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1 경찰서
석호를 업고 가는 시환. 무거운건 둘째치고 술냄새가 역겹다. 롱코트에 자꾸만 미끄러진다. 간신히 계단까지 왔지만 올라가지 못하고 누워버린다. 헉헉거리는 시환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철퍽철퍽 때리는 석호.
"류시환이 어른이네. 코딱지만하던게 나를 다 업어?"
머리를 비키며 옆으로 떨어져 앉는다. 땀을 닦는다.
"때리지 마요? 주폭으로 신고할거야."
"쓰다듬는거지, 이뻐서!"
"왜 이랬다 저랬다해요? 엊그제는 집까지 찾아와서 나 싫다며?"
"네가 유리 옆에 있는게 싫다는거지. 동생으로는 최고야!"
"거짓말... 진우형이 최고면서."
"당연하지. 진우는 최고 중의 최고.. 너하고 비교가 되냐.. 왜? 샘나?"
"하나도 안나요, 나도 아니까... 그러니까 내가 지금 팀장님 업고 왔잖아요, 일부러.. 진우형한테 선배 맡기고.."
계단에 벌러덩 누운 석호가 옆자리를 두드린다.
"누워. 누워서 얘기해."
"미쳤나봐. 경찰서 계단에 왜 누워? 일어나요, 들어가게!"
"힘들어, 그러니까 네가 누워. 얘기 좀 하자."
"뭐 그렇게 오붓한 사이라고 누워서 얘기를 해, 추워죽겠는데.. 그냥 해요, 빨리. 그러고 누워있다가 입 돌아가요."
"까짓거 돌아가도 돼, 쓸모도 없는 입.. 할말도 없고, 있어도 못하고.. 해도 용서 못 받고.."
"근데, 아까 그거 무슨 말이에요? 생각나요?"
"진우한테 양보해..."
"그거 말고.. 팀장님이 선배네 어머니랑.."
"너는, 유리한테 남자가 될 자격이 없어. 그동안 착한거 하나보고 놔뒀는데, 안되겠어... 아웃이야."
"알아요, 근데 그거 말고요... 에이씨, 술취한 사람하고 무슨 말을 해.. 가요, 추워요."
"강진우! 내가 유리랑 진우랑 엮어 줄라고.. 내 동생이랑, 내가 제일 좋아하는 후배랑... 너도 진우 좋지? 우리중에 진우가 제일 낫잖아. 너는 찌질해서 안돼고, 차은석은 뻣뻣해서 안되고, 나는 나쁜 놈이라 안돼고.."
"와, 그러고 보니까, 여기 참 형편없다. 누나는 진짜 좋은 사람 만나야되는데.."
"크크크... 그래, 맞어.. 누나.. 너한테 누나지.. 너 째끄매가지고 맨날 유리 손잡고 따라다니고.. 그러던 놈이 꼴에 남자라고 까불어. 어쩐지, 그래서 네가 남자로 안보이는거야.."
"저도 형들 되게 큰 줄 알았거든요? 이제보니 겨우 중딩이었네."
"난 그때도 컸어. 넌 내 반도 안됬고."
"거짓말 마요, 내가 무슨.. 어? 눈 뜨고 얘기해요! 팀장님! 일어나요!"
".. 잠깐만 있어봐, 5분만 자고.."
"자긴 어디서 자? 일어나, 얼른! 아, 혀엉! 여기.. 다 왔는데.. 아이, 씨.."
석호를 흔들어본다. 일으켜도 본다. 결국은 자기보다 큰 사람을 아둥바둥 안아서, 힘겹게 다시 둘러 맨다. 두번째라 더 무겁다.
"잠바 입어, 잠바! 형사가 쓸데없이 롱코트를 왜 입어? 바지도 그냥 청바지 입으라구요! 미끄럽잖아!"
낑낑거리며 한발한발, 계단을 오른다. 경찰서에서 나오던 사람들이, 위에서 문을 열고 기다려준다.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마지막으로 하얀 입김을 한가득 뿜으며, 겨우 안으로 들어선다.
12.1.2 24시
드르륵, 드르륵.. 남은 테이블까지 싹 다시 정렬해놓고 나간다. 손을 흔들며 얼른 가라 인사하는 종태. 한쪽 구석 자리에 남은 술병 두어개를 모아놓고 지율과 마주 앉았다. 멍하니 벽에 머리를 기대고 혼자 골똘히 생각 중이다. 주방문이 열린다. 지퍼백에 얼음을 넣어 뺨에 대고 진우가 나온다. 옆에 앉아 째려본다.
"책임져. 얼굴이야."
"이뻐."
성의없이 답하며 술을 준다. 종태가 잔을 부딪혀 준다.
"무슨 여자애가 뻑하면 주먹질이야.."
