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1 진우의 차
찬호와 통화하며 내려가는 진우.
"호텔 직원이 청소하러 갔는데, 안에서 누가 아프다고 우는 소리가 나더랍니다. 다른 사람이 나와서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청소할 필요 없다고 했구요."
"방에는 못 들어간거네요."
"예. 그런데 다른 손님들도 같이 있었다고 합니다."
"3층 사람이요?"
"누구인지는 모르고, 스위트 룸에 숙박하는 여자 세명 외에 방문객이 있었답니다."
"그래요, 지금 가고는 있는데, 낳기전에 도착할지 모르겠네요. 계속 업데이트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근데 찬호씨는 우리 팀 언제 와?"
"예?"
"원래 우리팀 오고 싶어했었잖아? 시험 준비도 하고 그랬었던거 기억하는데?"
"..아닙니다.."
"튕기지말고, 얼른 와서 나 좀 도와줘. 다들 기다리는데.. 우리 싫어졌어?"
"아닙니다."
"전처럼 밥도 같이 먹고, 당구도 치고.. 그랬으면 좋겠다. 마음 바뀌면 언제든 와. 딴데 가지 말고?"
"..."
"이찬호!"
"예, 강 형사님."
"왜 그래, 우리 사이에? 그런거 말고, 전처럼 형 하고, 얼굴 좀 자주 보자, 응?"
"...예."
"아마 내일은 서울 갈거야. 나랑 술 한잔 하기다?"
"... 예, 다녀오십시오."
전화를 끊는다. 어느새 노을이 진다. 조수석에서 잠든 지율을 본다. 먼지에 피에, 헝클어진 머리카락까지 범벅이 되어 말라 붙었다. 흘러내린 자켓을 끌어올린다. 히터가 괜찮은지 손으로 방향을 맞춘다. 미동도 없이 깊히 자는 지율.. 조금 전 안산에서 출발할때가 생각난다.
/회상
차 안에서 문자를 확인하고 찬호에게 연락하는 진우.
"호텔 주소하고, 스위트 룸 번호, 3층 사람들 방번호 필요합니다. 이름하고 간단한 인상 착의나 사진 있으면 더 좋구요. 저희가 갈 수 있는 인원이 없어서 일단 저만 갑니다. 그쪽에 최대한 지원 부탁드려주세요, 지금 출발합니다... 어?"
조깅하듯 가볍게 달려나온 지율이 차에 올라탄다.
"안면도 출발!"
"그 꼴로?"
"이 꼴이 어때서? 경찰이 이정도면 됐지."
"총 맞는다. 니가 도주중인거 같애."
진우가 차를 뺀다.
"앞에 열어봐, 비상약 있어. 엉망이야..."
"됐어, 잘래."
"자? 갑자기?"
"어, 기절할 것 같애... 가서 깨워줘."
파란색 스폰지로 된 귀마개까지 꽂는다. 땅바닥에 뒹굴어 더러워진 자켓을 덮고 금새 잠이 든다...
/
15.2.2 용산 경찰서
수송 차량에서 우르르 끌려내려오는 중국 조직원들, 경찰서 안을 가득 채운다. 니편내편없이 일단 부상자 치료부터 시작한다. 고성이 오가고, 가벼운 몸싸움도 생긴다. 바빠지는 전화, 중국어, 한국어 마구 섞인다. 두세명씩 나누어 분리시킨다. 119에 넘겨지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도 유치장과 벤치를 충분히 채운다.
팀원들이 하나둘 휴게실로 모인다. 종태가 커피를 돌린다.
"수고했어, 한잔씩들 마시고, 얼른 씻자. 취조 들어가는 사람들 불편한거 없이 준비 잘 해주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꽉 채워오셨네요."
다른 팀 사람들이 인사한다.
"큰 부상은 없어보여. 다행이네."
"이번에는 진짜 중국애들 맞아요? 보이스 피싱 80프로가 중국이라는데, 맨날 잡히는 건 쫄따구 한국 애들이잖요. 꼬리만 백날 잡으면 뭐해? 대가리를 잡아야지."
한 행정직 공무원의 비아냥에 기분 상한 종태가 마주 앉는다.
"꼬리라도 안 자르면 점점 커진다. 꼬리가, 열개 스무개 되면서 다 다른 조직으로 자라나거든. 곰팡이처럼 쫘악... 너네 집도 홀랑 날렸을껄? 애들 밥도 못먹고 피터지게 싸우다 지금 들어왔어. 고마운줄 알아."
"고맙죠, 고마운데.. 애당초 조선족들을 못 들어오게 해야 된다, 이거에요. 동포니 뭐니, 국적까지 줘 가면서 왜 자꾸 불러들여서.."
리화를 힐끔 보며 덧붙인다. 무표정하게 도너츠를 먹는 리화. 조용해진 휴게실 분위기가 어색하다.
"사실 요새 사고치는거, 절반은 조선족이잖아요. 걔네들 안 끼는 범죄 있어?"
