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죽었니 살았니 2
죽어남은 자와 살아남은 자
11.2.1 병원
리화와 병원 복도에 앉아있는 지율. 노트북을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없다. 지루해지는 리화가 슬그머니 일어나 주변을 둘러본다. 긴 다리를 풀어주며 복도를 걷는다. 한 진료실의 문이 열리고 거의 만삭에 가까워보이는 임산부가 나온다. 뒤따라 나오는 나이든 여자.. 낯이 익다...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던 두 여자가 이들을 부른다. 나이든 여자가 다른 곳으로 걸어가는 임산부를 불러 세워, 그들 앞으로 데려간다. 초음파 사진을 구경하며 활짝 웃는다. 가족 일까...
"강지율님?"
조무사가 이름을 부른다. 지율이 노트북을 덮고 일어난다. 리화가 빠른 걸음으로 되돌아간다.
"혼자 들어갈께요, 괜찮아요. 그냥 검진인데요, 뭘."
"알겠습니다. 대기하겠습니다."
지율을 들여보내고 그들이 있던 쪽을 돌아본다. 보이지 않는다... 로비가 내려다보이는 복도까지 걸어가보지만,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문자가 온다. 종태다.
/끝났냐/
/이제 들어가셨습니다. 복도에서 대기 중 입니다/
/오케이 수고/
시계를 본다. 평일 낮에 병원을 간다는 건 참 빠듯하다. 점심시간을 이렇게 보낸다.
초음파를 받는 지율. 의사가 묻는다.
"출혈이 좀 있었네요, 많이 움직이셨나봐요? 염증약 복용 하셨어요?"
아... 약..이 있었다..
"처음에 여기서 주셨을때 먹었구요, 바빠서 깜빡.. 사무실에 있습니다. 지금 가서 먹어도 되겠죠? "
"예, 그러세요. 패치 하나 새 거 붙여드리구요, 24시간 후에 떼세요. 특별히 통증 있거나, 어지럽다거나 하지는 않죠?"
"괜찮습니다."
"성관계는 아직 안하시는게 좋구요, 워낙 종양이 컸던 자리는, 상처가 조금 덜 아물었어요. 감염될수 있으니까, 한 2주 정도는 피하세요. 그것 외엔, 초음파상으로는 깨끗하고 좋아보여요. 4주 후에 오시는데, 그 중에라도 이상 있으시면 참지 말고 바로 오셔야되요."
"감사합니다.."
옷을 추스리고 복도로 나오는 지율, 문 앞에 리화가 서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간다. 유난히 외상 환자들에게 시선이 멈춘다. 왜 다쳤을까, 어디서 다쳤을까, 누구때문에 다쳤을까... 옆에선 보호자들의 얼굴을 익혀둔다. 직업병이다...
"점심 먹어야죠? 나 때문에 배고프겠어요. 그냥 병원 카페에 들릴까요? 여기로 돌아가면 바로 있는데."
"어? 가보셨습니까? 안그래도 뭐 먹을까 고민 중 이었습니다. 병원 자주 오십니까? 카페까지.."
"돌아가면서 한두번씩은 오니까요. 경찰서 다음으로 잘 아는데가 여기에요."
카페에 들어선다. 샌드위치와 음료를 시키고 자리에 앉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화가 음식을 가져온다.
"선배님, 앉아계신데서 세시 방향이요, 여자 넷 앉아있는거 보이십니까?"
"아는 사람들이에요?"
실수인 척, 세시방향으로 냅킨을 떨어뜨리고 줍는다. 나이든 여자 둘, 젊은 여자 하나, 그리고 만삭의 어린 임산부... 외국인이다.
"큰 거 진주 귀걸이 하신 분이, 저희 동네에 있는 미장원 원장님이시거든요? 이 시간에 왜 여기 있을까요? 가게 열었을 시간인데?"
"임산부 따라 왔나보죠. 며느리...?"
"남동생의 부인이라고 들었어요, 본적은 없는데, 나이가 많대요. 여자는 아직 20대로 보이죠? 보통 부인이 애 가지면 남편이 데리고 오지 않나? 시누이가, 그것도 거의 엄마, 할머니 뻘인데, 이런데를 따라다니네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챙피한가?"
"그걸 알면 저런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지."
핸드폰을 보며 사이다를 마신다. 리화가 빵을 한입 문다.
