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1 용산 경찰서
가평 사건으로 여기저기 바쁘게 전화를 돌리는 석호. 회의 테이블에 모여 러시아 여대생 살인 사건을 논의하던 중이다. 종태와 은석이 염상원이 증거로 제출한 사진들을 늘어놓고 별 표정없이 앉아있다.
"어디까지 믿어야 될까요? 이 사진들은 몰카가 아닌 게 확실하고, 염상원이 통장에서 수시로 출금을 한 것도 맞는데, 그 현찰이 다 그 여자에게 갔다는 증거가 없고... 만약 사실이라고 해도, 돈 때문에 자기를 스토킹 한 남자를 고용해서 누드 사진을 찍는다..?"
"너무 머리 쓰지마. 간단해. 돈이잖아. 돈은 똥이라는데도, 그걸 못 버리지. 버려야 거름이 되는 거고, 너무 쌓아두면 썩은 내 나는 걸, 왜 그리 집착하는지... 돈 되는 건 다 해. 그러다 거기에 깔려 죽어도, 좋다는데 할 수 없잖아. 현장에서 현찰 무지 많이 나왔다며? 분명 비지니스가 있었다는 거잖아, 그것도 아주 성공적인."
석호가 자리로 돌아온다.
"죄송합니다. 저쪽일도 급한 것 같아서.."
"아니에요, 잘 했어요. 어린애들만 둘 보내놓고 안그래도 찜찜한데, 여기서 해 줄수 있는 건 얼른 해 줘야지. 잘 될것 같아요?"
"일단 앞뒤 정황은 잡았습니다. 증거 확실하고, 법적인 것 해결되는 대로 차량 조사하고 부검 들어가면, 저쪽도 잡아떼지 못할것 같습니다."
"위장을 하려면 잘 하던가, 초짜야? 왜 이렇게 허술해?"
"피해자 쪽에서 이렇게 빨리 찾을거라고 생각못한 것 같습니다. 며칠만 늦었으면 아마, 시신도 무연고로 넘어가고, 화장하고.. 다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랬겠지요. 그거 보면 우리 지율이가 참 운이 좋아. 따박따박 잘 잡아들이지."
의자를 당기고 자세를 고쳐앉는다.
"저희도 얼른 잡아야죠. 차 형사님, 그 집에 드나든 사람들 중에서 수상한 사람 있다고 하셨죠?"
"수상하다기 보다는.. 다들 정상이 아니에요. 골목길 CCTV 의식하느라고, 전부 고개를 숙이거나, 다른쪽으로 얼굴 돌리고 걷고, 모자 눌러쓰고... 사이즈보다 엄청 큰 겉옷을 입은 사람도 있어요. 성매매라는 걸 아니까, 숨기느라 그랬겠죠. 이거 다 잡아들이려면 수십명 될겁니다."
"그중에 가려야지. 당일 저녁 부터 새벽 시간.."
"문제는, 그 집을 바로 비추는 카메라가 없다는 거에요. 골목 앞에까지가 다 인데, 그나마 한쪽 방향만 있고, 반대쪽이 없어요. 몇번 와본 사람이라면 분명히 그걸 알고 있을 거에요."
"염상원이가 사진 찍었다는 남자들은, 조사해봤어?"
"성매매 혐의로는 조사 할 수 있어도, 다른 건 아직.."
"다른 건 아직이니까 지금 다 불러야지. 애가 죽은 걸 아는 사람이 없을거 아냐? 참고인이어도 성매매 피의자니까 비디오로 기록하고, 살해 현장 보여주면서 잘 보자고, 어떤 반응들인가."
"그것도 방법이겠네요. 그리고, 지문 몇개 추가된 거 나왔습니다. 부엌에서.. 주로 냉장고인데요.. 아마 물을 찾느라 그랬는지, 거기서 네명 나왔구요, 쪽지문도 한 셋 건졌습니다. 현관문, 신발장, 그리고 화장실에서는 너무 많아서 별 의미가 없어 보이긴 하는데, 확실한 건, 어떤 한 사람 지문이, 쓰레기 통에 있던 사과 껍질에서 나왔습니다."
"거기 앉아서 사과를 까먹었다..? 어떤 놈이야?"
"염상원입니다. 문제가, 이 인간은 지문이 정말 한두군데가 아니에요. 샘플 중에서 아마 절반은 이 사람 것인 것 같습니다."
