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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May 26. 2021

소울메이트, 내 동생 이야기

말하지 않아도 나를 이해하는 사람

수능을 몇 달 앞둔 어느 날이었다. 모범생 동생은 폭탄 발언을 던졌다. “프랑스로 유학을 보내주세요. 파티시에가 되고 싶어요” 상상하지도 못한 상황에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대한민국 정규 교육과정 12년을 마무리 짓는 수능이 코앞이다. 프랑스 유학과 제과제빵사, 국내 대학 입학 사이의 간극은 커도 너무 컸다. 게다가 동생은 학업 성적도 뛰어난 편이었다. 동생이 고심 끝에 간신히 꺼냈을 속마음은 수능을 앞둔 고3 수험생이 현실의 압박을 회피하고자 충동적으로 내뱉은 발언으로 치부했다. 안타깝게도 그때는 그랬다. 이런 상황을 예상했는지 동생도 더는 조르지 않고, 무난하게 예정대로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 생활에 전혀 적응하지 못한 채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결국 자퇴하고 말았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자유롭고 어두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렸다.




동생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아이였다. 천성이 선해서 주변 사람을 배려하고, 시키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을 자신 스스로 찾아서 했다. 예쁜 데다가 공부도 잘했다. 초등학생 때 내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동생은 컴퓨터 게임에 열중하다가도 언니들 하라면서 바로 자리를 양보했다. 별일 아닌 것 같지만 한창 게임이 재밌을 나이이고(물론, 게임은 지금도 재밌다), 먼저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었다며 고부릴 법도 한데 동생은 선뜻 이용 권리를 언니들에게 넘겨주었다. 자매들은 <응답하라 1988>의 보라와 덕선이, <작은 아씨들>의 조와 에이미처럼 사소한 일로도 서로 티격태격하지 않나? 그런데 나는 두 살 터울 동생과 다툰 기억이 없다. 심성 고운 동생이 늘 언니인 나에게 양보하고 배려했기 때문이다.


처음 해보는데 첫째 날부터 결과물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재능을 타고나길 조금만 노력하면 무슨 일이든지 금세 보통 수준을 넘어서는 사람 말이다. 그 드문 재능의 소유자가 바로 내 동생이다. 한마디로 머리가 비상하다. 일단, 학업 성적은 항상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집중력과 암기력이 좋아서인지 별로 힘들이지 않고 내신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독학으로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 외국어를 익혔는데, 영미권 국가에 가본 적 없지만 동생은 원어민과 유창한 영어로 소통할 수 있다. 몇 년 전 함께 간 스위스 여행에서 동생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운영하는 요가 수업에 참석했다. 강사님의 독일어 코칭을 이해하며 동작을 따라 하자, 같이 수업받던 스위스 동네 아주머니들은 환호하며, 동생에게 친밀감을 한껏 드러냈다.


더 말하면 팔불출 같아서 그만하고 싶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이야기를 이어간다. 게다가 동생은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림도 잘 그리고 피아노도 잘 쳤다. 패션 감각이 좋아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 옷을 맵시 있게 입었다. 손재주가 좋아서 명절에 만두도 예쁘게 잘 빚고, 오목조목 정리정돈도 잘했다. 운동 신경도 보통 이상이다. 청소년기에는 특히 ‘내가 과연 잘하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으로 혼돈의 시간을 보내는데, 동생은 그냥 못하는 거 빼고 다 잘하는 아이였다. 언제나 사랑스럽고 대견스러운 존재였다. 그래서 마음의 병을 얻은 동생이 ‘엄마는 언니와 말할 때와 다르게 나와 대화할 때는 눈도 마주치지 않잖아’라며 진심을 토로했을 때, 엄마와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 자매는 둘 다 차분한 성격인데 십 대 시절 동생은 나보다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소극적인 성격은 아니어서 가정이나 학교에서 존재감 없는 아이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소한 일에도 엄살 부리며 적극적으로 관심을 갈구하던 나와 달리, 동생은 묵묵하게 제 할 일을 하는 편이었다. 어쩌면 ‘○○(이)는 알아서 잘하니까’라는 생각에 부모님께서 동생에게 나보다 관심을 덜 주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때 동생은 나와 달리, 가족에게 감정이나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동생이 우리 가정에서 사랑을 제대로 못 받고 있다고 느끼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음이 참으로 아팠다.