"그만 해라. 너 볼펜보다 큰 걸로는 맞아본 적도 없지? "
종태가 목소리를 깐다.
"아니, 홍리화씨 얘기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그렇다 이거죠, 안그래, 리화씨?"
"이게 근데..."
"괜찮아요, 놔두세요. 그렇게 생각하는 거 까지 뭐라고 하면 안돼죠. 머리에 든 게 그게 다 인데.. 싫을 자유도 존중해야합니다. 저도 한남 싫거든요.. 한주먹 꺼리도 안되는게 뒤에서 입만 살아서.."
리화가 직원 앞으로 간다. 손을 뻗어 그의 커피 컵을 집어든다. 본능적으로 움찔하는 남자.. 못 본척, 다 마신 커피 컵을 포개어 그에게 돌려준다.
"이것도 좀 버려주세요. 무겁나? 들 수 있어요? 저는 취조실에 가봐야되서.. 제가 조선족이라 통역이 좀 되거든요."
종태가 키득키득 웃는다. 정환, 박형사, 그 뒤로 하나씩.. 그의 손에 종이컵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휴게실을 나간다. 마지막으로 시환이 묻는다.
"괜찮아요? 들어드릴까요?"
"..."
불쾌한 얼굴로 컵을 들고 쓰레기통으로 가는 직원.
"오늘 애들 다 잘했지만, 리화가, 역시 주먹이 장난 아니더라.. 그 게임 알지? 버블 팝! 버블 팝! 어우, 한방 칠때마다 상악골 하악골이 쫙쫙 빠개지는데... 역시, 권투하는 여자가 멋있어!"
휴게실을 나서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종태가 소리친다.
"그 음악 알어? 빰빠라빠암~~~ KO 승~ 홍~리~화~!"
15.2.3 안면도 오션뷰 호텔
어둑해진 밤을 피해 호텔 로비에서 대기 중인 지율이 클린징 티슈로 얼굴을 닦는다. 굳어진 피와 시커먼 때가 묻어난다.
"화장실가서 세수를 해."
"그러다 놓치면?"
"지금 애 낳은 사람을 어떻게 놓치냐?"
"산모 말고, 주변 인물들... 범죄자들!"
문자가 온다.
/3층 둘 다 이동 스위트 룸으로/
"여기 지켜, 내가 보고 볼께."
3층 방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찰과 함께 안으로 들어간다. 호텔 직원이 청소하느 척, 문 앞을 막는다. 옷장, 화장실, 화장대... 방금 들어온 사람들처럼 깔끔하다. 구김하나 없이 정리된 침대 옆에 여행 가방이 열려 있다. 새로 장만한 유아 용품이 들어있다. 진우가 사진을 찍는다. 신생아 옷과 분유, 젖병, 임부복, 기저귀... 그리고 지퍼 안에 들은 종이 몇장... 출생 신고 준비물 안내, 신생아 돌보기 등등의 서류도 한장한장 사진으로 찍어 기록한다. 나오기 전에, 화장실과 호텔 방도 여러장 찍어 놓는다.
로비로 돌아와 다시 자리에 앉는다. 머리를 맞대고 사진을 본다. 지율이 속삭인다.
"만약에 아이를 낳은 척 하려면, 오래지 않아 경찰서나 병원을 가든지, 아니면 119를 부르거나 할거야. 그 정선생이라는 여자가 출산을 도울거고, 하루이틀 있다가 출생 신고를 하겠지?"
"출생 증명서는 그 여자가 만드나? 의사나 조산사가 작성하는거지만, 그 사람은 자격 박탈이잖아."
"위조를 하던지, 누구한테 돈을 주고 명의만 빌리던지 해야지."
"지금 낳고 있나? 왜 올라갔지? 윗층 직원들은 별 말 안해?"
"거기는 룸이 크잖아, 밖에서 소리가 안들려. 그래서 거기로 예약했나봐.."
"하루이틀은 걸리겠는데."
그 말에 진우가 활짝 미소 짓는다.
"호텔 좋다.. 그치? 방 하나 잡을까?"
"여기서 밤 새야지 무슨 소리야. 빠져나가면 어쩔려고?"
"안 피곤해? 하나만 얻어서 교대로 들어가 자자. 나 의사가, 누워서 다리 올리고 있으라 그랬어."
"인제와서?"
"응... 지금이라도 올려야될것 같아.."
전화가 온다. 민규다. 핸드폰에 귀를 대고 함께 듣는다.
"선배님, 그 사람들, 사업하는 사람들이라 그런가, 현찰 왔다갔다한게 워낙 많아요. 어느 돈이 어느 돈인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신에, 정 선생이라는 여자의 어머니 통장으로, 몇년 사이에 큰 돈이 여러번, 입금됬어요. 생활비인지, 월세인지.. 그걸 조금씩 나눠서 정 선생에게 송금했구요."
"정 선생도 아니고 정 선생 어머니한테?? 그정도로 믿는 사이야?"
