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3:14-4:6
룻기 3:14-4:6 믿음은 기다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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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기다림입니다.
가만히 주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것은 믿음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또 희생과 댓가 지불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참사랑은 어떤 희생도 감수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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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의 어려운 제안을 그대로 이행하고
보아스가 하라는 대로 행한 후에 귀가한 룻을 향하여
나오미는 이 일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합니다.
보아스는 이 일이 성취 될 때까지 쉬지 않으리라는 신뢰를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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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저항과 봉기에 대해 가만 있으라 하고,
순종하여 기다리는 이의 뒤통수를 치고 신뢰를 저버리고 자기 잇속만 차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신뢰를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홍해 앞에선 이스라엘을 향하여 ‘가만히 있으라’한 후에
하나님은 바다속으로 길을 내셨고,
온 세상을 구원하실 구주가 오시리라 약속하시고 기다리라 명하신 후에
마침내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승천하시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 한 후에
주님은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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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약속을 받기까지 힘써 일한 후에
약속을 받은 후에는 기다리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지만 일을 이루시는 여호와께서는
쉬지 않고 일하셔서 마침내 약속을 성취하십니다.
바로 그 주님을 신뢰하는 자만이 인내하며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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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고
사방이 가로막혀 전후좌우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는
뚫린 하늘을 향해 기도하며 가만히 주께서 일을 성취해 가실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 믿음을 가진 이의 합당한 자세입니다.
주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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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의 기업 곧 나오미의 기업을 무를 아무개를 향해
보아스는 합법적이고 도덕적인 의무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을 때
아무개는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부분은 기업을 무른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이 손해와 희생을 감안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기업을 무르지 못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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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대결혼과 고엘제도는
의지할 데 없는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고아, 과부, 노인, 나그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들입니다.
여기에는 책임을 가진 이들의 손해와 수고와 희생이 따라야만
제도가 제대로 이행되어 원래의 정신이 훼손되지 않습니다.
진실로 소외된 자들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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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섬김과 순종에는 반드시 대가가 지불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손해와 여타 희생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를 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감안하고 사랑하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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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 예수님은 그래서 하나님의 희생적 사랑의 본이요
그 희생이 우리를 살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우리가 받았으니
우리도 마땅히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형제를 위해 목숨까지도 바치는 일이 참사랑이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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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손익을 따지면서 사랑과 순종을 망설이고 있나요?
내가 잃고 손해보고 희생할 것 때문에 사랑하기를 꺼리고 있진 않나요?
이미 우리에게 목자되시는 주님이 계시니
우리는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더 잃을 것 손해볼 것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을 지라도 주님이면 족하고,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으로 족하지 못하기에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탐욕이며 결국 부정적 결과를 낳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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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손해도 희생도 대가도 지불하는 것을 감내하는
참사랑을 받은 자로 우리도 그 사랑 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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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팁
- 보리 6되 : 보리는 씨를 상징하며 장차 룻에게 아이를 잉태케 할 것을 상징하고, 7되가 아닌 6되는 지금 보아스가 룻에게 안식을 제공하긴. 하지만 아직은 미완성으로 장차 완성해 갈 것이라는 암시가 담겨 있습니다.
- 17절 빈손으로 가지 말라 : 나오미는 모압에서 돌아올 때 여호와게서 자기를 비웠다고 했지만 보아스를 통해 하나님은 채우고 계심을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 4:1 마침 ; 2:3,4에 ‘우연히’, ‘마치’와 함께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내는 표현들입니다.
- 아무개여 : 보아스보다 더 룻의 기업 무를 자로 가까운 자를 ‘아무개’라 한 것은 그의 행동을 폄하하는 표현입니다. 또한 조연처럼 룻의 행동을 부각시킨, 오르바와 마찬가지로 보아스의 결정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아무개’라는 표현을 통해 극대화 합니다.
- 아무개의 거절에는 자신도 모압 여인으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4:5에서 보아스는 일부러 ‘죽음’에 대한 언급을 통해서 자신이 기업을 무르려는 적극적 의도를 표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보아스가 불법으로 행하지 않고 철저하게 합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처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