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마일펄 Mar 29. 2023

관계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의 공통점 세 가지

나르시시즘 성향의 사람이 보이는 독특한 행동과 사고 패턴

<이전 글>



의도치 않게 나는 선물을 한 상대방의 반응을 계기로 인간관계가 갈린 경우가 많은데, 선물 뒤 관계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이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사실 이들은 매우 솔직하고 격의 없고 적극적이며 유능하고 심지어 매력적이다. 사교성이 좋아서 사람들과 금세 친해지고 자신의 고민이나 약점도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우리 사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씨와의 이런 대화가 제게는 정말 큰 도움이 돼요’와 같은 말로 분명한 친밀감을 표시하고, 그들에게 내가 최소한 다른 이들보다는 특별한 존재라고 느끼도록 한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이 낫다는 말처럼 오며 가며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나도 이들에게 마음을 점점 열어갔다.


이들은 자기 내면의 불안이나 우울, 외로움 같은 정서나 현재 자신이 짊어진 삶의 무게 같은 아주 친밀한 관계에서 공유할 법한 이야기를 종종 스스럼없이 드러냈기에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왔고, 어느 순간 내 마음속에서는 염려하고 신경 쓰이는 존재로 자리잡았다. 여기까지는 사람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여느 친구를 사귀는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매력적이고 꽤 친밀한 사이인 이들과 좀 더 안정적이고 깊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맺을 수는 없었다. 그 이유를 몇 가지 정리하자면, 우선 이들은 늘 시간이 너무 없다. 현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바쁘지 않은 사람은 드물고, 나 또한 돈 벌고 밥 해 먹느라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고 있다. 평온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내면은 갈등의 소용돌이로 아수라장이다. 그럼에도, 일을 할 때도 사람을 대할 때도 여유 있는 태도로 임하려고 한다. 세상에 바쁜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니까.


그런데 희한하게 이들만 늘 시간이 너무 없고 바쁘고 처리해야 할 일은 산더미다. 밥 먹고 자고 일하고 놀고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한데 이들은 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바쁜지 알 수가 없다. 사실 들어보면 이유는 늘 있는데 내 기준에서는 일상이 바빠서 정신도 차리지 못하게 흘러가게 둘 만큼 마음과 시간을 쏟을 만한 일인가 싶을 때가 많다. 바쁜 티가 몸에 밴 이들 곁에 있다 보면 나도 숨이 넘어가는 것 같고, 이들의 시간을 빼앗고 있는 것만 같아서 눈치가 보이고 편하지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궁극적으로 이들은 처음과는 달리 갈수록 나에게 낼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것도 참 독특한 점인데 이들은 ‘자신이 타인에게 무엇인가를 베풀고 있다’는 신념이 강하다. 물론, 때때로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고 자신감을 세울 때 일시적으로 일종의 선민의식을 발휘하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행위, 회사에 근로를 제공하고 급여를 받는 행위, 타인과 서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 등 ‘상호’간에 주고받는 행위를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 ‘일방’적으로 더 베풀고 있다는 이상한 사고방식을 형성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독립적으로 보이고, 자신감 넘치는 매력적인 사람으로 느껴서 끌렸는데, 알아갈수록 자존감이 적당하게 높은 수준 이상을 넘어서 현실을 왜곡해 자신을 실제보다 더 대단하고 특별한 사람처럼 여기는 나르시시스트 같은 면모가 묻어났다. ‘세상에서 자기는 자신의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라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너무 당연해서 굳이 하지 않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기도 한다. 그럼 과연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는 상대의 몇 번째 우선순위에 속해 있는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돌아보게 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들은 대체로 자아가 불안정해 보였는데, 아이 대 성인이 아니라 같은 성인 대 성인으로 묻지도 않았는데 굳이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라는 말로 옆의 상대방을 덜 가치 있는 사람으로 비하하는 태도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한편, 이들이 더 베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대체로 상대가 원하는 수준 그 이상을 ‘자발적’으로 베풀려는 희한한 경향이 있다. 한마디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벌여서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받고 다소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늘 시간이 없는 이유도 바로 쓸데없는 오지랖 때문이다. 이는 내면의 어떤 불안을 덜거나 상대방을 쉽게 동정하는 마음 때문이기도 한데, 궁극적으로는 자존감이 높아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자존감이 낮고 자아가 불안정해서 자발적으로 과도한 친절을 베풀어 상대를 만족시키고 인정을 얻는 것으로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얄팍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함이다.


점입가경으로 베푸는 대상으로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러 말들과 상황을 종합했을 때 경제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나보다 더 궁해 보이는 이들이 나를 돕겠다며 필요치 않은 정보를 제공하고 마음을 쓰려고 해 점점 난감하고 불편했다. ‘나는 괜찮고 잘 살고 있는데 대체 왜 이러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그들에게 한 힘든 시절 이야기에 자신을 이입해 함부로 나를 동정하려고 했다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정작 내가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는 가차 없이 외면하고, 심지어 자신은 나에게 이미 많이 베풀었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는 자신을 우선시하겠다는 어이없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일방적인 관계 맺음은 사실 대화패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들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도 어느 정도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지만, 실은 자기 말하는데 급급해서 남의 말은 잘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화를 할 때 자기 혼자 대화를 독점하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상대도 말할 시간을 주고 이를 듣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또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내가 한 이야기 대부분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몇 번은 의아했다. 내가 말할 때 딴생각을 한 건지, 나에게 관심이 없는지 둘 다인지 속마음까지는 알 수 없지만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반응을 마주할 때면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보나 관점이라는 판단이 드는 이야기가 나오면, 갑자기 딴사람이 된 듯이 집중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식으로 태도가 돌변해서 ‘이건 또 뭐지?’ 싶었던 적도 여러 번 있다. 물론, 나도 정서적이든, 생활이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인간 대 인간의 신뢰와 교감을 토대로 확장한 관계와 너무 드러내 놓고 ‘너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라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거야’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관계의 질이 결코 같을 수 없다. 이들이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처음과 달리 우리의 관계는 점점 착취적인 관계로 변질되고 있었다. 이는 내가 이들과 관계를 더 발전시키지 않기로 한 이유이기도 했다.




내 선물에 담긴 마음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이들이 결코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누구보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가족에게도 헌신적이고 삶에도 적극적이며 사교적인 멋지고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친밀한 관계에서는 일방적이고 독재자처럼 군림하며 착취하려는 단점이 도드라져 보여서 좋은 말을 주고받고 가벼운 일상을 공유하는 피상적인 관계가 서로에게 적절한 거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지금 자기에게 온통 에너지를 쏟는데 허덕이느라 실은 주변을 제대로 둘러볼 여유까진 없는 사람들이니까. 선물에 담긴 내 정성과 마음까지 헤아릴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선물 한 뒤에 오히려 관계가 소원해진 경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