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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Oct 03. 2021

씨앗이 싹터서 열매를 맺기까지

풍선초 성장기

올봄에 단골 식당 사장님께서 풍선초 씨앗을 몇 개 주셨다. 처음 들어본 식물인데 까맣고 둥그런 씨앗 한 면에 조그맣게 하트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사장님은 한해살이 넝쿨 식물이고 다 자라면 풍선 모양으로 열매가 맺혀서 풍선초라고 불린다고 하셨다. 올해는 식물을 더 키우지 않기로 마음먹었는데, 선물 받은 씨앗을 그냥 놀릴 수는 없었다. 이렇게 예정에 없던 풍선초를 키우기로 했고, 약 넉 달 동안 위기를 몇 번 넘기며 마침내 씨앗을 수확(?)하는 기쁜 순간을 맞이했다. 5월부터 9월까지 풍선초가 성장한 과정을 사진과 짧은 글로 기록한다.


◆ 풍선초
- 무환자나무과의 덩굴식물
- 풍선초, 풍경덩굴로 부름
-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등 아열대 지방에 서식
- 높이는 2~3m
- 우리나라, 일본 등 온대 기후에서는 일년초지만 아열대 기후에서는 다년초
- 영어로는 하트 씨앗 모양에서 비롯한 Heart Seed, 풍선 열매 모양을 강조한 Ballon Vine 또는 Love-in-a Puff로 부름


5월

5월 15일

씨앗에 그려진 앙증맞은 하트 문양이 사랑스럽다.


5월 15일

씨앗 열 개 정도를 화분에 심고 햇빛과 바람이 충분한 옥상에서 키우기로 했다. 넝쿨 식물이라 집안보다 야외에서 키우는 편이 나을 듯하다. 줄기가 자라면 어떤 식으로 지지대를 세워야 할지 고민이지만, 상황이 닥치면 절로 해결 방안을 모색하리라고 믿는다. 과연 싹을 틔울지 아닐지도 모를 일이고. 평소 턱없이 운동량이 부족한데 그나마 하루에 한두 번 옥상까지 계단을 오르내릴 구실이 생겼다.




6월

6월 21일

싹이 났는지 확인하려고 매일 오전 옥상에 들르기를 한 달. 눈을 크게 뜨고 아무리 흙을 들여다봐도 오늘과 어제, 어제와 그제, 그제의 그제가 별반 다르지 않다. 감감무소식. 흥미를 잃고 일주일 전부터는 옥상에 가지 않았다. 그사이 세찬 장맛비가 몇 차례 내려서 옥상 화분이 멀쩡할지 약간 염려했지만, 변화 없는 식물에 더는 실망하고 싶지 않다. 포기하고 내버려 두기를 일주일. 이제는 화분을 정리하려고 올라갔는데 그토록 기다리던 싹이 움텄다. 벌써 제법 자랐고 무려 두 개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심봤다! 뛸 듯이 기뻤다. 식물을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이 재미에 식물을 한 개, 두 개...... 늘리는 심정을.


6월 26일

나무젓가락 지지대를 세웠다. 풍선초는 갈퀴 모양 잎이 세 갈래로 뻗는다. 식물도 사람처럼 저마다 특성이 다르다.




7월

7월 3일

잎이 넓어졌다. 다이소에서 산 50cm 지지대 한 개를 세웠다.

 

7월 9일

잎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줄기가 산발 같아서 끈으로 줄기를 지지대에 묶어서 모양을 잡는다. 지지대 한 개를 더 세웠다. 싹이 하나 더 나서 총 세 개가 자라고 있다.


7월 14일

싹을 틔우기까지 오래 걸렸지 싹이 난 뒤에는 임계점을 넘긴마냥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한여름이라 매일 아침 물을 듬뿍 줘도 다음 날이면 흙이 마른다. 키가 50cm가 넘으면 어떡하지? 식물이 더 자랐을 때 지지대를 어떻게 세워야 할지 슬슬 걱정된다.


7월 17일

싹이 난지 한 달 만에 꽃이 폈다. 씨앗처럼 하얀 꽃도 앙증맞게 생겼다. 다른 꽃자루에서도 앙다문 꽃봉오리가 꽃을 피울 준비가 한창이다. 풍선초는 웅화와 자화가 한 그루에 같이 핀다. 사진에서 오른쪽에 꽃잎이 벌어진 꽃이 웅화, 왼쪽에 모아진 꽃이 자화이다.


