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1 병원
서장과 통화하는 종태.
"지율이 데리고 원주 좀 가야겠다. 아버지 돌아가셨어."
이건 또 무슨... 아무 말도 못하고 한숨만 쉰다. 진우가 대신 전화를 받아든다.
"저 진우 입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진우 다친 건 괜찮나? 부러진 건 아니지?"
"아닐겁니다. 아직 엑스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 입니까?"
"원주에 말이야, 지율이 친아버지가 조금 전에 돌아가셨대. 치료들 하고 천천히 와. 아침에 너무 늦지않게만 보내. 지율이는 입원 할 정도는 아니지?"
"아닙니다. 좀 지쳐서 쉬고 있습니다. 일어나면,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자식.. 하필 오늘같은 날 냉동이 되고 그래... 그래도 그 쪽은 지율이 오빠가 알아서 다 하니까 걱정말고, 종태한테 사무실 비지 않게 인원 배치 잘 하라 그래."
"예, 말씀 전하겠습니다."
종태에게 전화를 돌려준다. 엑스레이 기사가 부른다. 휠체어를 밀고 안으로 들어간다.
"혼자 가지 마세요, 기다려요."
밖에 멀뚱히 앉은 종태. 전화기를 들여다 본다. 어디론가 문자를 보내는데 전화가 온다. 안면도 파출소다.
"수고하십니다, 문종태입니다. 임산부 찾았습니까?"
"밤늦게 죄송합니다. 정교현입니다. 임산부는 아직 못 봤구요, 대신에, 차량이 머물고 있는 호텔은 확인했습니다. 방 3개짜리 고급 스위트 룸을 얻었는데, 예약자 이름이, 저희한테 주신 그 여자분들이 아니고, 다른 사람입니다. 이분 조회해보니까 서울에서 사업한다고 되어있구요, 관련있는 사람인지 한번 보세요, 자료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이렇게 계속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수상한 정황은 없죠?"
"없습니다. 그냥 여자분 둘만 왔다갔다하면서 산책하고, 사이는 좋아보이구요, 아까 음식을 사가지고 들어가는 걸로 봐서, 임산부는 호텔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호텔을 대신 예약 해 준 사람이, 혹시 그 근처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알아볼수 있을까요?"
"여기 호텔이 엄청 많이 늘어서요.. 일단 같은 호텔부터 한번 알아는 보겠습니다만, 확답은 못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여기가 일이 계속 터져서.. 아까도 안면도까지 가다가 되돌아왔습니다. 이삼일 내에 저희 인원 보낼테니까, 그때까지만, 좀 수고해주십시오."
"아니요, 별 말씀을요. 큰 사건 아니라 슬슬 들여다 볼만 합니다. 안그래도 요즘 연말이라, 호텔 부근에 자주 순찰 나가니까요, 걱정마십시오. 잘 지켜 보겠습니다."
"염치 없지만, 한가지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예, 말씀하십시오."
"호텔에 들어가실 수 있으면, 임산부가 건강한지, 체크 한번만 할 수 있을까요? 출산이 곧 임박한 것 같은데, 조금 걱정이 되어서요."
"그정도 배가 불렀으면 호텔 직원들도 본 사람이 있을겁니다. 알아보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진우가 나온다. 다행히 골절은 면했지만, 인대가 상한 상태로 장시간 무리한 탓에 부종이 심하다. 응급실로 돌아와 치료를 받는다. 압박 붕대로 동여매고, 소염 진통제를 받아든다. 간호사가 찜질팩을 내민다.
"적어도 일주일은 다리를 높이 들어주시고, 냉찜질하세요. 2-3주정도는 심한 움직임 피하시구요, 무리하다 또 다치면 신경 손상 올 수 있으니까 조심하셔야 되요."
"경사 났구나. 차은석 입원에 강진우 부상, 이석호 잠수.. 아, 류시환 징계도 있지.. 잘들 한다.."
종태가 중얼거린다. 진우가 벗어놓은 신발 한짝을 들고 일어선다. 붕대를 감아 신을 수가 없다. 접이식 목발을 건넨다. 그 꼴을 보고 또 긴 한숨을 쉬는 종태. 전화가 온다. 경찰서다. 전화를 받으며 짜증을 부린다.
"아우, 그만해... 장사 접자, 휴업! 폐업!!!"
"정말로 며칠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뭐가? 누가?"
