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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펄 Mar 06. 2024

좋은 남자(사람) 고르는 실질적인 노하우 (2)

'내 아이의 아빠가 된다면?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이전 글: https://brunch.co.kr/@smilepearlll/365




다음은 ‘갈등을 회피하거나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맞추려는 의도가 아니라, 대화를 하다 보면 마음이 가는 상대방의 마음이나 입장이 정말로 공감이 돼 마음이 약해지고 이해하게 된다’라며 별로인 남자가 계속 괜찮아 보이고 자동적으로 끌린다고 하자 친구가 내려준 특단의 처방인데, 이 처방 덕분에 몇몇의 불안정한 예비 연애 상대를 외면하고 스쳐지나가는 인연으로 남겨둘 수 있었다.


둘째, 만일 이 사람이 내 아이의 아빠가 된다면?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다.


진짜로 아이를 낳거나 결혼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더라도 이처럼 상상했을 때 어느 때보다 상대방을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게 된다. 예쁜 외모에 다정다감하지만 자신을 떠받들어 주기를 바라는 자존심은 세고 의존하려는 마음이 큰 여성에게 자꾸 마음이 가는 남성이라면 반대로 ‘이 사람이 내 아이의 엄마가 된다면?’ 상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이 기준으로 바라보면 최소한 경제적으로 무능한 사람은 확실히 거를 수 있다. ‘돈은 좀 없지만 사람은 착하잖아’라는 순진하거나, ‘돈은 내가 있으니까 괜찮아’ 같은 오만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다.




육아의 핵심은 부부간 소통 능력이다. 만일 아이가 잘못을 했거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상대가 어떻게 대처할지 상상해 보면, 상대가 어떤 성향과 성격의 사람이고, 문제해결력과 책임감은 있는지, 협조는 잘 되는 편인지, 현재 연인과 원활한 소통을 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진단하게 된다. 


원래도 아이를 낳을 생각은 없었기에 결혼하고도 각별히 피임에 신경썼지만, 그럼에도 만에 하나 내 인생에 아이가 찾아온다면 축복으로 받아들이자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사소한 사건으로 지난 결혼생활에서 만일 아이가 생기면 내 인생은 영원히 이 집안에 발목이 잡혀 끝장나겠구나 직감했고, 그제야 전 배우자를 냉정하게 달리 보게 되었다. 시가와 얽힌 문제를 제외하고도 내가 생각한 상대가 육아에 적합하지 않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가 전자기기 중독자라는 점이었다. 높은 불안감을 달래는 방안이겠지만, 그는 눈 뜨자마자 잠들 때까지 한시도 스마트폰 또는 컴퓨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나중에는 이동 중은 물론이고 식사할 때, 화장실 갈 때도 늘 화려한 영상이 눈앞에 펼쳐지거나 어떤 음성이라도 귓가에 울려 퍼져야 했다. 내 판단으로 아이에게 해롭다고 알더라도 그는 절대 전자기기를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일찍이 전자기기 중독으로 바보가 되거나, 이 문제로 부부갈등이 극심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다른 하나는 그는 타인에게 지나치게 좋은 사람으로 비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이는 자기 아이에게도 예외는 아니라서 아이에게 좋은 아빠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무절제한 양육을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예를 들면, 초콜릿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알면서도 양치를 게을리하는 아이에게 원하는 대로 초콜릿을 손에 쥐어 줄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만일 아이가 자율과 규율을 익히도록 부부간 육아 원칙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좋은 아빠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그 원칙을 깨고 자기 고집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할 사람이었다. 그럼, 나는 아이에게 해가 되는 줄 알면서도 지켜보거나, 좋은 아빠와 대비되는 엄격한 엄마가 돼 어린 마음에 아이가 원망하고 관계가 소원한 엄마가 될 것이 명약관화했다. 한편 아이를 보살피고 각 시기에 필요한 적절한 양육과 교육을 제공하는 모든 육아의 책임은 오로지 나 혼자 부담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나에게 그는 결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실행은 하지 않고 번지르한 말만 앞세우기에 뭐 하나 맡기기도 주저되는 불안하고 어수룩한 사람이었다.


만일 일찌감치 그와 함께 육아를 하는 상상을 했다면, 게임과 전자기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데도 일종의 취미생활로 합리화하며 참고 이해하고, 좋은 모습만 보이고자 한 그의 회피하는 태도를 (나도 모르게) 수용해 배려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곤란할 만한 질문을 하지 않아서 즉, 나 또한 도량이 넓고 쿨한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자 본심을 억압한 채 매사 이해하는 척 참고 넘어가서 갈등이 없는 피상적인 관계를 서로 잘 맞는 사이라고 착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이라고 믿은 불편한 콩깍지에서 보다 일찍 벗어났을 것이다. 


먼저 이혼을 요구한 사람은 그이고, 원래도 아이 없이 살기로 합의했지만, 사소한 계기로 만에 하나 이 사람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긴다면 내 인생은 끝장이라고 정신이 번쩍 들고 불안감이 엄습한 순간, 실질적인 우리 관계도 끝난 거였다. 아무리 좋았던 사이라도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인간관계도 결국은 깨지기 마련인데, 이를 인정하지 못해서 끝난 사랑을 끌어안고 헛된 시간에 집착했던 것 같다. 예전처럼 변함없이 그를 대한다고 믿었지만 예민한 그가 사랑이 식어버린 배우자의 미묘한 변화를 느끼지 못했을 리 없다. 먼저 헤어지자고 말한 사람은 그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그와 헤어지기를 바랐던 사람은 나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마지막으로 ‘이 사람이 내 아이의 아빠가 된다면?’ 상상을 한다면, 상대방과 그 주변 환경이 아이 교육에 적합한지 따져보게 된다. 그 사람의 성장환경은 어땠는지, 부모님은 어떤 분들인지, 가정환경은 안정적인지, 학창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는지, 교육과 교양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함께 좋은 장소에서 데이트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주기적으로 연락하며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고, ‘사랑해’, ‘좋아해’라는 기분 좋은 밀어를 주고받는 데 그치지 않고, 상대가 정말로 어떤 사람이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는지 한 사람에게 높은 관심을 가지고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어 진다. 비로소 사회적 가면을 쓴 채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는 피상적이고 겉도는 대화가 아니라,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가는 진지하고 의미 있는 이야기가 오갈 수 있다.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보고 싶은 대로 보는 환상 속의 그대가 아니라,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수용하거나 거부할 수 있게 된다. 상대의 단점과 부족한 면모에도 불구하고 얼마큼 그를 수용할 수 있는지, 자신이 얼마나 평범하고 속물적인, 실망스럽고 탐욕적인 인간인지 민낯을 직면하며, 자기 자신의 적나라한 그릇의 크기를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평범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거창한 이상과 낭만에서 빠져나와 타인의 평범성을 수긍하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진짜 사랑을 할 준비를 마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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