"근데요, 제가 지난 주에 이사하면서, 저 미장원에 처음 갔었거든요. 동네 아줌마들이 그러시더라구요, 다른 사람 못 듣게 자기들끼리 소근소근, 이번에는 꼭 살아야한다고..."
"누가요?"
"아기요... 저 분이 이번에 네번째 임신인데, 그 전 아기들이 다 죽었대요. 사산, 유산.. 하나는 심장이 뭐 어쨌다고.. 좀 이상하지 않나요? 저렇게 건강해 보이는데?"
"저분도 미용사에요?"
"아뇨, 미용사 한분 더 있고, 저분은 그냥 바닥 쓸고, 샴푸 정리하고 그런거 하는데, 지능이 약간 낮은 것 같아요."
지율이 양팔을 쭉 펴며 일어선다. 테이블 옆으로 서서 목과 어깨를 스트레칭을 하며 여자를 살핀다. 말이 잘 안 통하는지, 세사람의 대화에서 완전히 벗어나 보인다. 수북히 쌓인 케익팝을 먹으며 주스를 마신다. 유투브를 보고 있는지 연신 까르륵 거리는게, 덩치에 비해 해맑다. 리화 옆으로 앉는다.
"지적장애, 국제결혼, 잦은 유산 혹은 사산.. 일반적이지는 않은 거 같아요. 한번 파봐요, 뭐가 나오나."
"근데 제가 머리 자른지 얼마 안되서.."
"위치가 어디라구요? 미장원 갈 사람 누구 없나?"
11.2.2 사건 현장
아파트 앞 퍽치기 사건을 수사중인 진우와 민규. 길바닥에 남은 혈흔을 살핀다. 담벼락에 묻은 핏자국, 안으로 뛰어넘어 도망갔을거다. 거주자 일까.
"부상 당하신 분이 관리 소장이시라고요?"
"예, 연세도 꽤 되고, 오래 하셨어요, 그동안 한번도 이런 일 없었는데.."
"최근에 개인적으로 감정 상하는 일 있거나, 관리비 같은 거 문제 생긴 것 없구요?"
"글쎄요, 제가 알기로는..."
진우가 전화를 받는다. 민규가 넘겨받아 진행한다.
"어, 지율아? 왜?"
"환전소 업데이트 있어? 부검 아직 안 됬대?"
"내일쯤 나올 것 같은데, 그거 말고는 없어. 너는? 어디야?"
"민규씨 머리 안 짤라?"
"뭐?"
민규를 본다. 조금 덥수룩하지만, 글쎄다...
"갑자기 왜? 절에 잠복 가?"
"말고, 가볼데가 있어서.. 남자들은 자주 자르지 않어? 누구 머리 좀 하자. 간격 두고 줄줄이 여러명, 인상 험악하지 않은 사람들로 섭외해줘."
"시환이 시켜."
"어제 잘랐잖아. 짧아."
"염색하라그래."
"아, 맞다, 염색도 있지.. 그 생각을 못했네. 근데 일 쉬라며?"
"경찰서 근처에만 안 나타나면 되지, 외근이야 누가 알게 뭐야. 민규 먼저 보낼까? 장소하고 시간, 누굴 보러가는지 알려줘."
"콜... 민규씨한테 안 물어봐도 돼?"
"일 이잖아. 하나뿐인 선배의 권한! 명령! 염색도 하라 그럴까? 무슨 색이 이쁘냐, 요새?"
"아니야, 이번에는 커트, 다음에 또 가서 염색.. 자주, 여러번 가야돼."
"알았어. 금방 들어가니까, 자세한 건 그때 듣자."
전화를 끊는다. 민규가 묻는다.
"뭡니까? 제 얘기 하셨죠?"
"너는, 경찰이 머리가 그게 뭐냐? 좀 있다 들어가는 길에, 단정하게 자르고 와. 남자는 머리빨인거 몰라?"
지이잉... 문자가 온다.
/용산구 해방촌 신흥로 15길 82 신흥마켓 지하 소피아 살롱/
"아우, 소피아.. 내 스타일은 아니야... 민규야, 여기가서 머리 좀 하란다..."
11.2.3 용산 경찰서
약국에 들러 무언가 사는 리화. 터덜터덜 걸어 안내 데스크의 찬호에게 간다. 무심히 휙 내려놓는 약국 봉투.
"진통제 성분도 들어있답니다. 손등 터진데에 발라요."
