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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운 Apr 03. 2023

5.1 분신사바 분신사바

오잇데 구다사이

1 D 시환의 집

쪼그리고 창가에 앉아 경찰서를 내려다보는 시환

/INS/ 할짝할짝 밥 다 먹은 고양이가 다가오고


시환 (고양이 안으며) 송이야, 아빠 슬퍼. 삼촌 말이 맞아. 내 인생은 생각처럼 달달하지가 않아.


/INS/ 서장실, 아까 대화 회상


시환 어머니는..

서장 두 사람이 수갑을 차고 있어서 그랬는지 많이 떠내려가지 않았어. 그날 바로 건져 올리고, 신원확인하고.. 여기저기 연락했는데 마지막 통화자였던 형수가 연락이 안되었어. 주소지로 찾아갔을때는 텅 비어있었고... 다음날 아침에, 친정집 가까운 곳 어디, 절벽 아래에서 발견됐어. 운전하다 그냥 홱 꺾은거 같애.

시환 아, 왜들그래? 형은 어쩌라고! 짜증나!

서장 그러니까 너! 진우 가만 놔둬. 건들지 마. 며칠 지나면 좀 괜찮아지고 그래.

시환 그런 척 하는 거겠지

서장 척이래도... 하잖아, 걔는. 너는 얼굴에 다 써놓고.. 으이그. 가! 일해. 원래 남은 놈이 더 하는거야.

시환 (일어나지만 불만, 한숨, 꾸뻑) 안녕히계세요..

서장 (에에? 본다, 뒤통수에) 야 임마, 그러면서 어른 되는거야. 인생이 뭐 맨날 그렇게 달달한 줄 알어?


/디졸브/ 다시 시환의 집


시환 (길 건너에서 경찰차 사이렌, 주차장에서 튀어나오고, 내려다보는 시환)

어제 팀장님이 아니라 내가 업고 뛰어갔어야 되는 거였어. 그게 더 급한 건데, 현장 잡는게 아니라.. 만약에 내가 병원 갔으면, 내가 옆에 밤새고.. 강진우 대신 내가 휴가 갔을 수도.. (고양이 보고) 아니겠지, 그건? 에휴.. 왜 강진우냐고? 왜?


(다시 경찰서 바라보고 생각)


2 /INS/ N 몇 시간 전. 새벽시간, 병원

(아무도 없는 복도를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뛰어가는 시환, 병실 명패 확인


/강*율/


쪽유리로 조용히 안을 들여다보는데 깜깜한 방안, 잘 보이지 않는다, 조심스레 문을 밀고 한걸음 안으로. 문이 열리며 들어간 빛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실루엣, 침대 위 남자 뒷모습. 시환 얼음. 옷차림 살피면 강진우..? 깊히 잠든 두 사람 숨소리. 놀라 그대로 뒷걸음질, 복도로 나와 문 닫고 돌아가고.


3 D 시환 집

기분좋은 고양이 발밑에서 놀고, 문자 띵


종태 /빨리 와, 메로나 만들어 오냐/

시환 (짜증) 아우, 아저씨가 무슨 메로나야? 비비빅 먹어! 미운짓만 해, 하여간에..(핸드폰 툭 던지고, 고양이 와서 친한 척, 배에 올리고 꼭 안아준다)

그치? 이 아저씨 웃기지? 메로나는 누나가 좋아하던 건데.. 삼촌 사주기 싫어. 다 팔렸다 그럴까? 비비빅만 이만큼 사다줄까 보다.. 그것도 아깝다.. 한 개만 사다주자 (송이 뽀뽀, 내려놓고 옷장으로 이동)


CUT TO 옷장

(오랜 사진첩 펼쳐 어린 시절 사진. 클로즈업, 태권도복을 입고 활짝웃는 여자아이 1품, 째끄만 남자아이 파란띠, 앞니 없고)


시환 (미소) 이게 언제야.. 인젠 20년도 더 됬겠다. 누나는 아직도 이렇게 생겼나? 나는 어렸을 때랑 똑같은데.. (사진 클로즈 업, 남자 아이 반달 눈웃음, 표정 똑같이 흉내내며 이힝..) 뭐가 이렇게 좋아, 입 뒤집어지겠네.. (목소리 깔고) 류시환! 사내 자식이 웃음이 헤퍼요.. (미소 지으며 사진 쓰담, 여자아이 쓰담하다 멈칫) 어디 있는거야? 누나는 인스타 안해? 페이스북은? 요즘 세상에 못 찾을 사람이 어디있냐? 뭘하고 사는 거야?


(사진 집어 넣고 갈아입을 옷 꺼내고 단추풀다 멈칫..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 앞에 선다, 천천히 윗도리 내리면.)   


4 화장실

(카메라 서서히. 시환 왼쪽 귀에 꽂은 보조기부터 아래로 길게 이어지는 흉터, 옷에 가려졌던 상체 드러나고, 온몸에 칼 자국, 어 가슴지나 갈비뼈 타고 등 까지. 울퉁불퉁 튀어나온 수술 자국, 붉은 갈색, 거무스름 착색된 죽은 피부)


CUT TO

(어느새 눈물 고이고, 거울로 머리를 들추면 군데군데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 길쭉한 흉터, 얼굴 – 양쪽 광대뼈를 만져본다. 두손이 뺨을 따라 턱으로 내려가고)


/플래시백/ 병원

깜깜한 유리창 앞에 서서 혼자 붕대를 풀어보는 시환, 피와 약이 범벅된 붕대, 유리에 비치는 자기 얼굴, 환자복 사이로 삐져나온 상체에도 아직 남은 붕대, 한쪽에서 잠들었던 어머니 깜짝 놀라 일어나고

“시환아!”    


