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15화 이어달리기 1

마지막 주자

by 신소운

15.1.1 화장터



경찰 제복 차림의 동기들이 줄을 맞추어 선다. 60을 바라보는, 혹은 그보다 더 된 오랜 친구들이다. 창률이 영정 사진을 들고, 그 뒤를 따르는 지율의 동료들.. 석호, 시환, 민규, 정환, 박 형사, 그리고 다리가 불편한 진우까지, 제복을 입고 관을 들었다. 여전히 한쪽에 붕대를 감은 진우를 보고 류형호가 다가간다.


"진우는 놔라, 미끄러워서 위험해."

"괜찮습니다."

"경찰은 몸이 무기야. 조심해야지. 지율이 옆으로 가있어. 아빠가 할께."


아빠가 할께... 진우 뒤에 선 시환이 아버지를 본다. 가벼운 눈발이 형호의 어깨에, 등에 내린다. 염색을 했어도 뿌리쪽이 다시 희끗하게 자라나왔다. 진우의 장갑을 끼고 손잡이를 잡는다. 시환이 힘주어 관을 들어 올린다. 아버지가 무리하지 않도록, 아까보다 조금 더 힘을 써본다. 발을 맞추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시환이 조심해라, 미끄럽다."

아버지가 슬쩍 뒤를 돌아보며 조용히 한마디 한다.

"예."

옆으로 물러난 진우가 지율의 옆을 지킨다. 굳게 닫힌 관을 이동 테이블에 싣고 대기실로 향한다.

간신히 시간을 맞춰 도착한 서장이 뛰어온다.

"들어갔어?"

"대기해야죠, 앞사람 잘 가실 때 까지.. 대기실에 줄 서서."

"애들이 밀고 갔어? 누구누구 왔냐? 정환이까지 불렀다며?"


종태가 한마디 한다.

"젊은 애들 진짜 없죠? 형호 형이 밀고 갔어요. 지금 그 형이 남의 관 들고 있을 나이야? 충원 좀 해 줘요, 이러다 나 죽으면 형님들이 와서 들어야돼."

"쓸데없는 소리.. 니가 왜 죽어, 임마?"

"기환이 형은 뭐 나이 꽉 채우고 죽었나? 각자 갈 때 되면 가는거지.."


씁쓸한 얼굴로 종태가 말을 잇는다.

"그러니까 내 말은, 찬호라도 올려보내달라구요. 몇명 되지도 않는데 한 놈은 진짜 상주, 다른 놈은 상주인 척, 다리 부상 한 놈에, 아예 입원해 있는 놈 하나.. 아휴, 남은 애들끼리 아둥바둥... 이러다가 진짜 크게 다쳐요."

"알았어, 돌아가서 얘기해."


"뭘 맨날 얘기만 해? 지금 다 했으니까 쓸만한 애 좀 잡아와요. 어떻게 된 게 관짝 들어줄 여섯명도 못 구해서 대장님이 저러고 있어. 제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어, 아주 그냥.."

"화장 시간이 언제야?"

"얼마 안 남았어요, 한 30분 있으면 시작해요. 왜요? 바뻐요?"


"조금은 더 있을 수 있어.. 야, 근데 석호는 저 집이랑 무슨 관계냐? 부모님들하고 뭐가 있다며?"

"저는 모르겠습니다. 어릴때 같이 자랐다는데, 석호네 집이 뭘 숨긴대요. 지율이가 알아서 하겠지, 난 그냥 구경만 해요. 뭐가 되든, 뭔일이 있었든, 뭐가 중요하다고... 인생 다 허무해.."


지이잉... 문자가 온다.

/차은석 납치범 신원 확인, 중국 교포, 보이스피싱 조직 공해용 41세, 임한조 47세 경기도 안산시 사2동 초당로 식당가 인근 도주 차량 발견/

"이런 개새끼, 임한조...! 이 자식이었어.."

종태가 대기실로 뛴다. 서장도 따라 뛴다.


대기실에서도 이미 문자를 확인하고 갈팡질팡이다. 형호가 정리한다.

"너희는 출동해야지. 여기는 우리가 할테니까 걱정 말고, 진우는 부상이니까 빠지고, 석호는 갈거지?"

"준비하겠습니다."