"뭐하러 말려? 그냥 놔두지.."
"나 말고, 형한테... 술취한 사람 깨워서 뭐해, 내일 얘기하면 되지.. 그걸 못참고 패냐? 그것도 사람들 다 보는데서?"
"이상한 소리 하잖아. 얘기 더 들을려 그랬지."
얼음팩을 내리고 술을 마신다. 안주를 먹으려다 얼굴을 찌푸린다.. 아프다.. 볼을 지긋이 누른다.
"아아.. 안에 터졌어... 아우, 이놈의 손모가지.."
다시 피가 고인다. 종태가 내미는 냅킨으로 입 안을 닦아낸다. 혀에 달라붙는다.
"이석호가, 오빠 친구였다고?"
"예. 어쩐지 가끔, 누가 옆에 있었던것 같았어요. 송창률은 아닐거라는거 알았었고, 그렇다고 그게 팀장일 줄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래, 친한애가 하나 있다 그랬었어. 근데 이상해..? 사건 파일 어디에도 이석호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어. 그때 시율이 친구들, 학교 선생님들, 동네 사람들... 다 조사하고, 진술받고 했는데, 그렇게 친했다면서 왜 한번도 조사를 안 받았을까?"
"형님. 전에 그, 민원 할아버지요... 그분이 석호 형 담임이셨대요."
"그래? 어떻게 알았어?"
"찬호씨한테 사과하러 오셨을 때요, 이석호 경감이 자기 제자라고 자랑하시더라고요. 잠깐 나가서 이거저거 물어봤는데... 사건 났을때, 석호 형이 갑자기 지방으로 내려갔대요. 그리고, 전에 말씀하신 거, 지율이네 미국 보내주셨다는 교회 목사님이요, 석호형 할아버지세요."
"애는 쏙 빼가고, 대신 돈을 줬다.."
"형도 어렸으니까, 충격 받을까봐 피신을 시켰던지, 아니면 아예 조사를 안 받게 하려고.."
"그러다 갑자기 아주 선한 마음이 확 들어서, 기부를 했다? 정말 순수하게, 그치? 하느님이 시켜서?"
종태가 지율을 본다. 여전히 멍때리고 있다.
"왜? 뭐 생각하냐?"
"....제, 기억이요. 많이 잘못된것 같아요. 오빠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전부 이석호였어요. 교회에서 노래하던 것도, 강장동물 써준것도, 업어주고, 놀아주고.. 그게 다 이석호야."
"근데?"
"만약에 내가 봤다는 그 놈도, 녹색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아닐 수도 있잖아요? 나한테 했던 말, 흉터, 앞머리.. 전부 다 내가 만들어낸거면...? 그래서 그때 내가, 진술이 자꾸 바뀌고, 안 맞고.. 그랬었나?"
진우가 지율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톡톡 치며 말을 꺼낸다.
"이 속에, 어느 정도는 오류가 있겠지. 사람인데.. 거기다가 어렸고,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이야기를 자꾸 보태게 되니까... 근데, 정식으로 조사하기 전에, 네가 장례식장에서 한 얘기 있잖아. 내 생각에, 그건 사실일거야. 사건 나고, 목격하고, 기절하고, 실려가고.. 깨어나자마자 처음으로 이야기 한 거야. 질문한 사람도 없었고, 어느 한쪽으로 유도를 한 사람도 없었어. 꾸며낼 시간 하나도 없이, 자발적으로 사실만 얘기했을거라고."
"그래, 그건 진우 말이 맞아. 그때는 몰아갈 특정인도 없었어. 이야기를 바꿀 필요도 없고, 덮어 씌울 것도 없고.. 근데 내가 궁금한건, 그렇게 똘똘하던 놈이 왜 갑자기 묵비권을 행사했느냐, 이거야. 너 일부러 그랬지?"
"에이, 형님도.. 일부러는.. 어린 애 잖아요. 충격이 한박자 늦게 온거죠. 엄마랑 오빠랑 살해 당했다, 그것도 눈앞에서.. 그 상황에서 어떻게 멀쩡해요?"
지율이 잔을 비운다. 진우가 한찬 더 채워준다.
"... 멀쩡했어. 금방 잡을줄 알았으니까. 어떻게하면 잡을까, 그 생각하느라고, 충격 같은 거 몰랐어. 근데, 그 인간이.. 입 다물라 그러더라. 죽여버린다고."
"누가? 너한테?"
"장례식장에서 삼촌들한테, 내가 본 거 얘기하고, 빨리 나가서 잡으라고 하니까.. 병실로 데려다 주는 척 하면서 그랬어. 한마디만 더 하면, 나부터 죽는다고.."
"누가?"
"... 송창률."
종태가 두뺨을 감싸고 고개를 숙인다... 창률이, 창률이.. 중얼거린다. 눈만 치켜뜨고 지율을 본다.
