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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참깨

쉴만한 물가 - 68호

20130705 - 열려라 참깨


병설유치원으로 옮긴 뒤로 아침마다 막내가 유치원 가는 일이 썩 내키지 않는가 봅니다. 좋아하는 녀석과 사이가 좋을 때면 부리나케 아침으로 가지만 그런 일이 소원해지고 쉬는 날이 언제인지 알면서도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묻습니다. 그래도 매일 집에서 빈둥거리며 TV만 붙잡고 있는 것보다 등원을 해야 그나마 또래 친구들하고 교제할 수 있기에 달래서 보내곤 합니다.


요즘 학교 폭력과 연관되어서 학교 후문을 9시만 되면 닫습니다. 그래서 9시 이후로는 빙 둘러서 정문으로 가야 하는데 하루는 막내 녀석이 9시가 넘어가서 후문이 닫혀 있었나 봅니다. 앞으로 멀리 돌아가기도 귀찮고 해서 그랬는지 그 대문 앞에서 두 손을 들고서 냅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열려라 참깨!” 아마 한 번으로 안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보고서 담장으로 넘겨주셨나 봅니다. 원에 가서 선생님께 왜 주문을 외워도 안 열리냐고 자초지종을 얘기했나 봅니다. 선생님께 다녀온 아내가 이런 얘길 하기에 저녁을 먹다 막내가 기특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지만 정색하고 한마디 더 해 주었습니다. “막내야 요즘엔 주문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잘 알아보고 해야 된단다.” 옆에서 듣고 있던 누나들이 덩달아 주문을 외웁니다. “열려라 콩도 있고 들깨도 있고 감자도 있는 거야~” 녀석이 긴가민가 머리를 긁적이며 갸우뚱합니다.


근데 아라비안 나이트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왜 하필 주문이 “열려라 참깨"였을까? 많은 곡식 중에 참깨를 비밀 주문에 사용한 이유는 원래 참깨의 원산지는 아프리카의 북부의 '이집트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동 지방의 아라비아에서는 일찍부터 참깨를 많이 사용했었다고 하는데, 이 참깨는 음식 맛에 많은 변화를 주며, 더운 중동지방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잘 썩지도 않으니 주술적인 의미를 부여하기에 좋은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마법의 주문으로 '열려라 참깨'를 사용했다고 중동지방을 연구하는 인류학자들은 추측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음식을 썩지 않게 하는 소금에 귀신을 쫓는 주술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합니다. 또 한편으로 참깨가 툭 터지는 성격 때문에 그런 주문이 생겼다고도 합니다.


막내가 이 주문을 외운 데는 너무 비약적 표현이긴 하지만 탐욕의 문을 여는 주문이었습니다. 누군가 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열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을 열면 안 되기에 그런 주문을 만들어 둔 것이지요. 보물에 눈이 멀어 주인공도 그 주문을 잠시 잊은 얘기도 나옵니다. 결말이야 해피 앤딩이지만 그로 인해서 겪는 우여곡절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열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 법입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나 여타 복잡한 정국을 타개하기 위함이었는지 모르지만 애꿎은 남북 정상 회담 대화록을 열람해야 한다고 이상한 트집으로 기어이 봉합해 둔 기록물을 열람하겠다고 후진국에서나 있을법한 일이 버젓이 국회의원들 다수의 이기적 합의에 의해 개봉 합의되고 말았습니다. 내용이 어떻든지 전례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생겨서 이후의 일이 또 어떻게 흘러갈지 안갯속 정국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 켠에서만 뭔가를 잃거나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일이 이미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서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부디 진실이 이겨서 이기적 탐욕으로 닫힌 문을 열어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자행하고 있는 비열한 권력자들이 부디 자신들의 어리석은 일들을 깨닫게 되길 소망하며 이 일을 위해서 촛불을 켠 이들의 염원이 풀리길 마음의 촛불 하나 더 밝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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