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2월29일

16화 끝 2

마지막 회

by 신소운

16.2.1 서장실



복잡한 얼굴의 서장이 조 팀장, 이 팀장과 마주 앉았다.

"나왔어? 에유, 이런.. 진우가 같이 있으니 됐네. 얼른 마무리 하고, 둘 다 올라오라 그래. 원칙적으로 지율이는 빠져야되는 거잖아. 지 사건을 지가 파고 있으면 어쩌냐. 하지 말라고도 못하겠고, 하라고도 못하겠고.."

"이 사건 다시 오픈 해야되나요? 해도, 보나마나 공소권 없어요.

조팀장이 내키지 않는 얼굴로 이야기한다. 이미 넘쳐나는 업무에 많이 지쳤다.


"일단은 시신이 나왔고, 유전자 감식까지는 해봐야하니까 사건 번호 따야지. 엄밀히 말하면, 상도동하고는 별개의 사건이잖아. 그나저나 자백한 놈이 다 죽어가니 뭐, 하나마나지. 송창률은? 상태 어때?"

"희망이 없습니다. 연명 치료 거부를 권하고 있습니다."

"지율이가 안 하는 거야?"

"권한이 없어서요, 법적으로 가족이 아니라서.."


"아이고, 또 그놈의 가족 관계가 걸리는 구나.. 뭐 이런 그지같은, 그래서 그냥 놔둔다고?"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생존하고 있어도, 재판이나 수사에 참여가 안되는 상태니까,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해. 형님께는 죄송하지만, 지금 거기에 매달릴 상황도 아니고, 지율이도 앞뒤 다 알았으니까 괜찮을 거야. 석호가 잘 얘기하고 끝내."

"알겠습니다."


"조 팀장은, 총 쏘는 놈, 진전 있어?"

"용산구 끄트머리부터 바닥까지, 수직으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형태입니다. 그 선 안에 거주하는 놈인것 같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멀리 가지 못하는 걸로 보입니다."

"장애가 있나..? 아니면 그 무기들을 들고 다니기가.. 자기 차가 없으면,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가 쉽지않지. 카메라 찍히고, 교통카드 찍히고.."


"또하나 특이 사항은, 총격을 주로 대낮에 한다는 건데요, 한 건 빼고는 전부 이른 아침부터 퇴근 시간 사이고, 또 마지막 한 건 말고는 타겟이 동물이나, 빈 집, 주차된 차량 입니다. 사람을 공격한 건 민규, 딱 한번이구요."

"그래도 얼른 잡아야돼. 원래 동물 죽이는 놈들이 사람도 죽여. 짜릿함이 진화하는 거야."

"경찰에 대한 반감은 아닙니까?"

석호가 묻는다.


"그러기에는, 연습 시간이 너무 길지 않아? 그냥 와서 쏘면 되지, 처음 동물 학대로 신고 들어온 이후로, 지금 두달이 넘었어."

"과시용 아닐까요? 관심도 받고, 유명세 타고 싶은..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걸 즐기는 거요."

"무기의 종류도 다양해. 그걸 골고루 다 보여주고 있어. 보통은 숨어서 만들잖아. 비밀리에 사용해 보고... 근데 얘는, 큰 사고 치기도 전에 너무 떠벌려."


서장이 보탠다.

"어디서 돈 받고 지르는 거 아냐? 유트브나 방송 한번 나올때마다 얼마씩 포상을 받던지, 광고, 무기 자랑..."

"지난번 CCTV 에서도 모자를 쓰기는 했는데, 전혀, 숨기려는 의도가 없었습니다. 일부러 사제총을 손에 들고 편의점에 갔으니까요."

"망상병이 있나.. 내가 너보다 쎄다, 이런거 과시하는 거?"


"가능하죠. 꼭 평소에는 안되는 놈들이 갑자기 회까닥 해가지고, 무장하고 튀어나오잖아요. 다 그 조증 애들... 병원에도 좀 사진을 돌려봐야겠어요, 그런 애 있나."

"좋지, 병원.. 참, 은석이는? 오늘 퇴원이지?"

