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1 병원
중환자실로 옮겼지만 여전히 의식이 없다. 산소 치료도, 투석도 성과가 없다. 간신히 심박수만 이어가는 의미없는 기계와 굳어가는 몸.. 창문 밖으로 바라보는 석호 옆으로 지율이 다가온다. 침묵 속에 나란히 섰다. 석호가 먼저 말을 꺼낸다.
"오랜만이네. 녹음기만 던져놓고, 얼굴을 볼 시간이 없었다."
"전화하지? 할 말 있었어?"
"사과를 전화로 어떻게 해? 만나서 해야지."
"사과 싫어. 그만해.. 지난거 잘 기억 안 해. 할 필요없어."
"유리야.."
"그러니까 팀장님도 잊어. 그날 문 꽁꽁 잠그고 나갔어도, 언젠가는 .. 그리고 누구든, 어디서든 어차피 죽었어. 시간은 좀 달라졌겠지만, 의미 없잖아. 그때 죽나, 다음에 죽나... 뭐가 달라."
석호가 고개를 숙인다.
"미안하다, 뭐라고 해 줄 말이 하나도 없네."
"하지마, 고작 열몇살때 일이야. 경찰 시험 볼때 배우잖아. 우리 잘못이 아니야. 살인은 다른 놈이 하고, 죄책감은 왜 남은 사람들이 가져? 그 놈을 잡아 죽여야지... 송창률이 잘 한거야, 깨끗하게.. 좀 일찍 처리하고 지도 좀 편하게 살지. 왜 혼자 낑낑거렸어, 쓸데없이.."
"마음 고생 많았겠지. 비위 맞추고, 달래고.. 가족 지키고, 동생..."
석호가 말을 끝내지 못한다.
"혼자 고생 다 하고, 왜 저러고 누워있어? 알아?"
"너한테 미안하고, 아버지 가셨으니까 다 밝히고 가려고 그랬겠지."
"다 밝히고 그냥 계속 살면 되잖아."
석호가 잠시 생각한다. 맞는 말일수도 있다.. 다 밝히고 그냥 살면 된다..
"그러네, 그러면 될걸. 형이.. 너한테 많이 미안했나 보다."
"그러니까 왜 미안하냐고.. 지가 죽였나. 살아서 똑바로 말하지. 살아있을때 다 설명하고, 얘기하고.. 둘이 똑같애. 아빠랑 송창률이랑.. 그까짓게 뭐라고 숨겨.."
"너, 괜찮은거야? 괜찮은 거 맞아?"
"괜찮지, 그럼? 그 옛날 일을, 언제까지 안고 살아? 피곤하게.."
석호가 창률을 본다. 이해할수 없지만, 최대한 맞춰본다.
"그건가 보다. 형이 피곤했던 거야.. 옛날 일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잊어버려지지도 않고 많이 힘들어서, 다 그만두고 싶은거."
"갈려면 좀 쉽게 가던가.. 의사라는게."
"쉬웠겠지. 니가 경찰인 걸 생각 안한거야."
"... 아프겠지?"
"응..."
"내가 살려줘서, 더 아플거야. 저럴줄 알았으면, 죽은 다음에 찾아줄걸."
"살려놓고 미안해하냐.."
"완전히 살리질 못했잖아. 치밀한 사람이야. 용법용량시간 정확히 계산 했을텐데, 내가 망쳤어."
"형이 들을지도 몰라, 좋은 말만 해."
"귀신되면 다 알텐데 뭐. 들으라 그래."
문자가 온다.
/07시 50분 용산역 이마트 부근 총기 부상 2명/
"어제 이어서 연속이네? 이런 적은 없었는데.. 들어가봐야겠다. 너는 더 있어, 천천히 와."
"검찰청 가야돼.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한다 그랬는데, 들어와서 얘기하래. 하필 지금 잠깐 시간 된다그래서 만나기로 했어. 아니면 시간을 다시 잡아야 되나?"
"아니야, 검사들 바빠. 오라 그럴때 가. 잘못하면 엄청 오래 걸려. 그거 종결하면 우리도 일거리 하나 더는 거고.. 이쪽은 알아서 할께. 다녀와."
"내가 더이상 안하겠다는데 왜 불러들이는지.. 미안해. 최대한 빨리 들어갈께."
