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13화 악어떼 1

사방이 적이다

by 신소운

13.1.1 경찰서



끝도 없이 펑펑 터지는 사건들, 얼굴 보기도 힘들만큼 사방팔방 흩어져 뛴다. 박형사가 휴게실에서 뛰쳐나가며 사발면 국물을 마저 들이킨다. 쓰레기 통에 던져넣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경광등을 켠 차가 빠져나가고, 머뭇머뭇 로비로 걸어들어오는 한 남자. 안내 데스크에서 차은석을 찿는다. 안으로 안내한다.


조사실에 앉은 은석이 사진 몇장을 꺼낸다. 부검을 마친 시신들이다. 마주앉은 남자가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린다.

"잘 봐봐요, 아는 사람 있나.."

마지못해 곁눈으로 슬쩍 봐주는 남자... 한 사람을 가르킨다.


"얼굴 봐서는 모르겠는데, 여기 목에 이 문신은 어디서 본 것 같아요. 하는 짓이랑 안어울리게 글씨체가 예뻐서 기억나요.."

목 중앙에서 왼쪽으로 둥글게 감아 새긴 문신.. God's Son. 스크립트 글씨 모양 중 하나다. 아마 국내에서 한 건 아닐 것 같다. 안재웅, 42세, 전과 4범이다. 마지막 죄명은 폭행치상, 생명에는 지장 없었지만, 합의를 받아내지 못했다.

"마지막 본 게 언제에요?"

"전에 보이스 피싱 같이 할때죠.. 작년 쯤? 한참 못 봤어요, 제가 잠깐 들어갔다 오느라고.."

"그때 같이 일하던 사람들, 연락 되요? 주로 외노자들 상대하고, 당장이라도 일거리 줄 만한 사람."

"아직은 모르는데, 수소문 하면 찾을 수는 있을거에요."


다른 사진을 보여준다.

"여기있는 번호들, 이거 뭔지 알아요?"

시신의 위 속에서 꺼낸 종이 쪽지다. 복원 과정을 거쳤지만, 글씨는 여전히 흐릿하다.

"암호에요. 걔들이 쓰는... 근데, 이거.. 다른 건 더 없어요? 더 많을 건데.."

"무슨 암호인데요?"


"하도 단속이 많아서요, 전화도 도청하고 그러니까.. 번호로 정해서 알려줘요. 202는 서울, 31031은 경기도.. 안 어려워요. 서울 지역번호가 02 잖아요, 끝에 2를 앞에 한번 더 붙여주는 거에요. 031은 31031, 061은 61061.. 만나는 사람이나 장소가 바뀔 때 써요. 대시 다음에는 목표물 전화번호 뒷자리, 마지막은 금액, 만원 단위로.."

종이를 들여다본다. 202-4845-2200... 서울, 뒷자리 번호 4845인 사람에게, 2200만원..


"우리도 만나기전에 슬쩍 주위 한바퀴 돌아본단 말이에요. 누가 단속이다 싶으면, 포기하고 다음 사람한테 가라는 거죠. 아니면 인천에서 만나기로 했다가 갑자기 서울로 바꾸고, 202 문자치면 서울로 와라, 그런 뜻도 되고.."

"이 종이를 가지고 있었다는 건, 성공했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지금 간다는..?
"그건 저도 모르죠. 당시 상황을 모르니까.. 아마 당사자들만 알겠죠? 근데 다 죽어서.. 다들 눈 꼭 감고 있으니 비슷하게 생겨보이네.. 누가 누군지.."


남자가 다시 사진들을 보다 혼자 몸서리친다. 아무리 신경써서 찍어도, 죽은 사람의 사진은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 사진을 챙겨서 얼굴이 안보이도록 뒤집어 놓는다.

"알만한 사람들한테 소문내요. 불체자들 몇명이 있는데, 모아둔 돈을 고향에 병원비로 보내야 한다고... 날짜가 빠듯하니까, 정말 믿을만한 사람을 찾는다고.. 누구 접근하는대로 바로 연락 줘요. 삼일이면 되죠?"

"삼일에 그걸 어떻게 해요?"


"벌써 머리 속에 다 있잖아요, 파트너들.. 얼마전까지 이태원에 있던 사람도 있고, 명동, 강남역, 상록수역... 다 아는 사람들이면서 시치미에요?"

