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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an 27. 2021

누가복음 09:18-27 고난받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신

누가복음 09:18-27  

누가복음 09:18-27 고난받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오랜 시간동안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이제야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 사람들이 오해할 여지가 크기에 이 말을 삼가라 하시고 처음으로 장차 인자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실 것에 대해 예고하십니다. 이어서 주님을 따르려는 이들을 향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함을 말씀하시면서 자기 부인의 중요성을 재차 언급하시면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신앙하는 길을 포기하지 않는 자는 영광을 받을 것이라 격려하십니다. 이제 이 말씀대로 이후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을 진행합니다.  


# 18-20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예수님은 기도의 시간을 따로 가지십니다. 그 가운데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는지 묻습니다. 무리들이 부활한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나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중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따로 기도하신 것은 오병이어 사건과 다른 장소를 의미합니다. 큰 이적과 역사 앞에서 사람들의 영광을 받아 사명이 흔들릴 우려와 더불어 제자들이 곁길로 빠지지 않도록 하는 조치로서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이동하셔서 기도하시는 모범을 보이십니다. 주용한 결정과 일들 앞에서 항상 하나님과의 소통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사도로서의 사명을 감당함에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몸에 베이도록 교육받고 있는 것입니다. 

무리들이 예수님에 대해 이해하는 표현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그간의 사역들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며 하나님 나라와 오실 그이에 대해 설교했던 세례 요한의 가르침들을 예수님께서도 언급하였기에 사람들은 죽은 세례 요한이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닌가 했던 것입니다. 더불어 치유와 축귀에 이어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역사등이 엘리야와 엘리사 그리고 앞선 선지자들의 이야기와 유사한 역사들이 일어나는 것을 통해서 그런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역사도 행하셨습니다. 역사를 통해서 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기적 그 자체에만 머물다 보니 예언의 완성으로 오신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앞선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행한 모든 이적들은 결국 오실 메시아에 대한 것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바르게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직 무리들은 거기까지 연결짓지 못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표현과 고백이 온전한 고백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표현상으로는 예수님의 정체서을 제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오신 분이시며, 기름 부으심을 받은 메시아 곧 오실 그이 이시며,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리던 분이십니다. 또한 세례 요한이 오길을 예비하며 기다린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 모든 것을 합하여 예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이 고백은 예수님께서 왕 곧 주이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시라는 핵심적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그런 주님의 통치와 인도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나라를 온전히 살아간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내게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말씀을 통해 접하고, 지나온 삶의 여정을 돌이켜 보았을 때 우리 삶은 모두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그런 중에도 우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며 신앙 여정 속에서 자라고 성숙할 수 있도록 양육해 주신 것도 우리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습니다. 목적과 방향을 잃은채 살아가던 우리게 지음받은 대로, 거듭난 대로 거룩한 백성과 삶의 길을 가르쳐 주신 분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 주님은 나의 삶의 구주로서 나의 주인이시요, 모든 것 되시며, 삶의 이유와 목적이시며, 삶의 내용 또한 주님이 함께할 때 온전한 것들로 채워질 수 있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제게도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 21-22절 예수님은 고난받는(십자가, 죽음, 부활) 종이십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맞는 표현이지만 그가 이해하는 하나님의 그리스도는 영광을 받으시기 전에 먼저 가야 할 십자가의 길이 있습니다. 곧 고난 받는 종의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왜곡된 이해를 갖고 오해할 여지가 있기에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아직 다른 이들에게 이르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인자가 고난을 받고 장로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삼일에 부활할 것을 예고하십니다.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했던 무리들에게 예수님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라는 것은 왜곡의 우려가 컸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실 일은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길이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죄값이었고, 그런다고 우리가 다 감당할 수 없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셔야 했고, 주님께서 우리가 할 수 없는 그 일을 친히 감당하셔서 우리도 그런 주님이 친히 가시고 만드신 그 길을 주님의 도우심을 따라 뒤따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말씀 전에 예수님은 친히 당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해서 예고하십니다. 많은 고난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서 고발을 당하실 것입니다. 누구보다 메시아에 대해서 바른 이해와 가르침을 행해야 할 종교지도자들의 눈이 어두워 오신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팔아버리는 어리석은 일을 행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버린 바 되고 죽임을 당하시지만 이 모든 역사를 통해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주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주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지금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진 않나요? 무엇보다 말씀을 묵상하고 가르치고 설교 하면서, 성경을 많이 알고 있다고 마치 하나님을 다 아는 것처럼 꿰뚫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나요? 우리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성경을 통해 배우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다 안다고 하면 그는 더이상 하나님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분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일평생 우리 주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런 겸손함으로 우리 주님을 신앙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하나님을 잘 아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결국 우리가 만든 교리와 틀 안에 주님을 가두다 못해 어느 순간 내 뜻이 하나님 뜻이 되어서 마치 내가 하나님인양 말하고 행동하고 가르치게 됩니다. 그래서 잘 못 가는줄도 모르고 있다가 하나님의 바른 뜻을 접하게 되면 그 말하는 이를 막고 보려고 하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하면서 외면하고 심지어 팔아버립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가려는 이들의 길을 막고 서서 왜곡하게 합니다. 특히나 말씀을 맡은 이들이 언행심사에 있어 깊이 유념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을 바로 알고  깨닫기 위해 이 말씀 안에서 주님을 뵈옵습니다. 