CUT TO 화장실

(주르륵 흐르는 눈물, 바들바들 떨리는 두 손, 눈물 닦지만 계속 흐르고. 소리없는 오열)


/몽타주/ 편의점 앞

술 취한 남자에 다가가는 시환, 맥주병을 들고 덤비는 남자, 순경과 둘이 제압하지만 뺨에 이미 피, 병조각 치우는 순경, 시환 무전 치려는데 누워있던 용의자 벌떡 일어나 칼을 휘두르고, 한방, 두방, 셋방... 바닥에 쓰러지는 시환, 괴물같은 범인 얼굴, 멈추지않고 몸을 파고드는 칼, 의식 희미해지고..


/E/ (카톡... 거실 핸드폰 소리)


5 (정신 차리고 거실로 나가는 시환, 밝은 햇살에 흉터 더욱 도드라지고. 문자 보면)


은석 /질서팀 수면제 용의자 질의 #207/

시환 /5분/


(재빨리 옷을 갈아입으며 뛴다. 문 쿵, 셔츠 단추 잠그며 뛰어가고, 사람들 힐끔, 경비 아저씨 인사)


/INS/ 혼자 남은 고양이 창문으로 폴짝. 뛰어서 길 건너는 시환 경찰서 복귀


6 D 병실

(편안한 얼굴로 잘 자고있는 진우 클로즈업, 햇살 들고 기분 좋은 아침)

/E/ 소리만. 누군가의 헛기침, 작은 소리


진우 (눈 뜨면, 뭔가 이상, 슬며시 둘러보고, 침대를 둘러싼 의사와 인턴들, 아침 루틴, 황당한 표정, 진우 눈치, 지율에게 팔베게한 팔을 조심조심 빼고 조용히 속닥..) 잠깐만요, 제가 설명 드릴께요..


의사 (삐딱한 얼굴, 한마디 하려다 꾹참, 손짓으로 나오라.. 인턴들 따라 나가고)  

진우 (조심조심 침대에서 내려오고, 지율 편하도록 이불 챙겨주고 밖으로)


7 병원 복도

(화가 많이 난 의사, 민망한 인턴들, 부스스한 진우 나오고)


의사 환자 침대에 누워서 뭐하시는 거에요? 옆에 보호자 주무실 공간 있잖아요!  

진우 죄송합니다, 애가 무서운 꿈을 꾸길래 잠깐 달래주다가 잠이 들어서.. (방금 깨서 목소리도 안나옴)

의사 다 큰 사람들이 병원에서..

진우 (민망, 창피) 죄송합니다..

의사 마른 여자 좋아해요?

진우 예?

의사 (째려보고) 얼마나 더 말리게요? 정도껏 해야지, 남자친구 분이 나서서 잘 먹여야죠, 이분 상태 심각해요. 딱봐도 정상 체중가려면 15키로는 더 쪄야되고, 헤모글로빈 수치가 3이면, 임산부보다도 못해요. 당장 철분제 복용해야하구요, 지금처럼 기절하거나 호흡곤란 오면, 저산소증 심해져셔 쇼크사 할 수 있어요.   

진우 (놀라서 말 못하고)

의사 생리주기는 일정해요?

진우 (당황) 예? 자, 제가 거까지는 잘....

의사 이대로두면 조기폐경은 물론이고, 이분, 골다공증 위험있어요, 벌써 왔는지도 모르니까 골밀도 체크 하시구요, 부인과 진료 마지막 받은게 언제에요?

진우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의사 (한심) 피임은 누가해요?

진우 (당황) 아니요, 제가 그런 걸..

의사 본인이 하세요. 여자분 이 상태로 임신까지 하면, 정말 큰일나요. 피임약 못 먹게 하고, 스테로이드나 항우울증 약, 혈압약, 다이어트 약 같은거, 정말 안 먹죠?

진우 저기.. 불면증은 좀 심한거 같은데.. 혹시 처방약..좀..

의사 안돼요. 남자 친구분이 잘 다독여서 재우세요. 정확한 검사 마칠때까지 아무 약이나 막 드시지 말고, 일어나자마자 건강검진 받게 해요. 척추도 약간 휘었느데.. 허리 아프다는 얘기 하죠?

진우 들은 적은 없습니다..

의사 (한숨) 환자분 지금.. (참는다) 저 몸으로 경찰을 해요? 그나마 운동을 해서 근육으로 버티는 거 같은데.. 혹시 바람 불어서 사람 부러지는 거 봤어요?

진우 (도리) 아니요.. 아직..

의사 곧 볼거에요. 저분이 그래요. 바람 훅 불면 뚝.. 아셨어요? 신경 좀 쓰세요.


(인턴들 몰고 뒤돌아간다, 들으라고 욕)


요즘 애들은, 왜 저렇게 사람을 바짝 말려? 학대야, 학대. 니들 변태니? 마른 여자가 그렇게 좋아?  


