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14화 진실게임 3

무덤까지 가져간다

by 신소운

14.3.1 장례식장




밤 늦게야 도착한 시환, 뒤늦게 향을 피워 올린다. 창률과 석호에게 인사 후, 앉아서 쉬고 있는 진우 앞에 우뚝 선다.

"나도 옷 줘."

"너는 왜 또?"

"나도 상주야, 저 집 막내로 컸어."


"아, 왜들그래? 정작 지율이는 상복 안 입는대고, 쓸데없는 인간들만 자꾸.."

"일른다, 팀장님한테 쓸데없는 인간..??"

"너 말야, 째끄매가지고 기억도 잘 못하면서.."

"쓸데 있나없나 볼래? 나 지금까지 형 사건 캐다가 인제야 왔거든?"

"네가 자진해서 하고 온거지 내가 시켰어? 왜 나한테 큰소리야?"


"야, 시끄러! 왜 상가집에서 소란이야? 떨어져!"

갈 채비를 하고 나오던 선배가 말린다. 진우가 앉은채 인사한다.

"가십니까?"

"그래야지, 다 와있으면 누가 일해. 형님 잘 모셔, 술 더 주지 말고.."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니들 걱정이야. 죽고 못살던 놈들이 왜 그래, 갑자기?"


지율이 시환을 부른다. 손에 가방을 들고 있다.. 상주복이다..?

"야, 강지율! 그건 아니지.. 상주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들은 척도 안하고, 시환의 팔을 잡아 뒷방으로 끌고 들어간다. 상주복 받고 실실 웃는 시환을 보며 진우가 툴툴거린다.

"초상 났는데 웃어? 저 자식은 가끔 참 맹해.. 사람 죽었는데 웃기나 하고... 진짜 살인미소야."


늦은 시간, 손님이 현저히 줄었다. 진우가 절뚝 거리며 분향실로 간다. 석호 앞에 선다.

"나랑 교대해. 가서 쉬어."

"너나 어디 가서 다리 올리고 누워. 덧난다."

"그래요, 강 형사님. 열쇠 드릴께요, 저희 집 아시죠? 유리랑 먼저 들어가서 쉬어요."

"아닙니다, 아직 시간 조금 남았어요."

"가. 문 닫을때까지 안 있어도 돼. 시환이 왔으니까 뒷정리는 우리가 할께. 지율이 좀 쉬게해."


지율이라는 말에 수긍한다. 열쇠를 받아들고 뒷방으로 간다. 상복으로 갈아입은 시환이 완장을 차고 있다. 지율이 옷핀으로 고정시켜준다.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진우.

"그럼 나랑 지율이는 먼저 들어간다. 아들 셋이 잘 하고 와."

"나 더 있을건데?"

지율이 버틴다. 진우가 지율의 어깨를 잡고, 뚫어져라, 눈을 마주본다.


"들어가야지. 여기는 12시에 문 닫으니까, 지금 빨리 가면, 두시간 정도 우리 단 둘이 있는거야,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오붓하게..."

"어? 선배 안돼요, 가지 마요. 여기있다 다같이 가. 어딜 둘만 들어 가?"

시환이 반대한다. 진우를 응시하던 지율.. 재빨리 가방과 자켓을 들고 나선다. 시환이 진우를 잡는다.

"형, 반칙 쓰기 없다?"

"너는, 남아서 상주놀이 잘하고 와? 나는 공사가 다망하므로 이만 끝."




14.3.2 창률의 집




전속력으로 마구 달려 집에 도착하는 두 사람.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 불이란 불은 다 켠다. 거실을 지나 이층으로 뛴다. 송창률의 방... 잠겨있다..?

"에이씨.. 문이 안 열려.. 잠궈놓고 우리 먼저 보낸거야. 치밀한 놈."

"다른데 먼저 보자. 여기는 아버님 방인가?"

옆방으로 간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책장이 우뚝 서있다.