7월 27일

잎은 무성하고 줄기가 지지대를 훌쩍 넘을 만큼 자랐다. 잘 자라서 좋지만 지지대를 어떻게 더 세워야 할지 모르겠다. 화분이 크지 않아서 더 긴 지지대를 세우면 오히려 화분과 식물 전체가 쓰러질 것 같다. 혼자 사는 건물이 아니라서 공용 공간 벽에 끈을 걸기도 마땅치 않다.


7월 30일

가장 긴 줄기는 1미터 넘게 자란 것 같다. 고꾸라지지 않고 가는 줄기는 중력을 거슬러 위로 또 위로 향한다. 조만간 내 키보다도 커질 것 같다.




8월

8월 1일

결국 줄기가 90도로 꺾였다. 염려와 달리 꺽인 상태에서도 꽃을 틔우고 다른 줄기와 얽히고설켜서 지탱하며 자란다. 인간도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여럿이 모여서 해결하며 살아간다. 서로 의지하는 풍선초 줄기를 바라보며 사람과 사람이 얽히고설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되새긴다. 줄기 곳곳에 핀 흰꽃은 작은 눈송이 같다.


8월 19일

꽃은 무성한데 열매가 한동안 달리지 않아서 내심 초조했다. 마침내 첫 번째 열매가 맺혔다. 이제 열매가 맺히는 시기인가 보다.


8월 25일

열매가 하나 둘 늘어난다. 씨앗에 그려진 하트 모양처럼 열매도 하트 모양이라서 보고 있으면 미소가 지어진다.




9월

9월 3일

6월 중순에 싹이 난 뒤로 두 달 반이 지났다. 잎과 줄기는 우거지고 열매도 둥글게 무르익는다. 풍선초라는 이름처럼 손끝으로 톡 하고 열매를 건드리면 펑하고 터질 것만 같다.


9월 18일

9월에 접어든 뒤로는 전처럼 매일 물을 주지 않는다. 한낮의 볕은 여전히 뜨겁지만 기온이 떨어진 탓에 식물은 한여름의 선명한 초록 빛깔을 벗고 자연의 순리대로 점점 허옇게 색이 바랜다. 벌어진 열매 사이에 까만 점이 보여서 자세히 살펴보니 씨앗이다. 열매마다 씨앗이 한두 개씩 들어있다.


9월 18일

심었던 씨앗이 새싹, 잎과 줄기, 꽃과 열매를 거쳐서 다시 씨앗으로 돌아왔다. 심었던 씨앗의 개수보다 두 배 이상 수확했다. 


풍선초를 키우면서

1. 변화나 발전이 없는 것 같더라도 계속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 돌아봤을 때 분명히 성장해있다는 것
2. 매너리즘에 빠져 포기하고 싶은 한두 번의 순간을 넘기면 바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
3. 얽히고설켜서 함께 버팀목이 되어 살아갈 때 서로 더 단단해지고 버틸 수 있다는 것

을 느끼며, 조급한 마음이 들 때마다 크게 심호흡 한 번 하는 여유를 찾았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식물은 언제나 말없이 갑갑한 마음을 달래고 위로한다. 무슨 이야기든 털어놓을 수 있는 오랜 친구 같다.


한해살이 식물이라 올해만 키우려고 했는데, 새로운 생명을 간직한 씨앗을 수확하니 마음이 달라진다. 아마도 이 씨앗은 내년에 다시 싹을 틔우고 자라나서 꽃과 열매로 태어날 것 같다. 가까운 미래도 아닌데 이미 마음을 먹었다. 이래서 식물을 한번 키우면 화분을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어렵다. 식물을 키우는 즐거움을 알게 되면 헤어 나올 수 없다고 감히 장담한다. 나도 불과 몇 년 전까지 선인장도 죽인다며 식물 킬러를 자처하던 사람이었으니까.


다음으로는 크리스마스 플라워라고 불리는 작년 겨울에 선물 받은 포인세티아가 12월이 다가올수록 녹색 잎이 다시 붉게 변할지, 이 사소한 궁금증을 해소할 날을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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