"...."

"여기 사진 속, 안재웅.. 죽은지 얼마 안됬어요, 그러니까... 최근 며칠 사이에 거주지나 일터를 옮긴 사람, 안재웅을 이용했을만한 사람 위주로 알아봐요."


"경찰들은 뭐 하고... 이건 뭐, 제가 다 파고 다닙니까? 너무 쉽게 일 하시네.."

은석이 조용히 바라본다.

"아닙니다, 제가 신세 진 것도 있고... 알겠습니다. 연락 드릴께요.."

"요즘 쓰는 방법은 뭐에요? 불체자들한테 잘 먹히는 뭐 있어요?"

파일을 정리하며 가볍게 묻는다.


"다 비슷하죠, 회사에서 단체로 단속 걸렸다고, 돈 전부 압수 당하기 전에 숨겨라.. 미국 달라나 일본돈으로 환전해서 언제든지 도망가기 쉽게 해 놓으라고 불러들여서, 온라인 송금으로 유도해요. 수수료 좀 내면, 대포 통장으로 넣어준다, 안심해라.. 눈 앞에서 이체하고, 자동 응답기로 연결해서 이체 됬다고 확인시켜주고.. 다 거짓말이에요. 아니면 가짜 은행 직원 바꿔주고.."

"잘 아시네요, 마지막으로 한게 언제에요?"


남자가 당황한다.

"아니, 물어보시니까 대답 해드린거에요, 저 이제 안해요.."

은석이 웃는다. 문앞까지 배웅하며, 당부를 잊지 않는다.

"삼일 안에 뵙겠습니다."

한숨을 푹푹 쉬며 경찰서를 나선다.




13.1.2 사무실



늦은 시각, 지친 몸으로 들어와 다시 또 책상에 앉는 팀원들을 위해 종태가 도시락을 주문한다. 24시 사장님이 직접 만들어 보낸 도시락 4개가 도착한다. 적어도 10인분은 될 것 같은, 진수성찬이다. 이것저것 열어보던 종태가 갑자기 웃는다.

"야, 이거는 지율이거다! 스페셜 김밥이네, 이것 좀 봐.. 종잇장이야, 종잇장.."

0.5센치나 될까.. 깎아내듯이 얇게 썰어 담은 김밥 두 줄이 서비스로 왔다.


"실력 좋으시네, 이게 이렇게 얇게 돼?"

"많이도 주셨다. 이래가지고 뭐가 남어? 너네 왔다갔다 인사들 잘 하고 다녀! 특히 지율이, 이렇게 신경 많이 써 주시는데."

"예.."

국물부터 들이킨다..

"크흐... 이거 보니까 옛날 생각난다. 전에는 동네 사람들이 떡도 가져오고, 음료수 같은 것도 많이 들고 오고 그랬었는데.. 요새는 툭하면 뇌물이네 뭐네 신고가 많아서, 덩달아 그런 사람 사는 맛도 다 없어졌어."


"강진우도 불러요, 둘이 철야 간다면서요? 와서 같이 먹자 그래요."

은석의 말에 시환이 문자한다. 리화가 뉴스를 켠다.. 3초만에 진우가 뛰어들어온다.

"야식이에요?"

"강진우 엄청 빨라.. 앉아! 뉴스 속보... 어디냐? 난리네.."


약수동 지하철역 사물함에서 사제 폭탄이 터졌다. 다행히 퇴근 시간 이후라 큰 피해는 없었지만, 사람들이 놀라 대피하는 과정에서 부상자가 나왔다. 사제 폭탄으로 보인다는 의견과 함께 불에 탄 물품 보관함이 화면에 나온다.

"요즘 애들은, 장난이 너무 심해. 왜 저딴 걸 자꾸 만드는지..."

"인터넷이 없어져야 되요, 저런거 다 있어요. 총 만드는 방법, 자살하는 방법.."


"큰일이야.. 저거는 그래도 저 안에서 터졌지, 지하철 안이나 길에서 했어봐, 여럿 다쳤을껄?"

종태가 우물우물 식사를 한다. 방금 입수한 영상이라며 한 남자를 비춘다.