"어? 이상한데...? 책이 엄청 많았었는데 다 어디갔지?"

사람 살던 흔적이 전혀 없다. 오래걸려 치웠을 아주 많이 깨끗한 방.. 휑한 책상과 침대 하나만 남았다. 옷장을 열어본다. 아버지 소지품은 하나도 없고, 이불 몇 채와 베게 뿐이다.

"어젯밤에 돌아가셨는데, 이렇게 싹 비웠다고? 장난해?"

"이전부터 준비했잖아, 오래 앓으셨고.."

진우가 애써 중립을 유지한다.
"그렇다고 살아있는 사람 방을 다 치워? 죽기도 전에?"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송창률이잖아. 잘 봐, 오래 비어있었을텐데, 진짜 깨끗해."


다시 보니 먼지 한 톨 없다. 옷장안의 이불도 새로 빨아 놨는지 뽀송뽀송하다.

"싸이코야. 정말 정상이 아닌거야. 아버지 임종하는데 무슨 정신으로 이불 빨래를 해?"

"너 오면 쓰라고 해놨을 수도 있지."

지율이 힘없이 침대에 걸터 앉는다.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또 하나 늘었다... 진우가 책상 서랍을 열어본다. 손목 시계와 결혼반지가 들어있다. 그리고 가족 사진 몇 장... 어린 시절의 세 아이와 부모님.


"네 방도 있어? 가볼까?"

"거기는 방은 아니고, 창고 같은 거야. 나는 아직, 이 집에서 한번도 자 본 적이 없어서..."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긴다.

"서울에서 이사 올때 가지고 내려온 짐을 쌓아놨어. 우리 옛날 물건들이랑 아버지 아령, 액자, 뭐 그런거.."


문을 연다. 여자 방이다...! 펄이 들어간 아이보리 벽지에 레이스 커텐, 그리고 벽에는 지율의 어린 시절 사진들이 걸려있다. 폭신한 새 이불을 펼쳐놓은 침대와 화장대 겸 책상이 되어줄 하얀 탁자, 그 위에 둥근 거울까지...

"송창률 미쳤구나. 이거, 예전에 엄마 방이랑 똑같아..."



14.3.3 전화




테이블 아래 떨어진 핸드폰에 진동이 울린다. 안면도 파출소... 전화가 끊기고 메세지로 넘어간다.


/문 형사님, 안면도입니다. 호텔 예약하신 고혜진씨 이름으로 다른 방이 하나 더 잡혀있습니다. 같은 호텔인데 그냥 일반 객실이구요, 내일 체크인해서 열흘동안 예약 되어있습니다. 스위트룸 임산부는 아직 건강하구요, 시간 되실때 연락 주세요, 수고하십시오/


접객실 구석, 반쯤 벽에 기대고 반쯤 바닥에 누운 요상한 자태로 뻗은 종태. 전화 온 것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있다. 많지 않던 조문객도 하나둘 일어나고, 정말 빈자리만 남았다. 관리인 아저씨가 슬렁슬렁 대걸레질을 한다. 종태 자리만 쏙 비켜가며 청소를 마친다. 분향소도 하루를 접는다. 시환이 영정 사진 앞의 커피잔을 치운다. 기환에게 묻는다.

"한밤중에 누가 커피를 드렸어요, 잠 못 자게? 진우형이죠?"


한참을 들여다 보다 한번 더 묻는다..

"... 삼촌, 아까 진우 형 봤어요? 솔직히 누나랑 잘 어울리죠? 속상한데, 밉지는 않아요, 그래서 더 짜증이 나.."

석호가 들어오다 듣는다.

"뭐가 짜증나?"

"아니요, 그냥.. 팀장님 저 술 먹어도 되요? 문 잠그고 우리끼리 한잔하면 안되나?"

"그래, 내가 운전할께. 아니면 여기서 자도 되고.. 형님, 같이 한잔 하세요."