찬호의 손을 본다. 여기저기 화상 흉터와 함께 다른 상처들이 많다. 별 말 없이 리화를 쳐다보는 찬호.
"오다가 약국에 잠깐 들러서... 제꺼, 소화제 좀 사다가, 옆에 있길래 집어왔습니다. 일요일날 추운데 괜히 돌아다니게 해서 터졌나.. 싶어서.."
"... 소화제는, 의무실에 있습니다. 안 사셔도 됩니다."
찬호가 약 봉투는 쳐다도 안보고 하던 일을 한다. 얼굴, 목, 제복을 지나 손.. 전신 화상이라고 했다. 얼마나 아팠을까.
"왜 안 도망갔어요?
찬호가 다시 올려다본다.
"사건 파일 봤어요. 그날, 현관문 강제 개방하고 들어간 다른 경찰이 목격했다고... 이 순경이, 여자분을 안고 바닥에 구르고 있었다고요. 불 붙은 거, 꺼줄려고 그랬습니까? 어차피 죽을 사람.. 그냥 내려놓고 혼자라도 피하지 그랬습니까? 그랬으면 좀 덜 다쳤을텐데?"
답이 없다.
"솔직히, 그때 막 불 붙기 시작한거니까,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본인이 대피하지 않아서... 자기 과실로 되어서 보상도 제대로 못 받았다면서요? 생각을 좀 잘 해보고 판단하지 그랬습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불 인데.. 라면 끓이다 손가락 하나 데어도 엄청 아픈데.."
찬호의 표정을 살핀다. 알 수가 없다. 올라가려다 한마디 더 한다.
"...그래도 잘했어요. 아이는, 살았으니까."
가려는 리화에게 답한다.
"...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저는 순경입니다."
리화가 안심한다. 옅은 미소를 짓는다.
"질병 휴직 안 쓰셨으면 저랑 같을 겁니다. 친구에요."
길죽하게 두 칸씩... 윗층으로 올라간다. 그제야 약 봉투를 집어드는 찬호, 서랍에 챙겨 넣는다.
11.2.4국과수, 부검실
비닐 옷을 입고 사체를 부검하고 있는 창률. 뭔가 발견하고 핀셋으로 집어낸다. 깨끗한 컨테이너에 담는다. 액체에 푹 젖은 종이 조각.. 비록 알아볼 수 없는 형체지만, 글씨가 쓰여있던 것 같다. 뚜껑을 닫아놓고, 남은 작업을 계속한다.
***
작업을 마치고 씻고 나온 창률이 핸드폰을 확인한다. 전화가 몇 통 와있다. 메세지를 확인하고, 전화를 건다. 요양 병원이다.
"예, 507호 송기환 환자 보호잡니다. 지금 메세지 확인했습니다. 방문객 문제로 전화 하셨죠?"
"예,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버님이, 갑자기 면회가 많아지셨어요. 의식이 있으셔도, 누구랑 만나실 상황은 아닌 것 같아서, 어떡할까요?"
"아마 전에 같이 일하셨던 분들이 소식 듣고 오시는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께 방해되지 않으면, 적당히 조절해서 인사는 하실수 있게 해주세요. 죄송합니다."
"아뇨, 저희는 괜찮은데, 환자분이 힘드실까봐요."
"면회 시간을 제한해 주시구요, 아마 한 분당 한 십분 이내로요.. 가시기 전에 꼭 보셔야 하는 분들일거에요. 아직 호흡은 괜찮죠?"
"항생제 끊은 이후로는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데.. 대신, 아시잖아요, 언제라고 딱 말씀드리기 어려운 상황인거.."
간호사가 말을 아낀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가시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시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아, 그리고 지금, 동생 분 와 계세요. 만나시기로 약속 하셨어요?"
"아닙니다, 저는 오늘 좀 일이 많아서요. 그냥 있다 가겠죠. 제가 전화 한번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잠시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창률. 결심한 듯, 전화를 건다.
"어, 나야. 병원 왔니?"
11.2.5 사무실
"아니, 일해. 왜? 문제 있어?"
창률이 머뭇거린다.
"어, 아니야... 혹시 왔나 해서.. 며칠 사이에 아버지 동료분들이 몇분 오셨나봐. 너도 왔나 했지."
"바빠."
"알지... 저기, 네가 하고 있는 환전소 사건.. 사체 중 하나에서 종이 조각이 나왔어. 국가 기록원으로 넘겨서 보존처리 해보고, 최대한 복원 해보겠지만, 장담은 못하겠다."