"구역 안에 작은 개인 병원으로 옮긴대요. 혼자 사는 놈이라, 집에 놔둘수가 없어서요."

"부모님은? 아직도 연락하지 말래?"

"지가 한다는데, 모르겠습니다. 한두살도 아니고, 놔둬야죠."


서장이 석호를 본다. 눈이 마주친다. 석호가 다른 곳을 본다.

"며칠 안 남았다. 사고 없이 잘 보내고, 신년에는 가족들하고 먼저 잘 지내.."

폴더를 덮는다.

"총잡이 잡을 때까지, 두 팀이 하나다 생각해. 벌써 빠진 인원이 너무 많잖아. 재정비들 하고, 가서 싹 다 잡아들여. 유흥가 단속도 딱 며칠만 더 신경 쓰고.. 연말이라고 술처먹고 자빠져 자다가 얼어 죽지는 말아야지."



16.2.2 원주



여기저기 전화로 바쁜 진우, 현지 경찰이 도착한다. 급하게 전화를 마무리하고 뛰어간다.

"가방 안에 시멘트를 부어놔서, 많이 무겁습니다. 국과수까지만 운반 부탁 드립니다. 연락은 해놨거든요."

"완전 뼈만 남았네요. 신분증이나 소지품 같은건.."

"이게 전부 입니다. 10년 이상 된거라, 유전자나 좀 건질까, 나오는 게 별로 없을 겁니다."

"가방 자체도 콘크리트 바닥에 묻혀있던거죠? 용의자 지문 이런것도 힘들겠는데요?"


"용의자가 먼저 다 자백 했습니다. 다 끝난 사건이라, 신원확인만 하려구요."

지율을 찾는다. 어디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수송차를 보내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이층방, 창률이 만들어 놓은 시율의 다락방 문 앞에 서 있다.

"뭐해?"

"생각... 옛날 생각. 이석호가 저기서 같이 놀다가 집으로 갔고, 나는 잠이 들었고, 오빠는 이 침대에서 죽었고, 엄마는 거실에서 죽었다... 그런 생각."


건조한 목소리... 진우가 할 말을 찾는다.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송창률 참 특이해. 살인 사건 난 방을 다시 똑같이 해놓고.. 이걸 나한테 주고 싶었다고? 평생 그 일만 생각하면서 살라고?"

뒤로 다가가 가만히 안는다. 천천히 말을 잇는다.


"그게 아니고... 형님이 평생 그 일만 생각했을거야. 편지에 써 있잖아. 이 집에서 자기만 없었으면, 완벽했다고. 그래서 자기를 빼고, 이 집만, 그 기억만 너한테 준다고."

"... 기억도 안나는데, 뭘... 싸이코."

"올라가자. 신원 확인 기다리고, 종료 해야지. 형님 상태도 봐야되고.."

품에 안은 지율을 돌려 세운다. 지율이 걸음을 멈춘다.


"만약에, 이석호가 문을 안 열어놨으면, 다 살았을까?"

"그렇게 생각해?"

"아니. 다 죽었을거야. 누가 먼저든, 어디서든... 죽이겠다고 덤비는데,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버텨."

"형님은,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거야. 그땐, 우리도 다 애들이었잖아."


걸음을 옮기려다 다시 멈춘다. 문틀을 본다... 진우도 지율의 시선을 따라 방문을 본다. 지율을 안은 팔을 풀고 걸어가 방문을 닫아본다. 손잡이 외에도 문을 빙 둘러 띠엄띠엄 달려있는 6개의 잠금쇠.. 안에서 다 잠그면 절대 밖에서 열수 없는, 문을 부수지 않는 한 절대 들어 올수 없는 다양한 장치들이다. 지율이 옆방으로 간다. 엄마아빠 방... 역시 여러개의 걸쇠들을 달았다.


"예전 집에도 이랬었어? 그때는 아버님이 달아 놓으셨었나?"

지율이 긴 한숨을 내쉰다. 고개를 끄덕거린다.

"응... 아빠랑 오빠들이랑... 방마다, 문마다.. 다 이랬었어. 맨날 우리한테 집으로 들어가라고, 밖에 나오지 말라고 소리치던게, 그런 거였나봐."

