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1 후암 시장
주차장에 내려 주변을 살핀다. 한층 추워졌지만, 시장을 나오니 기분은 좋아진다.
"어디로 갑니까?"
"제일 높은 건물이요. 보통 번영회는 꼭대기 층에 있어요. 통치자의 권한이죠!"
"시장에 그런게 있습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농담이에요. 시장에서는, 위층이 물건 운반하기 힘들잖아요. 찾는 사람도 제일 적고.. 보통 특성화 되어 있는 것, 수선집이나 미장원, 사무실 같은게 위층으로 가요. 1층은 임대료도 더 비싸니까."
지하도를 건넌다. 지하철과 연결되어 있어 복잡하다.
"여기 있는 상가들은 우리가 만나러가는 그 번영회가 아닌거죠?"
"지하철에 있는 상가들은 조직이 따로 있어요. 거의 대기업이에요. 규모도 크고, 운영진도 많고... 지금 우리가 가는 데는, 그것보다는 좀 허접하다고 해야하나.. 예전에는 상인들끼리 분담하는 정도였는데, 점점 전문 운영자를 쓰는데가 많아졌어요. 입찰을 하거나, 어떤데는 투표를 하기도 하고.. 월급에다 사무실, 직원들까지 서너명 쓰려면 운영비가 들잖아요."
"그래서 속칭 삥을 뜯는 거죠?"
"이러저런 이유로... 간단한거요. 바닥을 보수한다거나, 간판을 재점검한다, 상가를 이동하거나 재배치한다.. 이런 일들을 자꾸 만들어서 돈을 걷는게 제일 많구요, 개인적으로 뇌물같은 걸 받고 입구에 광고 한번 때려주거나...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만으로는 부족해요."
"오늘 이 사람들은, 그런 이유가 아닌 것 같던데요? 아까 녹음 들어보니까.."
"그냥 꼬투리 하나 잡은 거에요. 경기 나빠지면서 빈자리 생기니까 거기에 입점을 시키려는 건지, 뜻대로 안돼니까 시비거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재미삼아 괴롭히는 거.. 여럿이니까 겁주는게 더 재미있었겠죠. 리화씨, 권투했죠?"
"예, 준비됐습니다. 한 판 뜰까요?"
리화의 농담에 시환이 웃는다.
"정신 바짝 차려야되요? 어떤 사람들인지 아직 모르지만, 말투로 봐서는 이바닥 사람들이에요. 전직도 그다지 건전하지는 않았을거에요. 두명 신원 파악했는데, 공갈협박으로 전과 있어요. 동네 깡패 이상일거에요."
"근데 저희 둘만 와서.. 괜찮을까요?"
"별일 없게 해야죠... 대화만 해 보라고 하시니까요. 오늘은 얌전히 대화만 하는 걸로.."
눈에 확 띠는, 하얀색 2층 건물 앞에 선다. 반지하를 끼고 있으니 정확히 말하면 2층 반이다. 유리문 안의 안내도를 살핀다. 지하는 야채, 과일... 그리고 분식, 국수.. 1층은 옷가게, 구두, 잡화점이다. 그리고 2층... 임대 들어 온 사무실이 둘, 나머지 하나는 상가 번영회... 203호다. 만약의 경우 뛰어내려야 한다면...
창문 아래에 아직 수거해 가지 않은 쓰레기가 쌓여있다. 붉은 락카로 마구 흘려쓴 글씨...
/여기다 버리면 자식이 죽는다/
성질이 참 고약한 인간이다. 쓰레기 무단 투기 금지... 이정도만 써도 될것을.. 발로 툭툭 치우며 위를 올려다 본다. 여기로 떨어지면 다치지 않을까... 지율이 생각난다. 지율이라면, 그런것 까지 다 계산하고 들어갈거다.
"시장인데, 끝나고 밥먹고 갈까요? 벌써 배가 고프네.."
담배꽁초와 오물이 흘러내린 계단을 오른다. 아래층과는 달리 조용하다.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는 나무 문이다. 똑똑... 노크를 한다. 예... 굵직한 남자 목소리... 평범하다. 문이 열린다.
"어서오세요."
"안녕하십니까? 아침에 전화드린 용산 경찰서 류시환 경위입니다. 이쪽은 홍리화 경장입니다."
"왠일로 경찰이 다 오시나 긴장했더니, 뭐 이렇게 고우신 분들만 두 분 오셨습니까? 요즘은 경찰도 인물 보고 뽑나요?"