"저도 갑니다, 운전도 되고, 사격도 됩니다.."

진우가 나선다.


"강진우 걸리적 거려. 남아서 여기나 정리해, 선배랑."

시환이 장갑을 벗어놓으며 말한다. 진우가 뒤를 가르킨다.

"무슨 선배? 쟤 벌써 준비 다 된거 안보여?"

시환이 돌아본다. 그새 제복 자켓을 벗어 걸어 놓고 머리까지 고쳐 묶었다. 종태가 말린다.


"지율이는 있어라. 그쪽 기타대랑 같이 갈거야, 충분해. 아버지 장지까지는 가야지."

"싫어하실걸요. 항상 말하잖아, 아버지가 그랬다고.. 미친 개는 미친 놈이 잡는다... 다 죽었어. 장비는?"

석호가 답한다.

"리화씨랑 몇명 더 내려올거야. 챙겨오라고 했어. 진짜 가려고?"


지율이 아버지 관을 퉁퉁 두드린다.

"아빠, 먼저 가있어. 다 잡아 넣고 갈께. 있다가 저녁때 봐요?"

창률과 눈이 마주친다. 먼저 말 걸기 싫어 입을 떼기도 어렵다. 창률이 먼저 고개를 끄덕거린다.

"갔다와, 걱정말고.. 좋아하실거야."


종태를 따라 우르르 나간다. 형호가 시환을 부른다.

"시환이는..."

시환이 돌아본다.

"... 누나 잘 챙기고.. 겨우 살아 돌아온 애야. 조심해."

"예.. 다녀오겠습니다."


잠시 주저하던 시환이 형호에게 경례를 한다. 형호가 눈을 마주친다. 일행을 쫒아 뛰어가는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본다. 서장이 미소 짓는다.

"거봐요, 형님. 많이 컸죠? 애들은 공기만 먹어도 큰다니까.."

"지원 든든히 보내는 거지? 안 다치게 해. 왜 전부 애들만 가?"

"애들이라니요, 서른인데..? 우리때 서른하고는 많이 달라도, 다 컸어요. 경찰이잖아요."



15.1.2 안산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지율, 방탄조끼와 총으로 무장했다. 빙 둘러 선 일행에게 종태가 지시한다.

"전에, 우리랑 한판 붙었던 놈들이야. 그때 은석이를 차로 밀어버렸던 그것들.. 그때 꼬리만 쳐내고 윗대가리들은 놓쳤었거든. 잠잠하다했더니 어쩌다 환전소까지 차려서 대기업을 하고 있었네... 일단 은석이를 공격한건, 두 놈, 공해용, 임한조."


사진을 꺼내든다.

"둘 다, 중국, 한국 양쪽에서 다 수배중이야. 보이스 피싱은 몇년전에 새로 시작한 거고, 그 전에는 동남아 왔다갔다하면서 밀수를 했어. 조선족 신분으로 한국에 들어와서 둘 다 십년 이상 살았고, 잡힌적이 없으니까 전과는 없지만, 무수히 많은 사건의 용의자들이야. 둘 중 어느 놈이 대장인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임한조는 은석이한테 감정이 안좋아. 은석이가 밑에 애들 많이 잡아 넣었거든. 이번 피습은 이 놈이 주도 했을거야."


"사무실에서 발견된 시신들도 두 사람의 짓이겠죠?"

"은석이를 끌어들일려고 그랬을수도 있어. 지난번에 한판 붙었을때, 그쪽은 셋이 죽었거든. 그 숫자만큼 죽여서 가져다 놨겠지. 보란듯이.."

"중국 사람 셋 죽었으니, 한국 사람 셋을 죽여서 화답한다.. 그거였군요. 명동 환전소는요?"

석호가 묻는다.


"그때 죽은 사장이, 공해용이 하고 관련이 있는 인물이었어요. 왕래가 잦았고, 통화 기록도 찾긴 찾았는데, 그게 친분인지 원한인지는 밝혀내지 못했었습니다. 알았다면 미제로 남지 않았겠죠. 공해용이 그렇게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온거죠. 좀 더 큰 조직으로."

"안에 몇명이나 있는지는...?"

