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14화 진실게임 5

무덤까지 가져간다

by 신소운

14.5.1 장례식장 - 시환 부모님



시환이 술잔을 몇개 더 꺼낸다. 너무 많이 울어 눈이 새빨개진 시환 어머니가 옆에 앉은 지율을 연신 쓰다듬는다. 종태가 술을 따른다. 형호가 받는다.

"형수는 맨정신에 왜 그렇게 울어요? 애 닳아요, 그만 만져요. 운전하시니까 안 드립니다."

"이 사람 인제, 술 먹을려고 나랑 다녀요. 이런 날은 나 좀 마시게 하지."

"몸도 찬 사람이 술은 왜 마셔? 이런날은 더 취해."


"그래서 대신 마셔주는거야? 별 핑계를 다 대."

"한잔 해, 그럼. 운전 내가 할께."

"됐어, 난 그냥 이렇게 유리만 보고 있을거야. 자꾸 보니까 엄마 많이 닮았어, 구석구석.."

종태가 진우와 시환에게 한잔씩 따라주며 이죽거린다.

"뭐가 닮아요?? 형수님이 얼마나 미인이었는데? 이 자식은 형님 닮았지, 키만 삐쭉해가지고.."


"상 중이라 이러고 있어서 그렇지, 꾸며봐요, 얼마나 이쁜가.. 종태씨는 아직도 그렇게 보는 눈이 없어."

"하긴 내가, 없기는 없어요. 얘네들이 나 아는체 안하고 딱 숨기니까, 전혀 모르겠더라고. 진짜 길에서 봤으면 몰라본다는 말이 맞아."

"모르지. 열살때보고 어떻게 알아봐? 시환이는 그래도 어렸을때 얼굴이 많이 남았는데, 남자애라서.. 잘봐요, 웃는거 똑같애요."


종태가 시환을 본다.. 많이 컸다. 피식 웃는다.

"난 저 놈.. 맨날 우는 거만 봐서.. 커서 뭐가 될까 참 걱정했는데."

"또 나야... 맨날 나한테만.. 아참, 이거... 선배 핸드폰 가져왔어요. 서초서에서 현장 나갔다가 찾았다고, 합해서 4대를 주웠는데, 이거는 선배꺼고, 나머지는 포렌직 들어가요. 한 3일 예상하는데, 범인들꺼면 좋고, 아니면 그냥 동네 사람들 거고.."


전화기를 받아든다. 뭔가 생각난듯, 시환 어머니쪽으로 몸을 돌린다.

"재미있는거 보여드릴까요? 예전에 아버지가 이매일로 보내줬던게 몇개 있는데.. 여기있다..."

영상 하나를 튼다.


/영상- 음식을 차려놓고 생일 케익을 꺼내는 여자 - 지율의 엄마다. 영상을 찍고 있는 다른 여자의 목소리...

/언니, 뭘 이렇게 많이 차렸어요, 미안하게? 맨날 애만 맡겨놓고.. 밥 얻어먹고../


시환 어머니가 금새 눈물을 흘린다. 형호도 몸을 기울여 들여다본다.

"이게 언제적이야.. 맞아, 언니가 내 생일날... 이거봐, 언니 집에서.. 애들 정말 어렸을때.. 어머, 유리다, 유리! 세상에, 몇 살때야..?"


/영상 - 머리를 단정히 빗은 어린 유리가 리코더를 들고 나와 생일 노래를 연주한다. 뒤에 서서 노래하는 시율과 유리 엄마. 갑자기 카메라가 옆으로 돌아가고 머리가 까치집이 된 조그만 남자 아이가 팔을 벌리고 걸어온다. 반쯤 감긴 눈에 눈꼽이 그대로 있다.

/환이 일어났어? 안그래도 깨울라 그랬는데.. 얘는 지네 집 이야, 맨날 여기서 이렇게../

/앉아, 케익 먹자. 환이야, 엄마 생일 축하해요, 했어?/

/


상가집인것도 잊고, 꼬꼬마 시절 시환의 모습에 웃음이 터진다. 진우가 핸드폰을 받아 다시 돌려보며 놀린다.

