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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Apr 23. 2021

'피아니스트도 처음에 바이엘로 배웠나요?'

음악가 지인에게 물으니 돌아온 대답

내 첫 회사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 홍보팀이었다. 환자들을 위해 점심마다 열리는 원내 음악회를 전담해서 운영할 6개월 인턴사원 계약직이었다. 업무는 재밌고 보람찼으며 팀과 사내 분위기도 괜찮아서 약속한 기간의 두 배가 넘는 1년 2개월을 근무했다.


대학병원 사무직 근무가 특별히 더 좋았던 점은 일하는 곳이 병원이라 아팠을 때 ‘잠시 진료 좀 받고 오겠습니다’라고 보고해도 별 부담이 없었다. 진료 시 직원 할인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다. 종합건강검진은 확실히 가족까지 할인 혜택을 제공했다. 의료진이 밤낮없이 근무하는 공간이라 구내식당을 새벽부터 밤까지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운영한다. 가끔 일찍 출근해서 회사에서 아침을 먹거나 저녁을 먹고 퇴근했는데, 음식은 푸짐하고 가격은 저렴하며 매 끼니 두 가지 식사 종류 중 선택할 수 있었다. 오전 8시 30분에 출근해서 오후 5시 30분에 퇴근했고, 10년도 더 전인데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모두 정시에 퇴근하는 분위기였다. 참! 정기적으로 심폐소생술(CPR) 교육도 받았는데, 흉부를 생각보다 훨씬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이것이 괜찮은 근무 환경인 줄 몰랐다. 회사 생활이 처음이라 어수룩했다. 나는 임시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팀장님과 선배들도 계속 같이 일하기를 바랐고, 병원은 공격적인 투자로 급성장 중이었으며, 이미 타 부서 직원, 의료진과 업무상 이런저런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그곳에서 일하기를 진심으로 희망했다면 (물론, 정식 면접 등을 거쳤겠지만) 행정이나 사무직 T/O가 생겼을 때 정식으로 채용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아마 다시 돌아가도 야망이 넘치던 그 시절에는 안정적이나 보수적인 근무 환경의 소중함이 와닿지 않았을 것 같다. 젊다는 건 별것 아닌 일이 다 별것인 무모한 시절이니까.




나의 핵심 업무인 음악회는 연주자들의 자원봉사로 운영했다. 프로와 아마추어 연주자의 참여 비율은 비슷했는데 직업이 음악가인 프로 연주자 공연 횟수가 약간 더 많았다. 그래서 무료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공연 수준이 높은 편이었다. 연주자의 구성은 혼자 와서 한 시간 동안 조용히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하고 돌아가는 연주자, 예술 학교 피아노과 선생님이 고등학생 제자 여러 명과 방문해서 돌아가면서 치는 경우,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초등학생 원생들과 귀여운 작은 음악회를 선보이는 경우, 삼중주나 사중주, 심지어 체임버 오케스트라, 크로스오버 국악 합주, 성악, 하모니카 합주까지 다양했다.


매일 점심마다 일하면서 훌륭한 연주를 라이브로 듣는 시간을 누렸지만, 사소한 업무적 고충이라고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더는 듣지 않는 곡도 생겨났다. 아무래도 연주자들이 환자를 위로하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선곡을 하다 보니 늘 빠지지 않는 몇몇 단골 곡이 있었다. 일단, 제목부터 누군가를 위로하는 ‘You Raise Me Up’,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영화 <미션> OST ‘Gabriel’s Oboe’,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인생의 회전목마’는 선율이 아름다운 곡이지만, 연주회에서 너무 자주 들어서 한동안 개인적으로는 듣지 않았다.