"정확한건 아니지만 최소 여섯명 이상일거랍니다. 밖에 차량 서 있는게 벌써 세대니까, 꽉 채우면 열두명 이상 될수도 있구요, 혹시라도 먼저와서 기다리는 인원이 있느냐가 변수입니다."


무전이 온다. 진우가 받는다.

"기타대 들어갑니다. 준비하시랍니다."

"진우는 차에 남아서 상황 잘 살피고, 계속 알려줘. 팀당 넷 씩 갑니다. 시환이 지율이가 둘 데리고 가고, 박 형사랑 정환이가 둘 챙겨. 리화는 나랑 팀장님 옆에 잘 붙어있어라. 위험한 놈들이야. 테이저 필요없고, 다들 총 챙겨. 말이 보이스 피싱이지, 중국 조폭이야. 각자 위치로!"


야적장을 에워싼 기타대가 한발한발 접근한다. 중장비 보관 창고로 썼던 곳이라 여기저기 대형 폐기물이 버려져있다. 조립식 가건물 3개 동 중, 비교적 관리가 잘 된 맨 오른쪽 건물을 둘러싼다. 나머지 두 곳은 이미 반쯤 무너졌다. 기타대의 접근을 눈치 챈 조직원들이 무력 저항을 시작한다. 흉기를 들고 맞붙어 싸운다. 숫자는 적지만, 한눈에 봐도 건장한 사내들이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건물 안에서의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고, 탈출을 시도하는 몇명이 튀어나온다.


"공해용!"

종태가 소리친다. 짙은 갈색의 바바리를 입은 공해용이 돌아본다. 일행 두명과 함께 손에 칼을 들었다. 알 수 없는 중국어로 소리치며 도주를 시도한다. 리화와 종태가 거의 동시에 달려든다. 반대쪽에서 정환과 박형사가 달려온다. 양쪽으로 막힌 공해용 일당이 거세게 저항한다. 온몸으로 치고 받는 중에, 정환의 삼단봉이 맥없이 부러진다. 맨손이 된 정환이 주먹으로 버티지만 팔뚝만한 칼날에 밀릴수 밖에 없다.


건물 벽으로 몰린 정환이 간신히 칼을 피한다, 한번, 두번, 세번... 더이상 피할 곳이 없어 주저앉는 정환의 머리위로 그림자가 지난다. 퍼억... 소리와 함께 리화가 무서운 속도로 상대에게 주먹을 날린다. 칼을 든 손을 어쩔 시간도 없이, 리화의 펀치와 발길질에 그대로 뻗는다. 칼을 뺏어 건물과 땅 사이의 틈으로 숨겨 넣고, 수갑을 채운다. 정환을 돌아본다.

"다치셨습니까?"


"아니, 근데 거의 죽은 거 같애.."

"살아계십니다."

"나 말고, 그 놈.."

리화의 무릎 아래 엎드려 정신을 잃은 남자의 목에 리화가 손가락을 대어본다.

"아직 안 죽었습니다. 장수할 겁니다."

정환을 일으켜 세우고 다른 곳으로 뛰어간다.


석호와 함께 공해용과 싸우고 있는 종태. 커다란 스패너를 들고 저항하는 통에 쉽지 않다.

"공해용, 그만해. 우리 총 있는데, 봐줄때 꿇어."

"쏴봐! 뭘로 쏠건데? 사기 좀 쳤다고 총으로 쏜다고? 웃기지마, 너 그거 못하잖아!"

"조직원 3명 살인, 경찰 납치.. 그리고 예전에 명동 환전소 사건.. 다 너 잖아, 그정도면 쏴도 돼."

"증거 있어? 그때도 못잡았어."


종태가 공해용과 대화하는 동안 잠시 숨을 돌리는 석호, 많이 지쳤다. 스패너에 맞아 찢어진 이마에서 피가 흐른다. 눈을 비벼 닦는다. 뜨고 있기가 힘들다. 오래 못 버틸 것 같다.

"우면산에서 니 부하 하나 잡혔고, 차 형사 몸에서 니 유전자 나왔다, 됐냐?"

"니들을 어떻게 믿어? 심어놓고 함정 수사 하는 거 다 알어."

"지금도, 봐, 네가 한게 아니면 무슨 말이냐, 우리 아니다.. 그 말 부터 했겠지, 안그래? 니들은 이렇게 머리가 나쁘니까 잡히는거야."