# 23-27절 예수님은 십자가 후에 영광으로 다시오실 하나님의 나라이십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를 신앙하며 따라가는 길을 오래도록 고대했던 이들은 그동안 왜곡된 신앙과 신념에 의해서 영광의 길을 꿈꿨을 것입니다. 그런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주님이 가실 길이 어떤 길인지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주님이 가실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따르려면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이는 주님을 위해 목숨을 걸고 가야 할 길입니다. 그 길이 마침내 자기를 찾는 길이면서 주님의 말씀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온전히 순종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지는 일은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래서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결국 우리 욕망을 비롯한 욕심 곧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고 욕망과 세상의 가치를 따라 살아가려는 죄된 본성의 삶을 부인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통치와 뜻과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길은 목숨을 걸만큼 힘든일이고, 쉽지 않은 길입니다. 결단과 각오와 다짐과 희생과 수고와 인내와 믿음등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이 있어야 하며 더욱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게 하시고(이는 곧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마음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알게 하신 그 뜻을 따라 살아갈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은 말씀 충만이고 참된 경건을 살아가는 것이며, 말씀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님의 도우심으로만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은혜라고 표현하고, 그래서 이 길을 가면 갈수록 더욱 겸손해지고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니 성숙해 질수록 더 온유하고 겸손해 지는 것입니다.      
*

인자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를 예수님의 말씀의 순종 여부에 따라 판결할 것을 언급하시면서, 지금 주님과 함께 있는 이들 중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와, 하나님의 나라는 재림이 아니라 예수님 자체로 보기도하고, 예수님의 죽음, 부활, 승천, 성령강림, 예루살렘 성전 파괴(AD70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를 단정하기 전에 영광이라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좀더 이해가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 곧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자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이 영광으로 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고, 뒤이어 예수님께서 예언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신실하게 순종하시는 모든 예수 사건(성육신, 천국복음 전파, 축귀, 치유, 예언, 고난, 십자가, 부활, 승천, 성령강림 등)이 다 영광이 되고 그것이 결국 하나님나라의 실현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 앞에 있는 제자들은 그런 사건들을 모두(가룟 유다는 부활을 보지 못함) 보고 경험했기에 사도행전에서 하나나님나라의 복음 곧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의 복음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거하는 증인으로 살아간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간 그들의 삶이 또한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고, 하나님나라를 먼저 살고 누린 것입니다. 

*

오늘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할 우리가 영광만을 바라고 이 길을 외면하므로 인하여 왜곡된 신앙, 주님의 가르침과 무관한 인간의 욕망이 투여된 신앙, 세상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따라 살아가는 신앙, 공공성을 상실할 신앙, 염세적 신앙, 이원론적 극단주의 신앙, 정치적 신념을 신앙으로 포장한 신앙, 개인과 집단 이기주의적인 신앙, 배타적 신앙등등 하나님의 뜻과 무관한 인간의 탐욕이 점철된 종교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 폐해와 행태와 민낯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모두 우리와 무관하지 않는 거울을 보는 것 같은 현실입니다. 

다시 주님의 말씀 앞에 나아가 우리가 진정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 잘못된 종교 신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그뜻이며, 주님이 먼저 가시고 따르라 하신 그 십자가의 길임을 확신합니다. 그 길에서 받는 핍박과 수치과 모욕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을 또한 왜곡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과 다른 거룩한 삶을 살기에 받는 것이 아니나 세상보다 더한 탐욕을 종교로 포장하다 받는 비난을 핍박이라 착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하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바로 알고 시대를 옳게 분별하면서 우리가 마땅히 걸어가고 처신해야 하고 생각하고 선택하고 일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말씀앞에서 기도하며 주님께 묻고 확인하며 한걸음씩 겸손히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부디 어리석은 종교 지도자들의 선동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깨어서 주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믿음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하나님나라의 거룩한 백성이길 간절히 원합니다.   


# 거둠의 기도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신 주님을

알고 믿고 따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는

지혜와 능력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영광의 길 이전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고난의 길을 감당할

믿음과 능력도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갈 때

주님께 영광되게 하옵시며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순종으로 살아내는

온전한 주의 제자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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