"몇살이냐, 너.."

"몰라, 유치원 쯤..??"

"와, 삐적 마른거는 똑같네, 눈이랑.. 아닌가? 너라 그러니까 그렇게 보이지, 그냥 동네 애들이네.. 지율이도 잘 모르겠고."


"그럼, 직접 키운거 아니면 몰라. 맨날 보던 사람이나 옛날 얼굴 보인다 그러지, 20년만에 저렇게 커서 나타나면 누가 알아봐? 당신도 아들 기억 안나지? 요만하던거?"

"왜 안나, 다 기억 나지. 나 어렸을때 사진이랑 많이 닮았잖아."

"그죠? 시환이도 가만보면 형님 닮았어, 지 엄마 안닮고.. 형수 진짜 이뻤는데.."

"이쁘기는, 네 눈에나 그랬지.."


진우가 이것저것 다른 영상을 돌려보다 멈춘다. 송창율이 그대로 베껴 똑같이 꾸몄다는, 지율 어머님의 방이다. 레이스 커텐, 밝은 톤 벽지, 하얀 탁자, 둥근 거울.. 비슷하다. 어린 유리가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묻는다.

/아빠 벌써 나갔어? 오늘 어디갔어?/

/어제 일하러 갔지. 아직 안 들어오셨어./

/나 학교 갔다 오면 집에 있을거야?/

/그러면 좋은데, 바쁘시면 또 없을지도 모르지?/


/언제 와? 오늘은 아빠 올때까지 기다려도 돼?/

/너무 늦으면 안돼고, 9시까지만/

/9시 반? 안 놀고 책 읽을께/

/와아, 송유리, 벌써부터 엄마하고 협상이냐? 잘하는데?/

남자 아이 목소리... 지율이 들여다 본다. 화면을 보여준다.


"작은 오빠가 찍는 거야?"

"응."

"그 방이네..? 여기 2층이랑 똑같은 거.."

전화기를 가져간다. 뒤로 돌려 다시 한번 방을 살핀다. 영상을 끄고 주머니에 넣는다. 못마땅하다..




14.5.2 안면도 오션뷰 호텔




쌍쌍이, 혹은 가족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연말을 맞아 더 화려해진 로비에 라이브 음악이 흐른다. 노신사의 연주가 끝나고, 반짝거리는 금빛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피아노 앞에 앉는다. 검정 앞치마를 입은 카페 직원들이 분주하다. 잘 차려입은 고혜진이 체크인을 마치고 잠깐 로비에 앉아 모처럼의 휴식을 즐긴다. 문자를 보낸다.


/시작했어요?/

/아직인데 2-3일이면 될 것 같아요. 배가 많이 내려갔어요. 도착하셨어요?/

/체크인 했어요. 3층에 있습니다. 연락주세요/

/알겠습니다/


한 남자가 가방을 들고 들어와 혜진 옆에 앉는다. 옆의 소파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본다. 남의 가정이지만,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는 두 사람 앞에 물 두잔을 가져온다. 웨이터에게 무언가 주문하고, 남자의 팔에 기대어 아이에게 손을 흔든다. 둥글게 달이 떴다. 겨울 밤이 깊어간다.





14.5.3 장례식장 - 다음날 아침


마루에서 자고 있는 진우와 시환. 진우의 전화가 울린다. 민규다.

"주노 귀금속 할머니, 수요일 오전 중에 오시기로 했습니다."

"왜 이렇게 늦어, 다 된걸? 그냥 집어 넣어."

"연세도 있으시고, 가족간의 일이니까 말로 잘 풀어보라고 했습니다. 그 전에라도 오셔서 자수를 하시던가.."


"자수는 무슨, 우리가 다 잡은 건데..?"