"$%@, ^&&% % @!&*% (*"

뭔가 감정이 많이 섞인 중국어로 소리치며 덤벼든다. 종태와 1대1로 붙는다. 긴 스패너에 밀려 몇 대 쳐보지도 못하고 수세에 몰리는 종태. 그때 뒤에서 달려와 있는 힘껏 요추를 걷어차는 석호 덕에 놈이 쓰러진다. 두어번 구르고 다시 일어나 떨어진 스패너를 잡아보지만, 리화가 달려와 마무리 펀치를 날린다. 무릎으로 기어서 도망가려는 공해용을 한번 더 가격한다. 종태가 잔뜩 지친 얼굴로 걸어와 수갑을 채운다.


"아까 뭐라는 거냐? 욕 한거지?"

"문종태 개 썅놈무 새끼 죽여버린다.."

리화가 종태를 보며 말한다. 숨이 가쁘다... 헉헉... 리화를 쳐다보며 숨을 몰아쉬는 종태..

"... 라고 했어요.."

바닥에 주저앉아 피식 웃는다.

"다른 애들은...?"

경찰들에 이끌려 또 한명을 잡혀온다. 박형사가 팔을 부여잡고 걸어 온다. 그 뒤로 한놈을 둘러 업고 나타나는 정환.. 난장판이다.

"니들은, 팀장님하고 이것들 먼저 치워. 리화야, 애들 찾으러 가자."

지친 기색없이 발딱 일어나 따라나서는 리화를 보며, 정환이 감탄한다.

"쟤 맞네, 홍리화... 전에 누구 내장 터뜨렸다며.. 어우, 잘 뽑았다.. 조심해야지."

석호가 한껏 풀린 다리를 쉬며 피를 닦는다. 한쪽 눈만 뜨고 멀리에서, 지율을 찾아본다.


*****


한편, 반대편 마당에서 둘을 잡아 놓고 기다리던 시환이, 뛰어오는 종태를 반긴다.

"얘들 데려가세요. 저 선배 쫒아가요."

"같이 가, 어느 쪽이야?"

"숲이요, 나무 때문에 잘 안보여요.."

리화가 둘을 맡는다. 이미 저만큼 뛰어나간 시환에게 소리친다.


"누군데? 임한조야?"

"예에..."

멀어지는 목소리를 듣더니, 막 멈추려던 다리로 다시 있는 힘껏 뛴다.

"지율아, 살려서 잡자.. 부러뜨리지 말고, 하나로.. 통째로 잡아가자.. "


부상을 입고도 전속력으로 달리는 임한조를 추격한다. 발이 빠른 시환이지만, 흙길에 나무와 돌들까지 아무렇게나 떨어져있어 쉽지않다. 임한조도, 지율도 보이지 않는다. 멈추어 서서 사방을 둘러본다. 뒤따라 온 종태도 멈춘다.

"놓쳤어?"

"안보여요, 어디갔는지..."

야트막한 언덕을 둘러 싼 여러 채의 비닐 하우스, 그 옆으로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버려진 땅인듯 잡초가 무성하다. 과수원이었을까, 바짝 마른 나무들이 소름끼치게 조용하다.


펑... 멀지않은 곳에서 폭발음이 난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반쯤 찢어져 나간 비닐 하우스에서 불길이 솟는다. 종태와 시환이 뛴다. 하우스 밖으로 튀어나오는 두 사람 - 임한조와 강지율이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치고 받는다. 얼어붙은 논바닥을 뒹군다. 지율이 밑에 깔린다. 시환이 달려가 임한조의 옆구리를 걷어찬다. 지율에게서 떼어놓는다.


"다쳤어요?"

일으켜 세워주려는데, 오히려 시환을 걷어차 옆으로 넘어뜨린다. 한바퀴 구르는 시환, 그위로 헛손질하며 넘어지는 임한조.. 그제서야 그가 들고 있는 칼이 보인다. 뛰어 와 숨이 가쁜 종태가 기진맥진 주저 앉는다. 그새 다시 일어나 싸울 자세를 잡는 지율을 보며 임한조가 손을 내젓는다. 종태가 돌을 던진다. 정확히 임한조의 귀에 맞는다. 아파서 손으로 감싼다. 숨이 끝까지 찬 채로 소리친다.