뒤에 선 진우에게 기대서며 중얼거린다.

"송창률 또라이야. 상 또라이.. 저런거까지 다 따라하면서, 지는 왜 약을 처먹어.."


16.2.3 신계동 사건 현장



<유상은 헤어 살롱>


완전히 박살나서 사방팔방 흩어진 유리 파편을 치운다. 가게 밖으로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내놓는다.

"어떤 놈이야, 간 떨어지는 줄 알았어."

"이거 다 못 쓰게 되어서 어떻해? 버려야지, 작은 거라도 남으면 위험해."

"털어보고, 그래도 자꾸 나오면 다 버려야지, 그거야 뭐.. 아유, 놀래라. 아직도 막.."

"안 다쳐서 다행이지, 누구 문 가까이에 있었으면 어쩔뻔 했니?"


길 건너편을 수색하던 시환이 탄피를 하나 줍는다. 방탄 조끼 안에서 작은 지퍼백을 꺼내 집어 넣는다. 주변 건물을 올려다 본다. 어디에서 쐈을까... 역시 단단히 차려입은 정환이 다가온다.

"크리스마스 싫어."

"갑자기요?"

"남의 생일에 미쳐 날뛰는 놈들이 왜 이렇게 많아."

시환이 미소 짓는다.


"형님은 그러면 안돼죠, 애기 어리잖아요. 보러 안가세요? 산타 해야지."

"와이프가 올라 올거야. 장모님이랑.. 둘째를 여기와서 낳겠대."

"어, 진짜? 잘됐다, 형님도 애기 보겠다, 그죠?"

"특별 단속 기간이잖아. 음주, 주폭, 동사 방지.. 아휴, 보나마나 매일 철야 뛸텐데.. 봐라, 애 낳는 날 싸운다. 그냥 거기서 낳지.."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죠. 아빠가 옆에 있어야지."

정환이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다. 주차된 차량들도 찍는다.. 빈 건물은 없어 보인다.

"있을 수가 있어야 있지. 딱 몇월 몇일 몇시, 그러면 시간 맞춰서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하겠지만, 그것도 아니잖아. 여기서 대기, 저기도 대기, 여기서 출동, 저기서 출동..."

"애 낳는 것도 출동이구나."

"출동이야, 응급이고.. 야, 너 그거 얼마나 스트레스인데?"


"뭐가됬든, 형님보다 형수님이 항상 +1이다 생각해야죠. 스트레스도 +1, 고통도 +1, 불편한것도 +1.. 뱃속에 생명도 +1.. 형님은 힘만 +1.. 그러니까 힘 센 분이 참으십시오."

"류시환이, 장가도 안 간게 되게 잘 안다?"

"안 갔으니까 꿈과 희망이 있잖아요. 다 예쁘고, 좋고, 행복할 거 같애서.."

큰길을 보고 선다. 만약 차로 이동하면서 쐈다면...?


"에효, 막상 가 봐라. 매일 철야 뛰는 기분이다, 펴엉생. 뭐 좀 나오고?"

"탄피 하나밖에 못 찾았습니다. 소리가 네번 이상이라는데, 이동을 하면서 쏜거라, 흩어진 것 같습니다."

지퍼백에 담은 탄피를 보여준다.

"그런걸로 지문이나 나올까? 너무 작은데?"

"쪽지문이라도 건지면 다행인데, 요즘 애들은 장갑도 끼고 해요. 범죄 드라마를 많이 봐서 너무 잘 알어."


"목격자나 부상자는, 쓸만한 건 없지?"

"여기는 없고, 저쪽 사거리요... 멀어서 얼굴은 못 봤는데, 손을 흔들고 지나가더래요."

"손을 흔들어?"

"예. 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고등 학생인데, 빗맞아서 가방 이렇게 스치고, 뒤에 유리 깨지고.. 그쪽을 쳐다봤더니, 손을 흔들더래요. 한 손에 총 들고.. 제정신은 아닌가봐요."


"아니겠지, 아니어야지. 심각한 과대망상이나, 게임이랑 현실 구분 못 하는 그런 거 아냐? 이거 어떻하냐, 빨리 못 잡으면 정말 일 나겠다."