"납치범을 아직 못 찾았잖아요, 사주 증거도 없고.. 통화 기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야, 그래도 정황이라는 게 있고, 집안 일 뿐 아니라 다른 가게들도 부수고 다녔잖아, 그거 다 어쩔려고? 다 합의 한대?"

"그게 최재필이 짓이라는 것도 증명해야돼요."


"최근에 불체자 애들하고 통화 엄청 했다며? 걔들이 오토바이타고 다니면서 깨부수고.. 다 잡아 넣에, 한방에... 최재필하고 할머니하고는 어떻게 아는 사이야?"

"최재필 아버지가 그 공장에서 오래 일하셨답니다. 어려서부터 사고치고 그래서, 주노 귀금속 전 사장님이 많이 도와주셨다고 합니다."

"그래? 집안 허드렛 일 정도는 부탁 하는 사이겠네. 거기 폐가 있던 거, 거기 살았던 거는 맞아?"


"예. 그래서 그 집도 수색했는데요, 특이한건 없고, 가끔 왔다갔다, 자고 나간 흔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수거한 머리카락이랑 음식물 쓰레기 대조하면서, 다른 범죄랑 관련된 게 있는지 조사 중입니다."

"차를 얼른 찾아야지, 최재필이랑.. 차 주인은 확실히 관련없는 거지?"

"없습니다. 교도소 가기 전에 잠깐 만났었는데, 돈 떼어먹고, 그 공장도 자기꺼라고 사기쳤답니다."

"양아치네. 잘하면 영영 못찾겠다."


"집 부근에 감시 카테라 두대 달아놨습니다. 돈 떨어지고 날씨 좀 풀리면 들어올까 싶어서요."

"잘했어. 그래도, 갈데 많은 젊은 애보다, 할머니가 쉬워. 모셔다가 유도심문해. 아, 그래도 그렇지, 증거 다 잡았는데 자수를 권하냐?"

"인명피해도 없고, 그냥 기물 파손에 협박, 그것도 사주만 했지 직접하신게 아니라, 별로 형 안나와요."

"원래 못난 것들만 죄다 들어가. 그래서 사람이 돈 있고, 배워야돼. 손 안대고 코 풀잖아. 알았어, 수고."

"오늘은 안 오십니끼?"

"몰라, 저녁에나 갈까.. 여기 발인."

"벌써요.. 맞다, 화장터 예약이 좀 빨랐죠? 지율 선배님 마음이 안 좋겠네요."

"안 좋기는... 이 집 식구들은 머리만 있고, 마음같은 건 없나봐. 눈물 한방울을 못 봤다."

"속은 안그러실거에요. 위로 잘 해드리세요."



시환이 꼼지락거린다. 전화를 끊는다. 돌아눕는데 바지 주머니에서 녹음기가 쑤욱 흘러내린다. 진우가 집어들고 몰래 켜본다... 시환이 눈치채고 번쩍 눈을 뜬다. 진우를 발견하고, 재빨리 주위를 돌아본다. 아무도 없다.. 다시 눕는다.

"줘, 내 꺼야."

"이거 뭐야? 자는 애가 이런 걸 왜 가지고 있어?"

시환이 녹음기를 받아 남은 시간을 확인한다.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조용히 속삭인다.

"선배 녹음 따줄려 그러는데 별게 없어."


"누구? 송 박사?"

방문이 열린다. 머리를 바짝 올려 묶은 지율이 자켓을 들고 나온다. 진우가 불러 앉힌다. 소근소근 목소리를 낮춘다.

"얘 녹음시켰어?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별 기대는 안해. 그냥.. 마지막 기회인것 같아서... 송창률하고 하루종일, 이렇게 같이 있을 일이 없잖아."

"너 진짜, 언빌리버블이다. 언제부터?"


"첫날부터.. 선배가 나 상주옷 입혀주면서, 왠만하면 옆에 딱 붙어있으라고 그랬지.."

"일할때는 못했겠네? 나한테라도 얘기하지?"