세 남자가 둘러 앉는다. 시환이 남은 국을 데우고 반찬을 내온다. 조용하다.

"말 좀 해요. 난 술 마실거니까."

"네가 해야지, 형님들 앉혀놓고 술 마시자며?"

"할말 없어요, 그냥 술이 먹고 싶어서.. 먹고 잘거니까 버리고 가지나 마요."

"문 형사님 옆에 가서 자."

"싫어, 코 골아."


무의식중에 나온 반말.. 슬쩍 석호의 눈치를 본다.

"뭘? 너 원래 반말했었어, 코딱지만할 때.."

"그놈의 코딱지.. 그거보다는 컸어요."

"형님도 시환이 생각나요? 맨날 아파가지고, 어머님이 생강 같은거 끓여서 먹이고.."

"넌 별걸 다 기억한다?"

"그게 맛있었거든요, 마늘이랑 생강이랑, 꿀 많이 넣고.. 설사하고 토하고 할때 먹이신거.. 얘 먹을때마다 옆에서 뺏어먹었는데.."


"난 몰라, 기억 안나. 근데 거기가면 형들이랑 누나가 있어서 좋았어요. 시율이 형이 맨날 업어주고.."

"맞아, 시율이가 너 업고 다니고, 내가 지율이 업고 다니고.. 시장가고 놀이터 가고."

"난 어렸을때 시율이 형이 내 진짜 형인줄 알았어. 이름도 비슷하고 생긴것도 비슷하고.. 그쵸? 닮았다는 말 되게 많이 들었는데.."


"그렇겠다. 시율이 살아있었으면 많이 비슷했겠다. 그래서 지율이가 너랑 친한가?"

"인제 아니에요. 진우형한테... 뺏겼어요."

"오호.. 그래서 술먹자 그랬구나?"

"아, 속상해.. 피곤하고, 졸리고 배고픈데... 속상한게 제일 커."

"애냐? 그냥 잊고 자. 자고나면 괜찮아."


"연애 안 해봤죠? 그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요? 그러니까 장가를 못가지.."

"어쭈? 기다리는 중이야, 한 여자! 딱 한 여자만 사랑할려고.. 옛날에 아버지가, 지율이 아버님이, 그러셨어, 진짜 남자는, 평생 한 여자만 사랑하는 거라고."

"아버지가 너한테?"


"예, 그게 되게 멋있어 보였었어요. 저는 저희 아버지랑 별로.. 바쁘셔서 한달에 한두번 봤는데, 그날은 시험보는 날이었거든요. 두분이 문제를 만들어 오세요. 시중에 있는 문제집은 내가 다 아니까, 본인들이 시험문제를 내오고, 나는 방에 들어가서 두세시간씩 앉아서 풀고, 채점 매기고, 틀린거 공부하고.. 그러면 다시 각자 집으로 가고.. 난 내 부모님하고의 기억이 그거밖에 없어."


"우와, 대박.. 그래서 맨날 누나네 집에 와있었구나? 되게 부러웠겠다.."

"그럼, 엄청 존경하고... 좋았어. 아버지.. 아니 아버님이 내 우상이었어. 저런 어른이 되어야지, 저런 남자가 되어야지.."

창률이 술을 마신다. 석호가 묻는다.


"형님은 근데, 친부모 아닌거 언제 알았어요? 나는 전혀 몰랐는데.. 나중에 경찰 되고 나서 알았어요, 사건 파일 뒤져보다가.."

"나는 다 커서 입양됬어. 초등학교 들어갈때 부터 아버지 아들이었지. 애들이 놀릴까봐 출생신고도 다시 하시고, 친아들로 올리시느라고... 실제보다 나이도 한살 줄었어, 재판하고 심사하고.. 시율이는 끝까지 몰랐을거야. 걔는 애기였거든, 한 두세살?."

"한번에 둘을 입양하신거에요?"

