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 현장 / 인수인계
밤이 지난다. 석호의 경찰대 후배라는 사람이 도착한다. 자다가 나온 듯, 편안한 옷차림에 경찰 신분증을 내민다. 가평 경찰서 강력팀... 이 사람은 믿어도 될까...
"이석호 경감님 연락받고 왔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더이상의 외압은 절대 없도록, 제가 잘 감시하겠습니다. 들어가서 좀 쉬십시오, 많이 늦었습니다."
"그런데 강력에서 나오셨네요?"
지율이 묻는다.
"예, 저희는 아직 외사과라고 따로 되어있는 부서가 없습니다. 그래도 저희 수사과장님이 전에 외사과 계시던 분이라서요,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일단 보내주신 자료는 다 검토했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그때 경기청 외사과에 정식으로 협조 요청 하겠습니다. 당장 급한게, 여기 현장 감식인거죠?"
"예, 그리고 최대한 빨리, 국과수로 부검 넘겨 주세요. 대사관에서 연락 올건데, 그 서류로 다 되는 거죠?"
"되게 해야죠. 벌써 3일이나 지체했고, 증거도 많이 잃었으니까요. 저희도 서두르겠습니다. 저쪽은 걱정마십시오. 상부에 이미 보고했고, 내부 감사 들어갈겁니다."
"지난 3일간의 용의자 행적은요?"
"천식이 나빠져서 계속 병원에 있다가, 어제 저녁에 퇴원했답니다. 날이 밝는대로 출석 요구 할 예정입니다."
"천식도 진단서 확보하세요. 꾀병일거에요. 입원 기록 자체가 다 뻥이잖아요. "
"잘 알아보겠습니다."
"아버지가 관련되어있는데, 지역 유지라면서요?"
"뭐, 조부께서 인맥이 좋으신건 사실이구요, 아버지는 군의원 지내셨는데 은퇴하셨습니다. 그런걸로 수사가 지장받지는 않습니다. 이미 이만큼 잘못된 것도 같은 경찰로서 부끄러운 일이구요. 수일내에 바로 잡겠습니다. 이석호 경감님 팀이신데, 이렇게 보내드려서 죄송합니다. 식사라도 대접해야 하는데 지금 시간이.."
"아닙니다. 나중에 서울 오시면 그대 한번 뵙죠. 팀장님하고 같이요."
"예, 한번 가겠습니다. 사건 마무리 되는 것도, 보고 드려야 하구요."
다른 차가 한대 더 도착한다. 가평 경찰서...
"저희 팀입니다. 감식반도 조금 전에 출발했다니까 곧 도착 할겁니다. 어디 가셔서 쉬고 계시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손전등을 비추며 내려가는 사람들.. 하나같이 못 믿겠지만 어쩔수 없다. 이제는 우리 일이 아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물끄러미 보고 선 지율.
"가요, 선배. 오 경사님이 주소 보냈어요."
"왜 인제..? 어디까지 갔대요?"
"멀지는 않은데 산길이에요. 좀 이상하긴 하죠?"
차에 오른다. 설악면 사룡리 용문천길... 호수를 빙 돌아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것도 용의 차량을 가지고?
"안전한 거 맞아? 누구한테 안전하다는 거야?"
시환이 중얼거리며 운전대를 잡는다. 지율이 신음소리를 내며 창에 기댄다. 안색이 안좋다.
"괜찮아요? 왜요? 어디 불편해요?"
"예, 조금.. 잠깐만요.."
문을 열고 한발을 내딛는다. 미처 차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상체만 기울여 액체를 토해낸다. 시환이 내려 조수석쪽으로 가 부축한다. 길가에 쪼그리고 앉는 지율. 배를 움켜쥐고 헛구역질을 한다. 속이 비어 나오는게 별로 없다. 생수와 물티슈를 건넨다. 입을 헹구고 뱉어낸다.
"갑자기 왜요? 언제부터 아팠어요?"
"아까.. 하루 종일.. 피곤해서 그런가봐요. 허리도 아프고.."