"야, 이 새끼야.. 너지? 우리 은석이... 잡아 죽일려고 한게... 너지, 이 새끼야?"

시환이 간신히 숨을 고르고 다가선다. 아직도 칼을 내려놓지 않았다.

"칼 놔. 끝났어."

시환을 노려보며 칼을 더욱 움켜쥔다. 추운 날씨에 숨이 차올라 목도 아프다. 슬슬 짜증이 난다.

"더 할거야? 나 싸움 잘하는데.. 다친다, 너? 지금보다 훨씬 많이... 각오해."


자켓을 벗어 지율에게 덮어주고 남자에게 다가간다. 말리는 지율의 손을 뿌리친다.

"칼 내려, 그럼 봐줄께."

손에 칼을 꼭 쥔 채로, 남자가 일어선다. 자세를 잡기도 전에 시환의 발차기에 나동그라진다. 종태가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불이 난 하우스에서 계속 연기가 피어오른다.


엉거주춤 무릎을 꿇은 남자에게 다가가 한번 더 걷어찬다. 남자가 좌우로 구른다. 일말의 동정 없는 냉정한 얼굴로, 시환이 내려다 본다.

"칼 놓으라고, 그거 내려 놓을때까지 안 끝나."

종태가 전화기를 꺼낸다. 춥다. 코를 훌쩍 거린다.

"마무리 해라, 소방차 불러야 된다."


시환이 비닐 하우스를 힐끔 본다. 배를 감싸고 있는 임한조에게 다가가 칼을 든 손을 있는 힘껏 밟는다.

"으아아.."

"그러니까 놓으라 그랬잖아, 왜 말을 안들어? 다친다고.."

지켜보던 지율이 다가와 시환을 말리고, 대신 수갑을 채운다. 엎드려 놓고 몸 수색을 한다. 바지 종아리에서 칼이 하나 더 나온다. 주머니에 넣는다.


양쪽에서 잡아 일으킨다. 종태가 119를 부른다.

"예, 수고하십니다. 여기 주소는 잘 모르겠는데, 저희가 사2동 산 102-1 거평 중장비 창고에서 동서쪽으로 한 400미터 왔거든요. 비닐 하우스에 불이 째끄맣게 났는데, 연기보고 찾아 오실수 있죠? .... 아뇨, 아직은 하나만 타고 있는데, 바람이 불어서요, 옆으로 옮겨 갈 것 같습니다.. 저희가 지금 공무수행중이라서 얼른 돌아가야 합니다, 빨리 좀 와주세요.."


종태를 두고 돌아서는 지율, 전화가 온다. 잠깐 멈추고 전화를 받는다. 리화다.

"선배님, 어디십니까? 문자 못 보셨습니까? 안면도 임산부, 곧 출산한답니다."

뒤를 돌아본다. 종태도 문자를 확인했는지, 지율을 보고 섰다.

"꼴 좋다, 원없이 몸 풀었구나. 넌 서울 가. 다른 애들 보낼거야."


"제가 갑니다. 중국어 하는 사람들이 돌아가야죠. 리화씨, 시환씨, 이팀장님 가시고, 부상자들 빠지고.. 그럼 갈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갈거야, 걱정마."

"다치셨습니다. 피 납니다.."

"너는 니 얼굴 안보이지? 멀쩡한것 같냐? 옷 꼬라지랑 다..?"

"시원합니다. 공기도 잘 통하고.."


종태가 너털 웃는다. 멀리서 경찰들이 뛰어온다.

"아빠한테 안 가볼거야?"

"제 사건입니다. 처리하고 가겠습니다. 이젠 혼자 어디 못 가셔서요.. 다하고, 천천히 가도 됩니다."

잊었던 눈물이 솟는다. 깜빡깜빡 바람에 말려본다. 더 차갑다.. 시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나쁜 기집애. 딸이라고 하나 있는게.."


"다녀오겠습니다."

임한조의 팔을 놓고 돌아선다.

"야야, 서두르지 말고, 확실히 범죄가 성립된 다음에 덮친다,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이미 저만큼 멀어져가는 목소리가 섭섭하지만, 잠시 입을 꼭 다물기로 한다. 소방차 사이렌이 들려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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