"원래는 시율이만 가는 거였는데, 애가 피부병이 심했어. 어머니가 자원봉사하시다가, 자기가 집에 데려가서 24시간 돌봐야한다고 아버지를 설득했어. 나는 그냥, 덤으로 묻어가고."

"역시 어머니를 엄청 아끼셨어. 입양이 쉽나.. 부인 말에 둘이나 턱턱 데려가시고.."

"턱턱 정도는 아니고, 반대를 많이 하셨지. 원래는 시율이만 가는 거 였는데, 내가 데려가 달라고 한거야."


"진짜요?"

시환이 깜짝 놀란다.

"시율이 데리러 오신 날, 내 발로 걸어가서 나도 데려가라고 했어. 책임지라고."

"우와, 형님 그때도 특이하셨네요? 애가 지발로 입양해달라고..?"

"설마, 진짜로 그것 때문에 데려갔을까요? 그 한마디에?"


"내가 그때, 말을 안했었거든. 두 분 다 알고 계셨고, 아버지는 내가 일부러 자기하고 말을 안하는 거라고 생각했었고... 반년 넘게 침묵하던 애가 갑자기 말을 한게, 나 데려가요, 책임져요.. 반갑고, 놀랍고, 내키지 않았겠지만, 어쩔수없이 데려가셨지. 내가 당신들을 필요로 한다는 걸 아셨으니까."


"그래서 뒤늦게 출생신고를 하고.. 친아들이 되신거네요. 좋다, 서로서로."

"아마 보통 사람이면 그렇게 못 했을거야.. 생년월일도 다 바꾸고, 주민번호 바꾸고.. 아버지가 여기저기 도움 받아서 하셨을건데, 자세한 건 모르겠다. 애 많이 쓰셨어. 친아들 만드느라.."

"친하셨죠? 뭔, 남자끼리 친한게, 그렇게 친한거 말고.. 그냥 마음이요.."


"고마운거지, 평생.. 할말은 많은데, 겉으로 못하고, 얼마전까지도 누워계신거 한참 그냥 바라보는 그런거.. 돌아가실때까지 내 걱정 하셨을거야. 유리랑.. 유리는, 잘 지내는거지? 일도 잘하고?"

시환이 툴툴거린다.

"너무 잘해서 탈이죠. 누굴 닮았는지 인간미는 하나도 없고.. 아, 이제보니까 큰 형님 닮았어. 그 집 식구중에 그렇게 인정머리 없기 힘든데..."


"너 술 들어간다고 막 나간다?"

석호가 웃는다.

"그렇잖아요? 형님은 막 죽은 사람 쭉쭉 째고, 선배.. 아니, 누나는 산 사람 막 퍽퍽 갈기고.. 용의자를 사람으로 안봐요, 자기 샌드백이야. 어우, 둘이 똑같애."


"그렇게 좋다고 따라다니더니, 너 진짜 채였어? 이렇게 갑자기?'

"몰라요, 채일 자격이나 있나.. 나 왕 무시하고 둘이 쌱 사라진거 봐. 대놓고 약올려.. 봐라, 인제, 좀있다 청첩장 돌릴지도 몰라. 강진우 그 사이코.. 뭐에 꽂히면 뵈는게 없잖아."

"진우가 왜 싫어? 걔는 아직 여자 문제로 사고 친 적은 없어."

"아, 또 그 얘기.. 나 아니에요, 진짜로 선배 좋아했는데.."



석호가 정색한다.

"류시환, 잘 들어. 네가 지율이를 선배, 누나...라고 하는 순간, 넌 이미 강진우한테 진거야."

창률이 키득거린다.

"진짜요? 그거에요? 그럼 뭐라그래? 야..?"

"쎄다.. 할 수 있으면 해보던지. 근데 네가 지율이한테 야.. 라고 하는 순간, 넌 아마.. 국과수 부검 테이블에 누워있을거다. 순간이동으로 슈우욱..."


창률이 건배한다.

"살살 할께. 걱정마."