"안그래도 아까 올때, 차형사님이 사준 허리 베게 갖고 올까 했는데.. 이렇게 하루종일 일할 줄 몰랐죠.. 의자 눕혀서 쉬어요. 여기 옆에, 병원 잠깐 들렀다 갈까요?"
"아니에요, 벌써 많이 늦었어요. 가면서 쉬어요."
"차야 안전하다니까 나중에 가도 되고, 아니면 제가 갔다 올께요, 선배는 저기 잠깐 들어가서 주무실래요?"
눈앞의 모텔을 가르킨다. 헤븐 모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피식.. 웃음이 난다. 한국 사람들은 좋은 뜻으로 쓰지만, 미국에서의 헤븐은 죽어서나 가는, 저 세상을 뜻한다. 간신히 몸을 싣는다.
"아직 천당 갈 때가 아니라서... 그냥 가요, 차량 봐야죠."
"선배님, 그냥, 저 사람들한테 차량도 인계하고.."
"안되요, 못 믿어요. 우리가 먼저 보고, 증거될만한거 있으면 수집하고, 그러고 나서 가져가라고 해요. 이 동네 뭔가 이상해.."
고집이지만, 꺾을 수 없다. 어쩔수 없이 시동을 건다.
"진짜 괜찮은거죠? 한 15분 가요."
"예... 좀 누울께요..."
시환이 셔츠를 벗어 돌돌 말아 허리 아래로 넣어준다. 편안한지 눈을 감는다.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고 묻고 싶지만, 잠깐만이라도 조용히, 쉬게 놔둔다...
8.3.2 사룡리
산길을 간다.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 운전하기 영 힘들다. 아픈 지율이 옆에 있어 더 조심하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 지도에 나온대로, 작은 한옥 앞에 차를 세운다. 마을이라고 부르기에는 터무니 없이 작다. 전기가 들어오는 것도 신기한, 아마 우물이라도 쓰는 거 아닐까 싶은, 요상한 곳이다. 사람 소리도, 개 짓는 소리도 하나 없다. 선뜻 내리지 못하고 창문으로 둘러본다.
"깊은 산 속, 아무도 없는 마을.. 시간은 새벽 3시에, 달빛 하나 믿고 다니기기에는 좀 으스스 하죠?"
꺼림직하기는 지율도 마찬가지다. 의자는 바로 세우고 앉아있지만, 몸도 정신도, 그다지 좋은 상태는 아니다. 벨트를 풀고 문을 열려는데 시환이 잡는다.
"잠깐만요, 이거 넣고 가요. 혹시 몰라서 하나 받아 왔어요."
총이다. 잠깐 생각하던 지율이 씨익 웃는다. 옆에 놓인 테이저건을 집어든다.
"왜요? 이걸로 쓰세요. 제가 그거 할께요."
"... 알잖아요. 나는... 진짜로 쏴요..."
테이저건을 들고 내린다. 가만히 지켜보는 시환. 잠깐 권총을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깊숙히, 바지춤에 찔러넣는다. 감식반 키트를 꺼내 들고 지율의 뒤로 붙는다.
문을 막 두드리려는데, 오경사가 열고 나온다. 손전등을 들었다. 안심인지 긴장인지, 잠깐 찌릿했다..
"찾기 힘드셨죠? 이쪽입니다..."
담장을 따라걷다가 숲속으로 올라간다. 코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오경사만 믿고 따라 간다. 눈치 못 채게 슬쩍... 옷 속의 권총을 만져본다. 주위를 살펴봐야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다. 멀지않은 곳에 공터가 나오고 약하지만 불빛이 보인다. 헛간 같은 작은 가건물 앞에 촛불이 켜져있다. 그 옆에 시커멓게 서 있는 아우디.
"어두워서 뭐가 보일까요? 장작이라도 좀 가져올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어두워야 보이는 것들도 있거든요."