제법 나이를 먹어 보이는 남자가 인사치레를 한다. 어린 것들 둘이 왔구나... 로 들린다.
"신경쓰죠. 인상이 좋아야 하니까요. 여기는, 뭘로 뽑으십니까?"
사무실을 둘러본다. 창가쪽 책상에 앉은 남자 두명이 일을 하는 것 처럼 보인다.
"우리는 뭐, 보시다시피 인물은 아니고, 일 잘하고 말 잘 듣고... 앉으세요, 커피 드릴까요, 녹차?"
"괜찮습니다. 마시고 왔습니다. 최선양씨가 어느 분이십니까?"
"제가 최선양이고, 아까 말씀하신 김지천이는 오래전에 그만 뒀어요. 제가 혼자 합니다. 저기 저 젊은 친구들 도움 좀 받으면서요."
"전과 기록이 있으시죠?"
"오래전입니다. 찾아보셨겠지만, 마지막 갔다온게 십년도 넘어요. 이제 나이도 있고, 하는 사업도 있고해서, 사고 안 치고 얌전히 살고 있습니다. 확인차 나오셨나요?"
"<마늘밥>이라는 배달업체 아시지요? 필리핀 여자분이 하시는 가정식인데, 배달만 합니다. 매장은 없구요."
"글쎄요, 주변에 워낙 음식 배달이 많아서, 왜요? 저희가 시켜 먹은 적이 있답니까?"
"여러번 배달 시켜 드시고, 더럽다, 냄새난다, 벌레 나왔다... 악플 다셨죠? 직접 전화도 해서 환불 혹은 열배 스무배 배상 요구도 하셨구요. 이제 기억 나십니까?"
"경찰관님이 보시다시피 제가 나이가 좀 있어서, 동남아 음식이 입에 잘..."
남자가 부정한다. 리화가, 고개를 처박고 일하는 척 하는 두 남자를 본다.
"지난 두달동안, 시장 안에서 한번, 시장 주변에서 무려 네번, 다른 곳으로 배달 가는 오토바이까지 막고 서서 협박을 하셨습니다. 그것도 본인 아니시구요? 저 분들인가요?"
최선양이 두 젊은 남자를 쳐다본다.
"니들이 그랬나?"
"아닙니다.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오해가 있으신것 같습니다."
"영상 두개, 증인 한명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밤에도, 자정 지난 시간에 전화 하셨죠? 들어보실래요? 이정도면 기억이 나셔야 할텐데.."
녹음 파일을 켠다.
/
담배 연기를 내 뿜는 숨소리, 저음의 남자 목소리, 뒷배경에 희미하게 들리는 다른 사람들의 웃음 소리.
"빨리 가져오라니까 뭐하냐? 어묵 꼬치 30개 시켰잖아! 지금부터 십분내에 안오면 내가 너네 집으로 쳐들어간다."
"30개 못 만들어요, 재료 없어요."
"아 ㅆㅂ, 밥 장사하는 ㄴ이 재료가 없어? 마트에 ㅈㄹ 뛰어가서 사와! 손님을 뭘로 보는거야?"
긴장한 여자가 더듬더듬, 간신히 용기를 낸다.
"번영회 안 가요. 시장 배달 안 가요."
"누구 맘대로? 야, 이 기집애야! 내가 오라면 오는거야. 하여간에 동남아 ㄴ들은 따박따박 주딩이만 살아가지고.."
"배달 못 가요. 오토바이 뺏어가 해요."
"시끄러, 어묵 없으면 너라도 혼자 와. 내가 꼬치 끼워버리게."
크하하하 큰 소리로 웃는 다른 남자들..
"야, 배달비 세배 준다, 세배! 거기 여자애들 다 태우고 와! 만원씩이면 되지?"
/
"야! 세훈이! 이거 네 목소리지? 이놈 자식이..? 너 자정까지 사무실에서 뭐하고 있었어?"
"저 아닙니다. 일찍 들어가서 잤습니다.."
다른 톤으로 말해보려 애쓰지만, 걸죽한 저음.. 분명 그 놈이다.
"억울하시면 제가 밝혀드릴께요. 복도랑 건물 주변까지 CCTV 많던데, 수거하겠습니다. 범인 잡고, 제대로 누명 벗어야죠."
두 남자가 마주본다. 특별히 기뻐하는 얼굴은 아니다.
"화투 치셨죠? 밤에.. 누구누구 있었어요? 거기 다 공범인데.. 도박? 상습?"
"아닙니다, 친구들이 와서.. 잠깐 친목 도모로.."
