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15화 이어달리기 3

마지막 주자

by 신소운

15.3.1 처녀자리 - 80년대 후반




"꼬마야, 너 왜 이 시간에 혼자 있어? 집이 어디야?"

어린 창률에게 다가온 커다란 남자.. 경찰이다. 불을 끄다 왔는지 숨을 헉헉 거린다. 아이가 대충 아무데고 보이는 쪽을 가르킨다.

"위험하다, 얼른 들어가. 엄마랑 같이 나왔어?"

끄덕끄덕, 고갯짓을 한다. 가는 척 뒤돌아섰다가 다시 정신없는 어른들 틈으로 들어가 숨는다.


"안에 안 들어가봐도 될까요? 혹시 누가 있으면.."

다른 경찰이 다가온다. 역시 땀으로 물로 범벅이다.

"위험해. 누가 있었어도 벌써 죽었을거야. 장비도 없이 들어갔다가 큰일난다. 소방차 진짜 못 온대? 언제까지 양동이로 꺼?"

"골목이 좁아서.. 방법이 없습니다."


"큰일이네, 옆으로 다 옮겨붙을텐데.."

키가 큰 경찰이, 숨어서 자기를 올려다 보고 있는 아이를 발견한다.

"너 아직 안 갔어? 엄마 어디 계셔?"

물을 들고 뛰어다니는 동네 사람들을 본다. 아이가 찾는 척을 하다가, 슬그머니 그만둔다.


경찰이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아이와 눈 높이를 맞춘다. 잠옷 바람의 아이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 너 혹시... 엄마, 어딨는지 알아? ... 아저씨한테 말해 줄래?"

아이가 똑바로 그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손가락으로 가르킨다.

<처녀자리>

화염에 휩싸인 그 술집이다.


"엄마가 저 안에 있어?"

옆에 선 경찰이 묻는다. 아이가 끄덕거린다. 키가 큰 경찰이 벌떡 일어선다.

"데리고 있어, 내가 들어간다."

아이가 허리춤을 잡는다. 경찰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가지마요. 벌써 죽었어요."


당황한 두 사람이 아이를 내려다본다. 키가 큰 경찰이 아이를 바짝 안아 올린다. 따뜻하다. 어둠에 가렸던 얼굴이 이제야 보인다. 땀에 젖은 이마, 눈썹, 코... 명찰을 본다. 송기환... 아이가 경찰의 목을 끌어안는다.

"가지 마요. 엄마는 아까 죽었어요..."


/사건 사고 - 뉴스


앵커 - <오늘의 사건사고> 입니다. 오늘은, 새벽에 있었던, 살인과 방화입니다.


성북구 하월곡동에 위치한 집창촌, 일명 '미아리 텍사스'라고 불리우는 사창가 부근에서, 방화로 보이는 화재가 있었습니다. 다섯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발생한 불은, 약 한시간여만에 진압이 되었으나, 술집 여주인이 숨진채 발견되었고, 아들 6살 이 모군은 화재 현장 부근에서 역시 경찰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김영진 기자입니다.


기자 - 오늘 새벽, 동이 트기도 전인 이른 시간에, 홍등가 끝자락에 위치한 이 술집에서 화재가 있었습니다.

(자료화면 : 불에 타나 남은 간판 - 처녀자리)


기자 - 어제 밤부터 내린 비로, 이곳은 평소보다 손님이 많지 않았습니다. 또한, 영업이 끝난 직후인 새벽 4시경에 불길이 치솟은 것으로 보아, 면식범에 의한, 원한 관계에서 시작된 살인과 방화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찰은 당시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나, 주변을 배회하던 수상한 움직임에 대한 제보를 기다리고 있지만, 사건 장소가 사창가인만큼, 아직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 담당 경찰 / 월곡 파출소 송기환


송기환: 어떤 이유에서든지, 직접 경찰에 찾아오시기 불편하시다면, 저희가 전화로도 제보를 받습니다. 제보자의 신원이나 개인 정보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밀을 보장하고 있으니까, 많은 분들의 협조 부탁 드립니다.

기자: 아이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요, 현재 상태는 어떻습니까?"

송기환: 다친 곳 없이 건강합니다. 안전한 곳에서 보호중입니다.


기자: 아이의 아버지는요? 혐의점이 있습니까?