차량을 둘러본다. 앞쪽에 특히 많이, 본넨트 안과 밖에 소화기 분말을 가득 들이부었다. 화재가 아닌, 충돌의 흔적을 지우려 했을거다... 유리창으로 내부를 들여다 본다. 역시 그을림이 있고 하얗게 가루를 뒤집어썼다. 에어백이 터진 흔적도 없고, 컵 홀더에 꽂힌 휴대용 클리넥스와 동전도 그대로다. 충격이 있었다고 보기에는 너무 가지런하다.
"불 난 자국 있어요?"
"있어요, 정확히 말하면 불 지른 자국...? 엔진에서 불이 났으면, 불꽃이나 연기가 에어필터를 타고 차량 안으로 들어가요. 이 차는, 밖에서 불이 한번 났고, 본넨트 안에서 한번 났고, 차 안에서 한번 더 났어요. 따로따로 한번씩... 다행히 인화물질을 쓴 게 아니라서, 약간 그을리고 구멍도 나고 했지만, 심하게 훼손 된 건 하나도 없어요. 이정도는 정말 요리하는 것 처럼 쓱.. 토치로 구운 거에요. 주인이 차를 많이 아끼네."
오경사를 부른다. 손전등으로 대시보드를 가르킨다.
"인수받으셨을 때, 블랙박스 확인 하셨어요?"
"예. 저도 이상해서 물어봤는데, 처음부터 없었답니다. 아마 먼저 다 떼어버리고 나서, 맡긴 것 같습니다. 위에 고정된 것도, 메모리 카드만 빼갔어요."
"이정도 튜닝해서 1억짜리를 만들어놓고, 블랙박스는 없다? 숨길게 엄청 많은가 보네..."
증거 사진을 남기고 앞 범퍼에 따뜻한 중성 시약을 뿌린다. 극세사 타올로 살살 닦아내고 지퍼백에 담는다. 다시 사진을 찍는다. 루미놀을 뿌린다. 소화기 분말에 덮혀 쉽지 않지만, 라디에이터 그릴 사이 저만큼 안쪽에서 아주 작은 형광빛이 반응한다. 재빨리 사진을 찍고 기다란 면봉으로 닦아낸다.
"뭐 있어요?"
오 경사와 지율이 다가온다.
"아우디 Q7은 앞 범퍼가 작고 양쪽에 거의 장식처럼 붙어있어요. 대신에 가운데에 이 라디에이터 그릴이 커다란 범퍼 역할을 해요. 피해자를 우쪽 범퍼로 들이박았어도, 핏방울이 튀면서 이 속으로 들어갔을 수 있는데, 아마 부딪힌 것만 생각하고, 여기까지는 꼼꼼하게 뿌리지 않은 것 같아요. 겨우 두 방울이긴 한데, 보세요, 금방 없어질거에요."
30초... 루미놀의 형광반응은 30초다. 면봉 끝을 본다. 반디불이보다 작은, 피해자의 눈물보다 작은 그 한방울이 사그라진다.
"그놈의 소화기 때문에... 수집할 수 있는 혈흔이 너무 적어요. 그래도,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될 수 없지만, 이 차가 피해자와 최소한의 물리적 접촉이 있었다는 것 까지는 입증되요. 국과수가야 더 자세히 나오긴 할 건데, 사실 차량 검식은 한두달 이상 걸리거든요. 물론 내일이라도 감식반이 제대로 본다면, 지금 저보다는 확실히 잘 찾아낼 거에요."
면봉을 긴 관에 집어넣고 뚜껑을 꼭 닫는다. 차량 밖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 바퀴까지 다 덮어버린 소화기 분말을 걷어낸다해도, 적절한 장비 없이 뭘 찾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손전등을 들고 차량 안을 살핀다. 오 경사가 말한다.
"경위님, 그 안에서 말입니다, 아까 가지고 오는데, 약간 안좋은 냄새가 나요. 소화기 냄새 말고, 토사물 같은.. 뭐 상한 냄새요.."
"창문 안 열고 오셨죠?"
"예, 그거 꽉 닫고 오느라고, 제가 토할 뻔 했습니다."
