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마일펄 Jun 10. 2021

우연이 겹쳐 벌어진 기적 같은 일

스위스 패러글라이딩

하늘 끝에 닿을 듯한 뾰족한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렸다. 화창한 9월, 스위스 그린델발트(Grindelwald)의 웅장한 산은 회색빛 민낯을 드러내고 있었다. 기온이 낮은 정상 부근과 빛이 잘 들지 않는 그늘진 군데군데 만년설이 눈에 띄었다. 우리가 머문 방은 복도 끝 가장 안쪽이다. 테라스에서 피르스트(First) 케이블카 입구가 보이고, 대로(大路)와 다른 객실과 차단돼 조용하다. 무엇보다 옆방 사람이 매콤한 라면 냄새를 싫어하지는 않을지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고지대, 산 정상, 해안가에서 먹는 라면 한 젓가락은 왜 이리 꿀맛인지 미스터리다. 솔솔 불어오는 산바람을 맞으며 뜨끈한 라면 국물을 들이켜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수도로 공급되는 빙하 천연수 한 컵으로 묵을 축이고, 짧게 일기를 쓴다.


“내일의 할 일: 피르스트에서 패러글라이딩 하기”


다음 날, 아침 일찍 피르스트 케이블카 입구에 들러서 패러글라이딩 업체를 찾았다. 아침 일찍 예약하고 다른 곳을 둘러볼 계획이었는데, 웬걸! 패러글라이딩 업체 건물은 잠겼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 쉬는 날인가? 별다른 대책도 없이 화단 모서리에 앉아 한 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안전모를 착용하고 풀어진 낙하산을 어깨에 짊어진 일행을 만났다. 패러글라이딩을 마친 뒤 사무실에 복귀한 직원들이다. 건물에 상주하며 예약과 문의를 전담하는 직원 없이, 사장님이 파일럿이자 예약도 같이 담당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오후 4시 30분에 피르스트 꼭대기,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바로 보이는 스포츠용품점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2인용 패러글라이딩에 함께 탑승한 파일럿이 잘 조종할 것이다. 만일에 문제가 발생하면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이중, 삼중 안전장치를 마련했을 것이다. 탑승객인 내 목숨만큼이나 파일럿 자신들의 생명도 소중할 테니까. 게다가 70대 노인인 박막례 할머니도 스위스에서 멋지게 패러글라이딩을 해냈다(참고로 박막례 할머니가 한 길게 뻗은 청록빛 강과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비행은 인터라켄 패러글라이딩이다). 패러글라이딩은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의 놀이기구나 다름없다.’


약속 시각이 임박해 스포츠용품점 앞에서 파일럿을 기다리며 속으로 계속 이 논리를 되뇌면서 괜찮다, 괜찮다 마음을 다스렸다. 자꾸 화장실에 가고 싶었는데, 긴장해서 그렇지 진짜로 소변이 마렵지는 않았다. 반면, 동생은 태연하고 평온해 보였다. 무섭지 않으냐고 물으니, 전혀 무섭지 않다고 했다. 마침내 파일럿을 만나서 패러글라이딩 장소로 이동한 뒤 장비를 착용했다. 준비를 일찍이 마친 몇 사람을 먼저 보내고 이제는 꼼짝없이 내 차례였다. 앞이 탁 트인 너른 벌판에 두 다리를 짚고 섰다.


“쓰리, 투, 원, 고우!”


파일럿의 힘차 구령 소리에 맞춰서 바람을 가르며 비탈길을 내달렸다. 


“런, 러언, 러어언, 러언~~~~~”


몇십 미터쯤 달렸을까.


“점프!”


마침내 파일럿이 점프라고 외쳤을 때 꼭 붙인 양다리를 쭉 뻗어 상체와 90도를 이루도록 들어 올렸다. 순간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더니, 아니 붕 뜨더니 어느덧 새처럼 하늘을 날고 있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고, 상쾌하다는 말로는 다 부족했다. 왜 그리 긴장했나 싶을 만큼 마음에 평온함이 깃들었다.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소중한 이 순간에 높이 더 높이 올라가서 지평서 너머로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전부 눈에 담고 싶었다. 나무가 빽빽한 울창한 숲과 빙벽으로 덮인 장엄한 산에 비해 인간들이 사는 마을은 고작 점에 불과했다.


나도 모르게 찔끔 눈물이 났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심장이 박동하고 호흡하고 양손으로 지지대를 꽉 움켜쥐고 목청껏 소리치며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표출하는 모든 것들이 경이로웠다. 온몸 구석구석에서 ‘내가 살아있다’라는 예민한 생의 감각이 느껴졌다. 나라는 보잘것없는 사람이 한국에서 8,870km 떨어진 스위스에 와서 하늘을 나는 뭉클한 시간을 누리고 있다는 자체가 감사했다. 그것도 사랑하는 동생과 함께 말이다.

뒤이어 착륙한 동생은 눈시울이 붉고 볼에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하늘에서 감정이 복받쳐 한번 터진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고 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부모님께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도록 지극정성으로 돌보지 않으셨다면,

장시간 비행과 고된 여행을 견딜 만큼 체력이 좋지 않았다면,

여행 비용을 감당할 만큼 경제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면,

자유로운 휴가 사용을 용인하지 않는 회사 문화였다면,

대체 인력 확보가 여의치 않아 하루 휴가 내기도 어려운 직종에 종사했다면,

배우자가 자신과 함께 떠나지 않는 여행을 탐탁지 않아했다면,

동생과 때마침 시간이 맞지 않았다면,

스위스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는 정보를 몰랐다면,

갑자기 날씨가 변해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면


내 인생에서 동생과 함께한 스위스 패러글라이딩이라는 추억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술한 내용과 정확히 정반대의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아름다운 기억을 남길 수 있었다. 단순히 행운이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거슬러 오르니 이 자체가 실로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결핍한 상태에 지나치게 익숙한 것 같다. 적당한 결핍은 삶이나 성장의 원동력이지만, 지금 우리는 지나친 것 같다. 결핍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데 굳이 가지지 못한 것이나 부족한 점을 들춰내 더 깊은 결핍 속으로 파고든다. 가속도가 붙은 결핍 눈덩이는 점차 불어나서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덮어버린다. 가히, 결핍 중독 사회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친구들'보다' 부족한 가정 형편에 한때 부모님을 원망했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자잘한 불공평한 일마저 불만불평을 늘어놓느라 지나친 감정을 소모했다. 때때로 내 잣대에서 벗어나는 배우자에게 실망해서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고는 한다. 가진 것의 소중함을 보지 못하고 별일 아닌 수만 가지 결핍에 집착하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내 마음속 어딘가에 존재할 결핍에도 불구하고, 스위스 하늘에 떠 있는 동안 ‘나는, 내 삶은 이미 완전하다’라는 기운이 내면을 한가득 채웠다. 이 충만한 감각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이전 08화 "나 여기 맥주 줘. 오늘은 낮술 해야겠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