"종태 삼촌 있잖아."

"취한거 아니었어?"

"취한 것 같으니까 사람들이 눈치 못 챘겠지? 일로갔다, 절로갔다.. 상주들 옆에 드러누워서 자는 척도 하고.."

"그럼 결론은, 나만 쏙 빼고 한거네?"


"눈치 빠른 사람이야. 형 하나쯤은 진짜 모르고 있어야 의심을 안 받지."

"그래서 너 자꾸 나한테 시비걸고 삐지고, 형들 옆에 가있고 그랬구나? 밥도 그쪽 가서 먹고.."

"아, 근데 그 형들 이상해. 하루 종일 숨만 쉬고.. 뭔 말을 안 해. 시끄러워도 강진우가 낫지... 나 잘했지?"

시환이 헤벌쭉 웃는다.

"세수나 해. 너 딱 어제 그 비디오 나온 애 같애. 꼬질꼬질.. 강지율! 넌 어떻게 나를 빼냐? 섭섭한데?"


"별거 없었어. 진짜로 말을 안해."

지율이 씻는다며 밖으로 간다. 다시 누워 뒹구는 시환.. 이쪽저쪽 스트레칭을 한다.

"얘들하고 못 놀겠네. 류시환, 또 뭐야? 내가 모르는거? 다 말해. 더 있지?"

돌돌 감긴 이불 밖으로 눈만 내놓은 시환이 싱긋 웃는다.

"... 이석호 좋아."

"갑자기...? ... 뭐야, 잠깐... 석호형도 같이 했어? 너네, 진짜 나만 빼고 한거야..?? 형 어디갔어?"


"송 박사님네 가서 자고 왔잖아. 발인 들어갔을걸? 입관이라 그러나?"

"지율이는 안가고? 딸인데, 인사 드려야지?"

"선배는 아까 먼저 갔다 왔어. 같이 있기 싫다고.. 그렇게 해달라 그랬대."

"가시는 날까지 싸우냐.. 가짜로라도 친한 척 좀 하지.. 아유, 쟤는 진짜... 잠깐, 얘 또 먼저 가서 뭐 도청기라도 달아놓은 거 아냐?"


시환이 슬쩍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진우가 홱 낚아챈다.

"야, 너 설마..?"

"팀장님이 가져오라 그런거야. 나는 그냥, 갖다 준거 밖에 없어."

"이 사람들이 진짜.. 야 불법도청에 녹취에, 왜들 그래?"

"재판갈 거 아닌데 뭐 어때.. 그냥 선배가 궁금해 하니까.."


진우가 벌떡 일어나 지율을 찾는다. 씻으러 간다더니, 화장실이 텅 비어있다. 잠바를 입으며 밖으로 나간다. 절뚝절뚝.. 목발을 잊었다. 그냥 나간다. 멀찌기에 차를 세우고, 지율이 혼자 앉아있다. 귀에 해드셋을 썼다. 진우도 조용히 조수석에 앉아 남은 이어폰을 꽂는다..


/ 입관실


장례 지도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 오늘 우리도 같은 예를 갖추어 거룩한 성사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고인을 관에 넣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희망을 가지고...

/


지율을 바라본다. 아무 표정없이, 창문에 기대고 있다. 손이라도 잡아줄까 하다가, 단단히 팔짱을 끼고 있어 놔두기로 한다. 기도를 마친 장례 지도사가 두 사람에게 이야기 한다.


/두 아드님들의 시간입니다. 고인의 귀는 삼일동안 열려있습니다. 오늘이 마직막 날이고, 이제 관을 닫으면 귀도 닫히십니다. 그 전에 마지막으로 하셔야 하실 말씀을 들려주세요. 울지 마시구요. 아드님이 우시면, 우는 모습을 가슴에 안고 가셔서 한으로 남습니다. 행복하고 기쁘게, 아름답게 사셨다 기억하시도록, 나를 이 세상에 데려와 살게 해 주신 아버지께, 마지막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아버님이 말씀을 못하시니, 대신 아드님들의 목소리라도 한번 더 듣고 가시도록, 잠시 시간을 드립니다./


적막이 흐른다. 지도사가 나갔는지, 한참의 고요함이 지속된다. 누군가 울기 시작한다. 점점 격해져 흐느낀다. 이석호다... 조수석에 앉은 진우의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손끝으로 찍어낸다.

