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12화 잔혹동화 2

최고의 악역

by 신소운

12.2.1 소피아 헤어 살롱



"옆에는 짧게 쳐드릴까요? 운동하시나봐요, 약간 스포츠 형을 좋아하시나?"
진한 립스틱을 바른, 분명 아주 미인이었을 것 같은 원장이 웃는다.

"축구 했습니다. 시청 축구팀까지 갔다가 부상으로 그만뒀어요."

박 형사가 있지도 않은 경력을 늘어놓는다. 준비 된 거짓말이다. 비슷해보이는 직업군이 있다. 경찰이나 군인, 운동선수, 깡패... 남들은 잘 구분을 못한다.

"지금은 무슨 일 하세요? 처음 뵙는데?"

"근처에 가게를 하나 열까 하고 돌아다니다가, 일찍 여셨길래 들어왔습니다. 아침에도 손님이 있나봐요?"

"그럼요, 새벽부터 한바탕 왔다가시고, 이 시간 좀 지나면 그때부터는 동네 장사에요."

"여기가 아직 외국인들이 많죠? 제 동생이 동남아에 사는데, 그쪽에서 싼 악세사리랑, 화장품이랑 좀 받아서, 조그맣게 진열대 하나만 놓고 팔아볼까 해요."


"동남아 어디요? 나도 오래 살았는데? 베트남에서 살다가, 태국에도 좀 있다가.."

"지금 사는데는 베트남인데, 여기저기 비슷한 것들 쉽게 구한대요. 근처에 베트남 여자들은 좀 사나요?"

알면서 떠본다.

"그럼요, 엄청 많아요. 우리 올케도 베트남 사람이에요."

"아, 그래요? 시간제로 조금씩 일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장시간은 필요없고, 물건이나 좀 고르고 그런거만 도와주면요. 젊은 여자들이 뭘 좋아하는지... 요새 어디 일 다니나요?"


"아니, 지금은 배가 이만큼 불러서 일 못해요. 다음달에 애 낳으면 또 살살 잔일이나 해야지."

"아유, 애 키우면서 일하기 힘들죠, 정신 없어서.."
"그 집은 친정집에서 다 키워요. 얘는 낳기만 하고, 거기다 맡기고 생활비처럼 돈 얼마씩 보내고 그러죠."

소문에는 죽었다는 아기가, 서류상으로는 출생신고가 안되어 있다가, 이제는 베트남에서 크고 있단다... 뭐가 진실일까.


"흰머리가 꽤 되요, 오신 김에 염색을 좀 할까요?"

"염색 한번 시작하면 계속 해야 된다 그래서요.. 짧으니까 더 자주 해야되죠?"

"그렇죠, 특히 여기 옆에 이렇게 올려치면, 금방 더 하얘보여요. 커트 오실때, 터치 세번까지는 돈 안 받고 해드릴께요. 부끄러우시면 진한 갈색으로 할까요? 많이 티 안 나게?"


댕그랑... 유리문이 열리고 아이가 하나 뛰어들어온다.

"원장님~!"

"우리 왕자님 잘 잤어? 놀이방 가요? 정 선생, 여기, 갈색 6번하고 7번, 반반씩 섞어줘."

머리 만지던 손을 털고 급히 아이에게 달려가 안는다. 정 선생이라는 아이 엄마가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원장이 아이와 속닥속닥 다정하게 노는 모습을 안보는 척, 거울로 관찰한다. 무척 다정해보인다.


닫혀있던 미닫이 문이 열리고, 정 선생이 밥그릇만한 플라스틱 그릇에 염색약을 섞으며 걸어나온다. 장갑을 끼고 뒤에 붙어선다. 박 형사가 졸린 척 한다.

"얼마나 걸리나요? 아우, 어제 술을 좀 했더니.."

"주무셔도 되요. 냄새 때문에 일부러 눈 감고 계시는 분들도 많으세요."

거울 속 여자가 살짝 웃는다. 순탄치 않은 인생이었는듯, 예쁜 얼굴에 그림자가 보인다.


곧이어 들어오는 나이든 남자. 아이가 손을 흔들며 반긴다. 정 선생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사장님! 왜 인제왔어요? 찬이 놀이방 늦는데?"

조잘거리는 아이를 안고 원장과 남자가 속닥거린다. 아이가 계속 떠드는 바람에 알아들을 수가 없다. 원장이 아이를 남자에게 넘기고, 안으로 들어간다.


