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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 왜 대학교를 중퇴했을까?

그는 정말로 대학 교육이 불필요했을까?

by 스마일펄

대학 졸업장 없이 창의성을 발휘해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로 세계적인 IT 기업을 설립한 마크 저커버그,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를 꼽는다. 그런데 잘 알려져 있듯이 이들은 유수의 대학교를 입학했다가 중퇴했지만, 이것이 사회적 성공을 위해 대학 교육이 소용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이들 외에도 세계적으로 성공한 미국의 CEO 가운데 대학을 중퇴한 사례가 많은데, 나는 이들이 대학 교육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관심 있던 분야에 대학 진학 뒤에도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여러 시도를 하다가 우연히 성공 가능성을 발견하고, 인생을 한번 걸어볼 만하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즉, 대학 졸업 후의 일반적인 성공 경로를 걷는 것보다 더 나을 법한 무엇인가를 찾았기 때문에 대학을 포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마크 저커버그,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가 창업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자.




1.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현재: 메타)을 설립한 마크 저커버그는 프로그래머이자 인터넷 사업가이다. 그가 하버드 대학을 중퇴했고, 대학 시절 재미 삼아 개발한 누가 더 매력적인지 학생들의 사진에 투표하는 페이스매쉬 사이트가 페이스북의 시작이었다는 이야기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2003년, 마크 저커버그는 여자친구에게 차인 화풀이로 학교 전산시스템을 해킹해 학생들의 정보를 빼낸 후, 기숙사 여학생들의 사진을 올리면서 누가 더 마음에 드는지 고르는 ‘facemash.com’을 개설했다. 이는 사생활 침해로 문제가 돼 그는 결국 학교에서 징계를 받고, 이후 마크 저커버그는 사생활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윤리위반과 법적 분쟁을 피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사용자가 자신의 정보를 직접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고, 2004년 하버드대학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함께 ‘Thefacebook.com’을 설립한다.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설립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선 그는 하버드 대학을 입학하기 전 고등학교 재학 중에 인텔리전트 미디어 그룹이라는 회사에 고용돼 시냅스 미디어 플레이어를 제작했고, 마이크로소프트와 AOL이 시냅스 플레이어를 사들이면서 고용을 제안할 만큼 이미 ①월등한 실력을 갖춘 프로그래머였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페이스매쉬 사이트를 개발했고, 파생된 문제를 정확히 분석하고 파악해 해결할 줄 아는 ②문제해결력을 갖추고 있었다. 페이스북은 설립 직후 2004년 페이팔의 공동창업자이자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의 권위자인 피터 틸에게 50만 달러(약 6억 원)를 ③투자받으며 서비스의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그가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하지 않았으면 우연히 페이스매쉬 사이트를 만들 계기는 없었을 것이므로, 현재와 같은 모습의 페이스북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는 CEO이기 이전에 유능한 프로그래머이며, 중학교 시절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 16살에 치과 의사인 아버지(참고로 어머니는 정신과 의사이다)에게 아타리 BASIC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웠고, 21살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데이비드 뉴먼에게 개인 지도를 받았다. 또한 집 근처 머시 칼리지의 대학원에서 관련 수업을 청강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일찍이 자신이 관심 있는 프로그래밍 능력을 갖추고자 필요한 교육과 경험을 적극적으로 쌓았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바로 채용될 수 있었는데도 하버드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컴퓨터 과학을 공부하기를 선택했으며, 대학을 선택했기에 유명 기업에서 직원으로 일하기보다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는 CEO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는 시각으로도 볼 수 있다. 한편, 만일 페이스북을 설립하지 않았더라도 마크 저커버그는 뛰어난 프로그래밍 능력을 바탕으로 고연봉을 받고 이직으로 몸값을 높이는 성공한 프로그래머로 살았을 것이다.