"아, 형이 더 무서워.. 그런 얘기를 막 웃으면서 하냐.."

석호가 달랜다.

"웃어, 웃고 넘어가. 지율이도 그냥 선배로 남고, 진우랑 잘되면 좋고, 거기도 또 결과가 어떨지는 모르는 거고.."


"짜식아, 두 놈이 덤비면 여자가 선택하는대로 따르는 거야...!"

잠 자던 종태가 벌떡 일어난다.

"네가 제일 좋아하던 선배잖아. 네 눈에 그렇게 멋있는 놈이, 여자 눈에는 얼마나 멋있겠냐.. 게임 끝이지. 세상은 넓고 멋진 선배는 많다..! 소심해가지고 혼자 그렇게 똥줄 타다 놓치는 거라고. 그냥 멋있게 보내줘!"

"삼촌도 여자 뺏겼죠? 선배한테? 너무 잘 아는 것 처럼 말하는데?"


"그래, 임마. 뺏겼다... 뺏긴게 아니라, 말도 못 꺼내보고 가는 거 고이 지켜봤다."

종태가 옆에 와 앉는다. 술 한잔 받는다.

"진짜요? 삼촌답지 않은데? 막 땡깡부려서 싸울것 같은데 왜 그냥 보냈어요?"

"내가 무지 좋아하는 형이었거든. 멋있고, 집안 좋고, 잘생기고.. 참 교양있고 말이야 .. 우리집은 촌이잖아. 와, 정말 참 내가 홀딱 반한 서울 남자!! 근데 그런 남자를, 여자들도 좋아하더라 그거야."

"슬펐어요? 그래서 아직도 첫 사랑 노래하고?"

"그 당시에는, 생각보다 괜찮았어. 나도 솔직히 미래를 꿈꿀 상황은 아니었고, 나보다는 다 갖춘, 그것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배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누나랑.. 잘 됬으니까."

"오, 연상..?? 나랑 스토리가 똑같네?"


"그러니까 잘 새겨들어. 걔들은 운좋게 시간대가 잘 맞은거야. 네가 못나서가 아니라, 둘이 상황도 비슷하고, 잘 통하고.. 공감대가 많다고. 너 따라다니면서 뒤치닥거리하는 거 보다, 진우가 한두살이라도 오빠니까 다 해주잖아. 다 참고."

"참는건 내가 더 잘 참아요. 진우형이 얼마나 쫌팽인데? 선배한테 막 삐지고 화내고."


"멍청한 놈. 그게 사랑인거야, 임마. 좋아하니까 실망하고, 걱정하고, 삐지고.. 너처럼 찍소리 못하고 누나누나 하는 건, 연예인 좋아하는 팬클럽 같은 거고, 진우는 자기 여자니까, 아프면 같이 아프고, 힘들면 같이 힘들고.. 보호하느라 애쓰고 맘고생하는 거지. 틱틱 거리고, 달래고, 그러면서 더 가까워지고.. 니들이 연애를 뭘 알어?"

석호가 웃음을 참는다. 진지하게 듣고 있는 시환이 더 어린애 같다. 창률과 둘이 건배를 한다.


"삼촌은 나랑 강진우랑, 누가 더 나아요? 남자로서? 솔직하게?"

"강진우."

"경찰로는?"

"강진우."

"사위는?"

"강진우."


"너무하십니다. 하나라도 좀, 거짓말로라도 좀 해주시지.."

석호가 한마디한다. 종태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아니, 저 놈은 멀었어. 철들려면 5살은 더 먹어야돼."

급 우울해진 시환이 묻는다.

"그래서 삼촌 첫 사랑은 잘 살아요? 혼자 막 신원조회 해보고 그러는거 아냐?"


"크크크... 잘 살지, 아주 잘 살어. 아, 진짜 예뻤는데... 얼마전에도 한번 우연히 만났어, 노원구 오연수.."

"아우, 닭살.. 오연수가 무슨..? 삼촌 눈에만 그런거에요."

