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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Mar 31. 2023

'그동안 카페를 간 게 아니라 연애를 했구나' 싶었다

애착 장소(좋아하는 카페)를 상실하는 마음

<레버럽 영업 종료 안내>

레버럽은 2023년 3월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합니다.

휴식도 필요하고, 카페에서 더 나아가 베이킹 클래스 같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서 고민 끝에 이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화를 많이 나누지는 못했지만 반짝이는 눈으로 레버럽을 좋아해 주신 분들께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드려야 하나 싶었는데요.
좋아하셨던 만큼 놀라고 섭섭하고 아쉬워하실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했는데, 마지막 삼월은 여러분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디저트를 구성하는 것으로 그동안 감사한 마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레버럽에서 드셨던 자신의 최애 디저트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진심을 담아서 정성껏 준비해 놓겠습니다.


어 레이버 오브 러브. A LABOUR OF LOVE.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의미. 줄임말은 레버럽. 매장에 들를 때마다 쿠폰에 받은 도장 개수 총 45개. 처음에는 쿠폰을 만들지 않았고, 테이크아웃은 1,000원 할인 대신 쿠폰 혜택은 제공하지 않으니 실제 레버럽을 들른 횟수는 최소 50번은 넘을 것이다. 2월 말에 공지한 대로 3월 마지막 주, 오늘은 나의 아지트이자 안식처, 카페 ‘어 레이버 오브 러브’의 마지막 영업날이었다.


오전에 일을 바짝 마치고 늦은 오후에 방문한 레버럽은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사장님은 분주한 가운데 "안녕하세요"라는 활기찬 인사로 반갑게 맞아 주셨다. 화이트톤으로 페인트칠된 실내는 넓은 통창으로 햇빛이 그대로 흡수돼 기쁜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의 표정처럼 더없이 환했다. 테이블에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책을 읽거나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님들이 저마다 한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운 좋게 가장 좋아하는, 햇빛이 제일 잘 드는 자리가 비어 있어서 창가 옆 원형 테이블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레버럽의 음료와 디저트 메뉴도, 봄을 맞이해 엊그제 사장님께서 매장에 가져다 둔 노란 프리지어 화병도, 최근 귤색 열매를 맺은 유주나무도, 창밖을 오가는 평범한 사람들도, 매장의 공백을 스미듯이 메꿔주는 그루브 한 여유가 느껴지는 음악들도 전부 그대로였다.


오늘이 레버럽의 마지막이라고, 내일부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전혀 실감할 수 없었다. 아마 다른 손님들도 오늘은 나처럼 특별히 레버럽을 찾았지만, 아쉬운 마음을 요란스럽게 내비치지 않고 여느 때처럼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속으로는 저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들었던 공간에 작별 인사를 고했을 것이다.




어 레이버 오브 러브는 나에게는 다정한 친구이자 포근한 가족 같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스승 같은 공간이었다. 어떤 감정이든 편안하게 내비칠 수 있고, 무슨 이야기이든 들어줄 것 같은 듬직하고 신뢰할 만한 연인 같기도 해서, 기분이 좋으면 좋아서, 기운이 없으면 없어서, 마음이 힘들면 힘들어서, 슬프고 우울하면 슬프고 우울해서, 행복하면 행복해서 레버럽을 찾아가곤 했다.


새콤하고 따뜻한 차 한 잔과 달콤하고 고소한 디저트를 시킨 뒤, 오늘처럼 햇빛이 가장 잘 드는 늦은 오후에 창가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햇빛을 쬐고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마음이 어지러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을 때, 완전히 혼자라는 외로움이 사무칠 때, 타인의 불행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력감과 비탄에 빠졌을 때, 바쁜 하루 일과를 마치고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목표를 성취하고 나 자신에게 상을 주고 싶을 때, 동기부여를 받고 영감을 얻고 싶을 때,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되 사람들 틈바구니에 존재하고 싶을 때, 그저 달콤한 디저트와 특별한 차 한 잔을 먹고 싶을 때, 나른하게 햇빛을 쬐며 복잡한 머릿속을 비워내고 싶을 때…… 지난 몇 년간 레버럽이 곁에 있었다. 그럼, 고갈돼 밑바닥을 드러내던 에너지가 멈추지 않고 작동할 만큼은 채워져서 기진맥진하지 않고 미력하나마 일상을 이어갈 수 있었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충만한 기운은 지친 나를 달래고 활력의 씨앗을 뿌려 다시 새싹으로, 줄기로, 잎으로 자라나도록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은 좋아하는 사람과도 공유하고 싶은 법이다. 나만 알고 싶은 이 공간을 혼자서 향유하는 것을 넘어서 때로는 친밀한 사람들을 데려오기도 했기도 했다. 나에게는 지극히 사적인 이 공간을 타인에게 공유한다는 의미는 내가 상대에게 그만큼 마음을 열고 있다는 제스처이기도 했다.