송기환: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이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기자: 사창가에서 6살 아이를 키웠다, 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송기환: 정확히 말씀을 드리면, 사창가와는 분리되는 경계 지점 바깥쪽에 위치했습니다. 물론 주거 시설은 아니기 때문에, 어린 아이가 살아가는데 적합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은, 아이의 어머니가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고, 저희가 조사 중인 살인과 방화, 이 두 사건과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더이상의 답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




15.3.2 용산 경찰서




보석상 할머니와 아들이 함께 앉아있다. 불안한 표정의 할머니를 아들이 다독거린다. 민규가 진술서를 작성한다.

"그래서, 최재필이 현재 어디있는지는 정말 모르시구요, 겁만 주라고 했다, 이거시죠?"

"그럼요, 우리 며느리를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고, 납치하는 척만 해서, 가게 더이상 못하겠다, 그렇게 만들려고 했었지."


"다른 가게들은 왜 침입하셨어요?"

"동네 전체가 뒤숭숭하다, 그러면 며늘애가 겁을 먹을 줄 알았지요. 근데 조금 신경쓰는 것 같다가 또 말더라고... 그래서 납치 까지 가게 된거고.."

"원래는, 다른 가게를 털면 며느님이 먼저 그만 둘 줄 알았다?"


"그렇지, 그리고, 그게 털은 것도 아니고, 깨고 도망가고, 그냥 그런 장난질만 시켰어요, 훔친거는 걔들이 알아서 들고 간거고, 내가 시킨거는 없어요.."

"손녀 겁준것도, 할머니가 시키셨어요?"

"그거는... 나는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재필이가... 애가 무서워해야 애엄마가 꿈쩍한다 그래서.."


아들이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어머니가 연세가 많으셔서, 옆에서 자꾸 뭐라고 하니까 이랬다 저랬다 끌려다니신것 같아요. 저희 정말 재산 싸움 같은거 해본적도 없구요, 지금까지 아무 일 없이 잘 살았어요. 합의가 된다면, 정말 충분히 사과드리고, 합의 하고, 어머니 좀, 용서 받으시게, 잘 좀 부탁드립니다."


"합의는 합의고.. 최재필이한테 연락해서 데리고 오세요. 양쪽 말 다 들어보고, 지금 하신 말씀중에 뭐가 하나 거짓말이 나오면, 그때는 정말 합의가 안되니까요.. 일단 저희가 피해 업주들한테 연락해서, 합의건 전달하겠습니다. 변호사 쓰시는거죠? 명함 놓고 가세요, 저쪽에 전하게요.. 그리고, 할머니, 합의 하셔도, 이거는 강력 범죄라서 간이 재판까지는 각오하셔야되요."


"그게 뭐에요?"

"정식 기소되시는 건 아니구요, 다 자백하셨기 때문에 유치장 수감이나 이런 거는 없으세요, 그런데 며느님하고도 합의를 보셔야 하고, 아직 말씀 못 드렸죠?"

"딸래미 데리고 어디 호텔에 내려갔어요, 무섭다고.."


"그러니까요, 할머니는 겁만 주려고 했는데, 당하는 사람은 많이 놀라잖아요, 이거 범죄에요."

"재판 가서, 우리 며느리가 합의 안 본다고 하면 어찌 되는거에요?"

"변호사하고 잘 얘기 하시구요, 저희는 일단 할머니 혐의는 여기까지 인걸로 하겠는데, 최재필이 잡히면 추가 될 수도 있어요, 그러면 재판에서 많이 불리하세요. 뭐 숨기시는 거 없죠?"


"없어요, 절대 없어요. 나는 그놈아 용돈 좀 줄라고, 그 쪽으로는 머리가 반짝반짝한게 좋아가지고, 그렇게 하면 가게 우리 아들 줄수 있다 그래서, 그 말만 믿었지.."

"얼마주셨어요?"

"천 준다 그랬는데, 아직 반만 주고, 반은 안 줬어요."

"나머지 돈 달라고 연락오면, 저한테 전화 주세요? 진짜로 돈 주지 말고?"

연신 인사를 하며 아들이 모시고 나간다.


잠깐 한 숨 돌린 민규가 앉은 옆자리로, 전화 한통이 온다. 당직 경찰이 받는다.

"사제총이요? 또? 어디에요? 서계동 45-33, 유기묘 총살로 보인다구요.. 알겠습니다. 이게 여러번 비슷한게 들어와요, 저희가 팀 꾸려서 곧 찰동하겠습니다. 현장 치우지 마시구요, 그대로 놔두세요, 예, 감사합니다."

"또야? 공기총?"

민규가 묻는다.


"산탄이랍니다. 새끼 낳은 고양이가 있었는데, 어미랑 새끼들이랑 박스에 넣고 다 죽였대요."

"서울역 부근이지?"

"예, 계속 그 주변이에요. 거기 노숙자들 많은데, 위험하지 않을까요?"