진우 (주변 눈치, 한두명 보호자들, 간호사들 쳐다보고..인사하며 방으로)


씬 8 병실

(진우, 지율 먼저 체크, 아직 자고 있다. 안심..주사 꽂은 손을 본다, 도드라진 혈관, 가느다란 팔, 여기저기 멍들어있고)


(혼잣말) 미안해, 내가 못 챙겼다. 너도 정상은 아닐건데.. (살며시 손가락에 자기 손을 얹어 잡고)


씬9 /플래시 백/회상

진료실. 검게 멍든 손에 올려진 하얀 손, 어린 진우, 아버지 옆에 앉아있다


의사  환자분, 지금까지 가족분들한테 말씀을 안하셨어요? 이식 서두르셔야 한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진우 간 이식이요? 제가 할께요. 저 건강해요

남자 글쎄, 넌 신경쓰지 말라니까. 경찰대 시험이 코 앞이야. 이식은 무슨.

진우 아버지!

남자 다 계획이 있대도! 넌 됐어, 임마, 삼촌들이 가만 있겠냐? 서로 준다고 난리지. 걱정하지마.

의사 아무라도 좀 데리고 오세요. 검사하고, 주의사항 듣고, 날 잡고..

남자 요즘 일이 바빠서요. 좀 한가해지면..

의사 간손상이 심해요. 이대로 두면 6개월 내에 아무 기능 못해요.

진우 6개월이요? 아버지이!!

남자 됐어, 일어나. 쓸데없이 이런데를 몰래 따라와? 벌써부터 누굴 미행이야? 집에 가!

의사 (진우에게) 어머니께 말씀 잘 드리고, 수술..

남자 얘 엄마 없어요. 내가 내 보호자니까, 알아서 합니다. 뭐하냐? 나와, 선생님 바쁘시다 (진료실 나간다)

진우 (인사) 선생님, 잘 부탁 드립니다, 제가 설득할께요, 다시 오겠습니다.. (꾸뻑 꾸뻑 나가고)


씬 10 D 병원 로비

(앞서가는 아버지, 따라잡는 진우)


진우 아버지! (멈춰 세우고, 아버지 표정 관리)

남자 (돌아보며) 괜찮다고. 저 사람 작년에도 6개월이라 그랬어, 올때마다 맨날 6개월이래. 걱정 안해도 돼.

진우 수술해요. 나 경찰대 안가도 되니까....

남자 시끄러! 목숨은 하늘이 주는거야. 내 맘대로 늘렸다 줄였다 하는 거 아니라고.

간호사 (따라와서) 강준길 환자분, 다음 예약 하시고 가셔야죠?

남자 나중에 전화로 할께요, 지금은 가봐야되서..

진우 (간호사에게) 지금 해주세요? 언제 와야되요? 제일 빠른 걸로..

남자 (밀며) 가, 가! 내가 알아서 해, 고3이 왜 이런 걸 신경 써?

간호사 환자분,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아드님 크는거 보시죠. 얼른 수술 하세요.

남자 우리 아들은, 다 컸어요. 내가 아주 잘 키워서, 혼자서도 척척 잘 살겁니다.

진우 아버지이이!

남자 기증자 리스트 기다리고 있어, 걱정하지마.

간호사 웨이팅이 너무 길어요, 가족분들 누구 되시면.. (진우 본다)

남자 (막고) 우리 애는 안되요. 체력장이 코앞인데 지금.. 절대 수술 안 시켜요 (범인 연행하듯 진우 팔 꽉 돌려잡고 성큼성큼) 이리와, 가자! (질질 끌려가는 진우, 아, 아..) 봐, 아버지 아직 힘 좋아. 하나도 안아퍼. 형사는 원래 간땡이가 다른거야. 쉽게 안 죽어.


9 D 지율 병실

(울고 있는 진우, 소리 안나게 참아보지만 쉴새없이 눈물 흐르고. 꼭 쥐고있는 지율 손가락 움직인다, 지율 보면, 진우를 보고있는 지율, 눈 떴다)


진우 (눈물 닦고) 깼어?

지율 왜 울어? 나 살아있는데..

진우 (안도, 슬픔, 민망, 아버지.. 눈물 한번 더 쏟고, 말 못잇고)

지율 (본다) 아, 내가 살아나서 우는거야? 실망해서?

진우 (피식, 눈물 닦고, 지율 손 들어서 뺨에) 진짜 슬프다. 또 살아났네..


(지율 미소, 진우 눈물 닦으며 미소. 지율 손가락으로 진우 눈물 닦아주고)


10 D 조사실 #207


(용의자 앉아있고, 질서팀 수사관 질의, 그 뒤를 둘러싼 험한 표정의 시환, 은석, 종태.. 분위기에 압도된 용의자 장현석, 긴장해서 쫄고)


현석 저기요, 형사님. 보통.. 이렇게 유리로 막혀있는데에서 하는거 아니에요?

질서팀 (컴 서류 준비) 본인은 아직 잡범이세요, 거기 들어갈 이유가 나올 때 까지는 여기서 진행합니다. 왜요? 거기 가보고 싶어요?

현석 아니요, 근데 저 분들이 자꾸 노려봐서.. (눈 못 마주치고)


(수사관 돌아보고 웃음)


질서팀 든든하네, 뭐야 이거 오늘 백업 장난 아닌데

종태 탈탈 털어. 머리 비듬 한 톨도 놓치지 마.