"오늘 부상만 세명이에요. 심하지는 않은데, 정신적인 피해가 클거에요. 서울에서 총격이 뭐야.. 그것도 대낮에.."

"순찰 강화하고, 야, 너 헬멧 써! 어디 있어?"

"아, 써야 되는데... 지금은 사건 다 끝나고 온거라서.. 안 가져왔어요."


"야이씨.. 근처에 숨어 있는지 어떻게 알어? 내가 마저 둘러 볼테니까, 넌 바로 돌아가! 쓰고 다녀, 임마!"

"예, 죄송합니다."

탄피 넣은 지퍼백을 주머니에 챙기고 현장을 뜬다. 차로 향하는 시환에게 다가오던 리화가, 다른 크기의 탄피를 내보인다.

"저기 세탁소 위에, 2층 창문에서 떨어졌답니다. 사람은 못 봤구요, 세탁소 사장님이 보관하고 계셨습니다. 저도 올라가봤는데, 아무도 없습니다."


"에유, 고맙긴한데, 손으로 막 만졌겠네."

"그런것 같습니다. 주머니에서 이렇게, 맨손으로 꺼내서 주시더라구요. 군대 갔다 오셨다고.."

시환이 피식 웃으며 탄피를 챙겨넣는다. 차에 오른다.

"철수하십니까?"

"예, 리화씨도 타요. 헬멧 안썼다고 들어가래. 가서 지문이나 좀 돌려보죠. "


차에 오르려던 리화가 갑자기 뒤를 살핀다.

"왜요? 누구 기다려요?"

"아닙니다, 누가 쳐다보는 것 같아서.."

"왜 그래 무섭게... 빨리 타요. 바짝 낮춰서 앉아요, 머리 안 보이게.."

"괜찮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차에 오른다. 벨트도 하기 전에 출발한다.

"없으니까 더 무섭지. 있으면 안 무서워요, 잡으면 되니까.. 원래 안보이는 놈들이 더 무서운 거에요.."




16.2.3 용산 경찰서




저녁 식사가 배달 된다. 두 통 가득 음식을 들고 존 바울이 들어온다.

"와, 고맙습니다! 저녁 먹고 하자!"

"알바 옮겼어요? 노래방 인제 안하고?"

"저쪽가서 경찰 조사 받는 동안 다른 사람 구했어요. 짤린거죠."

"식당도 괜찮아요, 밥 주잖아요."

"진짜 좋아요, 맨날 다른거 먹어요."


"앞집 애들 전화해서 오라 그래. 얼른 먹고 또 나가야지."

조 팀장의 말에 박 형사가 전화기를 든다. 존이 음식을 꺼내 놓는다. 볶음밥, 비빔밥, 김치찌개.. 한 테이블 가득이다.

"잘 먹겠습니다. 야, 어떤 놈이 오므라이스야? 애냐? 민규지?"

"예, 며칠 집에를 못 갔더니 계란이 먹고 싶어서.."

"힘 되는 걸 먹어야지! 유흥가 순찰은 한두시간에 안 끝나."


"밤새는 거지 뭐.. 싸움 말려야지, 취한 놈 델구 와야지.. 아이고.."

모두 착석해 빠른 속도로 식사를 한다. 존이 빈 통을 챙기고 인사한다.

"고생 많으시네요, 수고 하십시오."

"고맙습니다. 자주 시킬께요."

"안녕히 가세요.."


문앞에서 저녁먹으러 들어오던 종태, 리화와 마주친다. 인사하며 한쪽 옆으로 비켜 섰다가, 게시판에 붙은 사진을 본다. 엽총을 들고 콜라를 사는 그 놈..

"어? 이 사람..!?"

먹다말고 돌아보는 형사들. 조용해진다. 종태가 묻는다.

"왜요? 그 놈 봤어요?"

"나 전에 폭탄 배달 시킨, 그 사람하고 비슷해요.. 키 작죠? 귀엽게 생겼는데.."


수저를 내려놓고 게시판 앞으로 우르르 모인다.

"확실해요? 이름이나 전화번호!?"