"정말로 쉽게 드나드는 사이였다, 이건가...?"
"쉽게 드나들면, 그만큼 범죄를 저지를 기회도 많아지는 거죠."
석호가 답한다.
"그렇기도 한데, 알리바이가 너무 확실해서 문제인거지. 어머니는? 아들이 그 여자에 미친거 맞대?"
"예. 그걸로 맨날 싸웠대요, 돈 갖다 쓴다고.. 근데, 염상원이, 자기는 피해자랑 결혼할 사이라 그랬대요."
"인간이 꿈도 참.. 그냥 홀딱 벗어서 좋아했지, 결혼 할 여자가 죽은 것 치고는 너무 안 슬프잖아."
"...!"
셋이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고보니 이상하다.. 좋아서 따라다닌 여자가 살해당했는데, 아무 충격이 없는 건 무슨 의미일까..??
"또라이네.. 확실히 또라이야. 알리바이는 확실하지만, 그 놈 너무 믿지는 말자고.. 응? 안돼, 그런 놈들이 꼭 뒤통수 쳐."
"염상원씨 다음으로 뭐라도 관련이 있어 보이는 건, 사진 속 남자잖아요. 찾았습니까?"
"아직 찾고 있습니다. 액자에 남은 지문도 없고, 염상원한테 물어봐도, 얼굴만 알지 자세한 건 모른답니다. 최근에 자주 오기 시작했답니다. 카메라에 찍힌것만, 지난 달에 아홉 번 입니다."
"야, 잠깐.. 한번에 30-50만원을 받는다면서, 아홉 번을 와? 뭐하는 놈이야?"
"일단 지문이 검출된 사람들 먼저 조사 하면서, 그 남자가 있는지 찾아봐야 하 것 같습니다. 현재로서는 이름도, 주소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피해자 전화는? 연락처 저장된 거 중에 매치하는 거 없어?"
"남자만 백명이 넘습니다. 최근 6개월 이내에 통화 한 사람들한테 연락을 시도하고 있는 중인데, 거의 다 부인합니다."
석호가 답한다.
"그렇겠지요, 모른다거나, 뭐 핑계야 많을거고... 어쩌냐, 이래가지고는 올해 안에 이 인간들 다 조사하기는 힘들겠는데."
펜을 던지며 뒤로 기댄다.
"미쳤어. 그렇게 안 생긴 애가 왜 그랬다니.."
종태가 여자의 사진을 본다.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예쁘게 웃고 있는 학생증 사진... 그 옆에 차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포즈의 사진.. 그리고 축 늘어져 의식없는, 사건 현장 사진.
"젠장.. 이게 뭘로 봐서 같은 사람이야? 어유, 어린 게 고작 20년 살고.. 한 순간이다, 정신 차리고 살았어야지.. 얼른얼른 다 잡아들여서 조사하고, 특히 저기, 성매매에 폭행이나 성폭행, 아니면 정신과 치료 받은 적 있는 놈들 먼저 추려내."
"알겠습니다."
"근데, 팀장님, 강진우가 맡은 사건은 어떻게 됐습니까? 조 팀장이 신신당부 하던데요, 자기 대신 신경 좀 써달라고.."
"조사 중입니다. 아이 엄마 검사 결과는 나왔고, 유전자 감식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단은 성폭행으로 구금해 놓고, 친자 결과 나오면 추가로 입건할 계획입니다."
"거기야 말로 너무 빤해서 금방 해결 되겠네요. 검찰 갈 것도 없이, 바로 종결하구요."
한시름 놓은 표정의 종태에게 석호가 조심스레 입을 연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왜요? 무슨 일이요?"
****
/한시간 전/
진우와 통화 중인 석호. 모니터로 이매일을 읽어내려간다.
"피해자 부상 정도가 생각보다 많이 심각한데? 진우야, 이거, 단순한 성폭행이 아닌 거 아냐?"
"그 개 자식이, 임신 중에도, 출산 직후에도 계속 그런거야. 안에가 다 파열됐어. 출혈도 심하고, 감염 때문에 염증이 반복되면서 이미 괴사가 엄청 심각하대. 수술 하래."
"무슨 수술? 정확한 병명이 뭐야?"