"주노 귀금속이요, 지금 막 털렸습니다. 경보 장치를 해지하고 들어갔답니다. 비밀번호를 알아낸 모양입니다."
"에이씨... 아무도 못 가! 알아서 하라그래!"
"뭔데요? 어디요?"
진우가 묻는다.
"너 귀금속...."
신발을 떨구고 전화기를 가로챈다.
"저 강진우입니다. 제 사건 인데요, 일단 누가 건들기 전에, 아무나 빨리 나가서 현상 사진 좀 찍어주세요. 오민규 곧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납치에 사용된 렉서스 도난 차량, 현재 위치 파악됬습니까?"
"찾고 있습니다. 하남까지 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큰 도로 주변은 곳곳에 카메라가 너무 많아요. 찍힐까봐 멀리 못 가고 오히려 가까운데 어딘가에 숨겨놨을 거에요. 그 동네 순찰하시는 분들께 협조 요청해주세요. 발견하면, 아는체 말고 저한테 바로 알려달라고요. 그리고, 작은 아들하고 어머님하고, 통화 기록 나왔습니까? 그것도 나오는 대로 보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끊는다.
"그 다리를 해가지고 뭘 언제 간다그래? 다른 사람한테 넘겨."
"아니에요, 거의 다 왔어요. 결정적인 증거 몇개만 더 모으려고 기다리고 있어요. 아이참.. 현장을 내가 가봐야되는데.."
"민규 갈때 같이 가던지? 내가 지금 데려다 줄까?"
"아뇨, 저 원주 가야죠, 지율이 일어나면.."
"됐어, 내가 데리고 갈게, 넌 집에 가서 쉬어."
"아닙니다, 형님은 조문객들 맡으시고, 저는 지율이 맡겠습니다."
"지율이가 뭐? 깽판이라도 칠까봐, 뭘 맡어??"
"별일 없겠지만 ... 지율이가 송창률 박사하고 사이가 안좋아요. 장례 치루다가 혹시 욱 하면..."
"창률이... 예전부터 좀 이상하기는 했었어. 지 오빠 의심하는 것도 이해해."
"친 오빠 아니라고.."
"나중에 사건 터지고 나서 알았어. 주위에서도 다, 전혀 몰랐었고.. 아, 모르겠다, 어디 대기실이라도 가서 잠깐 자자. 일찍 출발해야지. 너도 어디 누워야 다리를 올리지? 지율이 옆에 간이 침대 하나 갖다놓고 자던가. 4시면 되겠지? 4시 반?"
14.1.2 응급실
조심스럽게, 지율이 누운 침대 커텐을 연다. 시환이 곁을 지키고 있다 돌아본다.
"다리는 어때? 부러진 건 아니지?"
"아냐, 염좌.. 인대 조금 상했대. 2-3주 조심하라고.."
"많이 부었네. 산속에서 그렇게 냉찜질 했어도 효과가 없어?"
"그러게 말이다. 전신 냉찜질을 다 해보고.. 강지율 대단해, 난 그거 잠깐도 죽겠던데, 어떻게 그러고 몇시간씩 버텼어?"
"형 아니었으면 둘 다 큰일 났을거야. 잘했어."
"너 아니었으면, 셋 다 큰일 났을거야. 고맙다."
"..."
대화가 끊긴다. 평소 쉴새없이 떠들던 둘이.. 할 말이 없다.
"피곤하다.. 나 밖에 대기실에서 잘께."
"내가 있을께, 들어가. 아침에 사무실에서 보면 되지 뭐."
"아, 너 모르는구나.. 아버님 돌아가셨대. 새벽에 원주간다."
"진짜? 에이, 나 인사도 못드렸는데? 한번이라도 가볼껄.. 엄마가 같이 가자그랬었는데."
"맞다, 어렸을때 친했다 그랬지? 야, 집에 연락 드려, 너무 늦었나? 내일 아침에 하던지.."
"그래야지.. 와아, 아버지까지.. 일이 터질려니 아주 바바방..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있잖아.. 내가 지금 고민 중인데.."
진우가 긴장한다.
"여청에 이정아씨 말이야, 알지? 그 분이.. 예전에 차 형사님하고.."
"맞아, 헤어졌어. 근데?"
"형도 알어? 아니, 그냥... 차 형사님 많이 다쳤잖아, 연락을 해야 되는지.."
"..."
"정아씨 보고싶지 않을까? 아픈데.. 근데 정아씨가 어떨지 모르겠어서.."