시환이 코로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차문을 연다... 언뜻 스친다... 익숙한 시큼한 냄새... 소화기가 집중적으로 뿌려진 앞쪽이 아니라 창문과 문 틈을 꼼꼼히 살핀다. 달리는 차안에서 구토를 한다면, 창문을 열었을거다. 서 있는 차였다면, 문을 열고 몸을 기울였을거다.. 아까 지율이 그랬던 것 처럼..?? 지율은 조수석이었다... 조수석이다...! 누군가 조수석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조수석으로 가 창문을 살피고, 고무 패킹을 잡아 뺀다. 수집 타올로 닦아 샘플 통으로 놓는다. 손가락 하나도 들어가지 않을 작은 창틈에 면봉을 넣고 닦아낸다. 의자를 뒤로 밀어 차량 벽면과의 사이, 소화기 분말이 묻지않은 의자 아래까지 샅샅이 문지른다. 후각만으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분명 토사물이다... 수집한 타올을 지율에게 내민다. 삼일동안 창문 닫힌 차안에 있었을 토사물.. 역한 냄새에 고개를 돌린다. 샘플통에 넣어놓고 다시 한번 내부를 살핀다. 지문을 뜰 수 있을까 궁리해보지만, 온통 하얀 분말이 묻어 불가능하다.
"분명히 조수석에 누군가 있었어요. 목격자이거나, 공범... 지문이라도 건지면 좋겠는데, 차에서 토할 정도로 취했으면 차를 만지지 않았을 수도 있을것 같아요. 게다가 안쪽은 소화기 때문에 오염이 많이 되어서.."
차에서 한발자국 떨어져서 상상한다. 취한 사람, 휘청거리며 차 쪽으로 온다, 운전자가 부축했거나, 혼자 오거나.. 운전자가 문을 열어주거나, 혼자 열었거나... 많이 취했다면 차에 몸을 기대었을 수도 있고, 미끄러져 넘어졌을수도 있고... 손으로 어딘가를 잡았을 수도 있다...
"지문 찾기가 힘들까요? 너무 어둡죠? 모닥불이라도..?"
오 경사가 묻는다.
"아뇨, 전등 있으니까 분말을 쓸 수는 있는데, 그랬다가 혹시라도 다른 증거를 덮어버릴까봐요. 타액이나 땀, 눈물, 콧물... 만약에 표면에 다른게 묻어있을수도 있으니까, 밝을 때 한번 제대로 보고 나서, 지문 채취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해 뜨고 나서 해야겠어요."
문자가 온다. 감식반 동료다... 금세, 시환의 목소리가 밝아진다.
"선배님, 족적 결과 나왔답니다. 벨루티 제품이구요, 옥스포드 시리즈인데, 발가락 끝이 뾰족한 디자인이라서 조금 길어 보이지만, 실제 발 사이즈는 270-280 사이일거랍니다. 밑창 앞쪽 끝부분에 둥글게 점선으로 회사명이 찍혀있구요. 오 경사님은, 근처에 명품 파는 곳이랑 수리점 연락해서 이 구두, 세탁이나 수선 맡긴거 있는지 찾아보세요. 이게 밑창 사진이에요. 혹시라도 중고 명품 샾에 팔았을지도 모르니까 그쪽도 뒤져보구요."
지율을 본다.
"그리고 선배님은 팀장님한테 연락해서, 강남에 롯데, 신세계, 갤러리아 백화점 벨루티 매장에 연락하시라고 하구요, 수원에도 하나 있는데 거리상 서울이 맞을 거에요. 밸루티사의 옥스포드, 남자 구두 270-80, 홍창 제품, 수선이나 세탁 문의요. 그리고, 이미 세탁해서 온라인으로 팔 수도 있으니까, 최근 며칠 사이에 중고거래 올라온 거 있는지, 그것도 알아봐 달라고 하세요."
"그거, 그냥 버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더러워진 걸 굳이 빨아서 중고로 팔아봤자.."
오 경사의 질문에 시환이 잠시 말문이 막힌다...