"응, 집에 안 가신거 맞네. 얼마짜리요? 아니면, 돈 내기 말고, 배달 음식 내기? 여자는 얼마짜리?"
"....."
"야! 너... 또??"
"요 밑에 쓰레기를 아직 안 치웠더라구요, 전단지가 유난히 많던데, 그중에서 골랐어요?"
시환이 그들에게 다가간다. 리화가 따라 일어선다.
"그러고보니, 통성명을 아직 못했습니다. 두분 신분증 좀 검사하겠습니다. 있으시죠?"
"...."
답도, 신분증을 꺼내는 어떠한 동작도 취하지 않는다. 느낌이 온다. 리화가 문쪽으로 자리 잡는다. 시환이 다시 한번 이야기한다.
"갑자기 분위기 안좋아지죠? 이게 아닌데... 한분씩 해야겠어요. 이쪽 분 먼저 일어나세요. 신분증 저한테 넘기시고, 두 손은 잘 보이도록 잠깐 양쪽으로 올립니다."
남자가 일어선다. 바지 뒷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신분증을 내민다. 시환이 받아 주머니에 넣고, 소파를 가르킨다.
"저쪽으로 가셔서 앉으시구요.. 임세훈씨, 이거 별거 아닙니다. 법적으로 아직 처벌 할 수위도 아니구요, 확인차 사전 방문 한번 온겁니다. 문제 행동 알려드리고, 지금이라도 그만 하시면, 취하하도록 상호 중재하겠습니다. 엉뚱한 생각 하지 마시구요, 신분증 확인하겠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남자가 말한다.
"지갑이 서랍 안에 있습니다. 열어도 됩니까?"
"아니요, 그 서랍 안에 다른 게 더 많을 것 같아요. 저희가 열께요. 손 올리고 옆으로 나오세요. 뒤돌아서 창문 바라보고 섭니다."
남자가 어정쩡하게 손을 올린다. 자꾸만 주저한다.
"어깨 위로 올려주십시오. 오십견 아니시죠? 더 올리세요.."
조금 더 올리는 척 하며 남자가 옆으로 걸어 나온다. 창문으로 향해 서는데 지갑이 바지 뒷주머니에 있다.
"뒷주머니에 있는 지갑 가지러 갑니다. 그대로 서서 움직이지 마십시오. 다치십니다."
리화가 다가간다. 시환이 손으로 제지하고 직접 나선다.
한발, 두발... 가까이 간다. 지갑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 남자가 돌아서며 주먹을 날린다. 예상 했다는 듯 피해 보지만 슬쩍 스치듯, 얼굴에 적지않은 충격을 남긴다.
"선배님!"
리화가 달려들기 전에 시환이 남자에게 빠르게, 발을 뻗는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넷. 마지막 네번째에는 이미 바닥에 주저앉은 남자의 오른쪽 복사뼈를 정확히 내려찍는다. 비명과 함께 이리저리 몸을 비튼다.
수갑을 채우고 신분증을 꺼낸다. 김정원... 전혀 다른 사진이 붙어있다. 다른 신분증이 하나 더 들어있다. 우영진.. 역시 다른 사람이다. 리화에게 눈짓한다. 리화가 서랍을 뒤진다. 몇개의 신분증이 더 나오고 나서, 깊히 숨겨 놓은 과도 두 자루가 발견된다.
"뭐 하는 분입니까? 본인 신분증은 하나도 없고? 이름이 임세훈인건 맞습니까?"
"저 녀석이, 누구 소개로 왔는데.. 다 거짓말이냐? 너 누구냐 그럼?"
최선양이 버럭하며 다가간다. 시환이 막는다.
"위험합니다. 앉아계십시오."
지원을 요청하려다 망설인다.
"아, 나 낼모레 징벌 위원회 가는데.. 그러면... 여기다 걸어야지.."
신호음이 간다. 리화가 입만 벙긋거리며 묻는다. 누구..? 시환이 웃는다...
"삼촌! 우리 아직 시장인데, 잠깐 올 수 있어요? 대화가 좀 길어지네요.."
임세훈이라 알려져 있는 남자가 바닥에 누워 끙끙 거린다. 시환이 전화 통화를 하며 꾸우욱, 수갑 찬 손가락을 밟고 지난다.
12.3.2 후암 시장 2
종태의 지휘 아래 임세훈.. 이라 주장하는 남자를 이송한다. 코피를 닦아주는 척 하며 유전자까지 얻는다. 비닐 주머니에 넣어 종태에게 내민다. 짧아진 머리 덕분에 기다란 목이 더욱 시선을 끈다.