"둘이 좋아해."
"지금도? 근데 왜 헤어졌어?"
"형네 집에서 반대했지, 엄청. 어머니가 정아씨한테 많이 심하게 하셨어. 그때 싸우고 나와서 따로 살잖아. 저 분도 본가에 안 간다네, 이석호 처럼... 아, 너도 있구나, 류시환 처럼."
시환이 삐죽거린다. 자고 있는 지율을 본다.
"나 여기서 잘거니까 있다가 깨워. 원주 같이 가. 또 둘만 가기 없다?"
또... 라는 말이 신경쓰인다. 한마디 하려다 참는다. 침대에 기대놓았던 목발을 집어들고 돌아선다.
"자라. 고생했다."
"형은... 되게 자연스러워. 그치?"
"뭐가?"
"선배하고.. 나는 더 오래 알고 지냈어도, 아직도 많이 조심하고, 신경쓰이고 하는데, 형은 엄청 친해보여."
"...."
"여기 앉아있으면서 그때 생각했어, 클럽에 잠복갔다가 선배 병원 실려갔을때... 형은 어떻게, 그 침대에 같이 누워있을 생각을 했을까? 뭘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내가 여기 계속 있어봤는데, 소중하고 좋지만, 과연 내가 저기 올라가서, 누..울수 있을까? 내 맘대로...?"
시환이 줄곧 지율만 쳐다보며, 말을 이어간다.
"그렇거든, 나는.. 우리집에 와서 잘때도, 팔베게 해도 되나 물어보고, 허락받고 하는데, 형은.. 꿈 꾼다고 옆에 눕고, 젖었다고 호텔가고.. 아까도 춥다고 안고, 뽀뽀하고.."
"시환아, 그거는..."
"좋아하지? 나 때문에 말은 못하겠고.. 그런거 아니야?"
이상하다... 선뜻 아니라고... 말이 안나온다.
"거봐, 고민하잖아. 그랬구나. 내가 눈치가 없었네. 선배도 형하고 있으면 좋아보이긴 했어. 팀장님 말이 맞아, 둘이 잘 어울려."
"아, 됐고.. 사심 없어. 동료야, 친구, 후배, 동생.. 가족.. 뭐 그런거. 신경 쓰지마."
"안 쓰여...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다? 신기하지? 우울증인가.. 의욕이 싹 사라졌어."
"피곤해서 그래. 얼른 자. 나 요 앞에 복도에 있을께."
시환이 자켓을 들고 일어선다.
"아냐, 형이 여기서 자. 난 집이랑 사무실 들러서 필요한 것 좀 챙겨올께. 송이 밥도 새로 꺼내놓고.."
"이 시간에? 야, 좀 자야지, 하루종일 추운데서 뛰었는데..."
눈도 안 마주치고 나가버린다.
민규에게서 문자가 온다.주노 귀금속 현장 사진이다. 목발을 바닥에 눕혀놓고 앉아, 사진을 본다. 확대해서 꼼꼼히 살피며 메모한다. 문자를 보낸다.
/아직 가게지? 들어간 김에, 거래처 관리하는 장부같은거 있나 찾아봐. 잔금 밀리거나, 아니면 금융기관에 가게나 개인 명의로 대출, 사채 알아보고. 지인들하고의 채무관계, 며느리, 손녀, 아들 이름으로 상해나 생명 보험 있는지, 납치되던 날 갖다박은 트럭, 블랙박스 붙였다 뗀 자국 같은거 남았는지.. 내일까지 부탁해/
미안한 마음에 한줄 더 보탠다.
/추운데 고생하고 쉬지도 못했지? 일시켜서 미안. 나 아직 병원./
붕대 감은 발 사진을 사진을 찍는다. 목발 위에 살짝 얹어놓고 잘 보이게 각도를 잡는다. 민규에게 보낸다.
/병가 이틀 예정/
민규가 답한다.
/원주 가심요? 거기서 자게?/
소문 참 빠르다. 답을 하기도 전에 다음 문자가 온다.
/사무실 걱정 노.. 무리 금지/
/녱/
얌전히 대답하고 몸을 눕힌다.... 끄응... 신음 소리가 절로 난다..
