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부끄럽게 한 언니 같은 친구
19살의 12월에 친구들과 서울로 놀러 가기로 했다. 셋 모두 처음으로 한강 유람선을 타는 추억을 쌓으며 함께 십 대의 마지막 겨울을 보내기로 했다. 그중 한 명은 운동하다 앞머리에 입김 고드름이 맺힌 친구인데, 어디에서 들은 정보인지 석촌호수 부근에 있는 오모리찌개 음식점을 강력하게 추천했다. 그래서 우리는 오모리찌개를 먹은 뒤 저녁에 한강에서 유람선을 타기로 계획을 세웠다.
2호선 잠실역과 8호선 석촌역 딱 중간, 멀리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가 보이는 오모리찌개 음식점을 찾는 일은 수월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친 뒤 핵심 일정인 유람선을 타려니 갑자기 막막했다. 천진난만한 경기도민 소녀들은 큰 고민 없이 ‘한강 유람선이니까 어쨌든 한강에 가면 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뒤늦게 한강은 서울을 관통해 서해로 흘러가는 큰 강이며, 유람선을 타려면 구체적으로 한강 어디에 선착장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깨달았다.
애플의 아이폰이 출시되기 전이라 핸드폰으로 지도를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길 가던 어른에게 얼마든지 물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모처럼 서울을 왔겠다, 배도 부르겠다 해서 타인의 도움 없이 산책 겸 일단은 무작정 한강에 가기로 했다. 석촌호수와 잠실역을 지나 계속 직진하니 선착장은 없고 한강 위 잠실대교가 나타났다. 어떡하지? 이대로 잠실역으로 돌아가 2호선을 타고 집에 가야 하나? 옷깃을 파고드는 강추위에 셋이 꼭 붙어있어도 온몸이 덜덜 떨렸지만 이대로 포기하기는 아까웠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한강의 동서(東西)가 한눈에 보이는 잠실대교 중간 지점까지 걸어가 선착장 위치를 파악하기로 했는데, 다행히 우리의 전략은 성공해서 멀지 않은 곳의 선착장(舊 신천역 선착장)을 발견했다. 그렇게 우리는 고생 끝에 어둠 속 가로등 불빛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그랜드 피아노 연주가 울려 퍼지는 낭만적인 유람선에서 각자의 꿈을 이야기하고 서로 응원하며 십 대 시절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우리 셋 중 이때 이야기 나눈 직업적 꿈을 이룬 사람은 아직 이 글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의사가 된 친구이다. 그러고 보면 이 친구와 나는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녔지만 같은 반이었던 적은 없고, 내가 전학 간 초등학교에서 사귄 친구이니 같은 학교에 다닌 기간은 5년에 불과하다. 지금은 하는 일도, 사는 곳도 다르고 각자 가정이 있는 데다가 그나마 일 년에 한두 번 가진 만남도 코로나 때문에 못 만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나는 때때로 마음속으로 그 친구를 의지한다. 아마도 실처럼 가늘지언정 인연이 끊어지지 않고 오랜 기간 차곡차곡 한강 유람선처럼 아름다운 추억을 공유하며,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꼭 우리 세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낸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볼 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의사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세상 거의 모든 것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불만과 불평을 토로하는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계속 만나자, 만나자 하다가 친구가 출산을 겨우 열흘 남겼을 때 간신히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당시 친구는 집에서 약 30km 떨어진 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나는 당연히 운전해서 출퇴근을 하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 운전면허가 없다고 했든가? 아무튼, 무거운 만삭의 몸을 이끌고 최소 지하철 환승 한 번, 버스 환승 한 번을 해야 할 왕복 세 시간 거리를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가끔은 배우자가 데려다주거나 택시를 탈 때도 있다고. 사람들이 자리 양보를 잘해주는지 물으니 해주는 이도 있고, 해주지 않는 이도 있다며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나였다면 회사가 너무 머네, 출퇴근이 고역이네, 임산부에게 자리 양보는 당연하다며 매일 투정을 부렸을 텐데, 친구는 ‘어쩔 수 없지’라는 한마디로 상황을 일축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문제라고 여기거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이 친구에게 닥쳤을 때는 별일 아닌 경우가 많다. 의대생일 때 정식 시험이던 약식 퀴즈던 간에 거의 매주 시험을 본다는 친구에게 말도 안 되게 많은 암기량을 어떻게 매주 소화하느냐고 물으니, 시간이 부족하니까 ‘그냥’ 잠을 줄여서 공부한다고 했다. 그래서 늘 두통이 있는데 그때도 별일 아니라는 듯이 그냥 아스피린 한 알 먹고 계속 공부한다고 했다. 잠을 줄여서 공부할 수는 있지만, 두통이 있는데 공부를 하려고 약을 먹고 계속 공부를 한다? 나처럼 하루 8시간 수면이 필수인 사람은 상상하지 못 한 답변이었다. 물론, 친구는 평생 이렇게 사는 것도 아니고, 두통이 있을 때 아스피린 한 알을 복용하는 건 신체에 별 지장이 없다고 덧붙였다.
언젠가는 친구에게 해부 수업이 무섭지 않으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야말로 평소 차분한 친구가 꽤 놀란 표정으로 약간 목소리도 떨면서 ‘○○야, 그거 다 네 몸속에도 있는 거야.’라고 대답했는데, 정말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심장은 매초 박동해 온몸 구석구석 혈액을 공급하고, 코와 기도, 폐를 통해 호흡하고, 이로 짓이긴 음식은 식도를 지나 위와 장에서 소화해 신체 각 기관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신장과 콩팥은 노폐물을 걸러주고, 간은 알코올을 분해하는 등 해독 작용을 하고, 뼈와 근육이 있어 무거운 물건도 거뜬히 들고 걷거나 달릴 수 있는데…… 내 몸속에서 활발히 운동하며 생명을 지탱해주는 소중한 존재조차 낯설다며 구분 짓는데, 나는 대체 지금까지 얼마나 자주 선을 긋고 구분 지으며 살아왔을까. 나와 타인, 나와 가족, 우리 가족과 다른 가족, 남성과 여성, 인간과 동물, 한국인과 외국인,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 부자와 가난한 자, 문명과 자연…… 아마도 친구는 일찍이 ‘세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라고 알고 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인도 여행도 좋았다고 말하고, 주저 없이 홀로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여행하곤 했나 보다. 큰 틀에서 보면 지구 상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대동소이하니, 위험하거나 낯설다고 생각하기보다 다른 문화와 삶의 양식을 존중해 자연스레 받아들인 것 같다. 어느덧 이런 사고방식이 몸에 익어 나에게는 버거운 일도 친구는 ‘어쩔 수 없지’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라며 포기할 건 일찌감치 포기하고, 불평을 앞세우기보다 그저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단출한 삶을 사는 것 같다.
아마도 친구는 육아에, 일에, 논문에 누구보다 치열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바쁜 와중에 간혹 문자라도 주고받으면 그녀의 순수하고 밝은 기운이 고스란히 와닿는지 마음이 그리 편해질 수 없다. 아마도 그녀는 속이 깊어 상대방을 익숙하게 배려하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며, 순리대로 살아가는 담백한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다. 결국, 홀로 살아갈 인생이지만 언니 같은 듬직한 친구가 있어서 고독한 인생에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세상에서 우정이야말로 최고의 치유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