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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Jul 20. 2021

죽어가던 떡갈고무나무가 기적처럼 다시 살아났다

식물의 마음을 이해하기

가끔 어떻게 이처럼 비논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나 자신에게 놀라곤 한다. 어쩌다가 작은 거북이 한 마리를 키우게 되었다. 영상 수업에서 촬영을 마친 뒤 남은 소품을 팀원들과 서로 나누었는데, 끝끝내 거북이는 아무도 원치 않았다. 혼자 자취하거나 형제, 자매와 둘이 사는 사람보다는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과 같이 사는 내가 그나마 낫겠다 싶어서 어쩔 수 없이 거북이를 우리집으로 데려왔다. 어느 날, 고등학교 절친과 우연히 캠퍼스 근처에서 만나서 근황을 주고받다가 거북이를 키우게 된 이야기를 했다. ‘너 설마 거북이가 장수 동물이라고 먹이를 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라고 친구가 농담을 던졌는데 어찌나 뜨끔하던지. 역시 절친은 절친이다. 그녀는 정곡을 찔렀고, 그날 나는 수족관에 들러 거북이 먹이를 사 갔다.




식물을 키운 뒤 첫 번째 겨울을 맞이했고, 나는 식물에도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다. 추워지자 집안 관엽식물이 전반적으로 시들었는데, 줄곧 싱싱하기만 했던 떡갈고무나무 상태가 가장 심각했다. 전체 잎 가운데 3분의 1이 노랗게 변했고, 잎이 달린 나무줄기 사이에 허옇게 서리 같은 게 끼었는데 닦아도 잘 지워지지 않았다. 균인가 싶어서 약을 치고, 급한 대로 전에 사 놓은 영양제 두 개를 흙에 꽂아주었다. 제발 시든 잎이 다시 살아나길 간절히 바랐지만, 다음 날에도 고무나무의 상태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한번 노랗게 변한 잎은 곧이어 무정하게 똑 뚝 흙 위로 떨어졌다. 겨우 잎 몇 개가 남은 떡갈고무나무는 휑뎅그렁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겨울에는 식물의 활동력이 떨어져서 되도록 영양제를 주지 않는다고 한다.


대체 뭐가 문제지? 겨울이지만 난방을 해서 실내 온도는 22~24도를 유지했다. 더군다나 회사 사무실이나 카페 실내에서 키우는 떡갈고무나무는 겨울이라도 잘 자라는 것 같던데. 흙이 축축하진 않지만 마르지도 않은 상태라 물이 부족해 보이지도 않고. 그래도 추워서 그런 건지도 모르잖아. 그럼, 식물 전용 전기난로라도 장만해서 온기를 쬐어주어야 할까. 그건 너무 더울 수 있으니 겨울에 짚으로 가로수에 옷을 입히듯이 화분 주위를 담요로 감싸 볼까. 아니면, 겨울이라 자연광이 부족해서 식물등이 필요한 걸까. 복잡한 심경으로 온갖 궁리를 해도 지식이 부족하니 뾰족한 해답이 떠오를 리 없다. 결국 식물 고수들의 조언을 얻고자 인터넷에서 ‘겨울에 식물 키우는 법’이라고 검색했다.




잠시 떡갈고무나무가 어떤 식물인지 소개하자면, 영어로는 fiddle-leaf fig로 fiddle은 바이올린 모양의 고대 현악기이다. 위로 갈수록 넓어지는 잎이 바이올린을 닮아서 이처럼 이름을 붙인 모양이다. fig는 무화과로 이 식물은 뽕나무과(Moraceae) 무화과나무속(Ficus)에 속하고, 학명은 Ficus lyrate이다. 고향은 서아프리카로 카메룬 서부부터 시에라리온에 이르는 저지대 열대우림에서 자생한다. 최저 생육 온도는 약 10°C이다.