"오경사님, 이 구두 모르죠? 이게요, 해외 직구나 매장 정품이 보통 2-3백이고, 앵글 부츠나 워커는 사오백도 가요. 운동화가 백오십에서 이백 선이고, 신던 거 중고 거래가 최저 백만원이에요."
"예에? 그런 구두가 있어요? 전에 정치인 누가 신는다는 로퍼라는 그건가?"
"에이, 그건 아저씨 스타일이고... 이 사람은 제 나이에요. 옥스포드 시리즈니까, 아마 3백정도 왔다갔다..?"
"무슨 구두가.. 금을 깔았나.."
"가죽을 깔았어요. 홍창이라고.. 보세요. 밑바닥이 아주 부드러운 가죽이에요. 원래 유럽 재벌들이, 자동차나 카페트에서 신는 실내용 구두에요. 한국처럼 길에서 신기에는 찢어지고 미끄러지고 별로 안 좋은데, 프랑스산 수제품이고, 붓으로 하나하나 칠하면서 염색하는 거라서, 색감이 예술이에요. 걔네 제품 중에 타바코라고, 중간 브라운에서 조금 쵸코렛 색 진한 걸로 빠지는게 있는데.."
어이없는 얼굴로 바라보는 지율과 눈이 마주친다...
"아니요, 제가 좋아한다는 게 아니고, 그냥 상식이요... 잡학다식...! 이거저거 많이 알아야 수사할때.. 봐요, 지금도 여기다 써먹잖아요.."
각자 맡은 곳으로 전화를 걸며 나란히 내려가는 지율과 오 경사.. 서둘러 가방을 챙겨들고 뒤따라가는 시환.
"진짜에요! 저 그렇게 머리 빈 놈 아니에요..! 그냥 인터넷에서 본건데..."
8.3.3 아침 뉴스
아침 6시가 조금 지난 시간, 서장실에 앉아 느긋하게 뉴스를 보는 서장과 종태. 마주앉은 석호를 보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기다리던 소식이 전해진다.
/스튜디오/
앵커 : 다음은, 서울 용산 경찰서 소식입니다. 용산 경찰서는 오늘 새벽, 정식 기자회견을 요청해, 현재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도 않은 사건에 대해 경찰이 먼저 소식을 전하는게 어쩐지 좀 일반적이지 않는데요, 자세한 소식, 현장에 나가있는 이수영 기자가 전합니다. 이수영 기자, 소식 전해주세요?
/경찰서 건물 배경/
이수영: 예, 저는 지금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용산 경찰서에 나와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조금 전 새벽 5시 30분 경에, 외사과 특별팀의 브리핑이 있었습니다. 이석호 경감이 지휘하는 외사과 특별팀은, 어젯밤 서울시 용산구 효창동에 거주하는 64세 정 모씨를, 직계혈족의 배우자에 대한 상습 협박과 학대, 감금, 폭행, 성폭행과 함께 영아 사체 유기의 혐의를 물어 긴급 체포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서 내부 - 자막: 용산 경찰서 이석호 경감/
종태가 떠든다.
"야, 석호 나오다, 석호! 역시 인물 좋네~!"
서장이 말린다.
"아 좀, 조용히 해봐, 발표하는 거 들어야지?"
"아까 거기서 다 들었는데 뭘 또 들어요? 다 알면서?"
"시끄러봐!!"
".. 정 모씨를, 며느리에 대한 상해와 가정 폭력 등의 혐의로 긴급 체포했습니다. 정 씨는 함께 살던 아들이 3개월 전 지병으로 사망하기 훨씬 이전부터, 며느리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 해 왔으며, 지난 달 5일경,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피해자의 복부를 발로 짓밟는 등, 한시간 이상의 심한 폭력을 행사해, 결국 유산에 이르게 했습니다..."