질서팀 시작합니다. 어제 다 들으셨죠? 질문에 불리하면 대답 거부할 수 있고, 대답하신 내용은 재판에서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요... (현석 조그맣게 예..)

(진술서 내보이고) 이거 본인이 작성하신거 맞죠? 오늘 새벽에?

현석

질서팀 번복하거나 더 추가할 내용 있어요?

현석 (보지도 않고) 없습니다 (시환 벌써 불쾌)

질서팀 그러면, 여자 손님이 위험에 처해질 걸 알면서도 팁을 더 받으려고 고의로 약을 먹였다, 그렇게 되네요?

현석 위험에 처하지는 않았어요, 놀다가 잠이 들면, 저희를 바로 부르시기 때문에

시환 (버럭) 야 이 시깨야! 그 안에서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어? (은석 말리고, 질서팀 깜짝, 현석 쫄고)

질서팀 클럽 룸에서 정신 잃은 피해자들이 범죄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거 인지합니까?

현석 그건 마약이고, 저는 수면제 약간.. (눈치)

질서팀 (타이핑) 수면제라 괜찮을 줄 알았다.. (보고) 그거 아주 위험하고 무책임한 발언인거 알죠? (현석 눈 마주쳤다 피하고) 피해자가 신체적 접촉을 당하거나, 불법 사진, 영상 같은 피해를 볼 수 있구요, 일부는 심각한 성범죄를 당하는데, 인지 하십니까?

현석 아니요, 그런거는 생각해 본 적이..

시환 (이 앙물고) 똑바로 답해라. 나 오늘 옷 벗어도 되니까 너, 가만 안 둔다.


(현석 불안, 작은 소리) 죄송..합니다..


질서팀 (종태에게 머뭇) 형님, 잠깐 나가서 계시는게..

시환 (발끈) 왜요? 우리 팀 형사가 쓰러졌어요. 이 새끼 우리가 족쳐야 되는데..


(질서팀 눈치, 종태 은석에게 나가자 손짓하고, 시환 데리고 나가려는데)


현석 (생각난 듯) 합의 볼께요! 합의! 만나서 무릎 꿇고 사과하고.. 그럼 되죠?


(시환, 이씨.. 우당탕 몸이 먼저 나가고, 제지하는 은석)


시환 너 &^%( &$$ 이리와! 개나 소나 합의야? *&#$ 질러놓고 합의면 다야? 너 같은 새끼는 합의가 아니라 합동 장례를 치뤄야돼, 싹 다 불어! (은석에 끌려나가며) 야! 이 %$@$^! 공범 누구야!! 너 상습이지? (소리 멀어진다)


종태 (슬쩍 미소, 수사관에게 일 계속하라 손짓하고 방을 나가고)


11 복도

씩씩 거리는 시환, 별 제지없이 옆에 선 은석


종태 (낮은 목소리) 류시환, 여기가 네 사적인 감정 털어놓는데야? 일 똑바로 안해?

시환 (기막힌 얼굴) 저걸 그냥 놔둬요? 선배는 약먹고 쓰러졌는데, 이렇게 정말 손 털자구요? 저 새끼 거짓말하는데 화도 안나요?

종태 화 나면? (보며) 어쩌게? 형사는 간도 빼고 쓸개도 빼고, 감정도 다 빼고 사는거야. 토끼 몰라? 용왕님네 놀러가는 잠수 토끼. 그놈도 오장육부 빼놓고 다녀서 오래 산거야. 알어?


(시환 기가 막힘. 절레절레. 쿵쿵 거리며 사라지고)


(뒤에대고 소리친다) 야! 아이스크림 사왔냐? 어딨어?


은석 (보며 미소) 잘하네요. 바로 정리하네.

종태 (흐뭇) 그래야지. 감정을 넣을 줄만 알지, 뺄 줄을 모르면 지 대가리가 먼저 터지는 거야. 용량이 얼마인지, 감당할 수 있는지.. 본인이 조절해야지.


CUT TO

서장 (찬호에게 무언가 보고 들으며 지나가다) 무슨일이야?

종태 별일 아닙니다. 류시환이가 제법 쓸만해요. 욕도 잘하고, 슬슬 꼬라지도 부리고... 맘에 들어.


(서장 궁금? 종태 씨익 웃고. 은석 꾸뻑 지나감, 찬호 인사)


12 D 진우네 아파트

마트에서 장을 봐 온 진우와 지율, 안으로 들어서고.


진우 오래 안 걸려. 저기 앉아서 좀 쉬어

(재료 정리. 지율 거실을 둘러본다. 커다란 의자 하나밖에 없는 텅 빈 거실. 두꺼운 커텐으로 막아놓은 베란다. 진우 힐끔)

집 구경 해. 진짜로 ‘집'만 있어...


(지율 커텐 만지작, 블라인드까지 세겹. 슬쩍 들여다보는데 오래되어보이는 박스 테이프, 발코니 문에 붙어있다)


(진우 야채 씻는중, 못본척, 신경쓰인다, 지율 커텐 놓고 요리하는 쪽으로, 역시나 단촐한 부엌. 접이 의자 하나 내주고 진우 그릇 꺼내는데, 거의 비어있는 수납장)


진우 (냉장고 열려다) 너 냉장고는 열 수 있냐? (지율 보고) 이것도 아직 무섭나?