"동물 죽이는 것들이 사람한테도 몹쓸 짓 해. 근데 이상하지. 딱 뻔한 동네에서만 그러네, 멀리 안가고.."

"그 부근에 원한이 있나요? 원수진 사람을 찾나?"

"아유, 연말에는 진짜.. 다들 미쳐가지고.. 보고서 올려, 누가 맡냐 아무도 없는데.. 왜 한밤중에 총을 쏴..."


"뭔데? 사건 있어? 나 있잖아.."

계속되는 중국인 보이스 피싱 취조에 기진맥진한 시환이 걸어나온다.

"사건 맡으실 몰골이 아닌 듯 하옵니다..?"

"그치? 내가 봐도 그래, 아우, 미치겠다.. 사건도 힘든데 몇시간째 중국어까지 하려니까... 내가 지금 중국인지 한국인지.."

"류시환이!"


종태가 다가온다. 트레이드 마크인 그 야비한 웃음을 짓는다.

"좋은 소식이 있다! 내가 오늘 너 밥 사줄께! 진짜 좋지?"

"... 나쁜 소식은요?"

"너 감봉 2개월."

"에이씨, 그럴거면 차라리 정직을 주지, 피곤한데..."


"경위님 왜 감봉이에요? 누구 쳤어요?"

"에이, 쉿!"

민규가 막는다. 다들 못 들은 척, 일하는 척 고개를 돌린다.

"어, 얘 여자를 잘못 만나서.."

"그만해요? 밥 사줘요, 돈 없어요.. 아, 차 할부도 내야 되는데.."


"내가 그거까지는 못 내주겠고, 뭐 시킬까?""

"... 아무거나.. 비싼거."

시환이 터덜터덜 윗층으로 올라간다.

"속상하냐? 이정도에서 끝난게 다행이지 뭘.. 아빠한테 혼났지?"

"조금요. 차 할부금 내달라 그러면 더 혼나겠죠. 카드값도 있는데.."


"크크크.. 혼 한번 나고, 돈 내주면 좋잖아. 참어."

시환이 슬며시 종태를 보며 웃는다.

"삼촌이 우리 아빠였으면 내줄거에요?"

"택도 없다. 다 큰 놈이 사고치고 온것도 까무라칠 일인데 할부금까지?"

"그래도 만약에 삼촌이 우리 아빠였으면, 조금 재밌었을것 같아요."


"원래 남의 아빠가 더 좋아보이는 거야. 엄마도 남의 엄마, 형누나도 남의 게 더 좋아 보여. 내 여자만 빼고, 남의 게 다 좋단다."

"그렇게 좋아했는데, 뺏기고나서 마음이 괜찮았어요?"

"누구? 첫사랑? 야, 괜찮으니까 아직 살아있지. 오래전이잖아. 저녁 뭐 먹을래? 너무 늦어서 완전 야식이다."

"갑자기 문어가 먹고싶다.. 삼촌 문어 좋아해요?"

"지금 문어를 먹자고? 한군데 있는데, 거긴 배달 안돼. 바뻐, 배달 되는 거 먹어."


시환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가 돌아서서 종태를 본다.

"우리 엄마 별명이요, 문어 였어요. 술 취하면 길바닥에 딱 붙어서 안 떨어진다고.. 절대 노원구 오연수가 아니고.. 삼촌 눈에만 오연수로 보였나봐. 뭐야, 눈이 그렇게 나쁜데 경찰 어떻게 됐어?"

종태가 할말을 잊고, 그저 웃는다. 시환이 소리친다.

"비싼 거 먹어야지~~ 오늘 야식은, 족발, 완전 큰거로...! 콜?"


15.3.3 안면도 오션뷰 호텔




호텔 로비 소파에서 잠이 든 두 사람. 시끄러운 소리에 깬다. 119가 왔다. 들것을 들고 뛴다. 드디어 왔구나... 정신을 차리며 따라 일어난다. 역시나, 스위트룸이 아니라 3층으로 간다. 한발자국 떨어져 지켜본다. 문을 두드리자, 남자가 구급대원을 맞는다.

"감사합니다, 근데 벌써 다 나왔어요. 여기 손님 중에 조산사이신 분에 계셔서, 그분이 다 해주셨습니다."


구급대원 뒤로 붙어서 슬쩍 방으로 따라 들어간다. 난데없이 임부복을 꺼내입고 침대에 누워있는 고혜진.. 화장기 없는 맨 얼굴로 머리를 흐뜨러뜨리고 갓 낳은 아이를 안고 있다. 방을 둘러본다. 아까와는 달리, 어수선하다. 화장실 한쪽에 피묻은 수건들이 쌓여있고, 물청소를 한 것처럼 화장실이 젖어있다.

