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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Nov 30. 2020

나는 매일 식물에게 배운다

휘커스 움베르타를 키우며

식물을 키우면서 확연한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시나브로 해가 길어지면 식물은 더 많은 수분을 갈구한다. 우리집 식물 중에서도 유난히 잘 자라는 휘커스 움베르타는 겨울이면 열흘에 한 번씩 물을 준다. 그런데 입춘이 지나 제법 봄기운이 피부에 와닿는 경칩이 되면, 열흘은 너무 길다며 물을 더 빨리 달라고 온몸으로 아우성친다. 엿새나 이레가 지났을 때 잎이 좀 처져서 흙을 만져보면 귀신같이 말랐다. 불과 며칠 전까지 이즈음 흙은 아직 축축했는데 말이다.


휘커스 움베르타는 식물을 키우는 즐거움을 알게 된 특별한 식물이다. 아끼는 식물이라서 허풍을 떠는 게 아니라, 휘커스 움베르타는 자고 일어나면 잎이 몇 센티미터씩 자라 있었고, 동시에 연둣빛 새싹이 움텄다. 어찌나 신기하던지 한동안 일어나자마자 잠옷 바람으로 가장 먼저 거실 창가에 놓인 휘커스 움베르타에게 달려가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성장이 빨라서 키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블로그, 유튜브 등을 보면서 공부했는데, 잠이 많아서 고3 때도 하지 않았던(못했던) 밤샘을 하며 노트 필기까지 하는 정성을 쏟았다. 인간을 닮은 식물을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져서 날이 새는 줄도 몰랐다. 그 결과, 휘커스 움베르타를 저렴한 플라스틱 화분에서 흙으로 빚은 고급 화분에 잘 옮겨 심었다.


식물이 죽는 가장 흔한 이유는 과습 때문이다. 흙이 말랐는지 잎에서 수분감이 느껴지는지 식물의 상태는 안중에 없이 융통성 없게 설명서대로 하기 때문이다. 요리를 글로 배웠어요,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 처럼 실제 식물의 상태는 고려하지 않고, 설명대로 일주일에 세 번 꼬박꼬박 물을 준다. 분명히 하라는 대로 했는데, 또 식물이 비실비실 앓다가 죽어가면 ‘역시 나는 선인장도 죽이는 재주가 있어. 식물과 나는 맞지 않아’라며 영 소질이 없다고 식물 키우기를 지레 포기한다. 물이 과해서 뿌리가 썩는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다. 휘커스 움베르타를 키우기 전까지 나 자신을 식물 킬러라고 확신했던 내 모습이다.


분갈이도 과습을 방지하기 위한 물 빠짐이 중요하다. 우선, 흙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화분 구멍에 거름망을 깔고, 가장 밑에는 큰 자갈, 그 위에는 모래, 다시 그 위는 흙으로 채운다. 대형 화분은 모래와 흙 사이를 스티로폼 조각으로 채우면 좋다. 공기가 잘 통하고 겨울에는 보온 효과가 있으며, 화분 무게를 줄여서 큰 화분을 들어서 옮기기에도 용이하다. 분갈이 뒤에는 규칙적인 물 주기를 하지 말고 며칠 지켜본다. 사람도 환경이 바뀌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듯이 식물도 분갈이 뒤 적응하느라 몸살을 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휘커스 움베르타 움트는 잎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식물도 넓은 화분으로 이사하자 물 만난 물고기처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컸다. 식물이 자라는 기쁨을 만끽하며 거의 매일 물을 주었고, 휘커스 움베르타는 내게 보답하듯이 갈수록 줄기는 굵어지고 잎은 무성해졌다. 아침마다 새싹을 틔우고 또 틔웠다. 휘커스 움베르타 잎은 이웃집 토토로나 개구리 왕눈이가 비를 피하던 사람이 손가락 마디를 모두 붙인 넓은 손바닥처럼 생겼다. 참고로 토토로 나무는 ‘알로카시아’이다. 잎 모양은 휘커스 움베르타와 비슷한데 잎이 달리는 줄기가 훨씬 길고, 줄기를 감싼 밑기둥이 굵다.


문득, 휘커스 움베르타의 너무 빠른 성장 속도가 무서워졌다. 갑자기 휘커스 움베르타가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가오나시로 보였다. 조용하고 다정한 요괴 가오나시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이성을 잃고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괴물로 변해버린다. 휘커스 움베르타가 계속 이 속도로 자란다면 머지않아 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하고, 얼마 뒤에 또 분갈이하고…… 결국에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온 집안을 덮어버릴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식물에 물 주는 주기를 늘렸다. 휘커스 움베르타의 무서운 성장 동력은 충분한 수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물 주기를 멈추고, 잎이 처지고 수분이 말라 푸석푸석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식물의 모습에서 ‘물이 절실해요. 제발 한 모금만 주세요’라고 느껴질 때 가끔 한 번씩 물을 듬뿍 주었다. 그러자 하루가 멀다고 움트던 싹은 자취를 감춘 채 단단한 봉우리 상태로 성장이 멈추었다. 잎도 더는 자라지 않고 그 상태를 유지했다.


몇 개월이 지났을까. 다시 새싹이 돋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예전처럼 자주 물을 주었다. 수분을 머금은 잎은 이내 싱싱한 모습을 되찾았지만, 한번 앙다물어진 잎봉오리는 전혀 벌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식물도 한번 성장을 멈추면 그전에 아무리 잘 자랐더라도 다시 새로운 생명을 틔우기까지 많은 준비가 필요한가 보다. 그렇게 일 년 정도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잎 하나가 노래졌다. 다시 살아나길 바라며 물을 더 자주 주고, 영양제도 주었지만 소용없었다. 일주일 뒤 다른 잎마저 시들까 봐 결국 가위로 싹둑 잘랐는데, 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일 년 동안 꿈쩍 않던 잎봉오리가 조금씩 벌어지며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있었다. 마치 생을 다한 잎이 떨어지길 기다렸다는 듯이 경쟁하는 것처럼 새싹 대여섯 개가 돋아났다.


연둣빛 작은 새싹은 얇고 보드라웠다. 연약하지만 싱그러웠고 촉촉했다. 어렵게 움튼 만큼 강인하고 질긴 생명력이 느껴졌다. 반면, 커다란 오래된 잎은 두껍고 거칠었다. 단단하지만 새싹 같은 생기가 느껴지진 않았다. 언젠가 맞이할 생의 이별을 향해 덤덤히 나아가며, 성숙한 어른으로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고 삶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작은 나무 한 그루에 피고 자라고 지고, 비우면 다시 채우고, 만나면 헤어지는 인생사가 담겨 있었다. 오래된 거친 잎과 새로 난 연한 잎을 닦으면서 나는 지금 인생에서 어느 시점을 지나는지 가늠해 본다. 노랗게 시든 잎을 잘라낼 때마다 삶의 유한함을 깨닫는다. 내 몫의 역할을 버겁다고 피하지 말고 덤덤히 받아들여 하나씩 헤쳐나가자고 다짐한다. 세상에 영원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이별을 너무 슬퍼하지 말고, 버려야 할 것에 미련을 두지 않기로 한다. 식물을 보고 있으면 나란 존재는 한없이 작아지고 결국은 겸손해지자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렇게 나는 매일 식물에게 배운다.


노랗게 변해가는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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