."

"넌 언제 와봤냐? 어려서 기억 없다더니 다 아네?"

"중학생 쯤 되니까 와보고 싶더라. 선배네가 갑자기 이사가서 섭섭했거든. 생각나면 여기와서 앉아있다 가고.. 나중에 재개발 시작하고 또 와보고.."


지율이 사거리 가운데로 걸어간다. 일요일 아침이라 차가 별로 없다. 도로를 등지고 선다. 아파트가 빽빽한 저 쪽... 왼쪽 어디쯤이 집이었다...

빵빠아앙..

뒤에서 경적이 울린다. 비켜선다. 오토바이가 지나간다. 배달가나보다. 짐 싣는 오토바이.. 국방색 우비, 커다란 노란색 플라스틱 통? 바구니? 두꺼운 이사 트럭 고무줄로 단단히 묶었다. 자전거를 밀친다.. 배달하는 아저씨가 아닌... 창률..?


"선배? 괜찮아요? 뭐 생각해요?"

"그때 그 수퍼에, 배달하는 아저씨가 있었어요. 언제인지 모르는데, 우리가 여기서 놀고 있었고, 마을버스에서 큰 오빠가 내렸는데, 그 배달하는 아저씨랑 싸웠어요.. 자전거를 밀쳐서 쓰러뜨리고, 우리보고 들어가라고.. 막 소리지르면서 집으로 가라고.."

"기억이 나?"

진우가 묻는다.


"여기, 원래 약간 언덕이었죠? 집에 뛰어가는데 되게 숨이 찼었어.. 아, 그 노래.. 우리 오빠가 부르던 그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무슨 연습한다고..? 큰 오빠가 막 화를 냈어. 시환씨는 기억 안 나요? 옆에 없었나?"

"저는 모르겠는데, 언덕은 맞아요. 이쪽으로 이렇게 경사였어요."

진우가 지율의 머리에 손을 얹고 몸을 돌려세운다. 차분히 묻는다.

"지율아, 잘 봐봐. 다시 잘 생각해봐.. 배달하는 남자, 그 사람이 네가 그날 본 범인이야?"


".. 몰라.. 모르겠어."

"알아, 너 다 봤잖아. 그 사람.. 송창률 박사하고 싸우는 그 남자, 얼굴 보여? 이 동네 사람이야?"

"내가 그때.. 처음 진술에서, 아는 사람일거라 그랬대. 동네에서 보던 사람이라고.. 근데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안 나. 다 잊어버렸어."

"혹시 송 박사한테 물어보면, 그 사람을 기억하지 않을까?"


지율이 미소짓는다. 고개를 끄덕끄덕... 긴 한 숨을 내쉬며 답한다.

"기억하지, 근데 공범이라면.. 모른다고 하겠지. 물어봐도 소용없어. 철저한 인간이야. 눈빛하나 안 변해."

진동이 온다. 지율이 전화를 받는다. 간단히 하고 끊는다.

"차 형사님 호출... 들어가야겠다."



10.4.5 사무실




은석과 모여앉은 리환, 찬호... 창가에 서서 통화를 하던 석호가 주차장을 본다. 진우의 차가 들어온다. 지율이 내리고, 조수석에서 시환이 손을 흔든다. 한바퀴 돌아서 밖으로 나가는 차... 뒤에서 리화가 부른다.

"팀장님, 강 형사님 곧 올라오신답니다."

"예, 알겠습니다... 금방 갈께요.."

뒤돌아 한 손으로 전화기를 막으며 조용히 마무리한다.

"알겠습니다, 형님. 아무때고, 다시 연락 주세요. 조만간 뵙겠습니다.."

일행과 합류해 회의 준비를 한다...




10.4.6 진우네 집




해 질 무렵, 석호가 찾아왔다.

"형이 왠일이야? 내일 출근하면 볼텐데.. 급한 일 있어?"

신발을 벗고 들어서며 집을 살핀다. 아무것도 없는 텅빈 집..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잘 지내나... 여기, 사람 사는 집 맞냐?"

"아, 아무것도 없지? 미니멀리즘이야.. 뭐 마실것 줄까? 운전하지? 커피?"

"아냐, 괜찮아. 맥주 마셨니?"


주방에 가지런히 줄 서있는 빈 병들을 본다.

"어, 시환이랑.. 둘이 뭐해, 술이나 먹어야지. 한잔만 할래?"

"가야돼, 시환씨는?"

"잠깐 화장실.. 나왔네."

화장실에서 나오다 석호를 보고 꾸뻑 인사하는 시환. 대충 입은 옷에 머리가 신경쓰여 괜히 만지작 거려본다.

"잠깐 이야기 좀 해요. 뭐 물어볼게 있어서 왔어요."


"앉아서 해.. 이상한가? 바닥에 앉기가...?"

진우가 머쓱해한다. 석호가 먼저 베란다 쪽으로 가서 앉는다. 먹다 만 맥주와 배달 온 안주 접시들이 있다.

"괜찮아, 편해. 시환씨도 앉아요, 마시던거 마저 마시고."

진우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는 시환. 흐트러진 젓가락과 접시들을 가지런히 배열한다. 진우도 옆에 앉는다.

"뭐 좀 드실래요?"

"아니요, 됐습니다. 잠깐 시환씨 의견만 듣고 갈께요."


짧은 침묵을 깨고 석호가 이야기한다.

"내일, 대질 심문있는거 알죠? 제 시간에 나오리라 믿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묻습니다. 정말 몰랐고, 지금 반성 중인거 맞죠?"

"... 예, 맞습니다..."

"잘 될거에요. 다들 준비를 많이 해서, 오래 끌지 않아도 될것 같아요. 그래도 며칠 동안은 기자들도 있으니까, 조금 더 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잠잠해지면 그때 복귀하고, 그때 오시면 아마..."