/... 울지 말라잖아, 다 들으신다고../

창률의 목소리다. 그럴 줄 알았다. 절대 울지 않을 인간이다. 쉽게 진정되지 않는 석호가 서럽게 운다... 진우는 석호의 담임이었다던 민원인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 씻으러 들어갔는데, 욕실에서 울음 소리가 나더라고... 처음이었어요, 그 녀석이 우는 거, 그것도 그렇게 서럽게 우는거.. 그래서 뭔가 잘못됬구나, 생각했지../


지율 몰래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다시 소리에 집중한다. 한참을 울고나서야 간신히 마음을 추스리고, 힘들게 한마디씩 이어가는 석호..

/아버지, 죄송해요.. 차마 말씀을 못 드렸어요. 제가... 저에요, 제가 그날, 문을 안 잠궜어요. 밤에 할아버지가 데리러 와서... 잠깐 집에 가는 척 했다가, 잠드시면 몰래 다시 올려고.. 전에도 몇번 그랬었으니까, 그날도 괜찮을 줄 알았어요... 아줌마 안 깨우고 혼자 조용히 들어올려고.../


뭐...?? 흐느끼는 소리에 다음 말이 잘 들리 않는다. 지율을 본다. 반응이 없다. 창에 머리를 기대고 묵묵히 듣고만 있다. 창률의 목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이어폰 속에 울리는 석호의 울음소리.. 잠시 후, 장례 지도사가 다시 들어온다.

/인사 말씀 다 드리셨지요? 이제 관을 닫습니다. 아드님들께서 그쪽을 잡아주시구요, 위로 살짝 올립니다. 뚜껑 닫겠습니다.../


".. 아버지.."

창률이 부른다.. 귀를 바짝 세우는 지율..진우도 덩달아 긴장한다..

"...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옆에서 흐느끼는 석호, 쿵.. 쿵.. 뚜껑을 닫고 마무리하는 소리..


지율이 해드셋을 벗는다.

"나쁜 새끼, 끝까지 한마디를 안 하네.."

"할 얘기가 없나부지."

"왜 없어? 숨기는 거라니까. 분명 관련이 있어."


"관련은 있는데, 아버님한테 말씀드릴 필요가 없다고... 이미 다 알고 계실 수도 있잖아. 석호 형은 아버님이 모르셨으니까, 가시기 전에 털어놓는 거고.."

지율이 생각에 잠긴다. 진우가 조심스레 묻는다.

"석호 형이 말한거는, 괜찮아? 너 알고 있었어?"


지율이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내 틀어준다. 석호 목소리다.

/... 형, 제가 유리랑 형님한테, 그리고 아버지한테도 꼭 사죄드려야 할 게 있는데 .. 말을 못했어요, 지금까지.. 돌아가시기 전에 하려 그랬는데../

/나한테 니가 왜 사죄를 해? 야, 사죄라는 말도 이상하다. 뭔데 그래?/


/그날, 시율이랑 유리랑 다락방에 같이 있었어요. 다음날이 유리 생일이라서 12시 지나고 축하해줄려 그랬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데리러 오셨어요. 잠깐 갔다가, 주무시면 다시 나올려고.. 시율이한테 금방 다녀온다고 하고 갔는데, 연말이라 친척들이 오신거에요. 좀 놀다보니 늦어져서, 깜박하고 그냥 잠이 들었어요.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시율이한테 메세지가 와있고.. 유리 잘 부탁 한다고.. 그때까지 무슨 일인지 몰랐는데../


/.. 석호야, 너 우는거야? 왜그래? 취했어?/

/새벽에 다시 올려고, 그때 제가... 문을 안 잠그고 그냥 갔어요. 아줌마 주무시는데 깨울가봐, 혼자 조용히 들어올려고 그냥 살짝 닫아놓고... 그래서 그 놈들이 들어와서 아줌마랑 시율이랑.. 죄송해요, 형님.. 제가.. 문을 열어놔서... 저 때문에../


석호의 울음 소리... 아무말 없는 창률.. 진우가 녹음기를 끈다.