박형사가 눈을 비비며 졸린척 한다. 손가락 사이로 훔쳐보는 거울 안에서, 한손에 아이를 안은 남자가 다른 한 손으로 정 선생의 허리를 슬쩍 더듬는다. 고개를 돌리며 한번 째려보지만, 뭐라 하지는 않는다. 남자가 나간다. 하품을 하며 좌우를 둘러본다. 창밖의 남자가 활짝 웃는 아이를 안고 길을 건넌다.

"혹시 커피 있나요?"

"아직 안 드렸어요? 죄송해요, 이것만 바르고 새로 타서 드릴께요. 믹스 드시죠?"



12.2.2 사무실




전정수 검거건으로 기분이 좋아진 종태가 아침부터 리화를 추켜 세운다.

"우리 서장님이 기중 쓸만 한 걸 주워왔어. 리화야, 어디 가지말고 여기 꼭 붙어있어라, 응? 오자마자 시원시원 진도가 막 나가는구나."

"그래도 안산 넘기는 건데요, 뭘. 그냥 남 좋은 일 아니에요?"

리화가 묻는다.


"넘길때 넘기더라도, 우리가 잡은 거 잖아. 일단 어디 가서 윗분들 만나면, 서장님이 생색내기 딱 좋지."

석호가 초를 친다.

"전정수씨, 곧 수술 받아야 하는 것도 들으셨지요? 이번 출동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러니까, 천운인거에요. 우리가 그날 거기 안 갔으면 어쩔뻔 했어?"

"복강내 농양이 심하답니다. 웃을 일만은 아니죠."


"어디서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잖아, 왜 리화 탓을 해?"

"안산에서 마지막에 전정수를 검거한 사람이 리화씨입니다. 검거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해도.."

"지가 그렇게 심하게 맞았으면, 도망을 못 갔어야지? 리화한테 두드려 맞고 끌려왔는데, 119 기다리다말고 지 발로 뛰어서 도망을 갔다며? 그러면 죽을만큼 맞은게 아닌거지. 어디가서 다른 놈한테 더 얻어맞았던가, 어디다 박았던가... 그런거야, 알았지, 홍리화? 절대 너한테 맞아서 장파열이다, 이딴 소리 나오면 안돼."


리화가 선뜻 답을 못하자, 종태가 답답해한다.

"야, 인권위에서 조사 나오면, 서로 투닥투닥 몇대 주고 받았지, 장기 손상까지 입힐만큼 세게 친적 없다, 이렇게만 답하라고. 증거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오히려 그 놈이 파이프 휘둘렀다며? 그건 증거 있잖아."

"맞은 자국, 그날 바로 사진 찍어둔거 있습니다."


"리화씨가 맞았다구요? 쇠파이프를?"

은석이 묻는다.

"예, 저도 맞고, 같이 나간 동료도 맞고.."

"나쁜 놈이네. 파이프는 지가 휘두르고, 리화씨한테 한대 맞았다고 인권위에 진정을 내요?"

"됐어, 그런 놈들이 그렇지.. 그래도 일주일도 더 전에 치고받았어. 이제와서 그것 때문에 소장이 부어오르고, 복강에 염증이 퍼졌다? 그걸 누가 믿냐? 덮어씌우는 거라고 우겨. 억울하다고.. 맞아도 싼 놈이 꼭 인권이네 뭐네. 어차피 지 돈 안들이고 나랏돈인데.. 장이 터져 죽은 것도 아니고.. 이 문제는 끝. 수고했어! 다음!"

종태의 무대포식 진행이 마음에 안 들지만, 어차피 안산서 사건이니 넘어간다. 다음 일은.. 시환이다.


"류시환 경위, 징벌 위원회가 이번 주 말로 잡혔습니다. 취하된 소송이라서, 크게 문제 될건 없다고 보는데, 그래도 혹시 추가 할 증거들이 있다거나, 뭐 도움이 될만한게 있으시면 넘겨 주세요."

"팀장님한테요? 같이 가십니까?"

"예, 맞습니다."

"시환이 구제하려면, 팀장님 말고 다른 사람들이 가야죠. 가서 좋은 소리 안할거잖아요."


은석이 종태를 툭 친다.

"뭘? 걱정되서 그러지. 팀장님 시환이 편 아니잖아. 본인 리더십에 흠 갈까봐, 그 쪽 편들고 애 잡을 까봐 하는 소리야."

지율이 일어선다. 다들 쳐다본다. 종태가 묻는다.

"회의 중에 어디가냐?"


"미장원 가요."

"회의하다 말고?"

"더 하실 말씀이 없는 거 같아서 갑니다. 어제 밤에 시환씨가 접수 받은 협박건도 조사해야 하고.."

"그거 강 형사는 빠지구요, 리화씨하고 시환씨가 맡을 겁니다."