"있다보자."
지율을 두고 석호가 뛴다. 복도 끝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지켜본다. 전화가 온다. 진우다.
"아직 병원이야? 서류는?"
"조금 기다려야돼. 담당자가 아직 출근을 안 했어."
"형님은 괜찮고?"
"어제랑 별 차이 없지, 뭐."
"그래, 잘 갔다오고, 미안해, 같이 못 가서. 우리 출동이야."
"알아, 문자 봤어. 이석호 지금 막 나갔어."
"아, 거기 있었구나. 그래, 먼저 가 있으면 오겠지. 끝나고 연락할께."
"나도 최대한 빨리 들어갈께, 오래 안 걸릴거야."
"그래, 있다봐. 사랑해."
".. 응, 나도."
처음 들었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랑해.. 쑥스러운 마음에 괜히 머리카락만 쓸어올린다..
16.3.2 용산역 이마트
교통이 통제된 넓은 도로에 빠른 속도로 집결한 경찰차들이 늘어섰다. 안전 장비를 갖춘 경찰들이 역과 마트 주변을 에워 싼다. 멀찌기 떨어져 핸드폰으로 촬영하는 사람들에게 경고 방송을 한다. 들은 척도 안하는 사람들, 움직일 생각이 없다. 서장이 폴리스 라인 안으로 들어선다. 조 팀장이 설명한다.
"건물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저쪽 편에서 입구를 향해 두발을 쐈습니다. 그리고나서 사람들이 우와좌왕 하는 사이에 길을 건너 오면서 다른 총으로 연속 4발 정도를 쏜것으로 보입니다."
"확실히 다른 총이야?"
"예, 총알 종류가 다릅니다. 두번째 것은 총알이라기 보다는 쇠구슬인데, 근거리에서 머리 부위를 맞으면 심각한 부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개조 상태가 장난이 아닙니다. 여기, 이 콘크리트 블럭에 이렇게.."
동그랗게 움푹 파이고 쩍 갈라진 시맨트 블럭.. 주정차 금지를 알리는 콘크리트 덩어리에 금이 갔다. 이걸 사람이 맞았다면...??
"부상자는?"
"직접 맞은 사람은 한명인데 출혈있어서 병원으로 이송했구요, 다른 사람은 그래도 한번 다른 곳에 튕긴 다음에 맞아서 좀 쉬다가 근처 약국으로 갔습니다. 둘 다 연락처 받았습니다. 다행히 영업 시작 전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탕! 탕!
비명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난 곳으로 뛴다. 리화가 쓰러졌다. 피가 흐른다. 벽에 박힌 총알로 보아 소형 권총이다. 방탄복을 입지않은 다리를 노린 것 같다. 게릴라 전처럼, 치고 빠진다.
"어디서 쏘는지 보이지도 않아.. 이래가지고 뭘 어떻게 잡는다고.. 일단 부상자 후송하고, 지원은 왜 아직도 안 나와?"
조 팀장이 리화를 올기라 지시한다.
"약수역 그놈인건 확실한거지? 한명이야?"
"예. 영상 분석팀에서 동일인이라고 확답을 했고, 현재까지는 한 사람으로 추정합니다."
"우리 구역 거주민이라 그러던데, 존 바울 말고 시환이는? 류시환가 알 수도 있다 그랬다며? 전화해봐. 뭐 시작점이 있어야 수사를 하지. "
조 팀장이 시환에게 전화를 건다.
"어, 시환아, 너 영상 확인 했냐? 아는 놈인거 같다며? 아니야?"
"죄송합니다, 다른 일들이 자꾸 생겨서 아직 확인을 못했습니다."
"너 지금 어디야? 지금 확인 돼?"
"아직 경찰서입니다. 지금 막 용산역 나가려고.."
"아냐, 여기 오지말고, 올라가서 영상부터 확인해, 아는 놈인가."
"그럼 저한테 보내달라고 요청해 놓고 현장으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던가. 조심해, 장비 다 갖추고 와라. 리화 맞았다."
"리화씨요? 상태는요?"
"다리야. 지장 없어."
수송 버스가 도착하고 완전무장한 타격대가 내린다. 조팀장이 반가운 목소리로 말한다.