지율 (본다, 천천히 냉장고 앞으로) 편의점 거 말고는 열어볼 일이 없어서..

진우 (먼저 조금 열고 슬쩍 들여다본다) 아, 너 깜짝 놀라겠다.. 무서운 건 없는데, 놀랄거야. 열어봐.  

지율 (보고, 살살 툭.. 열고, 천천히 더 열면.. 피식. 물병, 맥주, 소스 몇 개.. 아무것도 없다..)

진우 무서운거 없지? 야아, 너무 없네. 집에 잘 안들어와서.. 맥주 줄까? 술 안먹나?


(지율 손 뻗어 한병 꺼내고, 진우도 하나. 컵 찾아주려는데 이미 병째, 컵 내려놓고, 식사 준비)


손님이 와본적이 없어서.. 우리집 어때?


지율 창문 왜 가려? 한강 싫어?

진우 ..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 맨날 가라앉고 떠오르고.. 그런거 찾아다니고.. 직업병 있잖아. 아, 예쁘다.. 가 아니라, 아, 오늘은 과연 뭐가 나올까..

지율 한강 안보이는데 살지 왜 여기 살아?

진우 받은거야. 유산으로... 평생 이거 딱 하나 받았어. 선물같은 거 받아본적이 없었거든. 어려서 헤어졌어. 그러다 갑자기 유산이라고 툭 떨어졌는데, 팔기는 싫고, 살자니 더 싫고... 그래서 가끔 왔다갔다만 해.   

지율 잠은 어디서 자?

진우 찜질방... (지율 눈마주치고) 아니면 숙직실, 사무실, 서장님이 아끼는 소파... 아무데나 되는데 가서 자. 너처럼.


(익숙하게 야채 손질)

안에 들어가서 누워. 다 되면 깨울께. 너 아직 약기운 남아서 조심하라 그랬어.


(지율 일어나 안으로, 진우 ㅈ마시 손 놓고 따라간다)


13 진우 집 방 입구에 선 지율,

(아무것도 없다. 맨바닥에 이불 하나 베게 하나, 작은 방 가보려는데)


진우 이 방은 뭐가 좀 많아. 아버지 집에 있던거 옮겨왔어. 지저분해.


(문 열면, 어린 진우가 쓰던 책장, 아령, 박스, 박스, 박스... 문 닫으며)


네가 큰 방 써. 이불이 하나밖에 없다.. 베게도.


지율 사무실 갈거야.

진우 못오게 하래. 반경 3키로 접근 금지.

지율 (피식. 부엌으로 나가 접이 의자에 앉고)

진우 (야채 썰기 시작) 병원은? 정말 검진 안 받을거야?

지율 받으면 달라지나? 원래 이런걸.

진우 어렸을때도 말랐었어?

지율 기억 안 나.

진우 (아, 그렇지.. 새로 사 온 과카몰리와 드레싱 따르고) 네가 안 아프면 없으면 됐지, 뭐 (힐끔) 아프면 얘기하고. 약은 좀 깨는거 같애?   

지율 많이 깼어. 힘만 좀 없어. 멍하고..

진우 (걱정) 저기 의자 편해. 가서 앉어, 불편하게 거기 그러지 말고.

지율 구경할라고... 뭐하는거야? 파스타 이런거 해주나? 티비처럼?

진우 (웃음) 파스타 좋아해? (예쁘게 썰은 야채 한 접시와 소스) 오늘은 준비된게 없다. 다음에 해줄게.


(띵 에어프라이기 소리, 진우 꺼내고.. 치즈 얹은 나초)


안주.. 좀 안 어울려도 같이 먹어. 아무거나 제일 빨리 되는거 한거야.


(테이블에 놓고) 잘 보이지? 칩하고 치즈야. 파, 올리브, 고추 피클... 고기는 안먹으니까 패스. 이정도는 먹을 수 있어?


지율 (끄덕, 하나 집어 입에 넣고, 진우 안심)

진우 다행이다. 그러니까.. 먼저 사람을 좀 믿어봐. 봐봐, 날 믿으면 내가 주는 건 먹을 수 있잖아. 시환이, 종태 형님, 은석이 형.. 믿어야 일도 같이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지율 맥주 비우고,) 술 다른거 줄까? 데킬라? 훌리오 있는데.. 약 먹어서 안되나? (지율 달라고 끄덕) 그래, 먹고 자라 (잔 채워주고, 뭔가 또 부시럭)


지율 많아, 다 못먹어.

진우 (오징어 채 수북히) 너 잘 먹이래, 의사가. 내가 너 때문에, 아침에 욕을 얼마나 먹었는지 알어?

지율 (오징어 집고 오물오물) 왜?

진우 (미소) 학대에 변태소리까지 들었다

지율 진짜? 왜?

진우 너 굶긴다고.. 정상체중까지 15키로 찌우래.


(잔 비우고 리필) 자고 가라. 나 취할거니까 잘 챙기고.


지율 내가 챙겨?

진우 그래야지. 난 취할거라니까. 간만에 휴가야. 많이 마실거야.

지율 술버릇이 뭔데? 개 되면 밖으로 던질거야.

진우 여기 8층인데?난 그냥, 별로 안 나빠. 떠들다 자.