"잠깐 생각을 다시 해보자. 지가 너를 죽인다는 말이었어? 아니면, 누구, 다른 사람이 너를 죽인다는 거야? 그럴 수도 있잖아.. 네가 자꾸 얘기를 하면, 그놈이 다시 와서 너를 죽일지도 모른다.. 그런거 아닌가?"
"몰라요. 그런, 말 속의 뜻까지 이해하기에는, 내가 너무 애였잖아. 근데, 그 이후에도 몇번을, 혼자 병원에 찾아와서, 그리고 나중에 미국으로 출국하는 날에도, 공항에서 비슷한 말을 했어. 아무 말 하지 말라고, 기억하지 말고, 절대 한국에 돌아오지 말라고."
"나참... 석호는 지가 죽였다 그러고, 창률이는 지가 죽인다 그러고.. 도대체.."
"석호 형은, 다른 뜻이죠. 자기 때문에 죽었다거나, 자기 대신 죽었다.. 그런 거 아닐까요? 형도 그때 나이가 있는데, 사람 셋을 어떻게 죽여요, 한방에?"
종태가 지율은 본다.
"너는 그래서, 그 이후로 증언 거부하고 입을 닫았다? 창률이가 시켜서?"
"송창률은, 집에서 무서운 존재였어요, 적어도 나한테는.. 엄마아빠도 터치 안하는 무법자..? 나랑 작은 오빠랑 맨날 숨고 도망다니고.. 그랬던 기억밖에 없어. 아무하고도 안 친하고.. 그렇다고 엄마아빠랑 사이가 나빴던 거 같지는 않아. 특히 얼마전까지도 아빠랑 둘이 산 거 보면.."
"그래, 그 놈이 진범이면, 형님이 알았을거야. 벌써 잡아 넣었겠지."
"그걸 알아볼려고 합가하신거 아닐까요? 뭔가 수상해서? 아니면.."
"공범."
지율이 짧게 답한다. 부정하는 두 사람.
"야, 그건 좀.."
부정은 해 놓고도, 좀처럼 반박하기가 힘들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너는,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큰 오빠랑 아버지랑..?"
"9 : 1."
"관련 있을 확률이 9, 없을 확률이 1?"
"아니, 관련 있을 확률은 100 프로고.. 엄마랑 작은 오빠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송창률 9, 아버지 1, 아니면 최소한 8 : 2..."
송창률... 꼭 한번 만나봐야겠다.. 지율이 안스럽다. 세상에 혼자인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진우가 자켓을 덮어주고 팔을 두른다.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는다. 막잔을 비워간다.
시환이 식당으로 돌아온다. 유리문을 열려다 세 사람을 보고 멈춰선다. 지율을 위로하고 있는 진우를 물끄러미 본다.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몸을 숨기고, 오던 길로 되돌아 나간다..
12.1.3 다시 경찰서
갈 곳 없는 시환이 터덜터덜 걷는다. 경찰서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앉아 시동을 켠다. 찬바람이 나와 몸을 잔뜩 움추린다. 하아.. 입김으로 손을 녹인다.. 하아... 이런.. 술냄새다. 아차.. 술을 몇잔 마셨구나... 다시 시동을 끄고 가방을 챙겨 나온다. 집과 경찰서 사이에 서서 고민한다. 가방 앞 주머니에서 지율에게 줄 사진을 꺼내본다. 결국 경찰서를 택한다. 안내 데스크 직원에게 묻는다.
"사진 몇장 넣을 건데, 봉투하나 있어요? 없으면 그냥 A4 종이도 괜찮고.. 접어서 쓰게.."
민원실에서 누가 부른다.
"류 형사님, 안 바쁘면 잠깐만 도와줘요. 특별팀이 맡으셔야 할 같은데, 오신 김에 상담이라도 좀 부탁 드려요."
"저요? 아, 근데 제가 요새... "
로비 한 복판이다. 차마 근신 중이라고 말하기 곤란하다.
"국제 결혼하셨는데, 협박 받으신대요. 방금도 전화 왔었어요."
"현재 진행 중이라구요? 협박이?"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예. 스피커 폰으로 받고 녹취했는데, 깡패들 같아요."
"피해자 분 어디계세요?"
"안쪽에, 2번 회의실에서 기다리세요. 4층 사무실에 전화드렸는데 아무도 안 받으셔서.. 맡으실거죠?"
"알겠습니다. 제가 가볼께요. 감사합니다."
정수기 앞을 지나며 믹스 커피 하나를 꺼내든다. 아주 진하게 탄다. 술 냄새 없에는 특효약이다. 호호 불어 식히고, 가글하듯, 입안 구석구석을 씻어내고 꿀꺽 삼킨다. 회의실로 들어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