시환은 석호만 보고 있다...

"아마, 파트너가 바뀔거에요. 강 형사 말고, 누구 선호하는 사람 있습니까?"

"형, 무슨 소리야? 갑자기 왜?"

놀란 진우가 대신 묻는다. 대신 올것이 왔구나 하는 얼굴의 시환... 조 팀장 말대로, 서장 말대로.. 물의를 일으켰으니 지율을 놓으라는 뜻일까.

"복귀해서 놀라는 것 보다, 차라리 시환씨가 먼저 파트너를 고르는게 좀 위안이 될까 싶어서 왔어요. 리화씨도 새로 와서, 어차피 정비를 좀 할 생각이었으니까, 오해는 말아요."

"오해 아니면, 제가 강지율 선배랑 그대로 하겠다고 말해도 되는 겁니까?"

"강지율 경위는 제가 데리고 있을 겁니다. 가르칠것도 많고, 너무 몸쓰는 것만 하기에는 건강 상의 문제도 있구요."


"언제부터 그런거 고려해서 파트너 짰습니까? 내근만 하는 팀장이 왜 파트너가 필요해요?"

"그건 시환씨가 상관할 일이 아니고, 남은 사람들 중에서는, 선호하는 사람 없습니까?"

"저 그만 두라는 말씀이십니까?"

"시환아!"

진우가 말린다.

"파트너 없으니 혼자하든지, 나가든지 해라, 이거면, 차라리 그렇다고 말씀하세요."


"아닙니다. 여러 사람 이야기를 들어봤을때, 시환씨는 차형사님이랑 맞춰보면 어떨까 합니다. 어디까지나 서장님 생각이시고, 시환씨가 불편하면 거절해도 좋습니다. 저는, 리화씨하고도 잘 맞을것 같아요. 어때요?"

"이번 고소건 때문에, 여자 파트너는 안 된다는 말씀 아니셨습니까?"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그런 규정도 없구요. 나는, 강 형사만 아니면, 다 괜찮다고 했습니다."

"왜요? 제가 선배한테 뭐, 강제 추행이나 성희롱.. 이런걸로 징계라도 받는 건가요?"


"그런 적 있습니까?"

"형!"

"왜, 강진우? 너 시환씨한테 아직 얘기 안 했구나. 전혀 모르는 눈치네."

"뭐가? 갑자기 무슨 소릴 할라고?"

석호가 시환을 응시한다.

"지난번에 우리 둘이 했던 얘기 있잖아. 류시환은 너무 약해서 강지율이랑 안 어울린다고... 진우 너하고 훨씬 잘 어울리니까, 본격적으로 사귀어보라 그랬잖아."


시환이 진우를 본다.

"나 아니야, 시환아.. 아, 형 왜 이래? 헛소리 할라고 왔어?"

"오해 말아요. 진우가 그랬다는게 아니라, 내가 강진우한테, 개인적으로 부탁했습니다. 지율이 옆에 조금 더 나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요."

아무 말 없이 외면하는 시환. 입을 꼭 다문다.


"푹 쉬고, 내일 봐요. 기자들 기다릴지 모르니까 조심해서 잘 들어오고.. 진우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형, 잠깐 나가서 나랑 얘기 좀 해."

"바쁘다, 다음에 하자."

"왜 이러는데? 팀 깰거야?"

진우가 따진다.

"여자 때문에 팀이 깨지면, 그게 경찰이냐? 동네 양아치지. 간다. 나오지마."


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나가는 석호. 시환만 놔두고 갈 수 없어 뒤를 쫒지도 못하는 진우. 체념하고 문을 잠근다. 돌아서서 시환에게 다가간다. 시환이 먼저 입을 연다.

"둘이 그런 얘기하는구나? 친한가 보네."

"시환아.."

"됐어, 남들도 다 그렇게 생각할거야. 내가 봐도 형 멋있어. 잘 어울려... 아, 아까 너무 많은 정보를 줬네. 그냥 이미 내 여자라고 뻥칠껄."


"야ㅡ 류시환... 너 날 뭘로 보고.."

"안봐. 아무걸로도 안보니까, 형도 나 보지마. 선배한테 마음 있으면 잘 해봐, 나 때문에 고민하지 말고. 잘됐다, 환전소 사건 같이 한다며? 나는 강제 휴가고, 정직같은 휴가, 징계같은 휴가... 맞다, 그동안 내가 둘 사이를 막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을 못했네.."

"미쳤지? 취했냐?"

"졸려, 잘래. 내가 방에서 잘거야. 형 여기서 자."


"싫어, 여기 우리집이야. 니가 바닥에서 자."

"싫어, 울다 잘거야. 매트리스 있어야돼."

"사내 새끼가 뭘 그런걸로 울어?"

"되는 게 없잖아. 선배한테 고백했는데 강간범됬지, 송유리 찾았는데 나만 까맣게 모르는 그런 사건들이 있었대지.. 그 사람 인생에 내가, 어떻게 도움 되는게 하나도 없어. 짜증나... 그 뿐이야? 그 앞에서 아버지한테 얻어터지는 꼴이나 보이고.."


시환이 소심하게 젓가락 한짝을 내팽기친다. 퉁 튕겨 보쌈위로 올라간다.

"... 알았어, 니가 방에 가서 자."

"그게 중요해, 지금?"

"중요해. 이불도 하나밖에 없어."

"잠바 입고자."

시환이 일어나 방으로 향한다. 진우가 뒤에 대고 소리친다.

"야 우리, 양아치 아니다? 안 깨진거지?"


답이 없다. 문이 쿵.. 닫힌다. 혼자 남은 진우가 중얼거린다.

"이석호...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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