"류시환 미쳤냐? 하루 사이에 왜이래?"
"리화씨 아직 조심해야 되잖아요, 안산 거.. 장 터진거 때문에."
"터질 뻔 한거야. 아직 안 터졌어. 너는 올라탔냐? 발목이 나갔다는데?"
"덩치가 커서, 같이 덤비면 힘들잖아요. 어디 하나 부러뜨려놓고 싸울라고.."
"겁쟁이."
"응. 무서웠어요."
"정상참작 해준다. 덩치 크고, 칼 있고, 협조 안하고.. 그럼 먼저 쳐야지, 어쩌겠어."
"먼저 친거 아니에요, 맞고 시작했어요."
"지율이한테 배웠냐?"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을 보여준다. 다행히 수술 한 쪽은 아니다.. 종태가 안심한다.
"이쁘다, 통통해졌네. 가자. 들어가야지."
"점심 간단히 먹고 가겠습니다. 시장인데.."
"그런게 어딨어? 난리도 아니야, 신고 완전 줄줄이야. 바로 복귀해."
종태가 출발한다.
"너무해, 여기까지 왔는데..?"
애절한 눈으로 리화를 돌아보지만, 이미 벨트까지 매고 차에 앉았다. 한숨을 내쉬며 운전석에 오른다.
"몇시야...? 11시 반.. 점심시간 준비하느라 음식들 새로 나올텐데.."
"다음에 오십시오. 사건이 많아서.. 연말이라고 펑펑 터질려나 봅니다."
"누가 그랬어요, 경찰되고 나니까 불꽃놀이가 제일 싫대요. 따다당 총소리 같고, 연기 나는 거 방화로 보이고, 사람들 많아 소매치기 천지에, 술 처먹고 성추행 많고.."
"맞습니다. 저도 연말이 제일 싫습니다. 길에서 얼어죽는 사람도 많고.."
"출동 한 적 있어요? 동사나.. 변사?"
"예, 딱 두번.. 둘 다 술 먹고 길에서 자다가 죽었습니다."
"그놈의 술..."
전화가 온다. 종태다.
"출발했냐?"
"예, 갑니다."
"미장원 들러서 와라. 아이가 다니는 놀이방 주소 보낼께, 상담하는 척 하면서 들어가 봐. 미안하지만, 애 유전자 나올거 있으면 뭐라도 찾아와. 그렇다고 생머리 뽑지 말고.. 아프다."
"알겠습니다. 출동합니다."
"류시환,"
"예."
"쌈질했네, 처음으로? 할만하냐?"
"예. 좋습니다."
"왜 갑자기?"
"운전합니다. 끊습니다."
뚝... 그렇게 끊어버린다. 어젯밤, 숙직실에 누운 석호의 말이 생각난다.
/회상
"류시환, 남자가 되라. 맨날 지율이 뒤에 숨어서 재롱떨지 말고... 그럼 너 인정."
"팀장님이 뭔데 혼자 인정, 안 인정 해요? 가족도 아니면서.."
이불을 덮어준다. 석호가 굳이 팔을 빼고 손가락질을 한다.
"지율이 아니어도.. 너 말야, 너.. 남자 류시환, 경찰 류시환이.. 격투기를 하면 뭐해, 사람을 못 치는데? 까만 띠 몇개씩 있으면 뭐 하냐고, 범인을 못 잡는데? 바보냐? 너 그렇게 약해 가지고, 지율이랑 다시 파트너 하겠어?"
"다시요? 언제요?"
솔깃하다.
"언제든.. 너 잘하면... 야, 평생을 못해도, 내 탓 하지마.. 지금 꼴로는 너 절대 못 믿어. 지율이 옆에 못 붙여놔, 너 때문에 우리 유리 큰일 날까봐.. 최소한 니 몫은 해야 할 거 아냐, 알어? 착한 짓 고만하고, 좀 막 살아봐. 그것도 괜찮어. 다 부시고 나와!"
"진짜죠? 나 막 살면, 지율 선배 다시 파트너 주는 거에요? 약속했어요?"
석호가 잠이 든다.
"아, 좀.. 팀장님, 무슨 말을 하다 말고 잠이 들어? 약속했다구요! 나 인제 막 고삐 풀려요, 알았죠?"
답이 없다.. 코고는 소리..
"나중에 내 탓하고 후회하지 마요. 나 인제 진짜.. 말 하나도 안 들을 거니까."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