"단순히 수고비로 주는게 아니라, 큰 돈을 팍팍 줄만한 사이라 이거네..."
민규가 계속한다.
"그리고, 정 선생 지금 살고 있는 집이요, 전세가 만료되는데, 연장 안했습니다. 근처 부동산에, 정선생 명의로 된 집이 있는지 확인 중입니다."
진우가 지율을 돌아본다.
"정 선생 뿐 아니라, 원장이랑 원장 남동생, 그리고 정 선생 어머니 명의로도 확인해."
지율이 덧붙인다.
"민규씨, 그리고요... 정 선생 아들 하나 있잖아요, 걔 하고, 원장 남동생이라는 사람하고, 친자 확인 가능하겠죠? 빨리 좀 부탁 드려요.."
전화를 끊는다. 너덜너덜한 지율의 옷차림이 이상한지, 사람들이 힐끔거린다. 시선 끌어 좋은 건 없다.. 진우가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잠바를 덮어 가린다. 자연스럽게 머리를 기대고 쉬는 지율.. 누가보면 영락없는 애인이다. 소근소근 서로의 귀에 대고 말한다.
"정말 그걸까? 최악이네.. 지 마누라가 낳는 애는 팔아넘기고, 지는 다른 여자랑 애 낳고 산다, 이거지?"
"결혼을 왜 한거야? 처음부터 애 낳아서 돈 벌려고 어린 여자를 데려왔나?"
지율의 머리를 쓰담쓰담 매만진다.
"그럴수도 있겠다. 그래서 전에, 애 유치원 가기전에 출생 신고 해야된다고 싸웠다는게.. 말이 되네. 단순히 바람이 아니라, 그 남자 아이라면.."
"그럼 원장은 다 알면서 방조...?"
"아니지, 여기저기 아는 사람 통해서 신생아 매매를 주선했겠지, 주도적으로..
지율이 벌떡 일어나 앉아 진우를 본다.
"동남아에서 오래 살다 왔다면서?? 거기서도 그런거 하던 사람 아냐, 혹시?"
"글세, 원장 신원 조회 다 했는데, 전과는 없었는데.. 걸릴때쯤 튀었나?"
지율이 다시 풀썩 진우의 팔에 기댄다.
"애는 왜 이렇게 안 나와.. 진전이 되야 덮치든 말든.."
"원래 오래 걸려.. 매점 가서 뭐 좀 사 올까?"
"발 아픈데 쉬어, 내가 사올께."
"여기있어. 그 꼴로 돌아다니면 사람들 기절해."
진우가 간다. 조금 나았는지, 전처럼 심하게 절뚝거리지 않는다. 다행이다... 소파에 머리를 대고 쉰다.
15.2.4 창률의 집
창률이 방 정리를 한다. 택배 상자를 연다. 미국 드라마 CSI 포스터다. 책상 앞에 붙은 LG 트윈스 포스터 옆으로 자리를 잡는다. 벽에 기대 놓았던 다락방 문을 집어든다. 기억을 더듬어 특별히 주문해서 만들었다. 다락방은 없지만, 어른 키만큼 높히 박아놓은 경칩에 끼워 넣는다. 제법 진짜 문처럼 보인다. 오래된 나무 장을 끌어다 앞에 놓는다. 당장이라도 한발짝 올라서서 문을 열면, 안으로 들어 갈 것 같다..
/회상
어린 유리와 시율이 방으로 뛰어들어온다. 침대에 누워 책을 보던 창률에게 올라타 같이 놀자고 조른다. 까르르 웃으며 다락방으로 도망간다. 따라간다. 세 아이가 차례로, 다락방으로 올라간다. 예전에 살던 집, 시율이 죽은 그 방이다. 벽에 붙은 포스터 두개, 아래쪽이 조금 찢어진 야구팀 포스터에 조금 지저분하게, 테이프가 붙어있다. 그 옆에 붙은 새로 산 CSI 포스터... 시율이 제일 좋아하던 드라마다...
/
뚜벅뚜벅 책상 앞으로 걸어가 야구 포스터를 본다. 왼쪽 귀퉁이를 잡고 주우욱 찢었다가, 다시 가지런히 모아 스카치 테이프를 붙인다. 비로소 살짝 미소가 지난다. 웃는 얼굴에 금새 눈물이 흐른다. 방을 둘러본다. 잠긴 서랍을 열어 깊히 숨겨 놓은 일기장을 꺼낸다.
잠시 후 마당 온실로 나온 창률이 모닥불을 피운다. 담요를 덮고 일기장을 펼친다. 고개를 들고 한동안 멍하니, 처녀자리 별자리 장식을 올려다 본다. 눈을 감는다.. 소리... 소리가 들린다. 사이렌 소리, 사람들 비명 소리.. 뚜벅뚜벅 누군가 걸어와 말을 건다..
"꼬마야, 너 왜 이 시간에 혼자 있어? 집이 어디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