"아뇨, 그건 모르고.. 노래방에 손님으로 와서 혼자 놀다가, 3만원 주면서 택배 좀 해달라고.."

"그리고요?"

"손님이 선불로 낸 물건이라고, 그날까지 꼭 갖다줘야된대요. 물품 보관함에 넣고, 번호는 종이에 써서 그 옆에 광고판에 붙여 놓으라고 했어요."


"그때, 노래방 CCTV에서 용의자 지목했죠?"

"예, 저쪽 경찰서 가서 다 해주고 왔어요."

"약수역 전화해. 담당자 찾아서 우리꺼랑 사진 대조하라 그래."

민규가 자리로 가 전화를 건다.

"나머지는 얼른 먹고, 대기하고... 존 바울씨, 고마워요. 큰일 했네."


"같은 사람이면 좋을텐데요.. 근데 이 모자는 진짜 똑같아요. 그때는 목걸이도 했는데.. 사진에는 안보여요."
"이게 겨울 옷이라서 그럴수도 있어요, 여러개 입어서.. 어쨌든 진짜 고마워요, 잡으면 한턱 쏠께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잘 가요, 고맙습니다!"


"야, 참.. 류시환이 어디있어? 얘도 뭐 아는 애 같다 그러지 않았어? 확인 안 했대?"

종태가 밥그릇을 집어든다.

"시환이 은석이한테 갔는데? 요 앞에 사거리 내과로 옮기느라고, 도와주러 갔어. 금방 들어올거야. 설마? 시환이가 안다고?"

"아는 것 같다고, 영상으로 확인해본다 그랬는데, 아닌가..? 말이 없네?"

"먹고 기다려, 식는다. 리화야, 얼른 먹자..."




16.2.4 진우의 집




저녁 식사를 마치고 치우는 두 사람.

"피곤하지? 저기 앉아서 쉬자. 다 했어."

"티비보면, 멋있는 남자들은 파스타 해주던데?"

"다음에는 파스타 먹을까? 그게 더 쉬워. 폼 잡을일 있을때 해줄께. 오늘은, 많이 돌아다니고 피곤하니까 밥 먹어야지."

"엄마 같애."


진우가 웃는다. 수건에 물기를 닦고, 아직 식탁에 앉은 지율을 챙겨 창가로 간다.

"난 진짜로 살림 했잖아, 초등학교때 부터.. 아버지 챙기고, 동생 키우고.. 짜잔, 의자 좋지? 니가 개시야. 앉아봐."

커다랗고 푹신한, 아빠 곰 만한 의자다. 지율이 가까이 다가가자 재빨리 파고들어 자리를 차지하는 진우.

"같이 앉아야돼, 하나만 샀어. 그러니까 넌 여기 앉어."

손바닥으로 무릎을 툭툭 치고 팔을 활짝 벌린다. 지율이 살짝 삐죽거리면서도 올라앉는다. 꼬옥 안는다.

"좋다.. 그치? 이렇게 안고 있을라고 일부러 하나만 샀어."

"잘했어."

장난스럽게 뽀뽀하다가 바로 깊은 키스로 바뀐다. 진우가 후회한다..

"아아, 잘못 샀어..."

"왜? 다리 불편해?"

일어서려는 지율을 다시 당겨 안는다.


"아니, 그거 말고.. 침대를 먼저 살 걸.. 내가 왜 의자를 샀지?"

지율이 소리내어 웃는다.

"너 웃으니까 좋다.. 예뻐. 근데 진짜 네가 먼저 꼬신거야. 난 잘 참고 있었는데."

"젤리 먹은게 꼬신거야..?"

"응. 그게 뭐라고 그렇게 이뻐보이냐.. 갑자기 확.. 안 참아졌어."


지율이 뺨에 뽀뽀를 하고 몸을 기댄다. 편하게 눕도록 바짝 올려 안는다.

"너도 나 좋은거지? 언제부터?"

"... 처음 만났을때 부터."

"진짜, 그날? .. 그날 왜..?"

"달랐어.. 많이 다르고, 편하고, 좋았어..."