"야, 기타대 왔다. 인원 충분하니까, 너는 여기 오지말고, 그놈 영상 확인해. 안되면 공개 수배라도 때려. 오늘로 날 잡은 것 같애. 이 새끼 신원 확인할때까지 다른 거 아무것도 하지 마."
"알겠습니다.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16.3.3 검찰청
병원에서 준 서류를 챙겨들고 복도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지율. 시간이 계속 지나지만, 앞서 들어간 사람이 나올 기미가 없다. 계속되는 문자에 점점 불안해진다.
/경찰 피습 다리 부상 병원 이송/
/현재 경상 3/
/버린 소총 1정 발견/
사진이 왔다. 조잡한 사제 총이다. 얇은 나무 조각을 길게 잘라 빙 돌려 묶었다. 발사시에 발생하는 열을 막아 손에 생길 화상을 피할거다. 격발했다는 증거도 그만큼 줄어든다. 싸구려 고무줄로 그립을 만든걸로 보아, 전문적으로 하는 놈은 아니다. 지율의 눈에는 아주 유치한, 흔한 인터넷 영상을 따라하는 초보 수준이다. 이거라면, 사격 거리도 길지않고, 원하는 만큼의 부상을 입히지 못했을거다. 쓸만한건, 아직 가지고 있다.. 뭐가 남았을까.
검사실 문이 열리고 두어명이 나온다. 직원이 부른다.
"강지율 씨, 들어오세요."
시간을 보며 안으로 간다. 이미 늦었다.. 검사와 마주 앉는다.
"이 사건 다시 시작하셨다 그래서, 제가 어제 밤에, 인계 받았는데요.. 지금 용산 경찰서 현직 경찰 이시라구요?"
"맞습니다."
"강지율씨가 사건 속 송유리였다, 관련 서류는 확인 했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생존자이고, 유가족이고, 피해자... 게다가 이제는 이 일을 수사하시는 경찰이시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상도동 사건과 관련된 두번째 살인 사건 용의자인 송창률씨와는 남매다.. "
"혈연은 아닙니다."
"오빠분이 입양이신거죠.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이거 제가 보기에, 조금 너무 주관적일 수 있어서요, 현직 경찰이셔서 많은 걸 밝히셨겠지만, 이제는 사건에서 빠지시고, 대리인을 쓰셨으면 해요. 본인 관련된 일이니까, 이해 하시죠? 수사관들 기본 규정 중 하나 잖아요."
"사건을 수사 하겠다는게 아닙니다. 종결하겠다는 겁니다."
"미제로 오래 남아있던 사건이고, 이영만이 사망했다니까 그렇게 종결을 해도 큰 문제는 없겠지요, 어제 발견된 사체가 이영만으로 결론 나면요. 그런데, 아들의 자백만으로는, 그 살인이 정말 이영만에 의해 행해졌다는 증거는 없잖아요. 게다가 두번째 사건은, 아무도 몰랐던 암수사건, 암수살인사건이고, 용의자 송창률 씨가 아직 생존해 있구요. 유가족이시지만, 이런 사건은 마음대로 그냥 덮을 수 없습니다."
"용의자가 회생 불가능하다는 병원 서류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받아왔습니다."
서류를 내민다. 검사가 열어본다. 대충 눈으로 훑는다.
"음독이라고 했죠? 알겠습니다. 상태가 안 좋은 것 같기는 한데, 결론이 날때까지는, 어쩔수 없습니다. 잠시 수사를 중지하는 걸로 하고, 사건은 열어두겠습니다. 이해 하시죠?"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분 일도, 가족으로서의 역할까지만 하시고, 더이상 수사관으로서의 자격은 없는 겁니다. 그 말씀 드리려고 오시라고 했습니다. 사건 당사자로서 마음 아프시겠지만, 용산서에서 맡으시는 것 까지는 뭐라고 안합니다. 대신, 담당은 다른 분으로 돌리세요."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갑자기 문자가 쏟아진다. 보지않는다. 검사가 서두른다.
"바쁘시네요. 그럼 저는 이제, 두가지만 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첫번째는, 가방 속 백골 시신이 이영만이라는 유전자 검사 결과, 그리고 송창률씨.... 건강 상태..죠... 결과 나오는 대로, 알려주세요. 아, 하나 더요, 이영만씨랑 송창률씨랑 친자 관계도 추가 하세요."