/경찰은 약 두시간 전에 이 보관함에 박스를 넣은 외국인 남성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화면이 바로 용의자인데요, 이렇게 태연하게 지하철을 타고 나와 4번 출구로 올라오죠? 그리고 이곳 물품 보관함에 종이 상자를 넣습니다.../


"어? 어.. 저 사람...? 선배님!! 저기..!"

시환이 화면 속 남자를 가르킨다. 형제 고시원에 사는, 바로 요 앞의 노래방에서 알바하는 존 바울이다.

"나 저 사람 알아요, 말도 안돼... 그럴리가?"

입으로는 부정하면서도, 손으로는 전화를 건다.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예, 수고하십니다. 용산 경찰서 류시환 경위입니다. 약수동 지하철 사제 폭탄이요, 용의자를 제가 알거든요.."




13.1.3 이태원로




<주노 귀금속>


여자 사장이 문을 걸어 잠근다. 저녁 9시가 조금 안 된 시간... 평소보다 이르다.

"빨리 닫는 거 같아도, 어두운건 똑같네요. 다행히 오늘은 약속하신 손님도 없고.. 강도 사건 때문에 그런지, 연말인데 장사도 안되요.."

단단히 내려진 철문을 한번 더 확인한다.

"됐어요, 이제 가요."

'귀가길 안전 도우미'라 명찰을 붙인 청년이 차로 안내한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저희 차로 모시겠습니다. 자세한 설명 들으시구요, 궁금하신 거 있으시면 저한테 물어보시거나, 나중에라도 파출소로 전화 하시면 됩니다."

"진작에 알았으면 덜 걱정했을걸요. 요 며칠 얼마나 간이 조마조마했는지... 이런게 있는 줄 몰랐어요. 자원봉사 하시는 거에요?"


날이 추워 히터를 켠다.

"예. 처음에는 여대 근처에서만 했었는데, 요즘은 용산 일대 어디든 요청하시면 가까운 곳에 있는 파출소에서 사람을 보냅니다. 경찰은 아니고, 보통은 군대 다녀오거나, 운동하는 사람들입니다. 몇분은 해병대 나오신 아저씨들도 계시구요, 저는, 나중에 혹시 경찰이나 소방 공무원 시험볼때, 조금 좋게 보일까 해서요."

"그럼요, 당연하죠. 오늘도 경찰보다 먼저 와서 다 알려주시고, 너무 고마워요."


이태원로에 들어선다.

"댁이 가까우시죠? 원래는 걸어서 다니셨다고..?"

"날 좋으면 산책 삼아 가끔 그랬어요. 요즘은 경기 안 좋아지면서 사람들도 이상해지구요.. 왠만하면 차로 다녀요."

"조심하셔야죠, 세상이 좀 그렇습니다."


"근데 아까 말씀하신, 귀금속 가게 강도는 어디에요? 가게 이름 생각나세요?"

"아, 뭐였더라.. 저쪽 벨기에 대사관 근처라고 했는데, 이름은 잘.."

"사람은 안 다치구요? 강도 들기에 너무 좀 이른 시간인데.."

"그래서 더 긴장을 안했겠죠. 물건 보는 척하다가 들고 튀었는데, 문 쪽에서 직원이 막아서면서 좀 다친 모양이에요. 경찰에서 사장님 연락 드리고 오늘은 좀 일찍 귀가 하시도록 도와드리라고.."


"그래야죠, 안그래도 겁이 나서요.. 저녁에 일 할 사람을 따로 써야할까 생각 중이에요, 자꾸 여기저기 피해입는 가게가 생기니까.. 어? 여기, 이쪽 우회전인데.."

"아, 죄송합니다. 다음에서 꺾어도 되죠?"

"다음은 우리 집 쪽으로 통하는 길이 없고, 다다음에서 돌아야되요. 이 동네가 골목길이 좀 복잡해요, 반듯하지가 않고.."


여자가 길을 살핀다. 날씨 탓인가, 거리에 사람이 없다. 오늘 강도 당한 가게는 어디일까, 아는 사람이 수도 있는데... 대사관 앞에 뭐가 있더라... 잠깐 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골목을 또 지난다.

"어? 여기요, 또 지났어요.. 우회전이요.."