지율 시끄럽다는 얘기네 (오징어)

진우 (본다) 고기는 못먹는데 오징어는 먹는다..다이다. 먹을 수 있는게 있어서.

지율 할머니가 많이 보내주셨대. 원주 사셨는데, 그 집 아직도 있어.

진우 가볼까? 내일 쉬잖아.

지율 돌아가셨어. 지금은 아버지가 살다가.. 요양원 가시고..

진우 들은 것 같다. 안좋으시다고.

지율 맨날 안좋아. 오래됐어.

진우 (정 떨어짐) 뭐냐, 친아버지를.. 남 얘기하듯이

지율 안친해. 법적으로도 남 맞고.. 처음은 기억이 없고, 중간은 같이 안 살았고, 지금은 아프고. 대화가 안돼.

진우 자주 가?

지율 아니.

진우 (잠시 생각) 나는, 요양원 가실 시간도 없이 갑자기 가셔서.. 어느날 학교로 전화가 왔어. 아버지가 한강에서 투신했다고..


14 D 국과수 부검실

조용한 복도,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 방문 열리고 카메라 들어가면, 준비 중인 직원 두 사람, 전화 끊고 바로 장갑 낀다, 도구 정렬


직원1 오고 계신대, 다 됐지?

직원2 오늘 너무 많은데요? 식사하실 시간도 없겠어요.

직원1 손이 빠르시니까 이정도지, 어휴, 네 건.. 말이 쉽지.

직원2 여기 마리아 상 꺼내 놓으라는 거 보면, 이 분은 피해자신거죠?

직원1 눈치 빨라. 맞아 (서류 슬쩍) 22세, 대학교 졸업반이네. 면접보러 나간다고 했다가 실종, 이틀 후에 시신으로 발견.. 아휴.

직원2 제 동생보다 어려요. 스물 두 살.. 근데 선배님, 전에 송 박사님이, 교도소에서 온 시신 부검하신 얘기 들었어요? 잠난 아니었다는데?

직원1 왜? 뭐가?

직원2 살인범인데, 원인 불명으로 쓰러져 죽었대요. 부검왔는데, 송 박사님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매스를 들어다가 그 사람 배에다 콱!  

직원1 진짜? 그래, 그런 소문있잖아, 범죄자 들어오는거 되게 싫어하신다고..

직원2 평소에는 엄청 좋으신 분이.. 그런 사람들한테는 레섹션 (절제술)이.. 리섹션이 아니라 그냥 칼질을 하신대요. 옆에 어시 들어가셨던 분이 너무 무서웠대요, 눈빛부터 다르고...

직원1 그래도 또 어린 애들 들어오면 얼마나 안타까워하시고.. 기도해 주시고 그러잖아. 아휴, 전에 아홉살짜리 들어갔는데, 속상해 하시는게 눈에 보이더라.


CUT TO 문 열리고 송박사 들어오고


송박사 (장갑 끼고 자세 바로) 기도합니다 (보조 둘 바로 서고)

오늘 여기 계신 분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일찍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대신하여, 부족하지만 감히 제가, 작은 도움이라도 되려합니다. 부디 저희의 무례를 용서하시고, 그날 있었던 모든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제게 보여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잠시 침묵) 시작합니다.


(직원1 카메라 켜고, 직원 2 트레이 끌어 가까이, 송 박사 확대경 내려쓰고 검안 시작. 옆으로 손 뻗어 서류와 대조, 몇가지 적어놓고 잠깐 덮어 올려두고..)


CUT TO

(카메라 빠지며 올려놓은 서류 확대 –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 부검의 송창률.   


15 N 온통 아이보리색으로 꾸며진 신전. 플랭카드 – 영육제 간증

앉을 자리가 없을만큼 가득차 기도한다. 역시 아이보리 색에 보라색 띠를 두른 지도자를 향해 팔을 뻗는 사람들. 그의 손짓에 조용해지고, 간증을 나선 50대 여인, 허리숙여 인사를 하고 증언대에 오른다.


CUT TO 여자

저는 지난 달 17일에 은혜로운 경험을 이루었습니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저의 남편을 3년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아아... 사람들 탄식). 남편은 떠나기 전의 그 고통스런 모습이 아닌, 현생에서보다 훨씬 행복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여자 눈물). 제가 아는 그 따뜻한 목소리도, 제게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의 2년간의 기도가 이루어졌습니다. 남편의 영혼은 저의 육신을 찾아 이 먼곳까지 다시 와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재회했습니다. (사람들 눈물, 흐느끼는 소리) 이제는 저도, 오늘당장 이곳을 떠난다해도 미련이 없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말씀대로, 우리의 영혼은, 이 육신 안에서가 아니라, 저 높고 성스러운 아버지 어머니의 궁안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CUT TO

신도들을 비추면, 열성인 여자들 – 특히 일본 여자들. 귀에 꽂은 이어푼에서 일어 동시통역이 흘러나오고, 눈물 흘리며 공감. 짧은 머리에 수수한 차림의 젊은 여자, 감동한 듯 평안한 얼굴. 옆자리 여성과 손을 잡고 깊은 탄식.