새로 알게 된 좋은 곡도 많다. 고서이의 ‘Melody Garden’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상큼하고 경쾌한 선율을 듣고 있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코에서 진짜 싱그러운 풀 내음이 나는 것 같다. 고등학교 선생님과 제자인 학생이 같이 피아노 연탄곡을 연주하는 보기 좋은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나는 당연히 두 사람 다 예술 학교에 재직, 재학 중인 줄 알았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학생은 음악가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일반계 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선생님은 심지어 음악 교사도 아니며, 취미로 피아노를 연주한다고 했다. 악기 하나를 전문가 수준으로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니. 풍요로운 삶의 자세가 느껴졌다. 취미에 그치지 않고 뜻이 맞는 제자들과 ‘함께’ 음악 봉사활동까지 나선 모습에서, 학생들과 이런 친분을 맺고 있는 선생님이라면 분명 좋은 사람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시기에 나는 인생에서 가장 많은 클래식 전공자를 만났다.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정기적으로 봉사를 오는 연주자가 많아서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레 개인적인 친분도 쌓았다. 특히, 혼자 온 봉사자와는 연주가 끝난 뒤 뒷정리를 마치고 구내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외로 음악가들은 지극히 평범한 내 회사원 생활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내 업무를 관리하는 직속 선배는 사무 공간 출입문 카드기인 사원증을 ‘밥 목걸이’ 정도로 표현했는데, 식당 입구에서 사원증을 바코드에 찍어야 식대가 계산돼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몇 연주자들은 사무실 입구에서 사원증을 띡 찍고 들어가는 모습이 프리랜서인 자신에게는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다며, 한 번쯤 꿈꿔본 삶이라고 말했다. 사람의 생각은 저마다 다르고, 가지지 못한 삶을 향한 단편적인 동경은 늘 존재하는 모양이다.




여러 연주자 중 내가 일을 하기 전부터 꾸준히 음악 봉사를 해오던 몇 살 많은 언니와 특히 친해졌다. 언니가 진행하는 해설이 있는 음악회는 피아노 연주 중간중간 직접 곡 설명을 곁들여서 관객 반응이 좋았다. 특정 분야에 숙달한 지인에게 막상 ‘어떻게 그 일을 잘하게 되었어?’, '특별한 비결이 있어?’라고 직업에 관련된 전문성을 묻는 행위는 왠지 쑥스럽다. 어느 날, 나도 피아노 연주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민망함을 감수하고 언니에게 질문했다. ‘언니도 어렸을 때 바이엘부터 배웠어요?’ 그러자 피아니스트 언니에게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모차르트부터 쳤어요’


모차르트, 베토벤, 바흐, 쇼팽 같은 유명한 음악가의 곡은 바이엘로 기초를 다진 후에야 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반짝반짝 작은 별도 모차르트 곡이잖아요. 저는 그냥 모차르트의 밝고 경쾌한 선율이 참 좋더라고요. 제가 모차르트를 재밌어하고 흥미를 보이니까 선생님도 계속 모차르트 연주를 알려주셨고요.’라고 말을 이어갔다. 그래, 세상에 ‘반드시 ~을(를) 해야 한다’라는 법은 없는데, 나는 좁은 틀 안에 갇혀서 왜 해야 하는지, 하고 싶긴 한 건지 근원적인 고민 없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주어진 일만 하며 살아왔구나 싶은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 보니 무언가 재밌어서 한 기억이 한 번도 없었다. 해야 한다고 하니까 이왕이면 재밌게 하는 편이 낫겠다 싶어서 나름 그 안에서 재미 요소를 찾긴 했다. 이런 긍정적인 태도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지만 순전히 재미를 동기 삼아 행동으로 이어가는 일과 비교할 수는 없다. 언니와의 대화 이후 ‘세상에 무조건 정해진 건 없다’라고 가치관이 바뀌었다. 늘 경직되었던 내 삶이 조금씩 말랑말랑해졌다. 엉켜 있던 머릿속은 ‘Why Not! 재밌으면 한 번 해보는 거지. 뭐가 그리 복잡해’라며 단순해졌다. 취미로 고서이의 Melody Garden을 연주하던 선생님처럼 내 삶도 서서히 더 풍요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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