/회상


밤 늦은 사무실, 여기저기 까지고 멍이 든 채로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지명 수배자 명단을 꼼꼼히 살피며, 중년 남자들만 메모한다. 사무실 문이 열리고, 진우가 들어온다. 마치 알던 사람처럼, 의자를 끌어다 옆으로 앉는다. 화면을 한번 보더니, 턱을 괴고 뚫어져라 지율을 쳐다본다.

"나는 강진우, 복도 건너 강력팀. 너는 강지율.. 내가 오빠야, 두 살 위."


화면을 응시한 채로, 지율이 답한다.

"오빠 같은 거 없어. 살해 당했어."

"똑같네? 나도 동생 없는데.. 살해 당했어. 친구할께. 괜찮지?"

그제서야 지율이 처음으로 진우를 돌아본다. 모니터 불빛을 받은 미소가 따뜻하다. 다시 수배자에 집중한다.


"이 사건 알어? 너 한국에 없었지? 유명했는데.. 공범은 잡았는데, 이 놈은 아직이야. 누가 주범인지도 모르지만, 오래되었어. 벌써 어디서 죽었을거야. 지들끼리 서로 적이라서.."

자기것 처럼 자연스럽게, 시환의 책상 서랍을 열고 약을 꺼낸다. 손가락으로 톡 찍어 지율의 손가락 상처에 툭툭 바른다. 한번 더 찍어 자신의 입가에도 바른다.


"싸움 좀 하는구나? 그래도 관리를 잘해놔야 내일 또 싸우지. 하루이틀 할 것도 아닌데."

약을 집어넣고 바세린을 꺼낸다. 손등에 잘 발라주고 하얀 거즈를 감는다.

"거긴 안 다쳤어."

"알어, 그냥 피부 관리야. 손이 건조하면, 때리다 먼저 터져. 오늘은 이러고 자. 얼굴은 괜찮어? 멍들겠는데? 나랑 찜질방 가자. 팩 해줄께."


"안 가. 한번도 안가봤어."

"찜질방을 안 가봤어? 되게 좋은데.. 우리처럼 잘 데 없는 사람들은 딱이야. 따뜻하고, 사람들 많고... 밤에 하나도 안 무서워."

하나도 안 무서워... 그 말에 다시 한번, 그를 바라본다.


"아니, 그냥 혹시라도.. 무서워서 못 자는 거면, 그런데도 괜찮다, 그거지.. 아님 나 불러, 언제든지. 밤에 혼자 이러고 있지 말고, 이런 아저씨들 보고 자면 나쁜 꿈 꾼다."

허락도 없이, 지율의 노트북을 덮는다. 어두운 사무실로 주차장 불빛이 스며든다.

"자자. 3시야."


지율의 손을 잡고 소파로 간다. 잠깐 앉혀 놓고 익숙하게 담요를 꺼내온다.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베게를 만든다. 그가 이끄는 대로, 소파에 눕는다. 담요를 덮어준다.

"자장가라도 불러주면 좋겠지만, 나는 자장가를 싫어해. 무섭고 슬퍼. 꼭... 죽은 애기 묻어버리는 노래 같애. 경찰되고 나니까, 세상이 다 이상하게 보여. 넌 안 그래?"

"..."


핸드폰으로 조그맣게 노래를 튼다. 베게도 없이, 담요도 없이, 소파 옆 테이블에 벌렁 드러 눕는다.

"변진섭 모르지? 우리 형님이 좋아하는 노래야. 잘 때 들으면 착해져. 아까 사람 많이 패고 왔거든."

노래가 시작된다.


/어쩌면 처음 그대, 시간이 멈춘듯이.. /


진우가 조용히 따라 부른다.


/미지의 나라 그 곳에서 걸어온 것 처럼

가을에 서둘러 온, 초겨울 새벽녁에

반가운 눈처럼 그대는 내게로 다가왔죠../


소리를 하나 더 줄이고 지율 쪽으로 마주보고 눕는다. 담요를 잡아올려 귀까지 덮고 꼬옥 누른다. 엄지 손가락으로 눈썹 위에 붙은 반창고를 만진다. 눈이 감긴다.

"잘자. 내일 깨워줄께."

마법처럼, 잠이 든다.

/





<계속>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6화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