"병명은 무슨.. 자궁 적출해야한대. 나팔관까지 다 썩어 들어가고 있어. 의사가, 25년 경력에 이렇게 심한 감염 처음 본대. 죽어서 부패한 사람 같다고.."
"원인이 뭐야? 성폭행만으로 그렇게까지 돼?"
"출산부터가 의심스럽대. 임신하고도 한번도 병원을 간 기록이 없어. 아이가 몇 주 되었었는지, 언제 임신했는지, 산모도 모르고, 아무도 몰라. 문제는, 시태침연이라고... 아이가 뱃속에서 죽었는데 밖으로 나오지 않고 뱃속에 남았었나봐."
"그게 원인이야?"
"보통 6개월 미만을 유산이라고 하고, 그 이후를 사산이라고 하잖아. 이 경우는 정확한 임신 시기를 모르니까 뭐라고 부르기도 애매한데, 아무튼... 중요한건, 자연유산이 아니라, 아마 폭행에 의한 자궁막이나 양막 파열로 아이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임신 중기까지는 아이보다 태반이 더 아래쪽에 있으니까, 힘으로 눌러버리면 먼저 박리가 되어버리는 거지. 아마 이 경우도, 갑작스러운 충격에 의해서 엉망으로 뜯어져 나가다가, 일부가 자궁벽에 남았는데, 보통은 출산하면서, 태반까지 깨끗하게 정리하잖아. 병원을 안 갔으니까 그게 치료가 안된거지."
석호가 진단서를 스크롤 한다.
"그리고 나중에, 아마도 최근에, 복부에 가해진 한번 이상의 심한 폭행으로, 남아있던 아이가 출산 비슷하게 흘러나왔을거고, 그때서야 사산인거 알았을거야. 의사 말이, 아이 시신을 부검해 보면, 더 자세한 거 알 수 있을거라는데, 찾을 수 있을까?"
"아까 얘기했어. 경비 일 하는 건물 화단에다 묻었대. 지금 순찰 차 갔어, 찾고 있을거야. 정말 거기라면 곧 연락오겠지."
"왜 그렇게 순순히 불어? 사실일까?"
"아직 성폭행 얘기를 안 했어. 그냥, 며느리가 애기 낳았는데 어디다 유기했냐, 실종 아동으로 신고가 들어왔다, 그정도만.. 자기는, 며느리가 죽은 아이를 낳아서 갖다가 땅에 묻어준거다, 그러고 있어. 성폭행 증거 잡고, 친자 확인되면 그때 추가하려고."
"아하.. 이 팀장님 역시 나보다 한수 위였네. 나는 열받아서 그렇게 하나씩 못하는데.."
"시간 좀 끌어야지. 한번에 몰아세우다가 입 꽉 다물면, 애기 시신 영영 못 찾을까봐... 야, 그리고, 네가 현장에서 수집한 증거들 말이야, 사진하고 진단서만으로도 충분히 입증은 되겠지만, 그래도 확실한 결과 받으려면 내일은 지나야 될거야. 그때까지 푹 쉬게 하고, 아이는 일단 여청에서 알아봐준 시설로 보냈어.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
"알았어. 형, 근데.. 이건 어떻하지?"
"뭘?"
"수술 말이야. 내일 아침까지 보호자 동의서를 받아오라는데, 보호자가 없잖아, 법적으로 그 새끼야."
"성인인데 본인으로 안되나? 인지 능력있고, 필요한 수술인데.."
"법적으로는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대. 거기다가 응급이 아니라서 더더욱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 하고.. 열받아서 다른 병원으로 옮기겠다고 했더니, 자궁은 출산하고 관련이 있어서, 대부분의 병원들이 남편하고 시댁 식구의 동의를 요구한대. 그게 말이 돼?"
"나중에 고소 당하지 않겠다 그거지."
"이것들 다 잡아 넣을 수 없나? 어쩌지?"
"당장 급한 수술은 아니니까, 일단 여청이랑 성폭력 통합 지원센타에 연락해볼께. 아마, 유일한 법적 가족이 성폭력 가해자라는 걸 증명하면, 다른 방법이 있을거야."
"유전자 감식 결과가 나올때까지 기다리라고?"
"빠르면 좋겠지만, 하루이틀 더 걸린다고 어떻게 되는 건 아니잖아. 병원쪽도 법적 보호를 받겠다 그거고."