동생의 착한 성품은 천성이자 둘째로서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을까. 장자(長子)가 낳은 첫 번째 손주인 언니(나)는 대가족 환경에서 항상 주목받는 존재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온 가족의 관심 속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했다. 존재 자체로 소중한 가치를 인정받아서인지 나는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낀 적이 없다. 즉, 나에게 부모님의 믿음과 지지는 무조건적이고, 가족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더라도 보호받을 울타리가 있다고 느낀다. 동생은 둘째로서 가족의 관심을 끌고 ‘인정’ 받는 방법으로 착한 아이를 선택했던 걸까. 자기중심적인 언니와 다르게 말썽 피우지 않고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우리 집이 꼭 첫째 위주로 굴러오지는 않았다. 동생과 싸운 기억은 없는데 다퉜다고 같이 야단맞는 기억은 있다. 우리가 싸운 적은 분명히 있었던 셈이다. 이때 부모님은 누구 편도 들지 않으셨다. 언니는 언니라서, 동생은 동생이라서 야단맞았다. 언니는 동생을 포용하지 못하고 화를 참지 않아서, 동생은 언니를 이해하지 않고 대들어서 혼이 났다. 일찌감치 각자 소유물 개념도 확실해서 동생이 내 물건을 물려받는 일도 없었다. 옷, 신발, 책, 인형 등 각자 소유물을 인정하고, 양해 없이 빌려서 사용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순응적이고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와 달리, 동생은 일찍이 자신의 마음을 깊게 들여다보고 세상을 넓게 바라봤던 것 같다. 대학 입시 위주의 한국 교육에서 성적 우수자라는 특권적인 지위를 누리기보다 점수로 줄 세우는 획일적이고 소모적인 입시 경쟁에 깊은 회의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더군다나 자신처럼 몰개성 한 문과생에게 국내 대학 진학은 또 다른 무한 경쟁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서는 무의미한 일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만일 그때 동생이 바랐던 대로 프랑스에서 제과제빵을 배웠다면 어땠을까? 인생과 역사에 가정은 없기에 그 결정이 동생에게 약이 되었을지, 독이 되었을지는 알 수 없다. 막상 부딪쳐보니 생각과 달라서 마음을 접고 회의적이던 국내 대학에 진학했을지도. 고된 파티시에 교육 과정을 버티고 한국에 돌아온 뒤 제과제빵 업계의 치열한 경쟁에도 염증을 느꼈을지도. 어쩌면 동생은 경쟁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중압감이나 실패를 견디는 힘이 미미한 나약한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꼭 동생의 입장에서 함께 고민해주고 싶다. 어떤 생각의 과정을 거쳐서 제과제빵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는지, 동생이 바라는 대로 프랑스 유학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 가정 형편으로 가능한 일인지, 당장 실행할 수 없다면 대안은 무엇인지, 궁극적으로 동생이 꿈꾸는 일이 정말 맞는지 등을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다. 그러면 동생의 결핍이 밥 한 숟가락만큼은 채워지지 않았을까. 조금은 덜 아프지 않았을까. ‘십 대라 예민해서 그래, 크면 나아지겠지’, ‘고3이라 힘들어서 그래, 대학교에 가면 괜찮아질 거야’라며 동생에게 뒤늦은 사춘기가 찾아왔다고, 그의 말을 가볍게 치부한 일을 생각하면 후회로 가슴이 저린다.




동생이 조울증 고비를 넘길 때마다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는다. 동생은 자신이 나약하고 타인에게 받기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이다. 섬세하고 예민해서 타인이 말하지 않아도 속마음을 잘 읽고,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알아채서 주변 사람에게 따스함을 선사한다. 어릴 때처럼 변함없이 존재 자체로 사랑스럽고 힘이 되는 사람이다.


동생에게는 무슨 이야기라도 대화가 ‘통’한다.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다. 우리는 소울메이트가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하는데, 며칠 뒤 동생이 직접 그린 그림엽서 뒷면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 영혼의 친구 ○○ 언니에게’. 때마침 이런 편지를 받다니. 우리는 정말 영혼의 친구이자 소울메이트일까. 내 일방적인 감정이 아니라는 생각에 다행이라고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런 짧지 않은 연유로 매년 수능시험 때가 되면 마음이 미묘하게 복잡하고 잡생각이 많아진다. 다들 이렇게 예측 불허 속에서 애써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지’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산다는 건 참말로 녹록지 않은 일이다.



2020년 11월에 작성한 아래 세 개 글을 토대로 글 하나로 퇴고했습니다.


100% 천사 같은 착한 내 동생

수능시험을 앞두고 폭탄선언을 하다

세상에서 유일한 소울메이트

이전 10화 ‘너 우울증 아니니?’라는 상처 주는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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