"..."

어느새 속도를 올려 쌩... 하고 달린다. 이대로 가면 한남 대로...??


"이봐요, 어디 가세요, 지금?"

"내리고 싶어요? 어디에 내려드릴까요? 강변? 남산?"

"뭐라구요? 당신, 누구에요? 경찰이 보낸거 아니죠? 차 세워요, 내려주세요! "

남자가 웃는다. 빠른 속도로 한남 대로에 진입한다.


***



같은 시각, 가게 앞을 지나는 진우와 지율. 주차장에 딱 한대 서 있는 자가용을 본다.

"건물 불이 다 꺼져있는데? 일찍 들어가셨나봐?"

"차는? 누가 술 마시느라 여기다가 세우고 갔나?"


"그러게, 온김에 잠깐 들러서 살펴 볼려 그랬더니.. 오늘은 안되겠다. 주변이나 한바퀴 돌고 다른데 가자. 이 길 따라서 쭈욱, 이태원로에 귀금속 가게가 많아. 조금 가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부자 동네거든. 연예인들도 많이 살고.. 저쪽에 노는 동네는, 외국 사람들 많이 하는 도금이나, 패션 악세사리, 이쪽은 좀.. 돈 되는 거.."


오토바이가 추월해 지난다. 번호판부터 본다. 반사 페인트를 칠하지 않았다. 다시 시선을 앞으로, 운전에 집중한다...




13.1.4 미장원



마지막 손님을 내보내고 뒷정리를 한다. 아까부터 배를 움켜쥐고 드러 누운 어린 올케가 신경쓰인다. 옆에 앉아 배를 만져본다. 태동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손으로 꾹 눌러본다. 조금씩 천천히, 눌렀던 곳이 볼록하게 올라온다. 걱정없다. 건강히 잘 있다...

"바닥만 한번 마저 닦고, 들어가서 자. 아침에 하면 더 힘들어."

"졸려요, 졸려요.."


여자가 자기 배를 가르킨다.

"아파요, 애기 아파요."

"애기가 아픈게 아니라, 이제 나올라고 딱딱한거야. 전에 해 봤잖아, 애기가 이만큼 커서 그래."

"이만큼? 애기 이만큼?"

아이처럼 좋아한다. 활짝 웃으며 원장의 손을 잡아 자기 배에 댄다.


"애기 이만큼! 예뻐요!"

"그래, 예쁘지? 많이 자고나면, 금방 나올거야. 같이 애기 낳으러 가자?"

"네, 애기 예뻐요."

정선생이 정리를 마치고 퇴근 준비를 한다. 원장이 묻는다.

"얘 언제쯤 나올까? 예정일보다 좀 빠를 것 같은데..?"


여자을 일으켜 세우고 배를 본다.

"그러게요, 벌써 많이 내려갔어요. 연락 할까요?"

"그게 낫겠지? 날도 추운데 얼른 낳자. 겸사겸사 연휴에 며칠 쉬어야지. 예약 받은 거 없지?"

"혹시 몰라서 안받았어요. 겨울이라 손님도 많지 않고.."

"그래, 오늘은 그만 들어가자. 아유, 나도 힘들다.. 손님도 별로 없었는데 왜 이렇게 다리가 아프니.."


임산부를 보며 기계적인 웃음을 짓는다. 정선생이 먼저 퇴근한다. 코트를 꺼내며 어디론가 전화하는 원장..

"응, 나야, 며칠 안 남은 거 같애. 바로 준비 할 수 있어? ... 지난번 거기로 가자, 조용하고 좋더라... 아이구, 우리야 좋지, 연말 기분도 내고.. 그래, 지금 알아보고, 바로 전화 줘. 응, 기다릴께..."


전화를 끊고 임산부의 배를 본다. 피곤해서 눈이 반쯤 감긴 여자를 재촉한다.

"물걸레 한번 해놓고 가자고.. 얼른해! 들어가서 자야지!"

끙 소리와함게 간신히 몸을 일으켜 대걸레를 가져온다. 슬렁슬렁 대충 닦는 척한다. 항상 저런식이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나라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못마땅해 고개를 돌린다. 물건을 정리하며 내일은 계획한다. 기분이 좋아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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