"아, 그게 빠졌네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병원 서류를 검사에게 넘기고 방을 나선다. 복도 한쪽에 서서 문자를 본다. 릴레이로 엄청난 문자들이 와있다..
/총격범 거주지 용산구 서계동/
/출발 합니까?/
/어떤 놈이야?/
/만리재로 269-3 천수 빌라 202호/
/정신병력?/
/군 정신질환으로 의병 제대 신청했으나 거절/
/문제 사병 자살 시도 네건 미미/
/나가려고 쇼/
/기다려 이쪽 인원 정리하고 함께 간다/
/거주지 주변 파출소에 지원 부탁/
/약수역 사물함 폭발범 신원 통보해주고 서계동으로 지원 부탁/
/서계동, 약수역 추가 지원 요청합니다/
/지율 선배는요? 검찰청입니까?/
/연락 없음 왜?/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전에 24시 식당 화장실 송곳 동일인/
/그 자식이야?/
/31세 양도훈 163 마른 체형 유년기 가정폭력 쉼터 4년/
/가족은?/
/서계동이 할머니 집 다른 정보 없음/
/방금 온라인 구매 내역 나왔습니다 파이프, 쇠구슬, 엽총용 총알 2팩, 질산 칼슘../
/맞네 시환 애들 몇 있냐?/
/승합차 두세대 가능합니다/
/다 오지말고, 거기가 타겟일수도 있어, 의경애들 전원 안정장비 갖주고 경계시켜/
/알겠습니다/
/진우 어디냐/
/아직 용산역입니다 이마트 서쪽 주차장/
/기타대랑 먼저 출발해 서계동에서 모인다 금방 갈께/
/출발합니다/
/문종태 류시환 서계동으로 출발합니다/
/리화 돌아왔나? 장비 입히고 용산서에 남겨/
/오는 중 입니다 상태 양호/
/이석호 용산역 도착했습니다. 수송차량으로 서계동 이동합니다/
/의경 장비 점검/
/알겠습니다/
지율이 문자를 한다
/강지율 서계동으로 출발합니다 여분의 장비 부탁드립니다/
/강지율 용산 대기/
종태다.
/서계 가겠습니다/
/용산서 대기라고 했다 송곳 그 놈이야/
종태에 이어 서장이 지시한다.
/강 경위 용산서 대기/
/선배님 용산서 계십시오 인원 필요합니다/
시환이 문자한다. 빠르게 답한다
/시환씨 장비 부탁해요 서계에서 봐요/
/안 가져갑니다. 용산 가셔서 직접 챙기십시오 저희 6명 지금 출발합니다/
"빌어먹을...! 왜들이래?"
비상구로 뛰며 종태에게 전화한다.
"... 경찰 노리는게 아니잖아요. 그냥 일반인이야."
"네가 어떻게 알어? 이틀 사이에 민규, 리화, 두명 맞았어."
"날 노리는 거면 내가 맡는다구요."
"그래서 안돼. 넌 한방에 쏴 죽일거야. 들어가서 대기해."
전화가 끊어진다. 차에 시동을 건다. 일단 출발부터 하고 본다. 시환에게 건다.
"총 남아요?"
"용의자가 거주지로 돌아갔는지 아닌지도 모릅니다. 일단 거기에서 총기와 폭탄을 제조 했는지, 증거부터 잡구요, 놈이 있으면 그건 그때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왜 대기에요? 그놈 얼굴 내가 더 잘 알아."
"그 놈도 선배를 잘 압니다. 장비 입고 돌아다니면 눈에 잘 띄고, 선배 노린다고 여자 경찰한테 먼저 쏠 수도 있습니다. 리화 바로 맞았잖아요. 우리가 그놈 보는 것 보다 그놈이 우릴 보는게 빨라요. 그리고, 지금 많이 들뜬 상태일겁니다. 집에 안들어가고, 다른데에서 쏘고 다닐수도 있어요. 안에서 총괄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여보세요? 선배님?... 끊었습니다."
"강지율이.. 그래도 총 챙겨 올려면 우리보다 늦어. 리화 연락해, 지율이 거기 잡아두라고."
지율의 차가 한강 다리를 건넌다. 용산서가 코 앞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