"애 낳기전에 바다 본다고 무리해서 왔더니, 결국 여기서 낳았어요.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상태는요?"

"둘 다 좋아요, 지금 부모님들이 오고 계셔서요, 도착하시면 같이 근처 병원으로 가서 진료 받으려구요."


구급대원이 아이를 살핀다. 닦아낸 상태도 좋고, 탯줄도 잘 처리했다. 체온, 맥박 다 정상이다. 다시 수건에 감아 산모에게 준다.

"산모는 괜찮으세요? 어지럽거나, 아프거나.."

"생각보다 쉽게 낳았어요. 진통 오는 거 같다가 바로 애기가... 잘 안 믿겨져요, 티비에서 보면 되게 힘들어하던데.."


체온을 잰다. 산모 이마의 식은 땀 자국을 본다. 여전히 흥분한 모습으로 침착하게 묻는다.

"근데 애기 젖은 언제 먹여요? 안아봤는데 아직 안 물어요.."

"아직 젖도 안 돌고, 아가도 준비가 안되었어요. 태반이랑 다 나온거에요?"

"예, 조산사 분이.. 그런 건 따로 처리 하셔야 된다고.. 그리고 이거, 출생 증명서라고.. 병원에서 낳지 않아서 출생신고하려면 이게 필요할거라고 하시던데.."


남자가 서류를 내민다. 진우가 목을 쭉 빼고 들여다 본다. 잘 안 보인다..

"이거 맞아요, 내일 동사무소 가셔서 이거 보여주시구요, 근데 정말 병원 안 가보셔도 되겠어요?"

"이 사람 이모님이 서울에 병원을 하세요, 통화했는데, 별 문제 없었으면 차라리 춥지않게 푹 쉬고 내일 올라오라고 하셔서요.."

"죄송한데, 저희가 잠깐 아래 좀 확인하겠습니다. 방금 출산 하신 분 같지가 않아서.."

구급대원이 허락을 구한다. 여자가 살짝 당황하며 이불을 잡는다.

"굳이.. 다 낳았는데.."

"살짝만요, 잠깐만 확인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불 끝을 조금 들고 임부복 안을 확인한다. 성인용 기저귀를 입었다.


"예, 됐습니다. 자주 갈아주시구요, 출혈 심하시면 병원 얼른 가세요. 저희도 해야 할 절차가 있어서요, 오늘 출동 사실만 확인하고 돌아가겠습니다."

일지를 쓴다. 더이상의 도움이 필요없다는 확인도 받는다. 조산사가 써 줬다는 서류를 핸드폰으로 사진 찍고 남자에게 돌려준다.


"아이 받아주신 조산사 분은 어디가셨어요?"

"태반이랑 피 같은거 처리하는거 물어보신다고, 잠깐 아래층에 가신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저희가 내려가서 만나겠습니다. 쉬십시오, 축하드립니다."


문을 닫고 나오는 구급대원들을 진우가 불러 세운다.

"죄송한데, 봐주셔야 할 산모가 따로 있습니다. 윗층입니다..."

경찰 뱃지를 꺼내 걸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아까 사진 찍으신 서류요, 저희한테 보내주실 수 있죠?"

문자로 받은 출생 증명서를 살핀다. 산모 고혜진, 조산사 지수희....?? 자격증 번호까지 꼼꼼히 기록했다.


스위트룸에서 진짜 산모와 있던 원장을 체포한다. 지율이 수갑을 채운다.

"2021년 12월 18일,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위반, 그에대한 불법 행위 유도 및 알선으로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변명의 기회가 있고,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으며, 체포부적심을 법원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내가 뭘요? 다들 하잖아요?"


"아시잖아요, 대한민국은 영아 매매, 대리 출산 알선 다 불법입니다."

"불법인데, 우리는 자궁만 빌려줬어요. 난자까지 제공하는게 불법이지, 자궁만 잠깐 쓰는거는 처벌 안하잖아요."

"'우리는' 이 아니죠, 이 산모 자궁만 빌려줬잖아요, 그것도 본인이 인지도 못하는 상태로요. 산모가 자신의 아이가 팔려간다는 것을 동의한 적이 없어요, 맞죠?"


원장이 부정한다.

"그걸 동의 할 필요가 뭐가 있어? 자기 아이도 아니잖아요, 수정란 받아서 착상만 했다니까?"

"산모의 허락없이 아이를 거래하셨으니, 영유아 납치 및 인신매매에도 해당됩니다."