"시환이요? 징벌 위원회 결과 나올때까지는 일 못하는 거 아닌가요?"

"고소가 취하되어서, 현재 범죄 정황은 없는 걸로 판단합니다. 쉬라는 건 도의상의 권고 일 뿐이고, 일을 못하지는 않습니다."

"일은 다 시켜먹고, 위원회 열어서 월급 까고, 그래도 충성해라... 그거지. 더러워도, 똥 싼 놈은 찍 소리 못하는 거야."

"아직은 조사 단계의 사건이고, 신체 접촉이나 직접적인 위협이 없었습니다. 전화와 온라인 상으로 벌어진 일이라, 두분이 가서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고, 절충하는 쪽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깡패 시끼들이라면서요? 절충하러 갔다가 경찰 불렀다고 보복하면?"

"깡패는 아니고, 지역 시장 번영회 사람들입니다."


"그게 그거지. 흩어져 놀면 깡패, 모아놓으면 번영회, 사채, 심부름 센타.. 책상이 있느냐 없느냐만 다르지, 하는 짓은 똑같잖아요."

"그래서 책상 있는데에 가서, 앉아서 대화를 먼저 해보라고요, 류시환 경위가 맡습니다."

"보디가드 붙여서? 홍리화? 크크크.."

종태가 웃는다. 못마땅한 지율이 여전히 뻣뻣하게 선 상태로 지시를 기다린다.


"강 형사는, 환전소랑 미장원 일도 있고, 어제 강력팀에서 요청 들어온 게 있습니다. 최근들어 귀금속 가게에 도난 신고가 늘었는데, 용의자들이 외국인들로 추정된답니다. 야간에 오토바이로 무리지어 다닙니다."

"위험하게 그걸 왜 지율이를 보내요? 강력에 돌쇠같은 애들 잔뜩 놔두고?"

"조 상현 팀장님이 직접 부탁했습니다. 연말이라 강도 사건이 늘어서 그쪽도 인원이.."


"보내는건, 필요하다면 보내는 건데, 내 말은!! 여기 나도 있고, 은석이도 있는데 왜 지율이가 가냐고요? 안된다 그래요! 얘는 무슨 동네 개싸움마다 다 뛰어야돼?"

생각지 못한 반응에 당황한 석호를 보고 지율이 나선다.

"저 괜찮습니다. 가서 상황 먼저 보고, 필요하면 지원 요청하겠습니다."

"니가? 행여나.. 야, 갈거면 나도 가. 둘씩 다니라면서 왜 애를 혼자 보내?"


은석이 나선다.

"아닙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연말마다 항상 있는 일이고, 외국인 범죄라면 저랑 강형사가 가는게 맞습니다."

"너 허리 괜찮아? 무리하지 마라. 큰일난다."

"그럼, 두 분이 가시는 걸로 하구요, 오늘 회의는 이정도에서 마치겠습니다."

석호가 마무리한다. 다들 일어서서 나가려는데 종태가 석호를 부른다.


"팀장님은 어제 잘 주무셨습니까? 목에는 약 좀 발랐고? 폴라를 입으니까 하나도 안보이네."

석호가 어색하게 웃는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취했었다고.."

"하던 얘기 마저 해야지, 나 어제 궁금해서 잠을 못잤어요. 지율이 어머니랑 오빠 사건, 관련이 있으시다고 하셨죠?"


"형님.."

은석이 막는다.

"우리끼리 있는데 뭐 어때. 아무래도 그런 거 까지는 지율이가 못 물어보잖아, 나라도 대신.."

"팀장님이 죽였어요?"

지율이 묻는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석호를 본다. 종태가 피식 웃는다.


"너는, 그런걸 어떻게 면전에서 묻냐, 사람 불편하게... 팀장님이 죽였어요?"

은석이 자리를 피한다. 리화도 따라 나간다.

"제가 그렇게 얘기했습니까? 어제 밤에, 기억이 없어서 잘..."

"기억 없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그럼, 강지율이 송유리인 건 왜 그동안 모른척 했습니까? 보통은, 친한 동생을 오랜만에 만나면, 반가워서 먼저 아는체 하지 않나요? 지율이를 다시 보는게 많이 불편하셨나 봅니다."


"문 형사님, 이건 저희 둘의 개인적인 일입니다."

"아니지요, 공식적인 미제 사건이잖아요. 게다가 사건 파일에도 나오지 않는 이석호의 행적이, 20년만에 본인 입에서 튀어나왔다... 자백...! 특종인데? 지율아, 네 생각은 어떠냐?"