이제는 같은 동네에 살지 않는 오랜 절친을 만날 때면, 꼭 레버럽에서 디저트 세트를 미리 주문해 선물을 하고는 했다. 내가 경험한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는 이들도 경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도 모르게 레버럽의 디저트를 자꾸 선물 일 순위로 꼽는 모습을 발견하고, 어 레이버 오브 러브가 내 마음속에서 무척 특별한 존재로 자리잡고 있다고 깨달았다.




‘사람마다 사랑과 이별을 대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어떤 형태로든 좋아하고 섭섭한 마음은 전달되는 것 같아요. 제가 장사를 한 게 아니라 연애를 했구나 싶네요.’ 사장님은 영업을 종료하는 소감을 이처럼 덧붙였다. 사람은 사람이라는 어떤 한 개인이 아니라 집단(그룹), 동물과 식물, 사물과 장소 등에도 애착을 갖는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 나비라고 이름 붙인 곰 인형,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 받은 식물 등 특별한 개인 외에도 애착하는 대상은 늘 있었지만, 그것을 연애 감정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갑작스러운 레버럽의 영업 종료 소식에 놀라고 아쉬운 마음, ‘나에게 이곳을 완전히 대체할 카페는 없을 텐데’라는 두려움과 걱정, 상실감을 달래고자 영업 종료를 한 달 앞두고 일과를 쪼개서 자주 카페에 들러 시간을 보내려는 행동…… 이것은 사장님 말씀처럼 사랑하는 대상과 이별하는 과정이었다. 그동안 차를 마시고 디저트를 먹고 순전히 멍하니 시간을 때운 것이 아니라 나도 레버럽과 연애를 했구나 싶었다.




“사장님, 초코로쉐랑 코코넛 쿠키 포장하고, 초코라테 아이스로 베지밀(두유)로 바꾸고, 말차라테도 똑같이 해서 테이크아웃 할게요.”

“네, 준비해 드릴게요. 이따가 밖에서 마지막 인사 나누어요.”


이제는 레버럽의 차와 디저트를 더 이상 맛볼 수 없기에, 고작 하루이틀이라도 며칠이나마 아쉬움을 달래고자 평소보다 포장 주문을 많이 했다. 실은 오늘 집을 나설 때부터 이미 테이크아웃을 계획했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제가 계속 언제 마지막으로 오실지 여쭈었는데, 이것 때문이었어요. 별거 아니지만, 아니 별거이긴 한데 사소한 거예요. 그냥 받아 주시면 돼요.”


아니, 내가 영업 마지막날이나 그 전날에 한 번 더 들르겠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만일 다른 일이 생겨서 약속을 못 지켰으면 어떡하셨으려고 선물을 다 준비하신 건지. 평소 말과 행동으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장님의 타인의 감정을 세심하게 살피고, 살뜰하게 배려하는 성격은 알고 있었다. 작별 선물의 의미를 살리고 감동을 느끼도록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올지 눈치를 살피고 기다렸을 사장님의 다정한 마음 씀씀이에 다시금 코끝이 찡했다.


내가 누리는 완벽한 편안함은 대체로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고생의 대가이다. 사장님은 ‘여러분의 작은 칭찬과 응원이 큰 힘이 되었고, 지금의 레버럽을 존재하게 했다’고 말하는 한편, ‘언젠가부터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부담을 느끼고, 누군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서 고민 끝에 잠시 휴식이 아니라 일단정지를 하기로 했다’고 고백했다. 그제야 내가 이 공간에서 누린 온전한 평온함과 휴식이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곳에 온 손님이 이 순간만큼 온전해지기를 바란 사장님의 끝없는 고민과 노력, 보이지 않는 정성 때문이었다고 깨달았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카페 이름처럼 이곳에 오면 좋아서 하는 일들을 잔뜩 할 수 있으니 사랑에 빠질 수밖에.


선물은 자주 주문하던 차의 티백 세트와 짧은 손편지였다. 우리는 서로 통성명을 한 적도 없는데, 사장님은 내 이름을 분명히 알고 계셨다. 나도 편지에서 처음으로 사장님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외유내강의 사장님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어 레이버 오브 러브는 더 이상 없지만, 티백 세트 덕분에 레버럽과의 추억을 조금은 더 연장하게 되었다. 내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더 달래고 채워주려 한 사장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올해에도 몇몇의 예정된 상실이 기다리고 있다. 그 첫 번째 상실은 지난 한 달 동안 서서히 다가와 공식적으로는 이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우리 모두 좀 더 성장해 있기를. 만일, 재회한다면 그래서 더욱 반갑기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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