"이봐요, 동남아 가봐요, 한국에서 원정와서 4, 5천 주고 낳아서 데려가요. 그거 아끼고 여기서 해주는데 고마운 일이지? 우리나라에 불임 부부가 얼마나 많은 줄 알아요? 20만이야, 20만!"


"건당 천만 받아도 엄청나네, 그죠? 대리 출산에 금전거래까지 알선하는 브로커는 3년 이하의 징역입니다. 변호사 잘 쓰세요, 한두번이 아니던데.."

정 선생이 들어오다가 경찰을 보고 멈춰선다. 진우가 다가간다. 눈치 챈 듯, 길게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가린다.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위반, 사문서 위조와 무허가 의료행위, 등으로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변명의 기회가 있고,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으며, 체포부적심을 법원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지수희는 누굽니까? 공범입니까? 사례금을 주고 쓰는지, 아니면 그냥 아는 이름 막 갖다 쓰는건가요?"


호텔 입구에 대기하고 있는 경찰차에 나누어 탑승시킨다. 고혜진 부부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원장을 쳐다본다. 뻔뻔하게 고개를 바짝 든 원장이 정 선생에게 큰 소리 친다.

"걱정하지마, 자기 새끼 낳겠다는데 왜 나라가 막아? 웃기고 있어.."

진우가 한마디 한다.


"그, 자기 새끼 말인데요, 남동생분 서류 정리나 빨리 하시지요. 애 유치원 가기전에 해달라잖아요, 얘기 못 들었어요? 남들 다 하는 자기 새끼를, 정작 본인들은 안 챙기네.."

멍한 얼굴로 진우를 보는 정 선생.


"애 아빠 되시는 분이 다 불었어요. 두 분이 사실혼 관계고, 아내 분은 대리모해서 돈 벌려고 데려왔다고.. 본성은 좋은 분이신가봐요, 숨기는 거 없이 바로 다 말씀하시네요. 누나랑 다르게.. 아우, 그 빤한 거짓말을 듣자고 이 시간까지.."

두대의 경찰차가 출발한다. 먼저 떠난 구급차가 걱정되지만, 모든 건 내일로 미룬다.. 배가 고프다.




15.3.4 식당




기사 식당을 찾았다. 새벽 3시... 된장 찌개를 시킨다. 그릇에 건더기만 건져서 종류별로 담는다.

"이건 감자, 양파, 여기는 호박.. 보이지? 두부는 보기 힘들면 잘게 부셔줄까?"

피곤으로 입맛을 잃은 지율이 물끄러미 그릇을 들여다 본다.

"아는 거니까 먹을 수 있지? 진작에 이렇게 할 걸, 그 생각을 못했어. 맨날 사이다만 먹는거 보다 나은데."


지율이 수저를 든다. 정말 오랜만에, 찌개를 먹는다.. 밑반찬으로 나온 마늘 쫑을 몇개 건져내어 밥에 얹어준다. 갑자기 키득거리며 웃는다.

"야, 이것도.. 빨간 양념 아니니까 먹어봐. 뭔지 알어? 마늘쫑이야, 마늘 자라는 줄기... 너는 곰도 아닌게, 맨손으로 굴도 잘 파잖아. 이거 많이 먹고, 얼른 사람 좀 되자. 인간성 좋은 사람.."


"단군 신화 안 좋아해. 그게 뭐야, 남들은 로마 신화, 그리스 신화, 얼마나 멋있는데, 우리는 겨우 마늘 먹는 곰탱이야. 좀 예쁜거 하면 안돼나?"

"곰탱이가 예쁜 여자 되잖아. 뭘 더 이뻐야돼? 뭐가 좋아? 사슴? 토끼? 걔들은 마늘하고 안어울려."

"그러면 이쁜 토끼가, 마늘 말고, 젤리 같은 거, 아까 호텔 매점에서 사온 그거 있잖아, 컵에 든 젤리, 그거 백일동안 먹고 사람되면 되겠다."

"알았어, 젤리 많이 사줄께, 많이 먹고 사람 좀 되라. 어떤때보면 너 너무 냉정해서 소름.."


지율이 본다.

"소름이 아니고.. 섭섭해, 서운하다고. 나한테도 좀.. 가까웠으면 좋겠어."

"가깝잖아. 더 가까워야돼?"

"그런거, 그런 말... 에이구, 됐다. 널 데리고 무슨 말을 하겠냐. 얼른 먹고 잠이나 자. 아버지 상 치르자마자 생난리야.."

한입한입, 진우가 담아준 건더기를 먹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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