디졸브

한줄로 기도장을 한바퀴 빙 돌아나오며 헌금한다. 거액의 수표도 보이고.. 여러나라 말로 ‘감사합니다, 성령하세요’를 속삭이는 인상좋은 지도자, 친절한 직원들. 머리 짧은 여성 일본어로 무언가 질문하고, 직원들 지도자께 알리면, 직접 여성을 안내해 기도장 뒤편 작은 문으로 향하고.. 그날의 예배를 녹화하는 카메라 앵글밖으로 사라진다.


16 N 진우네 아파트

커다란 의자에 앉은 지율, 또 다른 술병을 들고 있고, 적당히 술이 오른 진우. 벽에 기대어 앉아 아무말 없다. 스탠드 하나만 켠 어두운 거실, 맨 벽에 커다란 그림자만.     


진우 (바닥에 술병을 보며) 많이 마셨다. 취하는데?

지율 자. 술먹으면 잔다며?

진우 못 자. 이 집에서는 잠들면 안돼. 귀신 들렸어.

지율 귀신 믿어?

진우 몇번 당하고 나면. 이 집에서 잠이 들면, 그 놈이 와.   

지율 아는 사람이야? 범인?

진우 응, 범인이기도 하고, 피해자이기고 하고.. 우리 아버지가 죽인 놈. 저 앞에 다리 위에서.. 보여줄까?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커텐과 블라인드를 부술 듯이 열어제낀다. 불 켜진 한강대교가 한눈에 보이고, 아직도 많은 차량, 반짝이는 도시) 저거야, 저기에서 우리 아버지가 뛰어내렸어. 엄마가 여기서 이렇게 서서 보고 있었고..


/INS/ 한강 다리 난간 부근

피범벅의 젊은 남자, 손목에 수갑 한 쪽을 차고, 다른 한쪽은 초췌한 중년 아저씨 손목에. 통화를 마친 남자 바닥에 핸드폰을 내려놓고, 기절한 남자를 어깨에 둘러맨다. 차량 빵빵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고, 마지막 힘을 다해 난간을 넘어가고.. 안돼요, 아저씨...꺄아악... 사람들 비명소리, 몇 초 후 첨벙.. 바닥에 놓인 핸드폰은 여전히 통화 중, 클로즈업되며 화면 흐려지고


CUT TO 진우 거실

그렇게 우리 아버지는 살인자가 됬어. 자진해서, 기꺼이.. 내 동생 죽게 한 놈 잡아죽이고, 자기도 따라갔어. 가서도 딴짓 못하게 감시한다고.. 수갑으로 꽁꽁 채워서 저기서 둘이 퐁당. 내일이 그날인데.. 아니지, 이제 오늘이구나.. 오늘 좀 있다가 가시네.. (피식) 사람들이 제사 잘 모시냐고 물어. 나는 솔직히 한번도 제사 한 적 없는데..   


지율 왜? 간단하게 좋아하셨던 것만 올리면 되는 거 아냐? 커피 같은거..

진우 아버지 가신 날이 내 동생 기일이야. 그리고, 다음날이 어머니 가신 날.. 셋이 쪼로록 같이 죽었는데.. 제사를 하면... (지율 보고 웃는다) 야, 우리 아버지가, 그 새끼랑 수갑 같이 차고 갔다니까? 내가 여기서 제사상 차리면, 그 새끼도 와서 처먹을거 아냐. 동생도 올건데, 그 썩은 얼굴 봐야 되잖아 ^&&$% $#*&^


(지율 옆으로 와 앉은 진우, 고개 숙이고 분을 삭히는 듯, 애써 가라앉히고)


아, 네 덕분에.. 제삿날 집에 있는거 처음이다. 시환이 빼고는 집에 놀러 온 사람도 네가 처음이고.. 귀신 나오잖아, 혼자 있으면 누가 말도 걸고, 이상한 소리 나고, 가끔은 저기 다리 위에 아버지도 보여. 막 손 흔들어, 나한테.. 그게 다 귀신 짓이야. 나를 저기로 끌고가서 빠뜨릴려고... 안 속아. 난 귀신 안 믿어.. 진짜로 와도 내 목을 졸라도 안 믿어.  


지율 (바지 뒷주머니에서 코팅한 종이 조각을 꺼낸다) 가져

진우 뭔데? (본다)

지율 부적.

진우 (피식) 뭐야 이게? 그냥 낙서잖아. 오호, 글씨 진짜 잘쓰네, 네가 쓴거 아니지?

지율 (의자에서 내려와 진우 옆에 앉으며) 그쪽 말고, 이쪽 (종이를 뒤집으면)

진우 ‘불 키지마. 소리내지말고 꼭꼭 숨어있어. 경찰 올거야, 가만히 기다려’ .. (웃음 싹, 진지) 뭐냐?

지율 엄마랑 오빠 죽던 날, 내가 자고 있었거든. 무슨 소리가 들려서 깼는데, 내 귀에 이어폰을 씌워놓고, 손에 이 종이를 쥐어주고 나간거야, 오빠가.. 오빠방에 딸려있던 작은 다락방인데, 이 종이 보고 조용히 숨어있다가 나만 살았어 (진우 보고) 이게 없었으면 무슨 일인가 나갔다가 나도 죽었겠지. 그래서 이게 내 부적이야. 날 살렸으니까.    

진우 (생각, 지율보고.. 말 돌린다) 네가 이거 믿고 그렇게 기고만장 하구나.