2. 빌 게이츠: 빌 게이츠는 1975년 어린 시절 친구인 폴 앨런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설립했다. 그는 13세 때 상류층 사립학교인 레이크사이드 스쿨에 입학했다. 8학년 때 학교 어머니회는 자선 바자회에서의 수익금을 텔레타이프라이터 단말기와 제네럴 일렉트릭(GE) 컴퓨터의 사용시간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기로 결정했고, 빌 게이츠는 이 GE 시스템에서 베이직(BASIC)으로 프로그래밍하는 것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는 입력된 코드를 언제나 완벽하게 수행하는 이 기계에 매료됐고, 간단한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참고로 빌 게이츠보다 두 살 많은 폴 앨런도 레이크사이드 스쿨에 다녔고, SAT 만점으로 워싱턴 주립 대학교에 입학했다가 2년 만에 중퇴했다.


빌 게이츠는 고등학교 졸업 후 하버드 대학교에 진학해 법학을 공부하던 중 1975년 폴 앨런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해 결국 학업을 중단했지만, 만일 사업이 안 풀리면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었다고 한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저명한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교사였으며, 외할아버지는 미국 국립은행의 부은행장이었다. 부모님은 그가 법조계에서 일하기를 바랐고, 만일 그가 학업 중에 사업에 성공하지 않았다면 지금 즈음은 변호사가 되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3. 스티브 잡스: 1955년 생인 스티브 잡스는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부모님 집 차고에서 애플(Apple)을 공동 설립했다. 그는 세기의 혁신가이자 괴팍하고 강박적인 나르시시스트적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양면성이 있는 그의 고집스러운 성격 형성에는 아마도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양부모가 입양을 한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다. 그의 친부모는 위스콘신 대학교 대학원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고, 스티브 잡스를 임신했지만 부모의 결혼 반대로 입양을 결심한다. 그의 친모는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부부에게 아이를 입양하고자 했기에, 고등학교 중퇴자 부부인 스티브 잡스의 양부모에게 아이를 꼭 대학에 보내겠다는 서약을 받고 입양을 하게 된다. 양부모는 스티브 잡스가 어릴 때 입양 사실을 밝혔고, 혼란스러워하는 그를 많이 보듬고 항상 격려했다.


스티브 잡스의 양아버지는 중고차를 사들인 후 수리해 재판매하는 기계공(엔지니어)였다. 아버지는 그에게 기계를 해체해 다시 조립하는 경험을 하도록 했고, 그는 기계의 보이지 않는 뒷부분도 앞면처럼 신경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는다. 하지만 기계 자체보다는 차 수리를 위한 부품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가 흥정하는 모습을 더 흥미롭게 지켜봤다.


스티브 잡스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자주 빼먹는 비행 청소년이자 사고뭉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학생이 학교에서 공부에 흥미를 못 가진다면 그것은 선생님의 잘못이라고 말하며 그를 혼내지 않았다. 한편, 어머니는 그에게 책 읽는 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는 그가 학교에서 말썽을 피우면서도 공부에 집중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교에서 스티브 잡스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선생님은 그에게는 금전적 보상으로 동기부여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처음에는 돈과 사탕 등으로 구슬려 그의 관심을 샀지만 후에는 그 자신이 선생님을 기쁘게 하고자 학업에 열중했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의 권유로 수학능력평가를 치렀는데, 고등학교 2학년 수준의 수학 능력이라는 평가를 받고, 한 학년 월반을 한다. 한편, 그는 초등학교 시절, 히스키트라는 아마추어 전자공학 키트를 얻으며 전자제품의 작동원리를 익히게 되었다.