지율이 석호를 본다. 눈이 마주친다. 다가가 멱살을 잡듯, 목폴라를 훅 잡아챈다. 손톱자국이 보인다. 약은 안 발랐다.. 폴라를 놓고 원래대로 고이 접어준다. 눈하나 깜빡않는 석호.


"뭐하냐?"

종태가 묻는다. 한걸음 물러난 지율이 석호를 뚫어져라 보며 답한다.

"팀장님이 안 죽였어요. 봐요, 하나도 안 놀라잖아. 나를 하나도 겁 안낸다구요. 찔리는게 없는거야."

"이 팀장이 원래 표정이 없어. 껍데기에 속지마. 믿으면 안돼."

종태가 한마디 덧붙인다.


"팀장님 말이에요, 어렸을때 부산 끌려가서 부모 속 어지간히 썩혔나봐요? 등교 거부, 시험 거부... 망나니처럼 막 그랬나? 점수가 바닥을 치다가, 바닥도 확 뚫고 가고.. 그렇지 않고서야, 교회까지 팔아서 지율이네를 뒷바라지 할 이유가 없잖아요. 얘 멀리 보내놓고, 신경 딱 끊게해서 다시 공부 시켰다, 그거죠? 정신력 대단하네, 부모도, 팀장도...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그렇게 하기 쉽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



12.2.3 20년 전 부산




/회상 - 석호



반듯하게 다려진 교복이 벽에 걸려있다. 갈 생각이 전혀 없는 석호가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는다. 울다시피 애원하는 어머니.

"벌써 한달이 넘었어. 더이상 진단서도 못 구해와. 학교만이라도 가자, 응?"

"유리 데려와. 시율이가 죽기전에 나한테 부탁했어. 내가 데리고 있을거야."

"치료 받아야 한다잖아. 걔네 아빠가 잘 키울거야."


"어떻게 잘 키워? 정신병원에 놔두는게 잘 키우는거야? 걔 그렇게 된거 나 때문이야. 내가 돌봐야 돼."

"석호야, 너 지금 고등학생이야. 공부도 바쁜데.."

석호가 벌떡 일어나 소리친다.

"공부가 뭐? 서울대? 사람 죽여놓고 서울대? 안가. 못가. 유리 만나기 전까지는 학교고 뭐고 안가. 자퇴시키고, 나 그냥 버려. 유리한테 갈거야."


"이석호, 정신차려! 네 잘못 아니랬지? 너 아니었어도 어차피 죽을 사람들이었어!"

석호 아버지가 드디어 언성을 높힌다. 석호가 지지않고 악을 쓴다.

"어차피 죽을 사람? 어차피 죽을 사람?? 아빠가 어떻게 알어? 그럼 우리는? 우리도 어차피 다 죽을 사람들이잖아! 서울대 가도 죽어. 못믿어? 내가 직접 보여줄까? 내가 서울대 가서 죽는 거 보여줄까???"


"석호야, 너 정말 왜 이래? 평생 속한번 안 썩히던 애가.. 왜 갑자기 이래?"

"몰라서 물어? 유리 만나서, 아저씨 만나서 빌어야 된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야돼, 그래도 난 용서 못 받아.. 평생... 나 때문이잖아.."

오열한다. 석호 엄마가 곁에 앉아 다독거린다.


"니 잘못 아니야, 실수였어."

"그런데 왜...? 정말 내 잘못 아니면, 왜 가서 말을 못해? 왜 나를 숨겨?"

말문이 막히는 석호 엄마... 얼버무린다.

"그건 네가 고등학생이고, 한참 예민할 때라서.."


"그래서 엄마한테 다 얘기했잖아, 나 때문이라고... 무서워서 말을 못하니까.. 아저씨한테 같이 가서 나랑 같이 사죄해 달라고 부탁했잖아... 나 좀 도와달라고..! 나 좀 용서받게 해달라고 부탁했잖아..!!"

"대신 엄마가 다 하잖아. 창률이 형 아파트도 구해주고.. 아저씨가 정신없으니까, 아저씨 대신 유리 병원도 엄마가 다 알아서 하고..."


"그래서 하는거 아니잖아? 내가 유리 찾아낼까봐, 자꾸 여기저기 옮기는 거 잖아. 찾을만하면 옮기고, 찾을만하면 옮기고.. 언제까지? 내가 미쳐서 병원 갈때까지? 내가 여기서 뛰어 내릴때 까지? 아저씨가 내 장례식에 오면, 그때 자백할라고?"

"석호야!"

"엄마, 나 죽을거 같애. 진짜로 심장이 터진거 같애.. 숨이 안 쉬어져... 나 좀 살려줘. 유리 만나게 해줘!"




<계속>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2화 잔혹동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