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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n 09. 2021

밤에 일하는 사람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계절이 넘어갈 무렵이었다. 잠이 들락 말락 하는데 갑자기 스마트폰이 울렸다. 잠결에 침대맡에 놓인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동생이었다. 이 시간에 ○○가 웬일이지? 한밤중 울리는 전화벨이 희소식인 경우는 드물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스마트폰 슬라이드를 해제했다.


- 여보세요.

- 여기 XX 지구대인데요. ○○○ 씨와 아는 분이신가요?

- 제 동생인데요. 무슨 일이시죠?

- ○○○ 씨가 쓰러져 계신 걸 발견해서요. 저희와 같이 계시는데 지금 오실 수 있나요?


낯선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집에서 자고 있어야 할 아이가 자정이 넘었는데 길에 쓰러져 있다니. 마른하늘에 웬 날벼락인가. 심장이 벌렁거리고 목소리가 격양되었다. 한편, 보이스피싱이나 다른 사기가 아닌가? 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예전에도 다친 동생을 발견해서 데리고 있다는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마침 동생이 같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당황한 상태에서 무슨 일을 당했을지 아찔하기만 하다. 십여 년 전 일인데도 비슷한 전화를 받자 그때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동생 번호로 걸려온 전화이지만 머리가 새하얘졌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이날은 정말 XX 지구대에서 걸려온 전화였고, 경찰관님 덕분에 동생은 병원 응급실에서 적절한 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경찰관께서는 먼저 도착한 부모님을 만나고 병원을 떠난 뒤였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자 수신 번호로 다시 연락했지만, 근무 중이라 바빠서인지 전화를 받지는 않으셨다. 업무를 방해하는 듯해 다시 연락을 드리지는 않았다.


며칠 뒤 우연히 지구대 경찰관 근무 영상을 보았는데, 경찰관님의 노고를 알리고자 우리 가족의 사연을 댓글로 남겼다. ‘경찰관 급여가 높아진다면 세금을 더 내고 싶을 만큼 감사하다’라고 덧붙였다. 5,000명이었나? 엄청난 공감을 받았지만, ‘더 낸 세금이 경찰관 월급 인상으로 이어지는 줄 아느냐’라며 생각 좀 하고 살라고 몇몇 사람에게 비난도 받았다. 직무를 충실히 수행 중인 경찰관을 보이스피싱범으로 오해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비난받은 댓글을 우리를 도와준 경찰관께서도 부디 보셨기를. 그럼, 죄송한 감정이 조금은 덜어질 것 같다. 어쩌면 경찰관께서는 보이스피싱범으로 오해받는 상황이 익숙하실지도 모르지만.




어둠이 깔린 밖과 달리 응급실 안은 눈이 부실 만큼 밝았다. 코로나 때문에 환자 1인당 보호자 1명만 내원을 허용해도, 원내는 한밤중 갑자기 아파서 병원을 찾은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황망한 환자와 보호자는 달뜬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자신의 진료 순서를 기다렸다. 걱정스럽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내원객과 달리 의료진은 차분하면서도 기운이 넘쳐 보였다. 새벽 1시가 아니라 낮 1시가 아닐까 싶은 착각이 들었다. 상냥하고 친구 같은 간호사 선생님과 세심하고 친절한 의사 선생님 덕분에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시름을 약간 덜 수 있었다. 의료진이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에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밤에 일하는 사람들. 나는 줄곧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사무직으로 근무했다. 내 생활에서 밤은 언제나 잠을 자는 시간이었다. 경찰관이나 의료진처럼 야간에 활발하게 일을 하는 모습은 낯설었다. 그러고 보면 친한 간호사 친구에게 근무 일정이 나이트인지, 데이인지 묻곤 했다. 의대생 소개팅 상대는 이틀인가 사흘 만에 퇴근하는 일이 일상다반사라고 말을 했다. 건물 보안 요원인 지인은 종종 야간 업무를 한다고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화요일, 목요일, 일요일 자정 즈음 창밖 너머 ‘지잉~’하는 소리가 들리면 ‘오늘도 야간에 쓰레기를 잘 수거하고 계시는구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분명히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알면서도,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것’이 당연하고 간주했다. 인간은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며 편견을 확고하게 키워가는지.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간혹 이른 새벽을 여닫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아직 가로등의 불이 사위지 않은 거리로 첫차 운행을 나선 버스 기사, 새벽 5시에 뉴스의 문을 여는 앵커, 이른 아침 고소한 내음을 풍기며 빵을 굽는 제빵사, 단정하게 유니폼을 갖춰 입고 공항버스에 오르는 승무원, 새벽 거리를 묵묵히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싱싱한 해산물을 판매하는 수산시장 상인에 이르기까지…… 여느 때보다 일찍 일어나서 누군가가 일하는 풍경을 우연히 보노라면 ‘내가 한창 잘 시간에 누군가는 꼼지락꼼지락 아침을 열고 있었단 말이야?’라는 생각에 자극을 받는다. 최근 화두인 일종의 미라클 모닝이라고 할까. 왠지 삶의 의욕이 샘솟는 것 같다.


물론 이분들 중 누군가는 일찍 출근한 만큼 남들보다 이른 퇴근을 할 것이다. 근무 시간이 길거나 고된 만큼 고연봉자일 수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혹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속사정은 잠시 접어 둔다. 그저 고요한 새벽에 묵묵하게 제 할 일을 하는 사람을 보노라면 마음이 몽글몽글하다.




5시 30분 새벽 첫차를 타야 할 시점인가 보다. 간혹 지하철 첫차를 탈 때면 기대보다 승객이 많아서 깜짝 놀란다. 밤새워 일한 뒤 퇴근을 하거나 밤새도록 놀고 귀가를 하는 등 제각기 사정이야 다를 것이다. 이유를 막론하고 피곤한 얼굴로 간신히 새벽 열차에 몸을 실었을 사람들과 섞여서 자리에 앉는다. ‘나만 이렇게 동동거리며 사는 게 아니구나’라는 묘한 안도감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의지도 생기는 것 같다.


운동을 너무 하기 싫을 때는 특별히 주말 아침 지하철을 타려고 한다. 누가 보더라도 완벽한 등산복 차림으로 새벽 산행을 하러 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고작 1만 보 걷기를 주저하는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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