"이건 언제야?"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 이석호가 어제, 송창률네 집으로 가면서 그러더라. 마지막으로 송 박사하고 술 한잔 한다고, 할말이 있는데, 나한테 직접 못하겠으니까, 녹음 해서 준다고.. 새벽에 잠깐 보자고.."

"석호형이 녹음 한거야?"

"응, 거기 다시 틀어봐. 잘 들어..."


녹음기를 다시 튼다. 울고 있는 석호, 잠시 후 위로의 말을 전하는 창률..

"너 였구나.. 그럼 문을 누가, 왜 열었나, 그건 풀렸네... 울지마, 그 나이 때, 누구나 한번씩 하잖아, 밤에 어른들 몰래 다니는거.. 실수야."


"그때, 정말 찾아뵙고 말씀 드리려고 했어요. 저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죄송하다고.. 근데 저희 부모님이.. 다 숨기고, 대신 돈으로.. 유리 미국도 그래서 보냈어요, 제가 자꾸 자책하고 신경쓰고.. 유리 만난다고 병원 찾아다니고 하니까, 아예 못 만나게 하느라고.."

"잘 하신거야. 네 잘못도 아니고."


"죄송합니다.. 아버지 살아계실때 말씀 드렸어야 했는데.."

"유리 있잖아, 나중에 기회봐서 얘기하던지.. 근데 사실, 너만 괜찮으면, 그냥 이대로 아무 말 안해도 될것 같애. 넌 그때 어렸고, 그게 엄청 큰 잘못 같았겠지만, 지금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큰 일도 아니고... 아버지는 용서하셔. 유리도 신경 안 쓸거고... 덮어도 돼, 나같은 놈도 봐주셨는데 뭘.. 나는 빚을 갚을 방법도 없어..."


유리가 녹음기를 끈다.

"다음은 그냥 이석호 우는 거야, 취해서.. 별 내용 없어. 근데 마지막 말 들었어? 나같은 놈도 봐주셨다, 빚을 갚을 방법이 없다.. 그리고 시환씨가 녹음한 것 중에, 송창률이 어렸을때 아버지한테, 자기 책임지라 그랬대, 입양하라고.. 분명히 아버지랑 둘이 뭔가 있어, 그렇지?"

"있는거 같긴 한데, 아버지는 가셨고, 송창률은 입을 안 열고.."


"언제까지 안열어? 왜 안열어? 죽을때까지 비밀이다, 그거야? 무덤까지 가져가면 상이라도 줘? 짜증나.."

"그래서 석호형은, 자진해서 녹음하고, 지금 도청되는 것도 알아?"

"도청기 지가 차고 들어갔어. 시킨거 아니야."

"갚을 빚이 있다는게 그거였구나. 자기가 문을 열어놔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큰 빚이네.. 넌, 괜찮아?"

"그게 뭐.. 직접 사인도, 원인제공도 아니잖아. 죽인 놈이 따로 있는데.."

"야, 좀.. 그렇게 남의 사건 보듯이 말하지 말고.. 너는, 마음이 괜찮냐고."

"그게 마음이야. 애가 잠깐 실수했고, 그 놈들은 왠떡이냐 했고.. 그게 다 지 뭐."

"나는 가끔.. 네가 로보트 같애. 프로그램 아주 잘해놓은, 최신형 경찰 로봇.."


진우가 덧붙인다.

"그럼 석호형은.. 용서하는 건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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