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1:01-23 여호와의 전쟁 4

여호수아 11:01-23

by 평화의길벗 라종렬


여호수아 11:01-23 여호와의 전쟁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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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지역이 가나안 중부와 남부의 동맹군 공격으로 인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손에 넘어가자 북방 왕들은 흔들렸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마주한 북방 왕들에게도 응답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들 또한 대적했을 때 하나님은 이 지역도 정복하도록 허락하셨고 전쟁은 멈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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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절 눈에 보이는 숫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우리가 신뢰하실 주님이십니다.

여호수아가 남부 지역에서 승리를 거둔 것을 알게 된 북방 왕들은 대규모 동맹군을 결성하여 이스라엘을 저지하려 했습니다. 그들의 군대는 압도적으로 보였으나,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는 여전히 확고했습니다.

이 본문은 인간의 힘과 하나님의 주권 사이의 뚜렷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동맹군은 눈에 보이는 힘에 의존했지만, 이스라엘은 보이지 않는 신실한 하나님께 희망을 두었습니다. 기드온이 미디안 군대에 맞서 300명의 병사로 승리했던 이야기는 인간의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완전해짐을 상기시킵니다(사사기 7:7).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논리를 넘어설 때에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보이지 않지만 결코 실패하지 않는 승리의 근원이십니다.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게 하시는 그분을 바라보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적을 두려워하기보다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보이지 않는 주님을 신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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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절 여호와께서는 말씀하신대로 신실하게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동맹군을 공격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에 순종했고, 하나님은 적들을 그들의 손에 넘기심으로써 자신의 신실함을 드러내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헌신을 강조합니다. 전쟁이 이미 승리로 확정되었다는 하나님의 확신은 그분의 주권과 신실함을 보여줍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공회 앞에서 담대했던 모습은 교회가 물질적 부가 아닌 그리스도의 이름에 의존했음을 보여줍니다(사도행전 4:13).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고 그분의 약속은 확실합니다. 하나님은 선언하신 것을 이루시며 신실하게 행하십니다. 교회의 능력은 ‘은과 금’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이름에 있습니다.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담대히 행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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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5절 여호와께서는 가나안의 왕들과 우상숭배에 대해 헤렘을 명하신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가나안의 왕들과 그들의 도시를 멸망시키며, 우상 숭배와 반역에 대해 "헤렘"을 이행했습니다. 이 전쟁은 철저하고 타협이 없었습니다.

헤렘은 죄와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반영합니다. 여호수아의 철저한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따르는 필요성을 보여줍니다.사울이 아말렉 왕 아각과 가축을 살려두었던 부분적 순종은 여호수아의 온전한 순종과 대조됩니다(사무엘상 15:9-23).

하나님의 명령은 제안이 아닌 거룩하고 정의로운 명령입니다. 참된 순종은 흔들림 없이 그분의 말씀에 헌신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참된 순종은 현실과 타협하거나 말씀을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부분적 순종에 머물렀던 내 삶의 영역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맞추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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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3절 여호와께서는 강퍅하고 완악한 이들은 진멸하시고, 순종하는 이들에게는 은혜를 입게 하십니다

여호수아는 모든 지역을 정복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이스라엘에게 성취하셨습니다. 완고하고 완악한 자들은 멸망당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실현되었으며, 이는 그분의 신실함을 증명합니다. 여리고 성의 멸망 중 라합이 구원받은 이야기는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확장됨을 보여줍니다(여호수아 6:25).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연약함보다 강력합니다. 믿음과 순종으로 응답하는 자들에게 그분의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나의 약함보다 강력합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믿음과 순종입니다. 그분의 은혜를 신뢰하며 충실히 걸어가고, 내 약함 속에서 완전해지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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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글

여호수아의 순종은 두 가지 차원(신명기의 진멸 규정을 따르되 세부적 규정은 그때그때 하나님의 음성과 상황에 융통성 있게 적용했다)이 있습니다. ‘과거의 말씀’(유럽)과 ‘현재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그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을 나에게 적용할 때는 성령의 조명이 필요합니다. 율법의 문자적 적용 유의. 성경은 우리 삶에 원칙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모든 상황을 성경이 다 제시하고 있지 않다고 받습니다. 단지 성경의 원칙을 따라 특별한 상황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는 개인의 문제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그 원칙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는 각자 해결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와 유대교 윤리 차이, 유대교는 모든 상황을 가정하여 법조문처럼 세분화되어 결의론 적인 윤리입니다. 기독교 윤리를 원칙만 제시하고 세부적인 적용은 각자에게 위임하고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지시한 대로 하면 되고 단순하며 책임도 부모가 지시한 사람이 합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자기가 판단해야 합니다. 기독교 윤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하고 그때그때 들려주시는 성령의 음성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기독교 윤리는 그래서 절대적 원칙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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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허락하신

여전한 안식가운데 거할 수 있게 됨을 감사그립니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대적보다

보이지 않게 역사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담대히 나아가게 하옵소서.

결국 주님이 하실 것을 믿는다면

어떤 상황과 문제 속에서도

믿음으로 달려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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