"진짜야, 임마? 엄청 운동권이라서, 나 전경일때, 우리때는 전경이라고 했었지.. 그때 여대 앞에 진압 나가면 맨날 그 엄청 많이 모여있는 맨앞에 서서 노래하고 춤추고.. 전경들 사이에서 엄청 유명했어."

"오호~ 전경 시절에 운동권 여학생이랑?? 삼촌 멋있었네?!"


시환이 박수친다. 그런 시환을 보며 종태가 웃는다.. 취했는지, 기분이 좋아진다..




14.3.4 화랑로




/회상 - 학생 운동




재단 비리 척결, 친인척 낙하산 채용 취소, 등록금 인상 백지화...

예쁜 글씨체에 어울리지 않는 무거운 단어들이 벽에 가득 붙었다. 수백명의 여학생들이 화랑로를 막았다. 언제나처럼 풍물패를 사이에 두고, 전경들과 대치한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모두가 힘들잖아요

기쁨의 그날 위해 싸우는, 동지들이 있잖아요

혼자라고 느껴질때면 주위를 둘러보세요

이렇게 많은 이들 모두가 우리 동지 랍니다../


여학생들의 집회는 당연히 노래로 시작한다. 반주도 없고, 마이크도 없지만, 박자 맞추어 박수만 쳐도 제법 연습 많이 한 동네 중창단 쯤은 된다. 청바지에 하얀 티와 면장갑으로 통일한 몸짓패가 율동으로 분위기를 띄운다. 진압 몇번 나가보면 금방 외울 수 있는, 쉬운 노래에 가벼운 동작이다. 즐거워 보인다. 세대에 맞춰 발랄하게 바뀌어가는 운동권 노래에, 가끔은 속으로 따라부르기도 한다. 한 여학생에게만 집중하며 몰래 웃고 있는 젊은 종태도 그 중 하나다.


싸이렌을 울리며 몇대의 경찰차가 추가로 도착한다. 사복 경찰들이 내리면, 갑자기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이제 시작이라는 뜻이다. 노래도 멈춘다.

"돌아가서 공부해요, 기말고사 아직 안 끝났죠?"

확성기를 잡은 젊은 경찰.. 큰 키에 깨끗한 얼굴.. 집회 때 자주 본다.

"돌아가서 수사해요, 범인 아직 안 잡았죠?"


경찰과 똑같은 말투로 답하는 학생회장의 재치에 여학생들이 까르르 웃는다. 확성기를 잠시 내리고 마음을 다잡는다.

"집회 신청 안 하고 이러는 거 위법입니다."

"신청해도 허락 안해주는 건 합법인가요?"

"해산하세요."

"퇴근하세요."


한마디도 안 지고 말대꾸하는 학생 회장에, 결국 두손들고 확성기를 내려놓는다. 혼자서 뚜벅뚜벅 ... 학생들을 향해 걸어간다. 와아~~ 함성을 울리며 환영하는 여학생들.. 형사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한다.

류형호! 류형호!

멋있다! 들어와, 들어와!

아저씨 몇살이에요? 무술해요? 몇단이에요?

짜장면 사주세요~~


이미 안면이 있는, 인연이 깊은 학생회장에게 다가간다. 학생회 간부들과 모여서서 한동안 대화를 해보지만, 양쪽 다 물러나지않는다. 결국, 기다리던 지휘팀에서 무전이 온다.

/강제 해산합니다. 3분 후 실시/

무력 충돌을 막아보려는 류형호가 지시를 번복해 달라고 답신하지만 버겁다. 상황을 눈치를 챈 학생들이 팔짱을 끼고 저항 준비를 시작한다. 명령을 받은 조장들이 간단히, 그러나 세세하게 지시한다. 발이 빠른 공격조에 이른다.