당시 캘리포니아에는 군수산업 붐이 일어나 첨단 기술이 밀집되었다. 그의 집 주변에는 미국 최대 컴퓨터 기업이었던 휴렛팩커드 사(社)가 있어서 hp 엔지니어가 많이 살았고, 엔지니어가 주말마다 차고에서 전자 부품으로 여러 실험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hp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운영하던 탐구자 클럽에 가입해서 활동했는데, 이때 처음으로 컴퓨터를 봤고 첫눈에 반해버렸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는 휴렛팩커드 사(社)의 CEO인 빌 휴렛에게 전화를 걸어 주파수 계수기를 만들고 싶다며 남는 부품이 있는지 문의했고, 빌 휴렛은 그의 요청을 들어주었으며, 그는 팔로알토의 휴렛팩커드 사(社)에서 방과후 수업을 듣기도 했다. 이 시기 그는 hp의 조립라인에서 반복되는 조립을 하는 일과 전자 기기 상점에서 재고품을 정리하는 일 등을 했는데, hp 동료 직원보다 위층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과 더 친했으며, 전자 기기 상점에서 다양한 전자 기기를 접하며 즐거웠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부모님은 입양 당시의 약속을 지키고자 학자금을 어느 정도 모아뒀으므로 그를 설득해 대학에 진학하도록 한다. 결국, 그는 1972년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리드 대학교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한다. 그는 대학에서 듣고 싶은 과목만 수강했는데, 자신에게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필수 과목을 듣기 위해 부모님이 비싼 학비를 낸다는 데 죄책감을 느껴 한 학기만 수강 후 대학교를 중퇴했다.


하지만 대학을 완전히 떠나지 않고, 기숙사 주임을 설득해 자퇴 후에도 기숙사에 머물면서 18개월 동안 여러 강의를 자유롭게 청강했다. 특히, 캘리그래피 강의에 흥미가 있었고, 이 강의는 이후 트루타입 폰트를 애플 제품에 적용해 수려한 글자체를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1974년 캘리포니아의 부모님 댁으로 돌아와 비디오게임 제조사 아타리에 채용되었다. 그는 아타리 로비에서 채용될 때까지 버티겠다고 고집을 부린 끝에 결국 고용되고, 자진해서 야근을 하며 게임 개발에 매달린다. 스티브 잡스는 복잡한 설명서를 읽을 필요 없는 직관적이고 단순한 아타리 게임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아타리의 창업자인 놀런 부슈널은 스티브 잡스에게 브레이크아웃이라는 벽돌 깨기 게임 설계를 지시했고, 칩을 50개 미만으로 사용하면 줄어든 칩의 수만큼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는 워즈니악에게 보수를 반씩 나누는 조건으로 도움을 요청했고, 워즈니악은 나흘 만에 45개의 칩만으로 게임을 설계했으며, 이 게임은 아타리에 큰 수익을 올려준다.


이때 스티브 잡스가 받은 돈은 5,000달러인데, 워즈니악에게는 기본 수고비의 절반인 350달러만 지불하고 만다. 이는 스티브 잡스의 기만적이고 착취적인 성격을 드러낸다고도 볼 수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차 수리를 위한 부품을 구하기 위해 흥정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금전적 보상 즉, 일종의 거래적 조건으로 동기부여를 했다는 일화에서 일찍이 사람을 적절히 이용해 자기중심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사업자의 기질을 나타내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마침내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부모님 집 차고에서 애플(Apple)을 공동 창업한다.




세 명 가운데는 스티브 잡스가 ‘대학 안 가도 있으면 실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에 가장 가까운 인물인 것 같다. 출생과 성장 과정이 평범하지 않았고, (양육을 한) 부모님이 고학력자는 아니며 가정형편도 넉넉한 편은 아니어서 마크 저커버그나 빌 게이츠처럼 부모님께 지적 자산을 물려받거나 양질의 교육을 제공받지 못하고 일찍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으로 성장해야 했다.


그가 애플을 설립하고 고유의 브랜드를 만들기까지는 십 대 시절의 여러 경험, 아타리에서의 근무, 대학에서의 배움, 인도 여행에서 관심 갖게 된 불교 철학 등이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첨단 기술이 밀집하던 캘리포니아에서 성장한 환경도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사고뭉치인 그를 부모님이 야단치기보다 보듬고자 했던 양육 방침과 학교에서 그에게 동기부여 할 수 있는 유일한 선생님을 만난 것도 운 좋게 스티브 잡스가 크게 어긋나지 않고 성장한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대학 중퇴는 부모님께 학비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다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으며, 자퇴 후에도 18개월 동안 관심 있는 강의를 청강을 했으므로 그에게 대학 교육이 불필요했다고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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