14.1.3 원주 - 장례식장
장례식장을 찾아간다. 요양병원에서 멀지 않지만, 구불구불 시골길이라 왠지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벌써 화환 서너개가 도착해 자리를 지키고 섰다. 하얀 국화, 검은 리본.. 답답한 나무 문, 나무 바닥, 나무 창틀... 방금 도착했는데 벌써 지친다. 진우가 눈치챈다.
"괜찮아? 잠깐 앉을래?"
고개를 저으며 안으로 들어간다. 야트막한 평상 높이의 넓은 공간이 나오고, 낮은 테이블이 주루룩, 가지런히 놓인 방석들과 함께 조문객을 기다린다. 검은 옷을 입은 아주머니들이 음식을 준비한다. 흰 밥에 육개장... 커다란 국자로 휘휘 저어 건더기를 들어본다. 시뻘건 국물이 흐르고, 소금물에 빠진 머리카락처럼 무겁게 축 쳐진 야채들이 후두두 떨어진다. 지율이 고개를 돌린다. 진우가 옆으로 따라붙어 시야를 막는다.
몇 걸음 옮겨 분향실 앞에 섰다. 업자가 제단에 꽃을 설치하고 있다. 천사 플라워다. 장례식 꽃 업체로는 최고의 이름인것 같다. 영정 사진을 본다. 몇년 전 모습이다. 찬찬히 살핀다. 꽉 닫은 입술과 넥타이, 양복 자켓.. 오래 묵힌 경찰 뱃지와 훈장을 꺼내 놓았다. 그래, 아버지는 아주 멋진, 존경 받는 경찰이었다. 오래 전에...
"커피? 미안해, 종이컵 밖에 없대. 그래도 내가 탄 거니까 괜찮지?"
진우에게서 커피를 받아든다. 사진 속 아버지를 보며 한 모금 마신다.
"잘 생기셨다. 병원에서 뵌 거랑 많이 달라. 너랑 닮았나? 난 잘 모르겠는데...?"
지율도 갸우뚱한다. 어디가 닮았을까... 반쯤 남은 커피를 영정 사진 옆에 올린다. 가까이에서 다시한번 들여다 본다.. 다시봐도 닮은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최근 사진이 없어서.."
창률이 들어온다.
"전에 너한테 사진 고르라고 몇장 보냈는데 답이 없었잖아. 그냥 내 마음대로 했어, 이게 제일 아버지 같아서.. 맘에 들어?"
새까만 상주복을 입고, 팔에 삼베 완장을 둘렀다. 티비에서 보던 복장, 이십년 전 엄마 장례식에서 입고 있던 그런 옷... 눈을 마주친다. 물끄러미 한참을 본다... 오래전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말도 하지마, 아무것도 못 본거야.. 한마디라도 하면 너 부터 죽어../
"지율아? 뭐해?"
진우의 목소리에 정신이 든다. 여전히 창률과 마주보고 서 있다. 그제서야 시선을 돌린다. 창률이 들고 온 향을 제단에 놓는다. 두개를 꺼내 들고 불을 붙였다가 호 불어 끈다... 향로에 꽂는다.
"어제 몇번 전화했는데 안받아서... 나중에 알았어, 핸드폰 잃어버렸다고. 저녁부터 심박수 빠지고, 체온 떨어지고.. 두시간정도 지체하시고 가셨어. 준비 다 하신 것 처럼, 편안하게.."
세상에서 가장 무미건조한 상주다. 송창률과 강지율... 모르는 사람 장례식에 온 것 처럼, 아니, 장례 업자가 대금 받으러 온 것 처럼, 이것저것 들여다보며 어설픈 인사말을 준비한다. 무덤덤하게.. 어정쩡하고 뻣뻣하게, 방 한 복판에 서있다. 누군가가 분향실로 들어온다. 검은 천으로 싼 커다란 책자를 손에 들었다. 알 수 없는 한자가 쓰여있다.
"형님, 부의록은 어디에.."
남자가 들어오다 일행을 보고 걸음을 멈춘다. 진우가 돌아보고 놀란다.
"... 지율이 왔구나. 몸은 괜찮아?"
석호다. 휴가내고 사라진 이석호가 창률과 똑같은 상주복을 입고 서있다.
"형.. 뭐야..?"
진우가 묻는다. 석호가 답한다.
"어제 형님 전화 받고, 지율이 연락하다 안되서 먼저 내려왔어. 네 옷도 갖다 놨는데, 갈아 입을래?"
창률이 덧붙인다...
"상주 해야지. 우리집 둘째잖아, 시율이 대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