"혹시라도, 있잖아, 그 자식이 동의 해 주려나? 물어라도 볼까?"
"며느리 병원 데려간거 알면, 입 꽉 닫고 아예 협조 안 할지도 몰라.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다 불었지만.."
"아이 씨.. 어떻하지?"
"기다려봐, 내가 여기저기 물어보고 아침에 다시 연락할께. 불편하겠지만, 잠깐이라도 좀 자라."
***********
종태가 묻는다.
"근데 그게 뭐가 문제라는 겁니까? 감식 결과 하루이틀이면 나올거고.. 그때는 보호자 동의 없이도 수술할 수 있을거잖아요."
"진우가.. 제가 여청에 알아보는 동안, 오 형사한테 시킨 모양입니다. 피의자한테 물어보라고.."
"오 형사요? 오민규? 앞집 막내?"
"예.. 그 친구가 들어가서 병원 얘기 하고,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그랬더니, 합의를 요구합니다."
"합의요? 개새끼, 눈치 깠구만?"
"예... 합의를 해줘야, 자기도 수술에 동의하겠다고.."
"빌어먹을... 그냥 거기서 조사 받다 죽으라 그래! 무슨 합의야? 강진우 이 자식은, 참을성이 1도 없어, 도데체가! 초를 쳐, 아주 그냥! 다 잡아놓고..."
"아이의 친권도 주장합니다. 며느리가 직업이 없고, 나이가 어려서 언제든 재혼한다, 이런 주장이에요. 자기가 할아버지이고, 가장이고, 한국 사람이다 그거죠. 국선 변호사를 불러달랍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지금 그런 소송을 해도, 별 승산이 없을 건데요? 시간 끌기일까요?"
은석이 묻는다.
"지금 당장의 결과가 중요한게 아니야. 며느리를 압박하겠다, 이거지. 너 신고 하지 마라.. 나 감방 잠깐 갔다 나오면, 복수한다, 애 뺏긴다, 뭐 그런거... 애엄마한테는 아직 전달 안했죠?"
"아무 얘기 안했습니다. 자고 있을 겁니다. 그냥 진우한테만.."
"그 새끼, 들어오면 나한테 죽는다고 전해요. 짜식이 하루이틀만 기다리라니까.."
그러다 가만히 은석을 바라보는 종태. 눈이 마주친다.
"왜요? 또 뭐 하시게요?"
"은석아, 전에 비슷한 거 있었지? 한남동 외국인 단지에, 그 3층짜리 단독 주택처럼 생긴 고급 빌라... 생각 나? 주인 여자가 맨날 가정부 감금하고 폭행하고 하다가 걸렸잖아. 그때도 합의할라고 아주 용썼지."
"있었죠, 자기 남편 꼬셨던거, 상간녀 소송 안하고 용서 하겠다, 당시에 피해자 자녀가 중고생이었는데, 남편하고 애들 학교에다가는 비밀로 해주겠다, 그런 합의 비슷한 협박을 했죠, 변호사 통해서."
"그랬지. 그때 피해자 가족이 어떻게 했는지 생각 나냐?"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알려지기는, 그 아이들이 직접 올렸다고 하는데, 확실치 않구요. 어쨌든 크게 기사화 되면서 관심 끌었던 사건입니다."
"결과는?"
"실형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때 솔직히 우리는 한게 별로 없었어, 인터넷이 다 했지... 팀장님, 아침에 해 뜨면 인터뷰 한번 갑시다. 첫 기사로 내보내고, 변호사고 뭐고 누가 맡기만해봐요, 욕 직살나게 먹고 사임하게 만들어서, 꼼짝 못하게 하자구요."
"그건 제가 결정할 일도 아니고, 게다가 아직 유전자 감식 결과가.."
"안 나왔죠. 그런데 원래 여론이라는 건요, 약간의 여지를 줬을때 쑥쑥 제일 잘 자라요. 궁금하니까.. 결과 다 나오고 이랬답니다, 하면 재미가 없어요. 떠들 필요도 없고."
종태가 석호 앞으로 바짝 당겨 앉는다.
"인터뷰 준비해요. 서장님한테는 내가 보고 할께요. 좋아하실거에요. 경찰이 수사권 가져오고 나서, 이렇게 속전속결로 한방에 해결했다, 거기다가 고소고발도 없던 사건이에요. 아무도 모르던 엄청난 사건을, 평소 이웃에 관심 많던 우리 경찰서 형사가 촉 하나 믿고 수사를 시작했다..."