반양지를 좋아해 거실 창 측이나 발코니에 두고 따뜻한 실내에서 제때 물만 주면 잘 자라는 편이다. 사무실, 카페, 병원, 음식점, 가정집 등에서 흔히 볼 수 관엽식물이다. 관엽(觀葉)식물이란 ‘잎을 감상하다’라는 한자 풀이 그대로 잎사귀의 모양이나 빛깔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기기 위해서 재배하는 식물이다. 과습일 경우 오히려 위쪽부터 잎이 검게 변하기 때문에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돼 거의 손 갈 일이 없다. 진한 갈색 줄기에 뻣뻣한 잎채소 케일을 닮은 어른의 손바닥보다 큰 짙은 청록색 잎이 여러 겹 겹쳐서 위로 향해 달려 있다면 십중팔구 떡갈고무나무일 것이다. 사람의 정맥처럼 잎맥이 굵고 두드러진 떡갈고무나무 잎은 적당한 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광택이 난다.


 



우선, 나는 기초적인 식물 상식을 간과했다. 모든 식물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햇빛, 바람, 물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이 식물은 음지에서도 잘 자라요’라고 하면 햇빛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잘 자라지만, 아침, 저녁으로 약한 햇볕을 쬐면 더 좋아할 것이다. 1년 365일 빛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돼요’라는 식물은 잎과 줄기에 물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건조에 강하지만, 틈틈이 잎이 촉촉하고 부드러운지, 흙이 마르지는 않았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겨울에도 당연히 예외는 아니다. 물이 부족해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를 ‘바람’이다. 인사 잘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듯이, 식물 초보자지만 아직 바람을 싫어하는 식물을 보지 못했다. 겨울이라서 춥다고 언제 환기를 마지막으로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겨울에는 식물의 활동력이 저하한다는 정보를 내 멋대로 해석해서 물도 잘못 주고 있었다. 조금씩 자주 주었는데, 겨울이라 흙이 마르는 속도가 더디므로 물 주는 기간을 늘려서 횟수는 줄이되, 대신 한 번 줄 때 뿌리가 젖도록 듬뿍 줘야 한다. 또한 떡갈고무나무는 고온다습한 환경을 좋아하는데, 우리나라 겨울은 건조하므로 잎에 자주 분무해 습도를 유지하도록 신경써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미리 잘 알려고 하지도 않고, 식물 전용 전기난로와 식물등을 구매할까, 화분을 담요로 감쌀까, 라면서 애먼 탓만 하고 있었으니 떡갈고무나무 입장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사실 이런 소모적인 어긋남은 인간관계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A는 a가 좋다며 a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B는 내가 잘 아는데 b가 좋다면서 A에게 계속 엉뚱하게 b를 강요한다. 실제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A가 정말로 무엇이 필요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한 번도 제대로 이해하려고 한 적도 없으면서. A가 아무리 b는 싫다고 분명하게 의사를 밝혀도 B는 다 A 널 위해서, A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라며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게 과연 사랑일까? 이기적인 자기만족은 아닐까? 이러한 난감한 상황은 특히 부모와 자식, 부부, 가족, 연인, 친한 친구 등 주로 가까운 관계에서 벌어지는데, 사람은 식물과 달리 말을 할 수 있어서 같은 상황을 반복하면 서로 말로 상처를 주고 갈등을 빚다가 끝내 절연에 이르기도 한다. 인간관계의 기본인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를 저버리는 순간, 한때 누구보다 가까웠던 이는 남보다 못한 원수 사이로 멀어지고 만다.




이후,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어서 온 집안을 환기했다. 환기를 마치고 창문을 닫아 집안에 훈훈한 기운이 돌 때 즈음 분무기로 떡갈고무나무 잎 전체에 물을 뿌렸다. 내가 오전에 하루를 시작하듯이 식물도 오전에 본격적으로 광합성을 할 때 물을 주는 것이 좋다. 보름에 한 번, 미리 받아 하루를 묵혀 미지근해진 물을 흙에 듬뿍 뿌려주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곧 죽을 것만 같던 떡갈고무나무에 기적이 일어났다. 앙상한 줄기 끝에서 연둣빛 작은 새싹이 돋아났다. 떡갈고무나무는 값비싼 영양제나 전용 전기난로, 식물등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매일 아침, 저녁으로 10분씩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잎을 촉촉하게 적실만큼의 물 약간이면 충분히 만족했다. 이제야 자신의 마음에 제대로 귀를 기울여줘 고맙다며 떡갈이가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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