지율 (피식) 선배 가져. 이거 있으면 그 놈 귀신 못 와. 안 와. 나도 그놈 맨날 꿈에서 보는데, 그래도 이게 있어서, 귀신으로 오지는 않나봐.

진우 (지율 보는 눈, 순식간에 눈물 고이고, 황급히 고개 돌리는데 눈물 두두둑. 바닥에 놓인 술병에 눈이 가고, 한 잔 가득 따라 발코니 앞에 놓는다. 지율의 부적을 술잔 옆에 펼쳐놓고. 천천히 일어나 절을 올린다)


CUT TO

카메라, 술잔과 부적 지나 발코니 넘어가면, 여전히 아름다운 한강 다리, 한결 줄어든 차량, 높이 뜬 달, 문득 흔들리는 - 활짝 열어놓은 커텐.


CUT TO

술잔 앞에 쪼그리고 앉은 진우. 얼굴은 안보이지만 울고 있다. 물끄러미 보던 지율, 다가가 뒤에 앉아 등에 머리를 기대고.     


17 D 사무실

먼저 나와 일하고 있는 은석. 출근하는 종태, 자연스레 소파 쪽을 본다. 삐죽이 나와있는 하얀 손. 허, 요놈 봐라..? 소리나지않게 조심조심 자리로 들어와 앉고.


종태 뭐야? 쟤는 왜 또 여기있어?

은석 밤 샜나봐요. 자게 놔두세요, 저 왔을때까지 일하다가 겨우 자요.

종태 뭔 할 일이 그렇게 많다고, 사건도 없는 것들이?

은석 필리핀 여성 실종 하나 있고, 제가 조사 할 거 몇 개 맡겼어요. 불법 체류, 불법 취업.. 많이 복잡하지 않은 거요.

종태 그렇다고 경찰서 접근 금지 명 받은 놈이 저기서 퍼 자?

은석 접근 금지요?

종태 그래, 강제 휴가, 경찰서 주변 반경 3키로 접근 금지, 서장님 명령이야.

은석 아, 병가가 아니라 강제 휴가였어요? .. 근데 저 손, 강형사 아닌데.

종태 그럼 누구야? (은석 눈짓) ... 류시환이? 시환이 손이야? (다시 보고) 아니 쟤들은, 자는 폼도 똑같애. 전생에 쌍둥이야, 뭐야? 별걸 다 따라해?

은석 (웃고) 어? 더 자요, 아직 출근 시간 안됬어요 (종태 보면)


CUT TO 부시시한 까치 머리로 스르르 상체만 일어나 앉는다. 한숨 푹..


종태 지율이 없다고 농약먹은 잔디처럼 아주 풀이 팍 죽었구나. 누렇게 떴어.. 일어날거면 세수라도 하고 와. 오늘 바쁘다, 이 팀장도 없고.

시환 (무감정 무관심) 어디갔어요?

종태 국과수 들어갔다가 본청에서 미팅 있다고, 있다가 저녁에나 올수 있을지 모른다고 그러더라.


(시환 다시 스르르 눕고)


어쭈? 야, 안 일어나?


시환 (스르륵 다시 일어남) 일어났어요, 아침 운동이에요 (다시 스르르 눕고, 느린 속도로 계속 반복)


(은석 웃고, 종태 어이없음)


종태 야, 머리 꼴 못봐주겠다. 이상한 짓 그만하고, 가서 샤워를 하던가.

시환 (내려갔다 올라오며) 안해요, 밤에 했어요.

종태 밤에 하면 아침에는 안 하냐?

시환 (올라오고) 예 (내려간다)

종태 왜 저래? 너 까치집이야

시환 (올라오고) 내 눈에 안보여요 (내려가고)

종태 나한테 보여

시환 (올라오고) 상관없어요 (내려가고)

종태 그러다 지율이라도 휙 들어오면?

시환 (올라오다 멈추고 시무룩) 안와요. 원주 간대요.

종태 전화 받어? 꺼져있던데?

시환 진우형이요 (툴툴 일어난다) 선배 전화 나중에 어디 가서 충전 한다고.. 자기한테 하래요. 나보고 전화하지 말라 소리지! (일어나 담요 정리)

종태 (ㅋ 그래서 삐졌구나..) 야, 근데 너, 그 소파 등받이 사이에 손은 왜 끼고 자냐? 너네 세대는 그게 유행이냐?

시환 (등받이 내려다보고) 그냥.. 버릇이에요. 끼고 자야 안떨어지니까, 어려서부터 그렇게 잤어요.

종태 보통은 옆으로 자면, 등받이를 등지고 자는 거 아냐? 반대로 거기 매달려 자는 애들은 잘 못봤는데..

시환 앞으로 자나 뒤로 자나.. (툴툴) 안떨어지고 자면 되지.

종태 저놈의 말대꾸.. 아우, 귀여워

시환 (질색) 아 뭐래.. 왜 그래요 갑자기?

종태 나는 요새 너 틱틱 거리는 소리가 그렇게 좋더라. 지율이 자식이 말대꾸하면 아주 밥맛인데, 류시환이는 말대꾸도 이쁘게 해. 밥은 먹었어?

시환 (주섬주섬 수건 챙기며) 아우, 별일이야.. 저 2층가요, 휴게실... 그렇게 웃지마요! 고개 돌려! 저쪽으로! (나감)


(종태 은석 웃고 문 닫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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