"알았어. 시간 더 걸리겠네."
"응, 빠르지는 않을거야. 바쁠때 잖아, 연말."
"..."
"아... 잘못, 말했나? 내가 이렇지, 뭐. 네 생각 못하고.."
"왜? 본인은 상관없는 일처럼 말하네."
담담하게, 그러나 뾰족하게, 한마디 한다.
"... 병원 오게되면 알려줘. 장례 문제도 의논해야 하고, 준비 해야지."
그대로 끊는다. 그래, 들어가, 나중에 봐, 고마워, 수고했어... 간지러운 인사가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다. 그가 했던 말이 귓가에 머문다. 지워지지 않는다... 바쁠때 잖아, 연말... 남 이야기 하듯 태연한 말투.
맞는 말이다. 연말이면, 바빠진다. 기분이 들떠서 그렇고, 술을 먹어서 그렇고,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렇고... 연말이면, 하루의 밤처럼, 일년의 끝자락은 사건 사고로 뒤덮힌다. 남들이 그렇고, 옆집이 그렇고, 내 가족이 그랬다. 연말이 싫다. 저 놈이 싫다...
"강지율 뭐하냐?"
진우다. 간식 거리를 사들고 왔나보다. 기름 냄새가 퍼진다.
"점심 안먹었어?"
"어, 이리와 앉어. 튀김 사왔어. 민규는 미장원 보내고.. 시환이 전화해봤어?"
"안 받어."
이것저것 꺼낸다. 종태가 재빨리 젓가락을 들고 다가앉는다. 리화가 따라 앉는다.
"네 전화를 안 받어? 이상하네, 왠일이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던 놈이..? 와! 먹어!"
"괜찮아요, 드세요.. 선배 먹어."
"언제부터 선배냐? 철 들었네.. 와서 앉어. 먹으면서 미장원 얘기도 좀 해보고."
미장원이라는 말에 어쩔수 없이 테이블로 간다. 멀찌기 떨어져 앉는다.
종태와 리화는 벌써 입안에 가득 넣었다. 진우가 튀김을 반씩 뚝뚝 부러뜨려 지율 앞으로 놓는다.
"너무 크지 않어? 시환이는 되게 작게 잘라주던데?"
종태가 참견한다.
"괜찮아요. 야, 이거 만드시는 동안,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봤어. 나 믿고 먹어. 이상한거 하나도 안 들어갔어."
잠깐 망설이다 진우를 한번 보고, 젓가락을 집는다. 잘라진 튀김 덩어리를 가져다 한 입, 베어 문다. 입안에 가득한 튀김옷이 바스락 무너진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상상하지 않기로 한다. 종태가 웃는다.
"어이구, 인제 좀 사람처럼 먹네. 야, 강진우, 너 장가가면 애기 진짜 잘키우겠다. 그러니까 시환이 자식처럼 너무 우쭈쭈하면 안돼는 거야. 다행이네, 그렇게 계속 조금씩 먹어봐. 야, 내가 다 살 것 같다."
진우가 웃는다. 생각난 김에 시환에게 전화해본다. 받지 않는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튀김을 집는다...
11.2.6 카페
어머니와 마주 앉은 시환. 핸드폰이 또 울리지만, 받지 않는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시환의 눈치를 보는 어머니. 망설이다 입을 연다.
"왜? 사람들이 걱정하잖아, 전화는 받아."
"나중에 하면 되요. 우리 얘기 먼저 하고.."
"무슨 얘기인데 이렇게 심각해? 야, 엄마 숨이 안 쉬어져. 얼른 말해. 고소 취하 했다면서? 다른 일 또 있어?"
"예전에 우리 상도동 살다가... 나 왜 갑자기 전학 갔어요? 잘은 기억 안나는데, 그때 엄마 태권도장도 옮겼지? 집도 이사 가고?"
"그때, 아빠가 다른 데로 발령 났잖아. 출퇴근 멀어서 간거지."
"갑자기? 아무말 없다가, 외갓집 갔다오니까, 이사 다 해놓고...?"
"그럼 뭐, 너 째끄맸을땐데, 니가 이사짐을 나를거야, 뭘 할거야? 너 없을때 하는게 편하지."
커피 한모금을 마신다. 오늘 만난 이후 처음으로, 눈을 마주본다.
"... 시율이 형 죽은 거, 숨길려고 그랬어요? 나 걱정되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