석호가 반대하는 손짓을 하자 더 크게 손을 젓는다.
"속물이라고 욕해도 할 수 없어요. 잘 들어요. 첫째, 그 자식 아주 악질이에요. 둘째, 어디서 주워들은 건 또 많아. 세째, 스무살 갓 넘은 외국인 며느리를 상대로, 5살짜리 손녀를 인질 삼아 딜을 해. 그뿐이에요? 애 아빠 죽은지 두세달만에 며느리가 시아버지 아이를 사산했어. 그게 무슨 말이냐. 네째, 아들이 옆방에서 숨 넘어가는데 며느리 강간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이거 완전 썩을 놈이에요."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당장이라도 기자들을 부를 기세다.
"유전자 감식, 금방 나와요. 이미 할아버지일 가능성이 높은 친족 남성이라고 1차 나왔고, 성폭행 현장 잡았고.. 오늘 그놈꺼 추가로 보냈으니까, 확신을 위해 재검까지 요청했다, 결과 나오는 대로 구속 할 예정이다, 이렇게 가요. 한방에 집어넣어라 난리 날거고, 피해자 빨리 수술 시켜야 딸래미 만나죠. 언제까지 시설에 놔둘라구요, 어린애를?"
곤란한 얼굴의 석호와, 썩 탐탁치는 않지만 종태에 동의하는 은석.
"5시로 잡습니다. 몇시간 안 남았어요. 세수 좀 해요."
"그래도 서장님과 의논은 해야.."
"서장님 4시반에 일어나요. 내가 모닝콜 할거니까, 가서 인터뷰 할 거 먼저 요약정리 하십시오. 판은 제가 다 깔아드립니다."
마음을 정하지 못한 석호가 일어선다.
"저는 일단 좀 쉬겠습니다."
"예, 그러세요. 똑똑하신 분이니까 인터뷰 초안이야 금방이죠. 믿습니다."
석호가 나가자 걱정스레 입을 여는 은석.
"너무 크게 만드시는 거 아닙니까? 팀장도 이쪽일에 경험도 없고, 얼떨떨할텐데.."
"그렇다고 선비처럼 가만 앉아있으면 경험이 쌓이냐? 이렇게 꺼리를 자꾸 만들어 줘야 경험이 되고 경력이 되는거야. 그래도 이석호 봐봐. 째끔 당황했어도, 하나도 안 흔들리고 고요하잖아. 할 수 있는 놈이니까 하래지, 내가 언제 니들 못하는거 시킨적 있어?"
"많죠."
"다 네가 할 수 있으니까 시키는 거야. 알지도 못하고.. 고마운 줄 알어, 너 지금 이만큼 된 거, 내 덕이야."
"어쩔려 그래요? 서장님이 허락 안 하시면요?"
"그러니까 이 팀장보고 하라는 거야. 서장은 어떻게해서든지 내가 이석호 이만큼 키웠다, 생색내고 점수 따고 싶어하니까.. 두고봐, 안된다고 못할껄? 이 팀장 아버지 - 검사장 선배님이 얼마나 좋아하시겠어?"
"피해자는요? 기사화를 원할까요?"
"기사화만 보지 말고, 응원과 격려를 봐. 남편 죽고 타국에서 아이 키우는 싱글맘 됐어. 이젠 돈까지 벌어야하잖아. 성금도 필요하고, 지낼 곳도 필요해. 살 길 열어준다 생각하자고."
은석이 고개를 젓는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부녀자 관련 사건은, 조금 더 신중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해서.."
"은석아.. 내가 벌써 여러번 얘기 했을거야. 예전에 내가 아주 좋아하던 선배가, 아주 최고로 존경하던 선배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 있다고.. 미친 개는 미친 놈이 잡는다.. 이날까지 경찰하면서 별별 사건 다 봤지만, 단 한번도 그 말이 틀린 적이 없었어. 니들처럼 공부하고, 법 다 지키고, 배운대로 해서 정의로운 길만 똑바로 가기에는, 난 너무 노련하잖아. 내 법대로 간다. 좀 더 살아봐라.. 미친 개는, 정말로 미친 놈 아니면 못 잡더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