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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운 Feb 20. 2022

세월 따라잡기

낼모레 오십

친애하는 작가님들, 동료님들...

얼마남지 않은 2월, 잘 보내고 계신가요?


날도 춥고 몸도 피곤하고 해서 잠시 글쓰기를 쉬었습니다. 너무 열심히 했더니 역시나 체력도 바닥나고요, 학교 일로 좀 신경썼더니 반짝하던 아이디어들이 다 실종되었습니다. 밀린 잠을 핑계로 어제 오늘 미루다가 드디어 오늘, 큰맘 먹고 컴을 켰습니다. 얼마나 오래 안 건드렸는지 충전기부터 꽂았네요 ^^;


며칠 쉬는 동안 폰으로 이것저것 검색도 해보고, 오랜만에 옛날 사진도 구경했습니다. 아이들 사진으로 가득한 중에 어쩌다 독사진이 하나 있길래 옛날 말로 뽀샵을 해봤습니다. 요즘은 필터라고 하던가요.. 잘 안되네요. 얼굴에 생긴 주근깨와 짙은 점, 이제는 습관이 된 무화장 맨얼굴은 쉽게 예뻐지지 (?) 않았습니다.


이제 확실히 알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점점 줄어들던 제 사진... 아마 저는 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봅니다. 보정을 하는 기술도 없고, 하던 안하던 봐줄 사람도 없고.. 사실은 보정을 해도 안되는 거였죠...!!!


쿠구궁... 사실을 깨닫게 된 저는 잠시 충격에 빠집니다...


공감하시는 분들이 계신가요? 내일모레 50을 바라보며 아이 셋, 남편 하나, 동물 둘을 케어하는 저는, 이제 정말 포토제닉과는 영영 멀어지나 봅니다. 다들 그러셨겠지만, 왕년에는 빠지지 않는 미모였는데 으흑.. 억울한 마음에, 원래 잘 도움이 되지 않는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이 사진 뽀샵 좀 해봐. 얼굴에 점이 왜 안 없어지지?"

"음..... 레이저로 해야지...."


아.. 레이저 한방 쏴주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꾸욱 눌렀습니다. 그렇습니다. 뽀샵으로도 안되는 게 있었습니다. 본판이라지요.. 연예인도 아니고 의느님을 쓸것도 아니면 그냥 본판으로 살아야겠지요. 세월은 지나고 신제품은 많은데, 저는 왜 요즘 잘 나가는 보정 앱도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걸까요.


그러고 보니, 은근슬쩍 놓치고 있는게 많습니다. 아이들 게임기라고 무시하던 각종 기기들이 그렇고 (보세요, 이름도 모릅니다) 예전보다 훨씬 많아진 화장품, 마구 쏟아지는 신조어나 줄임말 (개인적으로 아주 싫어합니다), 갖가지 수식어가 붙은 패션용어...


몰라도 돼, 안해도 돼, 저런걸 왜 하니... 장삿속이라 비웃으며 외면하던 당당함은, 사실 따라가기 벅찬, 자포자기의 다른 얼굴이었나 봅니다. 씨디 플레이어, 삐삐, 핸드폰, 케이블 티비, 블루 투스... 조금씩 뒤쳐져가던 부모님의 '내려놓기'를 티 안나게 조금씩 따라하고 있던 겁니다.


슬프죠? 아니, 걱정이 됩니다. 뽀샵 못하는 거야, 이번 한번은 허허 웃고 지나지만 (그리고 다시는 안하면 되지만), 전화기에 딸려오는 기능조차 다 알지 못하네요. 노안을 핑계로 설명서도 읽지 않고, 다른 채널 충분하다 우기며 디즈니 플러스를 거부합니다. 언제까지 먹힐까요? 사실은 잘 몰라서 관심없는 척 하는건데..


역행할 생각은 없습니다. 나이를 먹고 철이 들고, 어른으로 살아가는 지금이 자랑스럽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동안이라는 말이 최고의 칭찬처럼 인식되지만, 그 말 자체에 '너 실제로는 나이 먹었구나'라는 깊은 뜻이 깔려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어려보인다'보다는 교양있어 보인다, '나이 안들어보인다'보다 나이값 한다.. 그런 칭찬을 듣고 싶습니다. 존경까지는 아니어도 인정은 받고 싶구요, 주름살을 펴는게 아니라 구김살을 펴야죠. 혼자 꽁하니 심술단지처럼 앉아 세상을 등지는, 제발 그런 어른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긴 겨울에 지쳐 모자라는 비타민 타령을 하며, 오늘도 하는 일 없이 빈둥거렸습니다. 가만히 앉아 숨만 쉬어도 저절로 푸근해지는 나이와 뱃살... 그 솔직한 수익 배분에 감사하며 (!) 이번 주말까지는 계속 빈둥거릴 생각입니다. 사진은 더이상 보정하지 않습니다. 얼룩덜룩 점점 이상해지고.. 사실 뭔가를 더 할 재주도 없구요.  


주말 지나 내일모레 생일입니다. 정말 오십을 향해 바짝 다가갑니다. 이틀만큼, 48년만큼.. 더 철이 들어있을겁니다. 세월에 휘둘려도 시간에 허우적거려도, 인생은 언제나 정주행이죠. 어차피 앞으로만 갑니다. 열심히 살아간 맨 끝 어디 쯤에서 딱 한번.. 웃으며 돌아볼수있는 포상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절반지나 이쯤 왔으니, 기념으로 며칠 푹 쉬고 갑니다. 총기를 모아 (무기 말고 머릿속 총기..) 전처럼 칙칙하고 어두운 글로 돌아가겠지요. 읽으면 스트레스 확 쌓이고 우울증 팍 올라오는 그런 거요.. 아하하.. ^^; 저는 어쩌다 그런 내면을 갖고 있을까요.. 어쨌든, 나름의 공백기를 거치고 다시 헤쳐 나왔습니다.


뽀샵없이 솔직하게, 콩딱거리지만 태연하게 말씀 전합니다.

"자주 뵐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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