/기자들 질문 소리... 플래쉬 소리.../
이수영: 국제 결혼으로 열 아홉살의 어린 나이에 한국에 정착한 며느리 H 씨는, 1년전 갑작스럽게 암 진단을 받은 남편을 보살피면서, 한국어도 배우며 열심히 살아왔지만, 시아버지 정 씨의 폭행이 시작되면서부터, 주변 이웃들과도 전혀 왕래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어제밤 용산 경찰서의 발빠른 대처 덕분에 현재 서울 모병원에 입원해 있는 H씨는, 온몸에 멍이 들고, 곳곳에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임신 중에도, 그리고 유산 후에도 계속되었던 성폭행으로 심한 장기 손상을 입어, 현재 자궁 적출 수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석호 팀장/
".. 아이는 현재 임시 보호소에 위탁되어 있고, H씨는 입원 치료 중입니다. 피의자 정씨의 법정 구속을 마무리하는대로, 법적 보호자의 동의 없이, 성인인 피해자 본인의 의사만으로 필요한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 중입니다..."
/경찰서 배경/
이수영 :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최약체인, 홀로 고립된 이주 여성을 구해냈다는 데에 가장 큰 의미가 있는데요, 아무도 알지 못했던 일을 경찰이 먼저 알고 나서서, 수사를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수사 시작 단 하루만인 어젯밤 10시 25분 경, 정 씨가 관리인으로 일하는 한 건물의 화단에서, 비닐봉지에 담겨 매장 되어있던 태아의 사체도 발굴했습니다.
앵커 : 그러면 이쯤에서, 고립된 며느리 H 씨를 도와 경찰에 신고를 하도록 도와주신, 의인이 궁금해집니다. 어떤 분입니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방송에서 공개를 해도 될까요?
이수영: H씨를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준 의인은, 바로 용산 경찰서 형사, 강 모 경위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평소에도 주민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강 경위는, 불과 이틀 전에, 정씨의 집에서 무언가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는데요,
하지만, 신고도 없었고, 실종이나 사망자도 없는 상태에서, 공식적으로 수사를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출근시간 전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정씨 집 주변을 살피다가, 혼자 있던 며느리 H 씨를 만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H씨의 팔에 남은 폭행 자국을 목격하고, 독자적으로 수사를 진행시켜, 만 이틀만에, 이런 성과를 올렸습니다.
앵커: 형사의 직감도 대단하고, 개인 시간을 내어주신 것도 고마운 일입니다. 그리고, 만 이틀이라는, 그 말도 참 놀라운데요, 아무래도 경찰에게 수사종결권이 넘어가면서, 속도가 붙은거겠죠?
"그렇지, 저거야!"
서장과 종태가 동시에 환호한다.
이수영: 그렇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거론되어왔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수많은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팽팽히 맞서왔는데요, 경찰 측에서 조차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계속적인 제도 보안과 함께, 이번 용산 경찰서에서 보여준 수사 능력을 유지한다면, 더이상의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아이고, 저 기자 말 잘하네! 우리 기자실이야?"
"가끔 본 거 같애요. 잘한다, 잘한다!"
기뻐하는 서장과 종태, 그러나 어쩌지 편치만은 않아보이는 석호...
지이잉...
진동이 온다. 느릿느릿 문자를 확인한다. 송창률이다.
/태아와 피의자, 친자 확률 99.99...% 축하해/
안도의 한숨... 석호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다. 역시 도박은 적성이 아니다...
"서장님, 지금 감식 결과 나왔습니다. 친자랍니다."
"어, 그래. 당연하지? 잠깐 아껴둬. 내일 한번 더 업데이트 할거니까."
"또요? 기자들 부르시게요?"
석호가 물었다.
"브리핑은 됐고, 기사로 줘. 피해자 수술 들어가든지, 끝나고 회복하던지... 강진우 뒷모습만 넣고 사진 하나 찍던가, 지가 싫다 그러면, 네가 직접 가서 위로하고 격려해. 아이도 살짝 돌려서 같이 찍으면 좋고.. 기사 아래에다가 친자확인 결과 넣어주고."
"서장님, 오늘 회식 한번 해야죠?"
종태가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서장이 기분좋게 웃는다.
"그래, 그러든지... 야, 근데 너네 애들 아직 안 들어왔잖아? 놀러갔냐? 가평이 뭐가 멀어서 여태 안 들어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