"앞에 딱 두줄만 잡는다. 쟤들이 주동자니까, 뒤에 애들은 도망가게 놔두고.. 중간에 풍물패는 건너 뛰는 거야, 괜히 악기 들고 뛰다 넘어지면 다쳐. 그리고, 저쪽에 키 큰 애들 있지? 가운데 학생회 간부들 옆으로 쭉 서있는 애들? 쟤네들이 일당 백이야. 하나당 최소한 셋씩 붙는다. 무조건 먼저 넘어뜨리고, 다리부터 잡아서 연행해."

"발을 잡아서 끌라구요? 아스팔트라서 뒤통수 다 까질텐데요?"

신참들이 당황한다.


"쟤들, 격투기하는 애들이야, 체육학과... 저기 맞으면 너 대가리 터져. 니꺼 터질래, 쟤꺼 좀 까질래?"

"겨우 등투 (등록금 투쟁) 나온 애들한테 너무 한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등투는 교내에서 해야지, 왜 밖에까지 기어나와서 도로를 막어? 허가 받지 않은 불법 집회, 불법 점거야. 다 잡아들여."


무전으로 상관과 이야기하던 류형호가 결국 뒤로 물러난다. 3분 되었다는 신호다.. 딱딱한 워커를 신고 줄맞춰 이동한다. 살살 맞아도 최소한 3주 타박상이다. 지정 받은 목표물 한명씩만 노린다. 3인 1조.. 비겁하지만, 전술이라 부른다. 방금 전까지 짜장면을 외치며 장난치던 모습은 사라지고, 맨손으로 덤빈다. 물불 안가린다. 차마 여학생을 때릴 수 없어 몸으로 막아본다. 처음 얼마간은, 버틸만하다...


퍽.. 여학생의 발차기에 저만치 나가떨어지는 첫번째 희생자가 생겼다. 슬슬 열받기 시작한 전경들이 달려든다. 개인 감정으로 무장한다. 체육학과 학생들이 거칠게 저항한다. 어느쪽이라 할 것 없이 똑같이, 하나씩, 둘씩... 부상자가 속출한다. 5분, 10분... 체대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앞줄이 무너진다. 학생들이 흩어진다.

"잡아!"


기다렸다는 듯이, 종태가 뛴다. 여학생 하나를 추격한다. 무리가 다 떨어져 나가도 계속 한 방향으로 몰아, 아무도 없는 주택가까지 간다.

"연수 누나!"

여학생이 뛰다가 멈추고 뒤돌아본다. 쌍커풀 없는 눈, 땀과 먼지로 꼴이 말이 아니다. 아까 몇대 뜯고 싸운 덕에 얼굴에 상처가 났다.


"아이, 씨.. 더럽게 빨라.. 그만 좀 뛰고, 문 열린데로 들어가 숨어있어, 빨리!"

누군가 따라온다. 점점 가까워지는 구둣발 소리.. 급한 마음에 연수와 함께 뛴다. 좁은 골목으로 꺾어드는데 공사중으로 막혀있다. 갈 곳이 없다..!

"조연수 거기 서!"

골목 안으로, 류형호가 들어선다. 무서운 얼굴로 연수를 노려본다. 헉헉 거리며 숨쉬기도 힘든 세 사람..


종태에게 눈으로, 가라고 지시한다. 형호에게 인사를 하고, 옆을 지나 재빨리 골목 밖으로 뛰어나간다. 전경들이 달려온다.

"어디야? 놓쳤어?"

"옆으로 샌 거 같습니다. 이쪽은 막힌 골목 입니다."

"걔 골수야. 꼭 잡아! 뛰어!"

우르르 뛰어가는 전경들.. 신발을 묶는 척, 종태가 골목 안을 슬쩍 들여다 본다. 벽에 바짝 붙어 선 연수를 류형호가 자켓으로 가리고 있다. 두 사람의 다리만 보인다.

"문종태! 뭐해? 빨리 와!"

"예, 갑니다!"

연수를 맡겨두고, 옆길로 뛴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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